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 위에 열린 법정
검은 호수는 수도원의 안쪽 뜰 한가운데 있었다.
물이라고 부르기 어려웠다. 그것은 밤을 갈아 만든 거울 같았다. 달빛이 닿자 표면 아래로 별들이 떠올랐고, 별들 사이에 오래된 계단이 하나씩 모습을 드러냈다. 계단은 아래로 내려갔다. 호수 밑으로. 숨을 쉬는 어둠 속으로.
기록관 아사엘은 지팡이를 짚고 그 앞에 섰다.
"여기서부터는 칼도, 거짓말도 오래 버티지 못합니다."
리아가 짧게 웃었다.
"그럼 우리 중 반은 바로 죽겠네."
아무도 웃지 않았다.
세리온의 그림자에는 아직도 검은 왕관의 문양이 남아 있었다. 불빛을 비추면 사라졌다가, 달빛이 닿으면 다시 떠올랐다. 마치 누군가 그의 발밑에 왕관을 씌워 둔 것처럼.
검은 별의 목소리가 호수 위로 번졌다.
네가 용서한 자부터 심판하겠다.
그 순간 세리온의 그림자가 벌떡 일어났다.
그것은 더 이상 그림자가 아니었다. 검은 물로 빚은 또 하나의 세리온이었다. 젊고, 날카롭고, 두려움이 없는 얼굴. 손에는 오래된 까마귀 문장이 찍힌 편지가 들려 있었다.
"너는 언제나 노래 뒤에 숨었지."
그림자 세리온이 말했다.
"바엘란이 아이들의 이름을 요구했을 때도, 모르가스가 왕관의 길을 물었을 때도, 너는 직접 죽이지 않았다고 믿었다. 편지만 옮겼으니까. 문만 열었으니까. 노래만 불렀으니까."
세리온은 입술을 깨물었다. 그의 손이 떨렸다.
아렌은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그만해."
아사엘이 낮게 말했다.
"막지 마십시오. 거울 호수는 죄를 벌하지 않습니다. 거짓을 벌합니다."
"그럼 왜 그를 죽이려 하지?"
"아직도 거짓말을 하고 있으니까요."
세리온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는 그림자에게 소리쳤다.
"그래, 나는 무서웠다! 나는 살아남고 싶었다! 스승을 거역할 용기가 없었다! 내가 옮긴 편지 때문에 사람들이 죽었다는 걸 알면서도, 다음 편지를 또 들고 달렸다!"
호수가 크게 흔들렸다.
검은 물이 세리온의 발목을 붙잡았다. 그는 비틀거리며 끌려갔다. 미라가 달려들어 그의 팔을 잡았고, 로반은 아직 회복되지 않은 몸으로 검집을 땅에 박아 버텼다.
그러나 물은 더 강했다.
아렌은 망설이지 않았다. 그는 엘루마르의 손잡이를 잡았다. 검이 등에서 낮게 노래했다. 뽑으라고. 베라고. 대가를 치르라고.
그때 미라가 외쳤다.
"아렌, 안 돼! 네 숨이 아직 돌아오지 않았어!"
아렌은 이를 악물고 검에서 손을 뗐다.
그리고 그대로 호수 속으로 뛰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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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관을 원하는 마음
물은 차갑지 않았다.
오히려 따뜻했다. 대장간의 화덕처럼. 가시울 마을의 겨울밤, 마룬이 아렌의 얼어붙은 손을 감싸 주던 그 온기처럼.
아렌은 눈을 떴다.
그는 왕좌의 방에 서 있었다.
천장은 별빛으로 가득했고, 기둥마다 은빛 깃발이 걸려 있었다. 부서진 왕국의 문장들이 하나로 꿰매져 있었다. 드워프의 망치, 엘라닌의 사슴, 인간 왕가의 별, 바다 위의 흰 까마귀. 모두 한 깃발 아래 있었다.
그리고 그 끝에 왕좌가 있었다.
왕좌에는 검은 별의 왕관이 놓여 있었다.
아렌은 숨을 삼켰다.
왕관은 생각보다 아름다웠다. 가시처럼 날카로운 테가 있었지만, 그 사이사이로 별빛이 흘렀다. 파괴의 물건이 아니라 상처를 묶는 금속처럼 보였다. 세상을 찢어 놓은 모든 비명을 한곳에 모아 잠재울 수 있을 것 같았다.
"앉아라."
마룬의 목소리였다.
아렌이 돌아섰다.
마룬 베라스가 서 있었다. 검은 사슬도 없고, 피도 없었다. 대장간 앞치마를 두른 채였다. 얼굴에는 오래된 피로 대신 평온한 미소가 있었다.
"네가 왕이 되면 끝난다, 아렌. 더는 도망치지 않아도 된다. 가시울도 다시 세울 수 있다. 죽은 자의 이름도 되찾을 수 있다."
아렌의 가슴이 흔들렸다.
왕좌 아래에는 검은 기사들이 무릎 꿇고 있었다. 그들의 투구는 벗겨져 있었다. 그들은 더 이상 공포가 아니었다. 떨고 있었다.
그중 한 명이 고개를 들었다. 가시울에서 마룬을 향해 칼을 뽑았던 우두머리였다.
아렌의 손이 저절로 주먹을 쥐었다.
죽이고 싶었다.
그 마음은 너무 선명해서 부정할 수 없었다. 불타는 대장간, 무너진 집, 재 속에 묻힌 이웃들, 도망치던 밤의 숨소리. 그 모든 것이 한순간 칼날이 되어 그의 안에서 일어섰다.
왕관을 쓰면 할 수 있었다.
명령 한마디면 검은 기사단은 서로의 목을 벨 것이다. 모르가스를 따르던 자들은 자기 죄의 무게에 짓눌릴 것이다. 왕국은 아렌의 이름을 부를 것이다. 더는 아무도 그를 쫓지 못할 것이다.
그때 또 다른 목소리가 들렸다.
"너는 영웅이 되고 싶지 않다고 말했지."
이번에는 아렌 자신의 목소리였다.
왕좌 옆에 또 하나의 아렌이 서 있었다. 은빛 머리카락이 어깨까지 내려오고, 눈에는 별빛이 고여 있었다. 그는 왕관을 들어 올리며 웃었다.
"거짓말이야. 너는 사람들이 너를 바라보길 원한다. 네가 도망자가 아니라 구원자였다고 말해 주길 원한다. 마룬이 너를 숨긴 것이 헛되지 않았다고, 네 고통이 의미 있었다고, 모두가 네 앞에 무릎 꿇고 인정하길 원한다."
아렌은 대답하지 못했다.
그 말이 틀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영웅이 되고 싶지 않다고 말해 왔다. 왕도, 예언의 아이도 싫다고 했다. 하지만 누군가를 구할 때마다 마음 깊은 곳에서 작은 불꽃이 일어났다. 내가 해냈다. 그 불꽃은 따뜻했고, 위험했다.
그는 복수하고 싶었다.
그는 인정받고 싶었다.
그는 왕관의 힘을 원했다.
호수의 물이 그의 발목을 감쌌다. 왕좌의 방 바닥이 검은 물로 변했다. 물은 천천히 무릎까지 차올랐다.
"부정하면 가라앉는다."
왕관을 든 아렌이 속삭였다.
"인정하고 쓰면 살아남는다."
리아가 내놓은 거짓
호수 밖에서는 싸움이 벌어지고 있었다.
아렌의 몸은 검은 물 위에 떠 있었다. 눈은 뜨고 있었지만 아무것도 보지 못했다. 세리온은 반쯤 물에 잠긴 채 숨을 헐떡였고, 검은 그림자들은 수도원의 기둥마다 솟아나 일행을 둘러쌌다.
로반은 한쪽 무릎을 꿇은 채 방패로 그림자의 칼을 막았다. 상처가 다시 터져 붕대가 붉게 젖었다.
"오래 못 버틴다!"
미라는 아렌의 손목에 약초 끈을 묶고 있었다. 그러나 끈은 닿는 순간 검게 변했다.
"호수가 그를 놓지 않아. 안에서 스스로 나와야 해."
리아는 호수 가장자리에 서 있었다. 평소처럼 욕을 하거나 비웃지 않았다. 그녀는 아주 조용했다. 조용해서 더 낯설었다.
칼리사가 뒤에서 말했다.
"도둑아, 네가 할 수 있는 표정이 아니군."
리아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녀는 목에 걸고 있던 낡은 가죽끈을 끊었다. 옷깃 안쪽에서 작은 물건 하나가 떨어졌다. 별빛 문양이 새겨진 쇳조각이었다.
미라가 숨을 멈췄다.
"그건……."
"진짜가 아니야."
리아가 말했다.
목소리는 거칠었지만 끝이 떨렸다.
"복제품이야. 첫 번째 별빛 조각을 본떠 만든 것. 회색 손 금고에서 훔쳤어. 오래전 마룬 베라스의 연락망을 털 때 나온 물건이었지. 그때는 그냥 비싼 장난감인 줄 알았어."
세리온이 고개를 들었다.
"리아."
"알고 있었어?"
"짐작만 했다."
리아가 웃었다. 이번에는 정말로 아픈 웃음이었다.
"다들 짐작은 잘하지. 말은 안 하고."
그녀는 복제품을 손바닥 위에 올렸다. 진짜 별빛 조각처럼 뛰지는 않았다. 그러나 달빛을 받자 희미한 빛이 떠올랐다. 정교한 거짓이었다. 오래된 두려움과 탐욕으로 닦인 거짓.
"처음엔 이걸로 거래하려 했어. 일이 틀어지면 아렌을 버리고, 파편인 척 내밀고, 배 한 척 사서 도망칠 생각이었지."
아무도 말하지 않았다.
리아는 호수를 바라보았다.
"그런데 저 멍청이는 내 손 하나 때문에 자기 손을 내놓겠다고 했어. 나 같은 도둑을."
그녀는 복제품을 꽉 쥐었다. 손바닥이 베여 피가 흘렀다.
"호수야. 거짓을 원한다면 이걸 가져가. 내가 숨긴 거짓이다. 내가 끝까지 팔아먹으려던 도망길이다. 대신 저 바보를 놓아줘."
리아는 복제품을 호수에 던졌다.
작은 쇳조각은 소리 없이 가라앉았다.
그러자 호수 밑에서 별빛이 터졌다. 진짜가 아닌 별빛. 그러나 진심으로 바쳐진 거짓의 별빛이었다.
검은 물이 갈라졌다.
아렌의 손끝에 빛이 닿았다.
왕좌를 거부한 자
환영 속 왕좌의 방에 균열이 생겼다.
물속에서 리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대신 저 바보를 놓아줘.
아렌은 눈을 감았다.
마룬의 환영이 손을 내밀었다.
"왕관을 써라. 그래야 모두를 지킨다."
왕관을 든 또 하나의 아렌이 말했다.
"네 욕망을 인정해. 그리고 가져."
아렌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인정한다."
물결이 멈췄다.
"나는 왕관을 원한다. 힘이 없어서 도망쳤고, 힘이 없어서 마룬을 잃었다고 생각했다. 검은 기사들을 무릎 꿇리고 싶다. 나를 얕본 자들에게 내가 누구인지 보여 주고 싶다. 사람들이 내 이름을 기억하길 바랐다."
왕관이 밝게 빛났다.
"그래."
또 하나의 아렌이 웃었다.
"그럼 써라."
아렌은 왕관을 바라보았다.
아름다웠다. 끔찍하게 아름다웠다.
그는 한 걸음 다가갔다. 손을 뻗으면 닿을 거리였다. 왕관 아래 무릎 꿇은 검은 기사들이 떨었다. 마룬의 환영은 따뜻하게 웃었다. 왕좌는 그를 기다렸다.
아렌은 손을 뻗었다.
그리고 왕관이 아니라 왕좌 옆에 놓인 검은 사슬을 잡았다.
"하지만 그 욕망이 나를 다스리게 하지는 않겠다."
그는 사슬을 힘껏 당겼다.
마룬의 환영이 찢어졌다. 검은 기사들이 물로 무너졌다. 별빛 깃발들이 불타올랐다. 왕관을 든 아렌이 처음으로 분노한 얼굴을 했다.
"왕관 없이는 아무것도 지키지 못한다."
"그럴지도 몰라."
아렌은 말했다.
"그래도 나는 무릎 꿇은 사람들 위에 앉아 세상을 구했다고 부르지 않겠다."
왕좌가 갈라졌다.
그 아래에서 진짜 계단이 드러났다. 거울 호수의 밑바닥. 그곳에는 작은 파편 하나가 잠겨 있었다. 칼날도, 보석도 아니었다. 얇은 유리 조각처럼 보였고, 안쪽에는 하늘의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유리 파편.
아렌이 손을 뻗자 파편은 그의 피를 알아보듯 떨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불타지 않았다. 속삭이지도 않았다. 그저 차갑게 그의 손바닥에 내려앉았다.
그 순간 아렌은 깨달았다.
왕관은 단순히 힘을 원하는 자에게 열리지 않는다.
자신이 왜 힘을 원하는지 아는 자에게 열린다.
그리고 그런 자가 가장 위험하다.
처음 불린 이름
아렌은 물 위로 솟구쳤다.
리아가 그의 팔을 붙잡았다. 미라가 다른 팔을 잡았다. 로반은 이를 악물고 세리온을 끌어냈다. 칼리사는 그림자 하나의 목을 밧줄로 휘감아 호수에 처박았다.
검은 물은 순식간에 잠잠해졌다.
수도원의 뜰에는 다시 달빛만 남았다.
아렌은 젖은 숨을 몰아쉬며 손을 펼쳤다. 유리 파편이 그의 손바닥에 있었다. 그 안쪽에서 아주 작은 별문이 열렸다 닫혔다.
아사엘이 무릎을 꿇었다.
"호수가 내주었습니다. 심판을 통과했다는 뜻입니다."
"아니."
아렌은 고개를 저었다.
"통과한 게 아니야. 들킨 거지."
리아가 시선을 피했다.
"나도 들켰고."
아렌은 그녀를 바라보았다. 할 말이 많았다. 왜 숨겼느냐고, 왜 믿지 않았느냐고, 언제 도망치려 했느냐고 물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는 리아의 손바닥에서 흐르는 피를 보았다.
"다음엔," 아렌이 말했다. "도망칠 거면 말하고 도망쳐."
리아가 눈을 깜박였다.
"그게 용서야?"
"아직 아니야."
아렌은 힘겹게 웃었다.
"하지만 시작은 될 수 있겠지."
세리온은 젖은 머리카락을 얼굴에서 쓸어 넘겼다. 그의 그림자에 있던 검은 왕관 문양은 사라지지 않았다. 다만 흐려졌을 뿐이다.
"호수는 나를 완전히 놓지 않았군."
아사엘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검은 별이 기록을 보았고, 이제 심판의 법까지 맛보았습니다. 더는 밖에서 문을 두드리는 적이 아닙니다. 틈을 압니다."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호수 한가운데 검은 점이 떠올랐다.
처음에는 작은 잉크 방울 같았다. 그러나 곧 별이 되었다. 빛나지 않는 별. 빛을 먹는 별.
모두가 무기를 들었다.
아렌의 손바닥에 있던 물건들이 동시에 울었다. 첫 번째 별빛 조각, 붉은 산의 파편, 방금 얻은 유리 파편, 그리고 등에 멘 엘루마르까지. 왕관의 조각들과 그것을 떼어 낼 검이 하나의 심장처럼 뛰었다.
검은 별이 말했다.
이번에는 속삭임이 아니었다. 수도원의 유리벽이 금 가고, 호수 가장자리의 돌들이 떨릴 만큼 또렷한 목소리였다.
드디어 네가 너 자신을 보았구나.
아렌은 숨을 멈췄다.
아르엔 발라티르.
그 이름이 불리는 순간, 호수 밑의 모든 별이 꺼졌다.
아렌은 그 이름을 처음 들었지만, 뼈는 이미 알고 있었다.
검은 별이 웃었다.
이제 왕관도 너를 알아볼 것이다, 작은 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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