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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적 불평등과 민족 갈등 : 진주만 공습 배경에 숨겨진 2차 세계 대전의 씨앗

1. 세계 대공황의 그림자와 민족주의의 부상

1929년 월스트리트 붕괴로 촉발된 세계 대공황은 전 세계를 경제적 혼란과 사회적 불안으로 몰아넣었습니다. 자본주의 경제 시스템의 근간을 흔드는 심각한 경제 침체는 기존의 자유주의적 국제 질서를 붕괴시키고, 각국은 자국 우선주의 정책을 채택하며 보호무역 장벽을 높여갔습니다. 이는 국제적인 협력과 상호 의존성을 약화시키고, 국가 간의 불신과 갈등을 심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했습니다 [1].

특히 대공황은 경제적 불평등을 심화시키고 사회 계층 간의 갈등을 증폭시켰습니다. 실업률이 급증하고 임금이 삭감되면서 노동자 계층과 농민들은 극심한 빈곤에 시달렸고, 이는 사회 전반에 걸쳐 불만과 좌절감을 확산시켰습니다. 이러한 사회적 불안은 기존 정치 체제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졌고, 극단적인 정치 세력들이 부상하는 토대가 되었습니다 [2].

대공황의 시대적 배경 속에서 민족주의는 전 세계적으로 강력한 정치적 이념으로 부상했습니다. 경제적 어려움과 사회적 불안 속에서 사람들은 민족적 공동체 의식에 의존하며 소속감과 안정감을 찾고자 했습니다. 민족주의는 애국심과 민족적 자긍심을 고취하며 사회 통합을 이루는 동시에, 배타적인nationalism and xenophobia를 조장하여 외국인 혐오증과 인종 차별을 심화시키기도 했습니다 [3].

유럽에서는 독일의 나치즘과 이탈리아의 파시즘이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나치 독일은 베르사유 조약 체제의 불만을 이용하고 경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민족주의적 열정을 고취하며 군국주의 노선을 걸었습니다. 이탈리아 파시즘 역시 민족주의적 팽창주의를 내세워 대외 침략을 정당화했습니다. 이들은 경제난 속에서 민족주의를 이용하여 사회를 결집하고, 대외적으로는 영토 확장을 통해 경제적 어려움을 해결하려 했습니다 [4].

아시아에서는 일본의 군국주의가 민족주의와 결합하여 팽창주의적 야망을 드러냈습니다. 일본 군부는 경제 공황으로 인한 사회 불안과 자원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만주사변을 일으키고 중국 침략을 본격화했습니다. 일본은 '대동아공영권'이라는 허울뿐인 명분을 내세워 아시아 지역에서 일본 제국주의적 팽창을 추구했으며, 이는 주변 국가들과의 갈등을 심화시키는 요인이 되었습니다 [5].

이처럼 세계 대공황은 경제적 불평등을 심화시키고 민족주의를 부상시켜 국제 사회의 갈등 구조를 심화시켰습니다. 각국은 경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보호무역주의를 강화하고, 민족주의적 열정을 이용하여 사회 불안을 잠재우려 했습니다. 이러한 상황은 국가 간의 경쟁과 대립을 격화시키고, 결국 제2차 세계 대전이라는 비극으로 이어지는 씨앗을 뿌렸습니다 [6].

2. 일본 경제의 딜레마와 제국주의적 팽창

1930년대 세계 대공황은 섬나라 일본 경제에 심각한 타격을 입혔습니다. 주요 수출 품목이었던 견직물 가격이 폭락하고, 미국을 비롯한 주요 교역국의 보호무역주의 강화로 수출길이 막히면서 일본 경제는 극심한 침체에 빠졌습니다. 농촌 지역은 더욱 심각한 타격을 받아 농민들의 생활은 극도로 악화되었고, 도시 지역에서도 실업자가 급증하는 등 사회 전반에 걸쳐 경제적 어려움이 확산되었습니다 [7].

경제난은 일본 사회 내 불안과 불만을 증폭시켰습니다. 기존 정치 세력에 대한 불신이 커지고 군부의 영향력이 확대되는 가운데, 일본은 경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돌파구를 제국주의적 팽창에서 찾고자 했습니다. 일본 군부는 만주를 비롯한 중국 대륙과 동남아시아 지역에 풍부한 자원이 매장되어 있다는 점에 주목하고, 이 지역을 장악하여 자원 부족 문제를 해결하고 경제를 재건하려는 야심을 품었습니다 [8].

만주사변(1931년)은 일본 제국주의 팽창의 신호탄이었습니다. 일본 관동군은 류탸오후 사건을 조작하여 만주를 무력으로 점령하고 만주국을 세웠습니다. 만주 침략은 국제 사회의 비난을 받았지만, 일본 군부는 국제연맹을 탈퇴하면서 국제적 고립을 자초하고 팽창주의 노선을 더욱 강화했습니다 [9]. 만주 점령 이후 일본은 중국 본토 침략을 본격화하며 중일 전쟁(1937년)을 일으켰습니다. 중일 전쟁은 장기화되면서 일본 경제에 큰 부담을 주었지만, 군부는 전쟁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이익에 대한 기대를 버리지 않았습니다 [10].

일본 군부가 추구한 제국주의적 팽창은 경제적 동기뿐만 아니라 민족주의적 열망과도 깊이 연관되어 있었습니다. 일본은 스스로를 아시아의 맹주로 자처하며 서구 열강에 맞서 아시아를 해방시켜야 한다는 '대동아공영권' 이념을 내세웠습니다. 이는 일본의 침략 전쟁을 정당화하고 국민들을 전쟁에 동원하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되었습니다 [11]. 하지만 '대동아공영권'은 실제로는 일본 제국주의의 위선을 감추기 위한 허울뿐인 구호였으며, 일본은 점령 지역에서 자원 수탈과 강압적인 식민 통치를 자행했습니다 [12].

자원 확보는 일본 제국주의 팽창의 핵심 동기 중 하나였습니다. 일본은 석유, 철강, 고무 등 전쟁 수행에 필수적인 자원을 대부분 해외에 의존하고 있었습니다. 특히 미국으로부터 수입하는 석유는 일본 군부에게는 생명줄과 같은 존재였습니다. 만주와 중국 본토, 동남아시아 지역은 이러한 자원들을 풍부하게 보유하고 있었기 때문에 일본 군부에게는 반드시 확보해야 할 목표였습니다 [13].

그러나 일본의 제국주의적 팽창은 필연적으로 미국과의 충돌을 야기했습니다. 미국은 일본의 중국 침략을 강력하게 비판하며 경제 제재를 가하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1941년 미국은 일본에 대한 석유 수출 금지 조치를 단행했는데, 이는 일본에게는 심각한 위협이었습니다. 석유 부족은 일본 군부의 군사 작전 수행 능력을 마비시킬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14]. 미국의 석유 금수 조치는 일본에게 두 가지 선택지를 제시했습니다. 하나는 미국의 요구를 받아들여 중국에서 철수하고 팽창주의 정책을 포기하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미국의 제재를 무릅쓰고 자력으로 자원을 확보하는 것이었습니다. 일본 군부는 결국 후자를 선택했고, 이는 진주만 공습이라는 도박으로 이어졌습니다 [15].

3. 인종 갈등과 제국주의: 아시아에서의 충돌

인종 갈등은 20세기 초 제국주의 시대의 중요한 특징 중 하나였습니다. 서구 열강들은 자신들의 인종적 우월성을 내세워 아시아, 아프리카, 라틴 아메리카 지역을 식민 지배하고 착취했습니다. 피지배 민족들은 인종 차별과 억압에 시달리며 저항 운동을 전개했지만, 제국주의 열강의 강력한 힘 앞에 좌절을 겪어야 했습니다 [16].

일본 제국주의 역시 인종주의적 이데올로기를 기반으로 팽창 정책을 추진했습니다. 일본은 스스로를 '황인종의 맹주'로 자처하며 서구 백인 제국주의에 맞서 아시아를 해방시켜야 한다는 명분을 내세웠습니다. 하지만 이는 서구 제국주의를 비판하면서도 자신들의 제국주의적 야욕을 감추려는 이중적인 태도였습니다. 일본은 '대동아공영권'이라는 구호를 외치며 아시아 국가들을 일본 제국 중심으로 재편하려 했지만, 실제로는 자원 수탈과 식민 지배를 강화하는 데 급급했습니다 [17].

중국은 일본 제국주의의 가장 큰 희생자였습니다. 일본은 청일 전쟁(1894-1895)과 러일 전쟁(1904-1905)을 거치면서 조선과 만주 지역에서 우위를 확보했고, 이후 만주사변과 중일 전쟁을 통해 중국 본토 깊숙이 침략해 들어왔습니다. 일본군은 난징 대학살과 같은 잔혹한 전쟁 범죄를 저지르며 중국인들에게 깊은 상처를 남겼습니다 [18]. 중국인들은 일본의 침략에 맞서 항일 운동을 전개했지만, 열악한 무기와 분열된 정치 상황 속에서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국공 합작이 이루어지기도 했지만, 국민당과 공산당 간의 갈등은 끊이지 않았고, 이는 항일 전쟁의 효율성을 저해하는 요인이 되었습니다 [19].

동남아시아 지역 역시 제국주의 열강들의 각축장이었습니다. 영국은 말레이시아, 미얀마, 인도 등을 식민 지배했고, 프랑스는 인도차이나 반도를, 네덜란드는 인도네시아를, 미국은 필리핀을 각각 식민 통치하고 있었습니다. 일본은 동남아시아 지역을 '대동아공영권'에 편입시키고 자원을 확보하기 위해 침략 전쟁을 감행했습니다. 일본군은 진주만 공습과 동시에 말레이 반도와 필리핀을 공격하며 동남아시아 침략을 본격화했습니다 [20].

인도는 영국의 식민 지배하에 있었지만, 마하트마 간디를 중심으로 비폭력 불복종 운동을 전개하며 독립을 요구했습니다. 제2차 세계 대전 발발 이후 영국은 인도를 전쟁에 동원하려 했지만, 인도 국민회의는 영국의 전쟁 협력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였습니다. 일본은 인도의 독립 운동을 지원하는 척하며 인도 국민군을 조직했지만, 이는 일본의 전쟁 수행을 위한 도구로 이용되었을 뿐이었습니다 [21].

한반도는 일제강점기 하에 놓여 있었습니다. 일본은 한반도를 식민지배하면서 한국인들을 강제로 징용, 징병하여 전쟁에 동원했고, '황국신민화 정책'을 통해 민족 말살 정책을 추진했습니다. 한국인들은 독립운동을 전개했지만, 국내외에서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연합군과 협력하여 항일 전쟁에 참여했지만, 미약한 존재감을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22].

아시아 각 지역에서 벌어진 제국주의 열강과 일본 제국주의 간의 충돌, 그리고 피지배 민족들의 저항은 인종 갈등의 또 다른 측면을 보여줍니다. 일본은 '아시아 해방'을 외쳤지만, 실제로는 서구 제국주의를 대체하는 새로운 제국주의 세력이 되려 했을 뿐입니다. 일본의 팽창주의적 야망은 아시아 각지에서 격렬한 저항을 불러일으켰고, 이는 제2차 세계 대전의 아시아 전선이 격화되는 중요한 요인이 되었습니다 [23].

4. 미국-일본 관계의 악화와 경제 제재

1930년대까지 미국과 일본은 비교적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해 왔습니다. 미국은 일본의 근대화와 산업 발전을 지원했고, 일본은 미국의 태평양 지역에서의 영향력을 인정했습니다. 하지만 일본의 만주 침략과 중국 본토 침략이 본격화되면서 양국 관계는 점차 악화되기 시작했습니다 [24]. 미국은 일본의 침략 행위를 비판하며 국제 사회와 함께 일본에 대한 제재를 가하기 시작했습니다. 스팀슨 독트린(1932년)은 일본의 만주국 불승인 선언이었고, 이는 미국이 일본의 만주 침략을 용인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한 것이었습니다 [25].

중일 전쟁 발발 이후 미국은 일본에 대한 경제 제재를 점차 강화해 나갔습니다. 도덕적 엠바고(1938년)는 일본에 대한 무기 및 군수 물자 수출을 금지하는 조치였지만, 실질적인 효과는 미미했습니다. 하지만 1939년 미국은 미일 통상항해조약을 파기하고, 1940년에는 대일 철강 및 고철 수출 금지 조치를 단행하면서 일본 경제에 타격을 주기 시작했습니다 [26]. 특히 1941년 7월 미국은 일본의 프랑스령 인도차이나 남부 진주를 계기로 대일 석유 수출 금지라는 초강경 제재 조치를 발동했습니다. 이는 일본에게는 사활이 걸린 문제였습니다. 일본은 석유를 자체 생산할 수 없었기 때문에 미국의 석유 금수 조치는 일본 경제와 군사력을 마비시킬 수 있는 심각한 위협이었습니다 [27].

미국의 경제 제재는 일본에게 큰 딜레마를 안겨주었습니다. 일본은 중국 침략 전쟁을 지속하기 위해서는 막대한 양의 석유가 필요했지만, 미국으로부터 석유 공급이 끊기면서 전쟁 지속 능력이 심각하게 위협받게 되었습니다. 일본 군부는 미국의 제재를 '봉쇄'로 규정하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남방 지역(동남아시아)의 자원 지대를 점령하는 것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28]. 하지만 남방 지역 점령은 필연적으로 미국과의 전쟁을 의미했습니다. 미국은 필리핀을 식민 지배하고 있었고, 태평양 함대를 진주만에 배치하여 일본의 남방 진출을 견제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29].

일본 군부는 미국과의 전쟁을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미국과의 국력 차이를 인정했지만, 기습적인 공격으로 미국 태평양 함대를 격멸하고 단기간에 남방 자원 지대를 점령하면 미국과의 장기전을 유리하게 이끌어갈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진주만 공습 계획은 이러한 전략적 판단 하에 수립되었습니다 [30]. 일본 군부는 진주만 공습을 통해 미국 태평양 함대에 치명적인 타격을 가하고, 미국의 전쟁 의지를 꺾어 협상 테이블로 끌어내려 했습니다. 그들은 미국의 압력에 굴복하여 중국에서 철수하는 것보다는 미국과의 전쟁을 통해 활로를 찾는 것이 더 나은 선택이라고 생각했습니다 [31].

하지만 일본 군부의 판단은 오판이었습니다. 진주만 공습은 단기적으로는 성공했지만, 장기적으로는 미국의 전쟁 의지를 더욱 강화시키고 미국을 제2차 세계 대전에 참전시키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습니다. 미국은 막강한 경제력과 생산력을 바탕으로 전쟁 물자를 쏟아내며 일본을 압도했고, 결국 일본은 1945년 8월 무조건 항복을 선언하게 됩니다 [32]. 미국-일본 관계의 파국은 경제 제재라는 압박과 이에 대한 일본의 오판이 빚어낸 비극적인 결과였습니다. 경제적 불평등과 제국주의적 야망이 얽히면서 국제 관계는 파국으로 치달았고, 결국 진주만 공습과 제2차 세계 대전이라는 거대한 비극으로 이어지게 된 것입니다 [33].

5. 진주만 공습: 제2차 세계 대전의 씨앗

진주만 공습(1941년 12월 7일)은 제2차 세계 대전의 태평양 전쟁을 촉발시킨 결정적인 사건이었습니다. 일본 제국 해군은 하와이 진주만을 기습 공격하여 미국 태평양 함대에 막대한 피해를 입혔습니다. 이 공격으로 미국은 즉각 일본에 선전포고하고 제2차 세계 대전에 참전하게 되었으며, 이는 전쟁의 판도를 완전히 바꾸는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34].

진주만 공습은 일본 군부의 도박과 같은 것이었습니다. 일본은 미국의 경제 제재로 인해 석유 부족에 시달리고 있었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남방 자원 지대를 점령하는 것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하지만 남방 자원 지대 점령은 필연적으로 미국과의 전쟁을 의미했습니다. 일본 군부는 미국과의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하지 못했지만, 미국의 전쟁 의지를 꺾고 단기간에 유리한 조건으로 강화를 맺을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습니다 [35].

진주만 공습의 목표는 크게 두 가지였습니다. 첫째, 미국 태평양 함대를 격멸하여 미국의 해군력을 약화시키고, 남방 작전의 성공을 보장하는 것이었습니다. 둘째, 미국의 전쟁 의지를 꺾고 일본에 유리한 조건으로 협상을 이끌어내는 것이었습니다. 일본 군부는 진주만 공습이 성공하면 미국이 전쟁을 포기하고 협상에 나설 것이라고 예상했지만, 이는 오산이었습니다 [36].

진주만 공습은 전술적으로는 성공했지만, 전략적으로는 실패였습니다. 일본 해군은 진주만 공습으로 미국 태평양 함대에 큰 피해를 입히는 데 성공했지만, 미국의 항공모함은 공격 당시 진주만에 없었기 때문에 피해를 입지 않았습니다. 또한 진주만 공습은 미국 국민들의 분노와 복수심을 불러일으켰고, 미국을 전쟁에 적극적으로 참전하게 만드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습니다 [37]. 프랭클린 D. 루스벨트 대통령은 진주만 공습 다음 날 의회 연설에서 "수치스러운 날"이라고 규정하며 대일 선전포고를 요청했고, 의회는 압도적인 찬성으로 이를 가결했습니다 [38].

진주만 공습은 제2차 세계 대전의 씨앗이었습니다. 경제적 불평등과 민족 갈등, 제국주의적 팽창이라는 복합적인 요인들이 얽혀 벌어진 진주만 공습은 전 세계를 더욱 깊은 전쟁의 수렁으로 몰아넣었습니다. 일본의 도발은 미국을 전쟁에 끌어들였고, 미국은 연합국의 일원으로서 추축국에 맞서 싸우며 전쟁의 승패를 가르는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39]. 진주만 공습은 단순한 군사적 공격 사건이 아니라, 20세기 전반기의 국제 질서 붕괴와 새로운 세계 질서 재편의 서막을 알리는 역사적인 사건이었습니다 [40].

경제적 불평등은 진주만 공습의 배경에 숨겨진 중요한 요인 중 하나였습니다. 세계 대공황으로 인한 경제난은 일본 사회를 불안하게 만들었고, 일본 군부는 경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제국주의적 팽창 정책을 추진했습니다. 미국의 경제 제재는 일본을 더욱 궁지로 몰아넣었고, 결국 진주만 공습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만들었습니다 [41]. 민족 갈등 역시 진주만 공습의 원인 중 하나였습니다. 일본은 '대동아공영권'이라는 인종주의적 이데올로기를 내세워 아시아 침략을 정당화했고, 이는 주변 국가들과의 갈등을 심화시켰습니다. 미국 역시 인종차별적인 정책을 시행하고 있었고, 이는 일본과의 관계를 더욱 악화시키는 요인이 되었습니다 [42].

진주만 공습은 경제적 불평등과 민족 갈등이 빚어낸 비극적인 결과였습니다. 제2차 세계 대전은 이러한 갈등들이 폭발하면서 벌어진 거대한 전쟁이었고, 진주만 공습은 그 전쟁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과 같았습니다. 진주만 공습을 통해 우리는 경제적 불평등과 민족 갈등이 국제 사회에 얼마나 큰 위험을 초래할 수 있는지, 그리고 역사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 무엇인지 다시 한번 되새겨볼 필요가 있습니다 [43].

6. 역사적 교훈과 현대적 함의

진주만 공습은 단순한 과거의 사건이 아니라, 오늘날 우리에게도 중요한 역사적 교훈현대적 함의를 던져줍니다. 진주만 공습의 배경에는 경제적 불평등, 민족 갈등, 제국주의적 팽창 등 다양한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했으며, 이는 오늘날 국제 사회가 직면하고 있는 문제들과도 깊은 연관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44].

경제적 불평등은 여전히 세계적인 문제로 남아있습니다. 소득 불균형, 빈부 격차는 사회 불안과 정치적 극단주의를 심화시키는 요인이 될 수 있습니다. 특히 세계화와 기술 발전은 경제적 불평등을 더욱 심화시키는 경향이 있으며, 이는 사회 통합을 저해하고 갈등을 유발할 수 있습니다 [45]. 진주만 공습의 역사는 경제적 불평등이 사회 불안과 국제 갈등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을 경고하고 있습니다. 경제적 정의를 실현하고 사회 구성원 모두가 공정한 기회를 누릴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은 사회 안정과 평화로운 국제 질서를 구축하는 데 매우 중요합니다 [46].

민족 갈등 역시 여전히 세계 곳곳에서 발생하고 있습니다. 인종, 종교, 문화적 차이는 갈등의 불씨가 될 수 있으며, 이는 폭력 사태와 전쟁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배타적인 민족주의외국인 혐오증은 사회 통합을 저해하고 국제적인 협력을 어렵게 만들 수 있습니다 [47]. 진주만 공습의 역사는 민족 갈등이 국제적인 대립과 전쟁으로 확산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줍니다. 상호 존중이해를 바탕으로 다양한 문화와 민족이 공존하는 사회를 만들어가는 것은 평화로운 세계를 위한 필수적인 조건입니다 [48].

제국주의적 팽창은 과거의 유물처럼 보일 수 있지만, 신제국주의적인 형태로 여전히 존재하고 있습니다. 강대국들은 경제력과 군사력을 이용하여 약소국에 영향력을 행사하려 하고, 자원과 시장을 확보하기 위한 경쟁은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강대국 중심의 국제 질서는 불평등과 불공정을 야기하고, 국제적인 갈등을 심화시킬 수 있습니다 [49]. 진주만 공습의 역사는 제국주의적 팽창이 전쟁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을 상기시켜 줍니다. 국제법국제 기구를 강화하고, 다자주의에 기반한 국제 질서를 구축하는 것은 제국주의적 팽창을 억제하고 평화로운 국제 관계를 유지하는 데 중요합니다 [50].

역사는 과거를 비추는 거울이자, 미래를 향한 지혜의 보고입니다. 진주만 공습의 역사를 통해 우리는 경제적 불평등과 민족 갈등, 제국주의적 팽창이 얼마나 위험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는지 깨달을 수 있습니다. 과거의 오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는 역사를 제대로 배우고, 그 교훈을 실천해야 합니다. 평화는 저절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는 노력과 헌신을 통해 만들어가는 것입니다. 진주만 공습의 역사는 우리에게 평화의 소중함과 평화를 위한 노력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다시 한번 일깨워주고 있습니다 [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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