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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mmary

외로움이 두려울수록 우리는 더 쉽게 붙잡는다

외로움은 사람을 서두르게 만든다. 밤이 깊고 방 안이 조용해지면, 우리는 갑자기 누군가에게 연락하고 싶어진다. 이미 끝난 관계의 메시지를 다시 읽고, 별로 친하지 않은 사람의 SNS를 넘기고, 마음에도 없는 약속을 잡는다. 혼자 있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마음은 이렇게 말한다. "이대로 있으면 안 될 것 같아."

그래서 외로움을 견디지 못하는 사람은 종종 아무 관계나 붙잡는다. 나를 존중하지 않는 사람에게도 답장을 기다리고, 만나면 더 허전해지는 모임에도 나간다. 관계가 필요해서라기보다, 혼자 남겨진 느낌을 피하고 싶어서다.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구분이 있다. 외로움과 고독은 다르다.

외로움은 '나는 아무와도 연결되어 있지 않다'는 고통에 가깝다. 사람들 사이에 있어도 외로울 수 있다. 대화는 이어지지만 내 마음이 닿지 않는다고 느낄 때, 우리는 군중 속에서도 혼자다.

고독은 다르다. 고독은 혼자 있는 상태를 스스로 감당하는 능력이다. 누구에게 버려졌다는 느낌이 아니라, 잠시 나에게 돌아오는 시간이다. 외로움이 "나는 혼자라서 부족하다"는 감각이라면, 고독은 "혼자 있어도 나는 무너지지 않는다"는 감각이다.

삶에서 외로움을 완전히 없애는 것은 불가능하다. 누구도 늘 나를 이해해 줄 수 없고, 어떤 관계도 내 마음의 빈자리를 전부 채워 줄 수 없다. 그러므로 목표는 외로움이 없는 삶이 아니다. 외로움이 올 때마다 무너지지 않고, 그것을 통과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외로움은 없애는 것이 아니라 통과하는 것이다AI 생성 이미지

파스칼의 방, 그리고 스마트폰 속 피난처

파스칼은 인간의 불행을 말하며, 사람이 조용히 방 안에 머무르지 못한다는 점을 날카롭게 보았다. 그가 말한 핵심은 단순하다. 인간은 자기 자신과 마주하는 시간을 견디기 어려워한다. 그래서 사냥, 놀이, 전쟁, 사교, 일 같은 여러 '기분전환'으로 달아난다.

현대인의 방은 더 시끄럽다. 우리는 혼자 있어도 혼자 있지 않다. 손 안의 화면이 계속 누군가의 얼굴, 말, 의견, 평가를 가져온다. 침대에 누워도 피드는 흐르고, 식탁에 앉아도 알림은 울린다. 예전의 사람은 광장과 살롱으로 도망쳤다면, 오늘의 사람은 화면 속 접속으로 도망친다.

문제는 스마트폰이 나쁘다는 데 있지 않다. 문제는 우리가 조용함을 만나는 즉시 그것을 결핍으로 해석한다는 데 있다. 5분만 아무 일도 하지 않으면 불안하다. 답장이 늦으면 버려진 것 같다. SNS에 올라오는 타인의 생활을 보며 내 하루가 초라해진다.

이때 우리는 외로움을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외로움을 덮고 있을 뿐이다. 덮인 외로움은 사라지지 않는다. 잠시 조용해졌다가, 더 깊은 밤에 다시 올라온다.

파스칼의 통찰을 오늘의 언어로 바꾸면 이렇다.

우리는 혼자라서 괴로운 것이 아니라, 혼자 있을 때 떠오르는 생각을 견디기 어려워서 괴롭다.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누구에게 인정받고 싶은지, 어떤 삶에서 멀어지고 있는지, 그런 질문이 조용한 시간에 떠오른다. 그래서 우리는 질문을 피하려고 계속 접속한다.

하지만 접속은 연결과 다르다. 연결은 내 마음이 누군가에게 닿는 일이다. 접속은 단지 자극이 끊기지 않는 상태일 수 있다. 외로운 밤에 가장 먼저 확인해야 할 것은 "누구에게 연락할까?"가 아니라 "지금 나는 연결을 원하는가, 자극을 원하는가?"이다.

장자의 자유는 혼자 있어도 가벼운 사람에게 있다

장자의 세계에는 억지로 자신을 증명하려는 사람이 적다. 그는 쓸모, 성공, 평가, 규범에 묶인 삶을 자주 뒤집어 보여 준다. 장자가 그린 자유로운 인간은 세상과 끊어진 사람이 아니다. 오히려 세상의 평가에 자기 중심을 빼앗기지 않는 사람이다.

혼자 있는 시간이 괴로운 이유 중 하나는 우리가 끊임없이 타인의 시선 속에서 자신을 확인해 왔기 때문이다. 누가 나를 불러 주는지, 누가 내 글에 반응하는지, 누가 내 소식을 궁금해하는지에 따라 내 존재감이 흔들린다. 그러다 아무도 나를 찾지 않는 시간이 오면, 마치 내가 사라진 것처럼 느낀다.

장자의 관점에서 보면 이것은 자연스러운 삶의 리듬을 잃은 상태다. 새가 늘 날 수만 없고, 물이 늘 빠르게 흐를 수만 없듯이, 사람에게도 물러나는 시간이 필요하다. 혼자 있는 시간은 사회에서 밀려난 시간이 아니라, 다시 숨을 고르는 시간일 수 있다.

물론 혼자 있음을 낭만화할 필요는 없다. 외로움이 깊어지면 몸도 마음도 실제로 약해진다. 사람은 관계 속에서 살아간다. 장자가 말하는 자유도 인간관계를 부정하는 태도가 아니다. 중요한 것은 관계에 매달리지 않고 관계를 맺는 힘이다.

혼자 있을 줄 모르는 사람은 관계를 선택하기보다 붙잡는다. 상대가 나를 존중하는지 묻기 전에, 내 곁에 있어 줄지부터 본다. 그러면 관계는 점점 협상이 아니라 의존이 된다. 반대로 고독을 배운 사람은 관계 안에서도 덜 조급하다. 상대가 잠시 멀어져도 자신을 버림받은 사람으로 단정하지 않는다.

고독은 차가운 단절이 아니다. 나와 세상 사이에 숨 쉴 간격을 두는 일이다. 그 간격이 있어야 우리는 덜 매달리고, 덜 휘둘리고, 더 제대로 사랑할 수 있다.

아렌트가 말한 고독: 혼자 생각할 수 있어야 판단할 수 있다

한나 아렌트는 '혼자 있음'을 단순히 하나로 보지 않았다. 아렌트는 고립, 외로움, 고독을 구분했다. 고립은 함께 행동할 수 없게 분리된 상태에 가깝고, 외로움은 세계와 타인뿐 아니라 자기 자신과도 끊어진 듯한 상태다. 반면 고독은 자기 자신과 함께 머무는 능력이다. 아렌트에게 고독은 생각이 일어나는 자리였다.1

이 구분은 매우 중요하다. 혼자 있다고 해서 모두 고독한 것은 아니다. 혼자 있으면서도 계속 피드를 넘기고, 남의 평가를 상상하고, 과거 대화를 곱씹는다면 우리는 자기 자신과 함께 있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보이지 않는 타인의 시선 속에 갇혀 있는 것이다.

아렌트가 말한 사유는 머릿속 지식을 많이 쌓는 일이 아니다. 자기 안에서 질문하고 대답하는 능력에 가깝다. "나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가?", "이 선택은 나를 어떤 사람으로 만드는가?", "내가 따르는 말은 정말 내 판단인가?" 이런 질문을 자기 안에서 주고받을 수 있어야 우리는 군중의 분위기에 휩쓸리지 않는다.

현대의 외로움이 위험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사람들과 끊임없이 연결된 것처럼 보이지만, 정작 스스로 생각하는 시간은 줄어든다. 알고리즘은 우리가 오래 머물 만한 자극을 계속 제공한다. 우리는 보고, 누르고, 반응하지만 깊이 생각하지 않는다. 이런 상태가 길어지면 외로움은 단순한 감정이 아니라 판단력의 약화로 이어진다.2

외로울 때 사람은 쉽게 강한 말에 끌린다. 나를 즉시 이해해 주는 것 같은 사람, 내 분노를 대신 설명해 주는 집단, 내 불안을 단순한 적으로 바꿔 주는 이야기에 마음을 맡기고 싶어진다. 외로움은 그래서 개인의 문제이면서 동시에 사회적 문제다. 자기 안에서 생각하는 능력이 약해질수록 우리는 남이 준 결론을 더 쉽게 빌린다.3

고독은 이 흐름을 끊는다. 고독은 "나는 누구의 말에 기대고 있는가?"를 묻게 한다. 그것은 세상을 등지는 시간이 아니라, 다시 세상으로 나가기 전에 내 판단을 회복하는 시간이다.

외로움이 몰려오는 시간에는 순서가 필요하다

외로움은 주로 특정한 시간에 찾아온다. 퇴근 후 집에 들어왔을 때, 주말 오후가 비어 있을 때, 밤 11시 이후 침대에 누웠을 때, 누군가의 즐거운 사진을 보고 난 뒤, 중요한 일을 끝냈는데도 아무도 알아주지 않을 때.

이때 필요한 것은 거창한 결심이 아니라 순서다. 외로움이 올라온 순간 곧장 연락하거나 곧장 화면을 열면, 우리는 감정에 끌려가기 쉽다. 반대로 무조건 참기만 해도 좋지 않다. 참는 동안 마음은 더 크게 부풀 수 있다.

다음의 세 단계를 권한다.

1단계: 먼저 몸을 움직인다

외로움은 생각처럼 보이지만 몸의 상태와 깊이 연결되어 있다. 하루 종일 앉아 있었거나, 식사를 대충 했거나, 잠이 부족하면 마음은 더 쉽게 버려진 느낌을 만든다.

외로움이 몰려오면 15분만 걷는다. 목적지는 중요하지 않다. 편의점까지 걸어가도 되고, 아파트 단지를 한 바퀴 돌아도 된다. 걸을 때는 이어폰을 빼거나, 최소한 말을 계속 쏟아내는 콘텐츠는 피한다. 주변의 빛, 바람, 발바닥 감각을 느낀다.

산책은 외로움을 즉시 없애지 않는다. 다만 외로움이 머릿속에서 혼자 증식하는 속도를 늦춘다. 방 안에서 커지던 생각이 몸의 리듬을 만나면 조금 작아진다.

2단계: 감정을 기록한다

걷고 돌아온 뒤에는 짧게 적는다. 길게 쓸 필요 없다. 다음 세 문장이면 충분하다.

  • 지금 내가 느끼는 것은 무엇인가?

  • 나는 누구에게, 무엇을 기대하고 있었나?

  • 지금 당장 필요한 것은 연락인가, 휴식인가, 위로인가, 정리인가?

이 질문은 외로움을 분석해서 없애려는 것이 아니다. 외로움 안에 섞인 욕구를 구분하려는 것이다. 외로움이라고 느꼈지만 사실은 피로일 수 있다. 인정 욕구일 수 있다. 불안일 수 있다. 특정한 사람에게 사과받고 싶은 마음일 수도 있다.

감정에 이름을 붙이면, 감정은 명령이 아니라 정보가 된다. "지금 외롭다"는 말은 "아무나 붙잡아야 한다"는 뜻이 아니다. "내 안의 연결 욕구가 올라왔다"는 신호일 뿐이다.

3단계: 연락은 하되, 매달림이 아니라 연결로 한다

외로울 때 연락을 끊으라는 말은 현실적이지 않다. 사람은 사람을 필요로 한다. 다만 연락에도 방식이 있다.

외로움에 떠밀린 연락은 대개 상대의 반응에 내 기분을 전부 맡긴다. 답장이 오면 살 것 같고, 답장이 늦으면 더 무너진다. 이런 연락은 연결이 아니라 확인 중독에 가까워진다.

연락하기 전 이렇게 묻자.

"나는 이 사람과 실제로 나누고 싶은 말이 있는가, 아니면 단지 내 불안을 잠깐 맡기고 싶은가?"

나누고 싶은 말이 있다면 연락해도 된다. 단, 상대를 즉시 반응해야 하는 사람으로 만들지 않는 문장이 좋다.

예를 들면 이렇게 말할 수 있다.

"오늘 조금 마음이 가라앉아서 네 생각이 났어. 시간 될 때 짧게 통화할 수 있을까?"

"요즘 내가 좀 외로운 것 같아. 해결해 달라는 건 아니고, 그냥 누군가에게 말하고 싶었어."

이런 문장은 내 상태를 숨기지 않으면서도 상대에게 과도한 책임을 넘기지 않는다. 건강한 연결은 솔직함과 경계가 함께 있을 때 가능하다.

고독을 배우면 관계가 더 단단해진다

우리는 흔히 혼자 잘 지내는 사람을 차갑다고 오해한다. 그러나 혼자 있을 줄 아는 사람은 오히려 관계를 더 소중히 여길 수 있다. 그는 상대를 외로움의 진통제로만 쓰지 않는다. 상대가 없을 때의 불안을 견딜 수 있기 때문에, 상대가 있을 때 더 자유롭게 만난다.

고독을 배운다는 것은 대단한 수행이 아니다. 하루에 아주 작은 빈칸을 남기는 일이다. 밥 먹을 때 10분 동안 화면을 보지 않기. 잠들기 전 15분 동안 오늘 마음에 남은 장면을 적기. 주말에 한 시간 정도 혼자 걷기. 누군가에게 연락하고 싶을 때 10분만 늦추고 내 마음을 먼저 확인하기.

이 작은 빈칸들이 쌓이면, 우리는 자기 자신과 조금 덜 어색해진다. 혼자 있는 시간이 곧 버려진 시간이 아니라는 것을 몸으로 배운다. 그리고 이상하게도, 그렇게 혼자 있을 수 있게 될수록 좋은 관계를 알아보는 눈도 생긴다.

외로움은 없애야 할 적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연결을 필요로 하는 존재임을 알려 주는 신호다. 다만 그 신호가 올 때마다 아무 문이나 두드릴 필요는 없다.

외로움이 오면 먼저 멈추고, 걷고, 적고, 필요한 만큼 연결하라. 그러면 외로움은 나를 끌고 가는 힘이 아니라, 나에게 돌아오게 하는 통로가 된다.

고독은 세상에서 사라지는 기술이 아니다. 자기 자신을 잃지 않은 채 다시 세상으로 나가는 기술이다.

오늘의 작은 실천

오늘 밤 외로움이 느껴지면 바로 화면을 열지 말고 다음 순서로 움직여 보자.

  1. 15분 걷는다.

  2. 돌아와서 "나는 지금 무엇을 기대하고 있었나?"를 한 문장으로 적는다.

  3. 연락이 필요하면 한 사람에게만, 부담을 넘기지 않는 문장으로 연락한다.

외로움을 없애려 하지 말고, 외로움이 지나갈 길을 만들어 주자. 그 길 위에서 우리는 조금씩 자신과 가까워진다.

참고

1Isolation, Loneliness, and Solitude: Hannah Arendt's Triumvirate

2Thinking Our Way Home: Hannah Arendt and the Loneliness of Modern Minds

3On Loneliness — Roger Berkowitz

책 목록

거장의 문장으로 읽는 불안한 시대의 처세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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