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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토스의 귀환, 로고스의 위기: 윤석열 대통령 파면과 지지 세력의 언어 분석 (철학사 및 언어철학적 관점에서)

요약
  • 2025년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과 헌법재판소의 결정 전까지 미토스와 로고스의 대립 분석
  • 지지 세력의 언어전략을 통해 헌재 결정 무력화 시도와 '말의 오염' 현상 탐구
  • 합리적 소통의 중요성과 공론장의 회복 필요성 강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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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심판 전야, 언어의 격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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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토스의 선제공격, 로고스의 방어선

2025년 초, 대한민국 헌정사는 또 다른 격랑의 소용돌이 한가운데에 있었다. 윤석열 대통령의 구속 이후, 헌법재판소의 탄핵 심판 결정(4월 4일 선고)을 앞둔 시점은 단순한 정치적 긴장을 넘어, 한국 사회의 근본적인 균열과 그 위에서 벌어지는 치열한 '언어 전쟁'의 최전선이었다. 비상계엄 선포와 그 실행 과정에서 불거진 위헌·위법 논란은 대통령 탄핵이라는 초유의 사태로 이어졌고, 이제 모든 시선은 헌법재판소의 최종 판단, 즉 법치주의와 민주적 정당성이라는 로고스(Logos)의 구현체로 향하고 있었다. 헌법재판소가 다룰 사안들 – 계엄 선포의 요건 충족 여부, 국회 기능 방해, 헌법기관 침해 등 – 은 헌법과 법률이라는 객관적 규범에 기반한 이성적 논증과 법리 해석을 요구하는 로고스의 영역이었다.

그러나 이 결정적 로고스의 선고를 기다리는 동안, 윤석열 대통령의 핵심 지지 세력 – 그의 전 소속 정당이었던 국민의힘, 종교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전광훈 목사, 그리고 대중적 인지도를 가진 한국사 강사 전한길 – 은 헌법재판소의 다가올 판결을 단순한 법적 절차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들은 판결이 내려지기도 전에, 예상되는 로고스의 공격을 방어하고 심지어 선제적으로 무력화하기 위해 강력한 미토스(Mythos), 즉 신화적 서사, 음모론, 감정적 호소, 왜곡된 권위에 기반한 언어 전략을 구사하기 시작했다. 탄핵 무효를 외치는 그들의 집회와 발언들은, 임박한 헌재의 로고스적 판단 자체를 부정하거나 그 의미를 왜곡하려는 치열한 시도였다.

본 글은 김재인 저자의 『생각의 싸움』에서 제시된 미토스와 로고스의 대비, 철학사적 통찰, 그리고 언어철학의 주요 개념들을 도구 삼아, 헌법재판소의 탄핵 결정(4월 4일)이 내려지기 전, 윤석열 대통령 구속 이후부터 결정 선고 직전까지의 기간 동안 나타난 국민의힘, 전광훈, 전한길의 언어를 심층적으로 분석하고자 한다. 그들의 언어가 어떻게 임박한 로고스의 판결을 선제적으로 공격하고, 미토스를 통해 대안적 현실 인식을 구축하려 했는지, 그 과정에서 '말의 오염'은 어떻게 발생했는지, 그리고 이러한 현상이 한국 사회의 민주주의와 합리적 공론장에 어떤 위협을 가하는지를 탐구할 것이다. 이는 단순히 특정 정치 세력이나 인물에 대한 비판을 넘어, 중대한 정치적 결정 앞에서 언어가 어떻게 현실 인식에 개입하고 권력 투쟁의 도구가 되는지, 그리고 로고스가 위협받는 시대의 위험성을 성찰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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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임박한 로고스의 무게: 탄핵 심판과 헌법재판소의 역할 (결정 이전 시점)

헌법재판소의 탄핵 결정(4월 4일)이 내려지기 전, 지지 세력의 언어가 무엇에 맞서 싸우려 했는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당시 헌재가 다룰 것으로 예상되었던 로고스의 본질을 파악해야 한다. 헌법재판소의 심판 과정과 그 결과로 나올 결정문은 본질적으로 로고스에 기반할 수밖에 없었다.

  • 절차적 합리성 (Procedural Justice)의 기대: 헌재는 탄핵 소추 절차의 적법성(국회법 준수 여부 등), 사법심사의 가능성(계엄 선포 행위가 사법심사 대상인지 여부), 심판의 이익 존재 여부 등을 법적 절차에 따라 판단해야 했다. 이는 법치주의의 기본 요건인 예측 가능하고 공정한 절차라는 로고스의 핵심이다. 지지 세력은 바로 이 절차 자체의 흠결을 부각하며 다가올 결정의 정당성을 미리 깎아내리려 했다.

  • 실체적 논증 (Substantive Reasoning)의 예견: 헌재는 계엄 선포가 헌법상 요건("전시, 사변 또는 이에 준하는 국가비상사태")을 충족했는지, 국무회의 심의 등 절차를 준수했는지, 군경의 국회 장악 시도나 포고령을 통한 헌법기관 활동 금지 시도가 헌법과 법률에 위배되는지 등을 사실관계와 법률 해석을 통해 판단해야 했다. 이는 증거와 논리에 기반한 로고스적 작업이며, 지지 세력은 이 논증의 전제(예: 계엄의 불가피성)를 옹호하거나 반박 증거의 신뢰성을 공격하며 맞섰다.

  • 보편적 원칙 적용 (Universal Principles)의 가능성: 단순한 법 위반 여부를 넘어, 이러한 행위들이 민주국가 원리, 법치국가 원리, 권력분립 원칙 등 헌법의 근본 원리를 '중대하게' 훼손했는지 여부가 핵심 쟁점이었다. 대통령의 헌법 수호 의무 위반 여부는 국가 권력의 정당성 근거에 대한 로고스적 성찰을 요구했다. 지지 세력은 이러한 보편 원칙보다 '국가 안보', '종북 척결' 등 다른 가치를 내세우거나, 대통령 행위의 '불가피성'을 강조하며 중대성 판단을 희석시키려 했다.

이처럼 헌법재판소의 결정은 증거, 법률, 절차, 보편 원칙에 기반한 로고스의 산물일 것으로 예상되었다. 이는 공적 검증과 비판이 가능한 논증의 형태를 띨 수밖에 없었다. 윤석열 대통령 지지 세력의 언어는 바로 이 임박한 로고스의 구조와 예상되는 결론을 선제적으로 공격하거나, 그 의미를 평가절하하고, 혹은 완전히 무시하는 방식으로 작동했다. 그들의 탄핵 무효 집회와 발언들은 바로 이 로고스의 선고 전에 '미토스의 방어선'을 구축하려는 시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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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미토스의 선제공격: 파면 결정 이전, 지지 세력의 언어 전략

『생각의 싸움』에서 탈레스가 '물'이라는 보통명사로 로고스의 시대를 열었듯, 미토스는 '제우스' 같은 고유명사 중심의 서사로, 질문과 비판을 차단하며 강력한 감정과 초월적 권위에 호소한다. 헌재 결정(4월 4일) 이전, 윤석열 대통령 지지 세력의 언어는 이러한 미토스적 특징을 활용하여 임박한 로고스의 판결을 무력화하려는 선제공격의 양상을 띤다.

2.1 전광훈: 신격화된 지도자와 '성전(聖戰)' 프레임의 선포

탄핵 결정 이전, 전광훈 목사의 언어는 이미 구축된 자신의 미토스를 정치 현실에 투영하며, 헌재의 잠재적 결정을 '악의 세력'의 공격으로 규정하려는 시도를 노골적으로 보여준다.

  • '성전(聖戰)' 프레임 선점: 그는 탄핵 심판 과정 자체를 '자유민주주의/기독교 수호 세력' 對 '주사파/사탄 세력' 간의 영적 전쟁으로 규정했다. 이는 헌재가 어떤 결정을 내리든, 그 결정이 '법적 판단(로고스)'이 아닌 '영적 전쟁의 결과(미토스)'로 해석될 수 있도록 미리 판을 짜는 전략이다. 헌재 재판관들은 잠재적인 '악의 앞잡이'로 규정될 위험에 처했다.

  • 권위의 선제적 전이: 자신의 (자가 부여한) 신적 권위를 윤석열 대통령에게 투사하고, 탄핵을 추진하거나 동조하는 세력, 나아가 헌재까지도 '신의 뜻을 거스르는 악'으로 미리 규정했다. 이는 헌재의 로고스적 권위보다 자신의 미토스적 권위가 우위에 있음을 선언하며, 판결의 수용 가능성 자체를 부정하려는 의도이다.

  • 수행적 언어(Performative Utterance)를 통한 현실 선점: "탄핵은 반드시 기각될 것이다", "악한 자들은 심판받을 것이다"와 같은 그의 발언은 미래 예측이 아니라, 지지자들에게 특정 현실(탄핵 기각, 반대파 심판)을 믿게 하고 행동하게 만드는 수행적 기능을 했다. 이는 로고스적 증거나 논증이 아닌, 선언과 믿음을 통해 원하는 현실을 '창조'하려는 미토스적 시도이다.

  • 닫힌 언어 게임 강화: 헌재 결정 전, 불안과 분노를 느끼는 지지자들을 향해 외부의 비판(언론 보도, 법률 전문가 의견 등)을 '핍박'이나 '가짜 뉴스'로 규정하며 내부 결속을 강화했다. 이는 헌재의 로고스적 결정이 나오더라도 흔들리지 않을 '믿음의 방벽'을 미리 쌓는 작업이었다.

전광훈의 언어는 임박한 헌재의 로고스적 결정을 정면으로 거부하고, 자신을 정점으로 하는 왜곡된 종교적 미토스를 통해 정치 현실을 재단하고 지지 세력을 동원하여 판결 자체를 무의미하게 만들려는 선제적 시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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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전한길: 음모론적 미토스와 역사의 예언적 오용

탄핵 결정 이전, 한국사 강사 전한길의 언어는 음모론적 미토스를 확장하고 역사적 권위를 오용하여, 헌재의 잠재적 결정 자체를 거대한 음모의 일부로 보이게 만들려는 전략을 구사했다.

  • 음모론 서사의 확장과 '예정된' 불복: 이전부터 제기한 '부정선거 음모론'을 탄핵 정국과 연결시키며, "선관위가 초래한 혼란"이 결국 탄핵으로 이어졌다는 서사를 구축했다. 이는 헌재가 탄핵을 인용할 경우, 그것이 '법적 판단'이 아니라 '부정선거 세력(혹은 좌파 카르텔)의 예정된 음모'의 결과라는 해석을 미리 준비시키는 효과를 낳았다.

  • 로고스 기관에 대한 선제적 불신 조장: 선관위, 사법부("판사 카르텔"), 언론 등을 '음모의 협력자'로 계속해서 공격하며, 이들 기관이 내놓는 정보나 판단(특히 임박한 헌재 결정)의 신뢰성을 미리 깎아내렸다. 이는 헌재 결정이라는 로고스가 발표되었을 때, 그것을 받아들일 사회적 기반 자체를 약화시키려는 시도였다.

  • 역사적 권위의 오용과 '미래 예언': "헌법재판관이 탄핵 인용 시 제2의 을사오적"이라는 발언은 단순한 역사 왜곡을 넘어, 헌재 재판관들에게 강력한 심리적 압박을 가하는 '예언적 저주'의 성격을 띤다. 이는 탄핵 인용이라는 합법적 결정을 미리 '매국 행위'로 규정함으로써, 재판관들이 로고스적 판단을 내리는 것을 방해하고, 만약 인용될 경우 그 정당성을 원천적으로 부정하려는 의도이다. "대통령 내란 사례 없다"는 식의 명백한 사실 왜곡 또한, 자신의 로고스적 권위를 희생시키면서까지 미토스적 주장을 강화하려는 절박함을 보여준다.

  • '깨어난 소수' 미토스 강화: 자신과 음모론을 믿는 이들을 '진실을 알고 미래를 대비하는 선각자'로, 임박한 헌재 결정을 우려하거나 비판하는 이들을 "극좌파" 또는 "세뇌된 자"로 규정했다. 이는 헌재 결정이라는 로고스가 나오더라도, 그것을 '거짓'으로 치부하고 자신들의 미토스적 신념을 유지할 명분을 미리 제공하는 역할을 했다.

전한길의 언어는 역사적 사실과 제도적 권위를 왜곡하고 음모론적 미토스를 퍼뜨림으로써, 헌법재판소의 임박한 로고스적 결정을 선제적으로 불신시키고, 그 결정이 어떻게 나오든 간에 지지자들이 받아들이지 않을 명분을 구축하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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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국민의힘: 정치적 미토스와 '프레임 전쟁' 선점

헌재 결정 이전, 국민의힘(혹은 그 주류 세력)의 언어는 보다 정제된 형태를 띠었지만, 본질적으로는 임박한 법적 판단(로고스)에 대응하기보다는, 정치적 미토스를 구축하고 프레임을 선점하여 판결의 영향을 최소화하려는 전략에 집중했다.

  • '정치 탄압' 프레임 고착화: 헌재의 법리적 판단이 나오기 전부터, 탄핵 심판 과정 전체를 '거대 야당의 의회 독재', '정치 보복', '헌정 질서 파괴 시도'라는 정치적 프레임으로 규정하는 데 주력했다. 이는 헌재가 어떤 결정을 내리든, 그 법적 정당성(로고스)보다는 '정치적 의도'가 개입된 결과로 해석될 여지를 미리 만들어두려는 시도였다.

  • 절차적 정당성 지속 공격: 국회에서의 탄핵 소추 과정의 문제점(예: 법사위 조사 생략 논란 등)을 계속해서 부각하며, 절차적 흠결을 통해 헌재 결정의 정당성 자체에 미리 흠집을 내려고 시도했다. 이는 로고스의 일부(절차)를 문제 삼아, 예상되는 로고스 전체(결론)의 권위를 약화시키려는 전략이었다.

  • 권위의 선택적 수용 및 '대안적 로고스' 제시: 자신들에게 유리한 법 해석이나 소수 전문가 의견을 부각하며, 탄핵 기각의 논리를 미리 설파했다. 이는 헌재가 내릴 수 있는 '불리한 로고스'에 맞서, 지지자들이 기댈 수 있는 '대안적 로고스(혹은 유사 로고스)'를 제공하려는 시도였다.

  • 감정적 호소와 지지층 '결전 태세' 구축: "나라가 망한다", "자유민주주의 최후의 보루" 등 위기감을 고조시키는 언어를 통해, 헌재 결정이라는 외부 충격에 대비하여 지지층의 감정을 자극하고 '결전 태세'를 갖추도록 독려했다. 이는 로고스적 설득보다는 감정적 동원에 기반한 미토스적 방어 전략이었다.

  • '우리' 대 '그들' 이분법 강화: 탄핵을 주도한 세력과 헌재에 비판적인 입장을 보이는 이들을 '반(反)대한민국 세력'으로, 자신들과 지지자들을 '체제 수호 세력'으로 규정하며 선명한 대립 구도를 만들었다. 이는 헌재 결정 이후 발생할 수 있는 정치적 책임을 상대에게 전가하고, 내부 결속을 통해 정치적 타격을 최소화하려는 사전 작업이었다.

국민의힘의 언어는 헌재 결정이라는 로고스의 선고를 앞두고, 정치적 유불리와 지지층 결집을 위해 미토스적 프레임을 선점하고 방어 논리를 구축하는 데 집중하는 양상을 보였다.

'분석 3: 양적 세계 vs 질적 세계'

지금까지 탄핵 결정 이전, 지지 세력들이 임박한 로고스(헌재 결정)에 맞서 어떻게 미토스적 언어를 구사하며 선제공격을 펼쳤는지 살펴보았다. 이제 조금 다른 각도에서, 로고스가 때로 간과하기 쉬운 세계의 중요한 차원, 바로 '양적 세계'와 '질적 세계'의 대비를 통해 이 상황을 분석해본다. 이를 위해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와 철학자 앙리 베르그송의 통찰을 빌려온다.

1) 어린왕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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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왕자>의 유명한 구절을 떠올려 본다. 어린 왕자는 어른들이 숫자를 너무 좋아한다고 불평한다. 새로 사귄 친구에 대해 어른들은 '그 아이 목소리는 어떤지?', '무슨 놀이를 좋아하는지?', '나비를 수집하는지?' 같은, 그 친구의 '어떤 사람인지'를 보여주는 질적인 특징에는 관심이 없다. 대신 '나이가 몇 살인지?', '형제는 몇인지?', '체중은 얼마인지?', '아버지 수입은 얼마인지?' 같은 측정 가능한 '양'을 묻고 나서야 비로소 그 친구를 안다고 생각한다.

마찬가지로, '창턱에는 제라늄 화분이 있고 지붕에는 비둘기가 있는 분홍빛 벽돌집'이라고 그 집의 아름다움과 생명력, 즉 질적인 모습을 묘사하면 어른들은 그 집을 상상하지 못한다. 하지만 '십만 프랑짜리 집'이라고 가격, 즉 양적인 가치로 말하면 '아, 참 좋은 집이구나!' 하고 쉽게 이해하고 감탄한다. 별들을 발견하고는 그 아름다움이나 신비 대신 '소혹성 3251호'처럼 번호를 매겨 관리하려는 천문학자처럼, 어른들의 세계, 그리고 종종 로고스가 지배하는 세계는 본질적인 '질'보다는 측정하고 계산하기 쉬운 '양'에 집중하는 경향이 있다.

2) 베르그송 - 지속

이러한 양적 세계관의 한계를 철학적으로 깊이 파고든 사람이 바로 앙리 베르그송이다. 베르그송은 우리가 시계나 과학으로 측정하는 '양적인 시간'과, 우리가 실제로 삶 속에서 경험하는 '질적인 시간', 즉 '지속(Durée)'을 명확히 구분했다.

시계의 시간, 즉 로고스가 파악하는 시간은 어떤가? 1초, 1분, 1시간... 균일하고, 무한히 나눌 수 있으며, 객관적으로 보인다. 법 조항, 절차적 요건처럼 명확하다. 하지만 베르그송은 이것이 실제 우리가 경험하는 시간의 본질을 담지 못하는, '죽은 시간', '공간화된 시간'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즐거운 시간은 순식간에 지나가고, 고통스러운 시간은 영원처럼 느껴지는 우리의 경험, 즉 시간의 '질'은 이 균일한 눈금으로는 결코 포착할 수 없다.

반면 '지속'은 우리의 의식, 기억, 생명 그 자체처럼 끊임없이 흘러가고, 과거의 경험을 고스란히 안고 현재를 살아가며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살아 숨 쉬는 흐름이다. 그것은 결코 똑같은 순간이 반복되지 않는, 예측 불가능하고 창조적인 과정이다. 로고스(지성, 법리)가 이 살아있는 '지속'을 이해하기 위해 그것을 붙잡아 마치 공간처럼 나누고 분석하려 할 때(예: 법 조항 위반 횟수, 절차적 오류 여부 등), 오히려 그 생명력과 풍부한 질적 차원(예: 지지자들의 충성심, 배신감, 국가에 대한 염려 등)을 놓치게 된다는 것이 베르그송의 통찰이다.

(현실 적용 및 연결)

자, 그렇다면 이 양과 질의 대비가 지금 우리가 분석하는 윤석열 대통령 파면 결정 이전의 상황과 어떤 관련이 있는가?

헌법재판소가 내릴 결정은 명백히 로고스, 즉 '양적인' 측면에 집중할 수밖에 없다. 법 조항 위반 여부(몇 개 조항 위반?), 증거의 존재 유무(증거 있음/없음?), 절차적 적법성(요건 충족/미충족?) 등은 측정하고 판단할 수 있는 기준들이다. 이것이 법치주의의 근간이다.

하지만 지지 세력의 언어는 바로 이 로고스가 포착하지 못하는 '질적인' 영역, 즉 '지속(Durée)'의 영역에 강력하게 호소한다. 그들에게 이 사태는 단순히 법 조항 몇 개를 위반했느냐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자유민주주의 수호'라는 신념의 문제(질), '좌파에게 정권을 빼앗길 수 없다'는 불안감과 위기감(질), 리더에 대한 충성심과 배신감(질), '나라의 명운'이 걸렸다는 역사적 서사(질)의 문제이다. <어린 왕자>의 어른들이 숫자로 친구를 이해하려 할 때 놓치는 것들처럼, 로고스적 법리 판단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강렬한 감정과 가치 판단의 영역이다.

전광훈의 '성전' 선포, 전한길의 '음모론'과 '을사오적' 비유, 국민의힘의 '정치 투쟁' 프레임은 모두 이러한 '질적인' 불안과 분노, 충성심을 자극하고 결집시키는 미토스적 전략이다. 그들은 헌재의 '양적인' 로고스(법리 판단)가 나오기 전에, 이 '질적인' 미토스(신념, 감정, 서사)를 통해 지지자들의 마음속에 이미 다른 '판결'을 내려놓으려 했던 것이다. 로고스가 다가올수록, 그들은 더욱더 질적인 영역, 즉 감정과 서사의 영역으로 파고들어 방어선을 구축하려 한 것이다.

이어서 다음 분석에서는 이렇게 로고스가 간과하기 쉬운 질적 세계와 미토스가 결합하면서, 우리 사회의 중요한 가치 용어들이 어떻게 그 의미를 잃고 변질되는지, 즉 '말의 오염' 현상에 대해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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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언어철학적 분석: '말의 오염'과 소통 불능의 예고

탄핵 결정 이전, 지지 세력의 미토스 중심 언어는 임박한 로고스 판결을 무력화하는 과정에서 심각한 '말의 오염'을 야기하며, 합리적 소통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결과를 예고했다.

  • 의미의 선제적 왜곡과 '말의 오염': '법치주의', '민주주의', '정의', '애국', '헌법 수호'와 같은 핵심 가치 용어들이 헌재 결정 이전에 이미 다른 의미로 사용되었다. '법치주의 수호'는 '윤석열 대통령 방어'로, '헌법 수호'는 '탄핵 저지'로, '애국'은 '현 정부 지지 및 반대 세력 척결'로 의미가 축소되거나 왜곡되었다. 전한길이 탄핵 인용을 미리 '을사오적'에 비유한 것은 '애국'과 '매국'의 의미를 극단적으로 오염시켜 헌재의 잠재적 결정을 폄하하려는 시도였다. 이렇게 단어들이 선제적으로 오염되면, 헌재 결정이라는 로고스가 나와도 사회 구성원 간의 공유된 의미 기반 위에서 토론하는 것이 불가능해진다.

  • 지시와 의미의 분리 (Frege) 심화: 지지 세력은 '헌법재판소'라는 기표를 사용하지만, 그들이 염두에 둔 지시체(기존의 독립적 사법기관)나 뜻(공정한 법적 판단)은 이미 부정되고 있었다. 그들에게 헌재는 '좌파에 장악된 기관' 또는 '음모의 일부'라는 다른 '뜻'으로 이해될 가능성이 커졌고, 이는 헌재 결정의 권위를 원천적으로 부정하는 결과를 낳았다. 같은 '헌법재판소'를 말하지만, 전혀 다른 대상을 염두에 두었기에 소통은 불가능했다.

  • 닫힌 언어 게임의 강화와 소통 불능 예고 (Wittgenstein): 전광훈 추종자들이나 음모론 신봉자들은 헌재 결정이라는 외부 로고스에 대비하여 더욱 강력하게 자신들만의 언어 게임 안으로 침잠했다. 이 게임 안에서는 지도자의 말과 내부 논리가 절대적 기준이 되었고, 헌재 결정에 대한 언론 보도나 전문가 분석 등 외부의 로고스는 '적의 공격'이나 '조작된 정보'로 미리 차단되었다. 이는 헌재 결정 이후, 이들과 다른 로고스 기반의 시민들 간의 대화가 불가능해질 것임을 예고했다.

  • 수행적 발화와 현실 왜곡의 사전 작업 (Austin/Searle): "탄핵은 무효가 될 것이다", "부정선거는 명백하다", "저들은 나라를 팔아먹으려 한다"는 발언들은 단순히 미래를 예측하는 것이 아니라, 헌재 결정 이전에 이미 지지자들에게 '탄핵은 부당하다'는 현실 인식을 각인시키고, 반대자들을 미리 '매국노'로 낙인찍는 수행적 힘을 발휘했다. 이러한 발언의 반복은 헌재의 로고스적 결정이 어떻게 나오든, 특정 집단에게는 그것이 '조작된 결과'로 받아들여질 수 있도록 현실 인식을 미리 왜곡하는 효과를 낳았다.

결국, 임박한 로고스를 거부하고 왜곡된 미토스를 앞세우는 언어는 단어의 의미를 선제적으로 오염시키고, 사회를 서로 소통 불가능한 집단들로 파편화시키며, 헌재 결정 이후 합리적 토론과 민주적 숙의의 가능성 자체를 파괴할 위험을 내포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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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결정 이후: 로고스의 선고와 미토스의 지속

2025년 4월 4일, 헌법재판소는 재판관 전원일치 의견으로 윤석열 대통령 파면을 결정했다. 결정문은 앞서 예상된 대로 계엄 선포의 위헌·위법성, 국회 기능 침해, 헌법 수호 의지 상실 등을 명시하며 철저히 법리와 증거, 헌법 원칙이라는 로고스에 기반하여 작성되었다. 이는 민주주의와 법치주의의 근간을 확인하는 엄중한 선언이었다.

그러나 헌재 결정 이전에 강력하게 구축된 미토스의 방어선은 이 로고스의 선고 앞에서도 쉽게 무너지지 않았다.

  • 예견된 불복과 로고스 부정: 전광훈등 일부 강경파는 헌재의 결정을 즉각 '사법 쿠데타', '정치적 음모의 결과', '종북 세력의 승리' 등으로 규정하며 불복 입장을 밝혔다. 이는 결정 이전에 이미 '성전', '음모론', '정치 탄압'이라는 미토스적 프레임을 통해 지지자들에게 예고되었던 반응이었다. 헌재의 로고스는 그들에게 '오염된 로고스' 또는 '거짓된 로고스'로 치부되었다.

  • 미토스의 재확산과 양극화 심화: 탄핵 무효 집회는 계속되었고, 음모론은 더욱 정교화되어 퍼져나갔다. 헌재 결정문 자체에 대한 비판적 검토(로고스)보다는, 결정의 배후나 재판관의 성향에 대한 의혹 제기(미토스)가 주를 이루었다. 이는 사회를 '헌재 결정을 수용하는 측'과 '불복하는 측'으로 더욱 극명하게 나누며 정치적 양극화를 심화시켰다.

  • '말의 오염' 고착화: '법치주의', '헌법 수호' 등의 단어는 이제 양측에서 완전히 상반된 의미로 사용되며 소통의 간극을 더욱 벌렸다. 지지 세력에게 '법치주의'는 '탄핵 무효 투쟁'을 의미했고, 반대 측에게는 '헌재 결정 존중'을 의미했다. 오염된 언어는 사회적 합의의 기반을 계속해서 침식했다.

결국, 헌재 결정 이전부터 시작된 미토스의 선제공격과 방어선 구축은, 헌재의 로고스적 결정 이후에도 그 영향력을 유지하며 한국 사회의 분열과 혼란을 지속시키는 주요 원인이 되었다. 이는 로고스가 아무리 명백하더라도, 강력한 미토스가 선점한 인식의 장벽을 넘어서기 어려울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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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 로고스를 위한 투쟁, 언어적 경계의 재확인

윤석열 대통령 파면 결정 이전, 그의 지지 세력들이 보여준 언어 전략은 헌법재판소라는 로고스의 상징 앞에서 미토스가 어떻게 작동하며 현실 인식에 개입하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헌재 결정(4월 4일)이라는 로고스의 선고를 앞두고, 전광훈의 신격화된 언어, 전한길의 음모론적 역사 왜곡, 국민의힘의 정치적 프레임 전쟁은 모두 임박한 법적 판단을 선제적으로 무력화하고, 미토스를 통해 지지자를 결집시키며 자신들의 정치적 입지를 방어하려는 치열한 시도였다.

그들의 언어는 '법치', '민주주의', '애국'과 같은 핵심 가치 용어의 의미를 선점하고 오염시켰으며('말의 오염'), 닫힌 언어 게임을 강화하여 합리적 소통의 가능성을 차단했다. 철학사적으로 이는 로고스를 향한 인류 지성의 진보를 거스르려는 위험한 시도이며, 언어철학적으로는 소통 불능과 사회 분열을 예고하는 위험 신호였다. <어린 왕자>와 베르그송의 통찰처럼, 로고스가 주목하는 '양적' 판단(법리, 절차)만으로는 파악할 수 없는 '질적' 영역(감정, 신념, 서사)에서 미토스는 강력한 힘을 발휘하며 로고스의 방어선을 위협했다.

결정 이후에도 이 미토스가 지속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하며 사회적 갈등을 심화시키는 현실은, 로고스를 위한 끊임없는 투쟁의 필요성을 절감하게 한다. 이는 특정 정치 세력에 대한 찬반을 넘어, 우리 사회의 건강한 공론장을 지키기 위한 공동의 노력이 되어야 한다.

  • 비판적 사고 능력의 일상화: 정보의 출처와 맥락을 확인하고, 논리적 오류와 감정적 선동을 간파하는 능력을 길러야 한다.

  • 팩트체크와 미디어 리터러시 강화: 허위 정보와 음모론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미디어를 비판적으로 해독하는 능력을 사회 전체적으로 함양해야 한다.

  • 공론장의 회복과 확장: 극단적 주장이 난무하는 폐쇄적 공간을 넘어, 다양한 의견이 로고스에 기반하여 교환되고 숙의될 수 있는 건강한 공론장을 복원해야 한다.

  • 언어적 책임과 경계: 사회적 영향력이 큰 주체들은 자신의 언어가 가진 파급력을 인식하고, '말의 오염'에 대한 경각심을 가지며 로고스에 기반한 책임감 있는 언어를 사용해야 한다.

탈레스가 던졌던 "세계는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는가?"라는 질문은 오늘날 "우리는 어떤 언어로 임박한 현실과 마주하고 소통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으로 이어진다. 특히 중대한 정치적 결정 앞에서 미토스의 선제공격에 맞서 로고스의 가치를 지키고, '따져 묻는 말하기'를 회복하는 것만이 왜곡된 현실 인식에서 벗어나 건강한 민주주의 사회를 지켜나가는 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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