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년 르완다에 심은 사랑, '언더우드 선교상' 빛나는 헌신
- 이상훈 선교사의 르완다에서의 25년 헌신과 사랑의 간증
- 다양한 사역 소개: 학교와 병원 건립, 교육 활동
- 개인적 여정: 신앙 회복, 가족과의 인연, 선교를 통한 깨달음
"르완다의 언더우드" 이상훈 선교사 간증 상세 정리: 25년 헌신과 사랑의 발자취
오늘, 우리는 특별한 감동과 깊은 울림을 선사할 이야기를 마주하게 될 것입니다. 2018년 언더우드 선교상을 수상하신 이상훈 선교사님의 간증을 통해, 르완다에서의 25년간의 헌신과 사랑, 그리고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하심을 함께 경험해 볼 텐데요. 이 간증은 단순한 개인의 이야기가 아닌, 고통과 절망 속에서 피어난 희망의 씨앗, 그리고 그 씨앗을 틔우기 위해 묵묵히 헌신해 온 한 선교사님의 삶의 기록입니다. 지금부터 "새롭게 하소서" 프로그램에 출연하신 이상훈 선교사님의 감동적인 간증 내용을 상세히 정리하여, 여러분께 생생하게 전달해 드리겠습니다.
1. 언더우드 선교상 수상과 르완다 소개: 겸손과 감사의 시작
김학종 목사님의 소개와 함께, 이상훈 선교사님은 밝은 미소로 스튜디오에 등장하셨습니다. 방송국 방문이 낯설지만 설레는 듯한 모습에서, 순수하고 겸손한 성품이 엿보였는데요. 김장 아나운서는 언더우드 선교상 수상을 진심으로 축하하며, 수상 소감을 요청했습니다. 이상훈 선교사님은 "부끄럽다"는 겸손한 답변으로 말문을 여셨습니다. 수많은 무명 선교사들의 헌신에 비하면 자신이 상을 받는 것이 과분하게 느껴진다고 고백하며, 오히려 격려와 채찍질로 받아들이겠다는 겸손한 소감을 밝혔는데요. 이어서 르완다라는 나라에 대한 소개가 이어졌습니다.
이상훈 선교사님은 르완다를 "비극의 땅"이라고 칭하며, 1994년 100만 명에 달하는 희생자를 낸 종족 갈등의 아픔을 상기시켰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전쟁의 폐허를 딛고 아프리카에서 보기 드물게 높은 경제 성장률을 기록하며 재건에 힘쓰고 있는 희망의 땅이라고 소개했는데요. "아직 최빈국이지만, 질서 있고 깨끗하며 희망을 주는 나라" 라는 묘사는, 르완다가 가진 역동적인 에너지를 느끼게 했습니다. 1994년 난민 구호 활동을 시작으로 25년간 르완다와 함께 해 온 이상훈 선교사님의 이야기는, 이제 본격적으로 시작될 예정입니다.
2. 르완다에서의 사역 소개: 학교, 병원, 그리고 복음의 씨앗
김학종 목사님은 25년간 르완다에서 땀과 눈물로 헌신해 온 이상훈 선교사님의 사역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을 요청했습니다. 이에 이상훈 선교사님은 현재 진행 중인 다양한 사역들을 소개하며, 르완다를 향한 깊은 애정을 드러냈는데요.
가장 먼저 소개된 사역은 유치원과 초등학교 운영입니다. 폐허가 된 건물을 개조하여 시작한 학교는, 현재 초등학교 6학년까지 확장되었고, 교실 증축을 통해 더욱 많은 아이들에게 교육의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고 합니다. "참고만 남아있던 건물" 이라는 표현에서,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교육을 통해 희망을 만들어가려는 숭고한 노력을 엿볼 수 있습니다.
두 번째 사역은 개신교 연합 대학에서의 교수 활동입니다. 개발학을 가르치며, 르완다의 미래를 이끌어갈 젊은 인재들을 양성하는 데 힘쓰고 있다고 합니다. 단순히 구호 활동에 머무르지 않고, 교육을 통해 르완다의 자립을 돕고자 하는 이상훈 선교사님의 비전을 엿볼 수 있는 대목입니다.
마지막으로, 5년 전부터 추진해 온 병원 건립 프로젝트를 소개했습니다. 한국의 후배 선교사 부부의 헌신적인 도움으로 건축이 거의 완료 단계에 이르렀다고 하는데요. 처음에는 망설였지만, 후배들의 열정과 헌신에 감동받아 병원 건립을 결심하게 되었다는 이야기는, 동역자들과 함께 르완다를 변화시키고자 하는 이상훈 선교사님의 따뜻한 마음을 보여줍니다. 이처럼 학교, 대학, 병원 건립 사역은, 교육과 의료를 통해 르완다 사람들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고, 복음의 씨앗을 뿌리는 귀한 사역임을 알 수 있습니다.
3. 선교사의 길을 걷게 된 계기: 하나님과의 만남, 그리고 소명
어떻게 르완다, 그 먼 땅까지 가게 되었을까요? 김학종 목사님은 이상훈 선교사님이 선교사의 길을 걷게 된 계기를 질문하며, 그의 인생 여정에 대한 궁금증을 자아냈습니다. 질문에 답하기 위해, 이상훈 선교사님은 어린 시절부터 하나님을 만나기까지의 과정을 진솔하게 털어놓았는데요.
모태신앙이었지만, 대학 시절 격변하는 사회 속에서 신앙의 회의를 겪었다고 고백했습니다. "가시나무" 였던 신앙은, 사회의 혼란과 개인적인 방황 속에서 흔들렸고, 7-8년간 하나님을 떠나 방황했다고 합니다. "사실은 제가 믿음이 없었다" 라는 솔직한 고백은,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신앙의 위기를 보여주는 듯합니다.
하지만 친구의 인도로 참석한 성경통독 수련회에서, 그는 다시 하나님을 뜨겁게 만나게 됩니다. 성경 말씀을 통해 살아계신 하나님을 경험하고, 잃어버렸던 믿음을 회복하게 된 것입니다. "머리 한 대 초자아가 장독 깬다" 는 경상도 사투리를 인용하며, 하나님을 처음 만났을 때의 강렬한 경험을 생생하게 묘사했는데요. 이 경험은 그의 인생의 방향을 완전히 바꾸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만난 후, "세상의 빛과 소금" 이 되고자 하는 열망이 그의 마음을 가득 채웠습니다. 처음에는 기자를 꿈꿨지만, 기아대책기구 광고를 보면서 선교사의 길을 생각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제3세계에 복음과 떡을 전할 평신도 전문인 선교사" 라는 문구는, 그의 마음을 사로잡았고, 곧바로 기아대책기구에 지원하게 됩니다. 스물일곱, 젊은 나이에 안정된 미래를 포기하고 험난한 선교사의 길을 선택한 것은, 오직 하나님의 부르심에 대한 순종 때문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4. 르완다 난민촌에서의 첫 경험: 충격과 사명감
기아대책기구 간사로 1년간 국내에서 활동하던 중, 르완다에서 전쟁이 발발했습니다. 구호 요원 파견 요청에, 그는 망설임 없이 르완다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습니다. "무식하면 용감하다" 라는 표현처럼, 르완다에 대한 정보도, 준비도 부족했지만, 하나님께서 보내셨다는 확신 하나로 떠났다고 합니다.
콩고 난민촌에 도착했을 때, 그는 처참한 현실에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시체가 널브러져 있고, 헐벗은 사람들이 고통받는 모습은, 그가 상상했던 것 이상으로 끔찍했습니다. "인간이 겪고 있는 전혀 다른 종류의 고통" 이라는 표현은, 당시 난민촌의 비참한 상황을 단적으로 보여줍니다. 크리스천이 아니었다면 하나님께 실망했을지도 모른다고 고백하며, 오히려 이러한 상황 속에서 하나님의 깊은 뜻을 깨닫게 되었다고 덧붙였습니다.
폐허가 된 땅에서, 그는 하나님의 보내심을 확신하고 사명감을 불태웠습니다. 이러한 헌신적인 자세는, 곧 르완다에서의 25년 사역의 초석이 되었습니다. 난민촌에서의 충격적인 경험은, 그에게 르완다 사람들을 향한 깊은 연민과 사랑을 심어주었고, 평생을 르완다를 위해 헌신하겠다는 결심을 굳건하게 만들었습니다.
5. 르완다에서의 결혼과 가족: 동역자와 함께 걷는 길
난민촌에서 봉사하던 중, 그는 인생의 동반자를 만나게 됩니다. 부족한 일손을 돕기 위해 자원봉사자로 온 아내와 운명적인 만남을 가진 것입니다. "사무실에서 욕 많이 먹었습니다. 뭘 하라고 보냈더니 연애하고 왔다고" 라는 유머 섞인 이야기는, 당시 긴박했던 구호 현장 속에서도 사랑이 싹텄음을 짐작하게 합니다.
열악한 환경 속에서 구호팀원들은 스트레스와 갈등을 겪었지만, 아내는 밝은 성격과 뛰어난 친화력으로 팀 분위기를 훈훈하게 만들었습니다. 특히 갈등을 조정하고, 팀원들을 위로하는 아내의 모습은, 이상훈 선교사님에게 큰 매력으로 다가왔다고 합니다. "피스메이커" 였던 아내는, 척박한 환경 속에서 지쳐있던 그의 마음을 따뜻하게 감싸주었습니다.
만난 지 2주 만에, 그는 아내에게 프로포즈를 했습니다. 속전속결로 이루어진 프로포즈는, 마치 영화의 한 장면처럼 드라마틱합니다. 아내는 세 가지 질문을 던졌습니다. "크리스천인지", "평생 선교를 할 수 있는지", 그리고 "키가 큰지" 였습니다. 마지막 질문은 다소 엉뚱했지만, 진지한 질문들을 통해 아내 역시 깊은 신앙과 헌신적인 마음을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특히 마지막 질문에 대한 답변으로 성경 구절을 인용한 것은, 재치와 순발력을 엿볼 수 있는 대목입니다. "사람이 염려한다고 그 키를 한 자나 더할 수 있느냐" 라는 성경 구절은, 유머러스하면서도 신앙적인 답변이었습니다.
프로포즈는 성공적이었고, 두 사람은 르완다에서 가정을 이루었습니다. 선교 현장에서 만난 부부는, 서로에게 힘이 되어주며 험난한 선교의 길을 함께 걸어가게 되었습니다. 아내와의 만남과 결혼은, 르완다 사역에 있어서 큰 힘이 되었으며, 이후 자녀들과 함께 겪는 어려움 속에서도 서로 의지하며 극복해 나가는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6. 자녀 양육의 어려움과 하나님의 은혜: 눈물과 감격의 싱가포르 방문
선교사 가정도 일반 가정과 마찬가지로, 자녀 양육의 어려움을 겪습니다. 특히 의료, 교육 환경이 열악한 르완다에서 자녀들을 키우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이상훈 선교사님은 자녀들이 성장하면서 겪었던 어려움과, 그 속에서 경험한 하나님의 은혜를 감동적으로 이야기했습니다.
자녀들이 아플 때, 제대로 된 의료 시설을 이용할 수 없어 마음을 졸였고, 자녀들의 교육 문제, 특히 대학 진학 문제에 대한 고민이 깊었습니다. "부모가 대책이 없다" 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선배 선교사들의 고충을 비로소 이해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자녀들을 외국으로 유학 보내는 것은 큰 경제적 부담이었고, 현실적인 어려움에 직면하게 되었습니다.
특히 큰 딸의 대학 진학 과정은, 잊을 수 없는 감동과 은혜의 순간으로 가득합니다. 재수까지 하며 미국 대학 진학을 준비하던 큰 딸은, 장학금을 신청해야만 하는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좌절하지 않고 묵묵히 공부했습니다. "아빠, 올해도 장학금 신청해야 돼" 라는 딸의 질문은, 가슴을 뭉클하게 만들었습니다. 장학금을 신청하면 합격 가능성이 낮아짐에도 불구하고, 어려운 가정 형편 속에서 딸은 희망을 포기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결국 큰 딸은 싱가포르의 명문 대학에 장학금을 받고 합격했고, 둘째 딸까지 연이어 합격하는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가족 초청 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싱가포르 대학을 방문했을 때, 그는 감격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가계 수입과 어려운 가정 형편을 솔직하게 밝혔음에도 불구하고, 대학 측에서 두 딸 모두에게 장학금을 지급하고, 기숙사비까지 지원해 준 것입니다.
"하나님이 예들에 대해서 계획이 있으시구나" 라는 깨달음과 함께, 그는 비로소 "하늘 아버지의 마음" 을 알게 되었다고 고백했습니다. 자녀들의 문제를 통해 하나님의 따뜻한 사랑과 섬세한 계획하심을 경험하게 된 것입니다. 싱가포르에서의 경험은, 자녀 양육의 어려움 속에서도 하나님은 항상 함께 하시고, 가장 좋은 길로 인도하신다는 것을 확신시켜주는 귀한 체험이었습니다.
7. 사역의 어려움과 깨달음: 사랑, 긍휼, 그리고 회개
25년간의 사역은 기쁨과 보람뿐만 아니라, 어려움과 고통도 수반되었습니다. 이상훈 선교사님은 사역 현장에서 겪었던 다양한 어려움과, 그 속에서 깨달은 소중한 교훈들을 솔직하게 털어놓았습니다.
가장 힘들었던 것 중 하나는, 아프리카 사람들의 고통을 마주하는 것이었습니다. 특히 질병으로 고통받는 아이들을 보면서, 깊은 슬픔과 안타까움을 느꼈다고 합니다. "자식을 키우니까, 아프리카 사람들도 자녀들 겪는 어려움들을 보고 힘들어하거든요" 라는 말은, 부모의 마음으로 아프리카 사람들을 이해하게 되었음을 보여줍니다. 선천적인 질병, 말라리아 등 각종 질병으로 고통받는 아이들을 보면서, 그는 깊은 연민과 긍휼의 마음을 갖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르완다 사람들에 대한 마음이 부족했던 자신을 발견하고 괴로워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르완다로 보내셨지만, 과연 그들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있는지 스스로에게 질문하며, 부족함을 느꼈다고 합니다. "하나님 끝까지 이렇게 보내셨는데, 제가 그 사람들에 대한 마음이 충분하지 않은 걸 제가 깨달을 때가 또 괴롭습니다" 라는 고백은, 끊임없이 자신을 성찰하고, 더욱 성숙한 선교사로 나아가고자 하는 그의 진지한 노력을 보여줍니다.
또 다른 어려움은, 현지 직원들의 부정부패 문제였습니다. 돈의 유혹에 쉽게 넘어가는 직원들을 보면서, 실망감과 함께 책임감의 무게를 느꼈다고 합니다. 해고 결정을 내릴 수밖에 없었던 상황 속에서, 그는 갈등과 고뇌를 겪었습니다. 우간다에서 인사 책임자에게 해고했던 직원 명단을 요청했을 때, 86명이라는 숫자에 놀랐다고 합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 해고했던 직원 중 한 명으로부터 "미안하다. 그때는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했지만, 지금 돌이켜보니 한 가정의 가장들을 너무 몰아세웠다" 라는 메일을 받고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관리자로서의 마음으로만 사람을 대했다" 는 깨달음은, 그에게 인간적인 연민과 긍휼의 마음을 갖게 했습니다.
2008년, 동생의 죽음을 통해 그는 인생의 깊은 의미를 깨닫게 됩니다. 폐암으로 세상을 떠난 동생을 간호하며, 죽음 앞에서 인간의 연약함과 유한함을 절실히 느꼈습니다. "내 친동생에 대해서 느끼는 고통, 절망감, 간절함, 간구, 이런 것들이, 제가 그동안 아프리카에서 만났던 후원 아동들에 대해서 제가 갖지 못했다는 것을 깨닫게 됐죠" 라는 고백은, 그동안 간과했던 소중한 가치를 깨닫게 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동생의 죽음을 통해, 그는 비로소 "정말 소중한 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정말 부탁하신 사랑하는 거였다" 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아프리카 사역을 돌아보며, 그는 5년간 5700명의 후원 아동 중 5명이 사망했지만, 단 한 번도 장례식에 참석하지 않았다는 사실에 깊이 회개했습니다. "사람 사랑하는 것에 크게 제가 해야 될 거라는 것에 대해서 깨닫게 되었습니다" 라는 고백은, 앞으로 르완다 사람들을 더욱 사랑하고 섬기겠다는 그의 다짐을 보여줍니다.
8. 잊을 수 없는 아이, 프리실라: 가혹한 운명과 하나님의 마음
수많은 아프리카 아이들 중, 이상훈 선교사님의 기억 속에 깊이 남아있는 아이가 있습니다. 바로 선천성 심장병을 앓던 소녀, 프리실라입니다. 우간다 고산지대에 살던 프리실라는, 심장 판막 질환으로 고통받고 있었습니다. 한국의 도움으로 수술 기회가 주어졌지만, 두 명의 환자 중 한 명만 선택해야 하는 안타까운 상황에 놓였습니다. 더 위독했던 배나에게 먼저 기회가 주어졌지만, 프리실라는 순서를 기다리던 중 말라리아에 걸려 세상을 떠났습니다.
"가끔 때로는 반대로 했으면 둘 다 살릴 수도 있었던 거 아닌가 생각도 들고" 라는 말은, 당시 감당해야 했던 고통스러운 선택의 무게를 짐작하게 합니다. 프리실라의 죽음은, 그에게 깊은 슬픔과 죄책감을 안겨주었습니다. "엉뚱하고 가혹한 운명" 이라는 표현은, 안타까운 심정을 그대로 드러냅니다. 지역 사무실에서 딱 한 번 만났던 프리실라의 얼굴은, 오랫동안 그의 기억 속에서 잊혀지지 않았습니다.
소대장을 지낸 친구의 위로를 통해, 그는 프리실라의 죽음 속에서 하나님의 마음을 깨닫게 됩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안타깝냐? 나는 매일 그 수많은 영혼이 떠내려가는 걸 보고 있다" 라는 친구의 말은, 큰 울림을 주었습니다. 프리실라 한 명의 죽음에 안타까워하는 자신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구원받지 못하고 죽어가는 수많은 영혼들을 향한 하나님의 애끓는 마음을 깨닫게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세상에서 지금도 구원받지 못하고 어둠 속에서 세상을 떠난 수많은 영혼들의 대해서 얼마나 안타까워하실 건가에 대해서 조금이나마 깨닫게 된 거죠" 라는 고백은, 프리실라의 죽음이 단순한 비극이 아닌, 하나님의 깊은 뜻을 깨닫게 하는 통로가 되었음을 보여줍니다. 프리실라의 이야기는, 25년간 르완다를 헌신해 온 이상훈 선교사님의 사역의 깊이와, 그가 가진 긍휼의 마음을 엿볼 수 있는 감동적인 사례입니다.
9. 르완다의 미래와 한국 교회를 향한 기도: 동반 성장과 희망
방송 말미에, 이상훈 선교사님은 르완다의 미래와 한국 교회를 향한 기도 제목을 나누었습니다. 르완다를 "제2의 한국" 이라고 칭하며, 한국의 경제 성장과 교회 부흥을 르완다에서도 이루고 싶다는 소망을 밝혔습니다. "어려운 환경, 좁은 국토, 많은 인구 등 유사한 점이 많다" 며, 한국의 성공 경험을 르완다에 적용할 수 있다는 희망을 이야기했습니다.
특히 한국 교회가 르완다와 함께 성장하고, 르완다가 한국을 자랑스럽게 여길 수 있는 하나님의 나라가 되기를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저희가 보는 어떤 그런 비전이 한국에서도 같이 이루어지고, 그렇게 부끄럽지 않은 한국의 교회와 나라가 되어주시고, 저희가 그것을 자랑하고 또 되면, 그와 같은 하나님의 나라가 르완다에서도 확장될 수 있기를 기도하는 겁니다" 라는 기도 제목은, 르완다와 한국, 두 나라의 동반 성장과 하나님의 나라 확장을 염원하는 그의 간절한 마음을 보여줍니다.
마지막으로, 김학종 목사님은 다시 한번 언더우드 선교상 수상을 축하하며, 르완다 사역을 위한 축복과 격려를 아끼지 않았습니다. "갈 수 없다면 보내는 선교사, 기도해주는 선교사" 라는 말처럼, 한국 교회 성도들이 기도로 동역해 줄 것을 당부하며, 방송을 마무리했습니다. 이상훈 선교사님의 간증은, 25년간 르완다를 헌신해 온 한 선교사의 삶과, 그 삶을 통해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를 생생하게 보여주었습니다. 그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깊은 감동과 함께, 선교의 참된 의미와 가치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하는 귀한 시간이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