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념은 맛의 방향을 정하는 설계도다
양념장과 소스를 외워서 쓰기 시작하면 요리는 금방 답답해진다. 간장 양념은 간장 몇 숟가락, 고추장 양념은 고추장 몇 숟가락으로만 기억하면 냉장고에 있는 재료가 바뀌었을 때 판단하기 어렵다. 중요한 것은 양념의 이름이 아니라 맛의 역할이다.
대부분의 양념은 다섯 가지 요소로 나눌 수 있다. 짠맛, 단맛, 신맛, 매운맛, 고소함이다. 여기에 마늘, 파, 생강, 후추 같은 향이 붙고, 물이나 육수로 농도를 조절한다.
짠맛은 음식의 중심을 잡는다. 간장, 소금, 된장, 고추장, 액젓이 이 역할을 한다. 단맛은 짠맛과 매운맛을 부드럽게 만든다. 설탕, 올리고당, 물엿, 매실청, 양파가 단맛을 낸다. 신맛은 입안을 정리하고 느끼함을 줄인다. 식초, 레몬즙, 김치 국물 등이 여기에 속한다. 고소함은 맛을 둥글게 묶는다. 참기름, 들기름, 깨, 땅콩, 마요네즈가 대표적이다.
처음에는 복잡하게 만들 필요가 없다. 양념장을 만들 때는 먼저 "짠맛을 무엇으로 낼 것인가", "단맛이나 신맛이 필요한가", "국물처럼 묽게 할 것인가, 재료에 붙게 진하게 할 것인가"를 정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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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비율은 출발점일 뿐이다
양념 공식은 정답이 아니라 출발점이다. 같은 간장 1큰술이라도 진간장, 양조간장, 국간장의 짠맛과 향이 다르다. 고추장도 제품마다 단맛과 짠맛이 다르다. 그래서 비율은 먼저 맛을 잡는 기준으로 쓰고, 마지막에는 반드시 맛을 보고 조정해야 한다.
초보자가 쓰기 좋은 기준은 '큰술' 단위다. 아래 비율은 반찬 2인분 정도를 만들 때 시작점으로 삼기 좋다.
간장 양념은 간장 2 : 단맛 1 : 물 또는 육수 1~2 : 향 재료로 시작한다. 여기에 다진 마늘 1/2작은술, 다진 파 1큰술, 참기름 1작은술, 깨를 더하면 두부조림, 버섯볶음, 어묵볶음, 불고기 양념의 바탕이 된다. 조림처럼 오래 끓일 때는 물을 2~4까지 늘리고, 무침처럼 바로 먹을 때는 물을 거의 넣지 않는다.
고추장 양념은 고추장 2 : 간장 1 : 단맛 1 : 물 또는 식초 1로 시작한다. 물을 넣으면 볶음이나 조림에 맞고, 식초를 넣으면 초고추장이나 비빔 양념에 가까워진다. 고추장은 이미 짠맛, 단맛, 매운맛이 들어 있는 양념이다. 그래서 간장을 많이 넣으면 쉽게 짜지고, 설탕을 많이 넣으면 텁텁해질 수 있다. 처음에는 간장과 단맛을 적게 넣고 맛을 본 뒤 보충하는 편이 안전하다.
된장 양념은 된장 2 : 단맛 1/2~1 : 다진 마늘 1/2 : 물 또는 육수 1~2로 잡는다. 된장은 짠맛과 구수한 맛이 강하다. 쌈장처럼 찍어 먹을 때는 물을 거의 넣지 않고 참기름과 깨를 넣어 진하게 만든다. 나물이나 채소 무침에 쓸 때는 물이나 데친 채소의 수분으로 조금 풀어야 뭉치지 않는다. 된장국이나 된장찌개에서는 양념장이 아니라 국물에 풀리는 짠맛 재료로 생각해야 한다.
식초 양념은 식초 2 : 짠맛 1 : 단맛 1 : 기름 0~1로 시작한다. 오이무침, 초무침, 샐러드 드레싱에 쓸 수 있다. 식초가 강하면 향은 산뜻하지만 재료의 단맛이 묻힌다. 단맛을 조금 넣으면 신맛이 부드러워지고, 참기름이나 식용유를 더하면 입에 닿는 느낌이 둥글어진다. 다만 기름을 넣은 드레싱은 시간이 지나면 분리되므로 먹기 직전에 다시 섞는 것이 좋다.
무침, 볶음, 조림은 양념 농도가 다르다
같은 간장 양념이라도 무침, 볶음, 조림에 들어갈 때 농도와 넣는 시점이 달라진다. 이유는 물기와 열 때문이다.
무침은 재료를 이미 익혔거나 생으로 먹는 상태에서 양념을 입히는 방식이다. 양념은 짧은 시간 안에 재료 겉면에 붙어야 한다. 그래서 너무 묽으면 그릇 바닥에 양념물이 고이고, 너무 짜면 첫입부터 부담스럽다. 나물무침은 데친 뒤 물기를 짜고, 양념은 진하게 만들어 조금씩 넣는다. 한 번에 다 붓지 말고 절반을 넣어 버무린 뒤 맛을 보고 더한다. 오이처럼 물이 계속 나오는 재료는 소금에 짧게 절인 뒤 물기를 빼거나, 먹기 직전에 양념해야 맛이 흐려지지 않는다.
볶음은 팬의 열과 함께 양념이 재료에 묻는 과정이다. 양념을 너무 일찍 넣으면 설탕과 고추장, 간장이 팬 바닥에서 먼저 타기 쉽다. 특히 고추장 양념과 간장 양념은 수분이 적으면 금방 눌어붙는다. 고기나 채소를 먼저 익혀 표면 수분을 줄인 뒤, 불을 중불로 낮추고 양념을 넣어 짧게 섞는 것이 안정적이다. 양념이 팬 바닥에 빠르게 졸아들면 물 1~2큰술을 넣어 풀어 준다. 이때 물은 맛을 약하게 만드는 재료가 아니라, 양념이 재료 전체에 퍼지게 돕는 조절 재료다.
조림은 양념과 물을 함께 넣고 재료 속까지 맛을 들이는 방식이다. 처음부터 양념이 너무 진하면 겉만 짜고 속은 싱거울 수 있다. 무, 감자, 두부, 생선 조림은 물이나 육수를 넣어 양념을 풀고 끓이다가 마지막에 국물을 졸여 농도를 맞춘다. 조림에서 중요한 기준은 '처음 맛'보다 '졸인 뒤의 맛'이다. 끓는 동안 물이 줄어들면 짠맛과 단맛이 모두 강해진다. 그래서 조림 양념은 처음에 맛봤을 때 약간 연하게 느껴져야 마지막에 균형이 맞는다.
향 재료는 언제 넣느냐에 따라 맛이 달라진다
마늘, 파, 생강, 고춧가루, 후추, 참기름, 깨는 모두 향을 만든다. 하지만 같은 재료도 먼저 넣을 때와 마지막에 넣을 때 결과가 다르다.
마늘과 파를 기름에 먼저 볶으면 향이 기름에 퍼진다. 볶음밥, 채소볶음, 고기볶음처럼 팬에서 만드는 음식에 잘 맞는다. 이때 불은 중약불에서 시작한다. 마늘이 갈색을 넘어 진한 갈색이 되면 쓴맛이 나므로, 향이 올라오고 가장자리가 옅은 노란색이 될 때 다음 재료를 넣는다.
다진 마늘을 양념장에 섞어 마지막에 넣으면 생마늘의 알싸한 향이 남는다. 오이무침, 부추무침, 겉절이처럼 산뜻한 맛을 살릴 때 좋다. 다만 생마늘은 시간이 지나면 향이 강해지므로 도시락이나 오래 두고 먹는 반찬에는 양을 줄이는 것이 좋다.
참기름과 들기름은 마지막에 넣는 경우가 많다. 높은 열에서 오래 가열하면 고소한 향이 줄고 무거운 냄새가 날 수 있기 때문이다. 나물무침, 비빔밥, 두부조림 마무리에는 불을 끄거나 불을 낮춘 뒤 넣는다. 반대로 파기름처럼 향을 내기 위해 쓰는 기름은 처음에 사용한다. 이때는 참기름보다 식용유처럼 열에 비교적 안정적인 기름을 쓰고, 참기름은 마지막 향으로 더하는 편이 쉽다.
깨와 후추도 마지막에 넣으면 향이 살아난다. 깨는 통깨보다 손으로 살짝 부수거나 갈아서 넣으면 고소한 향이 더 잘 난다. 후추는 오래 끓이면 향이 약해지므로 고기볶음이나 국물 요리의 마지막에 조금 넣는 것이 좋다.
맛이 어긋났을 때 되돌리는 법
양념을 잘하는 사람은 한 번에 맞히는 사람이 아니라, 어긋난 맛을 읽고 고치는 사람이다. 맛을 고칠 때는 한 가지를 넣고 섞은 뒤 다시 맛본다. 여러 재료를 한꺼번에 넣으면 무엇 때문에 좋아졌는지, 무엇 때문에 더 나빠졌는지 알기 어렵다.
짜졌을 때는 가장 먼저 양을 늘릴 수 있는지 본다. 무침이라면 데친 채소, 두부, 삶은 면을 더 넣을 수 있다. 국물이나 조림이라면 물이나 육수를 넣어 희석한다. 단, 조림은 다시 졸이면 짠맛이 돌아오므로 마지막 농도까지 생각해야 한다. 단맛을 조금 넣으면 짠맛이 부드럽게 느껴지지만, 실제 짠맛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짠 음식에 설탕만 계속 넣으면 짜고 단 음식이 된다.
싱거울 때는 소금이나 간장을 바로 많이 넣지 않는다. 먼저 음식의 성격을 본다. 색을 진하게 만들고 싶지 않은 맑은국은 소금이나 국간장을 조금 쓴다. 볶음이나 조림처럼 색과 향이 어울리는 음식은 간장을 1작은술씩 넣어 섞는다. 된장이나 고추장 양념은 이미 향이 강하므로, 마지막 보정에는 소금 한 꼬집이 더 깔끔할 때가 많다.
너무 달 때는 짠맛, 신맛, 매운맛 중 하나로 균형을 잡는다. 간장 양념이 달다면 간장이나 소금을 조금 더해 중심을 세운다. 고추장 양념이 달다면 고춧가루나 식초를 소량 더하면 단맛이 덜 두드러진다. 하지만 단맛이 많이 들어간 양념은 완전히 되돌리기 어렵다. 다음부터는 설탕, 물엿, 올리고당을 한 번에 넣지 말고 절반만 넣은 뒤 맛을 보는 것이 가장 좋은 해결책이다.
신맛이 너무 강할 때는 단맛과 물로 조정한다. 식초 양념이 강하면 설탕이나 매실청을 조금 넣고, 필요하면 물 1큰술을 더해 산도를 낮춘다. 오이, 양파, 양배추처럼 수분이 많은 재료를 더해도 신맛이 부드러워진다. 단, 식초 향이 강하게 올라오는 상태에서 참기름을 많이 넣으면 맛이 무거워질 수 있으므로 먼저 단맛과 희석으로 조정한다.
텁텁할 때는 양념이 너무 많거나 가루 재료가 충분히 풀리지 않은 경우가 많다. 고추장, 된장, 고춧가루가 뭉쳤다면 물이나 육수 1~2큰술에 먼저 풀어 넣는다. 이미 음식에 들어갔다면 불을 낮추고 물을 조금 더해 섞은 뒤 짧게 끓인다. 마지막에 식초 몇 방울이나 다진 파를 더하면 답답한 맛이 조금 정리된다.
냉장고 재료로 만드는 양념의 흐름
레시피 없이 요리하려면 재료를 먼저 보고 양념의 방향을 정한다. 두부가 있으면 간장 양념으로 조림을 만들 수 있다. 간장 2큰술, 물 4큰술, 설탕 1작은술, 다진 마늘 1/2작은술을 섞어 끓이고, 마지막에 대파와 참기름을 넣으면 기본 두부조림이 된다.
오이와 양파가 있으면 식초 양념을 쓴다. 식초 2큰술, 간장 1큰술 또는 소금 한 꼬집, 설탕 1큰술을 섞고 고춧가루를 더하면 새콤한 무침이 된다. 물이 많이 생기는 재료이므로 먹기 직전에 버무린다.
버섯과 어묵이 있으면 간장 볶음이 쉽다. 재료를 먼저 볶아 수분을 줄이고, 간장 1큰술, 물 1큰술, 설탕 1작은술을 넣어 짧게 섞는다. 마지막에 후추와 깨를 넣으면 향이 살아난다.
상추, 양배추, 깻잎 같은 생채소가 있으면 고추장보다 식초와 간장을 가볍게 쓰는 편이 먹기 쉽다. 고추장 양념은 맛이 강해 채소의 향을 덮을 수 있다. 반대로 돼지고기, 두부, 감자처럼 맛을 받아 줄 재료에는 고추장이나 된장처럼 진한 양념이 잘 맞는다.
양념 공식의 목적은 모든 음식을 같은 맛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다. 짠맛을 중심으로 세우고, 단맛으로 부드럽게 하고, 신맛으로 정리하고, 향 재료로 마무리하는 흐름을 익히는 것이다. 이 흐름을 알면 레시피가 없어도 냉장고에 있는 재료로 한 끼의 방향을 잡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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