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별이 진 자리
새벽은 늦게 왔다.
검은 별이 사라진 하늘은 처음에는 텅 빈 상처처럼 보였다. 누구도 환호하지 않았다. 너무 오래 어둠을 올려다본 눈들은 빛을 믿지 못했다. 그러다 동쪽 능선 너머로 태양의 가장자리가 올라왔고, 검은 재로 뒤덮인 흑요새 평원에 금빛 선 하나가 그어졌다.
그제야 사람들은 알았다.
전쟁이 끝났다는 것을.
흑요새는 더 이상 하늘을 찌르지 못했다. 첨탑은 부러졌고, 성벽의 검은 돌은 안쪽에서부터 식어 가는 숯처럼 갈라졌다. 균열이 있던 자리에는 깊은 구덩이만 남았다. 밤새 세상을 삼키려던 문은 닫혔고, 그 너머에서 들리던 노크 소리도 더 이상 들리지 않았다.
그러나 평원에는 무덤을 팔 땅이 모자랐다.
해적들은 부러진 노를 십자가처럼 꽂았다. 순례자들은 물 한 방울씩을 모래에 떨어뜨리고 이름을 불렀다. 왕실 병사들은 방패를 뒤집어 관으로 삼았다. 미라의 치유사들은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를 구분하기 위해 손목에 붉은 실을 묶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붉은 실보다 검은 천이 더 많아졌다.
아렌은 그들 사이를 걸었다.
사람들은 그를 보며 길을 비켰다. 어떤 병사는 무릎을 꿇으려 했고, 어떤 노인은 손을 뻗어 그의 옷자락을 만지려 했다. 별문을 닫은 자. 왕관을 쓰고도 왕이 되지 않은 자. 검은 별 아래에서 모두의 이름을 부른 자.
그 많은 이름들이 아렌에게 달라붙었다.
하지만 그는 자기 이름조차 멀게 느껴졌다.
"아렌."
리아가 그의 곁에 섰다. 그녀의 얼굴에는 피와 그을음이 말라붙어 있었다. 늘 가볍게 웃던 입술은 굳어 있었고, 손에는 아직도 마지막 파편을 훔쳤던 상처가 남아 있었다.
"괜찮아?"
아렌은 대답하려 했다. 괜찮다고, 살아 있다고, 문은 닫혔다고 말하려 했다.
그러나 먼저 떠오른 것은 이상한 침묵이었다.
예전이라면 그는 들었을 것이다. 파편들이 서로를 부르는 낮은 떨림. 엘루마르가 피와 별빛을 알아보며 울던 가느다란 노래. 멀리 흩어진 죽은 자들의 이름이 바람에 섞여 오는 소리.
이제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바람은 바람이었다. 돌은 돌이었다. 검은 흙은 검은 흙이었다.
아렌은 천천히 말했다.
"너무 조용해."
리아는 그 말을 듣고서야 그의 허리춤을 보았다. 엘루마르는 검집 속에 잠들어 있었다. 전쟁 내내 피와 불 앞에서 몸부림치던 검이, 이제는 평범한 쇠붙이처럼 무겁고 차가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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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하지 않는 검
아렌은 무너진 성문 앞에 섰다. 그곳에서 왕관은 완성되었고, 별문은 열렸고, 수많은 목소리가 하나의 부탁이 되어 하늘을 붙들었다.
그는 엘루마르의 손잡이에 손을 얹었다.
검은 대답하지 않았다.
아렌은 숨을 들이켰다. 손가락에 힘을 주었다. 검은 반쯤 뽑히다가 멈췄다. 날은 여전히 아름다웠다. 별빛을 머금은 은빛 선이 검은 재 위에 희미하게 번졌다. 하지만 그 안에 있던 노래는 사라져 있었다.
아렌은 다시 검을 밀어 넣었다.
"깨울 수 없어."
뒤에서 마룬이 다가왔다.
그는 살아 있었다. 흑요새의 지하 감옥에서 발견되었을 때, 두 손목에는 검은 사슬 자국이 깊이 파여 있었다. 한쪽 다리는 제대로 힘을 받지 못했고, 수염에는 하얀 털이 부쩍 늘어 있었다. 그러나 그의 눈은 가시울 대장간의 불처럼 여전히 단단했다.
마룬은 아렌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검이 잠든 거냐?"
"아니요." 아렌은 고개를 저었다. "제가 못 듣는 거예요."
그 말은 생각보다 아팠다.
왕관은 그의 목숨을 가져가지 않았다. 문 안쪽에 그를 가두지도 않았다. 모두가 각자의 이름으로 문을 붙든 덕분에, 아렌은 돌아왔다.
그러나 돌아온 것은 전부가 아니었다.
그는 더 이상 별의 언어를 듣지 못했다. 오래된 봉인의 숨결도, 왕관 파편의 맥박도, 엘라닌의 숲이 나무뿌리로 나누는 속삭임도 들리지 않았다. 세상이 감춰 둔 문들이 그의 앞에서 닫혔다.
그리고 이상하게도, 어떤 기억은 이름을 잃었다.
아렌은 입술을 열었다.
"우리가 살던 마을 이름이……"
말이 나오지 않았다.
잿가지숲의 냄새는 기억났다. 겨울 아침 대장간 문을 열면 폐 속으로 들어오던 차가운 공기도 기억났다. 마룬이 쇠를 달구며 콧노래를 흥얼거리던 모습도, 빵을 태워 놓고 아무렇지 않은 척하던 얼굴도 기억났다.
하지만 마을의 이름은 손가락 사이 재처럼 흩어졌다.
마룬은 잠시 눈을 감았다. 그리고 아주 낮게 말했다.
"가시울이다."
아렌은 그 이름을 따라 했다.
"가시울."
처음 듣는 말 같았다. 동시에 평생 알고 있던 말 같았다. 가슴 한가운데가 저릿했다.
마룬은 그의 어깨를 세게 쥐었다.
"집은 마법이 기억해 주는 곳이 아니다. 네 발로 걸어가고, 네 손으로 문을 열고, 네가 다시 불을 피우는 곳이다."
아렌은 고개를 숙였다.
그는 왕관을 내려놓았지만, 대가는 남았다. 세상을 구한 손은 더 이상 검을 노래하게 하지 못했다. 별빛의 길을 듣던 귀는 평범한 침묵만을 들었다.
그 침묵 속에서, 그는 처음으로 자신이 얼마나 두려운지 알았다.
로반 칼드의 이름
로반의 장례식은 해가 완전히 떠오른 뒤 시작되었다.
그의 몸은 부서진 방패 위에 누워 있었다. 칼은 가슴 위에 놓였고, 손가락은 검자루를 쥐지 않은 채 편안히 펴져 있었다. 오래도록 죄를 붙들고 살았던 사람의 손이었다. 마지막에는 누군가를 지키기 위해 모든 힘을 놓은 손이었다.
카엘 왕자가 앞으로 나왔다.
그의 망토는 찢어졌고 갑옷에는 검은 피가 말라 있었다. 왕관은 쓰지 않았다. 대신 그는 로반의 발치에 무릎을 꿇었다.
주변이 술렁였다. 몇몇 귀족들이 불편한 얼굴로 서로를 보았다. 로반 칼드. 과거 왕을 죽게 한 기사. 성문을 열어 왕국의 몰락을 불렀다고 기록된 자.
카엘은 그들의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오늘부터 로반 칼드의 오명을 거둔다."
그의 목소리는 지쳐 있었지만 흔들리지 않았다.
"그는 왕을 죽인 자가 아니다. 그는 피난민을 살리기 위해 성문을 연 기사였다. 그 선택이 비극으로 이어졌고, 그는 그 책임을 평생 짊어졌다. 그러나 책임을 진 사람과 죄를 뒤집어쓴 사람은 다르다."
카엘은 로반의 검 위에 손을 얹었다.
"그는 마지막 전투에서 나를 지켰다. 왕가의 피를 지켜서가 아니다. 아직 살아갈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한 귀족이 낮게 말했다.
"전하, 왕국은 혈통 위에 세워졌습니다."
카엘은 천천히 일어섰다.
"그래서 무너졌다."
평원에 찬 침묵이 내려앉았다.
카엘은 부서진 왕국의 깃발을 바라보았다. 왕실의 푸른 천, 해적의 검은 돛, 순례자의 베일, 치유사의 흰 천, 도둑의 낡은 스카프, 대장간 앞치마 조각이 서툴게 꿰매져 있었다.
"나는 피로 다스리는 왕이 되지 않겠다. 피는 태어날 때 주어지는 것이다. 책임은 매일 선택해야 하는 것이다."
그는 사람들을 향해 몸을 돌렸다.
"새 왕국이 세워진다면, 그것은 살아남은 자들의 허락 위에 세워질 것이다. 왕은 가장 높은 자리가 아니라 가장 무거운 자리여야 한다. 나는 그 무게를 피하지 않겠다."
그 말이 끝나자, 먼저 무릎을 꿇은 것은 왕실 병사가 아니었다.
칼리사의 해적 하나가 낡은 모자를 벗었다. 다음은 순례자였다. 다음은 상처 입은 농부였고, 다음은 검을 잃은 어린 병사였다.
아렌은 무릎 꿇지 않았다.
카엘도 그것을 바라지 않았다.
두 사람은 서로를 보았다. 별왕가의 마지막 피와 무너진 왕국의 계승자. 둘 중 누구도 승자의 얼굴을 하고 있지 않았다.
그들은 그저 살아남은 자들이었다.
상처를 싣고 가는 사람들
미라는 장례식이 끝나기도 전에 다시 약솥 앞에 앉았다.
그녀의 손등에는 검은 실핏줄이 남아 있었다. 별문독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때때로 그녀는 멀리서 죽은 자들의 명령 같은 것을 느꼈고, 밤이면 누군가 자기 이름을 거꾸로 부르는 꿈을 꾸었다.
칼리사는 그런 미라의 옆에 말없이 섰다.
"넌 쉬어야 한다."
"부상자가 아직 서른넷이에요."
"네가 쓰러지면 서른다섯이 된다."
미라는 피곤한 얼굴로 웃었다.
"그럼 선장님이 저를 들고 다니세요."
칼리사는 어이없다는 듯 한숨을 쉬었지만, 곧 자신의 붉은 외투를 벗어 미라의 어깨에 덮어 주었다.
그날 오후, 칼리사는 흰까마귀호의 남은 선원들과 해적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약탈품을 싣던 창고는 비워졌다. 그 자리에 붕대, 말린 약초, 물통, 어린아이들이 잘 수 있는 낮은 침상이 들어갔다.
"이제부터 이 배는 전리품을 나르지 않는다."
선원 하나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럼 뭘 나릅니까?"
칼리사는 평원 곳곳에 앉아 있는 아이들을 바라보았다. 부모를 잃고도 울 힘이 남지 않은 아이들. 팔과 다리를 잃은 병사들. 이름을 기억하지 못하는 피난민들.
"상처."
그녀는 짧게 말했다.
"그리고 상처가 사람을 삼키지 못하게 붙드는 것들."
미라는 그 말을 받아 적었다. 이동 치유단. 바다와 강, 길과 폐허를 따라 움직이는 집. 전쟁이 지나간 곳에 먼저 도착하고, 왕의 명령보다 아이의 열을 먼저 보는 사람들.
칼리사는 자신의 해적 깃발 아래 흰 뿌리 문양을 덧댔다. 미라는 그 깃발을 보고 한참 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마음에 안 드나?" 칼리사가 물었다.
미라는 고개를 저었다.
"너무 커요."
"네 일이 작았던 적이 있나?"
미라는 대답하지 못했다.
그녀는 자신이 삼킨 독이 언젠가 자신을 끝낼지도 모른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나 이제 그 독은 저주만이 아니었다. 죽은 자의 명령을 흐리게 하고, 산 자의 몸에서 어둠을 늦추는 길이 되었다.
희생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었다.
어떤 희생은 남아서 다른 사람의 길이 되었다.
서쪽으로 놓인 길
저녁이 가까워질 무렵, 세리온이 무너진 첨탑 아래에서 발견되었다.
그는 살아 있었지만 노래할 수 없었다. 목에는 검은 사슬이 남긴 화상 자국이 둘러져 있었고, 목소리는 마른 잎처럼 갈라졌다. 사람들이 그를 눕히려 하자 그는 힘겹게 손을 들어 아렌을 불렀다.
"나는……"
그 한마디에도 피가 입술에 맺혔다.
아렌은 그의 곁에 앉았다.
세리온은 아주 작게 속삭였다.
"재판을…… 받아야 한다."
아렌은 한동안 그를 바라보았다.
세리온은 거짓말을 했고, 숨겼고, 두려움 때문에 너무 많은 길을 돌아왔다. 그러나 마지막 순간 그는 명령의 노래를 비틀어 모두에게 선택할 틈을 주었다.
아렌은 말했다.
"살아 있어. 그다음에 갚아."
세리온의 눈가가 젖었다. 그는 웃으려 했지만 실패했다.
그 밤, 흑요새 평원에는 수백 개의 작은 불이 켜졌다. 장례의 불, 치료소의 불, 길 잃은 아이들을 안심시키는 불, 아직 돌아오지 않은 사람을 기다리는 불.
아렌은 그 불들 사이에서 엘루마르를 내려다보았다.
그는 검을 카엘에게 넘기지도, 묻지도 않았다. 대신 검을 천으로 감싸 등에 멨다. 더 이상 노래하지 않는 검이라 해도, 그것은 그가 지나온 길의 증거였다.
리아가 다가와 물었다.
"이제 어디로 갈 거야?"
아렌은 서쪽을 보았다.
검은 재 너머, 무너진 길 너머, 아직 이름을 되찾아야 하는 마을이 있었다. 대장간의 문은 부서졌을지도 모른다. 우물은 메말랐을지도 모른다. 그를 기다리는 사람이 아무도 없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가야 했다.
"집으로."
리아는 잠시 말이 없었다. 그러다 낡은 접이칼을 꺼내 그의 손에 쥐여 주었다.
"그럼 길에서 잃어버리지 마. 왕관도 잃어버린 사람이니까."
아렌은 처음으로 작게 웃었다.
멀리서 마룬이 지팡이를 짚고 기다리고 있었다. 칼리사의 배에서는 아이들의 울음과 선원들의 고함이 뒤섞였다. 미라는 약솥 앞에서 졸다가 다시 깨어났고, 카엘은 로반의 무덤 앞에 마지막까지 서 있었다.
검은 별은 사라졌다.
그러나 새벽은 공짜로 오지 않았다.
아렌은 그 대가를 등에 메고, 손에는 작은 칼을 쥐고, 침묵한 세계 속으로 첫걸음을 내디뎠다. 더 이상 별의 노래는 들리지 않았다.
대신 살아남은 사람들의 숨소리가 들렸다.
그것만으로도, 길은 충분히 무거웠고 충분히 밝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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