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창 너머의 밤
아렌은 마룬의 손에 떠밀려 뒤창 밖으로 굴러떨어졌다.
젖은 흙 냄새가 입안에 들어왔다. 무릎이 돌에 찍혀 뜨거운 통증이 번졌지만 소리를 낼 수 없었다. 대장간 안에서는 철문이 한 번 더 울렸다. 누군가 장갑 낀 주먹으로 문을 치고 있었다.
"왕의 명이다. 문을 열어라."
목소리는 낮고 차가웠다. 사람의 목소리였지만 사람의 숨결이 섞여 있지 않았다.
아렌은 손바닥 안의 조각을 움켜쥐었다. 별빛 문양이 새겨진 작은 쇳조각. 차가워야 할 그것은 이상하게도 심장처럼 뛰고 있었다.
뒤창 안쪽에서 마룬이 속삭였다.
"숲길로 가라. 우물 뒤 돌담을 넘고, 낡은 물레방앗간 쪽으로 달려. 절대 멈추지 마라."
"아버지."
"내 이름을 부르지 마."
그 말이 칼처럼 날아와 박혔다. 마룬은 처음으로 아렌을 보지 않았다. 그의 시선은 문 너머에 고정되어 있었다.
"네가 살아야 내가 한 일이 헛되지 않는다."
다음 순간, 대장간의 앞문이 안쪽으로 터져 나갔다.
검은 갑옷의 기사들이 들어왔다. 그들의 갑옷은 횃불을 받아도 빛나지 않았다. 오히려 불빛을 삼키는 것처럼 어두웠다. 투구에는 얼굴을 볼 틈이 없었고, 어깨에는 왕국 문장이 아닌 낯선 표식이 새겨져 있었다. 부서진 별을 감싼 가시관.
아렌은 숨을 삼켰다.
마룬이 낡은 망치를 들었다. 평소 쇠를 두드리던 그 망치였다. 그런데 그가 손잡이를 비트는 순간, 망치 머리 안에서 얇은 검날이 빠져나왔다. 푸른 선이 검등을 타고 흐르자 대장간 안의 그림자가 한 걸음 물러났다.
검은 기사 하나가 멈칫했다.
"마룬 베라스."
마룬의 얼굴에 스치는 표정은 두려움이 아니었다. 오래전부터 기다린 문이 마침내 열린 사람의 표정이었다.
"그 이름은 묻었다."
"감시자는 모두 죽었다고 들었다."
"그 말을 믿고 왔다면, 너희 주인은 아직도 어리석군."
검은 기사가 검을 뽑았다.
아렌은 더 보고 있을 수 없었다. 마룬의 눈이 한순간 뒤창을 향했다. 가라는 명령이었다.
아렌은 이를 악물고 기어 나갔다. 등 뒤에서 쇠와 쇠가 부딪쳤다. 그 소리는 대장간의 일상적인 소리와 전혀 달랐다. 쇠를 만드는 소리가 아니라, 누군가의 운명을 부수는 소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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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타는 문들
마을은 이미 밤의 것이 아니었다.
검은 기사들은 대장간에만 온 것이 아니었다. 골목마다 말발굽 소리가 울렸다. 기름 냄새가 퍼졌고, 짚지붕에 불이 옮겨붙었다. 잠에서 깬 사람들이 뛰쳐나오다 검은 창끝 앞에서 멈췄다.
"별무늬 조각을 내놓아라."
"우린 모릅니다!"
"아는 자와 모르는 자를 가를 시간이 없다."
횃불이 날아갔다. 노인 헤밀의 창고가 불기둥으로 변했다. 아이의 울음소리가 터졌고, 그 소리를 덮듯 말이 울었다.
아렌은 우물 뒤 돌담까지 달렸다. 그러나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마룬이 아직 대장간에 있었다.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았어도, 아렌에게 그는 아버지였다. 아침마다 빵을 반으로 나누어 주던 사람. 겨울밤마다 화덕 앞에서 말없이 외투를 덮어 주던 사람.
그 사람을 두고 도망가야 했다.
아렌은 돌담에 손을 얹은 채 몸을 떨었다. 손안의 별빛 조각이 더 세게 뛰었다. 마치 그에게 어느 쪽으로 가야 하는지 말하려는 것 같았다.
그때 대장간 지붕 위로 푸른 불꽃이 치솟았다.
아렌은 돌아보았다.
마룬이 문밖으로 밀려 나오고 있었다. 검은 기사 셋이 그를 둘러쌌다. 그는 어깨에 상처를 입었고, 한쪽 다리를 절고 있었다. 하지만 그의 검은 아직 떨어지지 않았다.
그가 검을 땅에 꽂자 대장간 앞의 진흙이 얼어붙듯 굳었다. 검은 기사들의 말이 앞발을 들고 비명을 질렀다. 마룬은 낮게 외쳤다.
"북문의 맹세로 명한다. 산 자의 이름을 빼앗지 못하리라."
바람이 뒤집혔다.
대장간 굴뚝에서 새하얀 불꽃이 쏟아졌다. 그것은 뜨겁게 타오르는 불이 아니라 밤을 밀어내는 빛이었다. 검은 기사 하나의 갑옷에 금이 갔다. 그 안에서 붉은 연기가 흘러나왔다. 사람의 피가 아니었다.
아렌은 그제야 알았다.
마룬은 평범한 대장장이가 아니었다.
그는 무언가를 지켜 온 사람이었다. 오래전 전쟁에서 살아남아, 이름을 버리고, 시골 마을의 화덕 뒤에 숨어 있던 칼이었다.
검은 투구를 쓴 우두머리가 말에서 내렸다. 다른 기사들보다 키가 컸고, 그의 망토 끝에는 재가 끊임없이 떨어졌다.
"감시자여, 마지막 자비를 주겠다. 아이를 넘겨라."
마룬은 피 묻은 입술로 웃었다.
"아이를 찾고 싶다면, 먼저 아버지를 지나가라."
검은 투구가 손을 들었다.
대장간 뒤편의 장작더미가 폭발했다. 불길과 연기가 골목을 삼켰다. 아렌은 자신도 모르게 소리쳤다.
"아버지!"
마룬이 그 소리를 들었다.
그는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대신 검을 거꾸로 잡고 자기 앞의 땅을 찍었다. 땅속에서 오래된 쇠사슬 같은 빛이 솟구쳤다. 검은 기사들의 발을 묶고, 불길을 갈라 길을 만들었다. 그 길은 아렌 쪽이 아니라 숲으로 이어져 있었다.
마룬의 마지막 명령이 바람을 타고 왔다.
"달려!"
노래 없는 음유시인
아렌은 달렸다.
울음도 나오지 않았다. 숨이 가슴을 찢었다. 돌담을 넘고, 닭장이 무너진 마당을 가로질렀다. 뒤에서는 집들이 하나씩 무너졌다. 가시울의 밤하늘은 붉어졌고, 검은 재는 눈처럼 내렸다.
물레방앗간 근처에서 누군가 그의 팔을 낚아챘다.
아렌은 반사적으로 주먹을 휘둘렀다. 손목이 가볍게 잡혔다.
"살고 싶으면 조용히 해."
세리온이었다.
낮에는 낡은 류트를 메고 웃던 떠돌이 음유시인. 지금 그는 웃고 있지 않았다. 망토 안쪽에서 짧은 단검이 두 자루 빛났고, 허리에는 여행자의 것치고는 너무 정교한 은색 나침반이 매달려 있었다.
"당신이 왜 여기 있어?"
"네가 이쪽으로 올 줄 알았으니까."
"아버지가—"
"안다."
"안다고?"
아렌이 세리온의 멱살을 잡았다.
"알면서 왜 도와주지 않았어? 당신도 검을 숨기고 있었잖아. 노래나 부르는 사람이 아니잖아!"
세리온의 눈이 어둡게 흔들렸다. 그는 잠시 대답하지 않았다. 그 침묵이 아렌을 더 미치게 했다.
"마룬은 네가 도망칠 시간을 벌고 있다. 내가 뛰어들었다면, 너희 둘 다 죽었을 거다."
"거짓말."
"그래. 어쩌면 거짓말처럼 들릴 거다. 하지만 지금은 네 분노보다 빠른 말이 필요하다."
세리온은 아렌을 방앗간 안으로 끌고 들어갔다. 물레는 멈춰 있었고, 바닥에는 마른 밀가루가 흩어져 있었다. 그는 벽장 뒤의 널빤지를 뜯어내더니 숨겨진 좁은 통로를 드러냈다.
"감시자들의 길이다. 예전에는 이 마을에도 하나쯤 있어야 했지."
아렌은 숨을 몰아쉬었다.
"감시자라니. 대체 그게 뭔데?"
세리온이 통로 안으로 먼저 들어가며 말했다.
"왕국이 세워지기 전부터 검은 별을 감시하던 사람들. 왕관이 다시 깨어나지 못하게, 이름 없는 아이들이 사냥당하지 않게 지키던 자들."
"이름 없는 아이들?"
"너처럼."
아렌의 발이 멈췄다.
세리온이 돌아보았다.
"지금 설명하면 넌 믿지 못할 거다. 짧게 말하마. 마룬은 마지막 감시자 중 하나였고, 나머지는 대부분 죽었다. 서쪽 탑의 리엘, 하얀 강의 오르딘, 남쪽 수도원의 세 자매까지. 모두 같은 밤에 살해당했다."
"누가?"
세리온은 대답하기 전, 통로 위쪽을 보았다. 말발굽 소리가 가까워지고 있었다. 검은 기사들이 물레방앗간까지 온 것이다.
"왕의 이름을 빌린 자들. 하지만 왕의 병사들이 아니다."
"그럼 누구야?"
천장 틈으로 검은 연기가 스며들었다. 세리온은 아렌의 어깨를 밀었다.
"저들이 스스로 부르는 이름은 모른다. 죽은 자들은 그들을 밤에 온 기사들이라 불렀다."
위에서 문이 부서졌다.
세리온은 손가락으로 허공에 짧은 원을 그렸다. 그러자 통로 입구의 그림자가 물처럼 출렁이며 벽장 모양으로 굳었다.
"마법이야?"
"잔재다. 진짜 마법은 대가를 요구하지. 이런 속임수는 기억을 조금 빌릴 뿐이다."
그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말처럼 가벼운 일이 아닌 모양이었다.
둘은 좁은 땅굴을 기어갔다. 위에서는 발소리가 지나갔다. 금속이 바닥을 긁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한 목소리가 통로를 꿰뚫었다.
"아이야."
아렌은 얼어붙었다.
검은 투구의 우두머리였다. 벽과 흙과 어둠을 사이에 두고도, 그 목소리는 바로 귓가에서 들렸다.
"네 손에 든 것은 네 것이 아니다. 그것은 왕관의 첫 번째 이빨이다. 돌려주면 너의 마을은 더 타지 않을 것이다."
아렌의 손가락이 떨렸다.
세리온이 그의 입을 막았다.
위쪽의 목소리가 낮게 웃었다.
"마룬 베라스는 거짓말쟁이다. 그는 네 아버지가 아니다. 네 피가 누구의 것인지 알면, 너는 먼저 그를 저주하게 될 것이다."
아렌의 눈이 커졌다.
세리온은 고개를 저었다. 듣지 말라는 뜻이었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그 말은 불붙은 화살처럼 마음에 박혔다.
재 속의 목소리
땅굴은 마을 밖 개울가로 이어져 있었다.
아렌이 밖으로 기어 나왔을 때, 가시울은 불타는 그릇처럼 보였다. 집들이 무너지고, 검은 재가 하늘로 솟았다가 다시 떨어졌다. 대장간 자리에서는 아직 푸른빛이 희미하게 흔들렸다. 마룬의 빛인지, 불의 장난인지 알 수 없었다.
아렌은 그쪽으로 한 걸음 내디뎠다.
세리온이 붙잡았다.
"돌아가면 죽는다."
"확인해야 해."
"확인하는 순간 네가 죽고, 마룬이 지킨 모든 것도 죽는다."
아렌은 세리온을 밀쳐냈다. 그러나 다리가 풀려 무릎을 꿇었다. 눈물이 그제야 흘렀다. 뜨겁고 부끄러운 눈물이었다.
"왜 나야?"
세리온은 대답하지 않았다.
불타는 마을에서 종소리가 울렸다. 누군가 마지막 힘으로 종탑의 줄을 잡아당기고 있는 듯했다. 한 번, 두 번, 세 번. 그 뒤로 종소리는 끊겼다.
세리온은 개울가 덤불에 묶어 둔 작은 회색말 두 필을 끌고 왔다.
"북쪽 길은 막혔다. 왕도로도 가면 안 된다. 잿가지숲 가장자리를 돌아 오래된 돌다리로 간다."
"왜 거기야?"
"마룬이 네게 남긴 다음 길이 거기 있을 거다."
아렌은 손안의 조각을 내려다보았다. 별빛 문양 사이로 검은 재가 묻어 있었다. 그는 그것을 물에 씻어 내려 했지만, 재는 지워지지 않았다. 오히려 문양 안으로 스며들었다.
그때, 세상이 조용해졌다.
불타는 소리도, 말의 숨소리도, 세리온이 재촉하는 목소리도 멀어졌다. 아렌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구름 사이에 별 하나가 있었다.
검지 않은 별. 그러나 밝지도 않은 별. 마치 아주 오래전에 죽었지만 아직 빛이 도착하지 않은 별처럼, 차갑고 먼 빛이었다.
그 별이 그를 보았다.
아렌은 그렇게 느꼈다.
그리고 목소리가 들렸다.
아렌.
그는 숨을 멈췄다.
목소리는 남자도 여자도 아니었다. 늙지도 젊지도 않았다. 먼 산맥 아래 묻힌 왕의 한숨 같았고, 아직 태어나지 않은 아이의 첫 울음 같았다.
아렌, 문이 깨어난다.
손안의 조각이 뜨겁게 달아올랐다. 그는 놓치려 했지만 손가락이 펴지지 않았다.
돌다리 아래에서 맹세를 찾아라.
"아렌!"
세리온의 외침에 세상이 돌아왔다. 불길이 다시 타올랐고, 말이 앞발을 굴렀다. 아렌은 비틀거리며 일어섰다.
저 멀리 마을 입구에서 검은 투구의 기사가 고개를 돌렸다. 거리가 너무 멀어 얼굴은 보이지 않았지만, 아렌은 알았다.
그도 방금 그 목소리를 들었다.
검은 기사가 천천히 손을 들어 아렌을 가리켰다. 그러자 불타는 골목 사이에서 재늑대들이 하나둘 나타났다. 붉은 눈이 밤을 찢었다.
세리온이 아렌을 말 위로 밀어 올렸다.
"이제 정말 달려야 한다."
아렌은 마지막으로 가시울을 보았다. 그가 알던 모든 것이 불 속에 있었다. 마룬도, 대장간도, 평범한 아침도.
그는 별빛 조각을 가슴에 넣고 고삐를 움켜쥐었다.
회색말이 어둠 속으로 뛰쳐나갔다. 뒤에서는 재늑대들의 울음이 따라붙었다. 앞에는 잿가지숲의 검은 줄기가 입을 벌리고 있었다.
그리고 아렌의 귓가에는 아직도 그 낯선 별의 마지막 말이 남아 있었다.
네 이름을 빼앗기기 전에, 진짜 이름을 기억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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