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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교회의 정치적 중립, 진정한 의미와 차별금지법·동성애 이슈 앞에서 지켜야 할 절대 진리

요약

오늘날 한국 교회는 그 어느 때보다도 혼란스러운 시대를 지나고 있습니다. 동성애와 차별금지법을 둘러싼 사회적 논쟁, 법 질서를 뒤흔드는 정치적 격변 속에서 많은 교회와 성도들이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라'는 성경 말씀을 인용하며 '정치적 중립'을 이야기합니다. 하지만 과연 그것이 성경이 말하는 진정한 의미일까요? 오늘 저는 이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라'는 말씀의 본질을 파헤치고, 절대적인 진리를 따르는 교회가 과연 불의와 비진리 앞에서 중립을 지킬 수 있는지, 그리고 그것이 가져올 파멸적인 결과는 무엇인지에 대해 단호하게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라'의 진짜 의미

많은 분들이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라'는 말씀을 정치적인 중립을 지키라는 의미로 오해하고 있습니다. 작년 동성애를 합법화하려는 움직임에 맞서 100만 명이 서울에 모여 기도하며 입법을 막으려 했을 때도, 수많은 교단은 '우리는 좌로나 우로나 치우칠 수 없다'며 동참하지 않았습니다. 최근 민주당이 헌법 질서를 무시하며 사법부를 압박하고 탄핵 정국을 몰아가는 상황에서도, 대부분의 교회는 침묵하며 '중립'을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라'는 말씀은 단 한 번도 '중립을 지키라'는 의미로 사용된 적이 없습니다. 이 말씀이 나오는 여덟 번의 구절을 모두 살펴보면, 그 앞에는 항상 '나의 종 모세가 네게 명령한 그 율법을 다 지켜 행하고'라는 대전제가 붙어 있습니다. 즉, 이 말씀의 핵심은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절대적인 기준을 붙들고, 그 기준에서 벗어나 좌로도 우로도 흔들리지 말라는 강력한 명령이지, 세상의 비진리와 타협하여 어중간한 태도를 취하라는 뜻이 결코 아닙니다.

진리에는 독단성이 있습니다. 1 더하기 1은 2라는 명백한 정답이 있듯이, 하나님의 말씀은 시대와 상황에 따라 변하지 않는 절대적인 진리입니다. 어떤 이들이 1 더하기 1은 6이라고 주장하고 그 수가 많아진다고 해서, '중립을 지켜 4라고 하자'고 말하는 것은 중립이 아니라 명백한 오답이며 진리를 저버리는 행위입니다. 따라서 절대적인 진리를 선포해야 할 교회가 불의 앞에서 중립을 지키겠다는 것은, 이미 스스로 진리에서 떠났음을 고백하는 것과 다름없습니다.


진리 앞에서의 타협, 성경이 경고하는 불순종의 죄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지 않고 타협하는 것을 명백한 '불순종'의 죄로 규정합니다. 하나님께서 가나안 땅을 점령하라고 명령하셨을 때, 12명의 정탐꾼 중 10명은 현실의 장벽 앞에서 두려워하며 '안 된다'고 보고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약속이라는 절대적인 진리보다 눈에 보이는 현실과 다수의 의견을 따랐습니다. 그 결과, 약속의 땅을 목전에 두고도 40년간 광야를 헤매다 모두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한 사람이 지지하더라도, 아니 아무도 지지하지 않더라도 그 자체로 절대적인 진리임을 믿어야 합니다.

이스라엘의 초대 왕 사울의 치명적인 약점 역시 하나님보다 사람의 눈치를 보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아말렉을 진멸하라는 하나님의 명령 앞에서 백성들이 원한다는 이유로 좋은 소와 양을 남겨두는 '중립'을 취했습니다. 모든 것을 진멸하라는 하나님의 절대적인 명령과, 좋은 것은 남기고 싶어 하는 인간적인 욕망 사이에서 타협한 것입니다. 그 결과 하나님께서는 "내가 사울을 왕으로 세운 것을 후회하노니"라며 그를 버리셨습니다.

엘리야 시대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백성들이 하나님과 바알 사이에서 머뭇거리고 있을 때, 엘리야는 외쳤습니다. "너희가 어느 때까지 둘 사이에서 머뭇머뭇 하려느냐 여호와가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따르고 바알이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따를지니라" 진리는 이처럼 분명한 것이며, 그 사이에서 중립을 취하는 것은 하나님을 떠난 배교 행위일 뿐입니다.


코로나 사태와 차별금지법, 한국 교회의 비겁한 침묵

이러한 비겁한 중립의 결과는 지난 몇 년간 한국 사회에서 끔찍한 현실로 드러났습니다. 코로나 팬데믹 당시, 정부는 비과학적이고 형평성에 어긋난 기준으로 유독 교회에만 강력한 예배 탄압을 가했습니다. 좁은 커피숍과 식당은 그대로 두면서, 넓은 예배당에는 5명, 19명, 99명과 같은 비상식적인 인원 제한을 두었습니다. 이는 명백히 기독교를 탄압하려는 문재인 정부의 의도적인 정책이었으며, 실제로 민주연구원에서는 '기독교 인구를 10% 이하로 줄이겠다'는 보고서까지 나왔습니다.

이러한 명백한 불의 앞에서 대부분의 한국 교회는 '중립'을 핑계로 문을 닫았습니다. 그 결과, 2~3년의 시간 동안 한국 교회의 다음 세대인 어린이와 청소년들은 교회를 떠났고, 주일학교와 중고등부가 절반 이상 사라졌으며, 12,000개의 교회가 문을 닫는 참담한 결과를 맞이했습니다. 사탄은 코로나를 통해 교회의 20%를 쓸어버리는 승리에 도취했지만, 거기에 굴복했던 교회들은 어마어마한 피해를 입고 말았습니다.

지금 우리는 또 다른 거대한 위기 앞에 서 있습니다. 바로 '성평등'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차별금지법 제정 시도입니다. 남자와 여자의 양성 평등을 넘어, 수십, 수백 가지의 성을 인정하자는 이 법안은 가정을 파괴하고 사회를 혼란에 빠뜨릴 것이 자명합니다. 이미 이와 같은 법이 통과된 유럽의 기독교 국가들은 교인 출석률이 1%도 되지 않는 미전도 종족 국가로 전락했습니다. 캐나다에서는 청소년 자살률이 10배나 급증했습니다. 자신의 성 정체성조차 혼란스러워하는 아이들이 어떻게 건강한 가정을 이루고 사회의 일원으로 살아갈 수 있겠습니까?

이처럼 나라의 미래가 걸린 중대한 문제 앞에서도 한국 교회는 또다시 침묵하고 있습니다. 작년 부산 교육감 선거 당시, 차별금지법과 학생인권조례를 찬성하고, 심지어 반국가단체로 해산된 통진당의 공동대표였던 인물이 후보로 나왔음에도, 부산의 1,800개 교회 중 단 열 군데도 이 사실을 성도들에게 알리고 경고하지 않았습니다. 우리의 자녀들과 손자, 손녀들이 학교에서 동성애가 정상이라고 배우게 될 뻔한 절체절명의 위기 앞에서, 목사와 장로들은 '중립'이라는 이름 뒤에 숨어 책임을 회피했습니다.


깨어나라, 성도들이여! 진리를 위해 싸워야 할 때

하나님을 믿는 절대적인 진리를 가진 사람이 어떻게 좌파를 지지하고, 하나님을 부정하는 사상에 동조하며 중립을 외칠 수 있단 말입니까? 그것은 중립이 아니라 이미 진리를 떠난 것입니다. 일제 말기, 신사참배를 거부했던 주기철 목사님을 향해 동료 목사들과 총회는 '왜 너 혼자만 유별나게 구느냐'며 그를 면직시키고 죽음으로 내몰았습니다. 그때 신사참배는 우상이 아니라며 중립을 외치고 타협했던 평양의 수많은 교회들은 지금 단 하나도 남아있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씨를 말려버리셨기 때문입니다.

지금 이 시대의 책임 역시, 불의 앞에서 침묵하는 이 시대의 목사와 장로들에게 가장 먼저 물으실 것입니다. 내년에 있을 지방 선거와 교육감 선거는 우리 사회의 명운이 걸린 중요한 분수령입니다. 우리의 자녀들을 반성경적인 이념 교육에서 지켜내기 위해, 이제는 성도들이 깨어나 목회자들에게 압력을 가해야 합니다. "목사님, 성경을 믿으십니까? 왜 진리를 이야기하지 않으십니까? 그것은 정치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라고 외쳐야 합니다.

깨어있는 성도가 한국 교회를 깨우고, 이 대한민국을 깨울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명백한 기준이 있습니다. 더 이상 사람의 눈치를 보거나 세상의 풍조에 휩쓸리지 말고, 절대적인 진리의 말씀 위에 굳게 서서 악한 세대와 맞서 싸워 승리해야 합니다. 누군가가 당신에게 '왜 그렇게 강성이냐'고 묻거든, 성경을 펴서 보여주십시오. 그리고 담대하게 외치십시오. "우리는 부족하고 죄가 많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리를 지키려는 것이다. 진리를 떠난 것은 우리가 아니라 바로 당신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