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수단이 일정을 결정한다
미국 여행에서는 "어디를 볼까"보다 "어떻게 움직일까"를 먼저 정해야 한다. 같은 7일 일정이라도 뉴욕(New York)과 보스턴(Boston)을 묶는 여행은 기차와 도보 중심으로 가능하지만, 라스베이거스(Las Vegas)에서 그랜드캐니언(Grand Canyon), 자이언 국립공원(Zion National Park), 브라이스캐니언(Bryce Canyon)을 도는 일정은 사실상 자동차가 필요하다.
미국은 도시와 도시 사이가 멀고, 도시 안에서도 면적이 넓다. 지도에서 가까워 보이는 두 지점이 실제로는 차로 4~5시간 떨어져 있는 경우가 흔하다. 그래서 미국 여행의 동선은 관광지 목록만으로 짜면 실패하기 쉽다. 이동수단을 먼저 정하고, 그 이동수단으로 무리 없이 닿을 수 있는 곳을 고르는 편이 안전하다.
기본 원칙은 단순하다. 권역을 크게 바꿀 때는 국내선 항공을 검토한다. 국립공원, 해안도로, 소도시를 넣을 때는 렌터카를 우선 고려한다. 뉴욕·보스턴·시카고·워싱턴 DC처럼 대중교통이 강한 도시는 차 없이 움직이는 편이 낫다. 반대로 로스앤젤레스(Los Angeles), 피닉스(Phoenix), 라스베이거스 근교, 대부분의 국립공원은 차량 의존도가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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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선 항공: 빠르지만 '공항 시간'까지 계산한다
미국 안에서 장거리 이동을 할 때 국내선 항공은 가장 현실적인 선택인 경우가 많다. 뉴욕에서 로스앤젤레스까지는 비행시간만 약 6시간이다. 차나 기차로 이동하면 며칠이 걸린다. 동부에서 서부로, 북부에서 남부로 권역을 바꾸는 일정이라면 국내선을 넣는 것이 보통 효율적이다.
다만 항공권 검색 화면의 비행시간만 보고 판단하면 안 된다. 숙소에서 공항까지 가는 시간, 보안검색, 탑승 대기, 수하물 찾기, 도착 공항에서 시내까지 이동하는 시간을 모두 더해야 한다. 국내선이라도 공항에는 보통 출발 1시간 30분~2시간 전 도착을 목표로 잡는 것이 안정적이다. 큰 공항이나 성수기에는 더 여유를 둔다.
수하물 비용도 확인해야 한다. 미국 국내선은 항공사와 운임 종류에 따라 위탁수하물 요금이 별도로 붙는 경우가 많다. 저가 항공사는 기내 수하물, 좌석 지정, 변경 수수료까지 따로 계산해야 실제 비용이 올라갈 수 있다. 항공권을 비교할 때는 "표값"이 아니라 "공항 이동비 + 수하물 + 좌석 + 시간 손실"까지 포함한 총비용으로 봐야 한다.1
국내선이 유리한 대표 구간은 뉴욕–로스앤젤레스, 시카고(Chicago)–마이애미(Miami), 샌프란시스코(San Francisco)–라스베이거스처럼 거리가 먼 도시 간 이동이다. 반대로 뉴욕–필라델피아(Philadelphia), 워싱턴 DC(Washington, DC)–볼티모어(Baltimore), 보스턴–뉴욕처럼 가까운 동부 도시는 공항 이동과 보안검색을 고려하면 기차가 더 편할 수 있다.
렌터카: 자유롭지만 숨은 비용을 확인한다
렌터카는 미국 여행의 폭을 크게 넓혀 준다. 국립공원, 해안도로, 교외 아웃렛, 작은 마을, 전망 좋은 도로는 차가 있을 때 훨씬 편하다. 특히 서부와 남서부 여행에서는 렌터카가 일정의 중심이 된다. 그랜드서클(Grand Circle), 캘리포니아 해안도로 퍼시픽 코스트 하이웨이(Pacific Coast Highway), 옐로스톤 국립공원(Yellowstone National Park) 같은 여행은 대중교통만으로는 동선이 매우 제한된다.
예약 전에는 운전 자격부터 확인한다. 한국 운전면허증과 함께 국제운전면허증을 준비하는 것이 안전하다. 렌터카 회사와 주에 따라 요구 방식이 다를 수 있으므로, 예약 페이지의 운전면허 관련 조건을 읽어야 한다. 여권, 신용카드, 영문 이름 일치 여부도 중요하다. 많은 렌터카 회사는 보증금 결제를 위해 운전자 본인 명의의 신용카드를 요구한다.
보험 옵션은 처음 보면 복잡하다. 기본적으로 자차 손해 면책(CDW 또는 LDW), 대인·대물 책임보험(Liability), 개인 상해·소지품 보장 등이 제시된다. 한국에서 가입한 여행자보험이나 신용카드 렌터카 보장이 미국 렌터카에 적용되는지 미리 확인해야 한다. 애매하면 현장에서 가장 저렴한 옵션만 고르기보다, 사고가 났을 때 본인이 부담할 금액이 얼마인지 기준으로 판단한다.
추가 운전자도 비용이 될 수 있다. 부부나 가족이 번갈아 운전할 계획이라면 예약 단계에서 추가 운전자 요금을 확인한다. 일부 주나 멤버십 조건에서는 배우자 추가가 무료일 수 있지만, 일반화하면 안 된다. 장거리 로드트립에서는 한 사람이 계속 운전하면 피로가 쌓이므로 추가 운전자 등록 비용을 예산에 넣는 편이 현실적이다.
차량 요금 외에 주차비, 유료도로, 주유비, 편도 반납 수수료도 계산해야 한다. 대도시 호텔은 1박 주차비가 높을 수 있다. 뉴욕, 샌프란시스코, 시카고 도심에서는 렌터카가 오히려 짐이 될 수 있다. 반납 장소가 대여 장소와 다르면 편도 반납 수수료(one-way fee)가 붙을 수 있고, 주가 바뀌는 장거리 반납은 비용 차이가 커질 수 있다.
주유 방식도 확인한다. 보통은 가득 찬 상태로 빌려서 가득 채워 반납하는 방식이 가장 단순하다. 선불 주유 옵션을 선택하면 편해 보이지만, 연료를 다 쓰지 못하면 남은 기름값을 돌려받기 어렵다. 반납 전에는 공항 근처 주유소 위치를 미리 찾아 두면 급하게 헤매지 않는다.
도시별로 차가 필요한 정도가 다르다
미국의 모든 도시가 자동차 중심은 아니다. 뉴욕, 보스턴, 시카고, 워싱턴 DC는 지하철·버스·도보를 조합해 여행하기 좋다. 이런 도시에서는 숙소를 대중교통역 가까이에 잡고, 필요할 때만 라이드셰어를 쓰는 편이 효율적이다. 주차비와 교통 체증, 복잡한 도심 운전을 생각하면 렌터카가 오히려 불편할 수 있다.
뉴욕은 지하철망이 촘촘하고, 맨해튼(Manhattan) 주요 지역은 도보 이동도 쉽다. 워싱턴 DC는 내셔널 몰(National Mall) 주변 관광지가 비교적 모여 있고, 메트로(Metro)를 이용하면 공항과 시내 이동도 가능하다. 시카고는 전철 'L'과 버스를 이용해 다운타운과 주요 동네를 오갈 수 있다. 보스턴은 도심 규모가 작고 걷기 좋은 구간이 많다.
반대로 로스앤젤레스는 관광지가 넓게 흩어져 있다. 할리우드(Hollywood), 산타모니카(Santa Monica), 게티 센터(Getty Center), 그리피스 천문대(Griffith Observatory), 애너하임(Anaheim)을 한 번에 묶으면 대중교통만으로는 시간이 많이 든다. LA에서도 지하철과 버스가 있지만, 여행자가 원하는 동선을 모두 빠르게 연결해 주지는 않는다. 일정이 짧다면 렌터카나 라이드셰어를 섞는 편이 현실적이다.
국립공원은 더 분명하다. 공원 입구까지 가는 교통편이 있더라도, 공원 안의 전망대와 트레일헤드를 자유롭게 돌려면 차가 필요할 때가 많다. 일부 국립공원은 성수기에 셔틀버스를 운영하지만, 셔틀이 모든 숙소와 주변 도시를 연결해 주는 것은 아니다. "공원까지 갈 수 있는가"와 "공원 안에서 여행할 수 있는가"는 다른 문제다.2
암트랙과 장거리버스: 맞는 구간에서는 훌륭하지만 전국형 해답은 아니다
암트랙(Amtrak)은 미국의 대표 여객철도다. 특히 북동부 회랑(Northeast Corridor), 즉 보스턴–뉴욕–필라델피아–워싱턴 DC 구간에서는 매우 유용하다. 도심 역에서 도심 역으로 이동하므로 공항 이동 시간이 줄고, 보안검색 부담도 항공보다 작다. 짐을 들고 도시 중심부로 바로 들어가고 싶다면 좋은 선택이다.
하지만 미국 전역을 기차만으로 여행하기는 어렵다. 노선이 촘촘하지 않고, 일부 장거리 노선은 하루 한두 편 수준이거나 시간이 맞지 않을 수 있다. 역이 목적지 근처에 있어도 국립공원 내부나 외곽 숙소까지 다시 이동해야 하는 문제가 남는다. 예를 들어 그랜드캐니언을 기차만으로 보겠다고 계획하면, 가까운 도시나 역까지 간 뒤 다시 셔틀, 투어, 렌터카를 연결해야 한다. 결국 마지막 1~2시간 이동이 전체 일정을 어렵게 만든다.
장거리버스는 예산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된다. 그레이하운드(Greyhound), 플릭스버스(FlixBus), 메가버스(Megabus) 같은 회사가 주요 도시를 연결한다. 뉴욕–워싱턴 DC, 보스턴–뉴욕, 로스앤젤레스–라스베이거스처럼 수요가 많은 구간에서는 저렴한 표를 찾을 수 있다. 그러나 이동 시간이 길고, 터미널 위치와 도착 시간대가 여행자에게 불편할 수 있다. 밤늦게 낯선 터미널에 도착하는 일정은 피하는 편이 좋다.
기차와 버스는 "도시와 도시를 잇는 수단"으로 생각하면 편하다. 반면 자연 풍경, 교외 숙소, 작은 마을, 드라이브 코스까지 책임지는 수단은 아니다. 따라서 동부 대도시 여행자는 기차와 버스를 적극 검토하고, 서부 국립공원 여행자는 렌터카를 기본값으로 두는 것이 좋다.3
라이드셰어와 택시: 짧은 구간의 해결책
우버(Uber)와 리프트(Lyft)는 미국 여행에서 매우 유용하다. 공항에서 숙소까지, 밤에 대중교통 이용이 애매한 구간, 짐이 많은 날, 버스 환승이 복잡한 구간에서 시간을 아껴 준다. 두 앱을 모두 설치해 두면 같은 구간에서도 가격 차이를 비교할 수 있다.
다만 라이드셰어를 하루 종일 반복해서 타면 비용이 빠르게 늘어난다. 특히 출퇴근 시간, 비 오는 날, 공연·스포츠 경기 종료 직후에는 수요 증가 요금이 붙는다. 10~15분 거리라고 생각했는데 실제 요금이 꽤 높게 나올 수 있다. 도시 여행에서는 대중교통을 기본으로 쓰고, 피곤하거나 위험해 보이는 시간대에 라이드셰어를 보조 수단으로 쓰는 방식이 좋다.
공항에서는 승차 위치를 잘 확인해야 한다. 미국의 큰 공항은 라이드셰어 픽업 존이 터미널 바로 앞이 아니라 별도 주차장이나 지정 구역에 있는 경우가 많다. 앱 안내판의 "Ride App Pickup", "Rideshare", "App-Based Ride" 같은 표시를 따라가면 된다.
앱을 준비하면 이동 스트레스가 줄어든다
미국에서는 지도 앱이 여행의 기본 장비다. 구글맵(Google Maps)과 애플맵(Apple Maps)은 대중교통, 도보, 차량 이동을 비교할 때 유용하다. 렌터카를 운전한다면 웨이즈(Waze)도 함께 쓰면 좋다. Waze는 사고, 정체, 경찰 단속, 도로 공사 같은 실시간 운전 정보를 보여 주는 데 강하다.
주차 앱도 도움이 된다. 도심에서는 스팟히어로(SpotHero), 파크위즈(ParkWhiz) 같은 앱으로 주차장을 미리 찾고 가격을 비교할 수 있다. 길가 주차는 표지판을 반드시 읽어야 한다. 요일, 시간, 청소 시간, 거주자 전용 여부에 따라 주차 가능 여부가 달라진다. 잘못 주차하면 벌금이나 견인 비용이 여행 예산을 크게 흔든다.
유료도로가 많은 지역을 운전한다면 톨패스(toll pass)를 확인한다. 렌터카 회사가 제공하는 톨패스 장치를 쓰면 편하지만, 하루 단위 사용료가 붙을 수 있다. 유료도로를 거의 이용하지 않는 일정이라면 현금·카드 결제 가능 여부나 번호판 인식 후 청구 방식을 확인한다. 동부와 플로리다(Florida), 캘리포니아 일부 도로에서는 유료도로를 만날 가능성이 높다.
주유소 앱이나 지도 앱의 연료 가격 검색도 유용하다. 미국은 지역과 주유소에 따라 기름값 차이가 있다. 장거리 운전 전에는 도심을 벗어나기 전에 채우거나, 국립공원 안으로 들어가기 전 가까운 마을에서 주유하는 것이 안전하다. 서부 사막 지역에서는 다음 주유소까지 거리가 길 수 있으므로 연료가 절반 아래로 내려가기 전에 채우는 습관이 좋다.
이동수단 선택의 간단한 공식
미국 내 이동은 다음 순서로 결정하면 쉽다.
먼저 도시 간 거리를 본다. 500마일, 약 800km를 넘는 이동이라면 국내선을 우선 검토한다. 단, 공항 이동과 수하물 비용을 더해도 이득인지 확인한다.
다음으로 목적지의 성격을 본다. 대도시 중심 여행이면 대중교통과 도보, 라이드셰어를 조합한다. 국립공원, 해안도로, 교외 명소, 소도시가 많으면 렌터카를 잡는다.
마지막으로 숙소 위치를 본다. 같은 도시라도 역 근처 숙소와 외곽 숙소의 이동 난이도는 완전히 다르다. 렌터카가 없다면 "싸지만 외곽인 숙소"가 오히려 비싼 선택이 될 수 있다. 반대로 렌터카가 있다면 도심 숙소의 주차비가 부담될 수 있다.
미국 여행에서 좋은 동선은 많은 곳을 찍는 일정이 아니다. 이동수단과 목적지가 서로 맞는 일정이다. 차 없이 편한 도시는 차 없이 즐기고, 차가 필요한 자연과 교외에서는 충분히 운전 시간을 확보한다. 이 기준만 잡아도 미국 여행의 피로와 예산 낭비를 크게 줄일 수 있다.
참고
1Getting Around USA: Domestic Flights, Amtrak & Car Rentals
2Getting around USA: Transportation Tips
3Getting Around the USA: Flights, Trains, Buses & Car Rent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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