2000억 투자 성공 고레카와 긴조 가치투자 원칙과 비결
2000억 투자 거장 고레카와 긴조: 전설의 가치투자
정년 퇴직자의 희망, 2,000억을 번 투자 거장, 고레카와 긴조의 투자 이야기
오늘 우리는 정년 퇴직 후에도 희망을 잃지 않고, 단 한 번의 투자로 2,000억 원이라는 엄청난 부를 일궈낸 일본 가치투자의 선구자, 고레카와 긴조의 놀라운 투자 이야기를 상세히 정리하고, 그의 핵심 투자 노하우를 깊이 파헤쳐 보겠습니다. 고레카와 긴조는 일본 소득세 1위를 차지하며 '정년 퇴직자의 희망', '전무후무한 투자자'라는 찬사를 받았는데요, 과연 그는 어떤 비결로 성공을 거머쥐었을까요? 지금부터 그의 투자 철학과 실제 투자 사례를 통해 주식 초보자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자세하고 친절하게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마치 옆집 형처럼 친근하게, 하지만 핵심은 콕 집어 전달해 드릴 것을 약속드립니다. 자, 그럼 흥미진진한 고레카와 긴조의 투자 세계로 함께 떠나볼까요?
두 번의 파산, 그리고 재기: 고레카와 긴조, 그는 누구인가?
고레카와 긴조는 제시 리버모어와 비견될 만큼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습니다. 파산, 초등학교 졸업이라는 역경 속에서도 굴하지 않고 주식 투자로 일본 최고의 소득세를 납부하는 전설이 되었는데요, 흥미로운 점은 제시 리버모어와 유사하게 어린 시절부터 굴곡진 삶을 살았지만, 리버모어는 63세에 비극적인 최후를 맞이한 반면, 고레카와 긴조는 95세까지 행복한 삶을 누렸다는 것입니다. 그는 생전에 책을 쓰는 것을 꺼렸지만, 자신의 투자 일대기가 왜곡되어 출판되는 것을 보고 어쩔 수 없이 자서전을 집필하게 됩니다. 그 책이 바로 그의 유일한 자서전이며, 1992년 2월 서문을 쓰고 그해 9월 95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기 직전에 완성했습니다. 죽음을 앞두고 쓴 책은 마치 유언과도 같은 의미를 지니는데요, 코스톨라니의 '돈 뜨겁게 사랑하고 차갑게 다루어라', 존 템플턴의 '가치투자 전략'처럼, 고레카와 긴조의 자서전 역시 후배 투자자들에게 남기는 값진 유산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고레카와 긴조는 인생에서 세 번의 파산을 경험합니다. 특히 제2차 세계대전 패망으로 전 재산을 몰수당하며 63세에 세 번째 파산을 맞이하게 되는데요, 놀랍게도 제시 리버모어 역시 63세에 파산했습니다. 하지만 고레카와 긴조는 63세라는 나이에도 좌절하지 않고, 푼돈으로 다시 주식 투자를 시작하여 결국 '일본 투자의 신', '최후의 주식 승부사'라는 칭호를 얻게 됩니다. 90년 인생의 투자 정수가 담긴 그의 자서전은 단돈 14,800원에 불과한데요, 이 책을 읽지 않는다면 정말 손해라고 단언할 수 있습니다. 책에는 그가 인생을 걸었던 세 번의 투자가 생생하게 기록되어 있으며, 당시 그의 생각, 주가 움직임, 투자로부터 얻은 교훈 등이 마치 영화처럼 흥미진진하게 펼쳐집니다. 단순한 투자 공부를 넘어 재미까지 느낄 수 있는 책이라고 강력 추천합니다. "투자는 거북이에서 토끼가 되는 순간 실패한다"라는 명언을 남기고 세상을 떠난 고레카와 긴조, 그의 90년 투자 철학이 궁금하지 않으신가요?
고레카와 긴조 투자 원칙 1: 빚투 금지, 현금 확보
고레카와 긴조는 투자에 있어 'BG(borrowed money, 빚)나 신용 거래는 절대 금지'라고 강조하며, 항상 현금을 확보하는 것을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1989년 12월, 일본 니케이 지수는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는데요, 1987년 블랙 먼데이 폭락을 딛고 2년 2개월 만에 21,910엔에서 38,915엔으로 엄청난 폭등을 연출했습니다. 당시 고레카와 긴조는 일본 주식 시장이 과열되었다고 판단하고, 닛케이 지수가 33,000엔을 넘어서는 시점부터 위기감을 느꼈다고 합니다. 예상대로 1990년 2월부터 니케이 지수는 하락하기 시작하여 4월에는 28,000엔까지 급락했고, 이후 반등하며 32,000엔까지 회복하는 듯했으나 다시 2차 대폭락을 맞이합니다. 8월에는 니케이 지수가 2만 엔 선이 무너지는 폭락이 이어졌고, 시장은 공포에 휩싸였습니다. 기관 투자자들은 냉정을 잃고, 반대 매매에 몰린 개인 투자자들의 투매까지 겹치며 주식 시장은 대혼란에 빠졌지만, 고레카와 긴조는 이러한 폭락 속에서도 냉정함을 유지했습니다. 그는 이미 이러한 대폭락을 예상하고 있었기 때문에 전혀 동요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고레카와 긴조는 하락장을 '매수 대기자에게는 최대의 찬스'라고 역설하며, 주식 시장의 본질을 꿰뚫었습니다. 그는 자본주의 경제는 쉽게 붕괴되지 않는다고 확신했는데요, 두 번의 파산을 겪고 극심한 빈곤 속에서도 그는 미래를 위한 길을 찾기 위해 필사적으로 공부했습니다. 도서관에서 밤늦게까지 공부하고, 집에서도 새벽 1시까지 노트를 정리하며 자신만의 자료를 만들었고, 3년간의 노력 끝에 경제의 흐름을 꿰뚫는 통찰력을 얻게 됩니다. 그는 마르크스-레닌주의 경제 이론의 오류를 지적하며, 자본주의 경제에는 시대를 초월하는 일정한 큰 흐름이 존재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대공황이나 금융 패닉 역시 이러한 경제 변동의 파도 중 하나일 뿐이며, 자본주의는 붕괴하지 않는다는 확신을 얻은 것이죠.
고레카와 긴조 투자 원칙 2: 경제 변동의 리듬을 파악하라
고레카와 긴조는 경제 변동에는 일정한 리듬이 있지만, 같은 형태의 변동은 반복되지 않는다는 중요한 법칙을 발견합니다. 그는 자본주의 경제가 끊임없이 다음 상태로 이행하는 파동을 반복한다고 보았는데요, 경제 변동은 불규칙적으로 보이지만, 일정한 큰 리듬으로 일어나는 것을 피할 수 없다고 설명합니다. 예를 들어, 경제 파도가 하강선을 그릴 때는 영원한 하강이 아니라 다음 상승을 위한 에너지를 비축하는 과정이며, 상승선을 그릴 때도 마찬가지로 다음 하강을 위한 에너지를 비축해 간다는 것입니다. 즉, 경제에는 영원한 번영도 영원한 쇠퇴도 없으며, 이것이 바로 자본주의 경제의 본질이라고 강조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경제 변동의 큰 리듬은 주식 시세에 반영된다는 것을 간파했습니다. 결국, 고레카와 긴조는 3년간의 피나는 공부를 통해 '경제에는 일정한 흐름이 있으며, 영원한 번영도 영원한 쇠퇴도 없다'는 진리를 깨닫고, 이 단순하지만 강력한 진리를 바탕으로 엄청난 투자 성공을 거두게 됩니다.
밑천 70엔으로 시작한 전설: 백발백중 투자 비결
주식으로 인생의 활로를 찾기로 결심했지만, 고레카와 긴조에게는 투자 밑천이 전혀 없었습니다. 도산 후 3년간 수입 없이 빚에 허덕이는 상황이었기에, 집에는 전당 잡힐 물건조차 없었고, 돈을 빌릴 곳도 없는 절망적인 상황이었죠. 증권계에 아는 사람도 없었기에, 그는 마지막 희망을 아내에게 걸 수밖에 없었습니다. "제발 한 번만 주식을 하게 해 줘. 밑천이 필요하니 돈을 빌려와 줘." 간절한 부탁에 아내는 며칠 후 70엔이라는 돈을 마련해 줍니다. 당시 주식 1회 매매 단위는 10주였고, 증거금으로 200엔이 필요했지만, 가진 돈은 70엔뿐이었습니다. 하지만 아내의 정성을 생각해 더 이상 돈을 요구할 수 없었고, 70엔으로 시작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 고레카와 긴조는 70엔을 들고 거래소로 달려갔고, 과거 빚을 졌던 후쿠다 씨를 찾아 130엔을 빌려 200엔을 만들어 주식 투자를 시작합니다. 그때 그의 나이는 34세였습니다. 놀랍게도 그의 70엔은 연말에 100배인 7,000엔으로 불어났고, 이후 매매마다 연전연승하며 '백발백중'의 투자자로 명성을 떨치게 됩니다. 사람들은 그의 투자 비결을 궁금해했고, 함께 투자하자는 제안도 쏟아졌지만, 그는 모든 유혹을 뿌리쳤습니다. 그의 백발백중 투자 비결은 무엇이었을까요?
고레카와 긴조의 백발백중 투자 비결은 바로 '3년간의 도서관 공부'에 있었습니다. 그는 3년간 일본과 세계 경제를 분석하고, 상품 동향을 조사하며, 차트와 지수를 머릿속에 완벽하게 암기했습니다. 매일 신문을 읽고 3년 후 경제 동향을 예측하며, 이를 바탕으로 주식 종목의 실적을 분석하는 훈련을 반복했습니다. 워렌 버핏이 DCF 가치평가 방법을 암산하는 것처럼, 고레카와 긴조 역시 수많은 경제 데이터와 분석을 통해 미래를 예측하는 능력을 키운 것입니다. 과거에는 자료가 부족했지만, 현재는 주식 투자 관련 자료가 넘쳐나는데요, 투자 필독서 몇 권만 제대로 읽고 핵심 내용을 암기한다면, 우리 역시 고레카와 긴조처럼 놀라운 투자 성과를 거둘 수 있다고 확신합니다.
미국 금본위제 중단 예측: 국제 경제 흐름 분석의 힘
1933년, 세계 경제는 대공황의 격랑 속에 있었지만, 고레카와 긴조는 경제 흐름을 끊임없이 연구하며 주식 시세를 정확하게 예측하고자 노력했습니다. 그 결과, 그는 영국이 금본위제를 중단할 것을 예측하고 주식 시장에서 큰 기회를 포착하게 되는데요, 당시 금본위제 중단을 예측한 사람은 고레카와 긴조 혼자뿐이었다고 합니다. 사람들은 그에게 어떻게 예측했는지 궁금해했는데, 그의 비결은 뉴욕 연방준비은행의 주간 발표 통계, 즉 '집회 발행액', '예금 잔액', '금 보유고'를 10년, 20년 간격으로 나누어 매주 실시간으로 비교 분석한 것이었습니다. 금본위제를 시행하는 국가들은 법률로 정화 준비금 보유 비율을 정해놓고 있었는데, 미국은 40% 이하로 떨어지면 금본위제를 중단해야 하는 규정이 있었습니다. 고레카와 긴조는 뉴욕 연방준비은행의 통계를 분석하며 정화 준비금이 40%에 육박하는 것을 포착하고, 미국의 금본위제 중단을 예측한 것입니다.
그는 즉시 보유 주식 전부를 매도하라는 결정을 내렸고, 이는 엄청난 모험이었지만 억만장자의 기회를 잡는 순간이었습니다. 결과적으로 그의 예측대로 미국은 금본위제를 폐지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는 냉정하게 분별하지 못하고 원금만 보존하는 데 그쳤습니다. 하지만 그의 선견지명은 분명히 빛났는데요, 그는 국제 경제 흐름을 체계적으로 비교하고, 자료를 철저히 분석하여 미래 변화를 예측하고 독창적인 판단을 내릴 수 있었기에 금본위제 중단을 예측할 수 있었다고 자서전에 기록했습니다.
정보의 진위를 가려내는 힘: 끊임없는 자기 분석
고레카와 긴조는 경제 문제에 있어 남들의 의견에만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 분석하고 확신할 때까지 파고드는 집요함을 보였습니다. 상대방의 말이 진실인지 스스로 분석하고 확신이 설 때까지 끊임없이 질문하고 파고들어야만 납득했다고 합니다. 그는 "스스로 세계 경제를 관찰하고 분석하지 않으면, 목숨 다음으로 소중한 거금을 걸고 투자 결정을 내릴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공부한 지식을 무기로 주식 시장에서 홀로 승부를 걸었기에, 증권업계에서 독보적인 존재가 될 수 있었던 것이죠.
90세가 넘은 고령에도 불구하고, 고레카와 긴조는 매일 아침 8시 각 증권사에서 들어오는 외신을 직접 챙기고 분석하는 열정을 보여주었습니다. 뉴욕, 런던, 프랑크푸르트 시장의 주가지수, 금, 은, 구리 등 비철금속 재고 및 입출고 상황, 외환 시세, 금리 등 주요 경제 지표를 매일 기록하는 것을 수십 년간 단 하루도 거르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는 "훈련하면 누구든 이 정도 능력을 유지할 수 있다. 하고자 결정하면 어떤 난관이 있어도 해내고, 해서는 안 될 일은 어떤 유혹에도 굴하지 않는 강한 의지가 필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시세 판단은 투기나 도박이 아닌, 정확한 경제 분석에 기반한 경제 행위라고 믿었던 것입니다. 한국경제신문 뒷면에도 유사한 경제 지표들이 매일 게재되는데요, 우리 역시 이러한 자료들을 꾸준히 기록하고 분석하며, 경제 흐름을 파악하는 훈련을 한다면 고레카와 긴조와 같은 통찰력을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실천입니다. 책을 아무리 많이 읽어도 실천하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수십 년간 꾸준히 기록하고 분석하는 그의 끈기가 진정한 성공 비결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두 번째 사업 실패, 그리고 63세의 재도전
1945년 8월, 히로시마 원자폭탄 투하로 고레카와 긴조의 고레카와 광업, 제철 등 고레카와 그룹은 해체되고, 모든 재산이 몰수당하며 두 번째 파산을 맞이합니다. 사형을 각오했을 정도로 절망적인 상황이었지만, 다행히 목숨을 건지고 일본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일본에서 농업 분야에 종사했지만, 가난에서 벗어날 수 없었는데요, 1960년, 63세가 된 그는 아내에게 "이제부터 돈을 벌겠다. 당신이 더 이상 궁핍하게 살지 않도록 하겠다"고 약속하며 다시 주식 시장에 컴백할 것을 결심합니다.
거북이 투자 3원칙: 느리고 꾸준하게, 그리고 신중하게
1960년, 63세의 나이로 주식 투자를 재개했을 때, 고레카와 긴조의 자금은 300만 엔에 불과했습니다. 이 돈으로 대출금과 이자를 갚고, 대학생과 재수생 학원 다니는 아들들의 학비와 생활비까지 마련해야 했기에, 실패는 용납될 수 없었습니다. 그는 기력, 체력, 지력을 총동원하여 신중에 신중을 기하는 '거북이 투자 3원칙'을 세우고, 천천히 원금을 불려나가기 시작합니다. 그는 주식 투자를 토끼와 거북이 경주에 비유하며, 토끼처럼 자만하여 성급하게 투자하다 실패하는 반면, 거북이처럼 느리지만 꾸준하게 목표를 향해 나아가면 결국 성공할 수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고레카와 긴조의 '거북이 투자 3원칙'은 다음과 같습니다.
수면 아래 숨겨진 우량주를 발굴하여 기다려라: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저평가된 우량주를 발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여기서 '우량주'는 단순히 시가총액이 큰 기업이 아니라, 고레카와 긴조 스스로 판단했을 때 재무 상태가 튼튼하고 성장 가능성이 높은 기업을 의미합니다.
경제 시황을 꾸준히 공부하고 분석하라: 경제와 시세 동향을 항상 주시하고, 스스로 공부하고 분석해야 합니다. 끊임없는 경제 공부와 분석을 통해 투자 기회를 포착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과욕을 버리고 소규모로 투자하라: 지나친 욕심을 부리지 않고, 감당할 수 있는 작은 범위 내에서 신중하게 투자해야 합니다. 한 번에 큰 수익을 얻으려는 욕심은 실패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고레카와 긴조는 거북이 투자 3원칙을 통해 엄청난 부를 축적하게 됩니다. 이 세 가지 원칙은 오늘날의 투자자들에게도 유효한 투자 철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3년간의 경제 공부, 부동산 투자로 빛을 발하다
1960년대 주식 시장은 기업 수익 증가와 설비 투자 확대로 호황을 누리고 있었지만, 고레카와 긴조는 가까운 미래에 급격한 인플레이션이 발생할 것이라고 예측했습니다. 3년간의 경제 공부를 통해 경제 흐름을 꿰뚫어 본 결과, 그는 인플레이션과 함께 땅값이 폭등할 것이라고 예상하고 부동산 투자를 시작합니다. 당시 정부는 전국적으로 공장 건설 계획을 발표하며 민간 설비 투자를 장려하고 있었고, 그는 공업 지역 유치로 인해 반드시 땅값이 폭등할 것이라고 확신했습니다.
고레카와 긴조는 전국 각지의 대공장 건설 계획 자료를 수집하고 검토하여, 바다를 매립하여 대규모 공업 단지를 만드는 계획을 알게 됩니다. 공업 단지가 조성되면 2만 명의 근로자가 유입되고, 해당 도시 인구가 5만 명 증가할 것이라는 분석 결과를 얻었습니다. 그는 5만 명을 수용할 베드타운이 필요할 것이라고 판단하고, 사카이시 근교를 중심으로 베드타운 후보지를 물색합니다. 교통, 환경 등 여러 조건을 고려하여 지도를 분석하고, 모델 타운을 직접 방문한 결과, 공업 단지 예정지에서 7~8km 떨어진 구릉지 농촌 지역이 최적지임을 확신합니다. 그는 돈 있는 친구를 설득하여 수십만 평의 토지를 매입하는데, 당시 미개발 구릉지에는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아 평당 300엔이라는 헐값에 토지를 매입할 수 있었습니다.
3년 후, 정부는 고레카와 긴조의 예상대로 구릉지에 뉴타운 건설 계획을 발표합니다. 뉴타운 규모는 그의 예상을 훨씬 뛰어넘었고, 평당 300엔에 매입했던 토지는 순식간에 평당 1,500엔까지 폭등합니다. 1965년 말, 그는 수만 평의 토지를 모두 매도하여 3억 엔이라는 거액을 손에 넣게 됩니다. 그의 부동산 투자는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습니다.
경제 흐름 예측: 3년간의 경제 공부를 통해 호황 이후 인플레이션을 예측합니다.
자료 수집 및 분석: 공업 단지 건설 계획 자료를 수집하고 검토합니다.
저평가 가치 발굴: 공업 단지 인근의 저평가된 토지에 투자하는 아이디어를 떠올립니다.
현장 확인 및 과감한 투자: 현장 답사를 통해 투자 가치를 확인하고 과감하게 투자합니다.
고레카와 긴조의 부동산 투자 성공 사례는 주식 투자에도 충분히 응용할 수 있는 노하우를 제시합니다. 경제 흐름을 예측하고, 철저한 분석을 통해 저평가된 가치를 발굴하고, 과감하게 투자하는 그의 투자 방식은 오늘날 투자자들에게도 큰 영감을 줍니다.
거래의 진리는 하나: 일본 시멘트 투자 성공기
부동산 투자로 3억 엔이라는 거액을 마련한 고레카와 긴조는 이 돈을 밑천으로 주식 투자에 전념하기로 결심합니다. 당시 일본은 고액 소득자 상위 100명 중 94명이 부동산 졸부일 정도로 부동산 투기가 심각했고, 사회적 불공정과 혼란이 심화되고 있었습니다. 설상가상으로 중동 전쟁 발발로 석유 파동이 일어나 원유 가격이 급등하고, 물가와 부동산 가격이 연일 상승하는 상황 속에서 시멘트 업계는 전례 없는 불황을 맞이합니다. 정부는 물가 상승 억제 정책을 펼쳤고, 원자재 가격 상승으로 시멘트 수요는 급감했으며, 시멘트 공장들은 폐업 위기에 놓였습니다.
이러한 불황 속에서 고레카와 긴조는 '수면 아래 숨겨진 우량주'를 찾는 거북이 법칙을 실천할 절호의 찬스라고 생각합니다. 일본 시멘트 주가는 경상 이익 적자로 인해 고점 323엔에서 120엔까지 폭락한 후 횡보하고 있었고, 불황으로 경영 상황은 더욱 악화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고레카와 긴조는 과거 10년간의 일본 시멘트 주가를 분석한 결과, 1974년 당시 주가가 저가권에 진입했다고 판단합니다. 정부가 실업 대책으로 토목 사업을 부양할 것이고, 토목 사업이 활성화되면 시멘트 수요가 증가할 것이라는 아이디어를 떠올린 그는 일본 시멘트 주식을 조용히 매집하기 시작합니다.
30만 주를 매집했을 즈음, 일본 시멘트 회사 관계자가 고레카와 긴조를 찾아옵니다. 회사 측은 그가 투자 외에 다른 속셈이 있는지, 작전 세력인지 확인하기 위해 찾아왔지만, 고레카와 긴조는 "경기 회복에 따른 시멘트 수요 증가와 실적 개선, 그리고 주가 상승을 예상하고 투자했을 뿐, 경영권에는 관심 없다"고 명확히 밝힙니다. 내부자조차 주가 상승을 의심하는 상황은 오히려 그에게 행운이었는데요, 내부자들이 매수를 시작하면 저가 매수가 어려워지기 때문입니다. 그의 일본 시멘트 매수 전략은 매우 독창적이었다고 평가할 수 있습니다.
80세가 되자, 고레카와 긴조가 보유한 일본 시멘트 주식은 3천만 주를 넘어섰습니다. 그해 4월 결산에서 일본 시멘트는 흑자 전환에 성공했고, 시멘트 업계는 경기 회복에 대한 기대감을 높이고 있었지만, 주식 시장은 여전히 침체되어 있었습니다. 하지만 고레카와 긴조는 자신의 판단이 옳다고 확신하고, 승부 시기가 다가왔음을 예감합니다. 그는 정부가 실업 구제 추가 예산을 편성할 것이라고 확신했고, 그의 예상은 적중합니다. 당시 일본 시멘트 주가는 140엔대를 횡보하고 있었는데, 일본 시멘트 사장이 그를 찾아와 주가 전망을 묻습니다. 고레카와 긴조는 "정부의 대규모 추가 예산 편성은 시간문제이며, 공공 사업이 주를 이룰 것이고, 시멘트 수요는 증가할 것이다. 시멘트 업계 1위 기업인 일본 시멘트 주가는 600엔도 싸다"고 단언합니다. 하지만 사장은 "정부가 정말 그렇게 할까요?"라며 반신반의하는 모습을 보였는데요, 고레카와 긴조는 "아무리 뛰어난 인재라도, 일에만 매몰되면 거시 경제 흐름을 읽지 못한다"며 안타까워했습니다.
고레카와 긴조의 예상대로, 일본 정부는 본격적인 불황 회복 경기 대책을 발표합니다. 그로부터 20일 후, 일본 시멘트 주가는 174엔까지 급등하고 거래량은 폭증합니다. 시멘트 업계는 공공 공사 주문이 쇄도했고, 시멘트 부족 현상과 가격 상승이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고레카와 긴조는 1년 전부터 매집해온 120~130엔대 주식을 180엔에 일부 매도하여 이익을 실현하고, 새로운 투자를 위한 현금을 확보합니다. 그는 "아직 시세는 초입이며, 이제부터가 진정한 승부"라고 확신했습니다. 이후 다시 일본 시멘트 사장에게 연락이 왔고, 사장은 "고레카와 씨 말대로 되었다"며 놀라워했습니다.
"벌써는 아직이며, 아직은 벌써다": 매도 타이밍 포착
일본 시멘트 사장은 신설 공장 재개 여부를 고레카와 긴조에게 문의했고, 그는 즉시 재개를 권유합니다. 일본 시멘트 주가는 180엔을 찍고 160엔대로 하락하며 횡보했지만, 증권가에서는 일본 시멘트 주가가 천장을 쳤다는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이때 고레카와 긴조는 "벌써는 아직이며, 아직은 벌써다"라는 투자 격언을 떠올립니다. 천장이라고 생각할 때가 오히려 더 오를 수 있는 시점이고, 아직 더 오를 것이라고 확신할 때가 천장일 수 있다는 역발상적인 사고입니다. 그는 자신의 감정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투자 심리를 역이용하는 전략을 구사했습니다.
이후 일본 시멘트 주가는 다시 상승세를 타기 시작하여 200엔, 250엔, 300엔을 돌파하며 급등세를 이어갔습니다. 12월에는 337엔을 기록했지만, 다시 천장이라는 이야기가 나오면서 주가는 하락세로 전환됩니다. 하지만 고레카와 긴조는 시멘트 수요 증가에 따른 가격 인상을 예상하고 있었기에, 진짜 시세는 이제부터 시작이라고 확신했습니다. 그의 예상대로 일본 시멘트 주가는 순식간에 300엔 고지를 돌파하고 337엔까지 상승합니다. "벌써는 아직이며, 아직은 벌써다"라는 격언처럼, 그는 스스로의 감정을 냉철하게 분석하고, 주가 상승에 대한 확신이 강해지는 순간을 매도 타이밍으로 판단했습니다. 메타인지 훈련과 실전 투자 경험이 쌓이면 누구나 이러한 경지에 도달할 수 있다고 그는 믿었습니다.
복팔분 투자 철학: 욕심을 버리고 적정선에서 만족하라
고레카와 긴조는 "복팔분(腹八分)" 투자 철학을 강조하며, 지나친 욕심을 경계했습니다. "배를 80%만 채우면 의사가 필요 없다"는 속담처럼, 투자에서도 욕심을 억제하지 못하면 매도 타이밍을 놓치고 큰 손실을 볼 수 있다고 경고합니다. 그는 일본 시멘트 주가가 300엔을 넘어서자 순차적으로 매도를 시작했고, 대형 증권사들의 매수세에 힘입어 편안하게 대량 매도할 수 있었습니다. 결국 일본 시멘트 주가는 337엔까지 급등했지만, 고레카와 긴조는 복팔분, 즉 80% 만족하는 수준에서 투자를 마무리했습니다. 그는 "넝마주처럼 버려진 주식을 저가에 매수하여 상승을 기다리고, 투자 철학을 믿고 신념을 지키는 것이 성공의 핵심이며, 337엔까지 급등했지만 복팔분으로 만족했다. 과욕은 패망의 지름길"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실제로 일본 시멘트 주가는 이후 6개월도 지나지 않아 200엔대로 폭락했습니다. 고점에서 최고 수익을 얻으려는 욕심을 버리고, 적정 수준에서 만족하는 '복팔분' 투자 철학은 오늘날에도 유효한 투자 원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고레카와 긴조의 투자 비결 요약 및 교훈
고레카와 긴조의 일본 시멘트 투자는 그의 인생 3대 투자 중 하나에 불과합니다. 자서전에는 나머지 두 번의 투자 이야기가 더욱 긴박하고 흥미진진하게 묘사되어 있다고 합니다. 특히 두 번째 도아흥업 투자는 숨 막히는 긴장감의 연속이었다고 하는데요, 그는 마지막 세 번째 투자로 '일본 주식 시장의 신'이라는 칭호를 얻게 됩니다. 84세의 나이에 일본 소득세 1위를 차지하며 '정년 퇴직자의 희망', '전무후무한 투자자'라는 찬사를 받았던 고레카와 긴조는 자신의 성공 비결을 다음과 같이 요약했습니다.
"사람에게는 일생에 두세 번의 찬스가 온다. 그 찬스를 잡느냐 놓치느냐는 일상적인 노력과 꾸준한 연마, 진실한 이론과 실천, 그리고 매일 반복되는 사고 훈련에 달려 있다. 수많은 실전 경험을 통해 승부 감각을 키워야 하며, 결국 '감(感)'은 경험 축적에서 나오는 진실한 종합 판단이다."
고레카와 긴조는 자서전 말미에 두 가지 경고와 다섯 가지 투자 원칙을 남겼습니다. 두 가지 경고는 첫째, 자신의 능력 범위 내에서 투자하고, 둘째, 신문이나 잡지의 자극적인 헤드라인 뉴스를 맹신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신문과 잡지를 보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경제 흐름을 분석하고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야 함을 강조한 것입니다. 그는 신문 하나를 정독하며 경제 현상을 꾸준히 관찰하면 미래를 예측하는 통찰력이 생긴다고 말했습니다. 매일 주의를 집중하여 경제 뉴스를 보면 자연스럽게 흐름을 알게 되고, 큰 흐름이 파악되면 장래 전망이 밝은 기업을 찾아 회사의 내용과 수익력 등을 비교 분석하여 최고의 기업 주식을 매수하는 것이 그의 투자 방식이었습니다.
고레카와 긴조의 투자 5원칙은 자서전을 통해 직접 확인해 보시기를 추천합니다. 그는 마지막으로 "단 한 번이라도 시대 흐름을 잘못 읽었다면 나는 사라졌을 것이다"라고 고백하며, 시대 흐름 파악의 중요성을 강조했습니다. 여러분도 고레카와 긴조처럼 책과 신문 등 다양한 정보를 통해 시대 흐름을 읽는 눈을 키우시기를 바랍니다. 꾸준한 노력과 실천을 통해 투자 성공을 이루시기를 응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