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율의 원리와 대한민국 원화의 미래: 왜 달러 자산이 장기 투자 필수 전략인가?
최근 미국 주식 시장의 활황과 더불어 '서학개미'라는 신조어가 더 이상 낯설지 않은 시대가 되었습니다. 많은 전문가와 투자자들이 미국 주식 투자를 권하는 이유는 단순히 그 시장이 장기적으로 우상향한다는 막연한 믿음 때문만은 아닙니다. 그 기저에는 훨씬 더 근본적이고 절실한 이유, 바로 '달러'라는 기축 통화 자산을 보유하고 그 가치 변동에 익숙해져야 한다는 생존의 논리가 깔려 있습니다.
하지만 투자의 세계는 언제나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합니다. 바로 최근처럼 원-달러 환율이 하락하고, 상대적으로 국내 주식 시장이 더 매력적으로 보이는 시기가 찾아올 때입니다. 많은 분들이 이런 상황에서 깊은 고민에 빠집니다. "환율이 이렇게 떨어지는데, 지금 달러를 사서 미국에 투자하는 것이 과연 현명한 선택일까? 오히려 손해 보는 것 아닐까?" 라는 의문이 드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입니다.
오늘 우리는 바로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 아주 길고 깊은 여정을 떠나보고자 합니다. 이 글은 단순히 '달러를 사라'는 결론을 강요하지 않습니다. 대신, 환율이 움직이는 근본적인 원리부터 시작하여, 국가의 부가 어떻게 만들어지고 소멸하는지, 그리고 현재 대한민국 원화가 처한 냉정한 현실을 낱낱이 파헤칠 것입니다. 이 글을 끝까지 읽고 나면, 왜 지금 당장의 환율 등락에 일희일비하는 것이 얼마나 단기적인 시각이며, 장기적인 관점에서 달러 자산을 보유하는 것이 선택이 아닌 필수 전략이 될 수밖에 없는지를 명확하게 이해하게 될 것입니다. 이것은 단순한 투자 지식을 넘어, 다가오는 거대한 경제 지형의 변화 속에서 당신의 자산을 지키고 생존하기 위한 가장 중요한 지침이 될 것입니다.
환율의 영혼을 해부하다: 국가의 가치와 돈의 양이 결정하는 모든 것
환율이 어떻게 결정되는지를 이해하는 것이 모든 논의의 출발점이자 가장 핵심적인 열쇠입니다. 우리는 매일 아침 뉴스에서 "오늘의 원-달러 환율은 1,350원입니다"와 같은 정보를 접하지만, 도대체 그 숫자가 어떤 의미를 가지며, 무슨 원리로 정해지는지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본 적은 드물 것입니다.
아니, 그냥 미국 돈 1달러를 사려면 우리나라 돈 1,350원이 필요하다는 뜻 아니야? 뭐가 그렇게 복잡해?
물론 그 말이 맞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 이면에 숨겨진 본질, 즉 '왜' 하필 1,350원인지에 대해 파고들어야만 합니다. 결론부터 단도직입적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환율이란 본질적으로 두 나라의 '경제적 가치' 대비 '화폐 발행량'의 비율입니다. 말이 조금 어렵게 들릴 수 있으니, 아주 간단한 비유를 통해 이 개념을 완벽하게 이해시켜 드리겠습니다.
한 국가를 거대한 하나의 '주식회사'라고 상상해 보십시오. '주식회사 대한민국'이 있고, '주식회사 미국'이 있습니다. 이 회사의 가치, 즉 시가총액은 그 나라가 가진 모든 자산과 미래에 벌어들일 수 있는 돈의 총합, 다시 말해 국내총생산(GDP)으로 대표되는 경제력에 의해 결정됩니다. 그리고 각 회사는 '원화'와 '달러'라는 자신들만의 주식을 발행합니다. 그렇다면 '환율'이란 무엇일까요? 바로 두 회사 주식의 교환 비율인 셈입니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시장 참여자들이 평가하는 '주식회사 대한민국'의 총가치가 예를 들어 3조 달러라고 가정해 봅시다. 그런데 '주식회사 대한민국'은 지금까지 '원화'라는 주식을 총 4,200조 주(4,200조 원) 발행했습니다. 그렇다면 이 회사 주식 1주의 가치는 얼마일까요? 간단한 나눗셈입니다.
원화 1원의 달러 가치=발행된 총 원화량대한민국의 총 경제 가치 (달러 표시)=4,200조 원$3조
이 계산을 뒤집어서 1달러가 몇 원의 가치를 갖는지 계산하는 것이 바로 환율입니다.
환율 (1달러 당 원화 가치)=대한민국의 총 경제 가치 (달러 표시)발행된 총 원화량=$3조4,200조 원≈1,400원/달러
이것이 바로 환율이 결정되는 가장 근본적인 원리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환율을 움직이는 두 개의 핵심 변수를 도출해낼 수 있습니다. 바로 분자인 '화폐 발행량'과 분모인 '경제적 가치' 입니다.
첫째, 분모인 '경제적 가치(경제 성장률)'가 커지면 환율은 하락(원화 가치 상승)합니다. 만약 '주식회사 대한민국'이 기술 혁신에 성공해서 회사의 가치가 3조 달러에서 6조 달러로 2배가 되었다고 상상해 봅시다. 발행된 주식(원화)의 양이 그대로라면, 주식 1주의 가치는 당연히 2배로 뛰게 됩니다. 즉, 환율은 1,400원에서 700원으로 떨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경제 성장이 자국 화폐 가치를 끌어올리는 원리입니다.
둘째, 분자인 '화폐 발행량'이 늘어나면 환율은 상승(원화 가치 하락)합니다. 이번에는 반대로 '주식회사 대한민국'의 가치는 3조 달러로 그대로인데, 회사가 돈이 필요해서 주식(원화)을 4,200조 주에서 8,400조 주로 2배 더 찍어냈다고 가정해 봅시다. 회사의 가치는 그대로인데 주식 숫자만 2배로 늘어났으니, 기존 주주들이 가진 주식의 가치는 정확히 반 토막이 날 수밖에 없습니다. 이것을 '가치의 희석'이라고 부릅니다. 결과적으로 환율은 1,400원에서 2,800원으로 폭등하게 됩니다.
따라서 한 나라의 환율은 이 두 변수 간의 줄다리기 싸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경제가 성장하는 속도보다 돈을 더 빨리 찍어내면 화폐 가치는 하락하고, 돈을 찍어내는 속도보다 경제가 더 빨리 성장하면 화폐 가치는 상승하는 것입니다. 이것만 이해하셨다면, 당신은 이미 환율 전문가의 길에 들어선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정부가 걷어가는 가장 교활한 세금, 인플레이션의 비밀
자, 그렇다면 현실의 정부들은 이 환율의 원리를 어떻게 이용하고 있을까요? 국민을 더 잘 살게 만드는 가장 정직한 방법은 단연코 '경제 성장률'을 높이는 것입니다. 국가의 경제적 가치, 즉 파이 자체를 키우는 것입니다. 만약 한 나라의 경제가 1년에 3% 성장했다면, 화폐 발행량도 정확히 3%만 늘리는 것이 이상적입니다. 이렇게 되면 시중에 유통되는 돈의 양과 경제의 크기가 함께 성장하므로 물가 변동(인플레이션) 없이 국민의 실질적인 부가 늘어나게 됩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대부분의 정부는 이 유혹을 이겨내지 못합니다. 바로 경제 성장률을 초과하여 화폐를 발행하는 손쉬운 길을 선택하는 것이지요.
아니, 국가가 돈이 필요하면 국민에게 세금을 더 걷으면 되는 거 아닌가? 왜 굳이 돈을 찍어내서 문제를 복잡하게 만들지?
매우 날카로운 질문입니다. 하지만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정부가 "내년부터 소득세를 10% 올리겠습니다!"라고 발표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아마 전국적인 조세 저항과 함께 해당 정부의 지지율은 바닥을 칠 것입니다. 세금을 걷는 것은 정치적으로 매우 고통스럽고 인기가 없는 정책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여기에 아주 교활하고 손쉬운 방법이 있습니다. 바로 중앙은행을 통해 아무도 모르게 돈을 찍어내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한국의 경제 성장률이 연평균 2~3% 수준이라고 해봅시다. 그런데 실제 통화량(M2 기준) 증가율은 연평균 6~7%에 달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1]. 왜 이런 차이가 발생하는 걸까요? 바로 그 차이(3~4%)만큼이 정부가 국민의 주머니에서 몰래 빼내 가는 '인플레이션 세금(Inflation Tax)'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어떻게 세금이 되는지 그 메커니즘을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정부가 경제 성장률 3%를 초과하여 4%의 돈을 추가로 찍어냈다고 가정합시다. 이 4%의 새로운 돈은 정부의 지출(공공사업, 복지 등)을 통해 시중에 풀려나갑니다. 시중에 풀린 돈의 총량은 늘어났지만, 나라의 경제적 가치(재화와 서비스의 총량)는 그대로이므로, 화폐 1단위가 살 수 있는 물건의 양은 줄어들게 됩니다. 즉, 물가가 상승하는 인플레이션이 발생하는 것입니다.
결과적으로 당신의 월급은 그대로인데, 빵 가격이 1,000원에서 1,040원으로 올랐다면, 당신은 사실상 4%의 구매력을 상실한 셈입니다. 당신의 지갑에서 직접 돈을 빼앗아 가지는 않았지만, 당신이 가진 돈의 '가치'를 떨어뜨림으로써 실질적인 세금을 걷어간 것과 완벽하게 동일한 효과를 내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인플레이션 세금의 무서움입니다. 소리 없이, 저항 없이, 대다수의 국민이 눈치채지 못하는 사이에 부를 이전시키는 가장 강력한 수단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화폐 발행 남용의 극단적인 비극을 보여주는 사례가 바로 짐바브웨입니다. 짐바브웨 정부는 몰락하는 경제를 살린다는 명목 아래, 경제 성장은 전혀 이루지 못한 채 오로지 무제한적으로 화폐를 발행하는 길을 택했습니다. 그 결과는 상상을 초월했습니다. 2008년, 짐바브웨의 공식 인플레이션율은 연간 2억 3,100만%라는 경이적인 수치를 기록했습니다. 돈의 가치는 말 그대로 휴지 조각이 되어버렸고, 사람들은 빵 한 덩어리를 사기 위해 돈을 가방이나 수레에 가득 싣고 다녀야 했습니다. 심지어 길에서 강도를 만나면 돈다발은 버리고 돈을 담았던 수레만 훔쳐 달아났다는 웃지 못할 일화는, 화폐의 가치가 경제적 가치라는 '펀더멘털'에 기반하지 않을 때 어떤 끔찍한 결과를 낳는지를 명확하게 보여주는 역사적 교훈입니다.
부자 나라의 비밀, 가난한 나라의 굴레
그렇다면 이런 질문이 생길 수 있습니다. "모든 나라가 돈을 찍어낸다면, 왜 어떤 나라는 부유하고 어떤 나라는 가난한가? 왜 한국인의 하루 임금은 70달러인데, 베트남 노동자의 임금은 10달러에 불과한가? 똑같은 나이키 신발을 만들어도 그 부가가치는 동일한데, 이 엄청난 임금 격차는 어디서 오는 걸까?"
그 비밀의 핵심은 바로 '고부가가치 산업'의 존재 여부와 그로 인한 '낙수 효과(Trickle-down effect)'에 있습니다.
가난한 나라들이 저임금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자국 화폐의 가치를 뒷받침해 줄 강력한 '달러 획득 수단'이 없기 때문입니다. 만약 베트남 정부가 국민 소득을 높여주겠다며 자국 통화인 '동(VND)'을 대량으로 찍어낸다고 상상해 봅시다. 앞서 설명한 원리에 따라, 경제적 가치의 상승 없이 화폐량만 늘어났으므로 베트남 동의 가치는 국제 시장에서 폭락할 것입니다. 즉, 환율이 폭등하는 것이지요. 결국 월급은 2배로 올랐지만, 수입 물가가 2배로 뛰어 실질적인 구매력은 제자리걸음이거나 오히려 하락하는 비극에 직면하게 됩니다.
하지만 대한민국은 상황이 다릅니다. 한국에는 삼성전자나 현대자동차와 같이, 단 한 번의 수출로 수십억, 수백억 달러의 외화를 벌어들일 수 있는 초일류 고부가가치 산업이 존재합니다. 예를 들어, 삼성전자가 반도체를 수출해서 연간 2,000억 달러라는 엄청난 외화를 벌어들였다고 가정해 봅시다. 삼성전자는 이 달러를 국내 직원들의 월급도 주고, 협력업체에 대금도 지불하고, 공장도 증설하는 데 사용해야 합니다. 그러려면 당연히 달러를 팔아서 '원화'로 환전해야 합니다.
이때 엄청난 규모의 달러가 외환시장에 공급됩니다. 한국은행은 이 달러를 사들이면서 외환보유고를 늘릴 수 있고, 그와 동시에 시장에 공급된 달러만큼에 상응하는 새로운 원화를 발행할 수 있는 '자격'을 얻게 됩니다. 이것이 핵심입니다. 베트남의 사례처럼 아무런 근거 없이 돈을 찍어내는 것이 아니라, '달러'라는 확실한 가치 저장 수단을 담보로 원화를 발행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시장 참여자들은 새로 발행된 원화의 가치를 인정해주고, 환율은 안정적으로 유지되거나 오히려 하락(원화 가치 상승)하는 압력을 받게 됩니다.
이렇게 풀린 돈은 삼성전자 직원들의 두둑한 월급과 보너스가 되어 그들의 계좌에 꽂힙니다. 이 직원들은 그 돈으로 백화점에서 쇼핑을 하고, 외식을 하고, 자녀의 학원비를 내고, 자동차를 바꿉니다. 그러면 그 돈은 다시 백화점 직원, 식당 주인, 학원 강사, 자동차 영업사원에게로 흘러 들어갑니다. 이들은 또 그 돈을 자신들의 생활에 사용하며, 돈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사회 전체로 퍼져나갑니다. 이것이 바로 고부가가치 산업이 만들어내는 '낙수 효과'의 실체입니다.
결과적으로, 삼성전자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사람들의 소득까지도 동반 상승하게 됩니다. 국민 1인당 보유한 돈의 양은 늘어났지만, 환율은 안정적으로 유지되었기 때문에 달러로 환산한 국민 소득이 실질적으로 증가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한 국가가 부유해지는 과정의 정수이며, 고부가가치 산업이 없는 나라가 결코 흉내 낼 수 없는 구조적인 차이점입니다.
적색경보가 켜진 대한민국 원화의 미래
지금까지 우리는 환율의 원리, 인플레이션의 비밀, 그리고 국가가 부유해지는 메커니즘에 대해 알아보았습니다. 이 모든 배경지식을 바탕으로, 이제 우리는 가장 중요하고도 불편한 진실, 바로 대한민국 원화가 처한 암울한 미래에 대해 이야기해야만 합니다.
에이, 설마. 대한민국이 어떤 나라인데. 반도체도 잘 만들고, 자동차도 잘 팔고, K-팝도 세계적인데 무슨 위기라는 건가? 너무 비관적인 것 아닌가?
그렇게 생각하고 싶은 마음은 충분히 이해합니다. 하지만 냉정한 데이터와 구조적인 변화는 우리에게 매우 불길한 신호를 보내고 있습니다. 단언컨대, 지금 대한민국 경제와 원화의 가치는 건국 이래 가장 심각한 구조적 도전에 직면해 있습니다. 이 위기는 단기적인 경기 순환의 문제가 아니라, 여러 치명적인 문제들이 복합적으로 얽혀있는 '퍼펙트 스톰'의 양상을 띠고 있습니다.
첫 번째 위기: 인구 절벽, 모든 것을 무너뜨리는 쓰나미
가장 근본적이고 되돌릴 수 없는 위기는 바로 '인구 구조의 붕괴'입니다. 한 국가 경제의 가장 중요한 기반은 바로 '사람', 그중에서도 '일하는 사람'입니다. 하지만 대한민국은 이 기반이 뿌리부터 흔들리고 있습니다. 통계청의 장래인구추계에 따르면, 돈을 버는 주체인 생산가능인구(15~64세)는 이미 2018년을 정점으로 감소하기 시작했습니다 [6].
특히, 대한민국 경제 성장의 주역이었던 베이비붐 세대(1955~1963년생)가 대거 은퇴 연령에 접어들면서, 이들은 돈을 버는 '생산자'에서 돈을 쓰는 '소비자' 혹은 부양받는 '피부양자'로 전환되고 있습니다. 문제는 이들의 빈자리를 채워줄 젊은 세대의 수가 너무나도 터무니없이 적다는 사실입니다. 세계 최저 수준의 출산율(2023년 기준 0.72명)은 미래의 생산가능인구가 현재보다 훨씬 더 급격하게 줄어들 것임을 예고합니다.
일하는 사람의 수가 줄어든다는 것은 국가 경제의 성장 잠재력이 구조적으로 하락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생산과 소비가 동시에 위축되면서 경제의 활력이 떨어지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수순입니다. 실제로 최근 몇 년간 한국의 경제 성장률은 미국에 역전당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2]. 과거 고도성장기에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일입니다.
앞서 환율의 원리를 설명했듯이, 상대국(미국)보다 경제 성장률이 낮은 국가는 다른 모든 조건이 동일하더라도 화폐 가치가 하락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것은 거스를 수 없는 경제 법칙입니다.
두 번째 위기: 성장은 멈췄는데, 돈은 더 풀어야 하는 딜레마
설상가상으로, 한국은 경제 성장률이 둔화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돈은 더 많이 찍어내야만 하는 끔찍한 딜레마에 빠져 있습니다.
인구 구조의 변화는 필연적으로 정부의 재정 지출 확대를 요구합니다. 급증하는 고령층을 부양하기 위한 연금과 의료비 등 복지 예산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수밖에 없습니다. 동시에, 침체된 경기를 부양하고 사회적 불만을 잠재우기 위해 정부는 끊임없이 돈을 풀어야 한다는 압박에 시달립니다. 성장이라는 파이는 쪼그라드는데, 나눠 먹어야 할 사람과 써야 할 돈은 오히려 늘어나는 최악의 상황인 셈입니다.
이러한 현실은 한국은행의 통화 정책에서 명확하게 드러납니다. 시중에 유동성을 직접 공급하는 수단 중 하나인 '환매조건부채권(RP) 매입' 규모를 살펴보면 충격적입니다. 2021년 한 해 동안 약 4조 원 수준이었던 RP 순매입액은, 2024년에는 무려 106조 원을 넘어섰습니다 [3]. 불과 3년 만에 26배 이상 폭증한 것입니다.
한국은행이라고 해서 시중에 통화량이 과도하게 풀리고 있다는 사실을 모를 리가 없습니다. 하지만 당장 눈앞의 경기 침체와 금융 시장의 불안을 막기 위해, 일단 돈을 풀어 응급 심폐소생술이라도 해야 하는 절박한 상황에 내몰린 것입니다. 이는 경제의 기초 체력은 약해졌는데, 억지로 스테로이드(유동성)를 주입해 버티고 있는 모습과 같습니다.
결국 '경제 성장률(분모)'은 미국에 뒤처지기 시작했는데, '화폐 발행량(분자)' 증가율은 오히려 더 높아지는 현상이 고착화될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환율 공식(환율=경제 가치화폐량)에 이 상황을 대입해 보십시오. 장기적인 원화 가치 하락(환율 상승)이라는 결론 외에 다른 답이 나올 수 있을까요?
세 번째 위기: 떠나는 기업들, 마르는 부의 샘물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과거 원화 가치를 든든하게 받쳐주었던 '부의 샘물', 즉 수출 대기업들의 외화 유입마저 말라가고 있습니다.
과거 삼성전자와 현대차 같은 대기업들은 수출로 벌어들인 달러를 국내로 들여와 원화로 환전한 뒤, 그 돈으로 국내에 공장을 짓고 직원을 고용하며 투자를 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앞서 살펴본 '낙수 효과'의 원천이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180도 바뀌었습니다. 저성장과 각종 규제로 대표되는 국내 시장의 한계가 명확해지자, 이들 대기업은 이제 벌어들인 달러를 국내로 가져오는 대신, 그대로 해외 공장에 재투자하는 것을 선호하고 있습니다. 미국의 반도체 공장, 유럽의 배터리 공장 건설 등이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이는 기업 입장에서 보면 성장의 기회를 찾아 떠나는 지극히 합리적인 경영 판단입니다.
문제는 이것이 국가 경제 전체에는 치명적인 결과를 낳는다는 점입니다. 과거 원화 발행의 든든한 담보 역할을 해주었던 달러 유입이 줄어들면서, 원화 가치의 근본적인 기반이 약화되고 있습니다. 이는 마치 90년대 '잃어버린 10년'을 겪었던 일본의 전철을 그대로 따라가는 모습과 매우 흡사합니다. 기업과 자본이 더 나은 기회를 찾아 해외로 빠져나가면서 국내 경제는 활력을 잃고 공동화(空洞化)되는 현상, 이것이 바로 우리가 마주한 또 하나의 냉혹한 현실입니다.
이 모든 상황을 종합적으로 보여주는 객관적인 지표가 바로 실질실효환율(REER, Real Effective Exchange Rate)입니다. 실질실효환율이란, 여러 교역 상대국과의 환율을 종합하고 각국의 물가 수준까지 고려하여 산출한 한 나라 화폐의 실질적인 구매력을 나타내는 지표입니다. 한국의 실질실효환율(2020년=100 기준)은 2018년 이후 뚜렷한 하락 추세를 보이고 있으며, 최근에는 90 초반대까지 떨어졌습니다 [5]. 이는 단순히 명목 환율의 등락을 넘어, 대한민국 원화의 근본적인 가치 자체가 약해지고 있음을 명백히 증명하는 것입니다.
당신의 부를 지키기 위한 유일한 생존 전략
자, 지금까지의 모든 논의를 종합해 봅시다.
환율은 경제 가치 대비 화폐 발행량의 비율이다.
한국은 인구 감소로 인해 장기적인 경제 가치(성장률) 하락이 예고되어 있다.
동시에 복지 수요와 경기 부양 필요성으로 인해 화폐 발행량은 계속 늘어날 수밖에 없는 구조다.
과거 원화 가치를 지탱해주던 수출 대기업의 달러 유입마저 줄어들고 있다.
이 모든 조각들을 하나로 맞춰보면, 어떤 그림이 그려지십니까? 그렇습니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원-달러 환율은 우상향, 즉 원화 가치는 구조적인 하락 추세를 보일 가능성이 압도적으로 높다는 결론에 이르게 됩니다. 과거 2005년경 1,000원 수준이었던 환율이 현재 1,300~1,400원대에 와 있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닙니다. 이것이 바로 지난 20년간 대한민국 경제의 구조적 변화가 누적된 결과물입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거대한 흐름 속에서, 우리 개인은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요? 해답은 이미 움직이고 있는 대기업들의 행동 속에 있습니다. 바로 원화라는 단일 통화 자산에 대한 의존도를 최소한으로 줄이고, 자산의 상당 부분을 더 단단하고 안정적인 가치를 지닌 통화, 즉 '달러'로 바꿔 해외에 두는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 환율이 1,350원에서 1,320원으로 떨어졌는데, 이럴 때 달러를 사는 건 손해 아닌가? 좀 더 기다렸다가 1,200원대에 사면 안 되나?
물론 단기적으로는 원화 가치가 오르거나, 국내 코스피 지수가 미국 S&P500 지수보다 더 높은 수익률을 기록하는 구간이 있을 수 있습니다. 환율은 수많은 변수에 의해 단기적으로 출렁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파도의 움직임이 아니라 조수의 흐름을 봐야 합니다. 지금 환율이 30원 떨어지는 것에 안도하고 원화 자산에 머무르는 것은, 밀려오는 거대한 쓰나미 앞에서 발 앞에 있는 작은 파도가 물러가는 것을 보고 안심하는 것과 같습니다.
오히려 일시적인 환율 하락은, 장기적으로 가치가 하락할 자산(원화)을 가치가 상승할 자산(달러)으로 바꿀 수 있는 절호의 '세일 기간'으로 인식해야 합니다.
우리가 달러 자산을 보유해야 하는 이유는 단순히 환차익을 노리기 위함이 아닙니다. 더 근본적으로는 성장의 과실을 계속해서 만들어낼 수 있는 경제 시스템에 우리의 자산을 연결시키기 위함입니다. 미국은 2100년까지 선진국 중 거의 유일하게 인구가 지속적으로 증가하는 국가이며, AI, 우주 항공, 바이오 등 모든 미래 산업의 혁신을 주도하고 있습니다. 전 세계의 자본과 인재가 여전히 미국으로 모여드는 이유는 그곳에 성장의 기회가 있기 때문입니다.
결론은 명확합니다. 지금 당장 환율이 조금 떨어졌다고 해서, 혹은 국내 증시가 잠시 반짝한다고 해서 달러 자산으로의 이전을 망설일 이유는 전혀 없습니다. 그것은 다가오는 미래에 대한 준비를 포기하는 것과 같습니다. 당신의 소중한 자산을 인구 절벽과 저성장의 늪에 빠진 원화에만 묶어두시겠습니까? 아니면 세계 경제의 심장이자 성장의 엔진인 달러 자산으로 옮겨 놓으시겠습니까?
달러 자산을 사고, 미국 주식에 투자하고, 그 가치에 익숙해지는 것. 이것은 더 이상 부자들만의 재테크가 아닙니다. 다가오는 새로운 경제 질서 속에서 당신과 당신 가족의 부를 지키기 위한 가장 확실하고 절실한 '생존 전략'임을 반드시 명심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