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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미쉘 목사 간증: 절망을 찬양으로 바꾼 인생 이야기

Summary

절망을 찬양으로, 우미쉘 목사의 인생 드라마

하루아침에 쫄딱 망해버린 집?! 인생 역경을 딛고 찬양으로 위로를 전하는 우미쉘 목사의 감동적인 이야기

오늘, 여러분께서는 인생의 롤러코스터를 경험하고, 그 역경을 믿음과 찬양으로 승화시킨 특별한 분의 이야기를 접하게 될 것입니다. 바로 만나교회 우미쉘 목사님인데요. 그녀는 최근 유튜브 채널 '새롭게 하소서'에 출연하여 파란만장했던 인생 스토리를 진솔하게 털어놓았습니다. 단란했던 부잣집 딸에서 하루아침에 모든 것을 잃고 벼랑 끝에 서게 된 그녀의 이야기, 그리고 절망 속에서 다시 일어서 찬양으로 수많은 이들에게 위로와 희망을 전하는 현재까지, 마치 한 편의 드라마 같은 그녀의 인생 여정을 함께 따라가 보겠습니다.

우미쉘 목사님은 감미로운 찬양으로 방송의 문을 열었습니다. "사랑하는 내 아들아, 내 딸아, 너의 작은 신음도 내게 귀하다" 라는 가사처럼, 그녀의 찬양은 듣는 이의 마음을 따뜻하게 감싸 안아 주는 듯합니다. 찬양 인도자이자 목사로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그녀는 밝고 긍정적인 에너지로 가득 차 있지만, 그녀의 과거는 결코 순탄치만은 않았습니다. 지금부터 그녀의 파란만장했던 인생 이야기 속으로 함께 빠져보실까요?

부유했던 어린 시절, 꿈같았던 미국 생활

우미쉘 목사님은 미국 캘리포니아 주 오렌지 카운티의 얼바인이라는 부촌에서 유복한 어린 시절을 보냈습니다. 이름 '미쉘'에서부터 느껴지듯이, 그녀는 미국적인 분위기를 물씬 풍기는데요. 실제로 미국에서 태어나 대학교까지 졸업한 그녀는 자연스럽게 영어를 구사하며, 교포 발음 또한 매우 유창합니다. 방송에서 그녀는 어린 시절 할아버지 댁의 으리으리했던 저택에 대한 추억을 이야기하며, 마치 영화 속 한 장면 같은 삶을 살았음을 짐작게 합니다.

집에는 수영장, 자쿠지, 테니스 코트, 농구 코트까지 갖춰져 있었다고 하니, 상상이 되시나요? 거실에는 자동 연주 피아노와 샹들리에가 빛나고, 할아버지는 개인 바까지 소유하고 계셨다고 합니다. 그야말로 부족함 없이 풍족한 어린 시절을 보낸 것이죠. 우 목사님은 "하고 싶은 것을 못 해본 적 없고, 갖고 싶은 것을 못 가져본 적 없었다"고 회상하며, 당시 얼마나 풍요로운 삶을 살았는지 짐작하게 합니다.

모태신앙이었지만, 그녀의 집안은 3대째 가톨릭 집안이었다고 합니다. 어릴 적부터 성당에 다니며 세례와 견진성사까지 받았지만, 집안 분위기는 교회와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재미있는 에피소드 하나를 소개하자면, 할머니 댁에서 일하시던 이모님이 어머니를 보시고 "이 집안에서 목사가 나오겠다"라고 예언(?) 하셨다고 합니다. 하지만 당시 어머니는 "우리 집은 신부님을 만들 준비를 하고 있다"며 웃어넘겼다고 하는데요. 그만큼 교회와는 인연이 없을 것 같았던 가정이었습니다.

하루아침에 맞닥뜨린 절망, 벼랑 끝에 선 가족

잘나가던 사업을 하시던 할아버지 덕분에 부족함 없이 자랐지만, 고등학교 2학년 여름 방학, 그녀의 인생은 송두리째 뒤바뀌는 사건을 맞닥뜨리게 됩니다. 평소와 다름없이 2층 방에서 창밖을 내다보던 그녀는 집 앞에 경찰차와 열쇠 수리공이 와 있는 것을 발견합니다. 현관문을 강제로 뜯고 집 안으로 들어오는 경찰들을 보며, 직감적으로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졌음을 느꼈다고 합니다. 마치 드라마에서 보던 장면처럼, 집이 압류되어 하루아침에 길거리로 쫓겨나게 된 것입니다.

그녀는 당시 상황을 "집이 통째로 날아간 것"이라고 표현하며, 얼마나 충격적이었는지 짐작하게 합니다. 경찰과 수리공들이 집을 점거하고, 아버지는 쉴 새 없이 전화를 하며 상황을 수습하려 했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습니다. 급하게 옷가지 몇 벌만 챙겨 집을 나와야 했던 그녀와 가족들은 망연자실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어머니는 울음을 터뜨리셨고, 우 목사님 역시 직감적으로 아버지가 이 상황을 해결할 수 없을 것이라는 불안감을 느꼈다고 합니다.

갈 곳을 잃은 가족은 다행히 어머니의 지인의 도움으로 회사 사택 아파트에 임시 거처를 마련할 수 있었습니다. 다섯 식구가 좁은 사택에서 1~2주 정도 머물렀지만, 언제까지 이곳에 머무를 수 있을지,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막막하기만 했습니다. 그녀는 당시 부모님께 자세한 이유를 여쭤볼 수 없었고, 지금도 정확한 이유는 알지 못한다고 합니다. 다만 짐작하건대, 아버지나 고모가 집을 담보로 사업 자금을 융통하려다 잘못된 것이 아닌가 추측할 뿐입니다.

며칠 뒤, 짐을 챙기러 다시 집에 돌아갔을 때, 그녀는 더욱 큰 절망감을 느꼈습니다. 불과 며칠 전까지 살았던 집은 마치 폐허처럼 느껴졌다고 합니다. 변기에는 거미줄이 쳐 있고, 수도가 끊겨 물도 나오지 않는 낯선 공간이 되어 버린 것입니다. 그녀는 "내 집인데 내 집이 아닌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고 당시 심정을 토로했습니다. 오랜 시간 삶의 터전이었던 집에서 쫓겨나, 낯선 공간으로 내몰린 가족들의 상실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바닥으로 떨어진 자존감, 힘겨웠던 학창 시절

갑작스러운 몰락은 그녀에게 깊은 상처와 트라우마를 남겼습니다. 특히 부유한 동네에서 갑자기 작은 아파트로 이사하고, 친구들이 하나둘씩 등을 돌리는 차가운 현실은 어린 그녀에게 감당하기 힘든 고통이었습니다. 그녀는 "사람들이 우리 가족을 돈을 빌려달라고 할까 봐 무서워했을 것"이라며 당시 냉담했던 주변 분위기를 전했습니다. 좁은 한인 사회에서 순식간에 퍼져나간 가정 형편에 대한 소문은 그녀를 더욱 움츠러들게 만들었습니다.

가장 힘들었던 것은 친구들과의 관계였다고 합니다. 미국에서는 고등학교 2학년이 되면 운전면허를 따고 부모님께 차를 선물 받는 것이 일반적인데요. 친구들은 BMW, 벤츠 등 고급 외제차를 몰고 다니는 반면, 그녀는 차를 살 형편이 되지 못했습니다. 늘 친구들에게 차를 얻어 타야 하는 상황이 그녀의 자존심을 짓밟았습니다. 과거 레인지로버로 운전 연수를 받았던 화려했던 시절을 떠올리며, 초라해진 현실에 괴로워했습니다. 어린 마음에 친구들 앞에서 초라한 모습, 망가진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녀는 사람들의 시선을 피하기 위해 더욱 완벽한 모습으로 자신을 포장하려 했습니다. 풀 메이크업을 하고, 화려한 옷을 입는 등 겉모습에 더욱 신경 썼다고 합니다. 마치 "우리 집은 망했지만 나는 괜찮다"라고 외치는 듯했습니다. 어머니 또한 풀 메이크업을 하고 마트에 일하러 가는 등 흐트러진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 애썼다고 합니다. 하지만 겉으로 강한 척할수록, 속으로는 더욱 깊은 상처와 고독감을 느꼈을 것입니다.

학창 시절은 친구가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친구 관계는 10대 청소년에게 매우 중요한 부분입니다. 갑작스러운 가정 형편의 변화와 친구들의 외면은 그녀에게 큰 상처가 되었고, 학창 시절 내내 힘겨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피아노, 절망 속에서 붙잡은 희망의 끈

집이 망하면서 대부분의 짐을 버려야 했지만, 그녀가 포기할 수 없었던 단 하나, 바로 그랜드 피아노였습니다. 좁은 아파트로 이사하면서 웬만한 가구들은 모두 처분했지만, 그랜드 피아노만큼은 좁은 방에 억지로 밀어 넣었습니다. 외가 친척들이 모두 음악을 하는 음악 가족이었던 그녀에게 피아노는 단순한 악기가 아닌, 꿈이자 전부였습니다. 피아니스트의 꿈을 포기할 수 없었던 그녀는 좁은 방에서도 피아노를 치며 위안을 얻고, 희망을 잃지 않으려 노력했습니다.

피아노는 그녀에게 친구이자, 위로자이자, 희망의 끈이었습니다. 침대 옆 좁은 공간에 놓인 피아노는 그녀에게 유일한 안식처가 되어 주었고, 힘든 현실을 잊고 음악에 몰두할 수 있게 해 주었습니다. 문도 제대로 열리지 않는 좁은 방에서 피아노를 치는 모습은 마치 캄캄한 터널 속에서 한 줄기 빛을 쫓는 듯한 모습이었을 것입니다. 그녀에게 피아노는 단순한 악기를 넘어,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 꿈을 포기하지 않도록 붙잡아 주는 소중한 존재였습니다. 그녀는 한국에 와서도 피아노를 배에 실어 가져왔다고 하니, 피아노에 대한 애착이 얼마나 깊은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좌절과 방황, 그리고 뜻밖의 만남

고등학교 졸업 후, 대학 진학을 앞두고 또 한 번의 좌절을 겪어야 했습니다. 미국에서 대학교는 기숙사 생활을 하며 캠퍼스 라이프를 즐기는 것이 로망이지만, 그녀는 가정 형편 때문에 집에서 통학할 수 있는 주립대학교를 선택해야 했습니다. 학군 좋은 부촌에서 자랐지만, 정작 대학은 만족스럽지 못한 곳으로 가게 된 현실에 좌절감을 느꼈습니다. 주변 친구들은 동부 명문 대학으로 떠나 화려한 캠퍼스 라이프를 즐기는 반면, 그녀는 집에서 가까운 주립대를 다니며 씁쓸함을 느꼈습니다.

그녀는 "나보다 공부도 못하고 음악도 못 하는 친구들이 더 좋은 학교에 가는 것을 보며 좌절했다"고 솔직하게 털어놓았습니다. 대학에 대한 콤플렉스는 그녀를 더욱 방황하게 만들었습니다. 고등학교 때부터 집에 잘 들어가지 않고 밖으로 겉돌았는데, 대학 시절에는 더욱 심했다고 합니다. 밤늦게까지 친구들과 어울려 놀고, 파티를 전전하며 방황하는 시간을 보냈습니다. 마음속 깊은 곳에는 채워지지 않는 공허함과 불안감이 자리 잡고 있었을 것입니다.

음악대학에 진학했지만, 레슨비 마련도 쉽지 않았습니다. 피아노 전공을 위해서는 개인 레슨을 받아야 하지만, 집안 형편상 레슨비를 감당하기 어려웠습니다. 하지만 뜻밖에도 그녀를 돕는 손길이 나타났습니다. 성당에서 친하게 지내던 언니가 피아노를 전공하고 있었는데, 그녀에게 입시 레슨을 무료로 해주겠다고 제안한 것입니다. 언니의 도움 덕분에 그녀는 무사히 음대에 진학할 수 있었습니다.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의 은혜는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그녀에게 다가왔습니다.

성당에서 교회로, 새로운 길을 찾다

성당에 다니며 성가대 반주와 오르간 연주를 했지만, 늘 마음 한켠에는 채워지지 않는 갈증이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친구들을 따라 교회에 놀러 갔다가 예상치 못한 경험을 하게 됩니다. 화려하고 활기 넘치는 교회 분위기와 성당과는 다른 예배 방식에 신선한 충격을 받았습니다. 특히 김승욱 목사님의 설교 말씀은 그녀의 마음을 강렬하게 사로잡았습니다. 마치 심장이 뛰는 듯한 설렘과 기대감을 느끼며, 교회에 대한 호기심이 생겼습니다.

그녀는 이후 주일마다 교회를 찾아 예배를 드리고, 특송과 찬양 봉사를 하며 교회에 점점 더 깊이 빠져들었습니다. 성당에서는 경험할 수 없었던 뜨겁고 열정적인 예배 분위기와, 가슴을 울리는 찬양과 말씀은 그녀의 메마른 영혼을 촉촉하게 적셔주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그녀의 마음 밭에 심겨지면서, 그녀의 삶은 서서히 변화하기 시작했습니다. 오랜 방황을 끝내고, 새로운 길을 찾게 된 것입니다.

교회에 다니면서 그녀는 성경 속 사마리아 여인의 이야기에 깊이 공감했습니다. 사람들의 시선을 피해 한낮에 우물가로 물을 길러 온 여인에게 예수님은 다정하게 "내게 물을 좀 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멸시와 천대 속에 살아온 여인에게 예수님의 따뜻한 음성은 평생 처음 들어보는 따뜻한 위로였을 것입니다. 우 목사님 또한 집이 망하고 힘든 시간을 보내면서 세상으로부터 차가운 시선과 냉대를 느껴왔습니다. 세상은 그녀에게 "가난은 창피한 것", "실패한 아빠 때문에 너도 루저"라는 메시지를 끊임없이 속삭였습니다.

하지만 교회에서 만난 예수님은 세상과는 전혀 다른 음성으로 그녀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너의 약함은 나에게 기쁨이다", "너의 연약함을 통해 내가 일할 것이다", "너를 향한 큰 계획을 이미 세워놓았다" 라는 따뜻하고 위로가 되는 음성이었습니다. 예수님의 다정한 음성에 매료된 그녀는 비로소 마음의 평안과 위로를 얻고, 새로운 소망을 품게 되었습니다. 절망과 어둠 속에서 헤매던 그녀에게 예수님은 한 줄기 빛과 같은 존재였습니다.

찬양 '나의 약함은 나의 강함', 고백이 되다

그녀는 당시 느꼈던 감동을 찬양 '나의 약함은 나의 강함'에 담아 고백했습니다. 세상적인 기준으로 보면 그녀의 가정은 실패했고, 수치스러운 일들을 겪었지만, 오히려 예수님은 그 일을 통해 그녀를 만나주셨고, 간증할 수 있는 스토리를 만들어주셨습니다. 세상의 기준으로는 약점이라고 생각했던 과거의 상처와 아픔이 오히려 하나님의 강함과 영광을 드러내는 도구가 될 수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그녀의 찬양은 단순히 아름다운 멜로디와 가사를 넘어, 진솔한 삶의 고백과 간증이 담겨 있어 듣는 이들에게 깊은 울림과 감동을 선사합니다.

찬양 가사처럼, 그녀의 약함은 오히려 강함이 되었고, 실패는 간증이 되었으며, 아픔은 영광이 되었습니다. 고난과 역경 속에서 만난 예수 그리스도는 그녀의 삶을 완전히 변화시켰고, 새로운 소망과 용기를 불어넣어 주었습니다. 그녀는 더 이상 과거의 상처에 얽매이지 않고, 하나님의 부르심 따라 힘차게 나아갈 것을 다짐했습니다.

찬양 사역의 시작, 그리고 한국행

미국에서 대학교를 졸업하고, 진로를 고민하던 시기에 그녀는 또 한 번의 갈림길에 서게 됩니다. 친했던 친구 두 명이 각자 새로운 길을 찾아 떠나면서, 그녀는 또다시 혼자 남겨지는 듯한 외로움을 느꼈습니다. 한 친구는 봉사 단체를 통해 남아공으로 떠나고, 또 다른 친구는 뉴욕에서 새로운 삶을 개척하겠다고 떠났습니다. 친구들은 앞으로 나아가는데, 자신만 제자리에 머물러 있는 것 같아 불안감을 느꼈습니다.

새로운 도전을 결심한 그녀는 1년 동안 한국에서 지내보기로 합니다. 낯선 땅이었지만, 외가 친척들이 한국에 살고 있었고, 어쩌면 새로운 기회를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을 품었습니다. 미국에서의 삶을 정리하고 무작정 한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습니다. 홍대 근처에 원룸을 얻어 생활하며, 한국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낯선 문화와 환경에 적응하는 것은 쉽지 않았지만, 새로운 경험에 대한 설렘과 기대감이 더 컸습니다.

생활비를 벌기 위해 구직 활동을 하던 중, 방이동에 있는 영어 유치원에서 일자리를 구하게 됩니다. 유치원에서 함께 일하던 언니를 통해 찬양팀 오디션 정보를 얻게 되면서, 인생의 전환점을 맞이하게 됩니다. 언니는 그녀에게 여의도순복음교회 영산싱어즈 찬양팀 오디션을 제안했고, 그녀는 별 기대 없이 오디션에 참가했습니다. 오디션 곡으로 CCM 찬양 '하나님의 은혜'를 불렀는데, 놀랍게도 합격 통보를 받았습니다. 그렇게 그녀는 찬양 사역자의 길을 걷게 되었습니다. 한국에 온 것은 단순히 1년 동안 쉬어가기 위해서였지만, 하나님의 계획은 그녀를 찬양 사역자로 인도하고 있었습니다.

여의도순복음교회, 혹독하지만 값진 훈련

얼떨결에 시작하게 된 찬양 사역이었지만, 그녀는 여의도순복음교회에서 혹독하지만 값진 훈련을 받았습니다. 미국 교회와는 전혀 다른 한국 교회 문화, 특히 뜨겁고 열정적인 기도 문화는 그녀에게 신선한 충격이었습니다. 매주 금요일 밤에 열리는 금요철야 예배, 저녁 9시부터 새벽 4시까지 이어지는 미스바 기도회 등 강도 높은 기도 훈련은 그녀를 영적으로 성장시키는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주변 사람들이 방언을 받지 못하면 함께 방언 기도를 해주고, 찬양 예배 전에는 방에 모여 통성 기도를 하는 등 열정적인 신앙생활은 그녀를 더욱 뜨겁게 만들었습니다.

단기 선교를 가기 위해서는 몇 달 동안 영성 훈련을 받아야 했고, 매일 무릎 꿇고 통성 기도를 하는 등 철저한 훈련 과정을 거쳐야 했습니다. 미국에서 자란 그녀에게 무릎 꿇어 기도하는 것은 낯선 경험이었지만, 훈련을 통해 한국 교회 문화에 적응하고, 더욱 깊은 신앙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녀는 "여의도순복음교회는 K-교회의 하드코어"라고 표현하며, 그곳에서의 경험이 한국 교회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만들어준 발판이 되었다고 고백했습니다. 힘들었지만, 되돌아보면 하나님의 은혜였음을 깨닫습니다.

운명적인 만남, 그리고 결혼

여의도순복음교회에서 찬양 사역자로 활동하던 중, 그녀는 운명적인 남편을 만나게 됩니다. 교회에서 만난 것은 아니었고, 친구들과의 모임에서 우연히 만나게 되었는데, 첫눈에 서로에게 호감을 느꼈다고 합니다. 만난 지 두 달 만에 혼인신고를 하고, 다음 해 3월에 결혼식을 올릴 정도로 빠르게 결혼이 진행되었습니다. 마치 운명처럼, 거침없이 결혼까지 이어진 것입니다.

그녀는 오래전부터 배우자를 위한 기도를 해왔다고 합니다. 외모나 직업보다는, 자신의 음악과 찬양 사역을 지지해주고, 자신을 최우선 순위에 둘 수 있는 사람을 만나게 해달라고 기도했습니다. 남편은 그녀의 기도 제목에 완벽하게 부합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음악을 사랑하고, 찬양 사역을 적극적으로 지지해주며, 그녀를 헌신적으로 사랑하고 아껴주는 사람이었습니다. 만남부터 결혼까지 일사천리로 진행된 것은 하나님의 인도하심이었다고 확신합니다.

남편과의 결혼 후, 여의도순복음교회 대신 시댁 식구들이 다니는 만나교회에 등록하게 됩니다. 남편은 "여의도순복음교회는 너무 '센' 것 같다"며 부담스러워했고, 시댁 식구들이 다니는 만나교회로 함께 옮기게 된 것입니다. 만나교회에서 신앙생활을 시작하며, 그녀는 새로운 찬양 사역의 장을 열게 됩니다. 결혼은 그녀에게 안정적인 가정을 선물했고, 만나교회는 새로운 사역의 기회를 제공했습니다.

만나교회 사역, 목회자의 길을 걷다

만나교회는 여의도순복음교회처럼 조직적인 찬양팀 시스템이 갖춰져 있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봉사 집사로 수요 예배 찬양 인도를 시작했지만, 찬양 인도를 하면 할수록 하나님에 대한 지식의 부족함을 느껴 더욱 깊이 있는 신앙 훈련의 필요성을 느끼게 됩니다. 어느 날 수요 예배 찬양 인도 중, 갑자기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너무 부족하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고 합니다. 회중 앞에서 찬양을 인도하고 하나님에 대해 이야기하지만, 정작 자신은 하나님을 제대로 알지 못한다는 자각이 들었던 것입니다.

그녀는 곧바로 담임 목사님께 이메일을 보내 자신의 마음을 털어놓았고, 목사님은 그녀에게 감리교 신학대학원 진학을 권유했습니다. 담임 목사님의 적극적인 지지 덕분에 그녀는 신학대학원에 진학하여 본격적인 목회자의 길을 걷게 되었습니다. 신학교에 다니면서, 그리고 만나교회에서 사역하면서, 그녀는 과거에는 알지 못했던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더욱 분명하게 깨닫게 되었습니다. 힘든 시간 속에서도 늘 함께하셨고, 그녀를 목회자의 길로 인도하신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에 감탄했습니다.

악몽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다

오랜 시간 동안 그녀를 괴롭혔던 악몽, 쫓겨났던 집에 다시 들어가는 꿈에서 비로소 벗어나게 된 것도 신앙의 힘 덕분이었습니다. 집이 망한 후 10년 넘게 똑같은 악몽에 시달렸지만, 신앙생활을 하고 목회자의 길을 걸으면서 악몽은 서서히 사라졌습니다. 과거의 트라우마에서 벗어나 온전한 자유를 얻게 된 것입니다. 악몽에서 벗어나게 된 것은 단순히 시간이 약이 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와 치유하심 덕분이었습니다.

그녀는 과거 찬양 콘테스트에 참가하기 위해 연습했던 찬양 'Blessed'를 떠올리며, 놀라운 사실을 깨닫습니다. 집이 망하고 갈 곳을 잃었던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 그녀는 '나는 복 받았다'라는 가사의 찬양을 연습하고 불렀던 것입니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하나님께서는 그녀의 입술을 통해 '나는 복 받았다'라는 믿음의 고백을 듣고 싶어 하셨던 것입니다. 그녀는 "얼마나 불안정한 시기를 겪고 있었는지, 어디서 살아야 할지, 뭘 해야 할지 몰랐던 상황에서 하나님께서 제 입술을 통해 그 고백을 듣고 싶으셨던 것 같다"며 감격했습니다.

미국에서 피아노 치던 평범한 학생이었던 그녀가 한국에 와서 찬양 사역자가 되고, 목사가 된 것은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그녀는 "매일매일이 생각하면 은혜고, 묵상하면 감사하다"고 고백하며, 하나님의 놀라운 인도하심에 감사를 전했습니다.

악플과 문신, 그럼에도 불구하고

찬양 사역을 하면서 응원과 격려도 많이 받았지만, 악플로 인해 마음이 힘들었던 적도 있었습니다. 특히 그녀의 손목에 있는 작은 문신에 대한 비난 댓글은 그녀를 깊이 상처 입혔습니다. "정신 차려라, 너는 이 시대의 이세벨이다" 라는 악플은 그녀에게 큰 충격을 주었습니다. 성경 속 악녀 이세벨에 비유하며 그녀를 비난하는 댓글에 마음이 무너져 내렸습니다. 자신의 문신 때문에 찬양 사역에 방해가 된다면 사역을 내려놓아야 하는 것은 아닌지 고민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곧 마음을 다잡고, 오히려 문신을 드러내고 자유롭게 찬양하기로 결심했습니다. 요즘 젊은 세대들은 문신에 대해 거부감이 없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녀는 자신의 문신이 오히려 젊은 세대들에게 "타투가 있어도 교회에 올 수 있다", "문신이 있어도 하나님께 쓰임 받을 수 있다" 라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도구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녀는 "하나님께서 일하시면 이런 것들은 전혀 걸림돌이 되지 않는다"라고 확신하며, 악플에 개의치 않고 찬양 사역에 매진하고 있습니다. 보수적인 시각으로 비난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오히려 젊은 세대들에게는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다음 세대에게 전하는 메시지, 그리고 앞으로의 비전

방송 말미에 그녀는 우물가의 여인 이야기를 다시 언급하며, 다음 세대에게 메시지를 전했습니다. 예수님은 복음서에서 자신이 메시아임을 직접적으로 드러낸 적이 거의 없지만, 사마리아 여인에게는 "내가 메시아"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잘난 것 하나 없는 여인에게 특별한 은혜를 베푸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자격 없는 자, 상처 입은 자, 소외된 자를 찾아오셔서 위로와 소망을 주십니다. 우물가의 여인처럼, 우리 또한 부족하고 연약하지만, 예수님은 우리를 찾아오셔서 다정한 음성으로 말씀하십니다.

그녀는 다음 세대에게 "예수님의 다정한 음성을 들었을 때, 낯선 유대인 남자로 여기지 말고, 예수님께서 원하시는 것을 기꺼이 드릴 수 있는 자들이 되기를 바란다"고 당부했습니다. 물 한 잔, 작은 시간, 마음, 기도 등 예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거창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작은 마음과 정성을 드리는 것만으로도 예수님은 기뻐하시고, 우리 삶을 통해 놀라운 일을 이루실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그녀는 앞으로 말씀 목회에 대한 비전을 밝혔습니다. 지금은 찬양 사역자로 활동하고 있지만, 앞으로는 말씀을 전하고 가르치는 목회를 하고 싶다는 소망을 밝혔습니다. 여성 목회에도 관심이 많으며,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길을 따라 묵묵히 걸어가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어쩌면 다시 미국 얼바인으로 돌아갈 수도 있겠지만, 그녀는 하나님의 뜻에 따라 어디든 순종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방송을 마무리하며, 그녀는 찬양 '세상을 사는 지혜'를 불렀습니다. "하늘을 볼 겨를도 없이 정신없이 세상을 살다가, 마음에 먹먹함이 내 삶을 누를 때, 그제서야 주님을 찾습니다" 라는 가사처럼, 분주한 세상 속에서 잊고 지냈던 주님을 다시 찾고, 주님의 지혜를 구하며 살아가겠다는 고백이 담겨 있습니다. 그녀의 찬양은 듣는 이들에게 깊은 위로와 함께, 삶의 지혜를 깨닫게 해주는 은혜로운 시간이었습니다. 우미쉘 목사님의 이야기는 역경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믿음으로 승리하는 삶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감동적인 간증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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