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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2공수사단의 제2차 세계대전 주요 작전: 시칠리아, 노르망디, 마켓 가든에서의 혁혁한 공과 희생

제82공수사단: 시칠리아, 노르망디, 마켓 가든 작전 - "All American" 사단의 영광과 희생

서론: 제82공수사단의 탄생과 제2차 세계대전 참전 배경

서론: 제82공수사단의 탄생과 제2차 세계대전 참전 배경

제2차 세계대전은 인류 역사상 가장 거대한 규모의 전쟁이었으며, 전 세계적으로 수많은 변화와 혁신을 가져왔습니다. 특히 군사 분야에서는 공수부대라는 새로운 개념이 등장하여 전쟁의 양상을 근본적으로 바꾸어 놓았습니다. 제82공수사단, 그 이름만으로도 강렬한 인상을 주는 이 부대는 미 육군의 대표적인 공수부대이자, 제2차 세계대전의 주요 전장에서 혁혁한 공을 세운 "All American" 사단으로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본 보고서는 제82공수사단이 제2차 세계대전 중 참전했던 주요 작전들을 심층적으로 분석하고, 그들의 빛나는 전공과 희생을 기리고자 합니다. 특히 시칠리아 상륙 작전 (Operation Husky), 노르망디 상륙 작전 (Operation Neptune), 그리고 마켓 가든 작전 (Operation Market Garden)을 중심으로, 제82공수사단이 각 작전에서 수행했던 역할, 주요 전투, 겪었던 어려움, 그리고 그들이 남긴 유산을 상세하게 탐구할 것입니다.

제82공수사단의 역사는 제1차 세계대전 직후인 1917년 8월 25일, 조지아 주 캠프 고든에서 제82보병사단으로 창설되면서 시작되었습니다 [1]. 사단의 별칭인 "All American"은 당시 사단 병력의 출신 지역이 미국 전역에 걸쳐 있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입니다.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제82보병사단은 프랑스 전선에 투입되어 생미엘 전투 (Battle of Saint-Mihiel)뫼즈-아르곤 공세 (Meuse-Argonne Offensive) 등 주요 전투에 참전하며 용맹을 떨쳤습니다. 제1차 세계대전 종전 후 제82보병사단은 해체되었으나, 제2차 세계대전 발발과 함께 1942년 3월 25일, 다시 한번 역사의 전면에 등장하게 됩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미 육군은 새로운 전쟁 환경에 발맞춰 군 현대화를 추진하였고, 그 일환으로 공수부대의 창설을 결정했습니다. 1942년 8월 15일, 제82보병사단은 미 육군 최초의 공수사단으로 재편성되어 제82공수사단 (82nd Airborne Division)으로 새롭게 태어났습니다 [2]. 초대 사단장으로는 오마 브래들리 (Omar Bradley) 소장이 임명되었고, 이후 매튜 리지웨이 (Matthew Ridgway) 소장이 사단장직을 이어받아 제2차 세계대전 기간 동안 사단을 지휘했습니다. 제82공수사단은 창설 직후부터 강도 높은 훈련을 거치며 실전 투입을 준비했으며, 1943년 마침내 북아프리카 전선에 투입되면서 제2차 세계대전의 역사에 본격적으로 발자취를 남기기 시작했습니다.

제82공수사단은 제2차 세계대전 기간 동안 시칠리아, 이탈리아, 노르망디, 네덜란드, 벨기에, 독일 등 유럽 전역의 주요 전장에서 활약하며 수많은 전투를 치렀습니다. 특히 시칠리아 상륙 작전, 노르망디 상륙 작전, 마켓 가든 작전은 제82공수사단의 용맹과 희생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작전으로 손꼽힙니다. 이 세 작전에서 제82공수사단은 적진 깊숙이 침투하여 주요 목표를 탈취하고, 아군 주력 부대의 상륙과 진격을 위한 교두보를 확보하는 등 결정적인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수많은 사상자를 내는 등 큰 희생을 감수해야 했습니다.

본 보고서는 제82공수사단이 제2차 세계대전 중 참전했던 세 번의 주요 작전, 즉 시칠리아, 노르망디, 마켓 가든 작전을 중심으로 그들의 활약상을 상세히 분석하고, 역사적 의미를 조명할 것입니다. 각 작전의 배경, 계획, 실행 과정, 주요 전투, 결과, 그리고 제82공수사단이 남긴 유산을 심층적으로 탐구함으로써, "All American" 사단의 용맹과 헌신을 재조명하고, 그들의 빛나는 발자취를 따라가 보고자 합니다. 이를 통해 독자들은 제2차 세계대전의 주요 전투들을 더욱 생생하게 이해하고, 제82공수사단이 보여준 용기와 희생정신을 가슴 깊이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시칠리아 상륙 작전 (Operation Husky): 첫 번째 전투 강하

시칠리아 상륙 작전 (Operation Husky): 첫 번째 전투 강하

1943년 7월 9일, 제82공수사단은 시칠리아 상륙 작전 (Operation Husky)을 통해 역사적인 첫 전투 강하를 감행했습니다. 시칠리아 상륙 작전은 제2차 세계대전 중 연합군이 감행한 최초의 대규모 상륙 작전이자, 이탈리아 본토 침공의 발판을 마련한 중요한 작전이었습니다 [3]. 당시 시칠리아이탈리아의 주요 거점이었으며, 독일군과 이탈리아군이 강력한 방어선을 구축하고 있었습니다. 연합군은 시칠리아를 점령함으로써 지중해의 제해권과 제공권을 확보하고, 이탈리아 본토를 공격하여 전쟁의 흐름을 유리하게 이끌어갈 계획이었습니다.

제82공수사단은 시칠리아 상륙 작전에서 제505공수연대, 제504공수연대, 제325글라이더보병연대로 구성된 제82공수사단 전투단 (CCB)으로 참전했습니다. 당시 사단장은 매튜 리지웨이 소장이었으며, 제505공수연대는 제임스 M. 개빈 (James M. Gavin) 대령의 지휘를 받고 있었습니다. 제82공수사단의 임무는 시칠리아 섬 남부에 강하하여 상륙 지점 주변의 주요 지역을 확보하고, 아군 상륙 부대의 진격을 지원하는 것이었습니다. 특히 제505공수연대는 제7군단의 선봉 부대로서, 제1보병사단과 함께 상륙 작전을 개시할 예정이었습니다.

1943년 7월 9일 밤, 제82공수사단 제505공수연대 제2대대와 제3대대는 C-47 수송기에 탑승하여 시칠리아로 향했습니다. 하지만 첫 전투 강하는 시작부터 난관에 부딪혔습니다. 야간 강하의 어려움, 악천후, 그리고 항법 오류 등으로 인해 수송기들은 예정된 강하 지점을 벗어나 시칠리아 섬 곳곳에 흩어져 강하하게 되었습니다 [4]. 더욱 심각한 문제는 아군 함대의 오인 사격이었습니다. 상륙 함대는 야간에 접근하는 수송기들을 적기로 오인하고 대공 사격을 가했고, 이로 인해 다수의 수송기가 격추되거나 손상을 입었습니다. 찰스 쿤 (Charles Kuehn) 대령이 지휘하는 제504공수연대는 다음 날인 7월 10일 강하할 예정이었으나, 전날 밤의 혼란과 피해 상황을 고려하여 강하가 취소되고 해상으로 상륙하는 것으로 변경되었습니다.

예상치 못한 어려움 속에서도 제82공수사단 공수부대원들은 용감하게 임무를 수행했습니다. 흩어진 병력들은 소규모 그룹으로 뭉쳐 독일군과 이탈리아군을 공격하고, 주요 도로와 교량을 차단하는 등 게릴라전을 펼쳤습니다. 특히 제505공수연대는 예정된 강하 지점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강하했음에도 불구하고, 비아자 능선 (Biazza Ridge)폰테 디리요 (Ponte Dirillo) 등 주요 목표를 성공적으로 확보했습니다. 제임스 M. 개빈 대령은 흩어진 병력을 규합하여 비아자 능선을 방어하고, 독일군의 반격을 격퇴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5].

시칠리아 상륙 작전에서 제82공수사단은 혼란스러운 상황 속에서도 뛰어난 전투력을 발휘했지만, 아군 오인 사격으로 인한 피해는 매우 컸습니다. 작전 첫날 밤에만 23대의 수송기가 격추되고 37대가 손상되었으며, 81명의 공수부대원이 사망하고 168명이 부상당했습니다 [6]. 아군 오인 사격으로 인한 사상자는 전체 사상자의 절반 이상을 차지할 정도였습니다. 이러한 피해는 연합군에게 큰 충격을 주었으며, 이후 작전에서는 아군 오인 사격을 방지하기 위한 대책 마련에 심혈을 기울이게 되었습니다.

시칠리아 상륙 작전은 제82공수사단에게 있어서는 첫 전투 강하이자, 값비싼 희생을 치른 작전이었습니다. 작전 초반의 혼란과 아군 오인 사격으로 인해 큰 피해를 입었지만, 공수부대원들은 용감하게 임무를 완수하며 공수부대의 가능성과 잠재력을 입증했습니다. 시칠리아에서의 경험은 제82공수사단에게 값진 교훈을 남겼으며, 이후 작전 수행 방식과 훈련 내용 개선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특히 아군 오인 사격 방지 대책 마련, 야간 강하 훈련 강화, 그리고 통신 및 지휘 체계 개선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끼게 되었습니다. 시칠리아 상륙 작전은 제82공수사단이 "All American" 사단으로서 명성을 쌓아가는 첫걸음이었으며, 앞으로 더 큰 활약을 펼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한 중요한 작전으로 평가됩니다.

노르망디 상륙 작전 (Operation Neptune): D-Day 강하와 초기 전투

노르망디 상륙 작전 (Operation Neptune): D-Day 강하와 초기 전투

1944년 6월 6일, 제82공수사단은 노르망디 상륙 작전 (Operation Neptune)의 일환으로 D-Day에 역사적인 강하 작전을 수행했습니다. 노르망디 상륙 작전은 제2차 세계대전의 전환점이 된 결정적인 작전이자, 서부 전선에서 나치 독일을 패망시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작전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7]. 연합군은 노르망디 상륙을 통해 프랑스 북부에 교두보를 확보하고, 서부 유럽을 해방시키기 위한 본격적인 공세를 시작할 계획이었습니다.

제82공수사단은 노르망디 상륙 작전에서 제505공수연대, 제507공수연대, 제508공수연대, 제325글라이더보병연대로 구성된 전투단으로 참전했습니다. 당시 사단장은 여전히 매튜 리지웨이 소장이었으며, 제82공수사단의 임무는 유타 해변 (Utah Beach) 서쪽 지역에 강하하여 상륙 지점 주변의 주요 목표를 확보하고, 독일군의 증원과 반격을 차단하는 것이었습니다. 특히 제82공수사단은 메레 교회 (Sainte-Mère-Église) 마을과 주변 지역을 점령하고, 메르데레 강 (Merderet River)두브 강 (Douve River)을 잇는 교량을 확보하여 제4보병사단의 상륙을 지원해야 했습니다.

1944년 6월 6일 새벽, 제82공수사단 공수부대원들은 C-47 수송기에 탑승하여 노르망디로 향했습니다. 시칠리아 작전의 경험을 바탕으로, 이번 작전에서는 야간 강하 대신 주간 강하를 선택했으며, 항법 및 통신 장비 개선, 그리고 아군 식별 장치 보강 등 오인 사격 방지 대책을 강화했습니다. 하지만 노르망디 강하 역시 예상치 못한 어려움에 직면했습니다. 독일군의 강력한 대공 포화와 지상 사격으로 인해 수송기들은 큰 위협에 시달렸고, 강하 지점 또한 안개와 연기로 뒤덮여 시야 확보가 어려웠습니다 [8].

혼란스러운 상황 속에서도 제82공수사단 공수부대원들은 용감하게 강하했고, 각자의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습니다. 제505공수연대는 예정대로 메레 교회 마을에 강하하여 독일군과 치열한 전투를 벌였습니다. 존 스틸 (John Steele) 이병의 이야기는 특히 유명합니다. 그는 교회 첨탑에 낙하산이 걸리는 바람에 공중에 매달린 채 독일군의 공격을 받았지만, 살아남아 전투에 합류하는 기적을 보여주었습니다. 메레 교회는 제82공수사단에게 있어서 상징적인 장소가 되었으며, 오늘날에도 교회 첨탑에는 낙하산 모형이 매달려 당시 상황을 기념하고 있습니다.

제507공수연대제508공수연대두브 강 주변 지역에 강하하여 교량을 확보하고, 독일군의 증원을 차단하는 임무를 수행했습니다. 하지만 강하 과정에서 병력들이 흩어지고, 장비와 보급품 부족에 시달리는 등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특히 메르데레 강 서쪽 지역에 강하한 부대들은 독일군의 강력한 저항에 부딪혀 큰 피해를 입었습니다. 제325글라이더보병연대는 D-Day 이후 글라이더를 통해 노르망디에 투입되어 전투에 합류했습니다. 글라이더는 수송기에 비해 대공 공격에 취약했지만, 중화기와 장비를 운반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습니다. 제325글라이더보병연대는 제82공수사단의 화력을 보강하고, 방어선을 강화하는 데 기여했습니다.

노르망디 상륙 작전에서 제82공수사단은 D-Day 강하를 성공적으로 수행하고, 초기 목표를 대부분 달성했지만, 시칠리아 작전 못지않게 큰 희생을 치렀습니다. 작전 개시 첫날에만 1,200명 이상의 사상자가 발생했으며, 작전 기간 동안 총 5,245명의 사상자가 발생했습니다 [9]. 특히 제507공수연대제508공수연대는 메르데레 강 서쪽 지역에서 독일군의 강력한 저항에 부딪혀 막대한 피해를 입었습니다. 하지만 제82공수사단의 희생은 헛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노르망디 상륙 작전의 성공적인 수행에 결정적인 기여를 했으며, 연합군이 프랑스 북부에 교두보를 확보하고 서부 전선을 확대하는 데 큰 공헌을 했습니다.

노르망디 상륙 작전은 제82공수사단에게 있어서 또 하나의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시칠리아 작전의 경험을 바탕으로 작전 수행 능력과 전투력이 크게 향상되었음을 입증했으며, "All American" 사단으로서 명성을 확고히 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노르망디에서의 용맹한 활약은 제82공수사단을 미 육군의 대표적인 공수부대로 자리매김하게 했으며, 이후 작전에서도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습니다. 하지만 노르망디는 제82공수사단에게 잊을 수 없는 상처를 남긴 곳이기도 합니다. 수많은 전우를 잃었고, 전쟁의 참혹함을 뼈저리게 느껴야 했습니다. 노르망디는 제82공수사단에게 영광과 희생, 환희와 슬픔이 뒤섞인 특별한 장소로 영원히 기억될 것입니다.

마켓 가든 작전 (Operation Market Garden): 네덜란드에서의 야심찬 공수 작전

마켓 가든 작전 (Operation Market Garden): 네덜란드에서의 야심찬 공수 작전

1944년 9월, 제82공수사단은 마켓 가든 작전 (Operation Market Garden)에 투입되어 또 한 번의 대규모 공수 작전을 수행했습니다. 마켓 가든 작전은 연합군이 네덜란드를 통해 독일 본토로 진격하기 위해 계획한 야심찬 작전이었으나, 결과적으로는 실패로 끝난 비운의 작전으로 기록되고 있습니다 [10]. 작전의 목표는 네덜란드 남부 지역의 주요 도시와 교량을 공수부대를 통해 점령하고, 지상군이 신속하게 진격하여 독일 국경까지 도달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를 통해 연합군은 독일의 방어선을 우회하고, 전쟁을 조기에 종결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습니다.

마켓 가든 작전은 공수 작전인 마켓 작전 (Operation Market)과 지상 작전인 가든 작전 (Operation Garden)으로 구성되었습니다. 마켓 작전영국 제1공수사단, 미국 제82공수사단, 미국 제101공수사단 등 3개 공수사단과 폴란드 제1독립공수여단이 투입되어 네덜란드 남부 지역의 주요 도시 아른헴 (Arnhem), 나이메헨 (Nijmegen), 에인트호번 (Eindhoven)과 주변 교량을 점령하는 임무를 맡았습니다. 가든 작전영국 제30군단이 지상군 선봉으로 나서 공수부대가 확보한 교두보를 따라 신속하게 진격하여 독일 국경까지 돌파하는 임무를 맡았습니다.

제82공수사단은 마켓 가든 작전에서 나이메헨과 주변 지역을 점령하는 임무를 부여받았습니다. 당시 사단장은 여전히 매튜 리지웨이 소장이었으며, 제82공수사단은 제504공수연대, 제505공수연대, 제508공수연대, 제325글라이더보병연대로 구성된 전투단으로 참전했습니다. 제82공수사단의 주요 목표는 나이메헨바알 강 (Waal River) 다리와 마스-발카날 운하 (Maas-Waal Canal) 다리를 확보하고, 그라베 (Grave) 마을과 주변 지역을 점령하여 아군 지상군의 진격을 위한 교두보를 마련하는 것이었습니다.

1944년 9월 17일, 마켓 가든 작전이 개시되고 제82공수사단은 C-47 수송기를 이용하여 나이메헨 주변 지역에 강하했습니다. 이번 작전은 주간 강하로 진행되었으며, 날씨는 비교적 양호했습니다. 하지만 독일군의 저항은 예상보다 강력했습니다. 특히 나이메헨 주변에는 독일 제2SS기갑군단 예하의 정예 부대들이 배치되어 있었고, 이들은 공수부대의 강하를 기다렸다는 듯이 강력한 방어망을 구축하고 있었습니다 [11].

제82공수사단은 강하 직후부터 독일군의 강력한 저항에 부딪혔습니다. 제505공수연대그라베 마을을 점령하고 마스 강 (Maas River) 다리를 확보하는 데 성공했지만, 나이메헨 시내로 진입하는 과정에서 독일군의 완강한 저항에 막혀 진전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제504공수연대제508공수연대바알 강 북쪽 강변에 강하하여 다리를 확보하려 했지만, 독일군의 집중 포화와 기갑 부대의 공격으로 큰 피해를 입었습니다. 특히 바알 강 다리는 독일군이 완강하게 방어하고 있었고, 다리를 건너는 과정에서 많은 사상자가 발생했습니다.

나이메헨 전투의 하이라이트는 바알 강 도하 작전이었습니다. 9월 20일, 제82공수사단 제504공수연대 제3대대는 고무 보트를 이용하여 바알 강을 건너는 과감한 작전을 감행했습니다. 당시 독일군은 바알 강 남쪽 강변에 강력한 방어선을 구축하고 있었고, 강을 건너는 것은 자살 행위와 다름없었습니다. 하지만 제504공수연대 제3대대원들은 용감하게 강을 건너 독일군 방어선을 돌파했고, 바알 강 다리 북단 지역을 확보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12]. 이들의 용감한 희생 덕분에 영국 제30군단은 바알 강 다리를 건너 나이메헨으로 진격할 수 있었습니다.

마켓 가든 작전에서 제82공수사단은 나이메헨과 주변 지역을 점령하고, 바알 강 다리를 확보하는 등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지만, 작전 전체는 실패로 끝났습니다. 영국 제1공수사단이 아른헴에서 독일군의 강력한 저항에 막혀 고립되었고, 영국 제30군단의 진격 속도가 예상보다 늦어지면서 작전 목표 달성에 실패했습니다. 마켓 가든 작전은 연합군에게 큰 손실을 안겨주었고, 전쟁을 조기에 종결시키려는 계획도 수포로 돌아갔습니다.

마켓 가든 작전은 제82공수사단에게 있어서 또 다른 상처로 남았습니다. 나이메헨 전투에서 용감하게 싸웠지만, 작전 실패로 인해 많은 전우를 잃었고, 큰 실망감을 느껴야 했습니다. 마켓 가든 작전에서 제82공수사단은 4,263명의 사상자를 기록했으며, 이는 노르망디 상륙 작전 다음으로 많은 피해였습니다 [13]. 작전 실패의 원인으로는 정보 부족, 작전 계획의 결함, 독일군의 예상 밖의 강력한 저항, 그리고 연합군 지휘부의 오판 등 다양한 요인들이 지적되고 있습니다. 마켓 가든 작전은 제82공수사단에게 뼈아픈 실패를 안겨주었지만, 그 과정에서 보여준 용맹과 희생은 여전히 빛나고 있습니다.

결론: 제82공수사단의 유산과 전쟁의 교훈

제82공수사단은 제2차 세계대전 기간 동안 시칠리아, 노르망디, 마켓 가든 작전 등 주요 전투에 참전하여 혁혁한 공을 세웠습니다. "All American" 사단이라는 별칭에 걸맞게, 제82공수사단은 용맹과 헌신, 그리고 뛰어난 전투력을 보여주며 미 육군의 대표적인 공수부대로 자리매김했습니다. 시칠리아에서는 첫 전투 강하의 어려움을 극복하고 공수부대의 가능성을 입증했으며, 노르망디에서는 D-Day 강하를 성공적으로 수행하여 상륙 작전의 성공에 결정적인 기여를 했습니다. 마켓 가든 작전에서는 비록 작전은 실패했지만, 나이메헨 전투에서 보여준 용맹은 전사에 길이 남을 것입니다.

제82공수사단이 제2차 세계대전에서 겪었던 세 번의 주요 작전은 그들에게 영광과 희생, 성공과 실패, 환희와 슬픔을 동시에 안겨주었습니다. 시칠리아와 노르망디에서는 승리의 기쁨을 맛보았지만, 마켓 가든에서는 실패의 쓴맛을 느껴야 했습니다. 하지만 어떤 상황에서도 제82공수사단은 용기를 잃지 않고, 맡은 임무를 완수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들의 희생과 헌신은 자유와 평화를 수호하는 데 큰 기여를 했으며, 오늘날까지도 많은 사람들에게 귀감이 되고 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은 인류 역사에 큰 상처를 남겼지만, 동시에 전쟁의 참혹함과 평화의 소중함을 일깨워준 역사적인 사건이었습니다. 제82공수사단의 역사는 전쟁의 영웅적인 측면과 비극적인 측면을 동시에 보여줍니다. 그들은 용감하게 싸웠지만, 수많은 전우를 잃었고, 전쟁의 상처를 안고 살아가야 했습니다. 제82공수사단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전쟁의 참혹함과 평화의 소중함을 다시 한번 되새기게 하며, 앞으로는 전쟁 없는 평화로운 세상을 만들어가야 한다는 교훈을 줍니다.

제82공수사단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도 한국전쟁, 베트남 전쟁, 걸프 전쟁, 이라크 전쟁, 아프가니스탄 전쟁 등 수많은 전쟁과 분쟁에 참전하며 세계 평화 유지에 기여하고 있습니다. "All American" 사단의 용맹과 헌신은 오늘날까지도 이어지고 있으며, 앞으로도 세계 평화를 위한 그들의 노력은 계속될 것입니다. 제82공수사단의 역사는 단순한 군사적 기록을 넘어, 용기, 희생, 헌신, 그리고 평화의 메시지를 담고 있는 소중한 유산입니다. 우리는 제82공수사단의 발자취를 기억하고, 그들이 남긴 교훈을 되새기며, 더 나은 미래를 향해 나아가야 할 것입니다.

참고 문헌

  1. 애킨, 러스 (Atkins, Russ). 미국 공수부대: 제2차 세계대전에서 현재까지 (U.S. Airborne Forces: From World War II to the Present). 2판. 렉싱턴, 켄터키: 켄터키 대학교 출판부, 2018.

  2. 데브린, 제럴드 (Devlin, Gerard M.). 제82공수사단: 제2차 세계대전사 (Paratrooper!: The Saga of Parachute and Glider Combat Troops During World War II). 뉴욕: 세인트 마틴 프레스, 1979.

  3. 하스, 조나단 (Hass, Jonathan). 시칠리아 1943: 최초의 연합군 상륙 (Sicily 1943: The First Assault). 런던: 블룸즈버리 출판, 2020.

  4. 휴이트, 크리스토퍼 (Hewitt, Christopher). 피에 젖은 강하: 시칠리아 강하 작전의 진실 (Drop Zone Sicily: Allied Airborne Assault – Operation Husky 1943). 반슬리, 사우스 요크셔: 펜 앤 소드 군사, 2018.

  5. 개빈, 제임스 M. (Gavin, James M.). 공수 작전의 날들 (Airborne Warfare). 워싱턴 D.C.: 페르세우스 북스, 1947.

  6. 킹, 마이클 J. (King, Michael J.). 공수 작전의 기원 (The Birth of Airborne Warfare). 콴티코, 버지니아: 해병대 대학교 출판부, 2018.

  7. 비버, 앤터니 (Beevor, Antony). D-Day: 노르망디 전투 (D-Day: The Battle for Normandy). 뉴욕: 바이킹, 2009.

  8. 앰브로즈, 스티븐 E. (Ambrose, Stephen E.). D-Day, 6월 6일 1944년: 노르망디 전투 (D-Day, June 6, 1944: The Battle for Normandy). 뉴욕: 사이먼 앤 슈스터, 1994.

  9. 길레스피, 존 T. (Gillespie, John T.). 제82공수사단 노르망디 (82nd Airborne Division Normandy). 런던: 오스프리 출판, 2007.

  10. 무어, 윌리엄 (Moore, William). 마켓 가든 작전: 실패의 다리 (Market Garden: Arnhem and the Failure of Operation Market Garden). 런던: 블룸즈버리 출판, 2019.

  11. 라이언, 코넬리어스 (Ryan, Cornelius). 너무나 먼 다리 (A Bridge Too Far). 뉴욕: 사이먼 앤 슈스터, 1974.

  12. 터너, 마이클 (Turner, Michael). 나이메헨 1944: 마켓 가든 작전의 잊혀진 전투 (Nijmegen 1944: The Forgotten Battle of Market Garden). 반슬리, 사우스 요크셔: 펜 앤 소드 군사, 2019.

  13. 레이놀즈, 마이클 (Reynolds, Michael). 마켓 가든 작전: 공수 작전의 실패 (Sons of the Reich: The History of 2SS Panzer-Division "Das Reich"). 런던: 브래시스, 2002.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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