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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mmary

공장의 굴뚝은 왜 먼 대륙을 향했을까

산업혁명 뒤의 공장은 쉬지 않고 돌아갔다. 방직 공장은 더 많은 면화를 원했고, 제철소는 철광석과 석탄을 원했다. 기계가 많이 만들수록 물건을 팔 시장도 더 필요했다. 문제는 한 나라 안의 자원과 소비자만으로는 이 속도를 따라가기 어려웠다는 점이다.

그래서 산업화된 강대국들은 바다 너머를 바라보았다. 그들에게 식민지는 원료 창고이자 상품 시장이었다. 동시에 군함이 머무를 항구, 석탄을 보급할 기지, 다른 강대국을 견제할 군사 거점이기도 했다. 제국주의란 이렇게 강한 나라가 약한 지역을 정치·경제·군사적으로 지배하려는 움직임을 말한다.

물론 제국주의는 단순히 돈 때문에만 움직이지 않았다. 강대국들은 식민지가 많을수록 나라의 위신이 높아진다고 생각했다. 어떤 사람들은 자신들의 문명이 다른 지역을 가르쳐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그 말은 지배와 착취를 그럴듯하게 포장하는 경우가 많았다. 철도와 학교가 세워지기도 했지만, 그것은 현지 사람들의 필요보다 식민 통치와 자원 운반을 위해 만들어질 때가 많았다.

19세기 후반 유럽의 제국주의 경쟁은 나라 사이의 불신을 키웠다. 영국과 프랑스처럼 이미 큰 식민지를 가진 나라가 있었고, 독일처럼 뒤늦게 통일되어 더 큰 몫을 요구하는 나라도 있었다. 식민지는 먼 땅의 문제가 아니라 유럽 강대국들의 자존심과 힘겨루기가 걸린 문제였다. 제국주의, 민족주의, 군사주의, 동맹 체제는 제1차 세계대전의 중요한 배경으로 함께 작용했다.1

제국주의와 세계 전쟁의 그림자AI 생성 이미지

지도 위의 선, 삶을 가른 선

아프리카는 이 경쟁의 가장 뚜렷한 무대였다. 유럽 열강은 아프리카의 강, 항구, 광산, 농지를 차지하려고 다투었다. 그들은 현지의 왕국, 언어, 교역망, 공동체의 경계를 충분히 고려하지 않은 채 지도 위에 선을 그었다. 이 선은 종이 위에서는 단순했지만, 실제 삶에서는 가족과 시장, 목축로와 농지를 갈라놓았다.

식민 정부는 세금을 걷고 노동을 동원했다. 어떤 지역에서는 사람들이 원래 먹고살기 위해 기르던 작물 대신 유럽 시장에 팔 고무, 면화, 땅콩, 카카오 같은 작물을 재배해야 했다. 철도는 내륙의 광산과 농장을 항구로 연결했다. 겉으로 보면 근대적 교통망이었지만, 많은 경우 목적지는 현지 마을과 마을이 아니라 자원이 빠져나가는 항구였다.

아시아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졌다. 인도에서는 영국의 지배 아래 철도, 행정, 법 제도가 확대되었지만, 인도의 농업과 수공업은 제국의 필요에 맞게 재편되었다. 중국은 아편 전쟁 이후 불평등 조약과 조차지, 세력권 경쟁에 시달렸다. 동남아시아에서는 고무와 사탕수수, 쌀과 주석이 세계 시장으로 흘러갔다. 일본은 메이지 유신 이후 빠르게 산업화와 군사화를 추진했고, 곧 자신도 제국주의 경쟁에 뛰어들어 타이완, 조선, 만주로 영향력을 넓혔다.

식민 지배는 현지 사회를 무너뜨리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새로운 학교에서 배운 사람들, 도시 노동자, 신문을 읽는 지식인들이 나타났다. 이들은 제국의 언어와 법을 배우면서 오히려 제국을 비판하는 말도 익혔다. 자유, 평등, 민족이라는 단어는 유럽에서만 머물지 않았다. 식민지 사람들도 물었다. 왜 어떤 민족은 나라를 가질 권리가 있고, 우리는 없는가?

작은 불씨가 큰 전쟁이 되기까지

20세기 초 유럽은 화려한 발전 뒤에 불안한 균열을 품고 있었다. 도시에는 전차와 전등이 등장했고, 신문은 매일 세계 소식을 전했다. 하지만 각국 정부는 서로를 믿지 않았다. 독일은 영국의 해군력을 따라잡으려 했고, 영국은 독일의 성장을 두려워했다. 프랑스는 독일에 빼앗긴 알자스-로렌을 잊지 못했다. 러시아와 오스트리아-헝가리는 발칸반도에서 영향력을 놓고 부딪혔다.

민족주의도 불씨가 되었다. 민족주의는 같은 언어와 역사, 문화를 가진 사람들이 스스로의 나라를 세우거나 지키려는 생각이다. 억압받는 사람들에게는 해방의 언어가 될 수 있었다. 하지만 강대국 안에서는 다른 민족을 억누르거나 전쟁을 정당화하는 도구가 되기도 했다.

발칸반도는 이런 갈등이 특히 복잡하게 얽힌 곳이었다. 오스만 제국이 약해지자 그 빈자리를 두고 오스트리아-헝가리, 러시아, 여러 민족운동이 맞섰다. 오스트리아-헝가리가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를 병합하자 세르비아 민족주의자들의 반발이 커졌고, 1914년 사라예보에서 오스트리아 황태자 프란츠 페르디난트가 암살되었다.2

암살 하나가 곧바로 세계대전을 만든 것은 아니다. 이미 숲은 바싹 말라 있었다. 오스트리아-헝가리는 세르비아를 압박했고, 독일은 오스트리아-헝가리를 지지했다. 러시아는 세르비아를 도우려 했고, 프랑스는 러시아와 연결되어 있었다. 독일이 프랑스를 공격하는 과정에서 벨기에를 침공하자 영국도 참전했다. 동맹 체제는 안전벨트처럼 보였지만, 위기의 순간에는 여러 나라를 한꺼번에 전쟁으로 끌고 들어가는 사슬이 되었다.

전쟁은 군인만의 일이 아니게 되었다

제1차 세계대전은 사람들의 예상과 달리 짧게 끝나지 않았다. 특히 서부전선에서는 참호전이 길게 이어졌다. 참호는 땅을 길게 파서 만든 방어 진지였다. 병사들은 진흙과 쥐, 추위와 포격 속에서 살았다. 기관총, 철조망, 대포가 방어력을 크게 높였기 때문에 한쪽이 돌격해도 몇 걸음의 땅을 얻는 데 수많은 목숨이 필요했다.

전쟁 기술은 빠르게 잔인해졌다. 독가스는 바람을 타고 참호로 스며들어 병사의 눈과 폐를 망가뜨렸다. 탱크와 비행기도 등장했지만, 전쟁을 곧 끝내지는 못했다. 기술은 사람을 편하게 하는 도구일 수도 있지만, 전쟁에서는 더 많은 사람을 더 멀리서 죽이는 도구가 되었다.

이 전쟁은 총력전이었다. 총력전이란 군대만 싸우는 것이 아니라 나라 전체가 전쟁에 동원되는 상태를 말한다. 공장은 무기와 탄약을 만들었고, 농촌은 식량을 공급했다. 여성들은 군수 공장과 병원, 교통 현장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았다. 정부는 식량을 배급하고, 신문과 포스터로 국민에게 전쟁을 참으라고 설득했다.

식민지 사람들도 전쟁에 동원되었다. 아프리카와 아시아의 병사와 노동자들이 유럽 전선과 중동, 아프리카 전선으로 끌려갔다. 전쟁은 유럽에서 시작되었지만, 그 부담은 제국의 식민지까지 퍼졌다. 그래서 제1차 세계대전은 이름 그대로 세계전쟁이었다. 전선의 병사와 후방의 민간인 사이의 거리는 이전보다 훨씬 가까워졌다.

끝난 전쟁, 끝나지 않은 불안

1918년 전쟁은 끝났다. 하지만 평화는 단단하지 않았다. 승전국들은 파리에서 새로운 질서를 만들려 했다. 그 결과 독일과 연합국 사이에 베르사유 조약이 맺어졌다. 이 조약은 독일에 전쟁 책임을 지우고, 배상금을 요구했으며, 군비를 제한하고, 영토와 식민지를 빼앗았다.3

승전국의 입장에서는 독일이 다시 전쟁을 일으키지 못하게 막는 장치였다. 그러나 많은 독일인은 조약을 굴욕으로 받아들였다. 전쟁에서 패한 군인들이 돌아왔고, 물가는 흔들렸으며, 사람들은 누가 이 고통의 책임을 져야 하는지 찾기 시작했다. 불안한 사회에서는 분노를 이용하는 정치가 힘을 얻기 쉽다.

또 다른 문제는 식민지와 약소민족의 기대였다. 전쟁 중에는 민족의 자기결정이란 말이 널리 퍼졌다. 자기결정은 한 민족이 스스로 정치적 운명을 정해야 한다는 뜻이다. 많은 식민지 사람들은 이 말이 자신들에게도 적용되리라 기대했다. 그러나 전쟁이 끝난 뒤 독일과 오스만 제국의 옛 영토 상당수는 새로운 독립국이 되기보다 승전국의 위임통치 아래 놓였다. 이름은 달라졌지만, 지배의 구조는 크게 달라지지 않은 곳이 많았다.

제1차 세계대전은 제국주의 경쟁이 얼마나 위험한지 보여 주었다. 더 많은 시장, 더 많은 땅, 더 강한 군대를 향한 욕망은 먼 식민지의 고통으로만 끝나지 않았다. 그 경쟁은 유럽 한복판을 참호와 폐허로 만들었고, 식민지 사람들까지 전쟁터로 밀어 넣었다.

전쟁이 끝났을 때 사람들은 다시는 이런 비극이 없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베르사유 체제는 패전국의 분노, 승전국의 불안, 식민지의 실망, 경제적 혼란을 모두 해결하지 못했다. 그림자는 사라지지 않았다. 다음 시대에는 이 불안 위에서 파시즘, 공산주의, 민주주의가 충돌하며 더 큰 전쟁의 문이 열리게 된다.

참고

1Six Causes of World War I

2How Imperialism Set the Stage for World War I

3Treaty of Versailles - World History Encyclopedia

책 목록

세계사: 인류의 첫걸음부터 오늘의 지구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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