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AI가 컨설팅 산업에 던지는 질문은 단순합니다. “몇 시간을 일했는가”가 아니라 “어떤 성과를 만들었는가”에 돈을 내야 한다면, 기존의 청구 가능 시간제는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요?
딜로이트 내부 타운홀에서도 비슷한 문제의식이 공유됐습니다. 월스트리트저널에 따르면 딜로이트 미국 공공부문 컨설팅 리더 제이슨 맨스토프는 2035년까지 시간 기반 컨설팅 업무가 줄어들 수 있다는 차트를 제시했고, AI 에이전트가 전문 서비스 시장의 큰 축이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1 딜로이트 대변인 역시 회사가 ‘인간 주도, AI 기반’ 전환을 위해 상당한 투자를 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시간제 과금이 압박받는 이유
청구 가능 시간제는 이해하기 쉬운 모델입니다. 컨설턴트가 투입한 시간에 단가를 곱해 비용을 산정합니다. 고객은 투입량을 확인할 수 있고, 컨설팅사는 인력 운용을 매출로 연결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AI가 분석, 리서치, 문서화, 실행 계획 수립을 빠르게 만들면 이 전제는 흔들립니다. 같은 일을 더 짧은 시간에 끝낼 수 있다면 고객은 더 낮은 비용을 기대합니다. 반대로 컨설팅사는 효율을 높일수록 청구 시간이 줄어드는 딜레마에 놓입니다.
이 문제는 컨설팅에만 국한되지 않습니다. 법률 서비스에서도 AI가 절약한 시간이 그대로 고객에게 이전되면, 시간제 과금은 AI 투자 유인을 약하게 만들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옵니다.2 핵심은 AI가 일을 빠르게 만든다는 사실 자체가 아니라, 그 효율의 경제적 가치를 누가 가져가느냐입니다.
변화의 본질은 ‘AI 도입’이 아니라 운영모델 전환이다
AI를 기존 업무에 덧붙이는 수준이라면 가격 모델의 변화도 제한적입니다. 그러나 AI가 업무 흐름 자체를 바꾸기 시작하면, 고객이 지불하려는 기준도 달라집니다.
딜로이트는 AI 운영모델에서 인간이 전략, 재무, 위험, 고객 관련 의사결정의 책임 게이트를 맡고, AI 에이전트는 감지·계획·실행을 가속할 수 있다고 설명합니다.3 즉 사람은 중요한 판단과 책임을 맡고, AI는 반복적이거나 데이터 집약적인 흐름을 빠르게 처리하는 구조입니다.
이때 고객의 관심은 투입 시간이 아니라 결과로 이동합니다. 딜로이트 분석에 따르면 AI 에이전트는 최대 24개월 앞의 추세 궤적을 약 91% 정확도로 예측할 수 있고, 품절을 최대 50%, 반품을 최대 20% 줄일 수 있습니다.3 이런 성과가 실제 비즈니스 지표로 연결된다면, 고객은 “컨설턴트가 며칠 일했는가”보다 “재고 손실과 반품 비용을 얼마나 줄였는가”를 더 중요하게 볼 수밖에 없습니다.
가격표는 투입량에서 성과와 위험 분담으로 이동한다
AI 시대의 가격 모델은 단순히 시간당 단가를 낮추는 문제가 아닙니다. 더 중요한 변화는 가격의 기준이 투입량에서 성과, 책임, 위험 분담으로 이동한다는 점입니다.
이미 일부 전문 서비스 기업은 이런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습니다. 맥킨지 수석 파트너 셸리 스튜어트 3세에 따르면 맥킨지의 글로벌 수수료 중 30% 이상은 성과 기반 가격 모델에서 나옵니다. 이는 컨설팅 시장이 시간제 과금만으로 설명되기 어려운 방향으로 이동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AI가 만든 효율을 고객에게 모두 넘기면 컨설팅사의 수익성은 약해질 수 있습니다. 반대로 컨설팅사가 기존 시간제 방식만 고수하면 고객은 AI로 줄어든 비용을 왜 반영하지 않느냐고 물을 것입니다. 결국 더 현실적인 대안은 성과를 정의하고, 그 성과가 만들어졌을 때 보상을 나누는 구조입니다.
AI 투자는 고정 프로젝트 예산과 잘 맞지 않는다
가격 모델이 바뀌려면 내부 운영 방식도 바뀌어야 합니다. 딜로이트는 전통적인 프로젝트 기반 자금 배분이 예측 가능한 기술투자를 전제로 하기 때문에 AI에는 경직적일 수 있다고 설명합니다.3
AI 투자는 사용량에 따라 비용이 달라지고, 실험 주기가 짧으며, 벤더 경제성도 계속 변할 수 있습니다. 가치가 언제 실현될지도 불확실합니다.3 따라서 “한 번 승인한 프로젝트를 일정과 예산에 맞춰 끝낸다”는 방식만으로는 AI 투자 포트폴리오를 관리하기 어렵습니다.
딜로이트 조사에서도 이 긴장이 드러납니다. 조직들은 IT 예산을 운영·성장·전환 투자에 거의 균등하게 배분하고 있었지만, IT 예산은 전년 대비 매출 비중 기준 2% 증가에 그쳤습니다.3 운영모델에 자신 있다고 응답한 조직의 IT 예산은 매출의 7.8%로, 자신감이 낮은 조직의 6.5%보다 높았습니다. 반면 운영모델 자신감이 낮은 조직은 예산의 약 53%를 조직 운영 유지에 배정했습니다.3
이는 AI 전환이 단순한 도구 구매가 아니라 자원 배분 방식의 문제임을 보여줍니다. 현상 유지에 예산이 묶여 있다면, AI로 새로운 성과를 만들고 그 성과를 가격에 반영하기도 어렵습니다.
실무자가 봐야 할 질문
딜로이트 사례에서 얻을 수 있는 교훈은 “시간제 과금이 곧 사라진다”가 아닙니다. 더 정확한 결론은 시간제 과금만으로는 AI가 만든 가치와 책임을 설명하기 어려워진다는 것입니다.
컨설팅사, 법률 서비스, SaaS, 내부 IT 조직 모두 비슷한 질문을 마주하게 됩니다.
AI로 줄어든 시간을 고객, 공급자, 내부 조직 중 누가 가져가는가?
성과를 어떤 지표로 측정할 수 있는가?
실패 위험은 누가 부담하는가?
사람의 판단과 책임은 어디에 남겨야 하는가?
가격은 시간, 좌석, 투입량이 아니라 어떤 비즈니스 결과와 연결될 수 있는가?
AI 시대의 가격표는 노동 시간이 아니라 책임, 성과, 위험 분담을 기준으로 다시 쓰일 가능성이 큽니다. 딜로이트의 메시지는 그 변화가 컨설팅 내부의 고민을 넘어, 지식노동 전반의 과금 방식에 대한 질문으로 확장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1Deloitte tells its own consultants: AI is coming for the billable hour
2The Billable Hour Isn't Dead Yet, But AI Should Reshape Pric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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