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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mmary

왜 '몇 단계 자율주행인가'가 중요한가

자율주행을 말할 때 가장 먼저 확인해야 할 질문은 "이 차가 스스로 달릴 수 있는가?"가 아니다. 더 정확한 질문은 "어떤 조건에서, 어떤 운전 과업을, 누가 책임지는가?"이다.

같은 차라도 기능에 따라 자동화 수준은 달라질 수 있다. 고속도로에서는 차간 거리와 차선 중앙을 유지하지만, 시내 골목에서는 아무 기능도 켜지지 않을 수 있다. 그래서 자동화 수준은 '차량 전체의 등급'이라기보다 '특정 주행 기능의 등급'으로 이해해야 한다. SAE J3016은 도로 차량의 주행 자동화 기능을 0단계부터 5단계까지 나누는 대표적인 분류 체계다1.

이 분류를 모르면 기술의 성능을 과대평가하기 쉽다. 차가 스스로 속도를 줄이고 차선을 따라간다고 해서 운전자가 책임에서 벗어나는 것은 아니다. 반대로 정해진 구역에서 운전석 없이 운행하는 로보택시는 일반 승용차의 운전자 보조 기능과 전혀 다른 책임 구조를 가진다.

핵심은 세 가지다.

  • 누가 주변을 감시하는가

  • 누가 조향·가속·제동을 수행하는가

  • 문제가 생겼을 때 누가 안전하게 수습하는가

이 세 질문에 대한 답이 자동화 수준을 가른다.

자동화 수준과 운전자의 책임AI 생성 이미지

운전 과업을 나누어 보면 단계가 보인다

자동차를 운전한다는 것은 단순히 핸들을 잡는 일이 아니다. 앞차와의 거리, 차선, 보행자, 신호, 옆 차의 끼어들기, 노면 상태를 계속 확인하고 판단해야 한다. 이를 표준 용어로는 동적 주행 과업, 즉 DDT(Dynamic Driving Task)라고 부른다.

DDT에는 크게 두 종류의 일이 들어간다.

첫째, 차량을 움직이는 일이다. 조향, 가속, 제동이 여기에 해당한다. 차선을 따라 핸들을 조정하고, 앞차가 느려지면 속도를 줄이는 일이다.

둘째, 주변 상황을 보고 반응하는 일이다. 이를 OEDR(Object and Event Detection and Response)이라고 부른다. 물체와 사건을 인식하고 대응한다는 뜻이다. 예를 들어 갑자기 끼어드는 차량, 공사 구간, 도로 위 낙하물, 무단 횡단 보행자를 발견하고 적절히 반응하는 것이다.

자동화 수준은 이 두 일을 사람이 하는지, 시스템이 하는지에 따라 달라진다. 여기에 하나가 더 붙는다. 문제가 생겼을 때 안전하게 멈추거나 운전을 넘겨받는 fallback, 즉 비상 대응 책임이다. 목적지를 정하거나 경유지를 고르는 일처럼 더 큰 이동 계획은 DDT와 구분되지만, 실제 도로 위에서 차량을 안전하게 움직이는 일은 이 세 요소를 중심으로 이해하면 된다.

0단계부터 2단계까지: 사람은 여전히 운전자다

0단계는 자동화가 없는 상태다. 경고음이나 사각지대 알림처럼 운전자를 돕는 기능이 있을 수는 있지만, 차를 실제로 움직이고 판단하는 책임은 모두 사람에게 있다. 자동 긴급 제동처럼 순간적으로 개입하는 안전 기능이 있더라도, 지속적으로 운전 과업을 맡는 것은 아니므로 운전자는 계속 주행을 책임져야 한다.

1단계는 운전자 보조다. 시스템이 조향 또는 속도 제어 중 하나를 도와준다. 예를 들어 어댑티브 크루즈 컨트롤은 앞차와의 거리를 유지하며 속도를 조절한다. 차선 유지 보조는 차가 차선을 벗어나지 않도록 핸들 조작을 일부 도와준다. 하지만 둘 중 하나의 축만 지원하므로 운전자는 계속 도로를 봐야 한다.

2단계는 부분 자동화다. 시스템이 조향과 속도 제어를 동시에 수행할 수 있다. 고속도로에서 차선 중앙을 따라가며 앞차와의 거리를 유지하는 기능이 여기에 가깝다. 운전자는 손을 잠시 덜 쓰는 것처럼 느낄 수 있다. 일부 시스템은 정해진 도로에서 손을 떼는 사용을 허용하기도 한다.

그러나 2단계의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 사람이 계속 운전 중이다. 차가 핸들과 페달을 조작하더라도, 주변을 감시하고 위험에 대응할 책임은 운전자에게 있다. 시스템이 공사 구간의 임시 차선을 잘못 읽거나, 정차 차량을 늦게 인식하거나, 악천후에서 차선을 놓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2단계에서 "손을 떼도 된다"는 말은 "책임을 떼도 된다"는 뜻이 아니다. 손은 쉬어도 눈과 판단은 쉬면 안 된다. 운전자 모니터링 카메라나 경고음이 붙어 있어도 마찬가지다. 그런 장치는 운전자를 대신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운전자가 계속 운전 책임을 지도록 확인하기 위한 장치에 가깝다.

3단계: 조건부 자동화가 어려운 이유

3단계는 조건부 자동화다. 여기서부터는 중요한 변화가 생긴다. 정해진 조건 안에서는 시스템이 전체 동적 주행 과업을 수행한다. 즉 조향·가속·제동뿐 아니라 주변 상황 감시와 대응도 시스템의 역할이 된다.

예를 들어 특정 고속도로, 낮은 속도, 명확한 차선, 좋은 날씨라는 조건에서 작동하는 고속도로 파일럿을 생각해 보자. 이 기능이 3단계로 설계되었다면, 작동 중 사용자는 계속 전방을 감시하지 않아도 될 수 있다. 법규와 제조사의 사용 조건이 허용하는 범위 안에서는 이메일을 확인하거나 차량 화면의 영상을 보는 등 제한된 부가 활동이 허용될 수도 있다. 다만 잠을 자거나, 운전석을 떠나거나, 호출을 받고도 다시 운전할 수 없는 상태가 되어도 된다는 뜻은 아니다.

SAE J3016에서는 3단계 기능이 작동하는 동안의 사람을 일반적인 의미의 운전자라기보다 fallback-ready user, 즉 인계에 대비한 사용자로 구분한다. 평소처럼 계속 도로를 감시하라는 뜻은 아니지만, 시스템이 요청하면 정해진 시간 안에 다시 운전 과업을 맡을 수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3단계에는 바로 이 조건이 붙는다. 시스템이 더 이상 운전하기 어렵다고 판단하거나 고장이 발생하면 사람에게 개입 요청, 즉 takeover request를 보낸다. 이때 사람은 다시 운전자가 되어야 한다.

문제는 바로 이 전환이다.

사람은 몇 분 동안 도로를 보지 않으면 상황 감각을 잃는다. 지금 차가 어느 차선에 있는지, 옆 차가 얼마나 가까운지, 앞쪽에 공사 구간이 있는지 즉시 알기 어렵다. 그런데 시스템은 비가 강해졌거나, 센서가 더러워졌거나, 차선 표시가 사라졌거나, 지도와 실제 도로가 달라졌다는 이유로 운전을 넘길 수 있다.

이때 필요한 것은 단순한 반사 신경이 아니다. 운전자는 짧은 시간 안에 다음을 모두 파악해야 한다.

  • 현재 속도와 차로 위치

  • 주변 차량의 움직임

  • 시스템이 포기한 이유

  • 안전하게 감속하거나 차선을 바꿀 방법

그래서 3단계는 기술적으로도, 인간공학적으로도 까다롭다. 시스템이 운전하다가 어려운 순간만 사람에게 넘기는 구조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람은 가장 쉬운 구간이 아니라 가장 불확실한 순간에 호출된다. 이 때문에 3단계의 핵심 위험은 "차가 못 달린다"가 아니라 "사람이 제때 다시 운전자가 될 수 있는가"에 있다.

SAE J3016 해설에서는 3단계에서 시스템이 정해진 운행 조건 안의 전체 DDT를 수행하지만, DDT fallback 전체를 항상 시스템이 맡는 단계는 아니라는 점을 강조한다. 경우에 따라 시스템이 안전 정차를 시도할 수는 있지만, 기본 구조에는 인계에 대비한 사용자가 적절히 응답해야 한다는 기대가 포함된다2. 그래서 3단계의 안전성은 센서와 알고리즘만이 아니라, 인계 요청을 언제·어떻게 보낼지, 사용자가 실제로 다시 운전할 수 있는지까지 함께 설계되어야 한다.

4단계와 5단계: 사람이 운전자가 아닐 수 있는 단계

4단계는 고도 자동화다. 3단계와의 가장 큰 차이는 문제가 생겼을 때의 책임이다. 4단계에서는 정해진 조건 안에서 시스템이 운전뿐 아니라 비상 대응까지 수행한다.

예를 들어 특정 도시의 일부 구역에서 운행하는 로보택시를 생각해 보자. 이 차량은 정밀 지도, 원격 관제, 제한된 운행 구역, 정해진 속도 정책을 전제로 움직인다. 갑자기 폭우가 내리거나 도로가 통제되면 승객에게 운전을 맡기는 것이 아니라, 시스템이 안전한 위치에 정차하거나 관제 지원을 받아 운행을 중단한다.

즉 4단계에서는 탑승자가 운전자가 아닐 수 있다. 운전석이 비어 있거나 아예 조작 장치가 없을 수도 있다. 다만 중요한 제한이 있다. 4단계는 어디서나 가능한 자동화가 아니다. 정해진 운행 영역, 날씨, 도로 형태, 속도 범위 안에서만 성립한다.

이 조건을 운행 설계 영역, 즉 ODD(Operational Design Domain)라고 한다. 문헌에 따라 작동 설계 영역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ODD는 단순한 지도가 아니다. 지역, 도로 종류, 날씨, 조명, 차선 상태, 지도 품질, 속도 범위, 공사 가능성까지 포함한다. 4단계 로보택시가 어느 도시의 일부 지역에서 잘 달린다고 해서 산길, 폭설, 비포장도로까지 갈 수 있다는 뜻은 아니다.

5단계는 완전 자동화다. 사람이 운전할 수 있는 모든 도로와 조건에서 시스템이 운전할 수 있는 수준을 말한다. 이론적으로는 운전대가 필요 없고, 탑승자는 목적지만 말하면 된다. 그러나 현실의 도로는 너무 다양하다. 폭설, 침수, 경찰 수신호, 임시 우회로, 낙석, 비포장도로, 국가별 교통문화까지 처리해야 한다. 현재 논의되는 대부분의 상용 서비스는 5단계가 아니라 제한된 조건의 4단계에 가깝다.

기능 예시로 보는 자동화 수준

자동화 수준을 실제 기능에 대입하면 구분이 더 쉬워진다.

기능 또는 서비스가까운 수준핵심 책임
차선 이탈 경고0단계사람에게 경고만 한다. 운전은 사람이 한다.
차선 유지 보조1단계조향을 일부 돕지만 주변 감시는 운전자 책임이다.
어댑티브 크루즈 컨트롤1단계속도와 차간 거리를 돕지만 조향과 판단은 운전자 책임이다.
차선 중앙 유지 + 어댑티브 크루즈2단계조향과 속도를 함께 돕지만 운전자는 계속 감시해야 한다.
제한 조건의 고속도로 파일럿2단계 또는 3단계설계에 따라 다르다. 운전자가 계속 감시하면 2단계, 조건 안에서 시스템이 감시하고 필요 시 인계를 요청하면 3단계다.
제한 구역 로보택시4단계정해진 ODD 안에서는 시스템이 주행과 비상 대응을 수행하고, 운영자가 서비스를 관리한다.
모든 도로·모든 날씨의 무인 주행5단계이론적 목표에 가깝다. 현실 상용화와는 거리가 있다.

여기서 주의할 점은 기능 이름만으로 수준을 판단할 수 없다는 것이다. "파일럿", "오토", "스마트", "풀 셀프" 같은 마케팅 표현은 표준 단계와 다를 수 있다. 같은 '고속도로 주행 보조'라도 운전자가 계속 전방을 봐야 한다면 2단계다. 반대로 시스템이 주변 감시를 맡고, 제품 설계와 사용 조건상 인계 절차까지 갖추었다면 3단계에 가까워진다. 실제 도로에서 어떤 수준으로 사용할 수 있는지는 각 지역의 법규와 승인 조건도 함께 봐야 한다.

핵심 구분은 이름이 아니라 책임이다.

책임 경계는 단계가 올라갈수록 이동한다

자동화 수준이 높아질수록 주행 수행 책임은 운전자 개인에서 제조사와 서비스 운영자 쪽으로 이동한다. 하지만 한 번에 완전히 이동하는 것은 아니다. 또 여기서 말하는 책임은 단순히 사고 뒤 법적 책임만을 뜻하지 않는다. 주행 중 누가 감시하고, 판단하고, 비상 상황을 수습해야 하는지를 포함한 실질적인 역할 분담에 가깝다.

0~2단계에서는 운전자가 중심이다. 제조사는 기능이 정상적으로 작동하도록 설계하고 설명할 책임이 있다. 하지만 주행 중 도로를 감시하고 위험을 피하는 1차 책임은 운전자에게 있다. 그래서 사용 설명서, 운전자 모니터링, 경고 문구가 중요하다. 시스템을 자율주행처럼 오해하고 시선을 떼면 사고 위험이 커진다.

3단계에서는 책임이 나뉜다. 기능이 ODD 안에서 작동하는 동안에는 시스템이 주행 과업을 맡는다. 그러나 시스템이 인계를 요청하면 사람은 다시 운전해야 한다. 이때 제조사는 인계 요청을 명확히 전달하고, 충분한 시간과 안전 장치를 설계해야 한다. 사용자는 인계 가능한 상태를 유지해야 한다. 법과 보험은 "요청 전 사고인지, 요청 후 사고인지, 요청이 적절했는지"를 따져야 한다.

4단계에서는 탑승자의 운전 책임이 크게 줄어든다. 승객은 운전자가 아니라 이용자에 가깝다. 대신 제조사, 자율주행 소프트웨어 개발사, 차량 운영사, 원격 관제 조직, 정비 주체의 책임이 커진다. 로보택시가 제한 구역 안에서 운행 중 사고를 냈다면 "승객이 왜 운전하지 않았는가"가 아니라 "시스템과 운영 체계가 왜 위험을 막지 못했는가"를 물어야 한다.

5단계에서는 이론적으로 모든 주행 수행 책임이 시스템 제공자 쪽으로 이동한다. 하지만 아직 현실의 일반 제품으로 보기 어렵기 때문에, 지금 중요한 논의는 대부분 2단계의 과신 방지, 3단계의 인계 안전, 4단계의 운영 책임에 집중된다.

단계보다 더 중요한 질문

자동화 수준은 자율주행을 이해하는 좋은 지도다. 하지만 숫자만 외우면 충분하지 않다. 실제로는 다음 질문을 함께 해야 한다.

  • 이 기능은 어느 도로에서 켤 수 있는가?

  • 비, 눈, 야간, 공사 구간에서도 작동하는가?

  • 운전자는 전방을 계속 봐야 하는가?

  • 시스템이 포기하면 누가, 정해진 시간 안에, 무엇을 해야 하는가?

  • 인계 실패 시 차량은 스스로 안전 정차할 수 있는가?

  • 사고가 나면 운전자, 제조사, 운영자 중 누구의 역할을 따져야 하는가?

자율주행의 수준을 이해한다는 것은 숫자를 외우는 일이 아니다. 인간과 기계가 어느 순간에 어떤 역할을 맡는지 구분하는 일이다. 2단계에서는 사람이 운전자다. 3단계에서는 시스템이 운전하다가 사람을 다시 부를 수 있다. 4단계에서는 정해진 조건 안에서 시스템과 운영자가 운행 책임을 맡는다.

이 차이를 알면 광고 문구보다 중요한 것을 볼 수 있다. 기술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무엇을 아직 못 하는지, 그리고 위험한 순간에 누가 책임져야 하는지가 보인다.

참고

1SAE J3016 Taxonomy and Definitions for Terms Related to Driving Automation Systems for On-Road Motor Vehicles

2SAE J3016 User Guide

책 목록

자율 주행 기술: 원리, 안전, 상용화까지 이해하는 입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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