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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mmary

왜 인터넷은 길에서 시작할까

인터넷을 만든다고 하면 먼저 주소, 서버, 웹 페이지를 떠올리기 쉽다. 하지만 그 모든 것보다 아래에 있는 첫 번째 조건은 단순하다. 데이터가 지나갈 실제 길이 있어야 한다.

문자를 보낼 때도, 사진을 열 때도, 영상을 볼 때도 컴퓨터 안에서는 결국 아주 작은 0과 1의 흐름이 만들어진다. 이 흐름은 허공에 마법처럼 떠다니지 않는다. 구리선 안의 전기, 유리섬유 안의 빛, 공기 중의 전파처럼 물리적인 형태를 빌려 이동한다.

도로가 없으면 택배차가 출발할 수 없다. 마찬가지로 물리적인 길이 없으면 데이터도 출발할 수 없다. 여기서 말하는 길은 사람이 걷는 길이 아니라, 컴퓨터가 신호를 주고받을 수 있는 통로다. 이 통로를 네트워크에서는 전송 매체라고 부른다. 쉽게 말해, 데이터를 실어 나르는 재료다.

이 장에서는 아직 IP 주소나 라우터의 길 찾기를 다루지 않는다. 그보다 더 아래로 내려가서, 눈에 보이지 않는 데이터가 어떻게 실제 세계의 전기, 빛, 전파가 되어 움직이는지 감각을 잡아 보자.

비트가 지나가는 길 만들기AI 생성 이미지

모든 데이터는 비트로 바뀐다

컴퓨터는 "안녕"이라는 문자, 고양이 사진, 10분짜리 영상 파일을 그대로 이해하지 않는다. 컴퓨터가 다루는 가장 작은 단위는 비트다. 비트는 전등 스위치처럼 생각하면 쉽다. 꺼짐과 켜짐, 또는 0과 1, 두 가지 상태 중 하나를 나타낸다.

문자 하나도 컴퓨터 안에서는 정해진 약속에 따라 0과 1의 묶음으로 바뀐다. 사진은 수많은 점의 색과 밝기 정보가 0과 1로 표현된다. 영상은 사진이 빠르게 이어지고 소리까지 함께 들어 있는 큰 비트 묶음이다.

예를 들어 친구에게 사진을 보낸다고 하자. 사용자는 사진 한 장을 보낸다고 느끼지만, 컴퓨터는 그 사진을 작은 비트들의 긴 줄로 다룬다. 이 긴 줄은 한 번에 통째로 날아가는 것이 아니라, 여러 조각으로 나뉘어 차례로 이동한다. 뒤의 장에서는 이 조각에 주소를 붙이고 다시 맞추는 방법을 배운다. 지금은 그 조각들이 결국 0과 1의 신호로 바뀌어 길을 지난다는 점만 잡으면 된다.

비유하자면, 책 한 권을 통째로 택배 벨트에 올리는 대신 낱장으로 나누어 번호를 붙여 보내는 것과 비슷하다. 다만 비유는 여기까지다. 실제 컴퓨터는 종이 낱장이 아니라 매우 빠르게 변하는 전기적·광학적·무선 신호를 사용한다.

랜 케이블: 전기로 보내는 길

가장 눈에 잘 보이는 네트워크 길은 랜 케이블이다. 집이나 사무실에서 컴퓨터와 공유기, 스위치를 연결할 때 쓰는 케이블이다. 랜 케이블 안에는 보통 여러 가닥의 구리선이 들어 있다. 구리선은 전기가 잘 흐르는 금속이고, 컴퓨터는 이 전기 신호의 변화를 이용해 0과 1을 전달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전기가 흐르면 1, 안 흐르면 0"처럼 너무 단순하게만 이해하면 부족하다는 점이다. 실제 장비는 정해진 시간 간격에 맞춰 전기 신호의 모양과 변화를 읽는다. 전압의 높낮이, 변화의 방향, 여러 선 사이의 차이 같은 요소를 약속에 맞게 해석한다. 마치 두 사람이 손전등을 켜고 끄는 약속을 미리 정한 뒤, 멀리서 그 깜빡임을 보고 메시지를 읽는 것과 비슷하다.

랜 케이블의 장점은 안정적이라는 것이다. 길이 눈에 보이고, 벽이나 사람의 움직임에 비교적 덜 흔들린다. 그래서 같은 방이나 같은 건물 안에서 작은 인터넷을 만들 때는 랜 케이블이 좋은 출발점이다.

직접 관찰할 수 있는 것도 있다. 컴퓨터와 스위치 또는 공유기를 케이블로 연결하면 포트 옆에 작은 불이 켜지는 경우가 많다. 이 불은 보통 "물리적인 연결이 살아 있다"는 표시다. 아직 인터넷이 된다는 뜻은 아니지만, 적어도 신호가 오갈 수 있는 문이 열렸다는 뜻으로 볼 수 있다.

광섬유: 빛으로 보내는 길

더 먼 거리, 더 많은 데이터를 보내야 할 때는 광섬유가 자주 쓰인다. 광섬유는 아주 가는 유리나 플라스틱 길 안으로 빛을 보내는 방식이다. 구리선이 전기 신호를 쓰는 길이라면, 광섬유는 빛 신호를 쓰는 길이다.

빛은 매우 빠르고, 먼 거리에서도 많은 정보를 실어 나를 수 있다. 그래서 도시와 도시, 나라와 나라, 대륙과 대륙을 잇는 큰 인터넷 길에는 광섬유가 많이 사용된다. 우리가 해외 웹사이트에 접속할 때도 중간 어딘가에서는 바닷속 광케이블을 지나는 경우가 있다.

광섬유를 이해할 때는 손전등과 긴 거울 통로를 떠올리면 쉽다. 한쪽 끝에서 빛을 깜빡이면 반대쪽 끝에서 그 변화를 읽는다. 실제 광섬유는 훨씬 정교하게 빛을 다루지만, 핵심은 같다. 데이터를 빛의 변화로 바꾸어 보낸다.

다만 광섬유도 만능은 아니다. 너무 심하게 꺾이거나, 연결 부위가 더럽거나, 장비가 빛 신호를 제대로 보내고 받지 못하면 통신 품질이 나빠진다. 물리적인 길인 이상 상태가 좋고 나쁨이 있다.

와이파이: 공기 중 전파로 보내는 길

케이블 없이 인터넷을 쓰게 해 주는 대표적인 방식이 와이파이다. 와이파이는 데이터를 전파에 실어 공기 중으로 보낸다. 전파는 눈에 보이지 않지만, 라디오 방송이나 휴대전화 통신처럼 실제 공간을 지나가는 물리적 신호다.

와이파이를 우체국 비유로 보면, 케이블은 전용 도로에 가깝고 와이파이는 같은 방 안에서 여러 사람이 동시에 말하는 것에 가깝다. 모두가 같은 공간을 함께 쓰기 때문에 약속이 필요하다. 누가 언제 말할지, 서로의 말이 겹치거나 알아듣기 어려우면 어떻게 다시 말할지 정해야 한다.

와이파이의 장점은 자유롭다는 것이다. 노트북이나 휴대전화를 들고 이동해도 연결할 수 있다. 단점은 주변 환경에 영향을 많이 받는다는 것이다. 벽, 거리, 전자레인지 같은 다른 전파원, 이웃집 와이파이 신호가 품질에 영향을 줄 수 있다.

그래서 공유기 바로 옆에서는 영상이 잘 나오다가 방을 몇 개 지나면 끊길 수 있다. 데이터가 갑자기 게을러진 것이 아니다. 공기를 지나가는 신호가 약해지거나 다른 신호와 섞여, 받는 쪽이 제대로 읽기 어려워진 것이다.

방식은 달라도 공통점은 같다

랜 케이블, 광섬유, 와이파이는 겉모습이 다르다. 하나는 전기, 하나는 빛, 하나는 전파를 쓴다. 하지만 공통점은 분명하다.

첫째, 보내는 쪽은 비트를 신호로 바꾼다. 둘째, 신호는 어떤 매체를 지나간다. 셋째, 받는 쪽은 신호를 다시 비트로 읽는다. 넷째, 양쪽은 같은 약속을 써야 한다.

이 약속을 넓게 프로토콜이라고 부른다. 프로토콜은 "서로 알아듣기 위한 규칙"이다. 사람으로 치면 같은 언어와 말하는 순서를 정하는 것과 비슷하다. 한 사람이 모스 부호처럼 깜빡이고 있는데 다른 사람이 그것을 음악 박자로 해석하면 메시지는 깨진다. 네트워크도 마찬가지다.

다만 이 장에서는 프로토콜 전체를 깊게 다루지 않는다. 지금 필요한 감각은 하나다. 데이터는 비트이고, 비트는 그냥 이동하지 않는다. 전기·빛·전파 같은 신호로 바뀌어 물리적인 길을 지나간다.

속도, 지연 시간, 끊김, 손실

사용자가 느끼는 인터넷 품질은 보통 네 가지 감각으로 나타난다. 빠른가, 반응이 즉시 오는가, 중간에 끊기지 않는가, 데이터가 사라지지 않는가.

속도는 보통 일정 시간 동안 얼마나 많은 데이터를 보낼 수 있는지로 느껴진다. 도로 비유로는 차선 수와 비슷하다. 차선이 넓으면 같은 시간에 더 많은 차가 지나갈 수 있다. 네트워크에서는 이런 길의 폭을 대역폭이라고 부른다. 실제로 사용자가 체감하는 속도는 이 대역폭뿐 아니라 장비 상태, 혼잡도, 신호 품질의 영향을 함께 받는다.

하지만 대역폭이 크다고 모든 것이 즉시 반응하는 것은 아니다. 지연 시간이 있기 때문이다. 지연 시간은 신호가 상대에게 도착하거나, 요청을 보낸 뒤 응답이 돌아오기까지 걸리는 시간과 관련이 있다. 도로가 넓어도 목적지가 아주 멀면 첫 번째 택배가 도착하는 데 시간이 걸리는 것과 같다.

영상 스트리밍은 대역폭의 영향을 크게 받는다. 많은 데이터를 계속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반대로 온라인 게임이나 화상 회의는 지연 시간에 민감하다. 작은 움직임과 말소리가 늦게 도착하면 사용자가 바로 불편함을 느낀다.

끊김은 연결이 잠깐씩 사라지거나 신호 품질이 크게 흔들릴 때 생긴다. 손실은 보낸 데이터 조각 중 일부가 받는 쪽에 제대로 도착하지 못하는 것이다. 택배 상자 여러 개 중 몇 개가 중간에 사라지거나 찌그러져 도착한 상황과 비슷하다.

신호는 약해지고, 섞이고, 틀릴 수 있다

물리적인 길에는 항상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케이블이 너무 길면 신호가 약해질 수 있다. 커넥터가 헐겁거나 손상되면 신호가 흔들릴 수 있다. 와이파이는 벽을 지나며 약해지고, 주변 전파와 섞일 수 있다.

받는 쪽은 완벽한 0과 1을 받는 것이 아니라, 현실 세계에서 흔들린 신호를 읽는다. 신호가 충분히 선명하면 "이건 0이다", "이건 1이다"라고 판단할 수 있다. 하지만 신호가 흐릿하면 잘못 읽을 수 있다.

그래서 네트워크에는 오류 확인이 필요하다. 오류 확인은 받은 데이터가 중간에 깨지지 않았는지 살펴보는 절차다. 택배 상자를 받을 때 송장 번호와 내용물 개수를 확인하는 것과 비슷하다. 컴퓨터는 데이터 조각에 확인용 값을 붙이고, 받는 쪽은 그 값이 맞는지 검사한다.

문제가 있으면 어떻게 할까. 경우에 따라 그 조각을 버리고 다시 보내 달라고 요청한다. 이것이 재전송이다. 재전송은 잃어버린 택배를 다시 보내는 일과 비슷하다. 물론 다시 보내는 동안 시간이 더 걸린다. 그래서 신호 품질이 나쁘면 속도가 느려지고, 영상이 멈추고, 통화가 끊긴 것처럼 느껴진다.

뒤의 장에서 TCP와 UDP를 다룰 때 이 재전송과 손실을 더 자세히 보게 된다. 지금은 "인터넷이 느리다"는 말 뒤에 실제로는 신호 약화, 간섭, 손실, 재전송 같은 일이 숨어 있을 수 있다는 점만 기억하자.

작은 인터넷을 만들 때 먼저 볼 것

작은 인터넷을 직접 만든다면 가장 먼저 확인할 것은 물리적인 연결이다. 복잡한 설정을 보기 전에 길이 살아 있는지부터 봐야 한다.

랜 케이블을 쓴다면 케이블이 끝까지 꽂혔는지 확인한다. 포트의 연결 표시등이 켜지는지 본다. 다른 케이블로 바꿔 보거나, 다른 포트에 꽂아 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이 단계에서는 주소가 맞는지, 서버가 켜져 있는지보다 먼저 "신호가 지나갈 길이 있는가"를 본다.

와이파이를 쓴다면 공유기와 장치 사이의 거리를 줄여 본다. 벽이 많은 곳에서는 위치를 바꿔 본다. 같은 방에서는 잘 되는데 멀어지면 나빠진다면, 주소 문제가 아니라 신호 품질 문제일 가능성이 크다.

광섬유를 다루는 환경이라면 케이블이 심하게 꺾이지 않았는지, 연결 부위가 제대로 맞물렸는지 확인해야 한다. 광섬유는 빛의 길이므로 연결면의 상태가 중요하다.

문제가 생겼을 때 바로 어려운 설정으로 뛰어들 필요는 없다. 인터넷의 맨 아래에는 항상 물리적인 길이 있다. 길이 끊어졌는데 주소를 아무리 고쳐도 데이터는 가지 못한다.

이 장에서 잡아야 할 감각

인터넷은 추상적인 구름이 아니다. 가장 아래에서는 현실 세계의 신호가 움직인다. 문자, 사진, 영상은 비트가 되고, 비트는 전기·빛·전파의 변화로 바뀌어 이동한다.

랜 케이블은 전기로, 광섬유는 빛으로, 와이파이는 전파로 데이터를 보낸다. 방식은 달라도 보내는 쪽이 비트를 신호로 바꾸고, 받는 쪽이 신호를 다시 비트로 읽는다는 구조는 같다.

그리고 물리적인 길에는 품질이 있다. 속도는 얼마나 많이 보낼 수 있는지, 지연 시간은 얼마나 빨리 반응이 돌아오는지, 손실은 보낸 조각이 제대로 도착하지 못하는지를 나타낸다. 신호가 약해지거나 다른 신호와 섞이면 오류 확인과 재전송이 필요하고, 그 결과 사용자는 느림과 끊김을 경험한다.

다음 장에서는 이 물리적인 길 위에 컴퓨터가 어떻게 네트워크 문을 여는지 살펴본다. 길이 생겼다면, 이제 컴퓨터 안에서 그 길로 나가고 들어오는 입구를 확인할 차례다.

책 목록

인터넷 만들기: 작은 네트워크로 배우는 인터넷의 작동 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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