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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판파의 음유시인(2)

전개 1: 눈먼 점쟁이의 배신, 그리고 유비의 등장

거문고 줄 위에서 춤추는 내 손가락은 마치 운명의 실타래를 엮어내는 듯했다. 맑고 청아한 선율이 밤하늘에 울려 퍼졌지만, 귀문의 표정은 변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더욱 차갑게 굳어 가는 듯했다. 그는 피 묻은 붓을 든 채, 죽은 자의 눈빛으로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시시하군."

귀문이 마침내 입을 열었다.

"네 음악에는 살기가 없어. 증오도, 분노도 느껴지지 않아. 고작 이런 연주로 전쟁을 멈출 수 있다고 믿는 것이냐?"

그의 조롱 섞인 목소리에 내 연주는 잠시 흔들렸다. 귀문은 단순히 음악을 듣는 것이 아니었다. 그는 내 영혼을, 내 안에 숨겨진 어둠을 꿰뚫어 보려 하고 있었다.

"진정한 예술은 폭력에서 탄생하는 법. 네깟 놈의 나약한 음악으로는 아무것도 바꿀 수 없다."

귀문은 붉은 장검을 들어 불타는 마을을 가리켰다.

"보아라! 저 아름다운 불꽃을! 저것이야말로 진정한 예술이다!"

그의 광기 어린 외침에 마을 사람들은 절망에 빠졌다. 그때, 소향이 앞으로 나섰다.

"잠깐!"

그녀의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지만, 단호함이 묻어났다.

"귀문, 당신이 찾는 것은 청운이가 아닙니다."

소향의 말에 나는 깜짝 놀랐다. 그녀는 무엇을 하려는 것일까?

"무슨 소리냐, 눈먼 여인이여."

귀문이 비웃으며 물었다.

"진짜 역적은 바로 접니다."

소향은 망설임 없이 자신의 가슴을 가리켰다.

"저는 황건적의 잔당, 장각의 책사였던 '장량'의 딸입니다. 청운이는 그저 저에게 이용당했을 뿐입니다."

소향의 충격적인 고백에 광장은 술렁이기 시작했다. 나 역시 믿을 수 없다는 듯 그녀를 바라보았다. 소향, 나의 스승이자, 내가 믿고 의지했던 그녀가... 장량의 딸이었다니?

"호오, 흥미롭군."

귀문은 가면 속에서 음흉한 미소를 지었다.

"그렇다면, 네가 진짜 역적이라는 것을 증명해 보아라."

"저는 사람의 마음을 조종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제 목소리에 집중하십시오."

소향은 천천히 입을 열었고, 그녀의 목소리는 마치 최면과도 같이 사람들의 마음을 파고들었다.

"모두 무기를 버려라. 그리고 춤을 추어라."

그녀의 말이 끝나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귀문의 병사들이 하나둘씩 무기를 내려놓더니, 마치 넋이 나간 듯 춤을 추기 시작했다. 그들의 춤은 점점 격렬해졌고, 광란의 축제를 방불케 했다.

"이, 이게 무슨...?"

귀문은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는 자신의 병사들을 멈추려 했지만, 그들 귓가에는 오직 소향의 목소리만이 들릴 뿐이었다.

"이제 아시겠습니까? 제가 바로 당신이 찾는 자입니다."

소향은 귀문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그녀의 눈은 여전히 앞을 보지 못했지만, 그 어떤 눈빛보다 강렬했다.

그때였다.

"참으로 놀라운 광경이로군."

낯선 목소리가 어둠 속에서 울려 퍼졌다. 목소리의 주인공은 유비였다. 그는 관우, 장비와 함께 병사들을 이끌고 음영촌에 도착해 있었다.

"유비 공!"

나는 깜짝 놀라 외쳤다. 유비가 이곳에 나타나리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청운, 그동안 고생 많았네. 이제부터는 우리가 맡겠네."

유비는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귀문, 그대는 조조에게 이용당하고 있을 뿐이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물러가라."

유비의 말에 귀문은 잠시 생각에 잠긴 듯했다. 하지만 이내 결심한 듯, 고개를 저었다.

"아니, 나는 내 예술을 완성해야 한다. 이 전쟁은 나의 걸작이 될 것이다!"

귀문은 붉은 장검을 높이 치켜들었다.

"모두 공격하라! 음영촌을 잿더미로 만들어라!"

귀문의 명령에 다시 전투가 시작되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유비군이 가세하면서 전세가 역전되기 시작했다. 관우와 장비의 용맹함은 귀문과 그의 병사들을 압도하기에 충분했다.

혼란스러운 전투 속에서 나는 소향에게 다가갔다.

"소향, 어째서... 어째서 이런 거짓말을 한 겁니까?"

나는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거짓말이 아니야, 청운아."

소향은 슬픈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나는 정말 장량의 딸이야. 너를 지키기 위해 그동안 숨겨왔던 것뿐이야."

"하지만..."

"이제 모든 것을 끝낼 때가 됐어. 내가 이 전쟁을 멈추겠어."

소향은 그렇게 말하며, 자신의 품에서 작은 피리를 꺼내 들었다.

"이 피리는..."

나는 놀란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 피리는 내가 어릴 적 소향에게 선물했던, 바로 그 피리였다.

"이 피리 소리가 너를 지켜줄 것이다."

소향은 피리를 입에 물고, 슬프고도 아름다운 선율을 연주하기 시작했다. 그 선율은 마치 진혼곡과도 같았다.

그때,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소향의 피리 소리에 귀문의 병사들이 하나둘씩 쓰러지기 시작한 것이다. 그들은 고통스러운 비명을 지르며 몸부림치다가, 이내 조용히 숨을 거두었다.

"이, 이럴 수가...?"

귀문은 경악하며 소향을 바라보았다.

"네놈, 도대체 무슨 짓을 한 거냐?"

"이것은 진혼곡이다. 죽은 자들을 위한 노래."

소향은 여전히 피리를 불며 말했다.

"이 전쟁은 이제 끝났다."

그녀의 피리 소리는 점점 더 크게 울려 퍼졌고, 마침내 귀문의 몸에도 이상한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크윽... 내, 내 몸이...!"

귀문은 고통스러운 듯 가슴을 움켜쥐었다. 그의 가면이 갈라지며, 그 안에서 흉측한 얼굴이 드러났다.

"안 돼... 나의 예술이...!"

귀문은 마지막 말을 남기고, 그 자리에서 재가 되어 사라졌다.

소향의 피리 소리가 멎었고, 음영촌에는 다시 평화가 찾아왔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혼란스러웠다. 소향의 희생, 귀문의 죽음, 그리고 유비의 등장... 이 모든 것이 대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청운, 이제 자네의 선택만이 남았네."

유비가 내게 다가와 말했다.

"조조와의 전쟁은 이제 시작일 뿐이야. 자네의 거문고 소리가 세상을 바꿀 수 있을 걸세. 나와 함께 천하를 구하겠나?"

나는 유비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그의 눈빛에는 진심이 담겨 있었다.

"저는..."

나는 잠시 망설였다.

"저는 아직 제 길을 찾지 못했습니다."

"그렇다면, 이 전장을 직접 보게. 그리고 스스로 결정하게."

유비는 그렇게 말하며, 내 어깨를 두드렸다.

"자네의 거문고 소리가 진정 세상을 구할 수 있는지, 직접 확인해 보게나."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나는 유비와 함께 장판파로 향하게 되었다. 이제, 진정한 나의 이야기가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

[다음 편 예고: 장판파 전투의 재해석, 그리고 청운의 각성]

장판파에서 청운은 어떤 운명을 맞이하게 될 것인가? 그리고 그는 과연 거문고 연주로 전쟁을 멈출 수 있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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