낡은 책에서 새 세계를 보다
이탈리아 피렌체의 어느 작업장을 떠올려 보자. 화가는 나무판 앞에 서서 사람의 얼굴을 그린다. 예전 그림처럼 납작하게 그리지 않는다. 멀리 있는 것은 작게, 가까이 있는 것은 크게 그린다. 빛이 닿는 곳과 그림자가 지는 곳도 살핀다. 사람의 몸을 더 정확히 그리기 위해 뼈와 근육을 공부하기도 한다.
이 변화는 단순히 그림 솜씨가 좋아졌다는 뜻이 아니었다. 사람들은 세상을 새롭게 보기 시작했다. "신이 정한 질서를 따르는 것"만이 아니라 "인간은 무엇을 할 수 있는가", "눈앞의 자연은 어떻게 움직이는가"를 묻기 시작했다. 이런 흐름을 우리는 르네상스라고 부른다. 르네상스는 프랑스어로 '다시 태어남'이라는 뜻이다.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문학, 철학, 예술을 다시 읽고 배우면서 유럽의 생각과 문화가 크게 바뀐 시기를 가리킨다.1
르네상스가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진 것은 아니었다. 중세 말 유럽의 도시가 성장하고 상업이 활발해지면서 부유한 상인과 은행가가 등장했다. 이들은 교회나 왕과는 다른 방식으로 예술가와 학자를 후원할 힘을 가졌다. 피렌체 같은 도시는 돈, 책, 사람, 소문이 모이는 장소가 되었다. 장사로 번 돈은 성당, 궁전, 그림, 조각, 학교로 흘러갔다.
르네상스의 핵심은 인문주의였다. 인문주의란 인간의 삶, 감정, 능력, 이성을 중요하게 보는 태도이다. 이것은 종교를 버린다는 뜻이 아니었다. 다만 인간을 죄 많고 약한 존재로만 보지 않고, 배우고 생각하고 창조할 수 있는 존재로 바라보려 했다. 그래서 르네상스 시대의 그림 속 인물은 점점 더 살아 있는 사람처럼 보이기 시작했다. 성인도, 왕도, 평범한 사람도 표정과 몸짓을 가진 인간으로 그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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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근법과 호기심이 만든 변화
르네상스 미술에서 중요한 기술 중 하나는 원근법이다. 원근법은 평평한 화면에 깊이를 만들어 내는 방법이다. 쉽게 말해 종이 위에 길이 멀리 뻗어 가는 것처럼 보이게 하는 약속이다. 이 기술 덕분에 그림은 창문처럼 보이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그림을 통해 "세상은 눈으로 관찰하고 계산할 수 있다"는 감각을 익혔다.
이런 태도는 미술에만 머물지 않았다. 건축가는 고대 로마 건물의 비례를 연구했다. 의사는 사람의 몸을 더 자세히 관찰하려 했다. 학자는 오래된 라틴어와 그리스어 문헌을 다시 읽었다. 물론 당시의 지식이 모두 오늘날의 과학처럼 정확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중요한 변화가 있었다. 사람들은 권위 있는 말만 반복하기보다 직접 보고, 비교하고, 기록하려 했다.
이 호기심은 바다로도 향했다. 지도 위의 빈칸은 두려움이면서 동시에 유혹이었다. 유럽 사람들은 오래전부터 아시아의 향신료, 비단, 보석을 원했다. 후추와 정향 같은 향신료는 음식의 맛을 내고 약재나 향료처럼 쓰였으며, 먼 길을 거쳐 적은 양만 들어왔기 때문에 비쌌다. 아시아 물건은 여러 상인과 지역을 거쳐 유럽에 도착했다. 그 과정에서 값은 계속 올랐다. 유럽의 왕과 상인들은 생각했다. "중간 길을 거치지 않고 직접 바닷길로 갈 수는 없을까?"
인쇄술, 생각에 날개를 달다
르네상스의 생각을 빠르게 퍼뜨린 힘은 인쇄술이었다. 15세기 중엽 구텐베르크가 금속 활자를 이용한 인쇄 방식을 발전시키면서 책을 만드는 속도와 양이 크게 늘었다. 예전에는 책 한 권을 손으로 베껴야 했다. 시간이 오래 걸렸고 값도 비쌌다. 인쇄술은 지식을 귀한 보물에서 더 많은 사람이 만질 수 있는 물건으로 바꾸었다.
책이 많아지자 생각의 이동 속도가 달라졌다. 고대 문헌, 성경, 항해기, 지도, 의학서, 천문학 책이 전보다 넓게 퍼졌다. 같은 내용을 담은 책이 여러 지역에 퍼지면 사람들은 서로 같은 자료를 놓고 토론할 수 있었다. 지식은 더 이상 수도원이나 궁정의 좁은 방 안에만 갇혀 있지 않았다.
인쇄술은 종교의 세계도 흔들었다. 성경과 종교 비판 글이 널리 퍼지면서 사람들은 교회의 권위에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다. 뒤이어 종교개혁이 일어나 유럽 기독교 세계는 하나의 질서로 묶여 있기 어려워졌다. 인쇄술은 누군가의 생각을 순식간에 여러 도시로 보내는 도구였다. 오늘날 인터넷만큼 빠르지는 않았지만, 당시 사람들에게는 매우 강력한 변화였다.
항해에도 인쇄술은 중요했다. 지도와 항해 지식이 더 쉽게 복제되고 퍼졌기 때문이다. 새로 확인한 해안선, 항구, 바람의 흐름, 위험한 암초에 대한 정보가 책과 지도로 남으면 다음 항해자는 앞선 사람의 실수를 조금 줄일 수 있었다.2 지식은 배에 실린 보이지 않는 돛이었다.
왜 포르투갈과 에스파냐가 먼저 바다로 나섰을까
대항해 시대의 앞줄에 선 나라는 포르투갈과 에스파냐였다. 두 나라는 유럽 서쪽 끝, 대서양을 마주한 곳에 있었다. 지도를 보면 이 위치는 땅의 끝처럼 보이지만, 바다로 나가려는 사람에게는 출발점이 될 수 있었다.
포르투갈은 아프리카 서해안을 따라 남쪽으로 내려갔다. 목표는 여러 가지였다. 금을 얻고 싶었고, 향신료 무역에 직접 뛰어들고 싶었으며, 이슬람 상인과 이탈리아 상인이 장악한 기존 교역로를 우회하고 싶었다. 바다는 위험했지만 성공하면 큰 이익을 얻을 수 있었다.
기술도 뒷받침되었다. 나침반은 방향을 알려 주었고, 아스트롤라베 같은 도구는 별과 태양을 이용해 배의 위치를 짐작하게 했다. 카라벨선은 비교적 작고 빠르며 바람을 이용해 움직이기 좋아 해안 탐사에 알맞았다. 이런 기술은 어느 한 나라가 혼자 만든 것이 아니었다. 중국에서 전해진 나침반, 이슬람 세계의 천문·지리 지식, 지중해와 대서양 선원들의 경험, 여러 지역의 조선 기술과 항해술이 뒤섞였다.2
이 점이 중요하다. 유럽의 대항해는 유럽만의 천재성으로 이루어진 일이 아니었다. 이전 장들에서 보았듯이 세계는 이미 길과 바다로 이어져 있었다. 아시아의 발명, 이슬람 세계의 학문, 아프리카 해안의 정보, 지중해 상인의 경험이 쌓여 유럽의 항해를 가능하게 했다.
에스파냐는 조금 다른 길을 택했다. 콜럼버스는 지구가 둥글다는 생각을 바탕으로 서쪽으로 가면 아시아에 닿을 수 있다고 믿었다. 그의 계산은 틀렸다. 그는 아시아에 도착한 것이 아니라 유럽인들이 알지 못했던 아메리카 대륙의 섬들에 도착했다. 하지만 그곳은 비어 있는 땅이 아니었다. 앞 장에서 살펴본 것처럼 아메리카에는 마야, 아스테카, 잉카를 비롯한 다양한 사회와 문명이 이미 존재했다. 그래서 "발견"이라는 말은 조심해서 써야 한다. 유럽인에게 새로웠을 뿐, 그곳 사람들에게는 오랫동안 삶의 터전이었다.
지도가 바뀌자 삶도 바뀌었다
1492년 이후 세계의 지도는 달라졌다. 하지만 지도 위 선만 바뀐 것이 아니었다. 사람들의 식탁, 농장, 질병, 노동, 전쟁 방식까지 바뀌었다. 유럽, 아프리카, 아메리카가 대서양을 사이에 두고 강제로 연결되기 시작했다.
유럽인은 아메리카에서 금과 은을 찾았다. 특히 은은 세계 경제를 흔들 만큼 중요했다. 아메리카의 광산에서 캐낸 은은 에스파냐로 흘러갔고, 다시 유럽과 아시아 무역에 쓰였다. 은은 단순한 금속이 아니라 세계를 잇는 결제 수단이 되었다. 그러나 그 은의 뒤에는 원주민의 강제 노동과 폭력이 있었다.
말도 아메리카로 건너갔다. 말은 원래 아메리카에 없던 동물이 아니었지만, 오래전에 사라졌고 콜럼버스 이후 유럽인을 통해 다시 들어왔다. 말은 이동과 사냥, 전쟁 방식을 바꾸었다. 특히 북아메리카의 여러 원주민 사회는 말을 받아들이며 생활 방식에 큰 변화를 겪었다.
반대로 아메리카의 작물은 다른 대륙으로 퍼졌다. 감자, 옥수수, 토마토, 고추, 카카오 같은 작물은 오늘날 세계 음식에서 빼놓기 어렵다. 감자는 척박한 땅에서도 비교적 잘 자라고 수확량이 많아 유럽과 아시아 일부 지역의 인구 증가에 영향을 주었다. 옥수수도 아프리카와 유럽, 아시아에서 중요한 식량이 되었다. 오늘날 우리가 먹는 많은 음식은 이 시기 대륙 사이 이동의 결과이다.
하지만 교환은 평등하지 않았다. 유럽에서 온 전염병은 아메리카 원주민 사회에 끔찍한 피해를 주었다. 천연두, 홍역, 독감 같은 병에 면역이 없던 사람들은 빠르게 쓰러졌다. 어떤 지역에서는 전쟁보다 질병이 더 큰 파괴를 가져왔다. 콜럼버스 이후 대륙 사이에서 식물, 동물, 질병, 사람이 이동한 이 거대한 변화를 콜럼버스 교환이라고 부른다.3
이 교환에는 아프리카 사람들의 비극도 포함된다. 아메리카 원주민 인구가 줄고 플랜테이션과 광산 노동력이 필요해지자, 유럽 세력은 아프리카 사람들을 노예로 붙잡아 대서양 건너로 강제로 보냈다. 이 거대한 강제 이동은 다음 시대의 식민지와 제국의 역사를 어둡게 물들였다.
호기심과 욕망이 함께 연 문
르네상스와 대항해 시대는 밝은 면과 어두운 면을 함께 가진다. 사람들은 인간의 능력을 새롭게 보았고, 고대 문화를 다시 읽었으며, 그림과 과학과 항해에서 새로운 방법을 찾았다. 인쇄술은 지식을 넓게 퍼뜨렸고, 바닷길은 먼 지역을 연결했다.
그러나 같은 시대에 금과 향신료에 대한 욕망, 정복과 선교의 열정, 다른 사람의 땅과 노동을 빼앗으려는 폭력도 커졌다. 새로운 그림법과 항해 지식, 금에 대한 욕망과 순수한 호기심은 따로 움직이지 않았다. 그 모든 것이 한데 섞여 세계의 지도를 바꾸었다.
이제 세계사는 더 이상 각 대륙이 따로 흘러가는 이야기가 아니게 되었다. 감자는 유럽의 밭에서 자라고, 은은 태평양을 건너 아시아 시장으로 들어가며, 말은 아메리카 초원을 달리고, 전염병은 문명을 무너뜨렸다. 연결은 풍요를 만들기도 했지만, 고통도 함께 만들었다.
다음 시대의 핵심 질문은 이것이다. 이렇게 연결된 세계에서 누가 이익을 얻고, 누가 대가를 치렀을까? 그 답을 따라가면 제국과 식민지의 시대가 열린다.
참고
1The Renaissance and Age of Exploration Sourc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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