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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mmary

늦게 출발한 신라가 주도권을 잡다

삼국의 경쟁은 오래 이어졌습니다. 고구려는 북쪽에서 넓은 땅과 강한 군사력을 가졌고, 백제는 바닷길을 이용해 중국과 일본 열도를 잇는 교류에 능했습니다. 신라는 처음에는 한반도 동남쪽에 자리한 비교적 작은 나라였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며 신라는 안쪽 힘을 차근차근 키웠습니다. 불교를 받아들여 나라의 마음을 모으고, 화랑도를 통해 젊은 인재를 길렀으며, 법과 제도를 정비했습니다.

하지만 신라 혼자서 백제와 고구려를 모두 상대하기는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신라는 바다 건너가 아니라 서쪽 대륙의 큰 나라, 당나라와 손을 잡았습니다. 당나라는 중국을 통일한 강한 제국이었습니다. 신라와 당은 서로 원하는 것이 있었습니다. 신라는 삼국 경쟁에서 살아남고 싶었고, 당은 한반도와 만주 쪽으로 영향력을 넓히고 싶었습니다.

이 동맹은 큰 전쟁으로 이어졌습니다. 660년, 신라의 김유신이 이끄는 군대와 당나라 군대가 함께 백제를 공격했습니다. 백제는 계백 장군의 결사적인 저항에도 결국 무너졌습니다. 사비성의 백성들은 하루아침에 나라 이름이 사라지는 일을 겪었습니다. 왕과 귀족만의 일이 아니었습니다. 농민은 새 지배자에게 세금을 내야 했고, 장인은 새로운 관청의 명령을 받아야 했으며, 군사로 끌려간 젊은이들은 고향으로 돌아오지 못하기도 했습니다.

백제가 멸망한 뒤에도 전쟁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백제 부흥 운동이 일어났고, 고구려도 쉽게 무너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오랜 전쟁과 내부 다툼으로 고구려의 힘은 약해졌습니다. 결국 668년, 신라와 당의 연합군은 고구려를 무너뜨렸습니다. 삼국 중 두 나라가 사라진 것입니다.

삼국 통일과 남북국의 새로운 질서AI 생성 이미지

동맹이 곧 친구는 아니었다

여기서 이야기가 단순히 "신라가 이겼다"로 끝나지는 않습니다. 당나라는 백제와 고구려의 옛 땅을 신라에게 그냥 넘겨주려 하지 않았습니다. 당은 그곳에 자기 관청을 두고 직접 다스리려 했습니다. 신라 입장에서 보면, 함께 싸운 동맹군이 어느새 새로운 경쟁자가 된 셈입니다.

신라는 당나라와 다시 싸워야 했습니다. 이 전쟁은 신라에게 매우 위험한 선택이었습니다. 당은 거대한 제국이었고, 신라는 막 큰 전쟁을 치른 뒤였습니다. 그러나 신라는 백제와 고구려의 옛 사람들을 끌어안고 군사를 재정비했습니다. 옛 백제 사람, 옛 고구려 사람, 신라 사람이 같은 군대 안에서 싸우는 일이 생겼습니다. 물론 모두가 쉽게 마음을 합친 것은 아니었지만, 당을 몰아내야 한다는 목표는 분명했습니다.

신라는 매소성 전투와 기벌포 전투 등에서 당군을 물리쳤고, 676년 무렵 대동강 이남 지역에서 당의 세력을 몰아냈습니다. 이렇게 신라는 한반도 중남부를 중심으로 통일을 이루었습니다. 다만 이것을 오늘날의 한반도 전체 통일로 생각하면 안 됩니다. 고구려의 넓은 옛 땅, 특히 만주와 한반도 북부의 일부는 신라의 지배 밖에 있었습니다. 바로 이 빈자리에서 곧 발해가 등장합니다.

잠깐 지도를 떠올려 봅시다. 남쪽에는 경주를 중심으로 한 통일 신라가 있고, 북쪽에는 고구려의 옛 땅과 만주 지역이 펼쳐져 있습니다. 이 넓은 북쪽 무대까지 보아야 이 시대가 제대로 보입니다. 그래서 이 시기를 통일 신라만의 시대가 아니라, 남쪽의 신라와 북쪽의 발해가 함께 있던 남북국 시대라고 부르기도 합니다.1

신문왕, 새 나라의 틀을 세우다

전쟁에서 이긴 뒤가 더 어려울 때가 있습니다. 땅은 넓어졌고, 사람들은 서로 다른 나라에서 살아온 기억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제 모두 신라 백성이다"라고 말한다고 해서 곧바로 한 나라가 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세금은 어떻게 거둘지, 지방은 누가 다스릴지, 귀족들의 힘은 어떻게 조절할지 정해야 했습니다.

이때 중요한 역할을 한 왕이 신문왕입니다. 신문왕은 왕권, 곧 왕의 힘을 강화하려 했습니다. 귀족들이 자기 땅과 군사, 사람들을 바탕으로 너무 강해지면 나라는 다시 흔들릴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신문왕은 귀족 세력을 누르고 관료 제도를 정비했습니다. 관료란 나라의 일을 맡아보는 관리입니다. 왕 혼자 넓은 나라를 다스릴 수 없으니, 법과 제도에 따라 일할 사람들을 세운 것입니다.

통일 신라는 지방을 9주로 나누고, 중요한 지역에는 5소경을 두었습니다. 주는 오늘날의 큰 행정 구역처럼 생각하면 됩니다. 소경은 작은 수도라는 뜻입니다. 수도 경주가 한쪽에 치우쳐 있었기 때문에, 여러 지역에 소경을 두어 지방을 더 단단히 연결하려 했습니다. 이것은 단순한 지도 색칠이 아니었습니다. 지방의 시장, 창고, 길, 군사 배치, 세금 운반 방식이 달라지는 일이었습니다.

예를 들어 어느 마을의 농민은 예전에는 백제의 관청에 곡식을 냈지만, 이제는 신라의 지방 관청에 세금을 내야 했습니다. 어떤 젊은이는 신라 군대에 들어가 국경을 지키러 갔고, 어떤 장인은 절이나 관청을 짓는 일에 동원되었을 것입니다. 통일은 왕궁에서 발표되는 말이었지만, 실제로는 사람들의 하루 속으로 천천히 들어오는 변화였습니다.

불교는 마음을 모으는 힘이 되었다

통일 신라에서 불교는 단순한 종교를 넘어 나라 운영에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불교는 "모든 생명은 소중하다", "고통을 넘어 깨달음에 이르자" 같은 가르침을 전했습니다. 전쟁을 겪은 사람들에게 불교는 마음을 달래는 힘이 되었습니다. 동시에 왕실과 귀족에게는 나라를 안정시키고 권위를 보여 주는 문화적 도구이기도 했습니다.

경주의 불국사와 석굴암은 이런 시대 분위기를 잘 보여 줍니다. 불국사는 부처의 나라를 땅 위에 표현하려 한 절입니다. 돌계단과 탑, 건물 배치에는 정교한 계산과 아름다움이 담겨 있습니다. 석굴암은 돌을 쌓아 만든 인공 석굴 안에 부처상을 모신 곳입니다. 둥근 공간, 부드러운 얼굴의 본존불, 주변 조각들은 통일 신라 장인들의 높은 기술과 미감을 보여 줍니다.2

여기서 중요한 것은 "멋진 문화재가 있다"에서 멈추지 않는 것입니다. 이런 건축과 조각을 만들려면 많은 사람이 필요합니다. 돌을 캐는 사람, 운반하는 사람, 설계하는 사람, 조각하는 사람, 음식을 준비하는 사람, 기록하는 사람이 함께 움직여야 합니다. 불국사와 석굴암은 왕과 귀족의 믿음만이 아니라, 수많은 장인과 백성의 손이 남긴 결과물이기도 합니다.

북쪽에서 다시 일어난 고구려의 기억, 발해

고구려가 멸망한 뒤에도 고구려 사람들의 삶과 기억이 사라진 것은 아니었습니다. 많은 유민이 흩어졌고, 일부는 옛 고구려 땅과 만주 지역에서 새로운 길을 찾았습니다. 698년, 대조영은 고구려 유민과 말갈 세력을 바탕으로 발해를 세웠습니다.3 말갈은 만주와 연해주 일대에 살던 여러 집단을 가리키는 이름입니다. 발해는 처음부터 한 가지 혈통이나 문화만으로 이루어진 나라가 아니었습니다. 고구려 계통 사람들과 말갈 사람들이 함께 만든 다민족 국가의 성격을 띠었습니다.

발해는 스스로 고구려를 이은 나라라는 의식을 가졌습니다. 동시에 당나라의 제도와 문화를 받아들여 자기 방식으로 활용했습니다. 수도 상경성은 계획적으로 지어진 도시였습니다. 궁궐터와 도로의 흔적을 보면 발해가 단순한 변방 세력이 아니라 체계적인 국가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발해는 5경, 15부, 62주와 같은 지방 제도를 갖추고 넓은 땅을 다스렸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발해의 힘은 군사력만이 아니었습니다. 만주의 넓은 땅에서 농업과 목축이 이루어졌고, 사냥과 어로도 생활의 일부였습니다. 또 당, 신라, 일본 등과 교류하며 물건과 문화를 주고받았습니다. 발해의 사신이 먼 길을 떠나고, 항구와 길목에서 상인들이 말을 바꾸어 타며, 시장에서는 말가죽·모피·철제품·비단 같은 물건이 오갔을 것입니다. 이런 번영 때문에 발해는 훗날 해동성국, 곧 "바다 동쪽의 융성한 나라"로 불렸습니다.4

남북국을 함께 보아야 하는 이유

통일 신라와 발해는 서로 같은 나라가 아니었습니다. 두 나라는 때로 경쟁했고, 서로를 경계했습니다. 그러나 둘을 함께 보면 이 시대의 한국사는 훨씬 넓어집니다. 남쪽의 경주, 불국사, 석굴암만 보면 무대가 한반도 남부에 머뭅니다. 여기에 북쪽의 발해, 상경성, 만주 벌판, 고구려 유민의 이동을 더하면 역사의 지도가 커집니다.

또 하나 기억할 점이 있습니다. 신라의 삼국 통일은 분명 큰 변화였습니다. 오랜 전쟁을 끝내고 한반도 중남부의 제도를 하나로 묶었으며, 찬란한 불교 문화를 꽃피웠습니다. 그러나 고구려의 옛 땅 전체를 포함하지는 못했습니다. 발해는 그 북쪽에서 고구려의 전통을 이어 새로운 나라를 세웠습니다. 그래서 이 시대를 이해할 때는 "신라가 통일했다"와 "발해가 북쪽에서 성장했다"를 함께 놓아야 합니다.

역사는 한 줄로만 흐르지 않습니다. 남쪽에서는 신라가 전쟁 뒤의 나라를 정비했고, 북쪽에서는 발해가 고구려의 기억을 품고 새 질서를 만들었습니다. 두 나라의 길은 달랐지만, 함께 동아시아의 큰 흐름 속에서 움직였습니다. 이제 우리의 한국사 여행은 한반도 남쪽의 왕경뿐 아니라 만주의 넓은 벌판까지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생각해 보기

  • 신라는 왜 당나라와 손을 잡았고, 왜 다시 당나라와 싸워야 했을까요?

  • 통일 뒤 9주 5소경 같은 제도가 보통 사람들의 생활을 어떻게 바꾸었을까요?

  • 발해를 함께 보지 않으면 이 시대의 한국사에서 무엇을 놓치게 될까요?

참고

1Korean Cultural Centre UK, Northern and Southern States Period: Unified Silla and Balhae

2New World Encyclopedia, Unified Silla

3Korean Cultural Centre UK, Northern and Southern States Period: Unified Silla and Balhae

4World History Encyclopedia, Balha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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쉽고 재미있는 한국사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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