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우 속 드러나는 삶의 균열: 손보미 소설 "폭우" 깊이 읽기

손보미 작가의 소설 "폭우"는 한 부부에게 닥친 일련의 사건들을 통해 삶의 불안과 소통의 부재, 그리고 관계의 균열을 섬세하게 그려내는 작품입니다. 오디오 드라마 형식으로 접할 수 있는 이 소설은, 평범해 보이는 일상 속에 숨겨진 위태로운 감정의 파고를 촘촘하게 직조해내며 듣는 이로 하여금 깊은 공감과 함께 씁쓸한 여운을 남깁니다. 지금부터 "폭우"의 줄거리를 따라가며, 소설 속에 담긴 다양한 주제와 메시지를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소설은 아내의 시점에서 시작되며, 그녀의 남편이 전자제품 상점에서 갑자기 넘어지는 장면으로 이야기가 전개됩니다. 남편의 이러한 행동은 평소 그의 익살스러운 성격과 타인의 시선을 즐기는 모습과 겹쳐 동료들에게 단순한 장난으로 치부됩니다. 하지만 아내는 이러한 상황에 불쾌감을 느끼고, 남편의 부상이 가벼운 뇌진탕임에도 불구하고 왠지 모를 불안감을 감지합니다. 퇴근 후 병원으로 향하는 아내의 모습은 남편에 대한 걱정과 함께, 앞으로 닥쳐올 변화에 대한 막연한 기대감을 동시에 드러냅니다.

남편의 입원 생활은 오히려 부부에게 뜻밖의 평온함을 가져다주는 듯합니다. 남편은 병원에서 편안함을 느끼고, 아내는 그런 남편을 보며 결혼 생활을 되돌아보고 새로운 희망을 품습니다. 약간의 여유돈으로 남편의 대학 진학을 꿈꾸고, 아이를 갖는 미래를 상상하며 설레는 감정을 느끼지만, 동시에 불길한 예감 또한 감지합니다. 이러한 복합적인 감정은 앞으로 벌어질 사건에 대한 암시이자, 불안정한 부부 관계의 단면을 보여주는 듯합니다.

하지만 행복한 기대는 남편의 갑작스러운 시력 상실이라는 비극 앞에서 무너져 내립니다. 남편은 퇴원 후 갑자기 눈이 보이지 않는다고 호소하고, 부부는 다시 병원을 찾게 됩니다. 의사들은 희망적인 이야기를 건네지만, 2년에 걸친 세 번의 수술은 오히려 빚만 늘리고 생활고를 심화시킬 뿐입니다. 마지막 수술을 기다리는 아내는 초라한 현실 속에서 잡지를 읽으며 힘겨운 시간을 보내고, 블루스 음악 잡지에서 우연히 발견한 노랫말은 그녀의 불안한 심리를 더욱 심화시키는 듯합니다.

경제적인 어려움 속에서 부부는 매달 마지막 주 화요일 저녁마다 구름의 식당을 방문하는 일상을 유지합니다. 이 식당은 그들에게 일종의 도피처이자, 팍팍한 현실을 잠시 잊게 해주는 공간입니다. 식당 주인 미스터 장과의 대화, 아들의 학업 문제 등 평범한 대화가 이어지지만, 어딘가 불편하고 불안한 기운이 감돕니다. 특히 아내가 TV 쇼에서 본 여배우의 이야기를 꺼내며 옆집 노인과의 관계에 대한 불안감을 언급하는 장면은, 그녀의 내면 깊숙한 곳에 자리한 불안과 불신을 드러내는 듯합니다.

남편의 시력 상실 이후, 아내는 맹인 남편을 묵묵히 돌보며 빚을 갚기 위해 고군분투합니다. 그녀는 계산에 매달리고, 남편은 라디오를 듣거나 점자 책을 읽으며 시간을 보냅니다. 남편은 아내에게 점자 자판을 부탁하고, 재미있는 이야기를 써서 방송국에 보내달라고 하지만, 아내는 남편의 이야기에 무관심하고, 절반은 잃어버리기까지 합니다. 이러한 무관심은 부부 사이의 소통 단절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시이며, 겉으로는 평온해 보이는 일상 속에 깊숙이 자리한 갈등을 암시합니다.

우연히 라디오에서 구청 강좌 소식을 접한 남편은 아내에게 강좌 수강을 권유하고, 아내는 미국의 대중음악 강좌를 선택합니다. 강좌를 통해 아내는 새로운 지식을 얻고, 활력을 되찾는 듯하지만, 동시에 강사에게 묘한 호감을 느끼기 시작합니다. 값비싼 외투를 입고 강의하는 강사의 모습, 미국의 대중음악과 문화에 대한 해박한 지식은 아내에게 새로운 세계에 대한 동경심을 불러일으킵니다. 그녀는 강의 내용을 꼼꼼히 필기하고 남편에게 이야기해주지만, 남편은 눈을 감은 채 무덤덤하게 듣기만 할 뿐입니다.

하지만 구청장의 결정으로 강좌는 갑자기 폐강되고, 아내는 깊은 실망감과 굴욕감을 느낍니다. 강사의 홀가분해 보이는 태도는 아내에게 더욱 큰 상처를 남기고, 그녀는 버림받았다는 느낌에 휩싸입니다. 주차장에서 강사와 마주친 아내는 용기를 내어 강사에게 말을 걸고, 그의 인간적인 면모를 발견하며 더욱 깊이 빠져듭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아들은 또다시 부부 싸움의 원인이 되고, 아내는 불안과 갈등 속에서 점점 더 깊은 수렁으로 빠져드는 듯합니다.

과거 화재 사건은 부부와 아들 사이의 관계에 드리운 그림자를 더욱 짙게 만듭니다. 화재 당시 아들은 옆집 할머니와 함께 있었고, 아내의 부재는 남편에게 깊은 상처로 남았습니다. 아들은 명문 중학교에 진학하지만, 아내는 아들을 멀리 보낸 것을 후회하며 끊임없이 아들을 집으로 데려오려고 합니다. 아들에 대한 집착은 부부 갈등의 또 다른 원인이 되고, 아내는 점점 더 불안정하고 신경질적인 모습을 보입니다.

어느 날 밤, 아내는 남편에게 아들을 데리러 가자고 제안하지만, 남편은 거절합니다. 아내는 과거 강사와 커피를 마시며 나눴던 대화를 떠올리고, 강사가 블루스 음악에 대해 물었던 것을 기억해냅니다. 강사에게 전화가 오고, 그는 블루스 잡지를 보여달라고 부탁합니다. 아내는 다시 강사를 만나기 시작하고, 수요일 저녁마다 외출하며 강사와의 만남을 이어갑니다. 남편에게는 강좌를 다시 듣는다고 거짓말하지만, 부부 사이의 불신과 불안은 점점 더 깊어져만 갑니다.

아내는 남편에게 자신의 얼굴이 늙고 초라해졌다고 자조적으로 이야기하고, 남편은 아내의 얼굴을 떠올리려 애씁니다. 밤중에 깨어 좁고 너저분한 방을 둘러보는 아내의 모습은 그녀의 불안정한 내면을 반영합니다. 어느 겨울, 남편은 교통사고를 당하고, 아내는 응급실에서 남편의 모습을 보며 묘한 감정을 느낍니다. 남편의 부상은 경미했지만, 아내의 마음 속에는 복잡하고 미묘한 감정이 소용돌이칩니다.

3월의 마지막 주 수요일, 강사에게 전화가 걸려오고, 아내는 다시 강사를 만나러 나갑니다. 그들은 낡은 카페에서 만나 음악, 영화, 소설 이야기를 나누고, 아내는 남편 이야기를 털어놓습니다. 강사는 맹인 뮤지션 이야기를 해주고, 아내는 다시 남편에게 강의 노트를 읽어줍니다. 하지만 부부 사이의 간극은 좁혀지지 않고, 오히려 점점 더 벌어지는 듯합니다.

폭우가 쏟아지는 밤, 부부는 아들을 데리러 가기 위해 차를 몰고 나섭니다. 아내는 굳게 입을 다문 채 운전하고, 남편은 불안감을 느낍니다. 아들은 집에 돌아오려 하지 않고, 과거 아들이 자신들에게 망신스러운 일을 당하게 하지 말라고 했던 것을 떠올립니다. 아내는 억지로라도 아들을 데려오겠다고 하지만, 남편은 시간 이 필요하다고 말하며 아내를 설득하려 합니다.

아내는 갓길에 차를 세우고, 남편에게 왜 화재가 났던 날 밤 어디에 있었는지 묻지 않느냐고 질문합니다. 남편은 아내를 보호하기 위해 침묵했다고 답하지만, 아내는 남편의 부정을 탓하며 울분을 토합니다. 아내는 화재 당일 밤 남편이 다른 여자와 함께 있었던 것을 알고 있었고, 그 사실을 숨겨왔던 것입니다. 그녀는 남편이 강사와의 저녁 식사에 초대한 이유가 자신을 잔인하게 짓밟고 싶어서였음을 깨닫고 절망합니다.

강사가 선물했던 CD 중 '중력에 맞서서'라는 노래는 부부의 위태로운 관계를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가사의 내용처럼, 아내는 현실의 무게에 짓눌려 벗어나고자 몸부림치지만, 결국 중력처럼 강하게 작용하는 현실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남편은 맹인 뮤지션들의 음악을 들려주며 아내에게 위로를 건네려 하지만, 오히려 아내의 상처를 더욱 깊게 후벼파는 결과를 초래합니다.

소설의 마지막 장면에서, 미스터 장은 텅 빈 식당에서 커피를 마시며 세상의 불행을 생각합니다. 폭우 속에서 멈춰버린 부부, 떠내려가는 사람들, 범죄, 질병, 고통 등 세상의 어두운 면을 떠올리며 자신의 평안한 삶에 감사하는 미스터 장의 모습은 씁쓸한 아이러니를 자아냅니다. "폭우"는 개인의 불행과 사회의 어둠을 묵묵히 응시하며, 삶의 고통과 슬픔을 깊이 있게 탐구하는 작품입니다.

손봄이 작가의 "폭우"는 2024년 8월 빈책 낭독회에서 소개되었으며, 박경리 작가의 "약으로도 못 고치는 병"과 함께 한국 중단편 소설 특별 선의 두 번째 작품으로 낭송되었습니다. 낭독자는 냄새에 대한 세밀한 묘사, 부부의 생활과 지력의 차이 등 소설 속 특징들을 언급하며,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과의 연관성을 추측하기도 합니다. 현대 소설에 대한 낯섦과 조심스러움을 언급하면서도, 독자들에게 건강하고 활기찬 여름을 보내기를 바라는 따뜻한 마음을 전하며 낭독을 마무리합니다. "폭우"는 현대 사회의 단면을 예리하게 포착하고, 인간 존재의 불안과 고독을 깊이 있게 성찰하는 손봄이 작가의 뛰어난 역량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주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