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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mmary

붉은 문 안의 침묵

붉은 산의 입구는 성문이라기보다 상처 같았다.

바위산의 가슴께가 길게 찢겨 있었고, 그 틈 사이로 오래된 쇠문이 비스듬히 매달려 있었다. 문에는 드워프의 룬 문자가 새겨져 있었지만 절반은 검게 그을리고 절반은 얼음에 먹혀 있었다. 한때는 군대가 열을 지어 통과했을 문이었다. 지금은 바람만 들어가고 있었다.

아렌은 아이를 먼저 보냈다. 전날 밤 그들을 광산 입구까지 안내했던 드워프 아이, 토룬은 손등의 부서진 별과 가시관 표식을 소매로 감추고 있었다. 아이는 계속 뒤를 돌아보았다. 검은 기사들이 따라오는지 확인하는 눈이었다.

"안에는 아무도 없어." 토룬이 낮게 말했다. "그게 더 무서워."

리아가 쇠뇌를 장전했다.

"검은 기사들이 점령했다며?"

"그들은 위층만 차지했어. 더 아래로는 안 내려가."

"왜?"

토룬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발밑의 돌바닥을 보았다.

그때 산속 깊은 곳에서 낮고 긴 소리가 울렸다. 쇠가 돌을 긁는 듯한 소리였다. 끌려가는 사슬. 멀고도 분명한 울림.

아렌의 등 뒤에서 엘루마르가 희미하게 떨었다. 검은 노래하지 않았다. 울고 있었다.

세리온이 손을 들어 모두를 멈춰 세웠다.

"검을 뽑지 마라."

아렌은 입술을 깨물었다.

"알고 있어."

하지만 사실 그는 알고 있지 못했다. 엘루마르를 뽑으면 무엇을 잃는지, 다음에는 누구의 얼굴을 잊게 될지 알 수 없었다. 이미 그는 마룬의 웃음소리를 떠올리지 못했다. 얼굴은 선명했다. 굵은 손, 그을린 앞치마, 불꽃 앞에 선 등. 그러나 웃음소리만은 기억의 가장자리에서 부서진 종처럼 흔들리다 사라졌다.

마룬은 살아 있다.

은빛 궁정에서 본 그 문장은 아직도 아렌의 가슴을 긁었다. 살아 있다면 어디에. 왜 돌아오지 않았는가. 검은 기사들에게 끌려간 것인가. 아니면 처음부터 아렌에게 말하지 않은 진실 속에 숨어 있었던 것인가.

로반이 앞장섰다.

"서둘러. 산은 우리를 오래 숨겨 주지 않는다."

그들은 붉은 문 안으로 들어갔다.

드워프의 빈 왕좌AI 생성 이미지

메아리의 도시

처음 나타난 것은 광산이 아니었다. 도시였다.

산의 속은 비어 있었다. 아니, 비워 낸 것이 아니라 누군가 산 하나를 통째로 궁전으로 깎아 낸 듯했다. 거대한 기둥들이 어둠 속에서 하늘을 받치고 있었고, 기둥마다 수염을 땋은 왕과 망치를 든 여왕, 불을 품은 대장장이들의 모습이 새겨져 있었다. 층층이 이어진 다리들은 허공 위에 걸려 있었고, 그 아래로는 끝을 알 수 없는 심연이 벌어져 있었다.

거리에는 상점이 있었다. 돌문이 열린 술집, 반쯤 놓인 잔, 벽에 기대 세운 곡괭이, 식탁 위에서 말라붙은 빵. 마치 모두가 한순간에 자리에서 일어나 어디론가 내려간 뒤 돌아오지 않은 것 같았다.

리아가 낮게 휘파람을 불었다.

"이 많은 금을 두고 사라졌다고?"

그 말대로였다. 금은 그대로 있었다. 왕관 모양의 잔, 붉은 보석이 박힌 허리띠, 은으로 짠 사슬 갑옷. 도둑이라면 손을 뻗지 않을 수 없는 보물들이 먼지 속에서 희미하게 빛났다.

그러나 리아는 아무것도 훔치지 않았다.

그녀는 길가에 떨어진 작은 나무 장난감을 주웠다가, 곧 조심스럽게 제자리에 내려놓았다. 드워프 아이가 갖고 놀았을 말 모양 장난감이었다. 한쪽 바퀴가 부러져 있었다.

"사람이 살던 곳이야." 리아가 말했다. "무덤보다 나빠."

그 말에 아무도 웃지 않았다.

미라는 벽에 손을 대고 걸었다. 손끝에 묻은 검은 먼지를 냄새 맡더니 눈살을 찌푸렸다.

"그을음이 아니에요. 오래된 곰팡이와 피가 섞였어요. 아주 오래됐지만… 산이 아직 기억하고 있어요."

세리온이 대답하려는 순간, 위쪽 회랑에서 갑옷 소리가 났다.

검은 기사 셋이 난간 너머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들의 투구는 불빛을 삼켰고, 가슴에는 부서진 별과 가시관이 새겨져 있었다. 한 명이 아렌을 알아보고 검을 뽑았다.

"별의 피다."

리아의 쇠뇌가 먼저 울렸다. 화살은 투구 틈으로 박혔고 기사는 뒤로 비틀거렸다. 동시에 로반이 계단을 뛰어올랐다. 그의 낡은 검이 첫 번째 기사의 무릎을 베고, 세리온의 단검이 두 번째 기사의 손목을 찔렀다.

세 번째 기사는 아렌에게 곧장 뛰어내렸다.

아렌은 본능적으로 등 뒤의 엘루마르에 손을 올렸다. 검이 기뻐하듯 뜨거워졌다.

뽑아라.

이번엔 모르가스의 목소리인지 검의 노래인지 구분할 수 없었다.

동료를 살리고 싶다면.

아렌은 손을 떼었다. 대신 허리춤의 짧은 대장장이 칼을 뽑아 들었다. 너무 짧고 너무 평범한 칼이었다. 검은 기사의 장검을 막기엔 우스운 무기였다.

그러나 미라가 던진 약병이 기사 발밑에서 터졌다. 푸른 연기가 피어올랐고, 기사는 한순간 시야를 잃었다. 아렌은 그 틈에 몸을 굴려 기사의 뒤로 빠져나갔다. 로반이 계단 위에서 몸을 날려 검은 기사를 난간 밖으로 밀어냈다.

기사는 소리 없이 떨어졌다.

한참 뒤, 아주 깊은 곳에서 갑옷이 부서지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또다시 쇠사슬 끄는 소리가 울렸다.

이번에는 더 가까웠다.

토룬이 얼굴을 창백하게 물들였다.

"들었어."

"누가?" 아렌이 물었다.

아이는 아래의 어둠을 가리켰다.

"왕이 깨운 것."

왕의 마지막 기록

그들은 검은 기사들이 지키던 회랑 뒤쪽에서 왕의 기록실을 발견했다.

문은 안쪽에서 잠겨 있었지만 로반이 어깨로 밀자 삭은 돌쩌귀가 비명을 지르며 부서졌다. 방 안은 놀랄 만큼 온전했다. 두꺼운 석판들이 원형으로 세워져 있었고, 가운데에는 검은 돌로 만든 낮은 책상이 놓여 있었다. 책상 위에는 왕관을 쓴 드워프의 인장이 찍힌 금속 두루마리가 있었다.

세리온이 룬 문자를 훑었다.

"드워프 왕 브라칸. 붉은 산 아래 카람도르의 마지막 왕."

그는 천천히 읽기 시작했다.

처음의 기록은 찬란했다. 브라칸 왕은 백성을 사랑했고, 산의 길을 넓혔고, 굶주린 겨울마다 창고를 열었다. 그는 인간 왕들에게 강철을 팔았으나 무기를 팔 때마다 같은 양의 쟁기를 만들게 했다. 전쟁보다 밭이 오래 남는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록은 어느 날부터 달라졌다.

왕은 산 깊은 곳에서 노래를 들었다. 금맥보다 아래, 불맥보다 아래, 세상이 처음 식어 돌이 되었던 곳에서 누군가 그를 불렀다. 기록에는 그것이 '두 번째 파편'이라고 적혀 있었다. 왕관이 부서질 때 드워프에게 맡겨진 조각. 왕의 피와 장인의 불을 알아보는 조각. 지키라고 맡겨진 것이었으나, 브라칸은 그것을 소유해야 한다고 믿기 시작했다.

"이상해." 세리온이 중얼거렸다. "우리가 말 없는 숲에서 얻은 파편도 두 번째라 불렸는데."

미라가 석판 가장자리를 살폈다.

"번호가 아닌 것 같아요. 여기 문양을 봐요. '둘째'라는 뜻이 아니라 '두 번 속삭이는 것'이라는 뜻일 수도 있어요. 처음엔 지키라 말하고, 다음엔 가지라 말하는 것."

아렌의 손안에서 별빛 조각이 차갑게 식었다.

세리온은 다음 줄을 읽었다.

브라칸은 백성들을 데리고 더 깊은 갱도로 내려갔다. 그곳에 황금보다 깊은 왕국을 세우겠다고 했다. 하늘의 왕들은 늙고, 숲의 여왕들은 잊히며, 인간의 왕좌는 피로 젖지만, 돌 아래 세운 왕좌는 영원하리라 말했다.

하지만 깊은 곳에는 금만 있지 않았다.

거기에는 묶여 있는 것이 있었다.

기록의 마지막 줄은 왕 자신의 글씨가 아니었다. 누군가 떨리는 손으로 새긴 짧은 문장이었다.

왕께서 사슬을 풀었다. 우리는 왕좌를 비웠다. 아래에서 끌고 올라오는 소리가 들린다.

리아가 욕설을 삼켰다.

"그래서 도시가 텅 빈 거군."

토룬이 고개를 저었다.

"다 도망친 게 아니야. 우리 할머니는 말했어. 많은 이들이 왕을 따라 내려갔고, 남은 이들은 문을 닫았다고. 하지만 문은 오래 버티지 못했대."

아렌은 기록실 밖의 어둠을 바라보았다.

검은 기사들이 왜 깊은 곳으로 내려가지 않았는지 이제 알 것 같았다. 그들은 용감해서 산을 점령한 것이 아니었다. 무언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혹은 무언가가 위로 올라오기를.

하늘의 문

기록실 뒤편 벽에는 오래된 벽화가 있었다. 먼지와 검은 이끼에 덮여 처음에는 그저 얼룩처럼 보였다. 미라는 가방에서 작은 칼과 약초 가루를 꺼냈다. 물에 개어 벽에 문지르자 이끼가 천천히 걷히고 숨겨진 색이 드러났다.

그림 속에는 검은 별이 있었다.

아렌은 몸을 굳혔다. 그 별은 지금 하늘에 떠 있는 것과 닮아 있었다. 빛을 내지 않고, 빛을 삼키는 별. 그러나 벽화 속 검은 별은 재앙처럼 그려져 있지 않았다. 별 아래에는 여섯 종족이 함께 서 있었다. 인간, 엘라닌, 드워프, 강의 백성, 바람의 항해자, 그리고 얼굴이 지워진 마지막 종족.

그들 가운데에는 왕관이 있었다.

검은 별의 왕관.

하지만 왕관은 누군가의 머리 위에 있지 않았다. 거대한 문에 끼워져 있었다. 하늘에 열린 문. 그 문 너머에는 수많은 눈 같은 빛들이 들끓고 있었다. 왕관은 그 문을 닫는 열쇠처럼 그려져 있었다.

미라가 숨을 삼켰다.

"이건… 악한 물건으로 만들어진 게 아니에요."

세리온의 얼굴에서 피가 빠졌다.

"왕관은 모르가스의 무기가 아니었나?"

"처음부터는 아니었어요." 미라가 벽화를 따라 손가락을 움직였다. "하늘의 문을 닫기 위해 만든 거예요. 저 문 너머에서 무언가 내려오려 했고, 왕관은 그걸 막았어요. 그런데 누군가 왕관을 썼어요."

로반이 낮게 말했다.

"모르가스."

벽화의 마지막 부분은 긁혀 있었다. 누군가 오래전에 일부러 지워 버린 듯했다. 그러나 희미한 윤곽만은 남아 있었다. 왕관을 머리에 쓴 한 왕이 보였다. 그의 뒤에는 닫혔어야 할 문이 다시 조금 열려 있었다.

아렌은 그 그림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검은 별의 왕관이 단순한 악의 물건이 아니라면, 파괴하는 것이 정말 답일까. 별의 우물에서 부수겠다는 그들의 맹세는 세상을 구하는 길인가, 아니면 닫힌 문을 다시 여는 실수인가.

그 순간, 모르가스의 목소리가 아렌의 안쪽에서 부드럽게 피어올랐다.

나는 문을 열려 한 것이 아니다, 아이야.

아렌은 이를 악물었다.

거짓말.

나는 문 너머의 것을 보았다. 그래서 왕관이 필요했다. 그래서 모두가 나를 두려워했다.

"아렌?" 미라가 물었다.

아렌은 고개를 흔들었다.

"아무것도 아니야."

하지만 세리온은 그를 보고 있었다. 음유시인의 눈빛에는 노래보다 무거운 의심이 깃들어 있었다.

빈 왕좌

도시의 중심에는 왕좌의 전당이 있었다.

문은 거대했다. 붉은 철로 두른 문짝 위에는 수백 명의 드워프가 망치를 들어 하나의 왕관을 두드리는 장면이 새겨져 있었다. 문 앞에는 검은 기사들의 야영 흔적이 남아 있었다. 꺼진 화로, 찢긴 깃발, 피 묻은 붕대. 그리고 급히 도망친 발자국들.

리아가 바닥을 살폈다.

"그들은 안에서 나온 게 아니야. 밖으로 달아났어."

로반이 검을 고쳐 쥐었다.

"그렇다면 안에 남은 것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겠군."

문을 밀자 전당이 열렸다.

그곳은 산의 심장처럼 넓었다. 천장은 어둠에 잠겨 보이지 않았고, 양쪽 벽에는 꺼진 용광로들이 줄지어 있었다. 중앙에는 검은 돌로 만든 왕좌가 높이 놓여 있었다. 왕좌는 비어 있었다.

아렌은 그 빈자리를 보는 순간 이상한 슬픔을 느꼈다.

왕이 사라진 자리였다. 백성이 버려진 자리였다. 탐욕이 앉았다가 굶주림만 남기고 떠난 자리였다.

토룬이 무릎을 꿇었다. 아이는 울지 않았다. 대신 작은 주먹으로 돌바닥을 쳤다.

"우리는 돌아올 왕을 기다렸어. 그런데 왕좌에는 아무도 없었어."

아렌은 아이 옆에 앉았다.

"왕이 없어도 백성은 남아."

토룬이 고개를 들었다.

"그럼 누가 우리를 데리고 나가?"

아렌은 대답하지 못했다.

바로 그때, 빈 왕좌 아래에서 별빛 조각이 빛났다. 아렌의 품속에서 첫 번째 파편이 뜨겁게 뛰었고, 말 없는 숲에서 얻은 파편이 차갑게 떨었다. 엘루마르는 등 뒤에서 낮은 음을 냈다.

세 파편이 한곳을 가리키고 있었다.

왕좌 아래.

로반이 왕좌의 발치에 새겨진 룬을 읽었다.

"황금보다 깊은 곳에 왕은 귀를 묻었다. 귀보다 깊은 곳에 목소리가 있었다."

세리온이 창백한 얼굴로 뒤로 물러났다.

"여기가 입구다. 브라칸이 백성을 데리고 내려간 길."

리아가 왕좌 뒤를 살피더니 숨겨진 고리를 찾아냈다. 그녀가 힘껏 당기자 왕좌 아래의 돌판이 천천히 갈라졌다. 차가운 바람이 아래에서 솟구쳤다. 그 바람에는 오래된 쇠 냄새와 축축한 짐승 냄새가 섞여 있었다.

그리고 어둠 속에서 소리가 들렸다.

철컥.

한 번.

철컥.

두 번.

이번에는 전당 전체가 흔들렸다. 먼지가 천장에서 쏟아지고 꺼진 용광로들이 낮게 울었다.

토룬이 비명을 삼켰다.

"깨어났어."

깊은 갱도 아래에서 거대한 무언가가 움직이고 있었다. 사슬을 끄는 소리. 바위를 긁는 발톱. 오래 굶은 숨소리.

아렌은 엘루마르의 손잡이에 손을 올렸다. 검은 뜨거웠다. 마치 오래전부터 이 순간을 기다렸다는 듯이.

어둠 속에서 두 개의 불빛이 떠올랐다.

눈이었다.

그 눈은 왕좌보다 컸고, 산보다 오래된 분노로 빛나고 있었다.

그리고 아래에서 목소리가 올라왔다.

왕이 돌아왔느냐.

아렌의 피가 얼어붙었다.

그 목소리는 괴물의 것이 아니었다.

마룬의 목소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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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별의 왕관: 부서진 왕국의 새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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