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갑제 언론인의 중앙일보 칼럼. 73세 이병철 회장의 마지막 승부수였던 반도체 도전에 대한 회고.
1983년 12월의 인터뷰
저자는 월간조선 기자 시절인 1983년 12월, 선우휘 논설고문이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자를 대담할 때 기록자로 배석했습니다. 당시 73세였던 이 회장은 반도체 사업을 막 시작한 직후였고, 세간에서는 '노년의 무모한 도박'이라는 회의론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이 회장은 대유전을 발견한 사업가처럼 열정적으로 반도체가 한국의 미래를 이끌 것이라고 역설했고, 식민지·전란·근대화를 모두 겪은 선우휘 고문과 점심을 곁들여 4시간 동안 대담했습니다. 저자는 이를 이병철 생애 가장 긴 인터뷰로 기억합니다.
사업의 동기는 '재미', 기준은 '국가'
이 회장은 사업 동기를 "재미"라고 했습니다. 집안에 돈이 많아 돈을 벌어야 할 형편은 아니었지만 노는 게 심심하고 갑갑해서 시작했는데 그게 재미있었다는 겁니다.
"이제는 삼성을 키워야겠다 그런 욕심이 없어졌다"며 "나라 전체에 도움이 된다면 미력이나마 열심히 해야겠다"고 말했습니다. 회의 때마다 강조한 원칙이 "삼성이 중요하냐, 국가가 중요하냐. 국가가 중요하다. 국가가 부흥하면 삼성 같은 건 망해도 또 생길 수 있다. 국가가 망하면 삼성은 영원히 없어진다. 그러니 국가가 우선이다"였습니다.
일하는 방식
"새로 사업을 시작할 때가 가장 신이 나고 재미있다. 뭘 새로 창조한다는 게 그렇게 재미있을 수가 없다. 본능 같다"며 저녁에도, 자고 일어나서도 부족한 걸 보강하고 물어보고 회의하며 전체를 전망한다고 했습니다. 잘 돌아가는 회사 보고를 받으면 즉시 관심을 돌려 새 사업을 찾는 타입으로, "나는 똑같은 일을 하라고 하면 정말 싫어!"라고 할 때 표정은 천진난만한 소년 같았다고 합니다. 이미 그때 일본을 따라잡을 자신이 있다고 한 이유는, 사원 교육을 일본보다 더 시키고 자신은 일본 재벌 회장들보다 훨씬 더 일하기 때문이었습니다.
정주영이 본 이병철
저자가 1992년 대선 후보 시절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을 인터뷰했을 때, 정 회장은 다섯 살 위인 라이벌 이병철에 대해 "가장 큰 공은 반도체 산업을 일으킨 것", "다시 태어나기 어려운 기업가"라며 "흙을 아무리 파고 산을 허물어도 돈이 남느냐"며 자신에게도 반도체를 권했다고 전했습니다. 살아생전 입 바른 소리로 경제계의 '방풍림' 노릇을 했다며 매년 산소에 간다고 했습니다.
사훈과 현재
이병철의 사훈은 '사업보국·인재제일·합리추구'입니다. 1982년 보스턴대 박사학위 기념강연에서 "기업의 존립 기반은 국가며 기업은 국가와 사회 발전에 공헌해야 한다. 경영 성과를 세금·헌금·배당 등으로 분배해 국가 운영 기초를 풍부하게 하는 것이 기업의 사회적 봉사"라고 정리했습니다.
칼럼은 1938년 대구 삼성상회 설립 88년 후인 올해 삼성전자가 2분기 매출 170조, 영업이익 90조라는 유례없는 실적을 냈고, 연간 매출 5000억 달러로 세계 10위권, 영업이익 세계 1위가 예상된다고 소개합니다. 이재명 대통령이 반도체·AI 투자 계획을 발표한 이재용 회장, 최태원 회장에게 허리를 굽혀 경의를 표한 장면을 사농공상 질서에서 억눌렸던 상공인이 이승만·박정희 등의 뒷받침으로 초일류 기업을 이룬 것에 대해 사(士) 계층이 감사와 미안함을 표한 역사적 장면으로 해석합니다.
1987년 별세 당시 정치 격변기였고 반도체 과잉투자 위기론이 쏟아졌지만, 이 회장은 자신의 결단이 한국 미래를 열 것이란 확신을 놓지 않았다는 겁니다. "산업화는 늦었지만 정보화는 앞서가자"를 실천한 이병철-이건희-이재용 3대의 사업보국을 '아낌없이 주고 가는 나무'에 비유하며, 김일성의 '사람중심 철학'은 인간 말살의 사기였지만 이병철의 '인재제일'은 인류공영의 철학이었다고 대비합니다. 결론은 "그는 위대한 교사, 그리고 진짜 혁명가였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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