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국주의와 민족주의의 역사적 관계와 현대적 영향 분석: 국제 정세와 종교적 배경을 중심으로
- 제국주의와 민족주의의 연관성을 세계사적 흐름에서 분석.
- 민족주의 이론과 역사적 사례를 통해 현재 국제 정세를 이해.
- 전 근대적 가치관과 종교의 중요성을 재조명.
세계사 흐름으로 이해하는 제국주의와 민족주의의 관계
최근 트럼프 전 대통령의 그린란드, 파나마 관련 발언과 러시아의 지속적인 움직임은 단순한 개별 지도자의 성향으로만 해석하기 어렵습니다. 이러한 현상들은 세계사의 거대한 흐름 속에서 이해해야 하며, 특히 제국주의 시대와 현재 상황을 비교하여 분석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번 글에서는 종교적, 민족주의적 관점을 중심으로 현재 세계 정세를 심층적으로 조명해 보고, 민족주의의 기원과 변화 과정을 통해 오늘날의 국제 질서를 더욱 명확하게 이해해 보겠습니다.
미국을 비롯한 전 세계적으로 내셔널리즘, 즉 민족주의가 강화되는 추세는 현재 국제 정세를 이해하는 핵심 키워드입니다. 그렇다면 이 민족주의는 어떻게 생겨난 것일까요? 민족의 기원에 대한 두 가지 주요 관점, 즉 원초주의와 도구주의를 살펴보겠습니다. 원초주의는 민족이 언어, 혈통, 지역, 경제, 종교, 문화 등 공통의 근원에서 비롯된 실체라고 보는 입장입니다. 반면 도구주의는 민족주의가 국가 엘리트, 즉 통치자들이 국가를 효과적으로 다스리기 위한 도구로 만들어낸 개념이라고 주장합니다.
민족주의를 도구적으로 활용한다는 도구주의적 관점은 특히 유럽의 역사적 맥락에서 설득력을 얻습니다. 유럽은 국경이 모호하고 끊임없이 변화했으며, 민족보다는 계급과 종교적 정체성이 우선시되는 사회였습니다. 하지만 근대 국민국가의 등장과 함께 징병제가 실시되면서, 국가에 대한 소속감과 주인의식이 강조되었고, 이는 민족주의 확산의 배경이 되었습니다. 나폴레옹 전쟁은 민족 국가 이념을 유럽 전역에 전파하며 민족주의 발흥을 촉진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습니다.
민족주의 이론을 심층적으로 탐구하기 위해 세 가지 주요 이론, 즉 베네딕트 앤더슨의 '상상의 공동체', 어니스트 겔너의 민족주의 이론, 그리고 앤서니 스미스의 에스니 이론을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베네딕트 앤더슨은 민족을 '상상의 공동체'로 정의하며, 민족 구성원들이 서로 알지 못해도 같은 민족이라는 상상을 공유하는 정치적 공동체라고 설명합니다. 이러한 상상의 공동체가 가능하기 위한 핵심 요소는 바로 표준어의 보급입니다. 표준어는 인쇄술 혁명과 종교 개혁을 통해 확산되었으며, 특히 구텐베르크 혁명과 루터의 종교 개혁은 각 민족어로 성경을 번역, 보급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인쇄술의 발달과 함께 출판 시장이 형성되면서 표준어의 필요성이 더욱 증대되었습니다. 출판업자들은 더 넓은 시장을 확보하기 위해 다양한 지역의 사람들이 공통으로 이해할 수 있는 표준어를 사용한 출판물을 제작하기 시작했습니다. 신문과 소설은 표준어를 보급하고 민족적 상상력을 확산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동일한 신문과 소설을 읽음으로써 사람들은 서로 간의 유대감을 형성하고, '우리'라는 공동체 의식을 함양하게 되었습니다. 1936년 베를린 올림픽에서 손기정 선수가 마라톤에서 우승했을 때, 전 국민이 열광한 것은 바로 이러한 민족적 상상력과 공동체 의식이 발현된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국가의 역할 또한 민족주의 형성에 지대한 영향을 미칩니다. 19세기 말 러시아는 학교에서 러시아어 사용을 의무화하는 '공식적 민족주의' 정책을 시행했습니다. 이는 러시아 제국 내 모든 민족을 러시아 문화권으로 통합하고, 국가 권력을 강화하기 위한 시도였습니다. 하지만 공식적 민족주의는 양날의 검과 같습니다. 권력의 정통성을 강화하는 동시에, 민족적 가치를 훼손할 경우 오히려 민족의 배신자로 낙인찍혀 권력 기반이 약화될 수 있습니다. 중국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1989년 천안문 사태 이후 중국 공산당은 항일 교육을 강화하며 중화 민족주의를 고취하여 체제 안정과 권력 강화를 도모했습니다.
어니스트 겔너는 민족주의를 '상종유유(相從 유사)'로 설명하며, 민족주의 운동이 선행하고 그 결과로 민족과 민족 국가가 형성된다고 주장합니다. 이는 민족이 먼저 존재하고 민족주의 운동이 뒤따른다는 일반적인 통념과는 반대되는 견해입니다. 겔너는 근대화와 자본주의 발달로 인해 도시가 성장하고 노동 시장이 확대되면서, 균질적인 노동력 양성을 위한 교육 시스템이 필요하게 되었다고 분석합니다. 국가 주도의 교육 시스템은 표준어 보급과 문화적 동질성 함양을 통해 민족주의의 기반을 마련했습니다. 즉, 민족주의는 자본주의적 생산 관계와 노동력 상품화 과정에서 발생한 필연적인 결과라는 것입니다.
앤서니 스미스는 '에스니(Ethnie)' 개념을 통해 민족주의를 설명합니다. 에스니는 공통의 조상, 역사, 문화, 특정 영토와의 결합 등 민족적 연대감을 형성하는 요소를 의미합니다. 스미스는 에스니가 민족 형성의 필수 조건이라고 보았으며, 에스니가 존재하지 않는 상태에서는 인위적인 민족 창조가 불가능하다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에스니만으로는 민족이 자동적으로 형성되는 것은 아니며, 에스니를 가진 집단 중 일부가 역사적, 정치적 과정을 거쳐 민족으로 발전한다고 설명합니다. 문화 엘리트들은 에스니를 바탕으로 민족의 서사를 구성하고, 민족주의를 고취하는 역할을 수행합니다. 일제강점기 한국의 문화 엘리트들은 민족의 영웅담과 고유한 문화 전통을 강조하며 민족주의 운동을 전개했습니다. 체코 민족주의 역시 얀 후스라는 민족적 영웅을 발굴하고 그의 서사를 강조하며 민족 정체성을 확립했습니다.
민족주의와 제국주의는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습니다. 제국주의 시대의 양극화 심화와 사회 불안정은 역설적으로 민족주의를 강화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합니다. 경제적 불평등과 사회적 불안이 심화될수록 사람들은 민족주의에 더욱 의존하게 되며, 이는 극단적인 민족주의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오늘날 전 세계적으로 민족주의가 다시 부상하는 것은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민족주의가 타인에 대한 배타성과 혐오로 이어질 때 심각한 사회 문제를 야기할 수 있습니다. 특히 동질성이 높은 사회일수록 작은 차이에도 민감하게 반응하며 갈등이 격화될 위험이 큽니다. 유고슬라비아 내전이나 르완다 대학살과 같은 비극적인 사건들은 민족주의가 극단으로 치달을 때 얼마나 끔찍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는지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종교 또한 민족주의와 깊숙이 얽혀 있으며, 때로는 분쟁과 갈등의 원인이 되기도 합니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종교 개혁의 잔재가 남아 있는 대표적인 사례로 볼 수 있습니다. 종교 개혁 당시 가톨릭 교회와 개신교 세력 간의 갈등은 동서 교회의 분열로 이어졌고, 이는 오늘날까지도 국제 질서에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특히 우크라이나 서부 지역은 동방 가톨릭 교회인 우니아 교회의 영향력이 강하며, 이는 러시아 정교회와 가톨릭 교회 간의 오랜 갈등의 연장선상에서 이해될 수 있습니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의 친서방화, 특히 우니아 교회의 확산을 서방 세력의 영향력 확대로 간주하고 경계하는 시각이 존재합니다.
종교 개혁은 반 지성주의적 성격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중세 가톨릭 교회의 스콜라 철학은 지나치게 현학적이고 관념적인 경향을 보였으며, 이는 일반 대중과의 괴리를 심화시켰습니다. 종교 개혁가들은 원시 기독교로의 회귀를 주장하며, 성경 중심의 신앙을 강조했습니다. 이러한 종교 개혁의 반 지성주의적 측면은 반지성주의적 경향과 결합하여 반지성주의적 운동으로 이어지기도 합니다. 가톨릭 교회는 종교 개혁에 대응하기 위해 트리엔트 공의회를 개최하고 예수회를 창설했습니다. 예수회는 교황 직속 수도회로서 군대식 조직 체계를 갖추고, 군사력을 동원하여 신교 세력과 적극적으로 대립했습니다. 예수회는 보헤미아와 슬로바키아 지역을 가톨릭 세력으로 회복하는 데 성공했으며, 우크라이나 지역까지 영향력을 확대하려 했습니다.
로마 교황청은 역사적으로 정치적 영향력을 적극적으로 행사해 왔습니다. 특히 20세기 냉전 시대에는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폴란드 자유노조를 지원하며 동유럽 공산주의 붕괴에 기여했다는 평가도 있습니다. 교황청은 공산주의 붕괴 이후 이슬람 근본주의와 중국 문제에 직면했으며, 이에 대한 대응 전략을 모색하고 있습니다. 교황 베네딕토 16세는 이슬람 과격 세력에 대한 경계를 강화했으며, 프란치스코 교황은 온건 이슬람 세력과의 대화를 통해 이슬람 근본주의 문제를 해결하려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또한 프란치스코 교황은 중국과의 관계 개선을 위해 2018년 중국-바티칸 주교 임명 협정을 체결하고, 관계 회복을 시도하고 있습니다.
근대 사회의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근대 이전의 가치관, 특히 종교적 가치관에서 해법을 모색할 필요가 있습니다. 근대 자본주의 사회는 물질적 풍요를 가져왔지만, 동시에 인간 소외, 환경 파괴, 사회적 불평등과 같은 심각한 문제들을 야기했습니다. 근대적 사고는 보이는 세계, 즉 물질적이고 가시적인 것만을 중시하는 경향이 있으며, 이는 보이지 않는 세계, 즉 정신적이고 초월적인 가치에 대한 무관심으로 이어집니다. 종교는 보이는 세계를 넘어 보이지 않는 세계를 추구하며, 인간의 영적 욕구를 충족시키고 삶의 의미와 가치를 부여하는 역할을 수행합니다.
기독교와 이슬람교는 전 근대적 사고방식의 대표적인 예시입니다. 기독교적 사고방식은 '관념론(Idealism)'에 기반하며, 눈에 보이는 현실 세계 너머에 존재하는 이상적인 세계, 즉 이데아를 추구합니다. 반면 유명론(Nominalism)은 보편적인 관념의 실재를 부정하고, 개별적인 사물만이 실재한다고 주장합니다. 근대 과학은 유명론적 사고방식에 기반하여 발전했으며, 경험주의 철학의 토대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관념론적 사고방식 또한 인간의 정신세계와 가치관 형성에 중요한 영향을 미칩니다. 영국은 관념론적 전통과 유명론적 전통이 공존하는 대표적인 국가이며, 이는 영국 사회의 독특한 특징을 형성하는 요인으로 작용합니다.
근대 사회는 세속적 초월성을 추구하며, 이는 민족주의와 결합하여 전쟁과 갈등을 야기하는 원인이 되기도 합니다. 민족주의는 종교적 초월성이 약화된 근대 사회에서 종교의 대체재 역할을 수행하며, 사람들에게 소속감과 정체성을 제공합니다. 하지만 민족주의는 배타적이고 공격적인 성향을 띨 수 있으며, 이는 국가 간, 민족 간 갈등과 전쟁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이슬람 원리주의는 근대 제국주의의 침략과 사회 변동에 대한 반발로 등장한 근대적 현상이며, 세속적 초월성을 추구하는 극단적인 형태를 보여줍니다.
근대적 이성의 한계를 극복하고, 더 나은 미래를 건설하기 위해서는 근대적 이성과 함께 전 근대적 가치관, 특히 종교적 가치관을 재조명할 필요가 있습니다. 칼 바르트는 '신은 마음속에 있다'는 슐라이어마허의 신학을 비판하며, '신은 초월적인 존재'임을 강조했습니다. 바르트는 인간은 신에 대해 아무것도 알 수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을 이야기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이는 인간의 유한성과 불완전성을 인정하고, 초월적인 존재에 대한 겸손한 자세를 견지해야 함을 의미합니다. 1차 세계 대전은 인간의 이성과 과학에 대한 맹신이 얼마나 위험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는지 보여주는 역사적 교훈입니다. 유럽 지성인들은 전쟁의 참화를 통해 근대적 이성의 한계를 절감하고, 전 근대적 가치관의 중요성을 재인식하게 되었습니다.
미국 사회는 유럽 사회와 달리 근대적 이성에 대한 맹신이 여전히 강하며, 이는 현재 미국 사회가 직면한 여러 문제들의 근본적인 원인으로 작용합니다. 미국은 패권 국가로서의 지위를 유지하며, 물질적 풍요와 과학 기술 발전에 대한 자신감이 넘쳐 흐릅니다. 하지만 이러한 자신감은 때로는 오만함으로 이어질 수 있으며, 보이지 않는 세계, 즉 정신적이고 문화적인 가치에 대한 이해 부족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영국은 일찍부터 근대적 이성의 한계를 인식하고, 관념론적 전통과 경험론적 전통을 조화시키며 사회 발전을 추구해 왔습니다. 영국은 민족주의를 극복하고, 느슨한 형태의 민족 공동체인 영연방을 유지하며 세계 질서 유지에 기여하고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현재의 국제 질서와 사회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맹목적인 근대적 이성 숭배에서 벗어나, 전 근대적 가치관과의 조화를 추구해야 합니다. 특히 종교적 가치관은 인간의 정신적, 윤리적 성숙을 위한 중요한 지침을 제공하며, 이는 개인적 차원뿐만 아니라 사회적, 국제적 차원에서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느슨한 민족주의는 공동체 의식을 함양하고 사회 통합을 강화하는 긍정적인 측면을 지니고 있습니다. 하지만 배타적이고 공격적인 민족주의는 갈등과 분쟁을 야기할 수 있으므로 경계해야 합니다. 우리 사회는 느슨한 민족주의를 바탕으로 공동체 의식을 강화하고, 동시에 타 문화와 가치관에 대한 포용력을 높여야 합니다. 이를 통해 더욱 평화롭고 번영하는 미래를 만들어갈 수 있을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