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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mmary

일자리가 사라지자 믿음도 흔들렸다

전쟁은 총알이 날아가기 전부터 시작될 때가 있다. 1930년대의 두려움은 은행 창구와 공장 문 앞에서 먼저 자랐다. 어느 날 사람들은 저축한 돈을 찾으러 은행에 몰려갔지만, 은행은 돈을 돌려주지 못했다. 공장은 물건이 팔리지 않자 문을 닫았다. 노동자는 일자리를 잃었고, 농민은 곡식값이 떨어져 빚을 갚지 못했다.

이 거대한 경제 위기를 대공황이라고 한다. 대공황은 단순히 "돈이 부족한 시기"가 아니었다. 경제가 멈추자 사람들의 삶 전체가 흔들렸다. 1929년 미국 뉴욕 증권시장의 폭락은 그 시작을 알리는 큰 사건이었다. 미국에서 소비와 투자가 얼어붙자 공장이 멈췄고, 은행이 무너졌으며, 미국 돈을 빌려 전쟁 뒤 경제를 회복하던 유럽 나라들도 함께 흔들렸다. 1933년 무렵 미국에서는 수많은 사람이 일자리를 잃었고, 빈민 급식소 앞에 긴 줄이 생겼다.1

경제 위기는 정치 불신으로 이어졌다. 사람들은 물었다. "정부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의회와 토론은 배고픔을 해결해 주는가?" 민주주의는 시간이 걸리는 제도다. 서로 다른 의견을 듣고, 법을 만들고, 선거를 기다려야 한다. 그러나 굶주림과 실업 앞에서 많은 사람은 빠른 답을 원했다. 바로 그 틈으로 독재자들이 들어왔다.

이념의 충돌과 두 번째 세계대전AI 생성 이미지

두려움 위에 선 독재의 약속

이 시기 유럽에서는 여러 이념이 충돌했다. 이념이란 세상을 어떻게 보아야 하고, 사회를 어떻게 운영해야 하는지에 대한 큰 생각의 틀이다. 러시아 혁명 뒤 등장한 공산주의는 자본가와 노동자의 불평등을 없애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대로 부유층과 보수층 가운데 많은 사람은 공산주의가 재산과 질서를 무너뜨릴까 두려워했다.

이 두려움을 이용한 세력이 파시즘이었다. 파시즘은 개인보다 국가와 민족을 앞세우고, 강한 지도자에게 모든 힘을 모아야 한다고 주장한 정치 운동이다. 자유로운 토론, 언론, 야당은 약함의 표시로 여겼다. 이탈리아의 무솔리니는 검은 셔츠를 입은 폭력 조직과 대중 집회를 이용해 권력을 키웠다. 그는 혼란한 나라를 강하게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독일에서는 파시즘이 더 위험한 모습으로 변했다. 그것이 나치즘이다. 나치즘은 강한 국가와 지도자 숭배에 더해, 인종 차별과 반유대주의를 핵심으로 삼았다. 히틀러와 나치당은 베르사유 조약의 굴욕, 실업, 공산주의에 대한 공포를 한데 묶어 대중을 설득했다. "독일이 망한 것은 특정한 적들 때문"이라고 말하며 유대인, 공산주의자, 장애인, 성소수자, 로마니인(과거에 '집시'라고 불렸던 사람들) 등 여러 집단을 희생양으로 삼았다.

독재는 폭력만으로 유지되지 않았다. 나치는 라디오, 신문, 영화, 포스터, 거대한 집회를 통해 같은 메시지를 반복했다. 이것을 선전이라고 한다. 선전은 사실을 차분히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감정과 두려움을 자극해 한 방향으로 몰아가는 말과 이미지다. 나치는 학교와 청소년 단체까지 이용해 아이들에게 지도자에 대한 충성과 인종주의를 가르쳤다. 동시에 반대자는 감옥과 수용소로 끌려갔다. 투표와 법의 모양은 남아 있었지만, 사람들은 더 이상 자유롭게 반대할 수 없었다.

지역의 침략이 세계 전쟁이 되다

제2차 세계대전은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진 전쟁이 아니었다. 일본은 1931년 만주를 침략하며 아시아에서 세력을 넓혔다. 이탈리아는 에티오피아를 침략했다. 독일은 군비를 다시 늘리고, 오스트리아를 병합했으며, 체코슬로바키아를 압박했다. 국제연맹은 이를 제대로 막지 못했다. 제1차 세계대전 뒤 만들어진 평화의 약속은 종이처럼 약했다.

1939년 독일이 폴란드를 침공하자 영국과 프랑스가 독일에 선전포고를 했다. 유럽 전쟁이 시작되었다. 독일군은 전차와 항공기를 결합한 빠른 공격으로 폴란드, 덴마크, 노르웨이, 네덜란드, 벨기에, 프랑스를 차례로 무너뜨렸다. 그러나 영국은 항공전에서 버티며 독일의 침공을 막았다.

전쟁의 방향을 크게 바꾼 사건은 두 가지였다. 하나는 1941년 독일의 소련 침공이었다. 동부 전선은 상상하기 어려울 만큼 잔혹했다. 스탈린그라드 전투는 독일군의 기세가 꺾이는 중요한 분기점이 되었다. 다른 하나는 일본의 진주만 공격이었다. 이 공격 뒤 미국이 참전하면서 전쟁은 유럽, 북아프리카, 대서양, 아시아, 태평양을 잇는 진짜 세계전쟁이 되었다.2

태평양과 아시아에서는 일본이 이미 식민지로 지배하던 조선을 비롯해 중국, 동남아시아, 태평양 섬들로 세력을 넓혔다. 점령지 사람들은 강제 동원, 식량 수탈, 폭력에 시달렸다. 중국에서는 난징 대학살 같은 끔찍한 전쟁범죄가 벌어졌다. 유럽에서는 1944년 노르망디 상륙작전 이후 연합군이 서쪽에서 독일을 압박했고, 소련군은 동쪽에서 베를린으로 진격했다. 1945년 독일이 항복했고, 이어 일본도 항복하면서 전쟁은 끝났다.

군인만의 전쟁이 아니었다

제2차 세계대전은 총력전이었다. 총력전이란 군대만 싸우는 전쟁이 아니라 국가의 공장, 철도, 과학자, 농민, 여성 노동자, 식량, 어린이의 삶까지 전쟁에 동원되는 상태를 말한다. 전선과 후방의 경계가 흐려졌다. 공장은 무기를 만들었고, 도시는 폭격의 표적이 되었다. 민간인은 더 이상 전쟁 밖에 있지 않았다.

런던, 드레스덴, 바르샤바, 도쿄 같은 도시는 폭격으로 불탔다. 사람들은 지하 방공호에서 밤을 보냈고, 아이들은 가족과 떨어져 피난을 갔다. 식량 배급표가 없으면 빵과 고기를 살 수 없었다. 전쟁이 끝난 뒤에도 많은 사람은 집을 잃었고, 국경이 바뀌면서 난민이 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으로 약 6천만 명이 목숨을 잃었으며, 그중 많은 수가 민간인이었다.3

이 전쟁은 기술이 발달하면 인간도 더 안전해진다는 믿음을 깨뜨렸다. 비행기, 전차, 잠수함, 암호 해독, 레이더, 로켓 기술은 전쟁의 규모와 속도를 키웠다. 과학은 생명을 살리는 도구가 될 수도 있지만, 국가의 명령과 결합하면 파괴의 도구가 될 수도 있었다.

홀로코스트, 인간을 숫자로 만든 범죄

제2차 세계대전의 가장 어두운 중심에는 홀로코스트가 있다. 홀로코스트는 나치 독일과 협력자들이 유럽의 유대인을 국가 정책으로 박해하고 학살한 사건이다. 약 600만 명의 유대인이 살해되었다. 나치는 유대인뿐 아니라 로마니인, 장애인, 폴란드인과 소련 전쟁포로, 정치적 반대자, 성소수자 등도 박해하고 죽였다.4

중요한 것은 이것이 순간적인 분노나 전장의 우발적 학살만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나치는 법으로 유대인의 시민권을 빼앗고, 상점과 직업에서 밀어냈으며, 가슴에 표식을 달게 했다. 사람들을 게토라는 격리 구역에 몰아넣고, 기차로 수용소와 학살 장소로 보냈다. 관료는 명단을 만들었고, 철도는 열차를 운행했으며, 기업은 강제 노동을 이용했다. 현대 국가의 행정 능력이 살인 체계에 동원된 것이다.

홀로코스트는 우리에게 어려운 질문을 남긴다. 평범한 사람들은 어떻게 이웃의 고통을 외면하게 되는가? 법이 언제나 정의로운가? 국가가 명령하면 개인의 책임은 사라지는가? 이 질문들은 과거에만 머물지 않는다. 어떤 사회든 특정 집단을 "문제의 원인"으로 몰아세우고, 차별을 법과 제도로 만들기 시작할 때 위험은 다시 자란다.

원자폭탄이 남긴 질문

1945년 8월, 미국은 일본의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을 떨어뜨렸다. 폭발은 한순간에 도시를 파괴했고, 수많은 민간인이 죽거나 다쳤다. 살아남은 사람들도 방사능의 후유증을 오랫동안 겪었다. 일본 군국주의의 침략과 전쟁 책임은 분명했다. 그러나 원자폭탄은 또 다른 질문을 남겼다. 전쟁을 빨리 끝내기 위해 민간인이 사는 도시에 이런 무기를 사용하는 것이 정당한가? 과학자는 자신이 만든 무기가 어떻게 쓰일지 어디까지 책임져야 하는가?

원자폭탄 이후 인류는 스스로를 멸망시킬 수 있는 힘을 갖게 되었다. 전쟁은 더 이상 어느 지역의 승패만을 뜻하지 않았다. 다음 전쟁은 문명 전체를 위험에 빠뜨릴 수 있었다.

평화를 위한 기구, 그러나 갈라지는 세계

전쟁이 끝나자 사람들은 같은 질문을 되풀이했다. "어떻게 하면 또 다른 세계대전을 막을 수 있을까?" 그 답으로 1945년 국제연합, 곧 유엔이 창설되었다. 전쟁으로 폐허가 된 세계에서 50개국 대표가 샌프란시스코에 모여 유엔 헌장을 만들었고, 유엔은 국제 분쟁을 대화와 협력으로 해결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5

하지만 평화는 곧바로 오지 않았다. 전쟁 중에는 미국과 소련이 함께 나치 독일에 맞섰지만, 전쟁이 끝나자 두 나라는 서로 다른 세계를 꿈꾸고 있음이 분명해졌다. 미국은 자본주의와 자유 선거를 내세웠고, 소련은 공산주의와 사회주의 체제를 앞세웠다. 동유럽에는 소련의 영향력이 강해졌고, 서유럽과 일본에는 미국의 영향력이 커졌다.

이렇게 총을 직접 쏘는 전면전은 피했지만, 군사력과 이념, 경제 지원, 첩보전, 대리전으로 맞선 긴장 상태를 냉전이라고 한다. 뜨거운 전쟁은 아니지만 차갑게 얼어붙은 대립이라는 뜻이다. 제2차 세계대전은 끝났지만, 세계는 미국과 소련이라는 두 강대국을 중심으로 다시 나뉘기 시작했다.

이 장의 핵심은 분명하다. 경제 위기와 두려움은 사람들을 쉬운 답으로 끌고 갈 수 있다. "강한 지도자만 있으면 된다", "특정 집단만 없애면 문제가 풀린다"는 말은 빠르고 단순해 보이지만, 그 끝은 폭력과 전쟁이었다. 제2차 세계대전은 민주주의, 인권, 평화가 저절로 지켜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 주었다. 다음 장에서 우리는 이 전쟁 뒤 갈라진 세계가 어떻게 독립운동, 냉전 경쟁, 빠른 기술 변화 속으로 들어갔는지 살펴볼 것이다.

참고

1Great Depression | Holocaust Encyclopedia

2Essential Events Between 1900 and 1945

3The Cost of Victory | The National WWII Museum

4Introduction to the Holocaust: What was the Holocaust? | Holocaust Encyclopedia

5History of the United Nati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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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사: 인류의 첫걸음부터 오늘의 지구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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