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구는 많을수록 좋은 것이 아니다
요리를 시작할 때 가장 먼저 생기는 고민은 "무엇을 사야 할까?"이다. 하지만 주방 도구는 종류가 많다고 요리가 쉬워지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도구의 역할을 알고 맞는 상황에 쓰는 것이다.
칼 하나가 잘 들고, 도마가 안정적이며, 팬과 냄비의 크기가 맞으면 대부분의 집밥은 충분히 만들 수 있다. 반대로 비싼 기계가 있어도 칼이 무디고 팬의 성질을 모르면 재료는 눌어붙고, 익힘은 들쑥날쑥해진다.
초보자의 기준은 간단하다.
매주 여러 번 쓰는가?
한 가지 기능만 하는 도구인가, 여러 요리에 쓸 수 있는가?
세척과 보관이 쉬운가?
내 주방의 크기와 조리 습관에 맞는가?
이 네 가지 질문에 모두 "예"라고 답할 수 있는 도구부터 갖추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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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먼저 갖춰야 할 기본 도구
처음부터 주방을 완벽하게 채울 필요는 없다. 아래 도구만 있어도 밥, 국, 볶음, 구이, 간단한 반찬 대부분을 만들 수 있다.
칼
가장 먼저 필요한 것은 잘 드는 기본 칼 한 자루다. 보통 18~20cm 정도의 주방칼이면 채소, 고기, 생선을 두루 손질할 수 있다. 손이 작거나 큰 칼이 부담스럽다면 16cm 정도도 괜찮다.
칼을 고를 때는 손잡이를 잡았을 때 손목이 꺾이지 않고, 칼의 무게가 지나치게 앞이나 뒤로 쏠리지 않는지 확인한다. 너무 가벼운 칼은 단단한 재료를 자를 때 힘이 많이 들어가고, 너무 무거운 칼은 오래 쓰면 손목이 쉽게 피로해진다.
작은 과일칼이나 페티 나이프는 마늘 꼭지 제거, 과일 깎기, 작은 재료 손질에 편하다. 하지만 첫 구매라면 큰 기본 칼을 먼저 사고, 필요를 느낄 때 작은 칼을 추가해도 늦지 않다.
도마
도마는 칼만큼 중요하다. 도마가 흔들리면 칼질이 불안정해지고 손을 다치기 쉽다. 도마 아래에 젖은 행주나 미끄럼 방지 매트를 깔면 훨씬 안정적이다.
위생을 생각하면 도마는 최소 두 개가 좋다.
바로 먹는 채소, 과일, 빵용
익혀 먹을 고기, 생선, 해산물용
도마가 하나뿐이라면 순서를 지킨다. 먼저 채소와 과일을 손질하고, 마지막에 날고기나 생선을 손질한다. 사용 후에는 흐르는 물과 세제로 씻고 세워서 완전히 말린다. 젖은 도마를 눕혀 두면 냄새와 곰팡이가 생기기 쉽다. 날고기나 생선을 손질한 뒤에는 홈이나 칼자국 사이에 찌꺼기가 남지 않도록 특히 꼼꼼히 씻는다.
냄비
냄비는 최소 두 가지 크기가 있으면 좋다. 작은 냄비는 라면, 달걀 삶기, 소량의 국이나 소스를 만들 때 쓰고, 중간 냄비는 국, 찌개, 삶기, 데치기에 쓴다.
처음에는 지름 18~20cm 정도의 작은 냄비 하나, 22~24cm 정도의 중간 냄비 하나면 충분하다. 너무 큰 냄비는 물을 많이 필요로 하고, 소량 조리 때 열이 고르게 전달되지 않아 불편하다. 반대로 너무 작은 냄비는 국물이 넘치기 쉽다.
냄비를 고를 때는 뚜껑이 잘 맞는지, 손잡이가 단단한지, 바닥이 너무 얇지 않은지 확인한다. 바닥이 얇으면 열이 한곳에 몰려 음식이 쉽게 탄다. 인덕션을 쓴다면 제품 바닥에 인덕션 사용 가능 표시가 있는지도 함께 확인한다.
프라이팬
프라이팬은 볶기, 굽기, 부치기에 쓰인다. 처음에는 26~28cm 크기의 팬 하나가 가장 활용도가 높다. 1~2인 가구라면 24cm도 쓸 수 있지만, 채소를 볶을 때 재료가 겹치기 쉬우므로 너무 작은 팬은 피하는 편이 좋다.
팬의 크기는 "재료가 겹치지 않고 바닥에 어느 정도 펼쳐지는가"로 판단한다. 팬이 작아 재료가 쌓이면 볶음이 아니라 찜처럼 된다. 수분이 빠져나가지 못해 채소는 물러지고 고기는 노릇하게 익지 않는다.
팬 역시 가스레인지, 하이라이트, 인덕션 등 내가 쓰는 열원에 맞아야 한다. 특히 인덕션은 모든 팬이 올라가는 것이 아니므로 구매 전에 호환 여부를 확인하는 습관을 들이면 좋다.
볼과 체
볼은 재료를 씻고, 양념을 섞고, 반죽을 만들고, 손질한 재료를 담는 데 쓴다. 큰 볼 하나와 중간 볼 두 개 정도가 있으면 조리 순서가 훨씬 편해진다.
체는 씻은 채소의 물기를 빼거나, 삶은 면을 건지거나, 밀가루를 곱게 풀 때 쓴다. 체가 없으면 물기가 남아 볶음이 질척해지고, 양념이 묽어질 수 있다. 채소 볶음이 자주 실패한다면 팬보다 먼저 체를 확인해도 좋다.
계량도구
초보자에게 계량도구는 선택이 아니라 기본이다. 계량스푼, 계량컵, 주방저울 중 최소한 계량스푼과 계량컵은 갖춘다.
간장 1큰술, 설탕 1작은술처럼 양념의 기준을 몸에 익히려면 처음에는 실제로 재야 한다. 몇 번 재다 보면 숟가락에 담긴 양, 손으로 집은 소금의 양, 물 한 컵의 부피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감은 계량을 건너뛰는 능력이 아니라, 계량을 반복해 얻은 기억이다.
재질을 알면 실패가 줄어든다
냄비와 팬은 겉모양보다 재질이 중요하다. 같은 불에 올려도 재질에 따라 열을 받는 속도, 식는 속도, 눌어붙는 정도가 다르다.
스테인리스
스테인리스는 튼튼하고 녹이 잘 슬지 않으며, 산이 있는 재료에도 비교적 안정적이다. 토마토소스, 김치찌개, 국, 삶기, 데치기처럼 물이나 국물이 있는 요리에 잘 맞는다. 스테인리스 팬은 고기를 굽거나 볶을 때도 쓸 수 있다.
다만 예열이 부족하거나 재료 표면에 물기가 많으면 잘 달라붙는다. 스테인리스 팬을 쓸 때는 팬을 먼저 중불에서 데우고, 기름을 두른 뒤 기름이 얇게 퍼지고 살짝 반짝일 때 재료를 넣는다. 고기나 두부는 넣자마자 억지로 떼지 않는다. 표면이 익어 껍질처럼 굳으면 자연스럽게 떨어지는 경우가 많다.
흔한 실수는 센 불로 빨리 달군 뒤 바로 재료를 넣는 것이다. 겉은 타고 속은 덜 익으며, 바닥에는 갈색 찌꺼기가 두껍게 붙는다. 스테인리스는 강한 불보다 충분한 예열과 중불 유지가 더 중요하다.
코팅 팬
코팅 팬은 달걀프라이, 생선, 두부, 전처럼 잘 달라붙는 재료에 편하다. 기름을 많이 쓰지 않아도 되고, 초보자가 결과를 안정적으로 내기 쉽다.
하지만 코팅 팬은 높은 열과 금속 도구에 약하다. 빈 팬을 오래 달구지 말고, 센 불보다 약불에서 중불 사이로 쓴다. 뒤집개는 나무, 실리콘, 나일론 재질을 사용한다. 코팅이 벗겨지거나 표면이 거칠어졌다면 음식이 달라붙기 시작하므로 교체를 고려한다.
코팅 팬으로 모든 요리를 해결하려는 것도 흔한 실수다. 고기를 강하게 굽거나 볶음밥을 높은 열로 빠르게 볶는 요리에는 코팅이 쉽게 손상될 수 있다. 코팅 팬은 "편한 팬"이지 "모든 불을 견디는 팬"이 아니다.
무쇠
무쇠는 두껍고 무거워 한 번 달궈지면 열을 오래 품는다. 스테이크, 두꺼운 고기, 감자, 전처럼 겉을 노릇하게 만들고 싶은 요리에 좋다. 열이 쉽게 떨어지지 않아 재료를 올렸을 때 팬 온도가 급격히 낮아지지 않는다.
대신 무겁고 관리가 필요하다. 사용 후 물기를 남기면 녹이 생길 수 있다. 씻은 뒤 바로 말리고, 필요하면 아주 얇게 기름을 발라 보관한다. 산이 강한 음식이나 국물이 많은 음식을 오래 끓이는 용도로는 초보자에게 불편할 수 있다.
처음부터 무쇠 팬을 꼭 살 필요는 없다. 팬 관리에 부담이 없고, 굽는 요리를 자주 한다면 그때 추가하면 된다.
유리 냄비
유리 냄비는 내용물이 보여 끓는 정도를 확인하기 쉽고, 냄새가 잘 배지 않는다. 차, 죽, 간단한 국물, 데우기 용도로 편하다.
다만 모든 유리 용기가 불에 올릴 수 있는 냄비는 아니다. 유리 냄비를 살 때는 내열 조리용인지, 직화나 인덕션 등 내가 쓰는 열원에 사용할 수 있는지 제품 표시를 확인한다.
내열유리라고 해도 급격한 온도 변화에는 약할 수 있다. 뜨겁게 달군 유리 냄비를 차가운 물에 바로 담그거나, 냉장고에서 꺼낸 차가운 유리 냄비를 센 불에 바로 올리는 일은 피한다. 무겁고 깨질 수 있으므로 싱크대 안에서 부딪히지 않게 다룬다.
칼은 관리가 반이다
잘 드는 칼은 위험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무딘 칼이 더 위험하다. 무딘 칼은 재료를 누르듯 자르게 만들고, 그 과정에서 칼이 미끄러진다. 칼은 날카롭게 유지하고 안정적으로 보관해야 한다.
칼을 무디게 하는 습관은 다음과 같다.
유리 접시나 금속 쟁반 위에서 자르기
싱크대에 다른 그릇과 함께 던져 두기
식기세척기에 넣어 강한 물살과 열에 오래 노출하기
자른 재료를 칼날로 긁어 모으기
젖은 상태로 오래 방치하기
칼은 사용 후 바로 씻고 마른행주로 물기를 닦아 보관한다. 칼날은 다른 도구와 부딪히지 않게 칼집, 칼블록, 자석 거치대 등에 둔다. 서랍에 넣어야 한다면 칼날 보호 커버를 씌운다.
자른 재료를 모을 때는 칼날이 아니라 칼등을 사용한다. 칼날을 도마에 대고 긁으면 날이 빠르게 상한다. 작은 습관이지만 칼의 수명을 크게 좌우한다.
칼이 잘 들지 않는다고 느껴지면 억지로 힘을 주지 말고 갈아야 한다. 가정에서는 숫돌 사용이 가장 좋지만 처음에는 어렵게 느껴질 수 있다. 그럴 때는 간단한 칼갈이 도구를 쓰거나, 정기적으로 칼을 갈아 주는 서비스를 이용해도 된다. 중요한 것은 무딘 칼을 계속 쓰지 않는 것이다.
자주 쓰지 않는 도구는 나중에 산다
초보자가 사기 쉽지만 오래 보관만 하게 되는 도구가 있다. 샐러드 스피너, 만능 채칼, 마늘 다지기, 전용 달걀찜기, 와플 기계, 파스타 머신, 대형 믹서기 같은 것들이다. 물론 모두 쓸모가 있다. 문제는 내가 그 음식을 얼마나 자주 만드는가이다.
예를 들어 샐러드를 거의 먹지 않는데 샐러드 스피너를 먼저 사면 자리만 차지한다. 마늘 다지기도 매일 많은 양의 마늘을 다지는 집에는 편하지만, 가끔 한두 쪽 다지는 정도라면 칼로 충분하다. 와플 기계나 파스타 머신처럼 한 가지 음식에 특화된 도구는 사용 빈도가 낮으면 금방 부담이 된다.
구매 우선순위는 다음 순서로 정하면 쉽다.
안전에 영향을 주는 도구: 잘 드는 칼, 안정적인 도마, 튼튼한 냄비와 팬
반복해서 쓰는 도구: 볼, 체, 집게, 뒤집개, 국자, 계량도구
시간을 줄여 주는 도구: 저울, 타이머, 채칼, 다지기
특정 요리 전용 도구: 와플 기계, 파스타 머신, 전용 찜기
특히 집게, 뒤집개, 국자, 주걱은 가격보다 손에 잡히는 느낌과 내열성을 본다. 뜨거운 팬에서 쓰는 도구는 열에 강해야 하고, 코팅 팬에 쓰는 도구는 팬 표면을 긁지 않아야 한다.
좋은 도구의 기준은 내 요리를 편하게 하는가이다
비싼 도구가 항상 좋은 도구는 아니다. 좋은 도구는 내 손에 맞고, 자주 쓰이며, 세척이 쉽고, 같은 일을 안정적으로 반복하게 해 준다.
도구를 고를 때는 한 번에 많이 사기보다 기본 도구로 몇 주 요리해 보는 편이 낫다. 그러면 내가 자주 만드는 음식이 보인다. 국을 자주 끓이면 냄비가 더 필요하고, 볶음을 자주 하면 팬 크기가 중요해진다. 도시락을 자주 싸면 보관 용기가 필요하고, 베이킹을 시작하면 저울과 오븐용 도구가 필요해진다.
요리는 장비 싸움이 아니다. 도구는 요리를 대신해 주지 않는다. 다만 올바른 도구는 손의 부담을 줄이고, 실패의 원인을 줄여 준다. 먼저 기본을 갖추고, 자주 쓰는 것부터 천천히 더한다. 이것이 초보자에게 가장 안전하고 오래가는 주방 구성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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