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 사슴의 길
흰 사슴 가면을 쓴 자들은 자신들을 포로 감시자처럼 굴지 않았다. 칼을 겨누지도, 밧줄을 꺼내지도 않았다. 그러나 아렌 일행이 조금이라도 길에서 벗어나려 하면 숲의 나무들이 먼저 움직였다.
가지가 낮아지고, 뿌리가 드러나고, 은빛 잎사귀들이 바람도 없이 한쪽으로 기울었다. 말 없는 숲에서 빼앗겼던 소리는 돌아왔지만, 이상하게도 사람의 목소리만 작게 들렸다. 대신 나무껍질을 타고 흐르는 물소리, 먼 잎사귀 사이를 지나는 새벽빛의 떨림, 보이지 않는 짐승의 숨결이 지나치게 또렷했다.
리아가 낮게 투덜거렸다.
"초대라더니, 길이 우리를 감시하네."
세리온은 류트를 등 뒤로 고쳐 멨다. 그의 얼굴은 숲에 들어오기 전보다 더 창백했다.
"엘라닌의 초대는 문을 열어 준다는 뜻이지, 마음대로 나가도 된다는 뜻은 아니야."
"그걸 왜 이제 말해?"
"묻지 않았으니까."
리아가 칼집에 손을 얹었지만, 미라가 조용히 손목을 붙잡았다.
"여긴 싸우면 안 돼요. 숲이 저 사람들 편이에요."
로반은 아무 말 없이 앞을 보았다. 말 없는 숲에서 본 환영의 여운이 아직 그의 어깨에 남아 있었다. 그는 오래된 죄를 다시 짊어진 사람처럼 걸었다.
아렌은 품속의 별빛 조각과 침묵의 표식을 느꼈다. 두 물건은 서로를 알아보듯 희미하게 떨었다. 그 떨림은 전보다 또렷했다. 마치 아직 맞추지 못한 노래의 첫 두 음처럼.
그리고 멀리서 세 번째 음이 울렸다.
아주 가늘고, 맑고, 차가운 소리.
아렌은 고개를 들었다.
숲이 끝나고 있었다.
나무들 사이로 달빛을 닮은 호수가 펼쳐졌다. 아직 낮이었는데도 호수 위에는 밤하늘이 비쳤다. 물결마다 별이 흔들렸고, 호수 가운데에는 은빛 탑들이 서 있었다. 탑은 돌로 쌓은 것이 아니었다. 거대한 나무와 수정과 빛이 한 몸처럼 자라난 형상이었다. 다리는 물 위에 걸린 얇은 달조각 같았고, 그 위를 흰 옷의 사람들이 소리 없이 오갔다.
엘라닌의 궁정.
왕국보다 오래되었고, 왕국의 언어보다 먼저 노래했다는 종족의 땅.
아렌은 자신도 모르게 숨을 삼켰다. 가시울의 대장간에서 보던 불꽃과 쇳가루, 진흙 묻은 장화와 낡은 물통이 아주 먼 삶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아름다움은 칼날처럼 서늘했다.
다리 양끝에는 창을 든 엘라닌 전사들이 서 있었다. 그들의 갑옷은 은빛 비늘 같았고, 눈동자는 맑은 회색이었다. 누구도 위협하지 않았으나 누구도 반기지 않았다.
가면을 쓴 안내자가 말했다.
"은빛 여왕 이실라께서 기다리신다. 인간의 발자국은 짧으니, 거짓말도 짧게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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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빛으로 지은 궁전
궁정 안으로 들어서자 온갖 향기가 밀려왔다. 젖은 이끼, 차가운 장미, 오래된 책, 겨울 새벽의 냄새. 벽에는 그림이 없었다. 대신 살아 있는 빛이 흘렀다. 빛은 과거의 장면들을 물결처럼 비추었다.
왕관을 쓴 인간들이 엘라닌과 술잔을 나누는 모습.
불타는 성문 앞에서 서로 등을 돌리는 모습.
검은 별 아래에서 피로 물든 들판.
아렌이 멈칫하자 세리온이 낮게 속삭였다.
"너무 오래 보지 마. 저건 그림이 아니라 기억이야. 기억은 바라보는 사람에게도 상처를 남긴다."
리아는 기억의 벽을 힐끗 보고 웃었다.
"그럼 비싼 벽이네."
그 말에 주변 엘라닌 몇 명의 눈썹이 아주 조금 움직였다. 리아는 그 변화를 놓치지 않았다. 하지만 물러서지도 않았다.
그들은 넓은 전당에 이르렀다. 천장은 보이지 않을 만큼 높았고, 그 위로 별들이 흐르는 것처럼 반짝였다. 전당 중앙에는 뿌리가 왕좌처럼 솟아 있었고, 그 위에 한 여인이 앉아 있었다.
은빛 여왕 이실라.
그녀의 머리카락은 달빛을 길게 풀어 놓은 듯했고, 얼굴은 젊어 보이면서도 수천 번의 겨울을 지나온 나무처럼 깊었다. 왕관은 쓰지 않았다. 대신 이마 위에 얇은 은사슬 하나가 놓여 있었다. 그 단순함이 오히려 어떤 금관보다 무거워 보였다.
아렌 일행이 멈추자 로반이 먼저 한쪽 무릎을 꿇었다. 추방된 기사였지만, 그는 아직 예법을 잊지 않았다.
"이실라 여왕께 인사드립니다. 우리는 검은 별의 왕관을 막기 위해 길을 가는 자들입니다. 추격자들이 우리 뒤에 있고, 왕국의 길은 배신당했습니다. 하룻밤의 보호와 진실한 조언을 청합니다."
전당이 조용해졌다.
이실라는 로반이 아니라 아렌을 보았다.
"하룻밤이라."
그녀의 목소리는 잔잔했으나 전당 끝까지 닿았다.
"인간은 늘 하룻밤을 청했다. 전쟁 전에도, 배신 전에도, 성문이 불타던 밤에도. 그리고 아침이 오면 엘라닌의 피로 자신의 왕좌를 닦았다."
로반의 얼굴이 굳었다.
"그 배신은 오래전 일입니다."
"인간에게는 오래전이지."
이실라의 시선이 아렌에게 꽂혔다.
"우리에게는 어제다."
아렌은 목이 말랐다. 하지만 물러서지 않았다.
"저는 왕좌를 구하러 온 게 아닙니다. 왕관을 부수러 왔습니다."
그 말에 전당 곳곳에서 낮은 속삭임이 퍼졌다.
이실라가 천천히 손을 들었다.
"가까이 오너라, 대장장이의 아들."
아렌은 한 걸음 나아갔다.
"그렇게 부르시니 안심이 됩니다."
"안심하지 마라. 나는 네가 그렇게 불리기를 바란다는 것을 알 뿐이다."
아렌은 멈췄다.
이실라는 그의 품속을 보지 않았는데도 말했다.
"네 피가 왕관의 첫 조각을 깨웠고, 숲의 침묵은 네 길을 열었다. 그러나 더 오래된 것은 네 안에 있다. 별왕가의 마지막 불씨."
전당이 다시 술렁였다.
세리온이 눈을 감았다. 로반은 고개를 번쩍 들었다. 미라는 아렌의 옷자락을 꼭 쥐었다.
리아만이 짧게 숨을 내뱉었다.
"아, 또 왕족이야?"
아렌은 그녀의 말에 대답하지 못했다. 심장이 세게 뛰었다.
"아닙니다." 그가 겨우 말했다. "저는 마룬의 아들입니다. 가시울의 대장간에서 자랐습니다."
"그 말도 참이다."
이실라의 눈빛이 처음으로 부드러워졌다.
"피가 사람을 전부 설명하지는 못한다. 그러나 피가 열 수 있는 문이 있다. 네가 원하지 않아도."
오래된 배신의 이름
여왕의 옆에서 한 엘라닌 남자가 앞으로 나왔다. 검은 은색 예복을 입은 그는 다른 이들보다 창백했고, 눈매가 칼처럼 날카로웠다.
"여왕이시여, 이것으로 충분합니다."
그는 아렌을 보며 말했다.
"왕관의 조각을 지닌 인간. 별왕가의 피. 검은 별이 다시 떠오르는 때. 옛 예언의 세 조건이 한자리에 모였습니다. 저들을 돕는 것은 지혜가 아니라 반복되는 재앙입니다."
이실라가 말했다.
"말하라, 탈메르."
탈메르라 불린 엘라닌은 전당을 향해 몸을 돌렸다.
"왕관의 조각과 봉인의 표식을 압수해야 합니다. 인간들은 이미 한 번 실패했습니다. 모르가스를 왕으로 세운 것도 인간이고, 그가 엘라닌의 도시들을 불태울 때 마지막까지 머뭇거린 것도 인간의 왕들이었습니다. 저 소년이 아무리 선하다 해도, 왕관과 연결된 물건은 선한 손에서도 피를 부릅니다."
"그 말이 틀리진 않군." 리아가 중얼거렸다.
세리온이 그녀를 노려봤다.
반대편에서 붉은 잎으로 만든 망토를 걸친 엘라닌 여인이 일어섰다. 그녀의 얼굴에는 전사보다 치유사에 가까운 고요함이 있었다.
"봉인은 답이 아닙니다, 탈메르."
그녀가 말했다.
"우리는 천 년 동안 숨었습니다. 숲을 두껍게 만들고, 다리를 지우고, 인간의 왕국이 스스로 무너지도록 지켜보았습니다. 그 결과 검은 기사들이 왕의 이름을 훔쳤고, 모르가스의 목소리가 아이들의 꿈에 들어갔습니다. 우리가 눈을 감는 동안 어둠은 눈을 떴습니다."
탈메르의 입술이 굳었다.
"라에나, 너는 아직도 인간의 노래를 믿느냐?"
"아니. 나는 선택을 믿는다. 저 소년은 조각을 넘기고 도망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숲에서 그렇게 하지 않았다."
라에나는 아렌을 보았다.
"두려움이 없는 자라서가 아니다. 두려워하면서도 붙들었기 때문이다."
그 말은 아렌에게 이상하게 아팠다. 그는 마룬의 환영 앞에서 흔들렸던 자신을 떠올렸다. 모두를 살릴 수 있다는 거짓말에 얼마나 가까이 갔는지도.
탈메르가 차갑게 웃었다.
"용기와 무지는 한 끗 차이다. 그리고 예언은 늘 무지한 자를 영웅이라 부른다."
이실라는 아무 말 없이 논쟁을 듣고 있었다. 전당의 공기가 팽팽해졌다. 엘라닌들은 둘로 갈라진 듯했다. 어떤 이들은 라에나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고, 어떤 이들은 탈메르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때 이실라가 손가락을 살짝 움직였다.
전당 한가운데 빛이 솟아났다. 빛은 별자리처럼 이어지더니 하나의 문장을 만들었다. 아렌은 글자를 읽을 수 없었지만 뜻은 이상하게 가슴으로 들어왔다.
별이 검게 타오르는 밤, 잃어버린 피가 왕관을 깨우고 왕관을 부순다.
그러나 그 손이 칼을 들지 않으면, 새벽은 이름 없는 자의 목으로 값을 치른다.
미라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그게 예언인가요?"
이실라는 고개를 끄덕였다.
"엘라닌의 마지막 별읽이가 죽기 전에 남긴 말이다. 우리는 오랫동안 이 문장을 두려워했다. 별왕가의 피가 돌아오면 왕관도 돌아온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아렌은 손을 움켜쥐었다.
"그럼 저를 죽이면 됩니까?"
미라가 숨을 삼켰고, 로반이 즉시 몸을 세웠다. 리아의 손도 칼자루로 갔다.
이실라는 아렌을 오래 바라보았다.
"그 질문을 했기에, 아직은 아니다."
그 말이 위로인지 판결인지 알 수 없었다.
조각을 요구하는 자들
그날 저녁, 일행은 궁정 한쪽의 긴 방에 머물도록 허락받았다. 방의 창은 호수를 향해 열려 있었고, 창틀에는 유리 대신 얇은 물막이 흔들렸다. 손을 대면 젖지 않았지만 차가운 기억이 손끝에 남았다.
음식은 빛처럼 가벼웠다. 흰 열매, 달콤한 뿌리, 은빛 잔에 담긴 맑은 술. 그러나 아무도 마음 편히 먹지 못했다.
로반이 낮게 말했다.
"우리는 보호를 얻은 게 아니다. 재판을 기다리는 중이다."
"그래도 침대는 있잖아." 리아가 열매 하나를 던져 입에 물었다. "사형수에게도 마지막 식사는 주니까."
미라가 그녀를 흘겨보았다.
"그런 말 하지 마요."
세리온은 창가에 서서 호수를 보았다. 그의 손가락이 류트 줄 위에 멈춰 있었지만 소리는 내지 않았다.
아렌이 물었다.
"당신은 알고 있었습니까?"
세리온은 돌아보지 않았다.
"무엇을?"
"별왕가. 내 피. 여왕이 말한 것들."
잠시 침묵이 흘렀다.
"추측은 했다."
아렌은 웃었다. 웃음이 너무 짧아 거의 숨소리 같았다.
"당신은 늘 그렇게 말하죠. 추측했다. 말할 때가 아니었다. 내가 묻지 않았다."
세리온이 천천히 돌아섰다.
"진실은 칼과 같아. 준비되지 않은 손에 쥐이면, 적보다 먼저 자신을 벤다."
"그럼 저는 언제 준비됩니까?"
아렌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마룬이 죽고, 마을이 불타고, 괴물이 강에서 튀어나오고, 숲이 아버지 얼굴로 나를 속였습니다. 그래도 아직입니까? 대체 얼마나 더 잃어야 말할 겁니까?"
방 안이 조용해졌다.
세리온의 얼굴에 처음으로 피로가 드러났다.
"마룬은 네가 왕의 피로 살기를 바라지 않았다. 사람으로 살기를 바랐다."
"그런데 이제 모두가 내 피만 봅니다."
아렌은 품속의 별빛 조각과 침묵의 표식을 꺼내 탁자 위에 올렸다. 두 물건이 닿자 희미한 빛이 방 안을 가로질렀다. 그 빛은 창밖 호수 저편, 궁정 가장 깊은 탑을 향해 길게 뻗었다.
그 순간 맑은 울림이 들렸다.
검이 노래하는 듯한 소리였다.
로반이 벌떡 일어났다.
"저 소리……"
세리온의 눈빛이 흔들렸다.
"노래하는 검."
미라가 속삭였다.
"저 탑에 있군요."
리아는 그 빛을 따라가듯 창밖을 보았다. 그녀의 눈이 아주 잠깐 반짝였다. 아렌은 그 표정을 알아차렸어야 했다. 강가에서 처음 만났을 때, 리아가 남의 주머니 속 동전을 보기 전 짓던 바로 그 표정이었다.
하지만 그때 문이 열렸다.
라에나가 들어왔다.
"여왕께서 새벽에 결정을 내리실 겁니다. 그 전까지 누구도 방을 벗어나면 안 됩니다."
"결정이라면?" 로반이 물었다.
라에나는 망설였다.
"세 가지 안이 올라갔습니다. 첫째, 당신들을 도와 노래하는 검으로 인도한다. 둘째, 조각과 표식을 압수하고 기억을 지운 뒤 숲 밖으로 보낸다. 셋째……"
그녀는 아렌을 보았다.
"별왕가의 피가 모르가스에게 닿지 못하도록, 이곳에 영원히 남긴다."
아렌은 그 말의 뜻을 곧바로 이해했다. 감옥. 혹은 무덤.
라에나는 더 낮은 목소리로 덧붙였다.
"탈메르가 이미 많은 표를 얻었습니다. 그러니 제발, 밤 동안 아무 일도 만들지 마십시오."
달빛 보물고
밤이 깊어도 궁정은 잠들지 않았다. 엘라닌은 인간처럼 어둠에 몸을 맡기지 않는 종족이었다. 복도마다 은은한 빛이 흘렀고, 멀리서 들리는 노래는 기도인지 회의인지 알 수 없었다.
아렌은 잠들지 못했다. 그는 자신의 손바닥을 바라보았다. 평생 망치자루를 쥐어 굳은살이 박인 손이었다. 그런데 여왕은 그 손에서 왕관을 깨울 피를 보았다.
별왕가의 마지막 불씨.
그 말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문득 아주 작은 소리가 들렸다.
창 쪽이었다.
아렌이 고개를 들었을 때, 리아의 침대는 비어 있었다.
"리아?"
로반도 즉시 눈을 떴다. 늙은 전사의 잠은 얕았다.
세리온이 이를 악물었다.
"안 돼."
그들은 방을 뛰쳐나갔다. 미라도 약초 주머니를 챙겨 따라왔다.
복도 끝에서 리아의 그림자가 사라졌다. 그녀는 이미 물막이 창을 빠져나가 외벽의 은빛 장식을 타고 내려간 뒤였다. 아래에는 달빛 보물고로 이어지는 좁은 회랑이 있었다.
"저 바보가!" 로반이 낮게 으르렁거렸다.
"왜 저러는 거죠?" 미라가 헐떡이며 물었다.
세리온이 대답했다.
"보물고에는 검만 있는 게 아닐 테니까."
아렌은 달렸다.
리아는 도둑이었다. 밀수꾼이었다. 그 사실을 모두가 알았다. 그러나 그녀는 돌다리 아래에서 피를 섞어 맹세한 동료이기도 했다. 강먹이의 이빨 앞에서 도망치지 않았고, 말 없는 숲에서도 그들을 버리지 않았다.
그렇다면 왜.
보물고 앞에 도착했을 때, 답은 이미 늦어 있었다.
문은 열려 있었다. 아니, 열린 것처럼 보였다. 은빛 문양들이 리아의 손목을 휘감고 있었고, 그녀는 문턱 바로 안쪽에 무릎을 꿇린 채 움직이지 못하고 있었다. 손에는 작은 은상자가 들려 있었다.
그 앞에 탈메르가 서 있었다. 그는 놀란 기색이 없었다. 오히려 기다렸다는 듯 조용히 미소 지었다.
"인간은 늘 같은 방식으로 진실을 증명하는군."
리아가 이를 악물었다.
"함정이었어."
탈메르가 고개를 기울였다.
"도둑은 함정을 탓하고, 배신자는 시대를 탓하지."
아렌이 앞으로 나섰다.
"그녀를 풀어 주십시오. 우리가 설명하겠습니다."
"설명?"
탈메르의 목소리가 차가워졌다.
"여왕의 보호를 청한 밤, 그 손님 중 하나가 여왕의 보물고에 침입했다. 이것이 설명이다."
그때 보물고 안쪽에서 그 노래가 다시 울렸다. 이번에는 훨씬 가까웠다. 은빛 안개 너머, 검 한 자루가 공중에 떠 있었다. 칼날은 별빛처럼 얇고, 손잡이에는 검은 별의 왕관과 같은 재질의 조각이 박혀 있었다.
노래하는 검.
아렌이 지닌 조각과 표식이 뜨겁게 타올랐다. 검도 그를 알아본 듯 떨었다.
탈메르가 그 반응을 보았다. 그의 미소가 사라졌다.
"역시. 길이 검을 부르는군."
곧 은빛 창을 든 전사들이 복도를 메웠다. 라에나도 달려왔지만, 그녀의 얼굴은 이미 절망을 알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이실라 여왕이 나타났다. 아무도 그녀가 오는 소리를 듣지 못했다.
여왕은 리아를 보고, 열린 보물고를 보고, 아렌의 빛나는 조각과 표식을 보았다.
"새벽까지 기다릴 필요가 없어졌구나."
아렌은 한 걸음 앞으로 나왔다.
"리아가 잘못했습니다. 하지만 우리 모두의 죄로 만들지는 마십시오."
탈메르가 즉시 말했다.
"피의 맹세를 한 자들은 하나의 운명입니다. 하나의 손이 훔쳤다면, 모두의 의지가 훔친 것입니다. 법대로라면 저들의 조각과 표식을 압수하고 궁정 밖으로 추방해야 합니다. 도둑의 손은 남기고."
미라가 창백해졌다.
로반의 검이 아주 조금 뽑혔다.
전사들의 창끝이 동시에 그를 향했다.
이실라가 손을 들었다. 모두 멈췄다.
그녀는 아렌을 바라보았다.
"별왕가의 아이야. 네 동료는 너의 길을 무너뜨렸다. 이제 선택해라."
아렌은 숨을 삼켰다.
"무슨 선택입니까?"
여왕의 눈동자에 호수의 별빛이 차갑게 흔들렸다.
"왕관의 조각과 숲의 표식을 우리에게 넘기고 저 도둑의 손을 구하라. 그러면 너희는 숲 밖으로 살아 나갈 것이다. 아니면 그것들을 지키고, 엘라닌의 법이 그녀에게 내려지는 것을 보아라."
리아가 처음으로 아렌을 보았다. 늘 웃음과 비꼼으로 가려져 있던 얼굴이 무너져 있었다. 그녀는 무언가 말하려 했지만 은빛 문양이 입술까지 감아 목소리를 빼앗았다.
아렌의 품속에서 조각과 표식이 뛰었다. 보물고 안의 검은 더 크게 노래했다. 그 노래는 그를 부르는 듯했고, 동시에 경고하는 듯했다.
멀리, 아주 멀리서 모르가스의 속삭임이 들렸다.
왕은 동료를 버리지 않는다.
아렌은 그 말이 거짓인지 진실인지 알 수 없었다.
다만 모든 창끝이 자신을 향하고, 리아의 손목을 조이는 은빛 문양이 점점 깊어지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새벽은 아직 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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