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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mmary

회로를 그리기 전에 바닥부터 만든다

집을 지을 때 가장 먼저 하는 일은 벽을 세우는 것이 아니다. 땅을 고르고, 기초를 다지고, 수평을 맞춘다. 바닥이 기울어져 있으면 아무리 좋은 설계도 소용이 없다. 반도체도 비슷하다. 트랜지스터와 배선을 만들기 전에 먼저 회로를 올릴 바닥이 필요하다. 이 바닥이 바로 웨이퍼다.

웨이퍼는 아주 얇고 둥근 실리콘 원판이다. 이후 공정에서 이 원판 위에 산화막을 만들고, 빛으로 회로 모양을 그리고, 필요한 곳을 깎고, 금속 배선을 연결한다. 우리가 최종적으로 보는 작은 칩은 웨이퍼 위에 반복해서 만들어진 회로 조각을 잘라낸 것이다.

그래서 반도체 제조는 "회로를 새기는 일"로만 시작하지 않는다. 그보다 먼저 완벽에 가까울 만큼 깨끗하고 평평한 실리콘 원판을 만드는 일에서 시작한다. 이 장에서는 모래와 석영 속의 규소 성분이 어떻게 반도체 공정의 출발점인 웨이퍼가 되는지 살펴본다.

모래에서 웨이퍼까지AI 생성 이미지

모래는 왜 그대로 쓸 수 없을까

실리콘은 지구에서 매우 흔한 원소다. 모래나 석영에는 실리콘과 산소가 결합한 이산화규소가 많이 들어 있다. 그래서 "반도체는 모래에서 만든다"는 말이 나온다. 큰 흐름으로 보면 맞는 말이다.

하지만 해변의 모래를 녹여 바로 칩을 만들 수는 없다. 이유는 간단하다. 반도체는 전자의 움직임을 극도로 정밀하게 조절하는 장치인데, 자연 상태의 모래에는 실리콘과 산소뿐 아니라 여러 광물 성분과 금속 불순물이 섞여 있다. 이런 성분이 아무렇게나 남아 있으면 전류가 예상과 다르게 흐르거나, 나중 공정에서 결함을 만들 수 있다.

앞 장에서 도핑을 배웠다. 도핑은 실리콘에 아주 적은 양의 불순물을 넣어 전기적 성질을 바꾸는 기술이었다. 여기서 중요한 말은 일부러다. 원하는 종류를, 원하는 양만큼, 원하는 방식으로 넣어야 한다. 웨이퍼 자체의 기본 전기적 성질을 맞추기 위해 아주 적은 도핑 원소를 균일하게 섞는 경우도 있지만, 그 역시 철저히 계산된 작업이다. 반대로 원하지 않는 불순물이 아무 곳에나 섞여 있으면 그것은 설계가 아니라 오염이 된다.

예를 들어 깨끗한 물감을 만들고 싶은데, 처음부터 여러 색이 조금씩 섞여 있다면 원하는 색을 맞추기 어렵다. 반도체용 실리콘도 마찬가지다. 먼저 원하지 않는 성분을 최대한 줄인 고순도 실리콘을 만든 뒤, 필요한 성질만 정확히 조절해야 한다.

그래서 웨이퍼 제조의 첫 단계는 규소 원료를 고순도 실리콘으로 정제하는 일이다. 일반적으로 석영 같은 원료에서 산소를 떼어 내 실리콘을 얻고, 다시 화학적 과정을 거쳐 반도체 제조에 쓸 수 있을 만큼 순도를 높인다. 이렇게 준비된 고순도 실리콘은 이후 단결정 실리콘을 만드는 재료가 된다.1

단결정이 필요한 이유

고순도 실리콘을 얻었다고 해서 곧바로 웨이퍼가 되는 것은 아니다. 다음으로 중요한 조건은 결정 구조다.

결정 구조는 원자들이 규칙적으로 배열된 상태를 말한다. 쉽게 말해, 바닥 타일이 한 방향으로 가지런히 깔린 모습과 비슷하다. 타일이 규칙적으로 깔려 있으면 그 위를 걷거나 선을 그리기 쉽다. 반대로 타일 조각들이 제각각 다른 방향으로 붙어 있으면 경계가 많아지고 울퉁불퉁해진다.

실리콘도 원자들이 규칙적으로 배열되어야 전자의 움직임을 예측하기 쉽다. 여러 작은 결정 덩어리가 뒤섞인 상태를 다결정이라고 하고, 하나의 큰 결정 방향으로 이어진 상태를 단결정이라고 한다. 다결정에는 결정과 결정 사이의 경계가 많다. 이 경계는 전자가 지나가는 길에서 작은 걸림돌처럼 작용할 수 있다.

반도체 웨이퍼에는 보통 단결정 실리콘이 쓰인다. 그래야 같은 웨이퍼 위에서 트랜지스터가 최대한 일정하게 동작할 수 있다. 트랜지스터는 아주 작은 스위치다. 그런데 어떤 위치에서는 전류가 잘 흐르고, 다른 위치에서는 덜 흐른다면 회로가 안정적으로 작동하기 어렵다. 웨이퍼 전체가 가능한 한 균일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씨앗 결정으로 큰 실리콘 기둥을 키운다

단결정 실리콘은 보통 잉곳이라는 큰 원기둥 모양으로 만든다. 잉곳은 웨이퍼를 잘라내기 전의 실리콘 덩어리다. 긴 무 모양의 실리콘 기둥을 떠올리면 된다.

대표적인 방법은 초크랄스키법이다. 이름은 어렵지만 원리는 씨앗으로 결정을 키우는 과정이다. 먼저 고순도 실리콘을 도가니 안에서 녹인다. 그다음 작은 단결정 조각인 씨앗 결정을 녹은 실리콘 표면에 살짝 닿게 한다. 씨앗 결정을 천천히 위로 끌어올리면서 회전시키면, 녹은 실리콘이 씨앗의 결정 방향을 따라 굳어 간다. 이렇게 하나의 결정 방향을 가진 큰 실리콘 기둥이 자란다.2

이 과정은 보기보다 매우 민감하다. 끌어올리는 속도, 회전 속도, 온도, 녹은 실리콘의 상태가 모두 영향을 준다. 너무 빠르거나 온도가 흔들리면 결정 품질이 나빠질 수 있다. 지름도 일정해야 한다. 웨이퍼가 나중에 같은 크기의 원판으로 잘려야 하기 때문이다. 필요하다면 이때 아주 적은 양의 도핑 원소를 함께 조절해 웨이퍼의 기본 전기적 성질을 맞추기도 한다.

또 다른 방법으로 플로트 존법도 있다. 이 방법은 실리콘 막대의 일부만 국소적으로 녹였다가 다시 굳히며 고순도 단결정을 만드는 방식이다. 도가니와 직접 닿지 않는 방식이라 매우 높은 순도가 필요할 때 유리하지만, 만들 수 있는 크기나 생산 조건에는 제약이 있다. 용도와 요구 순도에 따라 적절한 성장 방법이 선택된다.3

여기서 핵심은 하나다. 웨이퍼는 단순한 실리콘 조각이 아니라, 원자 배열과 전기적 성질이 잘 맞춰진 실리콘 바닥이어야 한다.

잉곳을 얇은 원판으로 자른다

단결정 잉곳이 만들어지면 바로 공정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이제 이 긴 기둥을 얇은 원판으로 잘라야 한다. 빵 한 덩어리를 여러 장으로 자르는 모습과 비슷하다. 다만 반도체에서는 빵칼 대신 다이아몬드 톱이나 가느다란 와이어를 사용한다. 실리콘은 단단하지만 깨지기 쉬운 재료라서, 힘으로 밀어붙이기보다 아주 정밀하게 잘라야 한다.4

잘라낸 원판이 바로 웨이퍼의 기본 형태다. 오늘날 반도체 제조에서는 200mm나 300mm 지름의 웨이퍼가 널리 쓰인다. 지름이 클수록 한 장의 웨이퍼 위에 더 많은 칩을 만들 수 있다. 실제로 하나의 웨이퍼에는 수백 개에서 많게는 수천 개의 칩 영역이 반복해서 배치될 수 있다.5

하지만 갓 잘린 웨이퍼 표면은 완벽하지 않다. 톱이나 와이어가 지나간 흔적이 남고, 표면에는 미세한 손상층이 생긴다. 두께도 아주 조금씩 다를 수 있다. 사람 눈에는 매끈해 보여도, 나노미터 단위의 회로를 만들기에는 거칠다.

따라서 자른 뒤에는 여러 후처리가 이어진다. 가장자리 모양을 다듬고, 표면의 손상층을 줄이고, 두께를 맞추고, 평탄도를 높인다. 결정 방향을 확인할 수 있도록 가장자리에 작은 표시를 두기도 한다. 이런 단계들은 화려해 보이지 않지만 매우 중요하다. 웨이퍼가 조금만 휘거나 두께가 고르지 않아도 이후 공정 전체에 영향을 준다.

거울처럼 평평해야 하는 이유

웨이퍼 표면은 최종적으로 거울처럼 반짝이도록 연마된다. 이 작업을 단순히 보기 좋게 만드는 과정으로 생각하면 안 된다. 반도체에서 평평함은 성능과 수율에 직접 연결된다.

이후 장에서 다룰 포토리소그래피는 빛으로 회로 모양을 웨이퍼 위에 옮기는 공정이다. 사진을 찍을 때 초점이 맞아야 선명한 것처럼, 웨이퍼 위에 빛으로 아주 미세한 선을 그릴 때도 표면 높이가 일정해야 한다. 표면이 울퉁불퉁하면 어떤 부분은 초점이 맞고, 어떤 부분은 흐려질 수 있다.

막을 쌓는 공정에서도 평평함은 중요하다. 얇은 막을 일정한 두께로 입혀야 하는데, 바닥이 거칠면 막도 고르게 쌓이기 어렵다. 배선을 만들 때도 마찬가지다. 작은 언덕이나 흠집은 전기가 지나가는 길을 끊거나, 원하지 않는 곳을 이어 버릴 수 있다.

그래서 웨이퍼 표면은 화학적 기계적 연마, 줄여서 CMP라고 부르는 방식 등으로 다듬는다. CMP는 화학 반응으로 표면을 약하게 만들고, 동시에 기계적으로 문질러 아주 조금씩 깎아 내는 방식이다. 거친 나무판을 사포로 문질러 매끈하게 만드는 것과 비슷하지만, 훨씬 더 정밀한 수준에서 이루어진다. 반도체용 웨이퍼에는 매끄럽고, 매우 평평하고, 입자가 거의 없는 표면이 요구되며 CMP는 이를 얻는 핵심 기술로 쓰인다.6

연마 후에는 세정도 필요하다. 표면에 남은 작은 입자, 금속 오염, 유기물 찌꺼기를 제거해야 한다. 웨이퍼는 이후 여러 번의 고온 처리, 도핑, 박막 형성, 식각을 거치기 때문에 출발 표면이 깨끗해야 한다.

작은 결함이 왜 큰 문제가 될까

웨이퍼 한 장에는 같은 회로가 바둑판처럼 반복해서 만들어진다. 나중에 이 영역들을 하나씩 잘라내면 각각이 칩이 된다. 이 구조 때문에 작은 결함도 큰 의미를 가진다.

먼지 한 알을 생각해 보자. 일상에서는 손으로 털어 내면 그만이다. 하지만 반도체 공정에서 먼지 한 알은 거대한 바위처럼 행동할 수 있다. 회로 선폭이 매우 작기 때문에 작은 입자 하나가 배선을 끊거나, 두 선을 붙이거나, 트랜지스터 한 부분을 망가뜨릴 수 있다.

결함의 위치가 우연히 한 칩 영역 안의 중요한 회로 위라면 그 칩은 불량이 될 수 있다. 더 큰 문제도 있다. 웨이퍼 표면의 긴 긁힘, 두께 불균일, 결정 결함처럼 넓은 영역에 걸친 문제는 여러 칩에 동시에 영향을 준다. 한 장의 웨이퍼에서 많은 칩을 만들기 때문에, 웨이퍼 품질이 나쁘면 불량 칩의 수가 한꺼번에 늘어난다.

이것이 수율과 연결된다. 수율은 만든 칩 중 정상적으로 동작하는 칩의 비율이다. 웨이퍼 한 장에서 1000개의 칩을 만들었는데 900개가 정상이라면 수율은 90%다. 같은 설계와 같은 장비를 써도 웨이퍼의 결함, 오염, 평탄도 문제가 많으면 수율이 떨어진다.

반도체 제조가 어려운 이유는 여기 있다. 트랜지스터 하나만 잘 만들면 되는 것이 아니다. 웨이퍼 전체에서, 수백 개 또는 수천 개의 칩 영역에서, 수십억 개의 작은 구조가 거의 같은 품질로 만들어져야 한다.

웨이퍼는 반도체 공정의 조용한 출발점이다

웨이퍼는 최종 제품에서 잘 보이지 않는다. 소비자는 스마트폰 안의 칩을 볼 뿐, 그 칩이 어떤 실리콘 원판 위에서 시작되었는지는 잘 알지 못한다. 하지만 웨이퍼는 모든 공정의 출발점이다.

정리하면 흐름은 이렇다. 먼저 모래나 석영 속 규소 성분에서 고순도 실리콘을 얻는다. 그 실리콘을 녹여 씨앗 결정에서 단결정 잉곳으로 키운다. 잉곳을 얇게 잘라 웨이퍼를 만들고, 표면을 다듬고 연마하고 세정한다. 그 결과 회로를 새길 수 있는 깨끗하고 평평한 실리콘 원판이 준비된다.

다음 단계부터는 이 웨이퍼를 오염으로부터 지키는 일이 중요해진다. 아무리 잘 만든 웨이퍼라도 공정 중 먼지와 오염이 묻으면 품질이 무너질 수 있다. 그래서 반도체 공장은 일반 공장과 전혀 다른 환경을 만든다. 다음 장에서는 웨이퍼를 지키는 공간, 클린룸과 오염 관리의 세계로 들어간다.

참고

1Silicon Wafer Manufacturing Process: Sand to Silicon

2Silicon Wafer Manufacturing Process: Sand to Silicon

3Silicon Wafer Manufacturing Process: Sand to Silicon

4Wafer Manufacturing: Silicon Processing from Crystal Growth to Circuit Printing

5Illustrated guide to semiconductor manufacturing|Step-by-step overview of front-end and back-end processing

6Silicon Wafers; Its Manufacturing Processes and Finishing Techniques: an Overvi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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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 만들기: 모래에서 칩까지 쉽게 이해하는 제조 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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