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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탄과 축사, 그리고 신앙생활: 전원희 목사와 오후 5시 교회에서 배우는 성경적 이해와 올바른 분별 방법

요약

사탄에 대한 깊이 있는 탐구를 통해 우리는 그 존재의 본질과 우리의 신앙생활에 미치는 영향을 명확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전원희 목사님은 그의 저서 '내 이름이 무엇이냐 사탄 그 존재에 관하여'를 통해 구약 성경에 단 세 번만 등장하는 사탄이 신구약 중간기와 신약 성경 시대를 거쳐 초기 기독교인들에게 어떻게 이해되었는지를 학문적으로 깊이 파고들었습니다. 이 책은 원래 목사님의 학위 논문을 기반으로 쓰였지만, 독자들이 흥미를 느낄 수 있도록 한국 기독교 안에서 축사가 어떤 방식으로 이루어졌는지, 그리고 현재 우리는 사탄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에 대한 내용을 뒷부분에 추가하여 더욱 풍성한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이러한 접근 방식은 단순한 학문적 지식을 넘어 실제 신앙생활에 적용될 수 있는 실질적인 지혜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많은 기독교인들이 사탄과 귀신의 존재에 대해 막연한 두려움을 느끼거나, 혹은 영화 속 이야기처럼 현실과 동떨어진 존재로 여기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전원희 목사님은 사탄의 존재가 우리 삶에 미묘하고 교묘하게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강조합니다. 특히, 자녀가 잠을 자지 않거나 일상생활에서 겪는 어려움을 사탄의 방해로 여기는 경우처럼, 우리는 종종 사탄의 활동을 오해하거나 과장하기도 합니다. 이러한 오해를 바로잡고 사탄에 대한 정확한 이해를 돕기 위해, 목사님은 성경적 근거와 초기 기독교 문헌을 바탕으로 사탄의 본질과 활동 방식에 대해 명쾌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전원희 목사님이 섬기는 '오후 5시 교회'는 그 이름부터 특별한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이 교회는 목회자 세 명이 함께 공동 목회를 하는 곳으로, 교회의 이름이 곧 교회의 정체성이 될 수 있다는 신념 아래 지어졌습니다. 예수님의 포도원 비유에서 가장 마지막에 부름을 받은 일꾼, 즉 한국 시간으로 오후 5시에 부름을 받은 사람들에게 주목했습니다. 이들은 몸이 불편했거나 신체적인 약함이 있었을 수도 있고, 혹은 주인이 부르기에 부족한 모습이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한 시간만이라도 일해야 먹고 살 수 있었던 이들을 섬기고자 하는 마음에서 '오후 5시 교회'라는 이름이 탄생했습니다.

오후 5시 교회는 신체적인 약함이 있거나 교회에 적응하지 못하는 분들, 그리고 흔히 말하는 '가나안 성도' 즉 교회에 대한 상처와 아픔을 갖고 어디에도 정착하지 못하는 분들에게 집중하고자 합니다. 목사님은 이러한 분들이 누구일지 정확히 특정하지는 않았지만, 약하고 넘어져 있거나 신체적인 부족함이 있는 분들에게 눈과 마음을 열고 목회를 시작했다고 설명합니다. 이 교회는 물리적인 장소에 얽매이지 않고, 현재는 남양주에서 특정 공간을 대여하여 주일마다 모이고 있습니다. 이는 교회가 특정 건물에 국한되지 않고 도움이 필요한 이들에게 찾아가 섬기는 유연한 형태의 목회를 지향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목사님의 이러한 목회 철학은 어린 시절 어머니의 깊은 신앙적 영향에서 비롯되었습니다. 목사님의 어머니는 10대 때부터 교회를 다니며 신앙을 전수해 주셨는데, 특히 목사님이 7살 때 겪었던 가정의 위기는 그의 신앙과 현재 목회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습니다. 당시 아버지의 월급이 1년 반 동안 체불되어 가족이 끼니를 제대로 잇지 못하는 어려운 상황에 처했습니다. 그런데 월급을 주지 않은 사장님의 집을 찾아갔을 때, 사장님 역시 쫄딱 망해 끼니조차 제대로 먹지 못하는 상황임을 목격한 어머니는 오히려 자신의 남은 돈을 모아 쌀을 사주고 돌아오셨습니다.

이때 어머니가 목사님을 안고 하셨던 말씀은 "항상 우리 주변에는 우리보다 어려운 사람이 있어. 그들이 잊고 살면 안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어머니는 그 이후로도 자신이 할 수 있는 선 안에서 어려운 사람을 찾아 돕고 나누는 일을 꾸준히 해오셨습니다. 목사님은 어린 시절에는 이러한 어머니의 행동을 '미련하다'고 생각했지만,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그것이 바로 그리스도인의 삶이라는 것을 깨달았다고 고백합니다. 신학적인 지식이 많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어머니의 삶 자체가 모든 것을 정리하는 신앙의 모범이 되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경험은 목사님이 약하고 소외된 이들에게 눈을 돌리는 목회를 하게 된 근본적인 동기가 되었습니다.

사탄과 귀신에 대한 목사님의 관심은 고등학교 1학년 때 겪었던 한 사건에서 시작되었습니다. 당시 학생부 기도회에서 찬양을 하던 중, 갑자기 오싹한 느낌을 받고 눈을 떴을 때 한 살 어린 여동생이 자신을 지켜보고 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이 동생은 기도가 필요해 보였고, 함께 기도하는 과정에서 동생이 옆으로 쓰러지고, 뒤에서 기도하던 친구가 바람 같은 힘에 밀려 넘어지는 경험을 했습니다. 이 사건은 목사님에게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일까? 이 현상은 뭘까? 이걸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게 했고, 사탄과 귀신의 존재에 대해 깊이 궁금해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목사님은 사탄, 마귀, 귀신이라는 용어들이 종종 혼용되어 사용되지만, 성경적으로는 명확한 구분이 필요하다고 설명합니다. 사탄은 히브리어에서 유래한 단어이고, 마귀는 그리스어 '디아볼로스'를 번역한 것으로, 이 둘은 악한 영들의 우두머리, 즉 같은 존재로 볼 수 있습니다. 성경에는 바알 역시 우두머리 존재로 등장합니다. 반면에 귀신은 구약 성경에는 등장하지 않고 신약 성경에 와서야 등장하며, 실제적인 활동을 하는 존재들인 것으로 보입니다. 즉, 사탄과 마귀가 명령을 내리는 우두머리라면, 귀신은 그 명령에 따라 실제로 활동하는 존재인 것입니다.

목사님은 과거 기도회에서 겪었던 동생의 사례를 귀신 들림으로 볼 수도 있지만, 모든 경우가 그렇지는 않다고 조심스럽게 언급합니다. 당시에는 정신적으로 이상이 있는 사람들을 귀신 들림으로 여겼던 전통적인 생각이 강했지만, 현대 의학의 관점에서 보면 정신적인 영향일 수도 있다는 점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 동생의 경우 오랫동안 기도회를 했고 여러 사람이 함께 기도했던 점을 볼 때, 귀신의 영향을 받았던 것은 맞는 것 같다고 덧붙입니다. 이는 모든 안 좋은 일이 귀신 때문은 아니라는 중요한 통찰을 제공합니다.

가톨릭의 '구마 사제'의 역할은 이러한 영적, 정신적 문제의 구분을 잘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영화에서처럼 신부님들이 구마 사역을 하는 경우가 많은데, 흥미로운 점은 구마 사제가 혼자 가지 않고 항상 정신과 의사와 동행한다는 것입니다. 정신과 의사가 진단하여 정신적인 문제라고 판단되면 구마 사제는 빠지고 정신적인 치료를 진행합니다. 그러나 의학적으로 해결할 수 없는 영적인 문제라고 판단될 때 비로소 구마 사제가 축사를 시작하는데, 이 과정이 몇 개월 또는 몇 년이 걸릴 수도 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이는 영적인 문제와 정신적인 문제를 신중하게 구분하고 접근해야 함을 시사합니다.

오늘날 유튜브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축사 영상들에 대해서도 목사님은 신중한 입장을 취합니다. 그것이 진짜인지 아닌지를 정확히 분별하기는 어렵지만, 몇 가지 분별할 수 있는 표지가 있다고 설명합니다. 사도행전과 초기 기독교인들의 축사 현상을 보면, 축사가 주인공이 된 적은 없었습니다. 귀신이 떠나가고 질병이 치유되는 일이 일어났을 때, 사람들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마법책을 불태우며 복음을 믿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반면 축사를 행한 예수님의 제자들이나 사도들은 뒤로 물러났습니다.

따라서 만약 축사 현상을 통해 축사를 행하는 사람이 중심이 되고 주인공이 되며 영웅이 된다면, 그것은 올바른 방법이 아니라고 목사님은 강조합니다. 이단들이 교주를 주인공으로 삼는 것처럼, 축사의 영광을 자신이 취하는 것은 잘못된 길이라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축사를 하는 이 일이 자신의 힘으로 하는가 아니면 자신의 힘이 아닌 것으로 하는가에 달려 있습니다. 성경은 축사가 인간의 능력으로 이루어진다고 말하지 않으며,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귀신이 물러간다고 말합니다. 즉, 예수님의 능력과 십자가의 승리로 인해 귀신이 쫓겨나는 것이며, 우리는 단지 그 통로일 뿐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축사라는 현상이 일어났을 때, 그 결과적으로 사람들이 예수를 믿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예수님을 주인공으로 삼는다면, 그 축사는 건강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축사를 통해 행하는 자가 영광을 취하고 자신이 능력이 있는 것처럼 생각한다면, 그것은 이단으로 가는 길이라고 경고합니다. 이러한 기준은 우리가 다양한 축사 현상을 분별하는 데 중요한 지침이 될 수 있습니다.

질병과 귀신 들림의 관계에 대해서도 목사님은 균형 잡힌 시각을 제시합니다. 모든 질병이 귀신 때문이라고 주장하며 병원 치료를 중단하고 축사 기도만 하는 것은 위험하다고 말합니다. 목사님은 충분히 의학적인 치료를 받으면서 함께 기도를 병행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께서 의학적인 지식을 가진 사람들을 통해서도 일하실 수 있기 때문에, 하나님이 어떤 영역으로 역사하실지는 우리가 구분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의학적 치료와 기도는 항상 병행되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특히 간질 환자의 경우 귀신 들림으로 오해받는 경우가 많았는데, 목사님은 이에 대한 개인적인 경험을 통해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금요 예배 중 한 청년이 간질 발작을 일으켰을 때, 목사님은 귀신 들림으로 오해하고 기도해야 할 것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능숙한 집사님들이 청년을 돕는 모습을 보며, 한 분은 간호사였고 다른 한 분은 청년의 질병을 알고 있던 분이었습니다. 그들은 청년이 스스로 회복할 수 있도록 옆에서 도와주었고, 이 경험을 통해 목사님은 모든 안 좋은 일이나 질병이 다 사탄이나 귀신 때문이라고 말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이는 세상에 일어나는 모든 안 좋은 일을 인과응보나 사탄의 역사로만 설명하려는 태도를 경계해야 함을 보여줍니다.

목사님은 사탄에 대한 대중적인 오해를 바로잡습니다. 흔히 사탄을 뿔 달린 무서운 형상으로 떠올리지만, 목사님은 오히려 사탄이 우리가 가장 좋아하는 존재의 모습으로 우리를 유혹할 것이라고 말합니다. 사람이 가장 필요로 하는 것이 그 사람의 약점이며, 사탄은 돈을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 돈을 빌려줄 것처럼, 배우자를 간절히 원하는 사람에게 사랑하는 척 다가와 하나님보다 더 사랑할 수 있는 우상으로 나타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리옹의 이레네우스 교부가 남긴 글에서 목사님은 사탄이 역사하는 두 가지 핵심 방식을 발견했습니다. 첫째, 사탄은 창조주가 인간에게 주신 은혜를 잊어버리게 하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사랑을 가립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너무나 당연하게 여기고, 하나님의 은혜가 단 한 순간도 멈춘 적이 없는데도 그것을 당연하게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우리가 매일 숨 쉬고 활동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지만, 만약 우리가 아프거나 사고가 났다면 이 모든 것이 은혜였음을 깨닫게 됩니다. 사탄은 이러한 당연함을 이용하여 우리가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을 잊어버리게 합니다.

둘째, 사탄은 하나님이 마땅히 받으셔야 할 영광을 받지 못하게 하고, 인간을 하나님과 동등한 존재처럼 생각하게 만듭니다. 예를 들어, 어떤 일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졌을 때 그 영광이 마땅히 하나님께 돌아가야 하지만, 인간이 그것을 자신이 이룬 것처럼 취하게 되면 결국 자신이 하나님의 자리에 오르게 됩니다. 이는 에덴동산에서 뱀이 '하나님처럼 될 수 있다'고 유혹했던 것과 같은 맥락입니다. 사탄은 이러한 교묘한 방식으로 우리가 감사와 사랑을 잊고, 겸손함을 잃어버리며, 스스로를 하나님과 동등하게 여기도록 유혹합니다.

목사님은 우리가 중요한 결정을 할 때 이것이 하나님의 뜻인지, 아니면 마귀의 음성인지 헷갈릴 때가 많다고 말합니다. 우리는 종종 십자가의 길, 좁은 길을 가기 원한다고 기도하지만 실제로는 평탄하고 좋은 길을 원합니다. 그리고 간절히 기도하는 것이 사탄에게 우리의 약점을 공개하는 것이 될 수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간절히 배우자 기도를 했는데 누군가를 만나면 바로 '하나님이 응답해 주셨구나'라고 생각하지만, 나중에 후회하는 경우도 있다는 것입니다.

목사님은 이러한 상황에서 함부로 판단하지 말고 끊임없이 기도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하나님이 평탄한 길을 열어주실 수도 있고, 때로는 어려움의 길을 걷게 하실 수도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 순간순간마다 "하나님, 제가 어떻게 해야 하죠? 어떤 길을 걸어가야 하죠?"라고 끊임없이 묻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한 발짝 한 발짝 걸어갈 때 조금씩 길을 열어주시는 것이지, 처음부터 모든 길을 환하게 보여주시는 것 같지는 않다는 것입니다.

또한, 목사님은 "기도를 열심히 하면 하나님께서 응답하신다"는 신앙을 조심해야 한다고 경고합니다. 왜냐하면 이러한 생각은 하나님이 빠지고 '내가 열심히 했기 때문에 하나님이 주신 보답'이라는 인과응보적인 사고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되면 하나님의 은혜가 사라지고, 결국 사탄의 꾀에 넘어가 '네가 한 거지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지'라고 생각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사고가 생기거나 어려움이 닥쳤을 때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다고 이런 벌을 내리십니까?"라고 착각하는 것도 이러한 잘못된 사고방식에서 비롯됩니다.

오후 5시 교회는 특정 목표를 정해두기보다는, 지금도 정체성을 찾아가는 중이라고 목사님은 말합니다. 처음에는 교회가 성장하고 교인들이 정착하기를 바랐지만, 실제로는 고민과 상처를 가진 이들이 잠시 머물다 가는 '휴게소 같은 교회'라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습니다. 이에 목사님과 교인들은 오히려 우리 교회가 휴게소 같은 교회가 되어야 하는 것은 아닐까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목사님은 "꼭 우리 교회여야 할 필요는 없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고 말합니다. 만약 어느 교회에서 힘겨움을 겪던 이가 오후 5시 교회에 와서 회복하고 상처를 치유한 뒤 다시 그 교회로 돌아가 신앙생활을 잘한다면, 그것으로도 기뻐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가나안 성도들이 우리 교회에 와서 잘 예수를 믿고 마음이 정리된 상태로 본인이 원하는 교회를 찾아 정착한다면, 그것 또한 기뻐할 일입니다.

이러한 비전은 목사님의 사역에 깊은 감동을 더합니다. 목표와 비전을 정하는 순간 좌절과 실망을 겪을 수 있기 때문에, 오히려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고 겸손하게 나아가는 태도를 보여줍니다. 오후 5시 교회는 누군가가 도움을 요청하면 찾아가든 찾아오든 만나서 그 사람을 위한 예배도 드릴 수 있는 역할을 해줄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모으고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사탄이 우리를 틈타지 못하게 하는 가장 중요한 방법은 바로 감사와 겸손, 그리고 선을 행하려는 끊임없는 노력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은혜와 사랑을 당연하게 여기지 않고 늘 감사하며,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는 겸손한 태도를 갖는 것이 중요합니다. 또한, 어떻게 하면 선을 행하고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을지 끊임없이 고민하며 우리의 삶을 채워나간다면, 사탄이 우리 마음속에 틈입할 여지를 주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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