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빛에 투명해지는 섬
유리섬은 새벽에는 보이지 않았다.
흰까마귀호는 찢어진 돛을 끌고 남쪽 바다를 미끄러졌다. 폭풍은 사라졌지만 바다는 아직 그 폭력을 기억하고 있었다. 파도는 배 옆구리를 조용히 때렸고, 선원들은 말없이 죽은 자들의 이름을 밧줄 매듭에 묶었다.
세리온은 돛대 아래 누워 있었다. 미라는 그의 손목에 룬 가루를 개어 만든 끈을 감아 두었다. 은회색 선이 피부 위에서 희미하게 빛났다. 그림자가 다시 꿈틀거릴 때마다 끈도 함께 떨렸다.
로반은 검을 가까이 둔 채 그를 지켜보았다.
"눈을 뜨면 먼저 묻겠다."
리아가 낮게 말했다.
"묻기 전에 베지나 마."
"대답에 따라 다르다."
아렌은 말하지 않았다. 그는 뱃머리에 서서 남쪽 안개를 바라보았다. 품속의 파편들은 잠든 벌레처럼 미세하게 움직였다. 엘루마르는 등 뒤에서 침묵했다. 그 침묵이 오히려 불안했다.
해가 완전히 기울고 달이 떠오르자, 바다 한가운데가 갈라지듯 빛났다.
처음에는 낮은 암초처럼 보였다. 다음 순간, 달빛이 그 위에 쏟아지자 섬 전체가 투명해졌다. 절벽은 얼음보다 맑은 유리처럼 빛났고, 그 안쪽에 갇힌 오래된 나무뿌리와 물고기 뼈, 부서진 종들이 희미하게 떠 있었다. 섬 정상에는 수도원이 있었다.
검은 지붕과 하얀 벽을 가진 건물이었다. 그러나 달빛을 받는 순간 벽은 사라지고 기둥만 남았다. 복도, 계단, 방, 종탑, 기도실이 모두 한꺼번에 드러났다. 수도원은 건물이 아니라 거대한 투명한 심장 같았다.
칼리사가 키를 잡은 채 중얼거렸다.
"저 섬에 가까이 가는 선장은 둘 중 하나다. 미쳤거나, 이미 죽었거나."
리아가 그녀를 보았다.
"우린 어느 쪽이야?"
칼리사는 웃지 않았다.
"빚을 받으러 온 쪽이지. 잊지 마라. 파편 하나, 아니면 너."
아렌이 돌아섰다.
"유리섬에 닿을 때까지만 거래였잖아."
"바다의 거래는 닿고 나서 시작된다, 작은 왕."
그 호칭에 갑판의 공기가 얼어붙었다. 나하르가 남긴 말이었다. 작은 왕. 문을 열 피.
아렌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때 수도원의 종이 울렸다.
소리는 바다 위로 퍼지지 않았다. 오히려 배 안쪽, 사람들의 뼈 속에서 울렸다. 흰까마귀호의 뱃머리가 스스로 방향을 바꾸었다. 유리 절벽 아래, 달빛에만 드러나는 작은 부두가 나타났다.
그곳에 한 사람이 서 있었다.
회색 수도복을 입은 늙은 여인이었다. 두 눈은 흰 막으로 덮여 있었지만, 그녀는 배가 들어오는 방향을 정확히 보고 있었다.
"늦었군요."
그녀의 목소리는 파도보다 낮았다.
"검은 별이 먼저 여러분의 그림자를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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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 없는 기록관
수도원의 문은 손대지 않았는데 열렸다.
안으로 들어서자 찬 기운이 폐를 찔렀다. 벽에는 촛불이 없었다. 대신 바닥과 기둥에 박힌 작은 유리 조각들이 달빛을 받아 길을 만들었다. 수도사들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회색 옷자락이 복도 끝을 스치고, 발소리 없는 발들이 계단 위로 사라질 뿐이었다.
늙은 여인은 자신을 기록관 아사엘이라 소개했다.
"기록관인데 책이 없군." 로반이 말했다.
아사엘은 고개를 끄덕였다.
"책은 불에 약합니다. 권력에는 더 약하지요. 왕들이 싫어하는 문장은 먼저 찢기고, 사제들이 두려워하는 문장은 나중에 고쳐집니다."
그녀는 긴 복도 끝의 둥근 방으로 일행을 이끌었다.
그 방에는 책장이 없었다. 대신 벽 전체가 거울이었다. 천장도, 바닥도, 기둥 사이도 모두 흐린 거울로 덮여 있었다. 아렌은 발을 들여놓는 순간 자기 얼굴을 수십 개 보았다. 어떤 얼굴은 지쳐 있었고, 어떤 얼굴은 늙어 있었으며, 어떤 얼굴은 머리에 검은 왕관을 쓰고 있었다.
그는 숨을 삼켰다.
아사엘이 말했다.
"진실은 신성한 말보다 차가운 거울 속에 오래 남습니다. 거울은 위로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거짓말도 잘 하지 않지요."
미라가 세리온을 부축해 방 안으로 데려왔다. 세리온은 깨어 있었지만 얼굴에는 피가 없었다. 그의 그림자는 룬 끈에 묶인 짐승처럼 발밑에서 떨렸다. 거울들은 그 그림자만 어둡게 비추었다.
아렌은 기록관을 향해 물었다.
"우리는 왕관을 부수러 왔습니다. 그게 세상을 구하는 길이라고 들었습니다."
아사엘은 오래 침묵했다.
"그 말의 절반은 옳습니다."
"나머지 절반은요?"
"부수면 세상을 구할 수도 있습니다. 아니면 마지막 문빗장을 부러뜨릴 수도 있지요."
거울들이 일제히 어두워졌다.
그 안에서 별이 보였다. 검은 별이 아니었다. 수천 개의 별이 회전하는 하늘, 그리고 그 하늘 한가운데 찢어진 문이 있었다. 별문. 그 너머에서는 빛도 어둠도 아닌 무언가가 밀려 나오고 있었다. 사람의 눈이 오래 버틸 수 없는 틈이었다.
다음 장면이 나타났다.
인간의 왕, 엘라닌의 별장인, 드워프의 불세공인, 바람의 마법사들이 하나의 둥근 물건을 만들고 있었다. 왕관처럼 보였지만 장식품이 아니었다. 가시 같은 부분은 문에 박히는 이빨이었고, 둥근 테는 별문의 가장자리를 묶는 고리였다.
아사엘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검은 별의 왕관은 왕을 위해 만들어진 것이 아닙니다. 세상이 하늘 너머의 굶주림에 삼켜지지 않도록 별문을 닫기 위해 만든 열쇠였습니다. 왕관이 아니라 자물쇠였지요."
거울 속에서 한 남자가 앞으로 나왔다.
키가 크고 창백한 왕. 모르가스.
그는 왕관을 손에 들고 있었다. 그의 주변에는 죽은 병사들이 산처럼 쌓여 있었다. 왕은 울고 있었다. 처음에는.
"모르가스는 전쟁을 끝내고 싶어 했습니다. 죽은 아들을 되돌리고 싶어 했고, 무너진 왕국을 다시 세우고 싶어 했지요. 그는 왕관을 별문에 얹어 닫아야 했습니다. 그러나 왕관은 죽음의 문턱에 닿은 목소리들까지 들려주었습니다."
거울 속 모르가스가 왕관을 머리에 썼다.
죽은 자들이 눈을 떴다.
리아가 한 걸음 물러섰다.
아사엘은 눈먼 얼굴로 거울을 바라보았다.
"그는 깨달았습니다. 문을 닫는 힘은 죽음과 삶 사이에 선 자들을 붙잡을 수도 있다는 것을. 처음에는 사랑 때문이었습니다. 다음은 필요 때문이었습니다. 마지막에는 지배 때문이었지요. 모르가스는 죽음을 없애려 한 것이 아닙니다. 죽음이 자기 허락 없이는 누구에게도 오지 못하게 만들려 했습니다."
아렌의 품속 파편들이 차갑게 식었다.
"그래서 왕관을 부수면 안 된다는 겁니까?"
"부수어야 할 때가 올 수도 있습니다." 아사엘이 말했다. "하지만 모르고 부수면, 닫힌 문이 다시 열립니다. 알고 써도, 쓰는 자가 흔들리면 왕관은 주인을 삼킵니다."
거울 속에서 아렌의 얼굴이 나타났다. 그의 머리 위에 검은 왕관이 천천히 내려앉고 있었다.
아렌은 이를 악물었다.
"왜 나입니까?"
아사엘은 대답했다.
"별문은 피를 기억합니다. 첫 봉인에 손을 얹은 왕가의 피. 당신 안의 피는 문을 닫을 수도, 열 수도 있습니다."
나하르의 목소리가 다시 떠올랐다.
문은 열릴 것이다. 네가 원하지 않아도.
그림자가 고백한 이름
"그럼 이자는?"
로반의 검끝이 세리온의 가슴을 향했다.
"왜 그의 그림자에 모르가스의 표식이 있지?"
거울들이 세리온을 비추었다. 그러나 거울 속 세리온은 지금보다 훨씬 어렸다. 검은 머리의 소년이 궁정의 높은 탑에서 촛대를 들고 서 있었다. 그의 앞에는 긴 은발의 마법사가 있었다. 마법사는 검은 별이 새겨진 책을 펼치고, 왕관 파편의 위치를 별자리처럼 그려 넣고 있었다.
세리온이 눈을 감았다.
"그만."
아사엘은 멈추지 않았다.
"거울은 부끄러움을 위해 멈추지 않습니다."
세리온의 목소리가 갈라졌다.
"내 스승의 이름은 바엘란이었다. 모르가스의 궁정 마법사였고, 왕이 죽음을 다스릴 수 있다고 믿은 자였다. 나는 그의 제자였다."
방 안의 공기가 얼어붙었다.
리아가 낮게 욕을 뱉었다.
로반의 검끝이 더 가까워졌다.
"처음부터 말했어야 했다."
"그랬다면 너희가 나를 살려 두었겠나?"
"지금도 그럴 이유를 찾기 어렵군."
세리온은 웃지 않았다. 그는 아렌을 보았다.
"나는 왕관 파편을 찾는 법을 안다. 바엘란의 탑에서 지도를 베꼈기 때문이다. 금지된 바람의 노래를 안다. 스승이 검은 별에게 바람의 이름을 팔아 배웠기 때문이다. 네 피가 왕관에 반응한다는 것도…… 처음부터 짐작했다."
아렌의 손이 주먹으로 굳었다.
"그래서 나를 데려온 거야? 모르가스에게?"
"처음에는 아니었다."
"처음에는?"
세리온은 고개를 숙였다.
거울 속 장면이 바뀌었다. 불타는 왕궁. 도망치는 아이들. 검은 문양이 찍힌 문서들. 소년 세리온은 두루마리 하나를 품에 안고 달리고 있었다. 뒤에서는 바엘란의 목소리가 울렸다.
—파편은 피를 찾아간다. 피를 찾으면 왕은 돌아온다.
"나는 도망쳤다." 세리온이 말했다. "스승을 배신했고, 모르가스의 잔당을 배신했고, 나를 믿었던 사람들도 배신했다. 살아남기 위해서. 그 뒤로 나는 노래꾼이 되었다. 거짓 이름으로 마을을 돌며, 검은 별의 소문이 어디서 피어나는지 들었다. 그러다 마룬 베라스를 만났다."
아렌의 숨이 멎었다.
"마룬은 내 과거를 알았다. 그래도 내게 부탁했다. 네가 왕도에 끌려가지 않게 해 달라고. 왕관을 노리는 자보다, 왕관을 없애려는 무지한 자들이 더 위험할 수 있다고."
"왜 나한테 말하지 않았어?"
세리온의 눈에 처음으로 두려움이 떠올랐다.
"네가 나를 보지 않을까 봐. 괴물의 제자로만 볼까 봐."
아렌은 한동안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는 세리온이 자신을 구한 순간들을 기억했다. 돌다리 아래의 맹세, 말 없는 숲의 침묵, 폭풍 속 금지된 노래. 그리고 숨긴 말들, 반쪽짜리 진실들, 그림자에 남은 검은 왕관.
로반이 말했다.
"결정해라, 아렌. 이 여정은 더 이상 노래꾼의 입담으로 버틸 수 없다. 추방하든지, 묶어 데려가든지, 여기서 끝내든지."
미라가 조용히 말했다.
"그는 우리를 속였어요. 하지만 우리를 살리기도 했어요."
리아는 세리온을 보지 않고 말했다.
"배신자를 곁에 두는 건 멍청한 짓이야. 하지만 버리는 건 쉬워. 너무 쉬워서 함정일 때가 많지."
아렌은 세리온 앞에 섰다.
엘루마르가 등 뒤에서 낮게 울었다. 뽑으라고 말하지 않았다. 대신 기다렸다. 마치 검도 이 선택의 값을 알고 있는 것처럼.
아렌은 말했다.
"난 널 용서하지 않아."
세리온의 얼굴이 굳었다.
"하지만 추방하지도 않겠어. 네가 아는 진실이 필요해서만은 아니야. 네가 도망치면 네 그림자가 모르가스에게 돌아갈 거니까."
아렌은 품속의 별빛 조각을 꺼냈다. 희미한 빛이 거울방에 번졌다.
"앞으로 넌 우리 뒤에서 걷지 않는다. 앞에서 걸어. 길을 숨기지 말고, 아는 것을 먼저 말해. 한 번 더 우리를 팔면……"
그는 목이 잠긴 채 말을 이었다.
"그땐 내가 벤다."
세리온은 천천히 무릎을 꿇었다.
"그 정도면 내가 받을 수 있는 가장 큰 자비다."
거울이 연 다음 길
그 순간 바닥의 거울이 물처럼 흔들렸다.
아렌은 뒤로 물러섰다. 거울 속 수도원은 무너지고 없었다. 대신 검은 호수가 보였다. 호수는 바람 한 점 없이 고요했고, 그 가운데 둥근 달이 떠 있었다. 아니, 달이 아니라 눈이었다. 차갑고 거대한 눈.
아사엘의 얼굴이 처음으로 굳었다.
"선택이 내려졌군요."
"무슨 뜻입니까?" 미라가 물었다.
"유리섬의 기록은 여기까지입니다. 다음 진실은 거울 호수가 판단합니다. 그 호수는 죄를 재지 않습니다. 사람이 자기 죄를 가지고도 앞으로 걸을 수 있는지를 봅니다."
로반이 낮게 신음했다. 그의 상처가 다시 검게 번지고 있었다.
거울 속 호수 위로 다섯 개의 그림자가 나타났다. 아렌, 리아, 로반, 미라, 세리온. 그런데 여섯 번째 그림자가 그들 뒤에 서 있었다.
마룬이었다.
피투성이가 된 마룬이 검은 사슬에 묶인 채 아렌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의 입술이 움직였다. 소리는 들리지 않았지만 아렌은 그 말을 알아보았다.
오지 마라.
곧바로 거울이 얼어붙었다. 얼음 속에서 검은 왕관의 문양이 피처럼 번졌다.
아사엘이 속삭였다.
"검은 별도 이 기록을 보았습니다."
수도원의 종이 다시 울렸다. 이번에는 경고처럼 짧고 날카로웠다.
유리벽 너머, 달빛에 투명해진 섬 아래에서 호수가 모습을 드러냈다. 섬 안쪽에 갇혀 있던 물. 바다보다 검고, 밤보다 고요한 물.
그 수면 한가운데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올라왔다.
—작은 왕.
아렌은 별빛 조각을 움켜쥐었다.
—네가 용서한 자부터 심판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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