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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울 뉴런, 최초의 죄를 복제하다: 원죄론에 대한 신경과학적 답변

서론: 피할 수 없는 선택의 역설

인류의 가장 오래된 신학적 딜레마 중 하나는 '죄의 보편성'이다. 만약 아기가 태어나는 순간부터 죄인이라는 '원죄론'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우리는 한 가지 역설에 부딪힌다. 왜 죄책 없이 태어난 거의 모든 인간은 성장 과정에서 예외 없이 이기심, 거짓, 질투 등 '죄'라고 불리는 행위를 스스로 '선택'하게 되는가?

이 질문에 대한 해답은 고대의 신학적 개념이 아닌, 우리 뇌의 가장 사회적인 영역, 바로 '거울 뉴런 시스템'이라는 생물학적 하드웨어에 각인되어 있을지 모른다. 죄의 경향성은 영적으로 유전된 저주가 아니라, 우리의 신경 회로가 주변 세상을 모방하고 학습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지극히 자연스럽고 비극적인 결과일 수 있다.

  1. 거울 뉴런이란 무엇인가? - 공감과 모방의 신경 회로

거울 뉴런은 뇌의 '와이파이(Wi-Fi)'와 같다. 이 뉴런은 내가 특정 행동을 할 때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이 같은 행동을 하는 것을 '관찰'하기만 해도 똑같이 활성화된다. 즉, 타인의 행동과 의도를 내 뇌 안에서 그대로 시뮬레이션하는 신경세포다.

이것은 공감, 언어 습득, 그리고 모든 '모방 학습'의 근간이 된다. 아기는 부모의 미소를 보고 따라 웃으며 사회성을 배우고, 우리는 다른 사람의 하품을 보고 나도 모르게 하품을 한다. 거울 뉴런은 타인과의 연결을 통해 우리를 '사회적 존재'로 만드는 핵심 엔진이다. 하지만 이 강력한 모방과 학습의 엔진은, 안타깝게도 선(善)과 악(惡)을 구분하지 않는다.

  1. 최초의 '오염된 신호'와 아담의 비극

성경 속 아담의 '선악과' 비유를 신경과학적으로 재해석해 보자. 최초의 인류 집단이 존재했고, 그들의 사회적 상호작용은 순수한 협력과 이타심에 기반했다고 상상해 보자. 그들의 거울 뉴런은 오직 '선한 신호'만을 복제하고 학습했다.

그러던 어느 날, 한 개체가 역사상 처음으로 '죄'를 저지른다. 예를 들어, 공동체의 식량을 몰래 숨기는 이기적인 행동이다. 이 사건의 진짜 비극은 신의 분노가 아니라, 이것이 인류의 사회적 신경망에 최초의 '오염된 신호(Contaminated Signal)'를 송출했다는 데 있다.

다른 개체들이 이 이기적인 행동과 그로 인해 행위자가 얻는 '이득'(더 많은 음식)을 목격하는 순간, 그들의 거울 뉴런은 이 새로운 행동 방식을 그대로 시뮬레이션한다. '타인을 속여 나의 이익을 취하는 것'이 생존을 위한 하나의 유효한 '전략'으로 뇌리에 각인되는 것이다. 이제 '죄'라는 바이러스는 더 이상 한 개인의 일탈이 아니라, 집단 전체의 뇌에 복제되고 저장되는 '사회적 밈(Meme)'이 되었다.

  1. 죄의 경향성: 압도적인 신호와 불가피한 학습

아담의 시대 이후, 인류의 세상은 '오염된 신호'로 가득 차게 되었다. 부모의 작은 거짓말, 친구의 질투, 미디어 속의 폭력과 탐욕 등, 한 아이가 태어나 마주하는 세상은 선한 신호보다 압도적으로 많은 '죄의 신호'들로 구성된 거대한 '신경적 에코 챔버(Neural Echo Chamber)'다.

아이의 뇌는 스펀지와 같고, 거울 뉴런 시스템은 그 스펀지의 핵심 흡수 도구다. 아이는 주변의 행동을 끊임없이 모방하며 자신의 행동 양식을 구축한다.

  • 관찰: '정직하게 행동해서 손해를 보는 사례'보다 '약간의 편법으로 이득을 보는 사례'를 훨씬 더 자주 목격한다.

  • 학습: 거울 뉴런은 이 '성공적인' 이기적 행동들을 더 강력한 신경 경로로 뇌에 저장한다.

  • 경향성 형성: 결과적으로, '죄를 짓는 선택'은 가장 자주 학습되고, 가장 효율적으로 보상받는, 가장 저항이 적은 신경 경로(Neural Path of Least Resistance)가 된다. 이것이 바로 '죄의 경향성'의 생물학적 실체다.

결론: 조건화된 시스템 안에서의 '자유의지'

이 가설에 따르면, 우리는 '죄인'으로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죄를 학습하도록 생물학적으로 설계된 학습 기계'로 태어난다. 우리의 자유의지는 분명 존재하지만, 그 선택지는 이미 편향된 경기장 위에 놓여 있다.

죄를 선택하는 것은 마치 수천 년간 깊게 파인 강바닥을 따라 물이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것과 같다. 반면, 죄를 짓지 않으려는 이타적인 선택은, 이 거대한 물길을 거슬러 맨손으로 새로운 강줄기를 파내려는 것과 같은 엄청난 의식적 에너지를 요구한다.

이것이 바로 원죄론의 형이상학적 저주 없이도, 인간이 왜 그토록 보편적이고 자연스럽게 죄의 유혹에 굴복하는지에 대한 신경과학적 답변이다. 우리의 비극은 하늘에서 내려온 것이 아니라, 우리 뇌 가장 깊은 곳의 사회적 본능 안에 처음부터 새겨져 있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