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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부처,마호메트,공자의 대화

제1막 제1장

(무대는 실재와 환상이 겹쳐진 신비로운 공간이다. 한가운데에는 오래된 보리수가 뿌리내리고, 그 둘레로 고요한 연못이 펼쳐져 있다. 연못 위로 달빛이 비쳐 은은한 빛무리가 일렁인다. 부처는 연못가에 연꽃잎 같은 자세로 앉아 있고, 공자는 나무 옆에 서서 고개 숙여 깊은 생각에 잠겨 있다. 마호메트는 약간 떨어진 모래 바닥에 무릎을 꿇고 앉아 두 손 모아 기도하듯 가슴에 대고 있고, 예수는 나무에 기대어 서서 밤하늘의 별들을 바라본다. 네 인물의 표정에는 평온함과 호기심이 어우러져 있다.)

공자: (고개를 들며 부드럽게 미소 짓는다) 인간의 본성은 본디 선한 것인가, 아니면 악한 것인가? 오늘 이 자리에서는 그 물음을 놓고 각자의 생각을 들어보고 싶소이다.

부처: (잔잔하게 연못을 바라보며) 선과 악이라... 연못에 비친 달 그림자가 고요히 떨고 있군요. 물결이 일렁이면 선도 악도 흔들리듯, 인간의 마음도 환경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 아닐까요?

공자: (나무를 가만히 쓰다듬으며) 허허, 부처께서는 본성을 고정된 무엇으로 보지 않으시는군요. 그러나 사람이 태어날 때부터 측은히 여기는 마음, 부끄러움을 아는 마음, 사양하는 마음, 시비를 가릴 줄 아는 마음을 지녔다 하지 않소? 저는 그 작은 씨앗들이 곧 덕의 싹이라 생각하오.

예수: (조용히 걸음을 내딛으며) 사람은 모두 하느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았으니, 처음 뜻은 선함에 있었지요. 그러나 세상에 죄가 들어오면서 인간의 심령은 어둠과 갈라졌소. 선과 악이 함께 심겨진 밀밭처럼 말입니다.

마호메트: (고개를 끄덕이며) 예수의 말씀에 나도 동의하오. 알라는 인간을 흙으로 빚으시고 그 안에 자신의 숨결을 불어넣어 주셨소. 전능하신 그분께서 빚은 창조물에 근본부터 악이 깃들 리 없지. 하지만... (잠시 말을 멈춘다)

부처: (시선을 마호메트에게 돌리며) 하지만...?

마호메트: (깊은 숨을 내쉬며) 하지만 알라는 동시에 인간에게 선택할 수 있는 자유를 허락하셨소. 선을 따를지 악을 따를지, 그것은 인간의 의지에 달려 있게 두셨지요. 전지전능한 신께서 모든 것을 정해 놓으실 수도 있었겠지만, 인간에게는 스스로의 길을 고를 자유와 그 책임을 주신 것이오.

예수: (고개를 끄덕이며) 사랑 때문에 그렇게 하신 것이겠지요. 강요된 선행은 참된 선이 아니니, 자유 속에서 자라난 선만이 값진 것. 하느님의 사랑은 인간에게 자유를 주어 스스로 빛을 택하길 기다리신다고 믿소.

공자: (눈을 빛내며) 음, 하느님이라... 나는 하늘이 인간에게 밝은 본성과 윤리의 법칙을 내렸다고 생각해왔소. 이름은 다르지만 말하고자 하는 바는 비슷한 듯하오. 하지만 (주변을 둘러보며) 인간 세상의 현실은 녹록지 않소이다. 탐욕과 다툼이 난무하고 예의와 정의가 땅에 떨어지는 것을 자주 보오. 인간이 본디 선하다 하여도, 세상의 악에 물들면 악해지고 마는 것일까?

부처: (연못에 손가락 끝을 담갔다 빼며) 한 방울의 먹물이 맑은 물을 물들이듯, 악한 환경은 마음을 물들일 수 있지요. 그러나 (손가락을 들어 올리며) 물은 본래 맑은 법. 시간이 지나면 다시 투명해지듯, 마음도 본래의 선함을 되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예수: (미소 지으며) 그렇소. 회개하고 새로워질 수 있는 희망이 있지요. 누구나 잘못할 수 있으나, 다시 빛으로 돌아올 길이 있으니... (잠시 시선을 떨군다) 그런데 공자께서는 인간이 사회적 존재라고 늘 말해왔지 않습니까?

공자: (웃으며) 그렇소이다. 사람은 혼자서는 사람답게 살 수 없지. 오직 관계 속에서 인간의 도리가 드러나는 법이오.

예수: (고개를 끄덕이며) 서로 사랑하라는 내 계명도 결국 함께 살아가라는 뜻이지요. 하지만 개인의 선택과 변화 없이는 사회도 변하지 않을 것이오. 각 사람이 마음을 바꾸지 않으면 어떻게 세상이 바뀌겠소?

공자: 맞는 말씀이오. 예부터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라 하였소. 몸과 마음을 닦아 수양하지 않고서야 가정을 다스릴 수 없고, 가정이 바로서지 못하면 나라를 평안케 할 수 없지요. 개인의 도덕적 수양이 사회의 근본임은 틀림없소.

마호메트: (엄숙하게) 나 역시 인간 각각이 하나님 앞에 선 개별적인 존재임을 강조하오. 아무도 타인의 죄를 대신 지지 못하고, 각자가 자기 행위에 책임을 지는 법. 그래서 최후의 심판 날에는 누구나 홀로 알라 앞에 서게 될 것이오.

예수: (조용히) 그렇지만 마호메트, 인간은 함께 죄를 짓기도 하고 함께 선을 행하기도 하지 않소? 양떼가 함께 길을 잃으면 서로에게 책임이 있듯, 우리의 죄와 선도 서로 얽혀 있지요.

공자: 음, 예수의 말에 공감이 가오. 사회라는 밭에서 홀로 선한 열매를 맺기란 쉽지 않지. 그래서 예의(禮)와 법도로 서로를 바로잡아 주어야 하오. 내 생각에 인간은 가르치고 이끌면 선을 따라갈 수 있는 존재요. 날 때부터 악인인 사람은 없다고 믿네만... (길게 한숨 쉰다) 허나 왜 이리 세상에 악이 넘치는지.

부처: (부드럽게 미소 지으며) 우리 모두 괴로움을 겪는 중생이기 때문이겠지요. 무명을 지닌 채 욕망에 이끌리니,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이 삼독(三毒)이 되어 마음을 흐리고 고통을 낳습니다. 선한 본성도 그 흐림 속에서는 빛을 잃고 마는 법이지요.

마호메트: (진지하게) 그렇다면 깨달은 이시여, 해법은 무엇이오? 욕망을 버리고 속세의 일들을 멀리하는 것이오?

부처: 욕망을 버리는 것... (연못 위 달을 바라보며) 물에 비친 달을 건지려 손을 뻗으면 물결만 일 뿐 달을 잡을 수 없지요. 마찬가지로 세속의 온갖 욕망을 좇는 건 환영을 좇는 일입니다. 그러니 집착을 놓아버리는 것이 해탈의 길이지요.

예수: (부처를 유심히 바라보며) 부처님, 세속을 떠나 욕망을 끊는 것이 곧 인간의 길에서 멀어지는 것 같지는 않소? 세상에는 굶주린 자, 병든 자, 울부짖는 자들이 있소. 그들을 돌보지 않고 어찌 홀로 해탈할 수 있겠소?

부처: (고요히 웃으며) 그래서 자비를 말하는 것이지요. 비록 욕망을 내려놓더라도, 중생을 향한 연민은 함께 닦아야 합니다. 자신을 버린다 하여 남을 버리라는 뜻이 아니니.

공자: (기쁘게 무릎을 탁 치며) 옳소! 나도 늘 인(仁), 곧 어질 인(仁)을 강조해 왔소. 어짊이란 타인을 사랑하는 마음, 불쌍히 여기는 마음 아니겠소. 혼자 수양하며 살더라도 어짊이 없다면 진정한 군자가 아니지.

마호메트: (미소 지으며) 알라께서도 가장 사랑하는 것은 자비라고 우리에게 가르치셨소. '자비로우시고 자애로우신 하나님'으로 성서를 여는 것처럼, 인간도 서로 자비를 베풀 때 가장 인간답다는 걸세. 결국 우리 가르침들이 닿는 곳은 자비와 사랑인 듯하오.

예수: (하늘을 바라보며) 사랑은 나의 핵심 가르침이지요. 하느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내 몸같이 사랑하라... 사랑이 없으면 인간은 아무것도 아니오. 나는 죄인마저 사랑하라 했소. 율법은 죄인을 벌하라 하지만, 사랑은 죄인을 감싸주지요.

공자: (곤란한 표정으로) 하지만 예수, 규율과 법도가 없다면 세상에 혼란이 크지 않겠소? 모든 걸 용서하고 사랑만으로 다스린다면, 악행이 더 기승을 부릴 수도 있지 않을까?

예수: (잠시 침묵하다가 조용히) 그래서 심판이 있소. 사랑이 죄인을 용서한다 해도, 끝내 회개치 않고 악에 머무는 자는 빛을 외면한 것이니 스스로 어둠에 남는 것이오. 최후의 날에 양과 염소를 가르듯, 누가 진정 사랑을 따랐는지 드러나리라.

마호메트: (엄숙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그렇소. 알라도 최후의 심판을 약속하셨소. 자비로운 분이시나 동시에 공의로운 심판관이시지. 인간 세상의 법정만으로는 완전한 정의를 세울 수 없기에, 신의 심판이 필요하다고 믿소.

부처: (조용히 탄식하며) 하늘의 심판... 신의 개념은 잘 모르겠지만, 인과의 법칙은 언제나 작용하지요. 선엔 선의 과보가, 악엔 악의 과보가 따르는 법. 결국 스스로 뿌린 씨앗을 거두는 것이니, 부처나 신이 따로 벌주지 않아도 우주는 스스로 균형을 잡습니다.

공자: 음, 그렇다면 인간에게 닥치는 고난도 자기 행위의 업보라는 말씀이오?

부처: 반드시 그렇다고 단정짓긴 어렵지만, 큰 흐름에서 보면 그러하다고 할 수 있지요. 다만 그 업(業)의 연쇄를 벗어나도록 가르침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고통을 없애는 길, 팔정도(八正道)를 설한 것이고요.

예수: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팔정도란 무엇이오?

부처: 바르게 보고, 바르게 생각하고, 바르게 말하고, 바르게 행동하고, 바르게 생계를 꾸리고, 바르게 노력하고, 바르게 집중하고, 바르게 마음을 챙기는 여덟 가지 길이지요. 그렇게 하면 탐욕과 성냄이 사그라지고 지혜와 자비가 자라서 괴로움의 바다를 건널 수 있습니다.

공자: (감탄하며) 훌륭하오. 동양의 다른 길이지만 통하는 데가 있소이다. 나의 가르침에서도 올바른 생각과 올바른 행동, 그리고 끊임없는 배움과 수양을 중시하지요. 결국 인간 각자가 자기 마음을 다스리는 게 핵심이오.

마호메트: (팔을 벌이며) 나 또한 믿는 자들에게 하루 다섯 번 기도하고, 가난한 이를 도우며, 한 달 열흘을 금식하고, 가능하면 성지로 순례를 가라고 가르쳤소. 이 모든 계율은 인간의 마음을 깨우치고 다스리려는 것이지.

예수: (환하게 웃으며) 우리 모두, 서로 다른 길을 걸어왔으나 가르치는 바는 사람의 마음을 깨우고 선을 실천하게 하는 것이로군요.

공자: 그렇소. 어쩌면 인간은 본디 선하게 태어나지만, 그 선함을 지켜내기란 어려워 수양과 가르침이 필요한 존재인지도 모르오.

부처: 혹은 본디 선하지도 악하지도 않은 빈 그릇일지도요. 무엇을 담느냐에 따라 향기가 날 수도, 악취가 날 수도 있듯이.

마호메트: 그래서 신께서 예언자를 보내고 성전을 내려, 무엇이 선이고 악인지 가르쳐 주셨다고 믿소. 인간은 스스로 분별 못 하니 외부의 계시가 필요했던 것이오.

예수: 동시에, 신께서는 인간 마음 깊숙이 법을 새겨 놓기도 하셨소. 그래서 사랑의 법은 책에 적힌 율법보다도 더 근본적이라 생각하오. 자비와 양심은 누구나 알고 있지 않소?

공자: (웃으며) 그렇다면 결국 인간은 선을 알고도 때로 잊는 존재인가 보오. 우리의 역할은 그 잊힌 선함을 일깨워주는 일이고.

부처: 모두가 불성을 지녔으나 스스로 깨닫지 못하니 부처가 나와서 길을 보여준다 했지요.

마호메트: 모든 인간은 알라의 창조물로서 처음엔 깨끗하지만 성장하며 길을 잃으니, 예언자가 나와 인도하시는 이치와 비슷하군요.

예수: (나직히) 나 역시 잃은 자를 찾아 구원하러 왔다 하였지요...

(잠시 네 사람이 말 없이 서로를 바라본다. 밤하늘의 달이 구름 사이로 천천히 이동하고 있다. 연못 위 달그림자도 일렁이며 모양을 바꾼다.)

제2막 제1장

(달빛이 한층 밝아지고, 주변에 산들바람이 분다. 나뭇잎들이 살랑이며 속삭이는 듯하다. 네 사람은 각기 생각에 잠긴 표정으로 무대 여기저리를 거닐거나 앉은 자세를 고쳐 앉는다. 토론은 점점 심오하고 추상적인 방향으로 흐르기 시작한다.)

공자: (멀리 허공을 바라보며) 결국 인간은 선과 악의 가능성을 모두 지니고 태어나, 사회와 스스로의 노력에 따라 기우는 존재인 듯하오. 그렇다면 인간의 본성이라 부를 고정된 선악은 없다고 해야 할까요?

부처: (나뭇가지 위에 앉은 새를 보며) 새는 본래 날 수 있는 존재이지만, 알에서 깨어나지 못하면 날 수 없지요. 인간도 마찬가지로 선의 잠재력을 지녔으나 깨우치지 못하면 악행 속에 머물 수 있습니다. 본성 자체가 선이냐 악이냐 단정짓기보다, 깨어남과 무지가 있지요.

예수: 맞습니다. 결국 선택의 문제이기도 하지요. 스스로의 본성을 어둠에 맡길지, 빛으로 이끌지. 그러나... (생각에 잠기며) 때론 인간의 악함이 그들의 연약함 때문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악을 행하는 자들도 사랑을 몰랐기 때문에, 상처받았기 때문에 그렇게 된 것은 아닐까요?

마호메트: (천천히 일어서며) 그렇지요. 악행을 저지르는 자도 어린 시절엔 순진한 아기였을 것이오. 그들을 악에 물들게 한 것은 가난, 무지, 두려움... 그리고 사회의 부조리가 한몫했을 겁니다. 알라는 인간에게 이성을 주었지만, 그 이성마저 흐려지는 때가 있지요.

공자: (한숨을 내쉬며) 그러므로 예의와 교육이 중요하오. 인간은 혼자 두면 금세 타락할 수 있으니, 어릴 때부터 바른 도리를 가르치고 백성이 굶주리지 않게 하는 것이 임금의 책임이지요. 사회가 어질면 개인도 따라 어질게 자랄 것이오.

예수: (생각에 잠긴 표정) 세상의 구조적인 죄악... 나도 그것에 맞섰지요. 가난한 자, 소외된 자와 함께하며 기득권자들의 위선을 꾸짖었소. 그러나 강요나 폭력이 아닌 사랑과 진리로 변화시키려 했지요. 강제로 선을 만들 순 없으니, 한 사람 한 사람 마음을 움직여야 했습니다.

마호메트: (공자를 바라보며) 때로는 강한 법과 질서도 필요하오. 부족 사회에서는 약육강식이 횡행했기에, 하나의 율법 아래 모두를 복종시켜 악행을 억제할 필요가 있었소. 그래서 때론 성전(聖戰)도 불가피했지. 약한 자를 지키기 위해 강자의 교만을 꺾어야 할 때가 있소이다.

예수: (슬픈 눈빛으로) 전쟁... 나는 가능한 모든 폭력을 멀리하라 가르쳤기에 그대의 길은 가슴 아프게 들리는군요. 그러나 당신께서도 최후에는 칼이 아닌 자비를 권고하지 않았소?

마호메트: (고개 숙이며) 그렇소. 알라는 과격함보다는 관용을 더 기뻐하시지. 다만 세상의 악이 극에 달할 때는 스스로를 지킬 힘이 필요했던 것이오. 실로 어려운 딜레마요.

공자: (손을 뒤로 짚으며 앉아) 어떤 때는 강한 처벌이 악인을 막지만, 또 어떤 때는 관용이 마음을 바꾸지요. 참으로 선과 악을 다루는 일은 백 가지 경우에 백 가지 방법이 다른 법... 하나로 규정하기 어렵소.

부처: (연못 표면을 쓸어보며) 음과 양, 밝음과 어둠처럼 세상의 이치는 쌍을 이루지요. 고요 속에 움직임이 있고, 움직임 속에 고요가 있듯, 선 속에도 악의 그림자가 있고 악 속에도 선의 빛이 숨어 있습니다. 둘은 함께 돌고 도는 수레바퀴 같아요.

예수: (미소 지으며) 나도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있습니다. 밀과 가라지가 함께 자라고, 마지막 때까지 섞여있듯이, 선과 악은 이 세상에서 완전히 분리되지 않은 채 함께 크지요. 그래서 섣불리 단죄하지 말라 했습니다.

마호메트: 옳은 말씀. 인간은 완전하지 않으니 누구도 스스로 의롭다 자처하기 어려워요. 모든 영혼은 죄의 가능성을 품었고, 동시에 성덕(聖德)의 가능성도 함께 지녔지. 중요한 건 그 가능성 중 무엇을 키우느냐이오.

공자: (문득 미소 지으며) 이렇게 이야기 나누다 보니, 우리 의견이 크게 다르지 않구려. 인간은 태어날 때 어느 한쪽으로 결정된 채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선도 악도 될 수 있는 가능성을 품고 있고, 교육이든 깨달음이든 사랑이든, 옳은 길로 인도함을 받아야 선해지는 존재... 그렇게 모아 볼 수 있지 않겠소?

부처: (조용히 합장하며) 저도 동의합니다. 처음부터 완전한 성인은 없으니 누구나 배우고 깨달아야 하지요. 모든 중생이 부처가 될 씨앗을 품었으나 스스로 물을 주고 햇빛을 받지 않으면 싹트지 않는 법입니다.

예수: (고개 숙여 동의하며) 인간은 죄인인 동시에 성인이 될 아이를 함께 지닌 채 태어난다고 할까요. 누구나 넘어질 수 있기에 용서와 구원이 필요하고, 또 누구나 일어설 수 있기에 희망과 사랑을 주어야 합니다.

마호메트: (미소를 지으며) 그래요. 알라께서도 코란에서 말씀하셨지요. "진실로 하나님은 사람의 형편을 스스로 바꾸지 않으면 그들의 형편을 바꾸지 아니하시느니라." 인간에게 달렸다는 뜻이지요. 선택하고 노력하면 악도 선으로 바뀔 수 있다는.

공자: (감탄하여) 지혜로운 말씀이오. 결국 인간의 본성은 어떤 고정된 실체가 아니라 변화하고 성장하는 과정에 가깝군요.

부처: 끊임없이 변화하는 과정... (나지막이) 제행무상(諸行無常), 모든 것은 변하지 않는 것이 없지요. 인간이라는 존재도 고정된 실체가 아니라, 매 순간 변화하는 인연의 흐름입니다.

예수: (부처를 바라보며) 부처님 말씀이 깊습니다. 나도 바람 같은 성령이 사람을 변화시킨다고 말한 적이 있지요. 눈에 안 보이지만, 누구든 다시 태어날 수 있다고...

마호메트: 나 또한 사람의 마음이 하나님 뜻에 따라 새로워질 수 있음을 믿소. 악한 자가 한 순간의 깨달음으로 성자가 될 수도 있고, 반대로 선한 자도 교만에 빠지면 넘어지지요. 그러니 늘 겸손히 스스로를 돌아봐야 합니다.

공자: 하하, 모두 한뜻으로 합치되는군요. 참으로 다른 시대, 다른 땅에서 온 네 사람이 이렇게 통하는 부분이 있으리라고는!

예수: 진리란 하나이기에 다른 길로 가도 만나는 것일지 모릅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추구하는 방향이겠지요.

부처: (연못에 비친 네 사람의 모습을 가리키며) 보십시오. 연못 물에 비친 우리 모습을 보면, 형태는 다르나 모두 한 달을 비추고 있지 않습니까? 네 개의 다른 파장에도 그 근원은 같은 달빛입니다.

공자: (연못을 들여다보며) 달빛... 그렇소. 우리는 각기 다른 언어와 비유로 말해왔지만, 모두 인간 안의 밝은 빛을 말하고 있었던 게지요.

예수: (살며시 미소짓는다) 내 마음에도 평화가 찾아오는 것 같소. 서로를 이해하니 사랑이 싹트는 법이지요.

마호메트: (하늘을 올려다보며 두 손을 펼친다) 알라께서 보시기에 기뻐하실 거요. 이렇게 서로 다름을 넘어 이해에 이르렀으니.

(네 사람 모두 고요히 미소 지으며 한자리에 모여 선다. 달빛이 네 사람을 부드럽게 비춘다. 무대 위에 잠시 평화로운 침묵이 흐른다. 부드러운 피리 소리가 먼 곳에서 들려오는 듯하다.)

제3막 제1장

(시간이 흘러, 이제 밤이 깊어 새벽에 가까워지고 있다. 달빛은 희미해지고 동쪽 하늘이 어슴푸레 밝아온다. 네 현인의 대화는 철학적 담론에서 점점 형이상학적 탐구로 옮아간다. 그들의 목소리는 낮아졌으며, 말보다 직관과 통찰이 오가는 분위기다. 무대에는 옅은 안개가 깔려 몽환적인 장면을 연출한다.)

공자: (잔잔히) 이토록 의견이 가까워지니 기쁘기 그지없소. 그런데… (곰곰이) 우리가 아무리 인간의 본성을 논해도, 여전히 풀리지 않는 신비가 남아있소이다.

예수: (부드럽게) 어떤 신비를 말씀하시는지요?

공자: 인간이라는 존재 자체의 신비요. 선악을 떠나, 그 근본에 무엇이 있는가 하는… (가슴에 손을 얹으며) 우리는 무엇인가? 사람이라 불리는 이 존재는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마호메트: (조용히) 그것은 오직 알라만이 아시는 신비일지요. 코란에도 "너희에게 지식이 허락된 것은 적으니라" 하셨소. 우리는 다만 신이 주신 만큼만 알 뿐…

부처: (눈을 감은 채 고개를 끄덕인다) 무릇 생사윤회의 흐름 속에 던져진 존재들이지요. 처음이 없고 끝이 없는 인연법 속에 나타난 물거품과 같달까요.

예수: (공자를 바라보며) 인간은 창조주의 사랑에서 비롯되었고 그 품으로 돌아가는 나그네라 생각합니다. 처음 숨을 불어넣으신 분께서 마지막 숨 거둘 때 부르시지요.

공자: 나 역시 하늘로부터 명을 받아 이 땅을 살다 하늘로 돌아간다고 믿소. 그러나… (주위를 둘러보며) 인간이라 부르는 이 존재의 실체는 과연 무엇인가, 혼이요 육체요, 아니면 그 두 가지를 꿰뚫는 어떤 진리인가?

부처: (조용히) 실체라... 실체가 없다면 어떻겠습니까?

예수: (깜짝 놀라며) 실체가 없다니요?

부처: (주위를 둘러보며) 이 연못의 안개를 보세요. 잡으려 하면 흩어지고, 놓아두면 스스로 피어오르지요. 우리 존재도 그러합니다. 단단한 자아가 있다고 믿지만, 실상은 매순간 바뀌는 생각과 느낌, 그리고 육신의 변화가 이어질 뿐이지요. 고정된 '나'라는 것은 환상에 가깝습니다.

공자: (수염을 매만지며) 흐음, 무아(無我)의 말씀인가요. 자신이라는 고정불변한 주체는 없다는 뜻… 과연 형이상학적 진리로군요. 하지만 우리가 느끼는 이 개별성은 어찌 설명하리까? 내가 나임을 아는 이 의식은...

부처: 의식마저도 일시적인 흐름일 뿐입니다. 물길을 흐르는 소용돌이가 잠시 형태를 갖추지만 곧 흩어지듯, 우리의 의식도 인연 따라 뭉쳤다가 사라지지요.

예수: (깊은 숙고에 잠긴 표정) 만약 그렇다면, 우리 각자는 하나의 파도요, 같은 바다의 물방울에 지나지 않을까요?

마호메트: (눈을 반짝이며) 예수, 그 비유는 참으로 아름답소. 코란에도 '모든 것은 알라께로 돌아가느니라' 말씀하지. 우리가 결국 하나의 근원에서 왔다면, 본질적으로 같은 존재인지도 모르오.

공자: (하늘을 가리키며) 천지 만물은 모두 하나의 하늘 아래 있지요. 내 가르침에도 만물을 관통하는 하나의 법도가 있다고 믿소. 이를 '인(仁)'이라고 했지만, 실은 우주의 질서와 맞닿은 인간 정신의 밝음이었소.

부처: 제법이 공(空)하다는 깨달음은, 모든 분별과 구별을 넘는 큰 평화로 이어집니다. '나'와 '남'의 경계가 본래 없다 여기면, 어찌 남을 해치고 미워할 수 있겠습니까. 결국 절대적인 자비에 이르게 되지요.

예수: (감동한 듯) 말씀을 듣고 보니, 사랑 thy neighbor as thyself, 내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라는 말도 같은 이치로 연결되는군요. 남이 곧 나이니, 내 몸같이 사랑하는 것이지요.

공자: 그렇다면 인간 개개인은 한 조각 구름, 한 조각 물방울일 뿐, 하늘과 바다라는 큰 존재의 일부란 말씀이오?

마호메트: 그렇소. 알라께서 인간에게 영혼을 불어넣으셨다는 건, 신성(神性)의 한 조각을 심으셨다는 뜻이오. 우리는 그 조각을 가지고 있으니 서로 존귀한 존재이지요. 동시에 그 조각들은 결국 하나로 모이면 알라의 진면목에 닿을 것이오.

예수: 우린 처음부터 하나였는데, 세상에서 갈라져 서로를 모르고 싸운 건지도 모르겠소. 각자 제 이름, 제 얼굴을 가지고 살아가지만, 근본은 한 빛에서 나온 그림자들이었달까요.

부처: (잔잔히 미소 짓는다) 네, 달은 하나인데 물마다 다른 달이 비치지요. 그 물이 맑아지면 결국 같은 달을 비추고 있다는 깨달음을 얻을 것입니다.

공자: (한참 생각하다) 그렇다면... 인간의 선과 악에 대한 논의도 사실 그 그림자 놀음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모두 하나라면, 선과 악 또한 절대적 실체라기보다 우리 마음이 만든 이름일 수 있으니.

마호메트: (조용히) 선과 악도 신이 허락한 드라마일지요. 알라께서 우리를 시험하시려고 꾸며 놓은 한바탕 극... 그리고 끝내는 자비로우신 그분께서 모든 것을 거두어들여 평화를 주실지 모릅니다.

예수: (하늘 가장자리 희미한 여명을 가리키며) 저 동트는 빛을 보십시오. 밤새 선과 악을 논하며 씨름했지만, 결국 아침이 오듯 진리가 찾아오겠지요.

부처: (속삭이듯) 어둠이 가시면 그림자는 사라지고 오직 빛만 남겠지요...

(동쪽 하늘이 점차 밝아오며 무대가 옅은 푸른빛으로 변한다. 먼동이 트는 고요 속에 네 사람은 가까이 모여 서서 새벽빛을 응시한다. 그들의 얼굴에는 경외와 평화가 서려 있다. 그러나 동시에, 알 수 없는 미묘한 기류가 감돈다. 그 평화 속에서 더욱 근원적인 깨달음이 밀려오려는 찰나.)

제4막 제1장

(바로 그 순간, 무대 조명이 비현실적으로 바뀌어 네 인물의 그림자가 여러 갈래로 길게 드리운다. 바람이 세차게 불어 연못의 물결이 출렁이고, 나뭇가지들이 뒤흔들린다. 네 사람은 놀란 듯 주위를 둘러본다. 안개 속에서 정체 모를 속삭임과 웃음소리가 겹쳐 들리다가 곧 멈춘다. 무대에는 갑작스런 적막이 찾아든다. 네 인물은 서로 가까이 모여 경계한다.)

공자: (당황하여) 이 기이한 정적은 무엇이란 말인가...?

예수: (살며시 십자가 모양을 그으며) 우리 외에 또 다른 존재가 있는 것일까요?

마호메트: (주먹을 가슴에 대고) 알라시여, 우리를 지켜주소서...

부처: (주변을 둘러보며 조용히) 마음을 고요히 하세요. 무언가 깨달음을 주려 하는 지도 모릅니다.

(그때 무대 어딘가에서 알 수 없는 메아리 같은 목소리가 울려 퍼진다. 네 사람의 목소리가 아닌, 그러나 네 사람 모두의 음색을 머금은 듯한 중성적인 소리다. 공간 전체에서 속삭이듯 분명하게 들린다.)

목소리: (에코 효과처럼) 인간... 인간... 인간이라...

예수: (주위를 둘러보며) 누가 말하고 있는 거요?

목소리: (맑고 중성적인 음성) 너희는 묻고 답했지... 인간은 본래 선한가, 악한가...

공자: (조심스럽게) 그렇소. 우리는 그 답을 찾아 각자의 지혜를 모으고 있었소이다. 당신은 누구시오?

목소리: 나를 누구라 한들 무엇이 달라지랴. 나는 물음 그 자체, 또는 깨달음 그 자체일지니. (약간 웃음기 있게) 혹은... 너희 자신.

부처: (두 손 모아 합장) 우리 자신의 목소리라... 곧 우리 안의 참된 자아가 말씀하시는 것인가요?

목소리: 허상 속의 그림자가 스스로를 비추어 묻는다... (호기심 가득한 어조로) "인간"이라... 너희가 밤새 논한 그 존재... 그 본성이 선한지 악한지 묻던 그 "인간" 말이다.

마호메트: 그래, 그렇소. 우리가 파헤치려 한 것이 바로 그 인간이오.

목소리: 하지만 묻노니, 너희가 말하는 그 "인간"이란 것이... 과연 무엇이더냐?

공자: (단호하게) 우리 모두... 여기 모인 우리 넷, 그리고 세상에 살다 간 무수한 모든 이들이 바로 인간이오. 생각하고 느끼고 선택하는 존재... 공동체를 이루는 존재... 그것이 인간 아니겠소.

목소리: 흐흐, 너희는 여전히 현상(現象)만을 말하는구나. 그것은 모양일 뿐, 이름일 뿐. "인간"이라는 이름 뒤에 숨은 실체를 보았느냐?

예수: (확신에 차서) 인간의 실체는 하나님의 자녀라는 존귀함에 있소. 창조주의 숨결을 지닌 영혼...

마호메트: (엄숙히) 그리고 흙으로 지은 육신을 함께 가진, 육과 영의 결합체이지.

목소리: 영혼이라... 육신이라... 허나 그 영혼이 어디에 있으며, 육신이 결국 어디로 가더냐? (조금 날카롭게) 영혼은 빛과 같이 눈에 보이지 않고, 육신은 한 줌 흙으로 돌아가거늘, 눈에 보이지 않는 것과 결국 사라지는 것을 묶어 무엇이라 부르는가? 그것이 "인간"인가?

공자: (흔들리는 목소리로) 인간은... 음... 인간은 관계 속에 존재를 드러내오. 혼자 있을 땐 알 수 없지만, 부모 자식, 임금 신하, 벗과 이웃... 그런 관계망 속에서 역할과 의무를 다하며 인간다워지는 법...

목소리: (나지막이 웃음) 관계라... 역할이라... 모두 껍데기일 뿐. 벗도 이웃도 시절이 바뀌면 흩어지고, 임금과 신하도 나라가 기울면 사라지는 것. 부모와 자식의 인연도 세월 앞에 흐릿해지다 끝내 기억 속 이야기가 되리라. 그런 덧없는 인연들을 엮어 놓고 "인간"의 본질이라 할 텐가?

예수: (두 손을 모으고 간절히) 인간은 사랑할 수 있는 존재라는 데 그 의미가 있지 않겠소. 비록 풀과 같이 시들고 그림자 같이 사라질지라도, 사랑의 행위 하나하나는 영원에 새겨진다고 믿소. 주님께서 기억하시기에...

목소리: (잠시 침묵) 사랑... 사랑이라... 참으로 아름다운 말이다. 그러나 그 "사랑"을 하는 주체인 "인간"은 누구인가? (격정적으로) 너희는 밤새 수많은 말을 했지만, 그 전제인 "인간"이 무엇인지 당연하게 넘겼다! 선하다 악하다 논하였지만, 실체를 묻지 않았지.

부처: (잔잔하게) 그렇다면 이제 묻겠습니다. 인간이란 실체가 없고, 그 개념이 허상이라면... 우리가 지금껏 논한 모든 것은 어떤 의미를 갖습니까?

공자: (깨달은 듯 눈을 크게 뜨며) 우리가 논한 모든 것은... '인간'이라는 개념을 전제로 하고 있었네!

예수: (숨죽인 목소리로) 하지만 만약... 그 '인간'이라는 관념 자체가...

마호메트: (목소리가 떨리며) ...그것 자체가 한낱 환상이라면...

부처: (아득한 미소로) ...우리가 나눈 모든 말은 무슨 의미를 지닐 것인가요?

(네 사람이 주고받으며 한 문장을 완성하자, 무대 천장 위로부터 환한 빛이 내리쬔다. 동시에 네 사람의 모습이 흔들리기 시작한다. 각 인물의 윤곽이 흐려져 투명해지고, 서로의 모습 안으로 스며들듯 겹쳐진다. 부처와 공자와 마호메트와 예수의 형상이 서서히 하나의 빛나는 형상으로 융합된다. 그 형상은 네 얼굴이 겹쳐진 듯하다가 곧 네 얼굴 모두를 닮은 새로운 얼굴로 변한다. 그리고 마침내 인간의 형태마저 넘어선 순수한 빛의 구체(球體)로 변화한다. 빛의 구체가 공중에 떠올라 연못 위를 맴돈다. 연못 속에 비친 달 그림자는 이미 사라졌고, 대신 그 빛나는 구가 수면에 비친다.)

합창: (네 목소리가 겹쳐 하나의 장중한 울림으로) 우리는 누구인가...

몸을 입고 이름을 갖기 전,

선과 악의 저울 앞에 서기 전,

이 땅에 태어나기 전부터 존재했던 그 무엇...

한 사람의 꿈이 아니요, 일월성신(日月星辰)의 노래 속 허무한 메아리가 아니니,

우리의 본질은 어디에 깃들었나...

합창: 우리는 한낱 그림자인가,

큰 빛이 스스로를 비추어 생긴 환영인가.

서로 다른 듯 천 차만 별 같으나,

실은 한 하늘 아래 한 뿌리에서 갈라진 나무가지.

스스로를 인간이라 부르며 우는 꿈의 등장인물들...

합창: 아, 인간이란 무엇이기에 이리도 묻는가.

바람에 흩어지는 안개,

새벽이 오면 사라지는 밤안개와 같은 것을.

그 속에 선과 악이라 이름 붙인 색실로 옷을 지어 입혔도다.

그러나 옷을 벗으면 남는 것은 덧없음의 알몸.

합창: 인간이 실은 없고,

천 개의 강에 비친 하나의 달빛만이 있을 뿐.

모두가 거기서 나와 거기로 돌아가니,

처음과 끝에 누구의 이름도 없도다.

존재와 비존재의 경계가 무너지고 오직 한 마음, 한 숨결만 흐를 뿐...

합창: 그러니 묻는다,

허깨비 같은 인간이여,

네가 짓는 선은 허상인가? 네가 범한 악은 허망인가?

모두 한 물결의 흐름이라면, 무엇을 가리켜 선이라 하고 악이라 하는가.

의미를 묻던 그 입술마저 꿈속의 속삭임...

합창: (점점 희미해지는 목소리) 그러나 의미 없음을 슬퍼 말라.

꿈속에서도 꽃은 아름답고, 새는 노래하지 않더냐.

환상이라 해도 사랑은 빛을 발하고, 자비는 향기를 남긴다.

허상인 인간이여, 허상이기에 더욱 자유로이 선을 그리라.

실체 집착이 사라진 자리에서 참된 선이 꽃피우리...

(빛의 구체가 갑자기 산산이 부서져 수천 가닥의 빛줄기가 되어 사방으로 흩어진다. 동시에 무대를 채웠던 안개가 걷히고, 나무와 연못, 달빛 모든 것이 자취를 감춘다. 대신 무대에는 텅 빈 어둠과 고요만이 남는다. 한 줄기 서광이 어둠을 가르며 비추어 들어온다. 멀리서 새벽을 알리는 닭 울음 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온다. 그 희미한 빛 속에서 네 사람의 형체가 다시금 떠올라 각기 본래의 위치에 서 있다. 그들은 서로를 바라보지만, 한동안 말이 없다. 마침내 공자가 천천히 입을 연다.)

공자: (나지막이) 방금 우리가 본 것은... 무슨 뜻이었을까요?

예수: (눈을 감았다 뜨며) 인간이라는 경계가 허물어진 느낌이었소. 우리는 모두 하나였고, 또 아무 것도 아니었지요.

마호메트: (하늘 향해 속삭이듯) 알라 외에는 아무도 없고, 그분 안에서 우리가 하나가 된 것이었을까요...

부처: (미소를 머금고) 공하다는 것의 한 단면을 보여준 것 같습니다. 인간이란 실은 이름일 뿐, 고정된 실체가 아니라는...

공자: 그렇다면 우린 지금까지 허상에 대해 논쟁한 셈인가요? 인간이 본래 없는데, 선하고 악함을 논했다니.

예수: (부드럽게) 허상이긴 해도, 우리가 겪는 사랑과 죄와 미움과 용서의 체험은 그 순간순간 진실했지요. 꿈이라 하여 느끼는 기쁨과 슬픔이 거짓은 아니듯...

마호메트: 그러하기에 알라께서 우리를 시험하시고 인도하신 것이겠지요. 비록 덧없는 인생이라도 그 안에 심은 뜻은 헛되지 않으니.

부처: 공즉시색 색즉시공(空卽是色 色卽是空)이라... 허공이 곧 형상이요, 형상이 곧 허공이지요. 비어 있기에 한없이 담아낼 수 있고, 결국 사라지기에 지금 이 순간이 값진 것 아니겠습니까.

공자: (환히 웃으며) 그렇소이다. 일장춘몽 속 인생일지라도, 그 꿈결에 꽃을 심고 노래를 불렀다면 헛된 일이 아니었으리.

예수: (동이 튼 하늘을 가리키며) 밤새 긴 이야기가 끝나고 새날이 밝아오고 있소. 우리 각자 머나먼 길을 떠나 여기 만났다가, 이제 다시 길을 가야 할 때인 듯합니다.

마호메트: (미소 짓는다) 그렇군요. 그러나 오늘 나눈 깨달음과 우정은 영원히 제 가슴에 남을 것이오.

공자: 나 역시 많은 것을 배웠소이다. 각자의 길로 돌아가더라도, 우리는 더 이상 낯선 이들이 아니오.

부처: 오늘의 이 인연에 감사합니다. 다시 만날 수 있을지 모르나, 모든 중생의 행복을 빌겠습니다.

예수: (한 사람 한 사람 눈 맞추며) 평화를 빕니다. 하나의 꿈에서 깨어나 각자의 현실로 돌아가더라도, 사랑과 자비의 진리는 변치 않을 것이오.

마호메트: 알라의 축복이 함께하길.

공자: 하늘의 도가 그대들과 동행하기를.

부처: 모든 존재가 해탈에 이르기를.

예수: (미소 지으며) 아멘. 그리고 서로 사랑합시다.

(네 사람이 서로에게 가벼운 목례를 나눈다. 각자 무대의 다른 방향으로 천천히 걸어가 사라진다. 부처는 연못 저편 안개 속으로 스며들 듯 사라지고, 공자는 거목 뒤로 천천히 걸어 나가며 자취를 감춘다. 마호메트는 모래언덕 너머 동쪽 여명 속으로 사라지고, 예수는 나무에 기대었던 십자가 모양의 그림자가 드리운 자리에서 조용히 퇴장한다. 무대 한가운데에 보리수 나무만이 남아 있고, 새벽 햇살을 받아 잎사귀들이 황금빛으로 빛난다. 새들이 우지짖고, 무대 위로 따스한 아침 햇살이 가득 채워진다.)

막이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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