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자핵은 작지만 무겁다
원자는 대부분 빈 공간이다. 원자의 크기를 대략 (10^{-10},text{m})라고 하면, 원자핵의 크기는 보통 (10^{-15},text{m})에서 (10^{-14},text{m}) 정도의 아주 작은 범위에 들어간다. 원자 전체와 비교하면 훨씬 작지만, 원자 질량의 거의 전부는 원자핵에 모여 있다. 원자핵은 양전하를 띤 양성자와 전하가 없는 중성자로 이루어지며, 둘을 합쳐 핵자라고 부른다.
원자핵을 나타낼 때는 보통 다음과 같이 쓴다.
[ {}^{A}_{Z}X ]
여기서 (Z)는 양성자 수, (A)는 질량수이다. 질량수는 양성자 수와 중성자 수의 합이다.
[ A=Z+N ]
예를 들어 ({}^{14}_{6}text{C})는 양성자 6개, 중성자 8개를 가진 탄소 원자핵이다. 같은 원소는 양성자 수가 같지만, 중성자 수는 다를 수 있다. 이렇게 양성자 수는 같고 중성자 수가 다른 원자를 동위원소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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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성자끼리는 밀어내는데 왜 원자핵은 흩어지지 않을까
양성자는 모두 양전하를 띠므로 서로 전기적으로 밀어낸다. 원자핵 안에서는 양성자들이 매우 가까이 있으므로 이 반발력은 작지 않다. 그런데도 많은 원자핵이 안정하게 존재한다. 그 이유는 핵자 사이에 작용하는 강한 상호작용 때문이다.
강한 상호작용은 아주 짧은 거리에서 핵자들을 강하게 묶어 주는 상호작용이다. 원자핵 크기 정도의 거리에서는 전기적 반발보다 강하게 작용해 양성자와 중성자를 붙잡아 둔다. 하지만 거리가 조금만 멀어지면 급격히 약해진다. 그래서 강한 상호작용은 일상적인 거리에서는 직접 느낄 수 없다.
중성자는 전하가 없으므로 전기적 반발을 늘리지 않으면서 강한 상호작용에는 참여한다. 따라서 중성자는 원자핵을 안정하게 만드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가벼운 원자핵은 양성자 수와 중성자 수가 비슷할 때 안정한 경우가 많다. 하지만 무거운 원자핵에서는 양성자 사이의 전기적 반발이 커지므로, 안정하려면 대체로 더 많은 중성자가 필요하다.
원자핵이 안정한지 판단할 때는 "양성자 수와 중성자 수의 균형"을 보아야 한다. 균형에서 크게 벗어난 원자핵은 시간이 지나며 다른 원자핵으로 변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나오는 입자나 전자기파가 바로 방사선이다.
결합에너지와 질량 결손
원자핵의 질량은 그 원자핵을 이루는 양성자와 중성자를 따로따로 떼어 놓고 더한 질량보다 조금 작다. 이 차이를 질량 결손이라고 한다. 질량이 실제로 사라졌다기보다는, 핵자들이 결합해 더 안정한 원자핵이 될 때 그 차이에 해당하는 에너지가 밖으로 방출되었다고 이해하면 좋다.
[ E_b=Delta mc^2 ]
여기서 (E_b)는 결합에너지, (Delta m)은 질량 결손, (c)는 빛의 속력이다. 결합에너지는 원자핵을 완전히 흩어 놓기 위해 필요한 에너지이다. 반대로 말하면, 핵자들이 모여 안정한 원자핵이 될 때 그만큼의 에너지가 방출된다.
핵반응에서 에너지가 나오는 핵심은 간단하다. 반응 뒤의 원자핵들이 반응 전보다 더 안정한 상태가 되면, 전체 질량이 조금 줄어든다. 줄어든 질량은 (E=mc^2)에 따라 에너지로 나타난다. 질량 변화는 매우 작지만, (c^2)가 매우 크기 때문에 방출되는 에너지는 매우 클 수 있다.
핵물리에서 에너지는 보통 전자볼트(eV)를 사용한다. 원자핵 수준에서는 MeV, 즉 백만 전자볼트 단위가 자주 등장한다. 화학 반응은 주로 전자의 배열 변화와 관련되지만, 핵반응은 원자핵 자체가 변한다. 그래서 핵반응의 에너지는 일반적인 화학 반응보다 훨씬 크다.
알파선, 베타선, 감마선
불안정한 원자핵은 더 안정한 상태로 변하면서 방사선을 낸다. 대표적인 방사선에는 알파선, 베타선, 감마선이 있다.
알파선은 헬륨 원자핵 ({}^{4}_{2}text{He})이다. 양성자 2개와 중성자 2개로 이루어져 있으며 전하는 (+2e)이다. 질량이 크고 전하도 크기 때문에 물질 속 원자들과 강하게 상호작용한다. 그래서 공기 중에서도 멀리 가지 못하고, 종이나 피부의 바깥층으로도 상당 부분 막을 수 있다. 하지만 몸 안으로 들어가면 가까운 세포에 큰 영향을 줄 수 있다.
베타선은 빠른 전자 또는 양전자이다. 베타 마이너스 붕괴에서는 원자핵 안의 중성자가 양성자로 바뀌면서 전자와 반중성미자가 나온다.
[ n rightarrow p + e^- + bar{nu} ]
베타 플러스 붕괴에서는 원자핵 안의 양성자가 중성자로 바뀌면서 양전자와 중성미자가 나온다.
[ p rightarrow n + e^+ + nu ]
베타선은 알파선보다 가볍고 투과력이 더 크다. 얇은 알루미늄판 등으로 세기를 줄일 수 있으며, 전하를 띠므로 전기장과 자기장에서 휘어진다.
감마선은 매우 높은 에너지를 가진 전자기파이다. 전하도 없고 질량도 없다. 알파선이나 베타선처럼 입자를 내보내 원자핵의 종류를 바꾸는 것은 아니며, 들뜬 원자핵이 낮은 에너지 상태로 내려가면서 감마선을 방출하는 경우가 많다. 감마선은 투과력이 크기 때문에 두꺼운 납이나 콘크리트로 세기를 줄인다.
방사선의 위험성은 단순히 "강하다" 또는 "약하다"로 판단할 수 없다. 방사선의 종류, 에너지, 노출 시간, 몸 밖에서 맞는지 몸 안에 들어왔는지에 따라 영향이 달라진다. 방사선은 세포를 이온화하여 손상시킬 수 있지만, 적절히 조절하면 암 치료, 의료 영상, 멸균, 산업 검사에도 이용된다.
반감기: 원자핵 변화의 시간 척도
방사성 붕괴는 개별 원자핵 하나만 놓고 보면 언제 일어날지 정확히 예측할 수 없다. 하지만 많은 원자핵을 모아 놓으면 일정한 규칙이 나타난다. 처음 있던 방사성 원자핵의 절반이 붕괴하는 데 걸리는 시간을 반감기라고 한다.
반감기가 (T)인 물질에서 시간이 (t)만큼 지났을 때 남아 있는 원자핵 수는 다음과 같이 나타낼 수 있다.
[ N=N_0left(frac{1}{2}right)^{t/T} ]
반감기가 지났다고 해서 모든 원자핵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절반이 남고, 다시 같은 시간이 지나면 남은 것의 절반이 또 남는다. 이 성질은 방사성 연대 측정, 의학용 추적자, 원자력 안전 관리에 중요하게 쓰인다.
핵분열: 무거운 원자핵이 쪼개질 때
핵분열은 무거운 원자핵이 두 개 이상의 더 가벼운 원자핵으로 쪼개지는 반응이다. 예를 들어 우라늄-235는 중성자를 흡수한 뒤 불안정해져 두 조각으로 갈라질 수 있다. 이때 에너지와 함께 몇 개의 중성자가 더 나온다.
핵분열에서 중요한 점은 새로 나온 중성자들이 다른 우라늄 원자핵을 다시 분열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과정이 이어지면 연쇄 반응이 된다. 원자로에서는 연쇄 반응을 조절해 열을 얻고, 그 열로 물을 끓여 터빈을 돌려 전기를 생산한다. 반응 속도를 제어하지 못하면 매우 짧은 시간에 큰 에너지가 방출될 수 있다.
핵분열 에너지는 "쪼개졌기 때문에" 자동으로 나오는 것이 아니다. 반응 전보다 반응 후 원자핵들의 전체 결합 상태가 더 안정해지고, 그 결과 전체 질량이 줄어들기 때문에 에너지가 나온다. 따라서 핵분열도 결국 결합에너지 차이와 질량-에너지 등가 원리로 설명된다.
핵융합: 가벼운 원자핵이 합쳐질 때
핵융합은 가벼운 원자핵들이 합쳐져 더 무거운 원자핵을 만드는 반응이다. 태양과 별의 중심에서는 수소 원자핵들이 여러 단계를 거쳐 헬륨으로 바뀌며 에너지를 낸다. 이 에너지가 별빛의 근원이다.
가벼운 원자핵은 모두 양전하를 띠므로 서로 밀어낸다. 따라서 핵융합이 일어나려면 원자핵들이 매우 가까이 접근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매우 높은 온도와 압력, 또는 그에 해당하는 강한 가둠 조건이 필요하다. 별의 중심에서는 중력이 물질을 강하게 눌러 핵융합이 일어날 조건을 만든다.
핵융합 역시 결합에너지 차이 때문에 에너지를 낸다. 가벼운 원자핵들이 합쳐져 더 안정한 원자핵이 되면 질량 일부가 에너지로 바뀐다. 철 부근의 원자핵은 핵자당 결합에너지가 매우 큰 편이므로, 별 내부의 핵융합은 대체로 철보다 가벼운 원소를 만드는 과정에서 에너지를 낸다. 더 무거운 원소가 만들어지는 과정은 초신성 폭발이나 중성자별 충돌 같은 극한 환경과 관련된다.
핵반응식에서 지켜야 할 것
핵반응을 쓸 때는 보존 법칙을 확인해야 한다. 가장 먼저 전하량과 질량수의 합이 반응 전후에 맞는지 본다.
알파 붕괴의 예를 보자.
[ {}^{238}{92}text{U} rightarrow {}^{234}{90}text{Th}+{}^{4}_{2}text{He} ]
질량수는 왼쪽이 238, 오른쪽이 (234+4=238)이다. 원자번호는 왼쪽이 92, 오른쪽이 (90+2=92)이다. 두 값이 모두 맞는다.
베타 마이너스 붕괴에서는 질량수는 변하지 않고 원자번호가 1 증가한다.
[ {}^{14}{6}text{C} rightarrow {}^{14}{7}text{N}+e^-+bar{nu} ]
전자만 쓰면 전하량과 질량수는 맞아 보이지만, 에너지와 운동량의 흐름을 제대로 설명하기 어렵다. 반중성미자까지 함께 써야 보존 법칙을 더 온전하게 만족할 수 있다. 이처럼 핵물리 문제에서는 "무엇이 보존되는가"를 먼저 확인하는 습관이 중요하다.
기본 입자의 세계
원자핵을 더 깊이 들여다보면 양성자와 중성자도 더 기본적인 입자로 이루어져 있다. 현대 입자 물리학은 이를 표준모형으로 정리한다. 표준모형은 지금까지의 많은 실험 결과를 설명하는 기본 입자 이론이다.
물질을 이루는 입자는 크게 쿼크와 렙톤으로 나눌 수 있다. 양성자와 중성자는 쿼크로 이루어진다. 양성자는 업 쿼크 2개와 다운 쿼크 1개, 중성자는 업 쿼크 1개와 다운 쿼크 2개로 설명된다.
[ p = uud, qquad n = udd ]
렙톤에는 전자, 뮤온, 타우, 그리고 각각에 대응하는 중성미자가 있다. 전자는 원자와 화학 결합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중성미자는 전하가 없고 물질과 매우 약하게 상호작용하여 검출하기 어렵다.
입자와 물체 사이의 상호작용은 크게 네 가지 기본 상호작용으로 정리한다.
중력 상호작용: 질량과 에너지를 가진 모든 것 사이에 작용한다. 입자 수준에서는 매우 약하지만, 천체 규모에서는 지배적이다.
전자기 상호작용: 전하를 가진 입자 사이에 작용한다. 전기, 자기, 빛, 화학 결합을 설명한다.
강한 상호작용: 쿼크를 묶어 양성자와 중성자를 만들고, 원자핵 안에서 핵자들을 결합시키는 근원이 된다.
약한 상호작용: 베타 붕괴처럼 입자의 종류가 바뀌는 과정에 관여한다. 태양 내부의 핵융합 과정에서도 중요하다.
표준모형에서는 이 가운데 중력을 제외한 전자기 상호작용, 강한 상호작용, 약한 상호작용을 기본 입자와 매개 입자의 언어로 설명한다. 전자기 상호작용은 광자, 강한 상호작용은 글루온, 약한 상호작용은 (W)와 (Z) 보손이 매개한다. 힉스 입자는 입자들이 질량을 갖는 과정과 관련된 힉스 장의 흔적으로 이해된다.
핵물리학이 연결하는 것
원자핵과 입자 물리는 매우 작은 세계를 다루지만, 그 영향은 작지 않다. 원자로의 에너지 생산, 방사선 치료와 영상 진단, 방사성 연대 측정, 우주에서 원소가 만들어지는 과정이 모두 핵물리학과 연결된다.
이 장의 핵심은 세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 원자핵은 양성자와 중성자가 강한 상호작용으로 묶인 계이다. 둘째, 방사선은 불안정한 원자핵이 더 안정한 상태로 변할 때 나오는 입자나 전자기파이며, 종류에 따라 투과력과 물질과의 상호작용이 다르다. 셋째, 핵분열과 핵융합의 에너지는 결합에너지 차이와 질량-에너지 등가 원리에서 나온다.
입자 물리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들어가 물질을 이루는 기본 입자와 상호작용을 묻는다. 결국 물리학은 큰 우주와 작은 입자를 따로 보지 않는다. 별의 빛, 원자핵의 안정성, 의료 장비의 방사선, 기본 입자의 충돌은 모두 같은 보존 법칙과 상호작용의 언어로 연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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