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국 NHSBT 혈액 부족 '앰버 경보' 원인과 대응 현황, 한국 혈액 관리 시스템과의 비교 및 시사점
NHSBT 혈액 부족 사태 및 '앰버 경보' 발령 배경
2024년 7월 25일, NHSBT는 O형 혈액, 특히 범용 혈액형인 O형 음성(O-) 혈액의 재고가 전례 없이 낮은 수준으로 떨어짐에 따라 국가적 차원의 '앰버 경보'를 발령했습니다. 이는 NHS의 혈액 재고에 대한 비즈니스 연속성 계획의 중요한 부분으로, 병원들이 비상 조치를 시행하여 혈액 사용을 최소화하고, 모든 O형 혈액 사용 요청을 정밀하게 검토하며, 환자 혈액 관리 시스템을 가동하도록 하는 강력한 조치입니다. 과거에도 2022년 10월과 2025년 2월에 유사한 경보가 발령된 바 있어, 영국 혈액 공급망의 취약성을 드러내는 사례로 볼 수 있습니다.
이번 사태의 직접적인 원인은 '퍼펙트 스톰'으로 지칭되는 복합적인 위기 상황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첫째, 런던 지역 병원들을 강타한 사이버 공격의 여파로 O형 혈액에 대한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했습니다. 2024년 6월 사이버 공격 사건 발생 이후, 해당 병원들은 작년 동기 대비 94% 증가한 1.7일분의 O형 음성 혈액을 추가로 필요로 했으며, 이는 매주 170건의 추가적인 O형 음성 헌혈이 필요한 양에 해당합니다.
둘째, 전통적으로 헌혈이 감소하는 여름철이라는 계절적 요인이 상황을 악화시켰습니다. 대규모 스포츠 행사, 휴가 및 해외여행 등으로 인해 헌혈 예약률이 감소하고, 변덕스러운 날씨와 무더위는 잠재적 헌혈자의 수분 부족이나 혈중 철분 수치 저하로 이어져 헌혈 부적격 사례를 증가시키는 원인이 됩니다.
Red blood cell stock levels
이러한 복합적인 요인으로 인해 경보 발령일 기준 O형 음성 혈액 재고는 1.6일분, 전체 혈액형의 평균 재고는 4.3일분으로 급감했습니다. 이는 NHSBT가 안정적인 공급을 위해 목표로 하는 적혈구 재고량 6일분에 크게 못 미치는 위험한 수준입니다. 특히 O형 음성 혈액은 전체 인구의 8%에 불과하지만, 응급 상황이나 환자의 혈액형을 모를 때 누구에게나 수혈할 수 있는 '만능 공혈 혈액'으로 병원 요청량의 약 16%를 차지하기 때문에 재고 부족은 매우 치명적입니다.
Platelet stock levels
혈소판 재고 상황 또한 안정적이지 않습니다. NHSBT는 AB-형을 제외한 혈소판 재고를 최소 1일분 이상 유지하는 것을 목표로 하지만, 2025년 7월 2일 기준 O-형은 1.80일분, A-형은 1.59일분, O+형은 1.85일분, A+형은 1.58일분으로 일부 혈액형은 목표치에 근접한 아슬아슬한 상태를 보이고 있습니다. 재고가 부족할 경우, NHSBT는 다른 혈액형으로 대체 공급을 제안해야 할 수도 있습니다.
NHSBT의 대응 조치 및 병원 지침
앰버 경보 발령과 함께 NHSBT는 혈액 재고를 정상 수준으로 회복시키기 위한 전방위적인 대응에 착수했습니다. 가장 시급한 조치는 헌혈 참여를 독려하는 것입니다. NHSBT는 O형 음성 및 O형 양성 혈액형을 가진 잠재적 헌혈자들에게 웹사이트, 'GiveBloodNHS' 앱 또는 전화(0300 123 23 23)를 통해 시급히 헌혈을 예약해 줄 것을 호소하고 있습니다.
수요에 대응하기 위해 주당 1,000개의 추가 헌혈 예약 슬롯을 개설하는 등 공급 능력을 최대한으로 끌어올리고 있습니다. 조 파라(Dr Jo Farrar) NHSBT 최고경영자는 "지난 6월 헌혈자들의 놀라운 호응으로 수요를 감당할 수 있었지만, 7주가 지난 지금 O형 음성 혈액의 필요성은 여전히 절실하다"고 강조하며, 당장 예약이 어렵더라도 며칠, 몇 주, 몇 달 후로라도 예약을 해줄 것을 당부했습니다.
병원에는 구체적이고 강제성 있는 지침이 전달되었습니다. 앰버 경보 체계 하에서 병원들은 다음의 조치를 이행해야 합니다:
O형 혈액 사용 제한: 응급, 외상, 암, 이식 수술 등 필수적인 경우를 제외하고 O형 혈액의 사용을 엄격히 제한해야 합니다.
대체 혈액 사용: 임상적으로 안전성이 확보되는 범위 내에서 다른 혈액형으로의 대체 수혈을 적극적으로 검토해야 합니다.
비상 관리 체계 가동: 병원 내 혈액 사용을 최소화하기 위한 자체 비상 계획을 실행하고, 혈액 관리 부서 인력을 재배치하여 모든 O형 혈액 사용 요청을 면밀히 심사해야 합니다.
NHSBT는 이러한 조치에도 불구하고 응급 수술이나 장기 질환 환자를 위한 정기적인 수혈은 계속될 것이라고 밝혔으며, 환자들에게는 생명이 위급한 경우 999번을, 그 외 건강 문제는 NHS 앱이나 111번을 통해 정상적으로 의료 서비스를 이용할 것을 권고했습니다. 게일 미플린(Dr Gail Miflin) NHSBT 최고의료책임자는 "혈액은 35일의 유통기한을 가지므로 NHS는 연중 내내 안정적인 혈액 공급이 필요하다"고 언급하며, 약 80만 명의 정기 헌혈자 중 O형 음성 헌혈자는 10만 8천 명에 불과하다며 더 많은 정기 헌혈자 확보의 중요성을 역설했습니다.
영국의 혈액 관리 시스템 및 헌혈 정책
영국의 혈액 관리 시스템은 정부 산하의 특수 보건 당국인 NHSBT가 중심이 되어 중앙 집중적으로 운영되는 것이 특징입니다. NHSBT는 잉글랜드 지역의 안전하고 효율적인 혈액 및 관련 서비스 공급을 책임지며, 영국 전체의 장기 기증 조직 역할도 수행합니다. 이러한 구조는 혈액 수집부터 검사, 처리, 보관, 배분에 이르는 전 과정을 국가 수준에서 조율하고 일관된 품질과 안전 기준을 유지하는 데 기여합니다.
영국의 혈액 수혈 서비스는 영국 혈액수혈 및 조직이식 서비스 합동 전문 자문위원회(JPAC)가 발행하는 '영국 혈액 수혈 서비스 가이드라인(일명 레드북)'에 의해 규제됩니다. 이 가이드라인은 현재의 모범 사례에 대한 전문가 의견을 반영하며, 혈액 제제에 대한 사양과 공정의 기술적 세부 사항을 명시합니다. 또한, 법적 구속력을 갖는 '2005년 혈액 안전 및 품질 규정'의 요구사항을 충실히 반영하고 있습니다.
헌혈자 자격 기준은 과학적 근거에 기반하여 주기적으로 검토 및 개정됩니다.
건강 상태: 항생제를 복용 중인 경우 마지막 복용 후 일정 기간이 지나야 헌혈이 가능하며, 몸이 좋지 않을 경우 회복될 때까지 기다려야 합니다.
의료 이력: 1980년 1월 1일 이후 수혈을 받았거나 장기 또는 조직 이식을 받은 사람은 영구적으로 헌혈이 금지됩니다. 암, 심장 질환, 고혈압 또는 저혈압 병력에 대해서는 유형에 따라 구체적인 기준이 적용됩니다.
생활 습관 및 정체성: 문신이나 피어싱을 한 경우 일정 기간의 대기 시간이 필요할 수 있습니다. 흡연 자체는 헌혈을 금지하는 요인이 아닙니다. 특히, 성적 행동과 관련된 기준은 과학적 증거에 기반하여 지속적으로 완화되어 왔습니다. 2017년, 혈액, 조직 및 장기 안전성 자문위원회(SaBTO)의 권고에 따라, 남성 동성애자의 헌혈 유예 기간이 기존 12개월에서 마지막 성관계 후 3개월로 단축되었습니다. 이는 특정 집단을 배제하는 것이 아니라, 감염 위험 행동을 기반으로 모든 잠재적 헌혈자에게 일관된 기준을 적용하려는 노력의 일환입니다.
헌혈 주기는 남성의 경우 12주마다, 여성의 경우 16주마다 전혈 헌혈이 가능하며, 혈소판은 2주마다 기증할 수 있습니다. NHSBT는 환자 수요를 충족하기 위해 매년 150만 단위의 혈액을 수집해야 하며, 이를 위해 질병, 임신, 해외여행 등으로 더 이상 헌혈할 수 없게 된 사람들을 대체하고 미래의 환자 수요에 맞는 혈액형 구성을 확보하기 위해 매년 약 20만 명의 신규 헌혈자가 필요하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한국 혈액 관리 시스템과의 비교 및 시사점
영국 NHSBT의 사례는 한국의 혈액 관리 시스템에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합니다. 가장 두드러진 차이점은 거버넌스 구조에 있습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안전한 혈액 공급을 정부의 책무로 규정하고, 혈액 관리 시스템이 국가 보건 시스템의 필수 인프라로 구축되어야 한다고 권고합니다. 영국은 NHSBT라는 정부 주도 기관이 혈액 사업을 총괄함으로써 이러한 권고에 부합하는 모델을 갖추고 있습니다.
반면, 한국은 혈액 사업이 대한적십자사에 포괄적으로 위탁되어 있어, 정부의 관리 감독 기능이 상대적으로 미흡하다는 지적이 오랫동안 제기되어 왔습니다. 여러 연구 용역과 국회 토론회에서 정부 주도의 독립적인 혈액 관리 감독 기구(가칭 '한국혈액관리원' 또는 '국가혈액관리정책원') 설립의 필요성이 꾸준히 제기되었으나, 대한적십자사 등의 반대로 번번이 무산되었습니다. 이는 복지부의 전문성과 인력이 방대한 혈액 사업을 직접 관리하기에는 역부족이라는 현실적 문제와도 맞물려 있습니다.
위기 대응 시스템 측면에서도 차이가 있습니다. 영국은 '앰버 경보'와 같이 명확한 단계별 위기 경보 시스템과 이에 따른 구체적인 병원 행동 지침을 갖추고 있습니다. 또한, NHSBT 웹사이트를 통해 실시간으로 혈액 재고 현황을 투명하게 공개하며 국민과 의료기관의 협조를 유도합니다.
한국 역시 혈액 수급 위기 단계별 대응 매뉴얼을 운영하고 있지만, 영국의 사례처럼 사이버 공격과 같은 예상치 못한 사회적 재난이 혈액 수급에 미치는 파급 효과에 대한 대비는 더욱 강화될 필요가 있습니다. 또한, 2019년 의료기관 내 수혈관리위원회 및 수혈관리실 설치를 의무화하는 법안이 통과된 것은 긍정적인 발전이지만, 이를 국가적 차원의 혈액 관리 시스템과 유기적으로 연동하고 총괄할 강력한 컨트롤 타워의 부재는 여전히 과제로 남아있습니다.
결론적으로, 영국 NHSBT의 사례는 중앙 집중적이고 강력한 정부 주도 혈액 관리 시스템의 중요성을 명확히 보여줍니다. 한국 혈액 사업이 한 단계 더 발전하기 위해서는, WHO의 권고와 국내 전문가들의 오랜 제언처럼, 대한적십자사에 위탁된 혈액 사업을 정부 책임 하에 총괄 관리하는 독립적인 전문 기구를 설립하여 국가 혈액 관리의 전문성과 공공성을 강화하는 방안을 적극적으로 재검토해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