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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mmary

이름이 불러온 밤

거울 호수는 아렌의 진짜 이름을 삼킨 뒤에도 오래 흔들렸다.

아르엔 발라티르.

그 이름은 물 위에 남은 파문처럼 수도원 전체로 번졌다. 유리 기둥마다 희미한 별빛이 어른거렸고, 천장에 매달린 투명한 종들이 바람도 없이 울었다. 종소리는 맑지 않았다. 누군가 먼 곳에서 쇠사슬을 끌며 웃는 소리 같았다.

아렌은 손바닥을 내려다보았다. 거울 호수에서 얻은 유리 파편은 살갗 아래 심장이 하나 더 생긴 것처럼 뛰고 있었다. 품속의 별빛 조각과 붉은 산에서 얻은 차가운 파편도 동시에 떨렸다. 세 파편은 서로를 알아보았고, 이제 아렌의 이름까지 알아보았다.

기록관 아사엘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이름은 문패가 아닙니다. 오래된 마법에서는 문고리입니다. 누군가 그 이름을 정확히 부르면, 닫힌 문도 흔들립니다."

리아가 낮게 욕설을 삼켰다.

"그 누군가가 검은 별이라면?"

아사엘은 대답하지 못했다. 대신 수도원 바깥, 달빛이 깔린 해변 쪽을 바라보았다. 안개가 물러나고 있었다. 유리섬은 달빛이 비출 때만 세상에 드러난다. 하지만 그 밤, 섬을 찾아온 것은 달빛만이 아니었다.

바다 위에 검은 배들이 나타났다.

돛은 없었다. 노 젓는 소리도 없었다. 배들은 물 위를 미끄러지듯 다가왔다. 선수마다 부서진 별과 가시관의 문장이 걸려 있었다. 그 문장은 피처럼 젖어 있었고, 바람이 불 때마다 검은 재를 흩뿌렸다.

칼리사가 허리에 찬 곡도를 뽑았다. 해적 여왕의 웃음은 날카로웠지만, 눈빛은 웃지 않았다.

"내 항로를 따라온 놈들이 아니야. 네 이름을 따라온 거다, 꼬마 왕."

아렌은 엘루마르의 손잡이를 움켜쥐었다. 검은 칼집 안에서 조용히 노래했다. 노래는 달콤했고, 그래서 더 두려웠다.

갈라지는 원정대AI 생성 이미지

검은 기사단의 대장

첫 번째 검은 배가 유리 해변에 닿았다.

기사들이 내렸다. 그들의 장화가 모래를 밟을 때마다 모래가 검게 죽었다. 수도원의 투명한 벽에는 그들의 모습이 수십 개로 비쳤다. 마치 하나의 군대가 아니라 끝없이 복제된 악몽이 섬을 포위하는 듯했다.

가장 마지막에 내린 자는 다른 기사들보다 머리 하나는 더 컸다. 검은 갑옷 위에는 낡은 흰 망토를 걸쳤고, 투구의 이마에는 깨진 왕관 조각처럼 솟은 쇠뿔이 박혀 있었다. 그의 왼손 장갑에는 비어 있는 홈 세 개가 있었다. 꼭 파편을 끼우기 위해 만들어진 자리 같았다.

그가 투구를 벗었다.

짧게 깎은 회색 머리, 불에 그을린 얼굴, 그리고 죽은 사람처럼 차분한 눈.

로반이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상처가 아직 아물지 않은 몸이었지만, 검을 든 자세만큼은 무너지지 않았다.

"모르칸."

검은 기사단의 대장은 로반을 알아보고 희미하게 웃었다.

"성문을 열었던 기사. 아직도 살아 있었군."

로반의 손등에 힘줄이 돋았다.

모르칸은 곧장 아렌을 보았다.

"아르엔 발라티르. 네가 지닌 세 파편을 내놓아라. 별빛 조각, 산의 붉은 이빨, 거울 호수의 유리 조각. 그것들은 아이의 주머니에 있어서는 안 된다."

"당신 손에는 있어도 되고?" 아렌이 물었다.

모르칸의 눈에 처음으로 감정이 스쳤다. 분노가 아니었다. 지친 확신이었다.

"갈라진 손들이 세상을 구한다고 믿는가? 인간, 엘라닌, 드워프, 해적, 배신자, 도망자. 너희는 서로를 믿지 못한다. 별문은 그런 틈으로 열린다. 왕관은 하나의 의지로 닫아야 한다."

"모르가스의 의지로?"

"혼돈보다 낫다면."

그 말이 끝나자 검은 기사들이 동시에 검을 뽑았다. 수도원의 유리벽에 검은 칼날 수백 개가 번쩍였다.

아렌은 그 순간 깨달았다. 모르칸은 단순한 약탈자가 아니었다. 그는 자신이 세상을 구한다고 믿고 있었다. 그래서 더 위험했다. 망설임 없는 악보다, 신념을 가진 폭력이 더 깊이 베었다.

유리 계단의 전투

전투는 종소리와 함께 터졌다.

유리섬의 수도사들은 무기를 들지 않았다. 대신 거울을 들고 섰다. 그들이 거울을 기울일 때마다 달빛이 갈라져 검은 기사들의 눈을 찔렀다. 칼리사의 해적들은 그 틈을 파고들었다. 곡도와 갈고리, 짧은 창이 유리 계단 위에서 번개처럼 오갔다.

리아는 난간을 타고 뛰었다. 그녀는 싸움보다 틈을 잘 보았다. 검은 기사의 허리띠에서 열쇠를 빼내고, 다른 손으로 단검을 던져 아렌을 겨눈 쇠뇌수를 쓰러뜨렸다.

"넋 놓지 마, 왕자님!"

"그렇게 부르지 말랬지!"

아렌은 엘루마르를 뽑았다.

검이 칼집을 벗어나는 순간, 세상의 소리가 한 박자 늦어졌다. 검은 별빛으로 노래했고, 그 노래는 아렌의 피를 타고 올라왔다. 그는 모르칸이 던진 그림자 창을 베었다. 창은 연기처럼 갈라졌지만, 대가는 즉시 찾아왔다.

마룬의 웃음소리 하나가 사라졌다.

아렌은 그것이 무엇이었는지 알았다. 대장간에서 처음 망치를 제대로 들었을 때, 마룬이 크게 웃어 주던 기억. 아직 장면은 남아 있었다. 불빛, 쇠 냄새, 투박한 손. 하지만 웃음소리만 비어 있었다. 누군가 기억 속에서 가장 따뜻한 부분만 도려낸 것 같았다.

분노가 아렌의 목을 태웠다.

그는 검을 다시 휘둘렀다. 유리 계단을 타고 검은 균열이 번졌고, 기사 셋이 아래로 굴러떨어졌다. 그러나 모르칸은 물러서지 않았다. 그는 아렌의 공격을 정면으로 받아 냈다. 그의 검은 엘루마르와 부딪칠 때마다 낮게 울었다. 마치 오래전부터 이 검을 기다렸다는 듯이.

"너는 아직 왕관을 들 그릇이 아니다." 모르칸이 말했다.

"나도 들 생각 없어."

"그러니 빼앗긴다."

모르칸의 장갑이 번개처럼 아렌의 품을 파고들었다. 별빛 조각이 밖으로 끌려 나왔다. 장갑의 첫 번째 홈이 흰빛으로 타올랐다.

그때 리아가 모르칸의 팔 아래로 미끄러져 들어왔다. 그녀의 단검이 장갑 끈을 끊었다. 별빛 조각은 허공에 튀었고, 아렌은 몸을 던져 그것을 붙잡았다.

하지만 그 틈에 검은 기사들이 뒤쪽 회랑을 뚫었다. 부상당한 로반이 홀로 그 길을 막았다.

"로반!" 미라가 외쳤다.

로반은 돌아보지 않았다.

"동쪽으로 가라!"

그는 유리문을 닫아 걸었다. 문 너머에서 검은 기사들이 몰려들었다. 로반은 상처 입은 몸으로도 세 번을 버텼다. 네 번째 검을 막을 때 무릎이 꺾였다. 모르칸이 직접 다가가 그의 목에 검은 사슬을 걸었다.

"너는 또 문을 열었군." 모르칸이 말했다. "이번에는 우리를 위해."

로반은 피 묻은 입술로 웃었다.

"아니. 이번에는 닫았다."

유리문이 무너졌다. 검은 기사들이 로반을 끌고 갔다. 아렌이 달려가려 했지만, 미라와 리아가 동시에 그를 붙잡았다.

로반은 마지막으로 고개를 들었다.

"살아라, 아렌. 왕이 되든 아니든, 살아서 선택해라."

그 말이 검은 배의 안개 속으로 사라졌다.

독을 삼킨 선택

후퇴는 승리가 아니었다. 그것은 무너지는 것을 조금 늦추는 일이었다.

수도원 뒤편 선착장까지 밀려난 일행은 피와 바닷물 속에서 다시 포위되었다. 칼리사는 해적 셋을 잃고도 웃으며 싸웠다. 그녀의 곡도는 검은 기사의 목덜미를 베고, 돌아오는 길에 다른 자의 손목을 끊었다.

그러나 모르칸의 부관이 쏜 가느다란 화살 하나가 그녀의 옆구리에 박혔다.

칼리사는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뽑아 던졌다. 다음 순간, 그녀의 입술이 검푸르게 변했다. 피부 아래로 검은 실 같은 핏줄이 번졌다.

미라가 달려가 상처를 눌렀다. 냄새를 맡은 순간 그녀의 얼굴이 굳었다.

"별문독이야."

리아의 표정이 흔들렸다.

"고칠 수 있지?"

"움직이면 죽어. 해독하려면 유리섬의 흰 뿌리와 거울 호수의 물이 필요해. 몇 시간도 아니야. 며칠은 붙잡고 있어야 해."

아렌은 말문이 막혔다. 미라는 그의 눈을 보지 않았다. 보지 않으려는 것이 아니라, 이미 결정했기 때문이었다.

"나는 남을게."

"미라, 안 돼."

"누군가는 살려야 해. 칼리사가 죽으면 배도, 항로도, 우리 뒤를 막아 줄 사람도 사라져. 그리고……" 미라는 잠시 리아를 보았다. "리아에게 아직 잃지 않아도 되는 사람이야."

리아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칼리사는 독에 잠긴 숨으로 웃었다.

"울지 마라, 새끼 까마귀. 난 아직 네 빚을 다 받아 내지 못했다."

미라는 작은 약가방을 열었다. 손이 떨렸지만 눈빛은 흔들리지 않았다.

"난 늘 따라가기만 했어. 뒤처지면 버려질까 봐. 그런데 이제 알아. 남는 것도 도망이 아닐 수 있어."

아렌은 그녀에게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고맙다는 말은 너무 작고, 가지 말라는 말은 너무 이기적이었다.

미라는 대신 먼저 말했다.

"마지막 파편을 찾아. 내가 살린 사람들을 헛되게 만들지 마."

어둠을 입은 노래

검은 배들은 아직 물러서지 않았다. 모르칸은 로반을 사로잡았지만, 파편을 얻지 못했다. 그는 섬을 태울 생각이었다. 수도원 위로 검은 불화살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유리 지붕은 불타지 않았지만, 안쪽의 그림자는 타올랐다.

세리온이 선착장 끝에 섰다.

그의 그림자에는 아직도 희미한 검은 왕관 문양이 남아 있었다. 거울 호수의 심판 뒤 흐려졌지만 사라지지 않은 낙인. 그 문양이 불빛을 받아 다시 진해졌다.

아렌은 불길한 예감을 느꼈다.

"세리온, 하지 마."

세리온은 웃었다. 예전처럼 가볍게 웃으려 했지만 실패했다.

"이번에는 거짓말하지 않으마. 내가 하려는 건 나쁜 짓이다."

그는 류트를 꺼내지 않았다. 대신 자신의 손목을 작은 칼로 그었다. 피가 바닥에 떨어지자 바람이 멈췄다. 안개가 피 냄새를 맡은 짐승처럼 몰려왔다.

세리온은 노래가 아닌 말을 읊었다. 바엘란에게서 배운 금지된 길의 주문. 바람을 부르는 노래가 아니라, 추격자의 눈에 거짓 길을 심는 어둠의 마법이었다.

검은 안개 속에서 아렌의 모습이 열 개, 스무 개로 갈라졌다. 각각의 환영은 파편의 빛까지 흉내 냈다. 검은 기사들이 혼란에 빠졌다. 배들이 서로 다른 방향으로 고개를 틀었다.

하지만 대가는 세리온에게 왔다.

그의 그림자가 발밑에서 떨어져 나와 몸을 기어올랐다. 검은 왕관 문양이 손목, 목, 턱까지 번졌다. 한쪽 눈동자가 밤처럼 새까맣게 변했다.

리아가 그에게 달려가려 했다.

세리온이 손을 들어 막았다.

"오지 마. 지금의 나는 길잡이가 아니라 미끼다."

"우릴 또 속이겠다는 거야?" 아렌이 이를 악물었다.

"그래. 하지만 이번 거짓말은 너희를 살릴 거다."

세리온은 검은 안개 속으로 한 걸음 물러섰다.

"모르칸은 내가 파편의 그림자를 훔쳤다고 믿을 거다. 한동안은 나를 쫓겠지. 내가 버틸 수 있는 만큼."

"같이 가면 돼."

"아니. 내 안에 문이 열리고 있다. 내가 잠든 사이 너희 이름을 부르게 될지도 모른다. 아렌, 네 진짜 이름을 이미 어둠이 맛보았다. 두 번은 안 된다."

아렌은 그를 붙잡고 싶었다. 배신자를 용서하지 못한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막상 그가 떠나려 하자, 분노보다 먼저 두려움이 왔다. 또 한 사람을 잃는 두려움.

세리온은 마지막으로 고개를 숙였다.

"마룬을 만나면 전해라. 이번에는 명령을 조금 늦게 어겼다고."

안개가 그를 삼켰다. 곧 검은 기사들의 함성이 다른 방향으로 멀어졌다. 세리온의 금지 마법이 성공한 것이다.

그러나 아렌은 보았다. 안개 속에서 세리온이 걸어간 방향 위로 검은 별이 잠시 더 밝아지는 것을.

그 빛은 사냥꾼의 눈빛이었다.

둘만 남은 길

새벽이 오기 전, 유리섬은 다시 바다의 비밀 속으로 가라앉기 시작했다.

수도원의 절반은 깨졌고, 선착장에는 부서진 배 조각이 떠다녔다. 로반은 검은 배에 실려 사라졌다. 미라는 칼리사의 곁에서 독과 싸우기 위해 남았다. 세리온은 어둠을 끌고 다른 길로 떠났다.

원정대는 더 이상 원정대가 아니었다.

아렌은 젖은 돌계단에 앉아 세 파편을 앞에 놓았다. 별빛 조각, 붉은 파편, 유리 파편. 세 빛은 서로 다른 색으로 뛰다가 천천히 한 방향을 가리켰다.

동쪽.

바다 너머, 비가 죽고 모래가 기억을 묻는 땅. 수도원의 오래된 지도에서 그곳은 이름 없는 사막으로 표시되어 있었다. 아사엘은 마지막으로 남은 기록 조각을 건네며 말했다.

"마지막 파편은 모래 밑의 기록이 가리킬 것입니다. 그러나 그곳에서는 길이 사람을 고르는 것이 아니라, 갈증이 사람의 진실을 고릅니다."

리아가 작은 배에 식수 가죽부대를 던져 넣었다. 그녀는 아무 말 없이 노를 점검했다.

아렌이 물었다.

"너는 남아도 돼. 칼리사 곁에 있어도 돼."

리아는 한참 동안 대답하지 않았다. 그러다 고개를 들어 아렌을 보았다. 눈가가 붉었지만, 목소리는 단단했다.

"예전의 나였다면 남았을 거야. 아니, 도망쳤겠지. 둘 다 같은 말이었으니까."

그녀는 배에 올라탔다.

"하지만 이제는 알아. 내가 정말 무서워하는 길은 혼자 사는 길이 아니야. 누군가를 믿고 끝까지 가는 길이지."

아렌은 엘루마르를 등에 메고 배에 올랐다. 검은 조용했다. 너무 조용해서 더 불길했다.

작은 배가 유리섬을 떠났다. 뒤편에서는 미라가 수도원 문 앞에 서 있었다. 그녀는 한 손으로 약가방을 꼭 쥐고, 다른 손을 들어 작게 흔들었다. 그 옆에서 칼리사는 의식이 없는 채 누워 있었고, 깨진 유리벽에는 새벽빛이 피처럼 번졌다.

아렌은 끝까지 돌아보았다.

로반의 빈자리. 미라의 작은 손. 세리온이 사라진 안개. 마룬의 잃어버린 웃음소리.

모든 것이 파편처럼 가슴에 박혔다.

리아가 노를 저었다. 바다는 조용했지만, 동쪽 하늘은 이미 모래빛으로 흐려지고 있었다. 밤과 새벽 사이, 가장 어두운 틈에서 검은 별이 아직도 그들을 따라오고 있었다.

그리고 해가 떠오를 무렵, 두 사람은 먼 동쪽 해안선을 보았다.

황금빛 사막의 입구.

그 모래 언덕 위에 검은 옷을 입은 사람들이 서 있었다. 얼굴은 베일로 가렸고, 손에는 길고 굽은 검을 들고 있었다. 그들은 마치 오래전부터 아렌과 리아가 오기를 기다린 사람들처럼 움직이지 않았다.

그중 가장 앞선 자가 모래 위에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아렌의 진짜 이름을 불렀다.

"아르엔 발라티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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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별의 왕관: 부서진 왕국의 새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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