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섬에 남은 아이
유리섬의 밤은 늘 투명했다. 달빛이 수도원의 벽을 통과했고, 별빛은 바닥 아래 검은 호수까지 닿았다. 그러나 그 밤, 미라는 아무것도 맑게 보지 못했다.
칼리사는 수도원 남쪽 치료실의 돌침상 위에 누워 있었다. 바다에서 백 척의 배를 속였다는 해적 여왕의 얼굴은 종잇장처럼 희었다. 어깨에서 시작된 검은 줄기가 쇄골을 지나 목까지 기어올랐다. 독은 피를 타고 흐르지 않았다. 마치 살아 있는 글자처럼 살갗 아래를 천천히 읽어 내려갔다.
'별문독입니다.'
기록관 아사엘은 그렇게 말했었다. 독이 아니라 문틈에서 새어 나온 죽음의 습기라고. 몸을 죽이는 것이 아니라, 몸에게 이미 죽었다고 믿게 만드는 병이라고.
미라는 그 말을 처음 들었을 때 손이 떨렸다. 그녀는 약초사였다. 독풀과 해열초, 뼈 붙이는 진흙과 상처를 닫는 잎을 알았다. 하지만 문틈에서 새는 죽음이라니. 그것은 약초 바구니 안에 넣을 수 없는 것이었다.
그런데 칼리사는 미라의 손목을 붙잡고 웃었다.
'꼬마야. 겁먹은 얼굴로 사람 살리는 법부터 배웠나?'
'겁먹어도 살릴 수 있어요.'
미라는 그렇게 대답했다. 목소리는 작았지만, 손은 멈추지 않았다.
그녀는 유리섬의 흰 뿌리를 잘게 찧었다. 거울 호수의 물을 은잔에 한 방울씩 떨어뜨렸다. 드워프 토룬이 남긴 룬 가루를 섞어 약을 만들었다. 약은 빛나지 않았다. 오히려 주위 빛을 조금씩 삼켰다. 칼리사의 상처에 바르자 검은 줄기들이 분노한 벌레처럼 꿈틀거렸다.
그때 칼리사가 비명을 질렀다.
해적 여왕의 비명은 파도처럼 치료실을 때렸다. 문 밖의 선원들이 검을 뽑고 안으로 뛰어들었다. 그들의 눈에는 미라가 칼리사를 죽이고 있는 것처럼 보였을 것이다.
'손 떼, 아이.'
칼리사의 부선장 하룬이 칼끝을 미라의 목에 들이밀었다.
미라는 칼을 보지 않았다. 검은 줄기만 보았다. 줄기 하나가 칼리사의 심장 쪽으로 파고들고 있었다. 그곳에 닿으면 끝이었다.
'지금 멈추면 죽어요.'
'네가 계속해도 죽을 것 같은데.'
'그럼 둘 중 하나라도 해 보게 해 주세요.'
미라는 칼리사의 상처 위에 손바닥을 눌렀다. 검은 독이 손끝으로 스며들었다.
하룬이 욕설을 내뱉었다. 아사엘이 늦게 외쳤다.
'그 독을 맨손으로 받아서는 안 된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미라의 손등에 가느다란 검은 선이 피어났다. 차갑지 않았다. 뜨겁지도 않았다. 다만 모든 감각이 한순간 멀어졌다. 치료실의 소리, 파도 소리, 칼리사의 숨소리까지 먼 우물 밑에서 들리는 것 같았다.
미라는 입술을 깨물었다.
'조용히 해.'
그 말이 누구에게 한 말인지 그녀 자신도 알 수 없었다. 독에게였는지, 두려움에게였는지, 아니면 오래전부터 자기 안에 웅크린 작은 목소리에게였는지.
그 목소리는 늘 속삭였다.
너는 아이야. 너는 보호받아야 해. 너는 누군가 쓰러진 뒤에야 달려오는 사람일 뿐이야.
미라는 이를 악물고 칼리사의 독을 끌어당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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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맛
독은 피 속으로 들어오지 않았다. 기억 속으로 들어왔다.
미라는 눈을 떴지만 치료실에 있지 않았다. 그녀는 잿빛 들판 한가운데 서 있었다. 하늘에는 검은 별이 떠 있었다. 별은 빛나지 않았다. 세상의 빛을 빨아들여 자기 안에서 썩히고 있었다.
들판 끝에서 군대가 걸어왔다.
처음에는 사람처럼 보였다. 갑옷을 입고, 창을 들고, 깃발을 세운 병사들. 그러나 가까워질수록 그들의 얼굴에는 눈이 없고, 입 안에는 모래가 가득하다는 것이 보였다. 그들은 죽은 자들이었다. 아니, 죽었다는 사실을 잊지 못해 계속 걸어야 하는 자들이었다.
그들의 발밑마다 검은 독이 피어났다.
미라는 그제야 깨달았다. 별문독은 칼리사 한 사람을 죽이기 위한 독이 아니었다. 흑요새에서 흘러나온 전쟁의 숨결이었다. 산 자에게 닿으면 몸에게 죽음을 믿게 만들고, 죽은 자에게 닿으면 죽음 뒤에도 명령을 듣게 만든다.
검은 별의 마법은 죽음을 깨우는 것이 아니었다.
죽음이 쉬지 못하게 묶는 것이었다.
미라는 무릎을 꿇었다. 손등의 검은 선이 팔목까지 올라왔다. 그녀의 앞에 작은 약초 바구니가 놓여 있었다. 가시울을 떠난 뒤부터 품고 다닌 바구니였다. 그러나 안에는 약초가 없었다. 죽은 병사들의 이름표, 부서진 이빨, 녹슨 반지, 아이의 머리끈이 들어 있었다.
'고쳐 봐라.'
누군가 말했다.
미라는 고개를 들었다. 검은 별 아래, 얼굴 없는 왕이 서 있었다. 모르가스인지, 검은 별인지, 아니면 독이 빌린 목소리인지 알 수 없었다.
'너는 살리는 아이 아니냐. 이 전부를 살려 보아라.'
미라는 바구니를 끌어안았다. 너무 많았다. 너무 늦었다. 죽은 자들을 모두 되돌릴 수는 없었다. 그녀의 두 손은 작았고, 배운 약은 모자랐다.
그때 들판의 병사 하나가 걸음을 멈췄다.
그의 가슴에는 검은 줄기가 박혀 있었다. 미라는 본능적으로 손을 뻗었다. 줄기를 모두 뽑을 수는 없었다. 하지만 아주 조금, 매듭 하나를 느슨하게 할 수는 있었다.
병사의 무릎이 꺾였다.
그는 쓰러졌다. 다시 살아나지 않았다. 그러나 처음으로 편안한 얼굴이 되었다.
미라는 숨을 삼켰다.
모두를 살릴 수는 없다. 하지만 묶인 죽음을 약하게 할 수는 있다. 독을 완전히 없애지 못해도, 그 독의 명령을 흐리게 만들 수는 있다.
치유란 언제나 생명을 되돌리는 일만은 아니었다.
때로는 고통이 더 멀리 가지 못하게 막는 일이었다.
미라는 자신의 손등을 보았다. 검은 선이 심장 쪽으로 자라고 있었다. 그녀는 그것을 밀어내려 하지 않았다. 대신 맛보았다. 두려움이 혀끝에 올라왔고, 곧 쇠와 재와 차가운 별빛의 맛이 났다.
'그래.'
미라는 들판을 향해 말했다.
'네가 어떻게 사람을 죽이는지 알겠어.'
검은 별이 흔들렸다.
'그러면 이제, 네가 어떻게 약해지는지도 알겠어.'
독을 삼킨 치유사
미라가 다시 눈을 떴을 때, 치료실 바닥은 피와 물과 깨진 유리 조각으로 젖어 있었다.
하룬은 아직 칼을 들고 있었지만, 그의 손은 떨렸다. 아사엘은 미라의 손목을 붙잡고 주문을 중얼거렸다. 칼리사는 돌침상 위에서 거칠게 숨을 쉬고 있었다. 목까지 올라갔던 검은 줄기는 어깨 아래로 물러나 있었다.
'살았나요?'
미라의 목소리는 갈라졌다.
아사엘이 대답하지 못했다. 대신 칼리사가 눈을 떴다.
'빌어먹을.'
해적 여왕은 마른 입술로 웃었다.
'내가 아이에게 목숨을 빚졌군.'
그 말이 끝나자 미라가 기침했다. 검은 피가 손바닥에 튀었다.
방 안이 얼어붙었다.
아사엘이 낮게 말했다.
'독이 옮겨 갔다.'
하룬이 칼을 떨어뜨렸다.
'그럼 저 아이는?'
'모른다.'
미라는 벽을 짚고 일어났다. 다리가 후들거렸다. 하지만 머릿속은 이상할 정도로 또렷했다. 독은 아직 그녀 안에 있었다. 심장 가까이에 검은 가시처럼 박혀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더 이상 낯선 괴물이 아니었다. 미라는 그 박동을 들을 수 있었다.
하나, 둘, 셋.
명령.
하나, 둘, 셋.
복종.
하나, 둘—
미라가 거울 호수의 물을 한 방울 삼켰다. 박동이 흐트러졌다.
그녀는 흰 뿌리 가루를 더 넣었다. 드워프 룬 가루는 아주 조금. 너무 많으면 몸이 먼저 무너진다. 너무 적으면 독이 웃는다. 미라는 손끝으로 양을 재지 않았다. 독의 숨을 듣고, 그 숨이 헛갈릴 만큼만 약을 섞었다.
'완전히 없애면 안 돼요.'
아사엘이 눈을 크게 떴다.
'무슨 소리냐?'
'이 독은 길이에요. 검은 별의 명령이 지나가는 길. 전부 태우면 길이 끊어지지만, 우리도 어디로 이어지는지 몰라요. 하지만 조금만 중화하면…….'
미라는 떨리는 손으로 바닥에 선을 그렸다. 검은 피 한 방울, 거울 호수의 물 한 방울, 흰 뿌리 가루. 세 가지가 만나자 바닥에 작고 흐린 원이 생겼다.
그 순간 치료실 밖에서 비명이 들렸다.
수도원 묘지 쪽이었다.
죽은 수도사 셋이 일어나고 있었다. 유리섬에 묻힌 오래된 시신들이 검은 별의 부름을 듣고 몸을 세운 것이다. 선원들이 달려 나갔지만, 칼은 뼈를 부술 뿐 걸음을 멈추게 하지 못했다.
미라는 비틀거리며 문밖으로 나갔다.
'미라!'
칼리사가 침상에서 몸을 일으키려 했다. 미라는 돌아보지 않았다.
묘지의 달빛 아래, 망령들이 다가왔다. 그들의 눈구멍에는 작은 검은 별이 박혀 있었다. 선원들은 뒤로 밀렸다. 누구도 어린 약초사가 그 앞에 서리라 생각하지 못했다.
미라는 손바닥을 폈다.
'멈춰.'
망령들은 멈추지 않았다.
미라는 숨을 들이마시고, 자신 안의 독을 아주 조금 깨웠다. 심장이 얼음물에 잠기는 듯했다. 그녀는 그 독을 약과 섞었다. 죽음의 명령과 치유의 물, 땅의 가루가 한순간 몸 안에서 맞부딪쳤다.
고통이 너무 커서 미라는 소리조차 내지 못했다.
그러나 망령들의 걸음이 느려졌다.
검은 별의 빛이 흔들렸다. 망령 하나가 무릎을 꿇었다. 다른 하나가 창을 떨어뜨렸다. 세 번째는 하늘을 보다가, 오래된 이름을 기억한 듯 입을 벌렸다.
소리는 나오지 않았다.
그들은 먼지처럼 무너졌다.
선원들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칼리사도, 하룬도, 아사엘도 침묵했다.
미라는 무릎을 꿇었지만 쓰러지지 않았다. 그녀는 피 묻은 입술을 닦고 말했다.
'흑요새의 망령 군대도…… 약해질 수 있어요.'
해적 여왕의 깃발
새벽이 오기 전, 유리섬의 항구에 칼리사의 선원들이 모였다. 흰까마귀호를 비롯한 검은 돛의 배들이 안개 속에서 하나둘 모습을 드러냈다. 바람의 항구에서 숨어 있던 배, 암초 뒤에 몸을 낮춘 배, 칼리사의 이름 하나로 칼을 뽑는 무법자들의 배였다.
칼리사는 아직 제대로 걷지 못했다. 하지만 그녀는 남의 부축을 받지 않고 갑판 위에 섰다. 얼굴은 창백했고 어깨에는 붕대가 감겨 있었다. 그래도 그녀의 눈빛은 폭풍 전의 바다처럼 살아 있었다.
'나는 평생 빚을 싫어했다.'
그녀가 선원들을 향해 말했다.
'빚진 자는 고개를 숙이고, 고개 숙인 자는 칼을 늦게 뽑으니까. 그런데 오늘 나는 빚을 졌다. 금도 아니고 배도 아니고 목숨을.'
선원들의 시선이 미라에게 모였다.
미라는 작아지고 싶었다. 예전 같았으면 로반의 뒤에 숨거나, 리아의 농담을 기다렸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그녀의 손등에는 검은 선이 희미하게 남아 있었다. 그것은 저주였고, 동시에 지도가 되었다.
칼리사가 칼을 뽑아 자기 손바닥을 그었다.
'흰까마귀의 돛은 오늘부터 아렌의 원정대와 함께 간다. 왕의 금도, 검은 별의 공포도, 바다 밑 괴수의 협박도 내 배를 돌리지 못한다.'
하룬이 낮게 물었다.
'여왕님. 상대는 망령 군대입니다. 칼로 죽일 수 없는 적입니다.'
칼리사는 미라를 보았다.
'그래서 우리에게 치유사가 있다.'
미라는 고개를 들었다.
'치유사만으로는 안 돼요. 배마다 약이 필요해요. 흰 뿌리, 거울 호수의 물, 룬 가루. 그리고 독을 담을 그릇이 필요해요. 망령을 약하게 만들려면 독의 명령을 먼저 알아야 해요.'
'그릇?'
아사엘이 이미 답을 알고 있다는 듯 물었다.
미라는 자신의 가슴 위에 손을 얹었다.
'저요.'
칼리사의 표정이 굳었다.
'안 된다. 목숨을 구해 준 아이를 전쟁 도구로 쓸 만큼 나는 썩지 않았다.'
'저도 도구가 아니에요.'
미라의 목소리는 여전히 부드러웠다. 하지만 누구도 그것을 약하다고 느끼지 않았다.
'선택하는 거예요. 늘 누군가 저를 지켜 줬어요. 로반이 앞에 섰고, 아렌이 검을 뽑았고, 리아가 길을 열었어요. 저는 뒤에서 상처를 묶었죠. 그게 부끄럽지는 않아요. 하지만 이제 알아요. 뒤에 있는 사람도 전쟁의 방향을 바꿀 수 있어요.'
그녀는 항구에 모인 배들을 바라보았다.
'저는 군대를 죽이러 가는 게 아니에요. 죽음에 묶인 자들을 멈추게 하러 가요. 그리고 산 자들이 흑요새 앞에서 쓰러지지 않게 만들 거예요.'
그때 유리섬 동쪽 하늘에서 빛이 솟았다.
하나.
푸른 불빛.
둘.
붉은 불빛.
셋.
흰 불빛.
아렌이 보낸 세 불빛의 메시지였다. 별왕가의 피, 흑요새의 진실, 그리고 마지막 전쟁을 알리는 부름.
미라는 그 빛을 보며 눈을 감았다. 아렌이 혼자 죽으러 가지 않겠다고 말하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하지만 빛 뒤편, 더 먼 하늘에서 검은 별이 대답하듯 어두워졌다.
그리고 미라의 심장 속 독이 노래하기 시작했다.
낮고, 깊고, 수많은 죽은 입술이 함께 부르는 노래.
흑요새가 군대를 깨우고 있었다.
미라는 눈을 떴다.
'출항 준비를 해요.'
그녀가 말했다.
'그리고 모든 배에 병상보다 큰 약솥을 실으세요. 이번 전쟁에서 살아남을 사람의 수는 검의 숫자가 아니라, 우리가 얼마나 많은 독을 견디느냐로 결정될 거예요.'
칼리사는 천천히 웃었다. 해적 여왕은 자신의 검을 들어 올렸다. 검은 돛들이 새벽 바람을 먹고 부풀었다.
그날 유리섬의 사람들은 보았다.
한때 원정대의 가장 작은 아이였던 치유사가, 죽음의 독을 가슴에 품은 채 함대의 진로를 정하는 모습을.
그리고 바다 너머에서 어둠의 노래가 밀려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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