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가 멈춘 들판
서쪽으로 가는 길은 전쟁터보다 조용했다.
그래서 더 견디기 어려웠다. 검은 별 아래에서는 함성이 있었고, 칼날이 있었고, 누군가를 살리거나 놓치는 순간이 있었다. 그러나 전쟁이 끝난 뒤의 길에는 긴 침묵만 있었다. 무너진 수레바퀴, 불탄 초소, 주인을 잃은 우물, 들판 끝에 꽂힌 이름 없는 나무 표지들이 지나갔다.
아렌은 엘루마르를 등에 메고 걸었다. 검은 여전히 침묵했다. 예전 같으면 바람 속에서 희미한 별의 음을 들었을 것이다. 돌이 품은 오래된 말, 나무뿌리 아래 잠든 기억, 밤하늘이 숨기는 길. 이제 그는 아무것도 듣지 못했다.
대신 발밑의 흙소리를 들었다.
리아가 곁에서 걸었다. 그녀는 더 이상 도둑처럼 그림자만 골라 밟지 않았다. 그래도 습관은 남아 있었다. 누군가 뒤따르는지 확인하고, 폐허가 된 헛간의 틈을 먼저 살피고, 지나가는 아이가 신발을 신었는지 보는 눈.
마룬은 조금 뒤에서 걸었다. 전쟁이 끝난 뒤에도 그의 걸음은 대장장이의 것처럼 무거웠다. 한 걸음마다 땅에 못을 박듯 단단했다. 흑요새의 사슬은 끊어졌지만 손목에는 검은 자국이 남았다. 그는 그 자국을 감추지 않았다.
사흘째 되는 저녁, 아렌은 언덕 위에서 멈췄다.
저 아래에 마을이 있었다.
가시울.
그 이름을 마룬에게서 다시 들었을 때에도 아렌의 마음에는 곧장 불이 켜지지 않았다. 낯선 말처럼 굴러갔다. 하지만 언덕 아래 검게 탄 대장간 굴뚝과 비뚤어진 여관 지붕, 잿가지숲 쪽으로 이어지는 좁은 길을 보자, 잃어버린 기억이 말이 아니라 냄새로 돌아왔다.
젖은 석탄 냄새.
뜨겁게 달군 쇠 냄새.
겨울마다 문틈으로 들어오던 연기 냄새.
그리고 어느 밤, 하늘에서 재가 내리던 냄새.
아렌은 숨을 삼켰다.
마을은 끝나지 않았다. 폐허 위에 사람들이 있었다. 반쯤 탄 집의 벽을 헐고 새 기둥을 세우는 사람들, 검게 그을린 우물가를 파내는 아이들, 무너진 여관 앞에 긴 식탁을 놓고 죽을 젓는 노인들. 지붕마다 아직 새 짚이 덜 얹혔고, 길마다 진흙이 깊었지만, 굴뚝 하나에서는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아렌은 그 연기를 오래 바라보았다.
"집이네." 리아가 말했다.
그 말은 가볍지 않았다. 리아는 평생 집이라는 말을 믿지 못한 사람처럼 조심스럽게 발음했다.
아렌은 대답하려 했다. 그러나 목이 막혔다.
마룬이 그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돌아왔다고 해서," 그가 낮게 말했다. "떠나기 전의 네가 되는 건 아니다."
아렌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난 뭘로 돌아온 거예요?"
마룬은 잠시 마을을 내려다보았다.
"살아 있는 자로."
그 대답은 왕의 칭호보다 무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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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허 위의 기둥
마을 사람들은 처음에 그들을 알아보지 못했다.
검은 별 아래에서 돌아온 사람들은 모두 조금씩 다른 얼굴을 하고 있었다. 아렌의 머리카락에는 은빛이 섞였고, 눈빛은 나이보다 오래된 것을 본 사람처럼 깊어졌다. 리아는 허리춤에 칼을 찼지만 손은 비어 있었다. 마룬은 살아 돌아왔으나 마을이 기억하는 대장장이보다 훨씬 늙어 보였다.
가장 먼저 알아본 것은 대장간 옆집의 노파였다. 그녀는 손에 들고 있던 물동이를 떨어뜨렸다.
"마룬?"
그 한마디가 마을을 흔들었다.
문들이 열렸다. 망치질이 멈췄다. 아이들이 어른들의 등 뒤로 숨었다가 다시 고개를 내밀었다. 누군가는 울었고, 누군가는 성호 대신 오래된 별의 표식을 그리려다 멈췄다. 검은 별이 사라진 뒤에도 사람들은 하늘을 함부로 부르지 않았다.
마룬은 말없이 고개를 숙였다. 자신을 죽은 사람으로 애도한 이들 앞에서 살아 있다는 말을 꺼내는 것은 이상하게도 죄처럼 보였다.
아렌은 대장간으로 걸어갔다.
그곳은 반쯤 무너져 있었다. 벽 한쪽은 새 돌로 메워졌고, 화덕은 아직 고쳐지지 않았다. 그러나 누군가 문 앞에 새 나무판을 기대 놓았다. 그 위에는 삐뚤삐뚤한 글씨가 새겨져 있었다.
마룬 베라스의 대장간. 다시 불을 피울 곳.
아렌은 손끝으로 글씨를 만졌다. 왕관을 썼던 손이었다. 별문을 붙들었던 손이었다. 그러나 나무판 위의 거친 홈은 그 어떤 마법보다 선명했다.
"네가 했어?" 리아가 곁에 선 소년에게 물었다.
소년은 열 살쯤 되어 보였다. 한쪽 소매는 비어 있었고, 다른 손에는 작고 닳은 망치가 들려 있었다.
"다 같이 했어요." 소년이 말했다. "대장장이 아저씨가 돌아오면 바로 알아보게 하려고요."
마룬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는 한참 뒤에야 소년 앞에 무릎을 굽혔다.
"망치를 잡아 본 적 있느냐?"
소년은 고개를 저었다.
"그럼 내일부터 배워라. 손이 하나여도 쇠는 달궈진다. 중요한 건 남은 손으로 무엇을 만들지 정하는 거다."
그 말을 듣고 아렌은 가슴 한쪽이 아팠다.
전쟁은 많은 것을 가져갔다. 팔, 이름, 기억, 부모, 마을의 지붕. 하지만 마룬은 언제나 그랬듯 남은 것으로 시작하라고 말했다. 그것이 대장장이의 법이었다.
그날 밤, 마을 사람들은 새로 세우는 회관의 뼈대 아래 모였다. 지붕도 없는 곳이었지만, 별이 사라진 하늘은 이상할 만큼 넓었다. 누군가 죽을 끓였고, 누군가 빵을 나눴다. 리아는 아이들이 빵을 두 번 가져가도 못 본 척했다. 그러다 세 번째 가져가려는 아이의 손목을 붙잡았다.
아이는 굳었다.
리아는 그의 손바닥에 빵을 하나 더 얹어 주었다.
"세 번째는 네가 먹는 게 아니라 더 어린애한테 가져다줘. 훔치는 법보다 나눠 숨기는 법을 먼저 배워."
아이는 어리둥절한 얼굴로 달아났다.
아렌은 희미하게 웃었다.
"너답다."
"칭찬이야?"
"이제는."
리아는 잠시 말이 없었다. 불빛이 그녀의 뺨을 흔들었다.
"나, 도둑질 그만둘 거야."
아렌은 놀라지 않았다. 그녀의 목소리가 오래전부터 그 문장을 품고 있었기 때문이다.
"대신 더 어려운 걸 할 거야."
"뭔데?"
리아는 마을의 아이들을 보았다. 부모를 잃은 아이, 이름표를 목에 건 아이, 아직 밤마다 울다가 입을 막는 아이들.
"길을 만들 거야. 길 잃은 아이들이 검은 기사나 회색 손 같은 놈들에게 팔려 가지 않도록. 항구, 숲길, 사막 우물, 유리섬의 치유선, 카엘의 새 초소까지 이어지는 길. 누구에게 가야 하는지, 어느 집 문을 두드리면 밥을 얻는지, 어느 이름은 믿어도 되고 어느 깃발은 피해야 하는지 알려 주는 정보망."
그녀는 작게 웃었다.
"도둑들의 방식이 쓸모없는 건 아니거든. 다만 이제 훔쳐 달아나는 데 쓰지 않고, 아이들을 빼내는 데 쓸 거야."
아렌은 리아를 바라보았다.
그는 처음 그녀를 만났을 때, 그녀가 언제든 자신들을 팔고 사라질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실제로 리아는 도망칠 문을 늘 남겨 두었다. 그러나 이제 그녀는 문을 닫는 대신 길을 만들겠다고 했다.
"이름은?" 아렌이 물었다.
"아직." 리아가 어깨를 으쓱했다. "회색 손보다 나은 이름이면 돼."
"흰 길은 어때?"
"너무 착해 보여서 수상해."
"까마귀 길?"
"세리온이 울겠다."
두 사람은 아주 잠깐 웃었다. 전쟁 뒤의 웃음은 오래가지 못했지만, 사라지지도 않았다. 그것은 작은 불씨처럼 남았다.
빈 무덤 앞에서
다음 날 새벽, 아렌은 혼자 마을 뒤 언덕으로 올라갔다.
그곳에는 새 무덤들이 줄지어 있었다. 어떤 무덤에는 이름이 있었고, 어떤 무덤에는 그을린 단추나 부러진 숟가락만 놓여 있었다. 가장 끝, 늙은 참나무 아래에 작은 돌비석 하나가 서 있었다.
마룬 베라스. 가시울의 대장장이. 끝까지 문을 막은 사람.
아렌은 그 앞에 섰다.
마룬은 살아 있었다. 지금도 대장간 화덕을 고치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도 마을 사람들은 그를 위해 무덤을 만들었다. 그날 밤, 검은 기사들 앞에서 마룬은 죽은 사람이나 다름없이 남겨졌기 때문이다. 아렌을 살리기 위해 자신의 삶을 한 번 이곳에 묻었다.
아렌은 무릎을 꿇었다.
흙은 차가웠다. 그는 엘루마르를 풀어 무덤 앞에 내려놓았다. 왕관은 사라졌고, 검은 침묵했지만, 두 물건의 그림자는 아직 그의 안에 남아 있었다. 세상은 그를 왕이라 부르려 했고, 검은 그에게 영웅이 되라고 속삭였고, 별문은 그를 빗장으로 삼으려 했다.
아렌은 비석을 바라보며 말했다.
"아버지."
그 말은 오래 걸려 나왔다.
"저는 왕관으로 살지 않겠습니다. 검으로도 살지 않겠습니다. 사람들이 제 이름을 어떻게 부르든, 저는 제가 고른 일로 살겠습니다."
바람이 지나갔다. 잿가지숲의 마른 가지들이 서로 부딪혔다. 예전 같으면 그 소리가 불길한 예언처럼 들렸을 것이다. 이제는 그냥 나무가 바람에 흔들리는 소리였다.
"도망치지 않겠다고 말했지만, 사실 저는 여러 번 도망쳤어요. 왕이 되는 것에서, 죽는 것에서, 살아남은 뒤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서. 그런데 이제 알겠습니다. 사는 것도 선택이더군요. 매일 아침 다시 하는 선택."
그는 허리춤에서 리아의 낡은 접이칼을 꺼냈다. 칼날은 작고 흠집투성이였다. 세상을 구한 검보다 이 작은 칼이 더 현실처럼 느껴졌다.
"평범해지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예전의 평범함은 돌아오지 않겠지요. 대장간의 불 앞에서 아무것도 모른 채 웃던 아이는 여기에 묻혔습니다. 아버지의 이 빈 무덤처럼요."
아렌은 접이칼을 접어 손바닥에 쥐었다.
"그래도 저는 새 평범함을 만들겠습니다. 밥을 먹고, 지붕을 고치고, 아이에게 망치 잡는 법을 가르치고, 밤에 누가 문을 두드리면 먼저 이름을 묻는 하루. 그런 하루를 지키겠습니다. 왕관이 아니라 제 손으로."
뒤에서 발소리가 들렸다.
마룬이었다.
아렌은 돌아보지 않았다. 마룬도 다가오지 않았다. 두 사람 사이에는 빈 무덤 하나가 있었다. 죽었다고 믿었던 시간, 말하지 못한 두려움, 서로를 살리기 위해 서로에게 숨긴 진실이 그 안에 묻혀 있었다.
한참 뒤 마룬이 말했다.
"잘 말했다."
아렌의 눈가가 뜨거워졌다.
"들으셨어요?"
"대장장이는 망치 소리만 듣는 게 아니다."
마룬은 비석 곁에 서서 자기 이름을 내려다보았다. 살아 있는 사람이 자기 무덤을 보는 얼굴은 이상하게 평온했다.
"이건 그냥 두자." 그가 말했다.
"왜요?"
"그날 밤의 나는 여기 묻힌 게 맞다. 이제부터 남은 나는 새로 살아야지."
아렌은 그 말을 마음속 깊이 새겼다.
마룬은 엘루마르를 바라보았다.
"검은?"
"아직 모르겠어요. 버리기엔 너무 많은 피가 묻었고, 쓰기엔 너무 많은 대가를 압니다."
"그럼 걸어 두어라. 벽에. 모두가 보게."
"무기로요?"
"아니. 경고로."
마룬은 대장간 쪽으로 천천히 내려갔다. 아렌은 빈 무덤 앞에 조금 더 남아 있었다. 해가 떠오르자 검은 재가 남아 있던 들판 위로 금빛이 번졌다.
그는 그 빛을 보며 처음으로 왕관 없는 아침을 받아들였다.
평범한 하루를 지키는 법
가시울의 재건은 전투보다 어려웠다.
전투에서는 적이 앞에 있었다. 재건에서는 적이 안에 있었다. 피곤함, 굶주림, 서로에 대한 원망, 왜 나는 잃었고 저 사람은 살아남았느냐는 잔인한 질문. 어떤 날은 지붕 하나를 올리다가 두 가족이 싸웠다. 어떤 날은 검은 기사단에게 협력했던 사내가 돌아와 돌을 맞을 뻔했다.
아렌은 그를 변호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죽게 두지도 않았다.
"재판은 있어야 합니다." 아렌이 말했다. "복수는 빠르지만, 마을을 다시 세우지는 못합니다."
사람들은 그를 보았다. 누군가는 그가 왕의 피라서 그렇게 말한다고 수군거렸다. 누군가는 아직도 그가 검은 별을 불러온 아이라고 믿었다.
그때 리아가 앞으로 나섰다.
"왕이 아니라 대장장이 견습생 말이야. 싫으면 직접 화덕 고치든가."
수군거림은 줄었다.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 정도면 충분했다.
며칠 뒤, 흰까마귀호의 작은 배 한 척이 서쪽 강어귀에 닿았다. 미라의 편지가 실려 있었다. 삐뚤지만 힘 있는 글씨였다. 별문독은 아직 그녀의 피 안에 남아 있었고, 때때로 죽은 자들의 낮은 명령이 들린다고 했다. 그러나 그녀는 그 명령을 약의 방향으로 바꾸는 법을 배우는 중이었다. 칼리사는 배에 병상 스무 개를 더 만들었고, 첫 항해지는 전쟁 고아들이 모인 북쪽 마을이라고 했다.
카엘의 인장도 함께 왔다. 새 왕국은 아직 왕국이라 부르기에도 초라했지만, 그는 첫 칙령으로 길 잃은 아이와 전쟁 포로의 매매를 금지했다. 리아는 그 문장을 보고 코웃음을 쳤다.
"종이에 쓴 금지는 칼 든 놈을 못 막아."
"그래도 시작이야." 아렌이 말했다.
"그래서 내가 길을 만들 거라고."
그날 밤 리아는 대장간 한쪽 벽에 지도를 펼쳤다. 밀수길, 옛 우편로, 순례자의 우물, 드워프들이 남긴 산길, 해적들이 아는 숨은 포구. 그녀의 손끝이 대륙을 가로질렀다.
"여기엔 빵집 여자를 둬. 아이가 '검은 재는 녹지 않는다'고 말하면 뒷문을 열어 주는 거야. 여기엔 약초상을 둬. 미라가 사람을 보내 줄 수 있어. 여기 항구엔 칼리사 이름을 쓰지 마. 무서워서 아무도 안 올 테니까. 대신 흰 새 표시."
아렌은 조용히 들었다.
"그리고 가시울은?"
리아의 손이 멈췄다.
"마지막 피난처."
그 말에 아렌은 대장간 화덕을 보았다. 아직 완전히 고쳐지지 않은 화덕이었다. 그러나 내일이면 불을 넣을 수 있었다.
"그럼 더 튼튼한 문이 필요하겠네."
"문만?"
"침대도. 수프 냄비도. 아이들이 숨을 다락도."
리아는 웃었다.
"평범한 하루를 지키는 일이 꽤 바쁘네."
"미친 왕을 상대하는 것보다?"
"그건 하루면 끝났잖아."
아렌은 이번에는 오래 웃었다.
그 웃음이 끝날 무렵, 대장간 밖에서 아이들이 떠드는 소리가 들렸다. 한 아이가 하늘을 가리키고 있었다.
아렌과 리아는 동시에 밖으로 나갔다.
밤하늘에는 검은 별이 없었다. 별문도 없었다. 그러나 대장간 굴뚝 위, 아주 높은 곳에 작고 낯선 빛 하나가 흔들리고 있었다. 별이라기엔 너무 낮고, 등불이라기엔 너무 멀었다.
빛은 세 번 깜박였다.
아렌의 가슴이 멈칫했다. 세 불빛. 한때 그가 동료들을 부르기 위해 보낸 신호와 닮아 있었다.
리아의 손이 자연스럽게 허리춤으로 갔다. 그러나 그녀는 칼을 뽑지 않았다.
"봤어?"
"응."
마룬도 대장간 문가에 섰다. 그의 얼굴에서 피로가 사라졌다. 오래전 감시자의 눈빛이 돌아왔다.
"별빛이군." 그가 말했다.
아렌은 하늘의 작은 빛을 바라보았다. 별의 언어를 잃은 뒤로 그는 하늘이 하는 말을 들을 수 없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번에는 소리가 아니라 마음속 깊은 곳에서 문이 열리는 느낌이 났다.
아주 작은 문.
아직 열리지 않은 문.
리아가 낮게 물었다.
"또 떠나야 하는 걸까?"
아렌은 한참 동안 대답하지 않았다. 마을 뒤에서는 새 집의 기둥들이 밤바람에 삐걱였고, 대장간 안에서는 아직 불붙지 않은 화덕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마침내 그가 말했다.
"아니. 이번엔 먼저 집을 세울 거야."
빛이 다시 한 번 깜박였다.
아렌은 하늘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그리고 문이 우리에게 온다면, 여기서 맞이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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