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막의 아침
밤이 지나도 사막은 식지 않았다.
모래는 달빛을 오래 품은 잿빛 재처럼 희미하게 빛났고, 멀리 검은 순례자들의 천막은 낮은 언덕 뒤에서 움직임을 멈춘 짐승처럼 엎드려 있었다. 아렌은 잠을 거의 이루지 못했다. 눈을 감으면 모래 밑 도서관의 글자가 떠올랐다.
왕관은 파괴할 수 없다.
별왕가의 피를 지닌 자가 왕관을 쓰면 문은 닫힌다.
그리고 왕관을 쓴 자는 문 안쪽에 남는다.
그 문장들은 칼날처럼 단순했다. 그래서 더 피할 곳이 없었다.
리아는 새벽부터 말이 없었다. 평소라면 물주머니의 양을 세며 투덜거렸을 것이다. 모래바람이 방향을 바꾸면 불길한 농담이라도 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녀는 말없이 짐을 묶고, 말없이 칼집을 확인하고, 말없이 아렌의 손에서 물주머니를 빼앗아 절반만 마시게 했다.
그 침묵이 아렌을 더 아프게 했다.
검은 순례자들도 달라져 있었다. 전날 밤까지 그들은 아렌을 손님으로 대했다. 길 잃은 자, 물을 함께 나눈 자, 아직 자기 이름의 무게를 모르는 젊은이로 보았다. 하지만 모래 밑 도서관에서 돌아온 뒤 그들의 눈빛은 변했다.
그들은 아렌을 피하지 않았다. 오히려 지나칠 때마다 고개를 숙였다. 그러나 그 예의에는 따뜻함이 없었다. 마치 살아 있는 사람에게가 아니라, 곧 제단에 오를 불씨에게 바치는 침묵 같았다.
아렌은 그 시선을 견디기 어려웠다.
"그만 봐도 됩니다."
그가 낮게 말하자, 가장 가까이 있던 젊은 순례자가 놀라 물러났다. 미안하다는 말도 하지 못하고 고개만 숙였다.
리아가 그 장면을 보았다. 하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 공백이 두 사람 사이에 또 하나의 벽을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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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마귀가 떨어뜨린 조각
해가 모래 언덕 끝에 걸렸을 때, 사하라가 찾아왔다.
검은 베일을 쓴 별읽는 자는 바람을 거슬러 걸었다. 그녀의 손에는 작은 금속 통이 들려 있었다. 통 겉면에는 낡은 까마귀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눈이 없는 까마귀. 왕의 귀이자 그림자였던 자들의 표식.
아렌은 그것을 보는 순간 목덜미가 굳었다.
"눈먼 까마귀."
사하라는 고개를 끄덕였다.
"밤사이에 동쪽 우물에 꽂혀 있었다. 너희를 따라온 것은 아니다. 너희보다 먼저 이곳을 알고 있던 자들이 남긴 것이다."
리아가 다가와 통을 낚아채듯 받아 들었다. 그녀는 봉인을 살폈고, 짧게 숨을 들이켰다.
"진짜야. 오래된 암호 봉인. 세리온이 쓰던 방식과 같아."
아렌은 세리온의 이름에 가슴 한쪽이 무너지는 것을 느꼈다. 바람의 노래로 추격자들을 속이고 홀로 남았던 노래꾼. 거짓말을 너무 많이 해서 진실을 말해도 믿기 어려웠던 사람. 하지만 마지막 순간에는 그 거짓으로 일행을 살린 사람.
리아가 봉인을 열었다. 안에는 얇은 은박 조각이 말려 있었다. 글자는 열을 받자 서서히 떠올랐다.
리아는 읽다가 멈췄다.
"뭐라고 적혀 있어?" 아렌이 물었다.
리아는 대답하지 않았다.
아렌은 그녀의 손에서 은박을 받아 들었다. 글자는 짧았다.
흑요새는 감옥이 아니다. 첫 균열 위에 세운 못이다. 모르가스는 파편을 모으는 자를 기다린다. 마룬 베라스와 로반 칼드는 미끼가 아니라 열쇠다. 그들의 이름으로 문을 흔들 것이다. 왕관을 쓰게 만들지 마라. 왕관을 쓰지 못하게도 하지 마라. 선택이 오기 전, 진실을 모두에게 말하라.
마지막 줄 아래에는 더 흐린 글씨가 있었다.
세리온은 아직 노래하고 있다. 오래 버티지는 못한다.
아렌은 은박을 쥔 손에 힘을 주었다. 금속이 접히며 작은 소리를 냈다.
흑요새가 감옥이 아니라 균열 위의 못이라면, 그곳은 적의 본거지일 뿐 아니라 세계의 상처였다. 마룬과 로반은 단순한 포로가 아니었다. 그들의 이름, 그들의 기억, 그들이 아렌에게 남긴 죄책감까지 모두 계산된 장치였다.
모르가스는 아렌이 구하러 오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아렌이 침묵하리라는 것도 알고 있었을지 모른다.
말하지 않은 자의 죄
아렌은 천막 뒤의 낮은 바위까지 걸어갔다. 사막의 바람이 망토 끝을 잡아당겼다. 그는 멀리 동쪽을 보았다. 아직 보이지 않는 흑요새 쪽 하늘은 낮인데도 어두웠다. 검은 별은 그 위에 희미한 상처처럼 떠 있었다.
그는 자신이 두려워하는 것이 죽음만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마룬을 다시 잃는 것.
로반이 자신 때문에 무너지는 것.
미라와 칼리사, 세리온이 돌아왔을 때 이미 모든 것이 끝나 있는 것.
그리고 리아가 자신을 더는 믿지 않게 되는 것.
그중 마지막이 이상하게도 가장 가까이 아팠다.
"혼자 생각한다고 답이 생겨?"
리아의 목소리였다.
아렌은 돌아보지 않았다.
"네가 말하지 않아서."
"내가 말하면 넌 화낼 거잖아."
"이미 화났어."
리아가 그의 옆에 섰다. 그녀의 얼굴은 피곤했고, 눈 밑에는 잠을 못 잔 흔적이 있었다. 그러나 시선만은 도망치지 않았다.
"너는 도서관에서 들은 걸 나한테만 말했어. 그건 신뢰처럼 보였지. 처음엔 나도 그렇게 생각했어. 그런데 밤새 생각해 보니 아니더라."
아렌은 입술을 다물었다.
리아는 낮게 말했다.
"넌 나를 공범으로 만든 거야. 네가 왕관을 쓰고 사라지겠다고 마음먹으면, 내가 그 비밀을 지켜 준 사람이 되는 거니까."
그 말은 정직했고, 그래서 피할 수 없었다.
아렌은 반박하려 했다. 아직 그런 결정을 내린 적 없다고. 모두를 살릴 방법을 찾겠다고. 리아에게 약속했다고.
하지만 그 말들은 목 안에서 부서졌다.
그는 정말로 방법을 찾으려 했다. 동시에 마음 한구석에서는 이미 가장 쉬운 결론을 만지고 있었다. 내가 사라지면 끝난다. 내가 문 안쪽에 남으면 모두가 산다. 그 생각은 희생처럼 보였지만, 어쩌면 도망이었다.
살아남은 사람들에게 설명하고, 분노를 견디고, 다른 길을 함께 찾아야 하는 고통에서 도망치는 것.
"미안해."
아렌이 말했다.
리아는 웃지 않았다.
"미안하다는 말로는 부족해."
"알아."
"정말 알아?"
아렌은 그녀를 보았다. 리아의 손은 허리춤의 낡은 접이칼 근처에 있었다. 그녀가 전날 그에게 맡겼던 칼. 도망칠 수 있는 길을 버리겠다는 뜻으로 내밀었던 것. 그런데 지금 그녀는 빈 칼집을 더듬고 있었다. 맡긴 신뢰가 아직 돌아오지 않았는지 확인하는 사람처럼.
아렌은 품속에서 접이칼을 꺼냈다. 그리고 손잡이를 리아 쪽으로 내밀었다.
리아의 눈빛이 흔들렸다.
"돌려주는 거야?"
"아니."
아렌은 칼을 그녀의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자기 손으로 그 위를 덮었다.
"같이 쥐자는 거야. 네가 날 막아야 할 때가 오면, 망설이지 마. 하지만 그전에 내가 먼저 말할게. 모두에게."
리아는 오래도록 대답하지 않았다.
바람이 둘 사이를 지나갔다. 예전 같으면 그녀는 농담으로 어색함을 잘랐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러지 않았다.
"모두에게 말하면," 리아가 천천히 말했다. "누군가는 널 흑요새에 보내지 않으려 할 거야."
"그래도 말해야 해."
"누군가는 널 왕관 가까이에 두는 것 자체를 두려워할 거고."
"그럴 권리가 있어."
"누군가는 널 이용하려 들 거야. 모르칸처럼, 눈먼 까마귀처럼, 어쩌면 순례자들처럼."
아렌은 사하라가 있는 천막 쪽을 보았다. 순례자들은 선하지도 악하지도 않았다. 그들은 균형을 믿었다. 균형이라는 말은 때로 사람 하나의 삶보다 더 차가웠다.
"그래도 침묵하면," 아렌이 말했다. "모르가스가 우리 대신 이야기를 정할 거야."
리아는 그제야 손을 빼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그럼 도망치지 마. 죽는 쪽으로도, 왕이 되는 쪽으로도."
"약속할게."
"아렌."
그가 돌아보았다.
리아는 처음으로 그의 진짜 이름을 부르지 않았다. 아르엔 발라티르가 아니라, 가시울 대장간에서 불리던 이름. 망치질을 배우던 아이의 이름. 마룬이 불렀을 이름.
"약속은 살아 있는 사람이 지키는 거야."
그 말에 아렌은 대답하지 못했다.
균열을 향한 길
그날 낮, 사하라는 흑요새로 가는 세 갈래 길을 모래 위에 그렸다.
첫째는 북쪽 협곡길. 빠르지만 검은 기사단의 눈이 많았다.
둘째는 마른 강바닥. 물은 없지만 오래된 드워프의 배수로와 이어져 있었다.
셋째는 별그늘길. 순례자들만 아는 밤의 길이었다. 별이 보일 때만 열리고, 검은 별이 강해질수록 더 자주 사라지는 길.
"너희는 셋째 길을 원하겠지." 사하라가 말했다.
리아가 즉시 대답했다.
"당연하지. 적게 들키는 길."
사하라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 길은 들키지 않는 길이 아니다. 선택을 미루는 길이다. 흑요새 앞까지 데려다줄 수는 있지만, 그곳에 도착한 순간 너희가 누구인지 스스로 말해야 한다. 별그늘길은 거짓 이름을 오래 품지 못한다."
아렌은 모래 위의 세 줄을 바라보았다.
거짓 이름.
그는 평생 아렌으로 살았다. 그것이 거짓이라고 생각한 적은 없었다. 아르엔 발라티르라는 이름이 나타난 뒤에도, 그는 그 이름을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이지 못했다. 하지만 이제 알았다. 문제는 어떤 이름이 진짜냐가 아니었다.
어떤 이름 뒤에 숨느냐였다.
가시울의 아렌 뒤에 숨으면 왕관의 책임을 피할 수 있었다.
아르엔 발라티르 뒤에 숨으면 한 사람의 두려움과 욕망을 지울 수 있었다.
둘 다 도망이었다.
"별그늘길로 가겠습니다."
아렌이 말했다.
리아가 그를 보았다. 사하라도 그를 보았다.
아렌은 품속에서 은박 메시지를 꺼냈다. 그리고 더 이상 접지 않았다.
"하지만 그 전에 할 일이 있습니다."
그는 사하라에게 물었다.
"순례자들의 불은 멀리 있는 사람에게도 보입니까?"
"보이게 만들 수는 있다. 누구에게 보내려 하느냐?"
아렌은 잠시 눈을 감았다.
유리섬에 남은 미라. 별문독과 싸우는 칼리사. 추격자들을 속이며 아직 노래하고 있을 세리온. 흑요새에 끌려간 로반. 검은 사슬에 묶인 마룬.
그리고 아직 자신을 모르는 모든 사람들.
"동료들에게."
리아가 낮게 숨을 삼켰다.
아렌은 말을 이었다.
"내가 무엇을 알게 되었는지, 왕관이 무엇을 요구하는지, 흑요새가 어떤 곳인지 모두 전하겠습니다. 나를 막고 싶다면 막으러 오라고. 함께 다른 길을 찾겠다면 흑요새의 문턱에서 만나자고."
사하라의 표정은 베일 뒤에 가려져 있었다. 그러나 목소리에는 처음으로 희미한 온기가 섞였다.
"침묵을 끝내는 자는 길을 잃을 수 있다. 하지만 침묵 속에 남는 자는 이미 길을 잃은 것이다."
아렌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날 해가 저물 무렵, 검은 순례자들은 세 개의 불을 피웠다. 하나는 흰빛, 하나는 붉은빛, 하나는 유리처럼 투명한 빛이었다. 아렌은 그 앞에 섰다. 파편들이 품속에서 조용히 울었다. 엘루마르는 등에 묶인 채 낮은 노래를 냈지만, 그는 검을 뽑지 않았다.
리아가 그의 곁에 섰다. 손에는 낡은 접이칼이 있었다. 칼끝은 아렌을 향하지도, 바깥을 향하지도 않았다. 아직 정해지지 않은 선택처럼 아래를 향하고 있었다.
아렌은 불빛을 바라보며 처음으로 자신의 두 이름을 함께 말했다.
"나는 가시울의 아렌이고, 별왕가의 피를 이은 아르엔 발라티르다."
불길이 높아졌다.
"나는 왕관을 쓰기 위해 가지 않는다. 죽기 위해서도 가지 않는다. 마룬 베라스와 로반 칼드를 구하고, 별문을 닫을 다른 길을 찾기 위해 흑요새로 간다."
검은 별이 하늘에서 희미하게 흔들렸다.
아렌은 두려움을 느꼈다. 그러나 이번에는 그 두려움을 숨기지 않았다.
"내가 거짓말을 하면 나를 막아라. 내가 혼자 희생을 선택하려 하면 나를 끌어내라. 내가 왕이 되려 하면 내 이름을 불러라."
마지막 말이 끝나자, 세 불길은 한 줄기 빛이 되어 동쪽 하늘로 뻗었다. 빛은 검은 별 아래에서 잠시 꺾였지만 사라지지 않았다. 가늘고 끈질기게, 보이지 않는 길들을 향해 퍼져 나갔다.
그때 모래 언덕 너머에서 낮은 울림이 들렸다.
처음에는 천둥 같았다. 곧 그것이 문이 열리는 소리라는 것을 모두가 알았다. 아주 먼 곳, 흑요새가 있는 방향에서 검은 선 하나가 하늘과 땅 사이에 그어졌다.
균열이었다.
아렌은 그 선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더는 뒤로 물러서지 않았다.
"가자."
리아가 물었다.
"어디까지?"
아렌은 동쪽을 향해 첫걸음을 내디뎠다.
"문턱까지. 그리고 그 너머에서, 모르가스에게 직접 묻겠어. 그가 우리에게서 무엇을 빼앗아 갔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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