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전등 스위치처럼 생각하기
손전등을 켜면 전구에 전류가 흐르고, 끄면 전류가 멈춘다. 스위치는 복잡해 보이지 않는다. 길을 열거나 막을 뿐이다. 그런데 컴퓨터와 스마트폰 안에서도 이와 비슷한 일이 일어난다. 다만 손가락으로 누르는 스위치가 아니라, 전압으로 움직이는 아주 작은 스위치가 쓰인다.
이 작은 스위치가 트랜지스터다. 트랜지스터는 전류가 흐를 길을 열거나 막는다. 회로의 어떤 지점이 높은 전압인지 낮은 전압인지에 따라 1과 0을 약속할 수 있는데, 트랜지스터는 바로 그 전압 상태를 만들고 바꾸는 데 쓰인다. 전압 상태가 빠르게 바뀌면 계산이 되고, 일정한 상태로 유지되면 저장이 된다.
물론 실제 칩 안의 트랜지스터는 손전등 스위치보다 훨씬 작고 빠르다. 오늘날 칩 하나에는 수십억 개 이상의 트랜지스터가 들어간다. 하지만 출발점은 단순하다. 전류의 길을 열고 닫는다. 이 감각을 잡으면 복잡한 반도체 칩도 작은 스위치들이 모인 도시처럼 보이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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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과 1은 전압의 상태에서 나온다
컴퓨터는 글자, 사진, 음악, 영상을 모두 0과 1의 조합으로 다룬다. 그렇다면 0과 1은 실제 회로에서 무엇일까?
회로 안에서는 보통 전압의 높고 낮음으로 0과 1을 구분한다. 예를 들어 어떤 지점의 전압이 낮으면 0, 높으면 1로 약속할 수 있다. 반대로 설계하는 경우도 있지만, 핵심은 같다. 회로가 미리 정한 두 가지 전압 상태를 0과 1로 해석한다는 점이다.
트랜지스터가 꺼져 있으면 전류가 거의 흐르지 않는다. 그러면 회로의 어떤 지점은 원래의 전압 상태를 유지하거나, 다른 경로를 통해 낮은 전압 또는 높은 전압으로 남을 수 있다. 반대로 트랜지스터가 켜지면 전류가 흐르면서 연결된 지점의 전압이 바뀐다. 이렇게 전압 상태가 바뀌면 회로는 0이 1로, 또는 1이 0으로 바뀐 것으로 해석한다.
중요한 점은 트랜지스터가 '조금 똑똑한 부품'이 아니라는 것이다. 트랜지스터 하나는 단순한 스위치에 가깝다. 하지만 이 스위치가 엄청나게 많이 모이고, 정해진 규칙에 따라 연결되면 덧셈, 비교, 저장, 판단 같은 동작이 가능해진다.
벽돌 하나는 집이 아니지만, 벽돌을 정확한 위치에 쌓으면 건물이 된다. 트랜지스터도 마찬가지다. 하나하나는 전류를 켜고 끄는 소자지만, 수많은 트랜지스터가 배선으로 연결되면 칩이라는 거대한 회로가 된다.
게이트, 소스, 드레인: 세 이름만 먼저 잡기
트랜지스터에는 여러 종류가 있지만, 현대 반도체 칩에서 가장 중요하게 쓰이는 것은 MOSFET이다. 읽을 때는 보통 '모스펫'이라고 한다. 이름은 길지만, 우선 세 부분만 기억하면 된다.
첫째는 소스다. 둘째는 드레인이다. 소스와 드레인은 전류가 드나드는 두 단자라고 생각하면 쉽다. 물길로 비유하면 한쪽은 물이 들어오는 쪽이고, 다른 한쪽은 물이 빠져나가는 쪽이다. 실제 회로에서는 트랜지스터의 종류와 전압 조건에 따라 어느 쪽을 더 중요하게 보느냐가 달라질 수 있지만, 처음에는 "소스와 드레인 사이에 전류 길이 열린다" 정도로 이해하면 충분하다.
셋째는 게이트다. 게이트는 전류가 직접 지나가는 길이라기보다, 길을 열지 말지 결정하는 조절 손잡이다. 이름 그대로 '문'처럼 생각해도 좋다. 게이트에 어떤 전압을 주느냐에 따라 소스와 드레인 사이에 전류가 흐를 수도 있고, 막힐 수도 있다.
여기서 중요한 차이가 있다. 손전등 스위치는 손가락이 직접 금속 접점을 붙였다 떼며 길을 열고 닫는다. 하지만 MOSFET의 게이트는 전류 길과 직접 닿아 있지 않다. 게이트 아래에는 아주 얇은 절연막이 있다. 절연막은 전류가 쉽게 지나가지 못하게 막는 막이다. 그런데도 게이트에 전압을 걸면 그 아래 반도체의 전자 상태가 바뀐다.
즉 MOSFET은 직접 문을 밀어 여는 방식이 아니라, 전기적인 힘으로 아래쪽에 전류가 흐를 수 있는 길을 만들거나 없애는 방식이다.
전압을 걸면 길이 생긴다
이제 MOSFET이 어떻게 켜지는지 직관적으로 살펴보자.
소스와 드레인 사이에는 반도체 영역이 있다. 이 영역이 그대로라면 전류가 잘 흐르지 못한다. 길이 끊겨 있는 셈이다. 그런데 게이트에 적절한 전압을 걸면 상황이 달라진다.
게이트 전압은 반도체 안의 전자들을 끌어당기거나 밀어낸다. 예를 들어 전자를 끌어당기는 방향으로 전압을 걸면, 게이트 아래에 전자가 모인다. 전자가 충분히 모이면 소스와 드레인 사이에 전자가 지나갈 수 있는 얇은 길이 만들어진다. 이 길을 채널이라고 부른다.
채널은 실제 도로처럼 파여 있는 길은 아니다. 반도체 안에서 전하가 이동하기 쉬운 상태가 된 얇은 영역이다. 하지만 전류의 입장에서는 길이 열린 것과 같다. 채널이 생기면 소스와 드레인 사이로 전류가 흐른다. 이 상태가 트랜지스터의 켜짐이다.
반대로 게이트 전압을 낮추거나 없애면 전자들이 충분히 모이지 않는다. 채널이 사라지고 소스와 드레인 사이의 전류가 거의 끊긴다. 이 상태가 꺼짐이다.
가장 단순한 NMOS 트랜지스터를 기준으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게이트 전압이 낮다 → 채널이 없다 → 전류가 거의 흐르지 않는다 → 꺼짐
게이트 전압이 충분히 높다 → 채널이 생긴다 → 전류가 흐른다 → 켜짐
이때 '충분히 높은 전압'의 기준을 문턱 전압이라고 한다. 문턱 전압은 트랜지스터가 본격적으로 켜지기 시작하는 경계다. 문턱이라는 말처럼, 그 선을 넘으면 길이 열리기 시작한다.
다만 현실의 트랜지스터가 칼로 자르듯 완벽하게 꺼졌다 켜지는 것은 아니다. 문턱 전압 아래에서도 아주 작은 전류가 흐를 수 있고, 문턱 전압을 넘으면서 전류가 점점 커진다. 그래도 디지털 회로에서는 이 차이를 이용해 충분히 꺼진 상태와 충분히 켜진 상태를 구분한다.
도핑은 트랜지스터의 모양을 정한다
이전 장에서 도핑은 실리콘에 아주 적은 불순물을 넣어 전기적 성질을 바꾸는 기술이라고 했다. 트랜지스터는 이 도핑을 매우 정밀하게 이용한다.
예를 들어 가장 단순한 NMOS 트랜지스터를 생각해 보자. NMOS는 전자를 주로 이용해 전류를 흐르게 하는 MOSFET이다. 보통 P형 반도체 바탕 위에 N형 영역 두 개를 만든다. 이 두 N형 영역이 각각 소스와 드레인이 된다. 그 사이에는 P형 영역이 남아 있다.
처음에는 N형 소스와 N형 드레인 사이가 P형 영역으로 끊겨 있어 전자가 쉽게 지나가지 못한다. 그런데 게이트에 전압을 걸면 게이트 아래 P형 영역의 표면에 전자가 모인다. 그러면 그 부분이 마치 N형처럼 행동하며 소스와 드레인을 이어 주는 채널이 된다.
반대로 PMOS 트랜지스터는 정공을 주로 이용한다. 구조와 전압 방향은 NMOS와 반대에 가깝다. NMOS가 특정 조건에서 전자를 모아 길을 만든다면, PMOS는 반대 방향의 조건에서 정공이 움직이기 쉬운 길을 만든다고 이해하면 된다.
실제 디지털 회로에서는 NMOS와 PMOS를 함께 많이 쓴다. 두 종류를 짝지어 쓰면 전력 소모를 줄이고 안정적인 0과 1을 만들기 좋다. 이런 방식이 흔히 말하는 CMOS 회로의 바탕이다. CMOS는 한쪽 트랜지스터가 켜질 때 다른 쪽은 꺼지는 식으로 동작하는 경우가 많아서, 가만히 같은 상태를 유지할 때 불필요하게 흐르는 전류를 줄이는 데 유리하다.
여기서 모든 세부 구조를 외울 필요는 없다. 핵심은 하나다. 도핑으로 소스와 드레인을 만들고, 게이트 전압으로 그 사이의 채널을 만들거나 없앤다. 이것이 트랜지스터가 스위치가 되는 원리다.
작은 스위치가 논리를 만든다
트랜지스터 하나는 켜짐과 꺼짐을 만든다. 그렇다면 어떻게 계산이 가능할까?
계산은 여러 스위치를 연결하는 규칙에서 나온다. 예를 들어 두 조건이 모두 참일 때만 원하는 전압 상태가 만들어지게 연결하면 AND 동작이 된다. 둘 중 하나만 참이어도 원하는 전압 상태가 만들어지게 연결하면 OR 동작이 된다. 입력이 1이면 출력이 0이 되고, 입력이 0이면 출력이 1이 되게 만들면 NOT 동작이 된다.
이런 기본 논리 회로가 모이면 덧셈 회로가 되고, 덧셈 회로가 모이면 더 복잡한 연산 장치가 된다. 저장 회로도 트랜지스터의 조합으로 만든다. 결국 칩 내부의 복잡한 동작은 트랜지스터의 켜짐과 꺼짐, 그리고 그 연결 방식에서 나온다.
이 점 때문에 트랜지스터는 반도체 칩의 기본 단위라고 불린다. 건물의 기본 단위가 벽돌이라면, 디지털 칩의 기본 단위는 트랜지스터다. 물론 현대 칩은 단순한 벽돌집보다 훨씬 복잡하다. 그래도 가장 아래층에서는 여전히 수많은 작은 스위치가 0과 1을 바꾸고 있다.
작아지면 왜 빨라질까
반도체 산업은 오랫동안 트랜지스터를 더 작게 만드는 방향으로 발전해 왔다. 트랜지스터가 작아지면 같은 면적에 더 많은 트랜지스터를 넣을 수 있다. 이것만으로도 칩은 더 많은 기능을 담을 수 있다.
작아지면 속도도 빨라질 수 있다. 전자가 이동해야 하는 거리가 짧아지고, 회로 안의 작은 전기적 용량을 채우고 비우는 데 걸리는 시간도 줄어들기 때문이다. 긴 복도를 지나가는 것보다 짧은 문턱을 넘는 편이 빠르고, 큰 물통보다 작은 컵을 채우고 비우는 일이 빠른 것과 비슷하다. 소스와 드레인 사이의 거리가 줄어들고 회로의 전압 상태가 더 빨리 바뀌면, 전체 회로도 더 빠르게 동작할 수 있다.
또 작은 트랜지스터는 예전에는 더 낮은 전압으로도 동작할 수 있었다. 전압이 낮아지면 전력 소모와 발열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된다. 그래서 한동안 반도체의 미세화는 더 많은 기능, 더 빠른 속도, 더 낮은 전력이라는 세 가지 이점을 함께 가져왔다.
하지만 이 이야기는 항상 좋은 방향으로만 가지 않는다. 트랜지스터가 너무 작아지면 새로운 문제가 나타난다.
작아질수록 새는 전류와 열이 문제다
스위치는 꺼졌을 때 전류를 완전히 막아야 이상적이다. 하지만 실제 트랜지스터는 꺼져 있어도 아주 적은 전류가 샐 수 있다. 이를 누설 전류라고 한다. 물이 잠긴 수도꼭지에서 한 방울씩 새는 것과 비슷하다.
트랜지스터가 클 때는 이 누설 전류가 비교적 작게 느껴졌다. 그러나 트랜지스터가 작아지고 칩 안에 수십억 개가 들어가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하나하나의 새는 양은 작아도, 모두 합치면 무시하기 어렵다. 전류가 새면 전력이 낭비되고 열이 생긴다.
열은 반도체에서 매우 중요한 문제다. 칩이 뜨거워지면 전자의 움직임이 불안정해지고, 회로가 의도한 대로 동작하기 어려워질 수 있다. 또한 높은 온도는 장기적인 신뢰성에도 영향을 준다. 스마트폰이 뜨거워지면 성능을 낮추는 것도 이런 이유와 연결된다. 더 빨리 계산하고 싶어도 열을 처리하지 못하면 계속 빠르게 달릴 수 없다.
트랜지스터가 작아질수록 게이트가 채널을 제어하는 일도 더 어려워진다. 채널이 너무 짧으면 게이트가 문을 닫으려 해도 소스와 드레인 사이의 영향이 커져 전류가 새기 쉽다. 얇은 절연막도 문제다. 너무 얇아지면 원래는 막아야 할 전자가 아주 작은 확률로 통과할 수 있다.
그래서 현대 반도체 제조는 단순히 '더 작게'만 만드는 일이 아니다. 작아진 구조에서도 게이트가 전류를 잘 제어하게 만들고, 누설 전류와 발열을 줄이며, 수십억 개의 트랜지스터가 균일하게 동작하도록 맞추는 일이다.
칩은 작은 스위치들의 도시다
트랜지스터를 이해할 때 가장 중요한 그림은 이렇다. 소스와 드레인 사이에는 전류가 지나갈 길이 필요하다. 게이트에 전압을 걸면 그 길, 즉 채널이 생긴다. 전압을 거두면 길이 사라진다. 채널이 열리고 닫히면서 회로의 전압 상태가 바뀌고, 회로는 그 상태를 0과 1로 해석한다.
이 단순한 원리가 수없이 반복되면 반도체 칩이 된다. 칩 안에는 전류가 지나가는 길, 전류를 막는 벽, 신호를 전달하는 배선, 정보를 저장하는 작은 회로가 빽빽하게 들어 있다. 그 중심에는 언제나 트랜지스터가 있다.
앞으로 우리는 이 작은 스위치들을 실제로 어떻게 만드는지 살펴볼 것이다. 트랜지스터는 설계도만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실리콘을 정제해 웨이퍼를 만들고, 깨끗한 공간에서 빛으로 무늬를 그리고, 막을 쌓고 깎으며, 도핑과 배선을 반복해야 한다. 반도체 제조 공정은 이 작은 스위치를 정확한 위치에, 정확한 모양으로, 엄청난 수량만큼 만드는 기술이다.
트랜지스터 하나의 원리는 비교적 단순하다. 그러나 수십억 개를 한 장의 칩 위에 균일하게 만드는 일은 매우 어렵다. 바로 그 어려움 때문에 반도체 제조가 정밀 산업의 정점에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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