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 세계 대전 폭격기 기술의 발전과 전략 폭격의 영향: 역사적 교훈과 현대 공군력에의 유산
전략 폭격의 시대: 2차 대전 폭격기 기술의 발전
2차 세계 대전은 인류 역사상 가장 파괴적인 전쟁이었으며, 이 전쟁은 전례 없는 기술 발전과 군사 전략의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특히, 전략 폭격은 전쟁의 양상을 근본적으로 바꾸어 놓았으며, 이를 가능하게 한 것은 바로 폭격기 기술의 혁신적인 발전이었습니다. 제1차 세계 대전까지만 해도 폭격기는 제한적인 역할만을 수행했지만, 2차 대전이 발발하면서 폭격기는 단순한 전술 지원을 넘어 적의 전쟁 수행 능력을 직접적으로 파괴하는 전략 무기로 자리매김하게 되었습니다. 본 보고서는 2차 세계 대전 기간 동안 전략 폭격의 개념이 어떻게 발전했으며, 이를 뒷받침한 폭격기 기술의 주요 혁신들을 심층적으로 분석하고자 합니다. 특히, 폭격기의 성능 향상, 항법 및 조준 기술의 발전, 방어 무기의 강화, 그리고 폭격 전략의 변화를 구체적인 통계 자료와 함께 상세히 논하며, 이 모든 기술적 진보가 전쟁의 흐름에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지 심도 있게 논할 것입니다. 또한, 역사적 사건의 배경과 스토리를 유기적으로 연결하여 독자들의 몰입도를 높이고, 2차 대전 전략 폭격의 시대가 갖는 역사적 의미를 명확히 전달하고자 합니다. 최신 학술 자료와 권위 있는 연구 논문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내용의 전문성과 신뢰성을 확보하고, 독자들에게 깊이 있는 통찰력을 제공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2차 대전 발발 이전 폭격기 기술의 태동과 전략 폭격 개념의 부상
2차 세계 대전 이전, 폭격기 기술은 아직 초기 단계에 머물러 있었지만, 이미 전략 폭격의 잠재력에 대한 인식이 점차 확산되고 있었습니다. 제1차 세계 대전 당시, 폭격기는 주로 전선 후방의 군사 시설이나 보급로를 공격하는 전술적인 역할에 국한되었습니다. 당시 폭격기들은 항속 거리와 폭탄 탑재량이 제한적이었고, 항법 및 조준 기술 또한 매우 미흡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1차 세계 대전 중 독일의 체펠린 비행선과 고타 폭격기를 이용한 런던 폭격은 전략 폭격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중요한 사례로 기록되었습니다. 비록 그 피해 규모는 제한적이었지만, 적의 핵심 지역을 직접 타격하여 전쟁 의지를 꺾을 수 있다는 개념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컸습니다.
전간기(Interwar period)에 들어서면서, 이탈리아의 군사 이론가 줄리오 두헤(Giulio Douhet)는 공군력 중심의 군사 전략을 주창하며 전략 폭격의 개념을 더욱 발전시켰습니다. 두헤는 그의 저서 "공군력(The Command of the Air)" (1921)에서 미래 전쟁은 공군력에 의해 결정될 것이며, 특히 적의 산업 시설, 교통망, 그리고 주요 도시를 폭격하여 전쟁 수행 능력을 마비시키는 전략 폭격이 핵심적인 역할을 할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1]. 그는 대규모 폭격 편대를 이용하여 적의 방공망을 압도하고, 도시 전체를 초토화시키는 '무제한 폭격(unrestricted bombing)'을 통해 단기간에 전쟁의 승패를 결정지을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두헤의 이론은 당시 각국 공군력 건설에 큰 영향을 미쳤으며, 특히 영국과 미국은 전략 폭격 중심의 공군력 건설에 박차를 가하게 되었습니다.
1930년대에 들어서면서, 미국의 육군 항공대 전술 학교(Air Corps Tactical School)를 중심으로 정밀 폭격(precision bombing) 개념이 발전하기 시작했습니다. 정밀 폭격은 군사 목표물만을 정확하게 타격하여 민간인 피해를 최소화하고, 전쟁의 효율성을 높이는 것을 목표로 했습니다. 이는 두헤의 무차별 폭격과는 대조적인 개념이었지만, 당시 기술 수준으로는 정밀 폭격의 실현 가능성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었습니다. 그러나 미국의 육군 항공대는 노든(Norden) 폭격 조준기와 같은 첨단 기술 개발에 투자하며 정밀 폭격 능력을 향상시키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이처럼 2차 대전 발발 이전에는 전략 폭격의 개념이 무차별 폭격과 정밀 폭격이라는 두 가지 방향으로 발전하고 있었으며, 각국은 자국의 전략적 목표와 기술 수준에 맞춰 폭격기 개발과 폭격 전략 수립에 매진하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2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면서, 전략 폭격은 실제로 전쟁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게 되었고, 폭격기 기술은 전쟁의 승패를 가르는 핵심 요소로 부상하게 되었습니다.
2차 대전 초기 폭격기 기술의 한계와 전술적 운용의 시행착오 (1939-1941)
2차 세계 대전 초기(1939-1941)는 폭격기 기술과 전략 폭격 운용에 있어 시행착오가 두드러졌던 시기였습니다. 전쟁 발발 당시, 각국 공군은 전략 폭격의 잠재력은 인식하고 있었지만, 실제 폭격 작전 수행 능력은 아직 미흡한 수준이었습니다. 특히, 폭격기의 성능, 항법 및 조준 기술, 방어 능력 등 여러 면에서 기술적인 한계가 뚜렷했습니다.
전쟁 초기에 독일 공군은 급강하 폭격기인 융커스 Ju 87 슈투카(Junkers Ju 87 Stuka)를 전격전(Blitzkrieg)의 핵심 무기로 활용하여 큰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슈투카는 급강하하며 목표물을 정확하게 폭격하는 능력이 뛰어났지만, 속도가 느리고 방어력이 취약하여 제공권이 확보되지 않은 상황에서는 쉽게 격추될 수 있다는 단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또한, 독일 공군은 쌍발 폭격기인 도르니에 Do 17(Dornier Do 17), 하인켈 He 111(Heinkel He 111), 융커스 Ju 88(Junkers Ju 88) 등을 운용했지만, 이들 폭격기는 항속 거리와 폭탄 탑재량이 제한적이어서 장거리 전략 폭격 임무에는 적합하지 않았습니다. 1940년 영국 본토 항공전(Battle of Britain) 당시, 독일 공군은 이들 폭격기를 이용하여 영국 본토의 군사 시설과 도시를 폭격했지만, 영국 공군의 강력한 저항과 폭격기 자체의 기술적 한계로 인해 전략적 목표 달성에 실패했습니다.
영국 공군은 전쟁 초기부터 전략 폭격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중폭격기를 개발하고 운용했지만, 초기 모델들은 성능 면에서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었습니다. 암스트롱 휘트워스 휘틀리(Armstrong Whitworth Whitley), 핸들리 페이지 햄프턴(Handley Page Hampden), 비커스 웰링턴(Vickers Wellington) 등의 영국 중폭격기는 항속 거리는 비교적 길었지만, 폭탄 탑재량이 적고 방어 무장이 빈약했습니다. 특히, 야간 폭격 위주로 작전을 수행하면서 항법 및 조준의 어려움이 더욱 두드러졌습니다. 1940년대 초, 영국 공군은 독일의 산업 시설과 도시를 야간 폭격했지만, 폭격의 정확도가 매우 낮아 전략적 효과는 미미했습니다. 예를 들어, 1940년 12월 16일, 영국 공군은 독일 만하임(Mannheim)을 폭격했지만, 폭탄의 대부분이 목표 지점에서 벗어나 도시 외곽에 떨어졌으며, 실제 군사적 피해는 거의 없었습니다 [2].
미국은 2차 대전 참전 이전부터 전략 폭격 능력을 강화하기 위해 보잉 B-17 플라잉 포트리스(Boeing B-17 Flying Fortress)와 같은 4발 중폭격기 개발에 힘썼습니다. B-17은 높은 고도에서 장거리 비행이 가능하고, 강력한 방어 무장을 갖추고 있어 당시로서는 혁신적인 폭격기였습니다. 그러나 전쟁 초기, B-17은 아직 실전 경험이 부족했고, 정밀 폭격에 필요한 항법 및 조준 기술도 완벽하지 않았습니다. 1941년 미국이 2차 대전에 참전한 이후, B-17은 유럽 전선에 투입되어 독일 본토 폭격에 나섰지만, 초기 작전에서는 많은 손실을 입었습니다. 특히, 독일 전투기의 요격과 대공포화에 취약점을 드러내면서, 주간 정밀 폭격의 어려움이 현실로 나타났습니다.
이처럼 2차 대전 초기 폭격기 기술은 여러 가지 한계점을 가지고 있었으며, 전략 폭격 작전 또한 시행착오를 거듭했습니다. 폭격기의 성능 부족, 항법 및 조준 기술의 미흡, 방어 능력의 취약성 등은 초기 전략 폭격의 효과를 제한하는 주요 요인으로 작용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초기 경험은 폭격기 기술 발전을 가속화하고, 보다 효과적인 전략 폭격 운용 방법을 모색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폭격기 기술의 비약적 발전과 전략 폭격의 본격화 (1942-1943)
1942년부터 1943년은 2차 대전 전략 폭격의 역사에서 중요한 전환점이 되는 시기입니다. 이 기간 동안 폭격기 기술은 비약적으로 발전했고, 연합군은 전략 폭격 작전을 본격적으로 전개하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4발 중폭격기의 발전과 항법 및 조준 기술의 혁신은 전략 폭격의 효율성을 크게 향상시켰습니다.
미국은 B-17 플라잉 포트리스의 성능을 지속적으로 개선하고, B-24 리버레이터(Consolidated B-24 Liberator)와 같은 새로운 4발 중폭격기를 개발하여 폭격기 전력을 대폭 강화했습니다. B-17은 고고도 주간 정밀 폭격에 특화된 폭격기로, 노든 폭격 조준기를 통해 높은 명중률을 자랑했습니다. B-24는 B-17보다 항속 거리가 길고 폭탄 탑재량이 많아 장거리 폭격 임무에 적합했습니다. B-17G 모델의 경우, 13정의 12.7mm 기관총을 장착하여 방어력을 크게 강화했으며, B-24J 모델은 엔진 출력을 향상시키고 폭탄 탑재량을 최대 3,600kg까지 늘려 작전 능력을 향상시켰습니다 [3]. 1943년, 미국 8 공군은 B-17과 B-24를 주력으로 독일 본토에 대한 주간 정밀 폭격을 본격적으로 시작했습니다.
영국은 아브로 랭카스터(Avro Lancaster)와 같은 강력한 4발 중폭격기를 개발하여 야간 폭격 능력을 강화했습니다. 랭카스터는 뛰어난 폭탄 탑재량을 자랑하며, 특히 그랜드 슬램(Grand Slam)과 같은 초대형 폭탄을 투하할 수 있도록 설계되었습니다. 랭카스터는 야간 폭격 시 항법 정확도를 높이기 위해 GEE, Oboe, H2S 레이더와 같은 첨단 항법 장비를 탑재했으며, 이를 통해 독일의 주요 산업 시설과 도시를 효과적으로 폭격할 수 있었습니다. 1943년 7월, 영국 공군은 랭카스터 폭격기를 동원하여 독일 함부르크(Hamburg)에 대한 대규모 화염 폭격을 감행하여 도시 전체를 잿더미로 만들었습니다 (함부르크 화재 폭풍, Operation Gomorrah). 이 작전은 전략 폭격의 파괴력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례로 기록되었습니다.
항법 및 조준 기술의 발전 또한 전략 폭격의 성공에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노든 폭격 조준기는 주간 정밀 폭격의 핵심 기술이었으며, 고고도에서 목표물을 정확하게 조준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노든 폭격 조준기는 복잡한 기계식 컴퓨터와 자이로스코프 안정 장치를 이용하여 폭격기의 속도, 고도, 바람, 지구 자전 등의 요소를 자동으로 계산하여 폭탄 투하 시점을 결정했습니다. H2S 레이더는 야간이나 악천후 속에서도 지형지물을 탐지하여 항법 및 목표물 식별을 가능하게 했습니다. H2S 레이더는 지표면의 반사파를 분석하여 지도와 유사한 영상을 제공함으로써, 야간 폭격의 정확도를 크게 향상시켰습니다.
1942년부터 1943년까지 폭격기 기술의 발전과 함께 전략 폭격의 개념 또한 더욱 구체화되었습니다. 연합군은 '디하우징(Dehousing)' 전략을 통해 독일 노동자들의 주거 지역을 파괴하여 전쟁 생산 능력을 약화시키고, 사기를 저하시키는 것을 목표로 삼았습니다. 이는 두헤의 무차별 폭격 이론의 영향을 받은 전략이었지만, 실제로는 군수 공장, 교통 시설, 유류 시설 등 군사적 목표물과 민간인 거주 지역을 구분하지 않고 폭격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이러한 폭격 전략은 독일 국민들에게 막대한 피해를 입혔지만, 독일의 전쟁 수행 의지를 완전히 꺾지는 못했습니다.
전략 폭격의 절정과 윤리적 논쟁 (1944-1945)
1944년부터 1945년은 2차 대전 전략 폭격이 절정에 달했던 시기이자, 동시에 그 윤리적 문제에 대한 논쟁이 심화되었던 시기입니다. 연합군은 압도적인 공군력을 바탕으로 독일 본토에 대한 전략 폭격을 더욱 강화했으며, 그 강도와 파괴력은 이전 시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커졌습니다. 하지만, 무차별 폭격으로 인한 민간인 피해가 급증하면서 전략 폭격의 정당성에 대한 비판적인 목소리도 높아졌습니다.
1944년, 미국 8 공군은 P-51 머스탱(North American P-51 Mustang)과 같은 장거리 호위 전투기의 개발과 대량 생산에 성공하면서, 주간 정밀 폭격 작전의 효율성을 극대화했습니다. P-51 머스탱은 뛰어난 속도와 기동성, 그리고 긴 항속 거리를 바탕으로 폭격기 편대를 독일 본토 깊숙이까지 호위하며 독일 전투기의 요격으로부터 보호했습니다. P-51의 등장으로 인해, 미국 폭격기들은 이전보다 훨씬 안전하게 주간 폭격 임무를 수행할 수 있게 되었고, 독일 공군의 전투기 요격 전력은 점차 약화되었습니다. 1944년 2월 20일부터 25일까지 진행된 '빅 위크(Big Week)' 작전은 미국 8 공군의 주간 정밀 폭격 능력을 과시하는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이 작전에서 미국 폭격기들은 독일 전투기 생산 공장을 집중적으로 폭격하여 독일 공군의 전투기 생산 능력을 크게 감소시켰습니다 [4].
영국 공군은 야간 폭격 능력을 더욱 강화하여 독일 도시에 대한 무차별 폭격을 지속적으로 감행했습니다. 특히, 아더 해리스(Arthur Harris) 공군 원수가 이끄는 영국 공군 폭격기 사령부는 '지역 폭격(Area Bombing)' 전략을 적극적으로 추진하여 독일 도시 전체를 초토화시키는 것을 목표로 삼았습니다. 1945년 2월 13일부터 15일까지 진행된 드레스덴 폭격(Bombing of Dresden)은 지역 폭격 전략의 극단적인 사례로 꼽힙니다. 영국 공군은 드레스덴에 소이탄과 고폭탄을 집중적으로 투하하여 도시 전체를 화염에 휩싸이게 만들었고, 수만 명의 민간인이 사망했습니다. 드레스덴 폭격은 군사적 정당성에 대한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으며, 전략 폭격의 윤리적 문제점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건으로 평가됩니다.
미국은 태평양 전쟁에서도 전략 폭격을 적극적으로 활용했습니다. 보잉 B-29 슈퍼포트리스(Boeing B-29 Superfortress)는 2차 대전 기간 동안 개발된 최첨단 4발 중폭격기로, 긴 항속 거리와 높은 고도에서 폭격이 가능했습니다. B-29는 일본 본토 폭격 임무에 투입되어 일본 주요 도시에 대한 대규모 소이탄 폭격을 감행했습니다. 1945년 3월 9일부터 10일까지 진행된 도쿄 대공습(Bombing of Tokyo)은 B-29의 화력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이 작전에서 미국 폭격기들은 도쿄 시내에 소이탄을 집중적으로 투하하여 도시의 상당 부분을 잿더미로 만들었고, 약 10만 명의 민간인이 사망했습니다. 도쿄 대공습과 히로시마, 나가사키 원폭 투하는 전략 폭격의 파괴력이 극에 달했음을 보여주는 사건들이었습니다.
전략 폭격은 2차 대전의 승리에 기여한 측면이 분명히 존재합니다. 독일과 일본의 군수 산업 시설, 교통망, 유류 시설 등을 파괴하여 전쟁 수행 능력을 약화시키고, 국민들의 사기를 저하시키는 데 일정 부분 성공했습니다. 하지만, 무차별 폭격으로 인한 막대한 민간인 피해는 전략 폭격의 윤리적 정당성에 대한 심각한 문제를 제기했습니다. 전쟁 이후, 전략 폭격의 효과와 윤리성에 대한 논쟁은 끊이지 않고 있으며, 현대 전쟁에서도 전략 폭격의 역할과 한계에 대한 논의는 계속되고 있습니다.
2차 대전 폭격기 기술 발전의 유산과 현대 공군력에 미친 영향
2차 세계 대전 기간 동안 폭격기 기술은 눈부신 발전을 이루었으며, 이는 전후 공군력 발전과 현대 항공 기술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습니다. 2차 대전 당시 축적된 폭격기 설계 기술, 엔진 기술, 항법 및 조준 기술, 방어 무기 기술 등은 전후 제트 폭격기 개발과 미사일 기술 발전에 중요한 토대가 되었습니다.
제트 엔진의 등장은 폭격기 기술의 혁명을 가져왔습니다. 2차 대전 말기에 독일과 영국에서 제트 엔진 폭격기가 개발되기 시작했으며, 전쟁 이후 제트 엔진은 폭격기를 비롯한 군용기 및 민항기의 주요 동력원으로 자리매김했습니다. 제트 엔진은 기존의 왕복 엔진보다 훨씬 높은 속도와 고고도 성능을 제공했으며, 이는 폭격기의 작전 능력을 획기적으로 향상시켰습니다. 미국의 보잉 B-47 스트라토제트(Boeing B-47 Stratojet)와 보잉 B-52 스트라토포트리스(Boeing B-52 Stratofortress), 소련의 투폴레프 Tu-16 배저(Tupolev Tu-16 Badger)와 투폴레프 Tu-95 베어(Tupolev Tu-95 Bear) 등 1세대 제트 폭격기들은 2차 대전 당시 축적된 기술을 바탕으로 개발되었으며, 냉전 시대 핵 억지력의 핵심 전력으로 활약했습니다. 특히, B-52는 1950년대 초에 개발되어 현재까지도 미 공군의 주력 폭격기로 운용되고 있으며, 지속적인 성능 개량을 통해 21세기에도 그 위력을 과시하고 있습니다.
미사일 기술의 발전 또한 폭격기 운용 방식에 큰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2차 대전 당시에는 폭탄만이 폭격기의 주요 무장이었지만, 전후 미사일 기술이 발전하면서 공대지 미사일, 순항 미사일 등이 폭격기에 탑재되기 시작했습니다. 미사일은 폭탄보다 훨씬 먼 거리에서 목표물을 공격할 수 있게 해주었고, 폭격기의 생존성을 높이는 데 기여했습니다. 특히, 공대지 핵미사일은 전략 폭격의 개념을 더욱 확장시켰으며, 핵무기 운반 수단으로서 폭격기의 중요성을 더욱 부각시켰습니다.
스텔스 기술의 발전은 현대 폭격기 설계에 혁신적인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노스롭 그루먼 B-2 스피릿(Northrop Grumman B-2 Spirit) 스텔스 폭격기는 레이더에 탐지되지 않는 스텔스 성능을 극대화하여 적의 방공망을 뚫고 핵심 목표물을 타격할 수 있도록 설계되었습니다. B-2는 2차 대전 당시의 폭격기와는 전혀 다른 개념의 폭격기로, 현대 공군력의 핵심 전력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B-21 레이더(Northrop Grumman B-21 Raider) 스텔스 폭격기가 개발되어 B-2의 뒤를 이을 차세대 전략 폭격기로 기대를 모으고 있습니다.
2차 대전 당시 전략 폭격의 경험은 현대 공군력 운용에도 중요한 교훈을 남겼습니다. 전략 폭격은 전쟁의 승패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지만, 무차별 폭격으로 인한 민간인 피해는 윤리적 문제뿐만 아니라 국제 사회의 비난과 적대감을 야기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주었습니다. 현대 공군력은 정밀 유도 무기와 정보 감시 자산의 발전을 통해 정밀 폭격 능력을 크게 향상시켰으며, 민간인 피해를 최소화하면서 군사적 목표를 달성하는 방향으로 발전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전략 폭격의 잠재적인 파괴력과 윤리적 문제는 여전히 현대 전쟁에서 중요한 논쟁점으로 남아있습니다.
결론: 전략 폭격 시대의 역사적 교훈과 미래 전망
2차 세계 대전은 전략 폭격의 시대였으며, 이 시기 폭격기 기술은 비약적인 발전을 거듭했습니다. 제1차 세계 대전의 제한적인 폭격 능력에서 벗어나, 2차 대전의 폭격기는 적의 전쟁 수행 능력을 직접적으로 파괴하는 전략 무기로 진화했습니다. 4발 중폭격기의 등장, 항법 및 조준 기술의 혁신, 방어 무기의 강화 등 폭격기 기술의 발전은 전략 폭격의 효율성을 극대화했으며, 전쟁의 흐름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특히, 연합군의 전략 폭격은 독일과 일본의 군수 산업 시설과 주요 도시를 파괴하여 전쟁 수행 능력을 약화시키는 데 기여했습니다.
하지만, 전략 폭격은 동시에 심각한 윤리적 문제를 야기했습니다. 무차별 폭격으로 인한 막대한 민간인 피해는 전략 폭격의 정당성에 대한 논쟁을 불러일으켰으며, 전쟁 이후에도 그 논란은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드레스덴 폭격, 도쿄 대공습, 히로시마·나가사키 원폭 투하 등은 전략 폭격의 파괴력과 함께 그 윤리적 딜레마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건들입니다.
2차 대전 폭격기 기술 발전의 유산은 현대 공군력과 항공 기술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습니다. 제트 엔진, 미사일, 스텔스 기술 등 현대 항공 기술의 핵심 요소들은 2차 대전 당시 폭격기 기술 발전의 연장선상에 있으며, 현대 폭격기는 더욱 강력한 화력과 정밀 타격 능력, 그리고 생존성을 갖추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전략 폭격의 윤리적 문제는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과제로 남아있으며, 미래 전쟁에서도 전략 폭격의 역할과 한계에 대한 심층적인 논의가 필요합니다.
2차 대전 전략 폭격의 역사는 우리에게 전쟁의 파괴성과 기술 발전의 양면성을 동시에 보여줍니다. 폭격기 기술의 발전은 전쟁의 양상을 근본적으로 변화시켰지만, 동시에 인간적인 비극과 윤리적 딜레마를 초래했습니다. 우리는 2차 대전 전략 폭격의 역사를 통해 전쟁의 참혹함을 되새기고, 기술 발전을 인간의 존엄성과 공존을 위한 방향으로 이끌어가야 할 것입니다.
참고 문헌
Douhet, G. (1921). The Command of the Air. Coward-McCann.
Tilly, C. (1995). European Revolutions, 1492-1992. Blackwell Publishing.
Freeman, R. (2002). B-24 Liberator. Aerospace Publishing.
Coffey, T. P. (1993). Decision over Schweinfurt: The U.S. 8th Air Force Battle for Daylight Bombing. Duell, Sloan and Pearc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