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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세계 대전 초기 독일 폭격기의 선봉, 도르니어 Do 17 "나는 연필" 분석

날으는 연필: 도르니어 Do 17 폭격기의 초기 활약

서론: 얇고 날렵한 기체의 탄생

서론: 얇고 날렵한 기체의 탄생

제2차 세계 대전의 발발과 함께 하늘을 뒤덮었던 수많은 군용기 중에서도, 도르니어 Do 17 폭격기는 독특한 외형과 뛰어난 성능으로 널리 알려졌습니다. 특히 초기형 Do 17은 가늘고 긴 동체 덕분에 "나는 연필(Flying Pencil)"이라는 애칭으로 불리며, 그 날렵한 모습만큼이나 빠른 속도와 민첩성을 자랑했습니다 [1]. 이 기체는 독일 공군, 즉 루프트바페(Luftwaffe)의 주력 폭격기 중 하나로, 전쟁 초기의 주요 작전에 투입되어 맹활약하며 독일의 전격전(Blitzkrieg)을 하늘에서 지원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도르니어 Do 17의 이야기는 1930년대 초, 바이마르 공화국 시대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제1차 세계 대전의 패배 이후, 독일은 베르사유 조약에 의해 군비 증강에 심각한 제약을 받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독일의 항공 기술자들은 끊임없이 새로운 항공기 개발에 대한 열정을 불태웠고, 특히 민간 항공 분야에서 혁신적인 시도를 통해 기술력을 축적해 나가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시대적 배경 속에서 도르니어 항공사는 쾌속 우편기라는 명목으로 군용기의 개발을 은밀히 추진하게 됩니다 [2]. 이는 베르사유 조약의 감시를 피하면서도, 미래의 전쟁에 대비하기 위한 독일의 전략적인 선택이었습니다.

도르니어 Do 17의 개발을 주도한 인물은 클라우디우스 도르니어(Claudius Dornier)였습니다. 그는 금속제 항공기 설계의 선구자 중 한 명으로, 일찍이 금속 외피 구조의 잠재력을 간파하고 이를 항공기 설계에 적극적으로 도입했습니다. Do 17 역시 도르니어가 축적해 온 금속 항공기 설계 기술의 정점을 보여주는 기체였습니다. 알루미늄 합금을 주 재료로 사용하여 기체를 제작함으로써, Do 17은 당시로서는 획기적으로 가볍고 튼튼한 구조를 갖게 되었습니다 [3]. 이러한 경량 구조는 Do 17에게 뛰어난 속도와 상승력, 그리고 우수한 항속 거리를 제공하는 핵심적인 요소가 되었습니다.

초기 Do 17은 민간 항공기, 특히 쾌속 우편기로 위장하여 개발되었지만, 독일 공군은 이미 이 기체의 군사적 잠재력에 주목하고 있었습니다. 1933년 나치 정권이 들어서면서 독일의 재군비는 본격적으로 추진되었고, 루프트바페의 창설과 함께 Do 17은 폭격기로서의 운명을 맞이하게 됩니다. 1935년, Do 17의 군용기 버전이 처음으로 공개되었고, 그 날렵하고 세련된 디자인은 당시 항공 관계자들에게 깊은 인상을 심어주었습니다 [4]. 하지만 초기 프로토타입은 엔진 출력 부족과 방어 무장 미비 등 여러 문제점을 안고 있었고, 실전 배치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르니어 Do 17은 독일 공군의 기대를 한 몸에 받는 차세대 폭격기로 자리매김하게 됩니다. 얇고 날렵한 동체는 공기 저항을 최소화하여 당시 기준으로 매우 빠른 속도를 낼 수 있었고, 이는 적 전투기의 요격을 회피하는 데 유리할 것으로 예상되었습니다. 또한, Do 17은 쌍발 엔진을 탑재하여 단발 엔진 폭격기에 비해 더 많은 폭탄을 탑재하고 더 먼 거리를 작전할 수 있다는 장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잠재력 덕분에 Do 17은 루프트바페의 전력 증강 계획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고, 1930년대 후반부터 본격적인 양산 및 실전 배치가 이루어지게 됩니다.

개발 배경 및 설계 사상: 우편기에서 폭격기로

개발 배경 및 설계 사상: 우편기에서 폭격기로

도르니어 Do 17의 개발 배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1930년대 초 독일의 정치, 경제, 군사적 상황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제1차 세계 대전의 패전 이후, 독일은 베르사유 조약에 의해 육해공군 모든 분야에서 군비 증강이 엄격히 제한되었습니다. 특히 공군은 완전히 해체되었고, 군용기의 개발 및 생산은 금지되었습니다. 하지만 독일의 항공 기술자들은 이러한 제약 속에서도 민간 항공 분야를 중심으로 꾸준히 기술력을 축적해 나갔습니다. 글라이더 제작, 스포츠 항공기 개발, 그리고 민간 여객기 및 우편기 개발 등을 통해 항공 기술의 기반을 다져나갔던 것입니다 [5].

1930년대 초, 독일 국영 항공사인 루프트한자(Lufthansa)는 쾌속 우편 수송을 위한 새로운 항공기를 요구했습니다. 당시 우편 수송은 항공 산업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고, 빠르고 효율적인 우편 수송은 국가 경제 발전에도 기여할 수 있었습니다. 도르니어 사는 이러한 루프트한자의 요구에 부응하여 새로운 쌍발 항공기 개발에 착수하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도르니어 Do 17의 초기 개발 배경입니다. "Do"는 도르니어 항공사를, "17"은 개발 순서를 나타내는 기호였습니다.

도르니어 Do 17의 설계는 당시로서는 매우 혁신적인 개념을 담고 있었습니다. 클라우디우스 도르니어는 최대한 공기 저항을 줄이는 것에 설계의 초점을 맞추었습니다. 이를 위해 동체를 가늘고 길게 디자인하고, 기체의 단면적을 최소화하는 데 주력했습니다. 이러한 설계 철학은 Do 17의 독특한 외형, 즉 "나는 연필"이라는 별명의 유래가 되었습니다. 얇고 날렵한 동체는 공기 역학적으로 매우 효율적이었고, Do 17은 당시 다른 폭격기들에 비해 훨씬 빠른 속도를 낼 수 있었습니다.

Do 17의 초기 설계는 민간 우편기를 염두에 두고 있었기 때문에, 무장이나 방어 장비는 고려되지 않았습니다. 승무원은 조종사, 항법사, 무선 통신사 등 2~3명으로 구성되었고, 기체 내부는 우편물을 탑재하기 위한 공간으로 설계되었습니다. 엔진은 초기에는 BMW VI 엔진을 장착했지만, 이후 다양한 엔진으로 교체되었습니다. 날개는 고익 배치되었고, 주 날개는 금속 외피 구조로 제작되어 높은 강도와 경량화를 동시에 달성했습니다.

하지만 독일 공군은 Do 17의 개발 초기부터 이 기체의 군사적 잠재력에 주목하고 있었습니다. 1933년 나치 정권이 들어서면서 독일의 재군비가 본격화되자, 공군은 Do 17을 폭격기로 개조할 것을 도르니어 사에 요구했습니다. 도르니어 사는 이에 따라 Do 17의 설계를 변경하여 폭탄창을 추가하고, 방어 무장을 장착하는 등 군용기로서의 기능을 강화하기 시작했습니다. 민간 우편기로 개발되던 항공기가 군용 폭격기로 전환되는 역사적인 순간이었습니다.

Do 17의 폭격기 버전은 초기에는 Do 17E형으로 명명되었습니다. Do 17E형은 폭탄창에 500kg의 폭탄을 탑재할 수 있었고, 기수와 동체 후방에 7.92mm MG 15 기관총을 장착하여 제한적인 방어 능력을 갖추었습니다 [6]. 이후 Do 17은 지속적인 개량을 거쳐 다양한 파생형이 개발되었고, 각각 다른 엔진, 무장, 장비를 탑재하게 됩니다. 하지만 Do 17의 기본 설계 사상, 즉 얇고 날렵한 동체를 통한 고속 성능은 모든 파생형에 걸쳐 유지되었습니다. 이는 Do 17을 다른 폭격기와 차별화되는 독특한 특징으로 만들었고, "나는 연필"이라는 별명처럼, 하늘을 빠르게 가로지르는 날렵한 폭격기로서의 이미지를 각인시키는 데 기여했습니다.

초기 전력화 및 스페인 내전 참전: 실전 경험 축적

초기 전력화 및 스페인 내전 참전: 실전 경험 축적

도르니어 Do 17은 1930년대 중반부터 독일 공군에 본격적으로 인도되기 시작했습니다. 초기 배치된 기체는 주로 정찰 및 폭격 임무에 투입되었으며, 루프트바페의 전력 증강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습니다. 하지만 초기형 Do 17은 여러 기술적인 문제점을 안고 있었습니다. 엔진 출력이 부족하여 속도가 기대에 미치지 못했고, 방어 무장도 빈약하여 적 전투기의 공격에 취약하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또한, 조종 계통과 항법 장비 등에서도 개선의 여지가 많았습니다.

이러한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도르니어 사는 지속적인 개량을 추진했습니다. 엔진을 더 강력한 BMW 엔진으로 교체하고, 방어 무장을 강화하는 등 성능 향상을 위한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특히 Do 17E형 이후 개발된 Do 17M형브라모 323 엔진을 탑재하여 엔진 출력이 크게 향상되었고, 속도와 상승력이 개선되었습니다 [7]. 또한, 방어 무장도 강화되어 기수, 동체 후방, 그리고 동체 상부에 기관총이 추가되었습니다. Do 17M형은 Do 17 시리즈의 주력 폭격기 버전으로 자리매김하게 됩니다.

Do 17이 실전 무대에 처음으로 등장한 것은 스페인 내전이었습니다. 1936년 발발한 스페인 내전은 독일, 이탈리아 등 파시스트 국가들과 소련 등 공산주의 국가들이 각각 반군과 공화군을 지원하면서 국제적인 대리전 양상으로 전개되었습니다. 독일은 프랑코 장군이 이끄는 반군을 지원하기 위해 콘도르 군단(Condor Legion)을 파견했는데, 이 콘도르 군단에 Do 17 폭격기가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스페인 내전에 투입된 Do 17은 초기형인 Do 17E형정찰기형인 Do 17F형이었습니다. Do 17은 스페인 내전에서 지상 목표물 폭격, 근접 항공 지원, 그리고 정찰 임무 등 다양한 임무를 수행하며 실전 경험을 쌓았습니다. 특히 Do 17의 빠른 속도는 스페인 내전 당시 공화군이 운용하던 구식 전투기들의 요격을 회피하는 데 유리하게 작용했습니다. 하지만 Do 17의 방어 무장은 여전히 부족했고, 공화군 전투기의 공격에 손실을 입기도 했습니다.

스페인 내전 참전을 통해 Do 17은 실전에서 운용하면서 드러난 문제점을 파악하고 개선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습니다. 독일 공군은 스페인 내전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Do 17의 방어 무장을 더욱 강화하고, 폭탄 탑재량과 항속 거리를 늘리는 등 지속적인 개량을 추진했습니다. 또한, 스페인 내전은 독일 공군에게 전술 폭격의 중요성을 깨닫게 해주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Do 17은 스페인 내전에서 전술 폭격 임무에 투입되어 적의 보급로를 차단하고, 지상군의 진격을 지원하는 등 효과적인 활약을 펼쳤습니다. 이는 이후 제2차 세계 대전 초기 독일군의 전격전 전술의 핵심적인 부분을 구성하게 됩니다.

스페인 내전에서 Do 17은 성능 면에서 긍정적인 평가와 부정적인 평가를 동시에 받았습니다. 빠른 속도와 안정적인 비행 성능은 높이 평가되었지만, 빈약한 방어 무장과 부족한 폭탄 탑재량은 개선해야 할 부분으로 지적되었습니다. 특히 Do 17의 방어 무장은 당시 전투기들의 공격에 충분히 대응하기 어려웠고, 이는 Do 17의 생존성을 낮추는 요인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스페인 내전 참전은 Do 17에게 귀중한 실전 경험을 제공했고, 루프트바페는 이 경험을 바탕으로 Do 17을 더욱 발전시켜 제2차 세계 대전 초기의 주력 폭격기로 활용하게 됩니다.

제2차 세계 대전 초기 활약: 폴란드, 프랑스, 그리고 영국 본토 항공전

제2차 세계 대전 초기 활약: 폴란드, 프랑스, 그리고 영국 본토 항공전

1939년 9월 1일, 독일의 폴란드 침공으로 제2차 세계 대전이 발발했습니다. 도르니어 Do 17은 개전 초부터 루프트바페의 주력 폭격기로서 전격전의 선봉에 섰습니다. 폴란드 침공 당시, 루프트바페는 약 200여 대의 Do 17 폭격기를 투입하여 폴란드군의 주요 거점, 보급로, 그리고 공군 기지 등을 맹렬하게 폭격했습니다 [8]. Do 17의 빠른 속도와 기동성은 폴란드 공군의 전투기들을 압도했고, 독일 공군은 제공권을 장악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폴란드 침공 작전에서 Do 17은 주로 전술 폭격 임무를 수행했습니다. 독일 기갑 부대의 진격에 앞서 폴란드군의 방어선을 폭격하고, 폴란드군의 저항 거점을 파괴하는 데 투입되었습니다. 또한, Do 17은 폴란드군의 후방 보급로를 차단하고, 폴란드군의 기동력을 저하시키는 데에도 큰 역할을 했습니다. 급강하 폭격기인 융커스 Ju 87 슈투카와 함께 Do 17은 폴란드 침공 작전에서 독일군의 승리에 결정적인 기여를 했습니다.

1940년 5월, 독일은 프랑스와 베네룩스 3국을 침공했습니다. 프랑스 침공 작전에서도 Do 17은 루프트바페의 주력 폭격기로서 맹활약했습니다. 프랑스 침공 당시, 루프트바페는 약 300여 대의 Do 17 폭격기를 투입하여 프랑스군의 주요 방어선, 공군 기지, 그리고 산업 시설 등을 폭격했습니다 [9]. Do 17은 프랑스 침공 작전에서도 전술 폭격과 함께 전략 폭격 임무를 수행했습니다. 프랑스군의 주요 도시와 항구를 폭격하여 프랑스의 전쟁 수행 능력을 약화시키는 데 기여했습니다.

프랑스 침공 작전에서 Do 17은 영국 공군의 전투기와 처음으로 본격적인 공중전을 벌였습니다. 프랑스 북부에 전개한 영국 공군 전투기들은 Do 17 폭격기를 요격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나섰습니다. Do 17의 빠른 속도는 영국 전투기들의 요격을 어렵게 만들었지만, 영국 전투기들은 뛰어난 기동성과 화력을 바탕으로 Do 17에게 상당한 손실을 입혔습니다. 특히 호커 허리케인 전투기스핏파이어 전투기는 Do 17에게 위협적인 존재였습니다.

프랑스 침공 이후, 독일은 영국 본토 침공 작전, 즉 바다사자 작전(Operation Sea Lion)을 계획했습니다. 바다사자 작전을 실행하기 위해서는 영국 해군과 공군을 무력화시키는 것이 필수적이었고, 이를 위해 루프트바페는 영국 본토를 맹렬하게 폭격하기 시작했습니다. 1940년 8월부터 시작된 영국 본토 항공전(Battle of Britain)은 Do 17에게 또 다른 시련을 안겨주었습니다.

영국 본토 항공전에서 Do 17은 주로 주간 폭격 임무에 투입되었습니다. 영국의 공군 기지, 항공기 공장, 그리고 주요 산업 시설 등을 폭격하는 것이 목표였습니다. 하지만 영국 본토는 강력한 방공망과 숙련된 전투기 조종사들을 보유하고 있었고, Do 17은 영국 전투기들의 집중적인 요격에 직면했습니다. 특히 스핏파이어 전투기는 Do 17보다 빠른 속도와 뛰어난 기동성을 자랑하며 Do 17에게 큰 피해를 입혔습니다.

영국 본토 항공전은 Do 17의 한계를 여실히 드러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Do 17의 빈약한 방어 무장은 영국 전투기들의 공격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어려웠고, 폭탄 탑재량도 다른 폭격기에 비해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또한, Do 17은 주간 폭격 임무에 투입되면서 영국 방공망의 레이더에 쉽게 포착되었고, 이는 요격률을 높이는 요인이 되었습니다. 영국 본토 항공전에서 Do 17은 상당한 손실을 입었고, 루프트바페는 주간 폭격 작전의 효율성에 의문을 품게 되었습니다.

영국 본토 항공전 이후, Do 17은 주력 폭격기로서의 역할을 점차 잃어갔습니다. 루프트바페는 Do 17보다 더 강력한 성능을 가진 새로운 폭격기, 예를 들어 융커스 Ju 88하인켈 He 111 등을 개발하여 전력화하기 시작했습니다. Do 17은 이후 야간 폭격, 정찰, 그리고 훈련 임무 등으로 역할이 축소되었고, 동부 전선과 지중해 전선 등에서도 제한적으로 사용되었습니다. 하지만 Do 17은 제2차 세계 대전 초기, 특히 폴란드 침공과 프랑스 침공 작전에서 루프트바페의 전격전을 지원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했으며, "나는 연필"이라는 별명처럼, 전쟁 초기의 하늘을 누볐던 날렵한 폭격기로 역사에 기록되었습니다.

기술적 특징 및 진화: 다양한 파생형의 등장

기술적 특징 및 진화: 다양한 파생형의 등장

도르니어 Do 17은 다양한 파생형이 개발되면서 기술적으로 꾸준히 진화했습니다. 초기형인 Do 17E형부터 최종형인 Do 17Z형까지, 엔진, 무장, 장비 등 여러 면에서 개선이 이루어졌습니다. Do 17의 기술적 특징과 진화 과정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1. 엔진: Do 17은 다양한 엔진을 탑재했습니다. 초기 프로토타입은 BMW VI 엔진을 사용했지만, 양산형은 BMW VI 7.3 엔진으로 교체되었습니다. Do 17E형과 F형은 BMW VI 6.3 엔진을 사용했고, Do 17M형은 브라모 323 엔진을 탑재하여 엔진 출력을 크게 향상시켰습니다 [10]. Do 17P형은 BMW 132 엔진을 사용했고, Do 17Z형은 브라모 323P 엔진을 탑재하여 최종적으로 엔진 성능을 극대화했습니다. 엔진의 변화는 Do 17의 속도, 상승력, 항속 거리 등 비행 성능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습니다.

2. 무장: Do 17의 무장은 초기에는 매우 빈약했습니다. Do 17E형은 기수와 동체 후방에 7.92mm MG 15 기관총 2정을 장착하는 것이 전부였습니다. 하지만 실전 경험을 통해 방어 무장의 필요성이 강조되면서, Do 17의 무장은 점차 강화되었습니다. Do 17M형은 기수, 동체 후방, 동체 상부에 MG 15 기관총을 추가하여 총 4정의 기관총을 장착했습니다. Do 17Z형은 MG 15 기관총 대신 MG 17 기관총으로 교체하고, 기관총의 숫자도 최대 7정까지 늘려 방어 능력을 크게 향상시켰습니다 [11]. 또한, Do 17Z형은 기수에 20mm MG FF 기관포를 장착한 버전도 개발되어 공격력도 강화되었습니다.

3. 폭탄 탑재량: Do 17의 초기 폭탄 탑재량은 500kg이었습니다. 이는 당시 다른 폭격기에 비해 부족한 수준이었지만, Do 17은 빠른 속도와 기동성을 바탕으로 폭탄 탑재량의 부족함을 극복하려고 했습니다. Do 17M형과 P형은 폭탄 탑재량을 1,000kg으로 늘렸고, Do 17Z형은 최대 1,000kg 또는 1,800kg까지 폭탄을 탑재할 수 있도록 개량되었습니다. 폭탄 탑재량 증가는 Do 17의 폭격 능력을 향상시키는 데 기여했지만, 여전히 다른 중폭격기에 비하면 부족한 수준이었습니다.

4. 항법 및 통신 장비: Do 17은 초기에는 기본적인 항법 및 통신 장비만을 탑재했습니다. 하지만 전쟁이 진행되면서 항법 장비와 통신 장비의 중요성이 커지자, Do 17은 점차 현대적인 장비들을 탑재하게 됩니다. 라디오 방향 탐지기(RDF), 자동 조종 장치, 그리고 개량된 무선 통신 장비 등이 Do 17에 장착되어 야간 및 악천후 속에서의 작전 수행 능력을 향상시켰습니다. 특히 Do 17Z-2형은 FuG 200 호엔트빌(Hohentwiel) 해상 탐색 레이더를 장착하여 대함 공격 능력을 강화하기도 했습니다 [12].

5. 기체 구조: Do 17은 전금속제 구조를 채택하여 경량화와 강도 향상을 동시에 추구했습니다. 주요 구조재는 두랄루민 합금을 사용했고, 외피는 알루미늄 합금판을 리벳으로 접합하는 방식으로 제작되었습니다. Do 17의 얇고 날렵한 동체는 공기 저항을 최소화하여 고속 성능을 확보하는 데 기여했지만, 동시에 내부 공간이 좁아 폭탄 탑재량과 연료 탑재량에 제약을 주기도 했습니다. 날개는 고익 배치되었고, 주 날개는 캔틸레버식 구조로 설계되어 외부 지지대 없이 날개 자체의 강도로 하중을 지탱했습니다.

Do 17은 다양한 파생형이 개발되었는데, 주요 파생형은 다음과 같습니다.

  • Do 17E: 초기 폭격기형, BMW VI 엔진 탑재, 500kg 폭탄 탑재, 7.92mm 기관총 2정.

  • Do 17F: 정찰기형, Do 17E형 기반, 카메라 장착, 무장 경감.

  • Do 17M: 주력 폭격기형, 브라모 323 엔진 탑재, 1,000kg 폭탄 탑재, 7.92mm 기관총 4정.

  • Do 17P: 정찰기형, Do 17M형 기반, BMW 132 엔진 탑재, 카메라 및 통신 장비 강화.

  • Do 17S/U: 고속 정찰기형, DB 600 엔진 탑재, 특수 정찰 장비 장착, 소수 생산.

  • Do 17Z: 최종 폭격기형, 브라모 323P 엔진 탑재, 1,000kg~1,800kg 폭탄 탑재, 7.92mm 기관총 최대 7정, 20mm 기관포 장착 가능.

  • Do 215: Do 17Z의 개량형, DB 601 엔진 탑재, 폭격기, 야간 전투기, 정찰기 등 다양한 용도로 사용.

Do 17은 다양한 파생형을 통해 지속적으로 성능을 향상시켜 나갔지만, 기본적인 설계 사상의 한계로 인해 제2차 세계 대전 중반 이후에는 주력 폭격기로서의 역할을 잃게 됩니다. 하지만 Do 17은 전쟁 초기 루프트바페의 핵심 전력으로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으며, 독일 공군의 전격전 전술을 하늘에서 지원하는 데 크게 기여했습니다.

결론: "나는 연필"의 유산과 한계

결론: "나는 연필"의 유산과 한계

도르니어 Do 17은 "나는 연필"이라는 애칭처럼, 날렵한 외형과 빠른 속도를 자랑했던 독일 공군의 대표적인 폭격기였습니다. 1930년대 중반 개발되어 스페인 내전을 거쳐 제2차 세계 대전 초기에 맹활약하며 독일의 전격전을 하늘에서 지원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폴란드 침공, 프랑스 침공 등 주요 작전에서 Do 17은 전술 폭격 임무를 성공적으로 수행하며 독일군의 승리에 기여했습니다.

Do 17의 가장 큰 장점은 뛰어난 속도와 기동성이었습니다. 얇고 날렵한 동체와 강력한 엔진 덕분에 Do 17은 당시 다른 폭격기들에 비해 훨씬 빠른 속도를 낼 수 있었고, 이는 적 전투기의 요격을 회피하는 데 유리하게 작용했습니다. 또한, Do 17은 쌍발 엔진을 탑재하여 단발 엔진 폭격기에 비해 더 많은 폭탄을 탑재하고 더 먼 거리를 작전할 수 있다는 장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전금속제 구조는 기체의 경량화와 강도 향상에 기여했고, Do 17은 안정적인 비행 성능을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Do 17은 몇 가지 뚜렷한 한계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가장 큰 문제점은 빈약한 방어 무장이었습니다. 초기형 Do 17은 기관총 2정만을 장착하여 적 전투기의 공격에 취약했고, 방어 무장이 강화된 후에도 여전히 다른 폭격기에 비해 방어 능력이 부족했습니다. 부족한 폭탄 탑재량도 Do 17의 단점으로 지적되었습니다. Do 17의 폭탄 탑재량은 다른 중폭격기에 비해 적었고, 이는 Do 17의 폭격 효율성을 떨어뜨리는 요인이 되었습니다. 또한, Do 17의 좁은 내부 공간은 폭탄 탑재량과 연료 탑재량 증가에 제약을 주었고, 추가 장비 장착에도 어려움을 야기했습니다.

영국 본토 항공전은 Do 17의 한계를 명확하게 드러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영국 전투기들의 강력한 요격에 Do 17은 큰 손실을 입었고, 주간 폭격 작전의 효율성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었습니다. 영국 본토 항공전 이후, Do 17은 주력 폭격기로서의 역할을 점차 잃어갔고, 새로운 폭격기들에게 자리를 내주게 됩니다. 하지만 Do 17은 전쟁 초기 루프트바페의 중요한 전력으로서, 독일 공군의 전격전 전술을 성공적으로 수행하는 데 기여했으며, 제2차 세계 대전 초기의 항공 전사를 장식하는 상징적인 기체 중 하나로 기억될 것입니다.

참고문헌

  1. Smith, J.R., & Kay, A.L. (1990). German Aircraft of the Second World War. Putnam Aeronautical Books.

  2. Green, W. (1972). Warplanes of the Second World War, Volume Nine: Bombers and Reconnaissance Aircraft. Macdonald.

  3. Jackson, R. (2002). Warplanes of World War II. Grange Books.

  4. Donald, D. (Ed.). (1994). Warplanes of the Luftwaffe. Aerospace Publishing.

  5. Macksey, K. (1980). Luftwaffe. Ballantine Books.

  6. Hooton, E.R. (1994). Luftwaffe at War; Blitzkrieg in the West 1939-1940. Chevron/Ian Allan.

  7. Murray, W., & Millett, A.R. (2000). A War To Be Won: Fighting the Second World War. Belknap Press.

  8. Corum, J.S. (1997). The Luftwaffe: Creating the Operational Air War, 1918-1940. University Press of Kansas.

  9. Griehl, M., & Dressel, J. (1990). Heinkel He 111: A Documentary History. Airlife Publishing.

  10. Forsyth, R. (2018). Dornier Do 17/215: Flying Pencil at War. Osprey Publishing.

  11. Weal, J. (1997). Luftwaffe Bomber Aces. Osprey Publishing.

  12. Bowman, M.W. (2005). Luftwaffe Bombers in the Battle of Britain. Pen & Sword Aviation.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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