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민하 전도사 간증: 눈물의 씨앗, 기쁨의 열매와 윌러브 사역
[WELOVE] 눈물 씨앗, 기쁨 열매: 하민하 인생 드라마
눈물로 씨를 뿌리는 자, 기쁨으로 단을 거두리라: 하민하 전도사의 파란만장 인생 이야기 상세 정리
오늘 우리는 특별한 분을 모시고 깊이 있는 이야기를 나눠볼 예정입니다. 바로 눈물로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단을 거두리라는 성경 말씀처럼, 굴곡진 인생 속에서도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는 하민하 전도사님입니다. 하 전도사님은 아버지처럼 살지 않겠다고 다짐했지만, 결국 아버지의 길을 따라 눈물로 기도하며 사랑을 전하는 삶을 살고 계신데요, 오늘 영상을 통해 막힌 길이 뻥 뚫리는 듯한 시원한 은혜를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1. 역경과 고난 속에서 피어난 믿음의 씨앗
하민하 전도사님은 부산에서 태어났지만, 아버지의 선교 사역으로 인해 어린 시절 태국으로 건너가 국제적인 환경에서 성장했습니다. 이후 신학 공부를 위해 미국 유학길에 오르면서 한국, 태국, 미국을 오가는 글로벌한 삶을 살게 되었는데요, 이러한 다문화적 배경은 하 전도사님에게 정체성 혼란이라는 시련을 안겨주었습니다. 한국에서는 한국인이 아닌 듯하고, 정서적 고향인 태국에서는 외모가 달라 이방인처럼 느껴졌으며, 그렇다고 미국인도 아니었기에 끊임없는 방황을 겪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하 전도사님은 이러한 정체성 혼란 속에서 오히려 하나님의 깊은 뜻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자신이 이 땅에서 나그네와 같은 존재임을, 그리고 천국 시민권을 소유한 존재임을 묵상하게 된 것인데요, 이러한 깨달음은 세상적인 어려움 속에서도 천국 소망을 품고 살아가는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하 전도사님의 아버지는 목회자로서 헌신적인 삶을 사셨지만, 경제적인 어려움과 고난을 감내해야 했습니다. 울산에서 목회를 시작했을 당시, 교회의 평균 연령은 70대 이상이었고, 교인 수도 20명이 채 되지 않아 재정적으로 매우 힘든 상황이었다고 합니다. 심지어 아버지는 밤마다 택시 운전을 해야 할 정도로 생활고에 시달리셨는데요, 어린 시절 하 전도사님은 아버지의 택시 운전 사실을 숨기려 했던 아버지의 고충을 뒤늦게 알고 큰 안타까움을 느꼈다고 합니다.
어머니 또한 생활 전선에 뛰어들어 학습지 교사로 활동하며 가정을 헌신적으로 지탱했습니다. 부모님의 고된 삶을 지켜보면서 하 전도사님은 목회자의 길을 걷는 것에 대해 깊은 회의감을 느꼈다고 하는데요, 겉으로는 숭고해 보이지만 고난과 희생이 따르는 목회자의 삶을 감당할 자신이 없었던 것입니다.
어린 시절 하 전도사님은 아버지의 목회 활동을 통해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을 동시에 경험했습니다. 동네를 배회하는 또래 친구를 집에 데려와 씻기고 먹이는 아버지의 따뜻한 모습은 감동적이었지만, 어린 하 전도사님은 아버지의 사랑이 다른 사람들에게 향하는 것을 보며 질투심과 서운함을 느끼기도 했습니다. 사택이 항상 개방되어 있어 사생활 침해를 받는다고 생각했고, 아버지의 사랑을 독점하고 싶었던 어린 마음에 목사에 대한 반감이 싹트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결국 하 전도사님은 “나는 어떤 일이 있어도 목사는 되지 않겠다”라고 굳게 다짐했습니다. 목사는 좋은 일을 하지만 인정받지 못하고 힘들기만 한 직업이라고 생각했던 것인데요, 하지만 인생은 예측 불가능하게 흘러가고, 하 전도사님은 훗날 자신이 그토록 싫어했던 목사의 길을 걷게 되리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습니다.
2. 태국 선교, 눈물로 씨앗을 뿌리다
울산에서의 힘든 목회 생활을 접고, 하 전도사님의 아버지는 태국으로 선교를 떠나셨습니다. 현지인들을 대상으로 개척 교회를 시작하는 것은 언어와 문화 장벽, 그리고 열악한 환경 등 수많은 어려움이 따르는 도전이었는데요, 태국에 도착하여 처음 드렸던 예배는 하 전도사님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습니다. 태국 현지 성도들은 아직 오지 않은 상황에서, 가족과 단기 선교팀 몇 명만이 모여 한국어로 예배를 드렸던 것입니다.
당시 아버지는 본문 말씀으로 시편 126편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를 선포하셨습니다. 어린 하 전도사님은 아버지의 설교를 들으며 가족과 교회의 상황이 마치 눈물로 씨를 뿌려야 하는 시기와 같다는 것을 어렴풋이 깨달았습니다. 태국어를 전혀 하지 못하는 아버지가 길거리에서 복음을 전하고, 맨땅에 헤딩하듯 개척을 시작하는 모습은 어린 하 전도사님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습니다.
물론 처음에는 아버지에 대한 원망과 불평도 있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하 전도사님은 아버지의 돌격 정신과 헌신적인 모습에서 깊은 감명을 받았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외국에서의 개척은 불가능하다고 말했지만, 아버지는 맨땅에 헤딩하는 방식으로 부딪히고 깨지면서 묵묵히 사역을 감당해 나갔습니다. 길거리에서 아이들에게 간식을 나눠주며 찬양과 율동을 가르치고, 교회로 초대하는 방식으로 전도를 했는데요, 이러한 헌신적인 노력 덕분에 태국 전역에 8개 이상의 교회를 개척하는 놀라운 결실을 맺을 수 있었습니다.
하 전도사님은 아버지의 삶을 통해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는 믿음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달았습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무모해 보이는 도전이었지만, 하나님을 의지하며 나아갈 때 불가능해 보이는 일도 가능하게 된다는 것을 몸소 체험한 것입니다.
3. 죽음의 그림자, 그리고 하나님과의 만남
하 전도사님은 어린 시절부터 죽음에 대한 깊은 묵상을 해왔다고 합니다. 초등학교 2학년 때 장례식에 다녀온 후 죽음의 의미에 대해 처음으로 생각하게 되었고, 이후 죽음에 대한 호기심은 점차 공포로 바뀌어 갔습니다. 영원히 존재하지 않게 된다는 사실, 자아가 사라진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은 어린 하 전도사님을 깊은 고뇌에 빠뜨렸습니다.
특히 초등학교 4학년 때 죽음에 대한 공포는 극에 달했고, 밤마다 비명을 지르며 방황할 정도였다고 합니다. 하지만 복음을 통해 천국과 영생에 대해 들어왔음에도 불구하고, 당시 하 전도사님은 하나님을 직접적으로 만나지 못했기에 죽음의 공포를 이겨낼 수 없었습니다.
결국 벼랑 끝에 몰린 심정으로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십자가 복음과 영생에 대해 들었지만 믿어지지 않는다며, 하나님만이 죽음에 대한 해답이 될 수 있다고 고백하며, 만약 하나님이 살아계시다면 오늘 밤 자신을 만나달라고 간절히 간구했습니다. 죽음의 공포에 짓눌려 더 이상 견딜 수 없었기에, 마지막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하나님께 매달린 것입니다.
놀랍게도 하 전도사님의 간절한 기도에 하나님께서는 응답하셨습니다. 갑자기 마음속에 전도서 3장의 말씀이 떠올랐고, 성경책을 펼쳐 전도서 3장을 읽어 내려갔습니다. 처음에는 말씀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지만, 전도서 3장 마지막 절 “사람의 영은 위로 올라가고 짐승의 영은 아래로 내려간다고 누가 알랴”라는 구절을 읽는 순간, 온몸에 전율이 흘렀다고 합니다.
죽음 앞에서 인간과 짐승의 운명이 다르다는 성경 말씀은 하 전도사님에게 큰 충격과 위로를 동시에 안겨주었습니다. 죽음이 모든 것의 끝이 아니며, 인간에게는 영원한 생명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그 순간 성경 말씀이 살아있는 음성으로 들려왔고, 하 전도사님은 비로소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는 놀라운 경험을 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만난 후, 하 전도사님은 방언을 터뜨리고 눈물을 펑펑 쏟으며 뜨겁게 기도했습니다. 평소 즐겨 듣던 찬양 “눈에 아무 증거 아니 뵈어도”를 반복해서 부르며 믿음으로 나아갈 것을 다짐했는데요, 극도로 의심 많던 하 전도사님에게 믿음의 기적이 일어난 것입니다. 그토록 오랫동안 괴롭혔던 죽음의 공포에서 벗어나 영원한 생명을 선물로 받았다는 확신은 하 전도사님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놓았습니다.
4. 죽기보다 싫었던 목사의 길,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다
죽음에 대한 해답을 얻고 하나님을 만난 후, 하 전도사님은 삶의 방향을 새롭게 설정하게 되었습니다. 더 이상 죽음이 두렵지 않았고, 영원한 생명을 주신 하나님을 위해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열정이 솟아올랐습니다. 하나님을 만난 감격에 겨워 “하나님, 당신을 위해 무엇을 할까요? 죽기라도 할게요!”라는 기도를 중학생 때부터 시작했다고 합니다.
매일 새벽 기도와 철야 기도에 참석하며 “죽기라도 할 테니 무엇이든 시켜달라”고 간절히 기도했지만, 2년 3년 동안 하나님께서는 침묵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번에는 자유의지를 발휘하라고 하시는 것인지 고민하며, 마지막으로 힘 빠진 목소리로 “주님, 무엇을 할까요?”라고 기도했을 때, 하나님께서는 부산 사투리로 “미나, 목사 해라”라고 분명하고 친절하게 말씀하셨습니다.
죽기보다 싫었던 목사, 상상조차 하기 싫었던 그 길이 하나님의 음성으로 명확하게 들려왔을 때, 하 전도사님은 오히려 큰 기쁨과 감격을 느꼈습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시키실 일이 있다는 사실, 자신의 인생에 대한 계획을 가지고 계시다는 사실에 감사했던 것입니다. 목사라는 직업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은 하 전도사님은 눈물을 흘리며 목사의 길을 걷기로 결심했습니다.
이후 하 전도사님은 하나님의 인도하심 따라 미국으로 건너가 신학을 공부했습니다. 미국에서도 다양한 방법으로 하나님의 컨펌을 경험하며 목회자의 길을 확신하게 되었는데요, 어느 날 길거리 전도를 하던 중 노숙자들과 대화를 나누게 되면서 새로운 사역의 방향을 발견하게 됩니다. 차가운 도시 시카고에서 유일하게 자신에게 마음을 열고 대화를 나누는 사람들은 노숙자들이었던 것입니다.
노숙자들과의 만남을 통해 하 전도사님은 그들에게 복음을 전해야겠다는 마음을 품게 되었습니다. 매주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서 노숙자들을 만나 치킨을 사주고, 함께 성경을 읽고 기도하며 관계를 맺어나갔습니다. 일주일에 한 번 같은 장소에 나가 꾸준히 관계를 맺으면 관계가 쌓인다는 것을 경험하면서, 믿지 않는 사람들 속에 들어가 살면서 복음을 전해야겠다는 확신을 갖게 되었습니다.
결국 하 전도사님은 신학교 친구들과 함께 시카고의 난민촌으로 이사하여 본격적인 전도 사역을 시작했습니다. 난민들과 함께 살면서 다양한 에피소드를 경험했는데요, 특히 축구장에서 남미 이민자 자녀들과 친해지면서 복음을 전하려고 노력했습니다. 하지만 1년 동안 난민촌에서 헌신적으로 사역했지만, 안타깝게도 단 한 명도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았습니다.
좌절감과 실망감 속에서 한국으로 잠시 돌아왔다가 미국으로 돌아갔을 때, 섬기던 교회 백인 아주머니로부터 놀라운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자신이 설교했던 주일에 처음 교회에 온 친구가 예수님을 영접하고 교회에 꾸준히 출석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 소식을 듣는 순간 하 전도사님은 마음의 문이 열리는 듯한 경험을 했고, 하나님께서 “수고했다, 내 아들아”라고 위로하시는 듯한 따뜻한 마음을 느꼈다고 합니다.
이때 난민촌에 들어가기 전 기도했던 내용이 떠올랐습니다. 2년 동안 난민촌에서 씨를 뿌려 단 한 명이라도 예수님을 만난다면 성공한 2년이라고 생각하겠다고 기도했었는데, 정말로 2년 만에 열매를 맺게 된 것입니다. 태국에서 아버지와 처음 예배드릴 때 선포했던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라는 말씀이 현실이 되는 순간이었음을 깨달았습니다. 미국에서의 유학 생활은 쉽지 않았지만, 하 전도사님은 눈물로 씨앗을 뿌리는 심정으로 묵묵히 사역을 감당해 나갔습니다.
5. 역경 속에서 피어난 윌러브, 그리고 아내와의 만남
미국 유학 생활은 재정적인 어려움과 외로움의 연속이었습니다. 학부 시절에는 학교의 장학금 덕분에 학비 걱정은 없었지만, 생활비를 벌기 위해 밤늦게까지 카페테리아 청소와 식당 설거지 아르바이트를 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고생 속에서도 하 전도사님은 오히려 감사함을 느꼈다고 합니다. 부모님의 도움 없이 미국에서 유학 생활을 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기적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기적 같은 날들이 계속되면서 하 전도사님은 교만해지기 시작했습니다. 학부 성적도 최우수였고, 가난한 목회자 아들이었기에 대학원에서도 장학금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정반대였는데요, 대학원 장학금은 2%밖에 나오지 않았고, 재정적인 어려움은 더욱 심화되었습니다. 아르바이트 자리도 쉽게 구할 수 없었고, 생활비는 점점 바닥을 드러냈습니다.
대학원 시절에는 친구도 없었고, 외로움과 고립감에 시달렸습니다. 수업이 끝나면 곧바로 아르바이트를 하러 가야 했고, 친구들과 밥 한 끼 제대로 먹을 여유조차 없었습니다. 과거에는 노숙자들에게 치킨을 사주던 하 전도사님이었지만, 이제는 봉사단체에서 나눠주는 식료품으로 연명해야 하는 처지가 되었습니다. 매운 라면이 너무 비싸 미국 라면을 사서 고춧가루를 넣어 먹으며 힘든 시간을 보냈습니다.
몸은 건강했지만, 일할 곳도 없고 가진 것도 없는 상황에서 하 전도사님은 매일 밤 2시간 넘게 하염없이 걸으며 기도했습니다. 하나님께 푸념 섞인 기도를 쏟아내며 답답한 마음을 호소했는데요, 예배당 문이 열려 있는 미국 교회의 특성을 이용하여, 힘들 때마다 교회에 들어가 엎드려 기도하며 위로를 구했습니다. 초등학생 시절 가족과 함께 드렸던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라는 예배가 떠올라, 지금은 눈물로 씨를 뿌려야 할 때임을 되새기며 힘든 시간을 견뎌냈습니다.
고난 속에서 하나님과 더욱 깊이 교제하게 되었고, 어느 날 성경 말씀을 통해 “너희는 내 얼굴을 찾으라”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짜증도 났지만, 할 일이 없어지자 역설적으로 하나님의 얼굴을 찾는 시간을 갖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얼굴을 찾는 것이 무엇인지 몰랐지만, 하루하루 버티면서 기도하며 나아갔습니다.
그러던 중 미군 입대라는 예상치 못한 길이 열렸습니다. 외국인에게도 입대 기회를 제공하는 미군 제도를 알게 되었고, 대학원 학비 지원과 안정적인 생활을 보장받을 수 있다는 매력에 이끌려 미군 입대를 결심하게 됩니다. 최소 4년 복무해야 한다는 부담감과 신학 공부를 중단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걱정도 있었지만, 가족을 위해, 그리고 자신의 미래를 위해 어려운 결정을 내렸습니다.
미군 복무 중 한국으로 발령받으면서 하 전도사님은 예상치 못한 전환점을 맞이하게 됩니다. 한국에 돌아올 마음이 전혀 없었지만,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한국 땅을 다시 밟게 된 것입니다. 미군 기숙사 옆방에 살던 박은총 형과의 재회는 윌러브 사역의 시작으로 이어졌습니다. 미국에서 함께 예배를 만들고 CCM을 작곡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한국의 다음세대를 위한 새로운 예배 사역을 시작하기로 의기투합한 것입니다.
윌러브는 10대 20대 젊은 세대들에게 폭발적인 반응을 얻으며 빠르게 성장했습니다. 집회마다 수많은 젊은이들이 몰려들었고, 윌러브의 짧고 강렬한 메시지와 현대적인 예배 형식은 다음세대들에게 큰 반향을 일으켰습니다. 특히 하 전도사님의 유튜브 설교 “네가 계속 살아가야 할 이유”는 많은 젊은이들에게 삶의 용기와 희망을 불어넣어 주었습니다. 자살을 생각하던 젊은이들이 윌러브의 메시지를 통해 삶의 의미를 찾고 다시 살아갈 힘을 얻었다는 간증은 하 전도사님에게 큰 보람과 감동을 안겨주었습니다.
가장 중요한 변화 중 하나는 바로 아내와의 만남입니다. 교회에서 사역하던 중 아내의 간증을 듣고 첫눈에 반했다고 하는데요, 아름다운 외모뿐 아니라 내면의 아름다움에 더욱 끌렸다고 합니다. 하 전도사님에게 아내는 세상에서 가장 소중하고 아름다운 존재가 되었습니다.
하 전도사님은 “가장 위대한 삶을 살고 싶다”는 소망을 품고 있습니다. 과거에는 많은 사람을 하나님께 인도하고 큰 사역을 이루는 것이 위대한 삶이라고 생각했지만, 성경 말씀을 통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가장 위대한 삶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 그것이 하 전도사님이 추구하는 가장 위대한 삶의 가치입니다.
6. 인생 수업, 그리고 다음세대를 향한 소망
돌이켜보면 하 전도사님의 인생은 고난과 역경의 연속이었습니다. 가정 형편의 어려움, 정체성 혼란, 죽음의 공포, 재정적인 어려움, 외로움 등 수많은 시련을 겪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 전도사님은 좌절하거나 포기하지 않고 굳건한 믿음으로 이 모든 어려움을 극복해 냈습니다. 오히려 이러한 시련들을 통해 더욱 단단해지고 성숙해졌으며, 하나님과의 관계는 더욱 깊어졌습니다.
하 전도사님은 학교가 공부만 배우는 곳이 아니라, 인생의 다양한 고통과 갈등을 미리 경험하고 배우는 곳이라고 말합니다. 미국 유학 시절 겪었던 배고픔, 외로움, 고립감 등 힘든 시간들은 목회자로서 감당해야 할 많은 인생 수업들을 미리 겪은 시간들이었습니다. 그때 느꼈던 감정들을 잊지 않고 있기에 지금의 다음세대들과 깊이 공감하고 소통할 수 있으며, 그들의 아픔과 고민을 진심으로 이해하고 위로할 수 있습니다.
하 전도사님은 다음세대에 대한 큰 소망을 품고 있습니다. 다음세대는 죽었다는 부정적인 시각이 팽배하지만, 하 전도사님은 다음세대들이 예배를 갈망하고 있으며, 다만 기성세대가 그들을 위한 예배의 장을 제대로 열어주지 못했을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윌러브 사역을 통해 다음세대들의 예배 갈망을 확인했고, 앞으로 더 많은 다음세대 리더들이 나타나 다음세대 눈높이에 맞는 신앙 교육과 예배를 제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습니다.
마지막으로 하 전도사님은 요한복음 말씀을 인용하며 간증을 마무리했습니다.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이는 너희로 가서 열매를 맺게 하고 또 너희 열매가 항상 있게 하여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게 하려 함이라.” 이 말씀을 통해 하나님께서 우리를 택하시고 세우셨다는 사실, 그리고 우리를 통해 열매 맺기를 원하신다는 사실을 강조하며,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녀로서 자긍심을 갖고 하나님을 온 마음으로 사랑하며 살아가기를 권면했습니다.
오늘 하민하 전도사님의 간증은 우리에게 깊은 감동과 도전을 주었습니다. 고난과 역경 속에서도 굴하지 않고 믿음으로 승리하는 삶, 하나님을 향한 뜨거운 사랑과 헌신, 그리고 다음세대를 향한 소망은 우리 모두에게 귀감이 되었습니다. 하 전도사님의 윌러브 사역을 통해 더 많은 다음세대들이 하나님을 만나고 변화되기를 기대하며, 오늘 귀한 간증 나눠주신 하민하 전도사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