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모르는 사람이 전화를 걸어 "AI가 이 번호를 알려줬다"고 말한다면, 문제는 단순한 스팸이 아닙니다. 상대는 당신을 배관공, 집주인, 채용 담당자, 병원, 가게 주인으로 믿고 있고, 당신은 "기계가 틀렸다"는 사실을 매번 증명해야 합니다.
최근 MIT Technology Review는 AI 챗봇이 실제 사람의 전화번호를 엉뚱한 인물이나 사업체의 연락처처럼 제시하는 사례를 다뤘습니다.1 중요한 점은 이것이 단순한 환각 문제가 아니라는 겁니다. 실존 번호가 잘못된 맥락에 붙어, 누군가의 삶이나 사업에 대한 "기본 답변"으로 재사용되는 연락처 오배정 문제에 가깝습니다.
왜 내 번호가 남의 답이 될 수 있나
챗봇은 전화번호를 허공에서만 만들어내지 않습니다. 오래된 웹페이지, 폐업한 업체 목록, 지역 커뮤니티 게시글, PDF 이력서, 행사 안내문, 유출된 데이터, 검색 결과 스니펫 같은 조각들이 모델이나 검색 보강 시스템에 들어갑니다.
문제는 이 조각들이 항상 최신도 아니고, 항상 정확히 연결돼 있지도 않다는 점입니다. 예를 들어 어떤 번호가 과거에는 소규모 업체의 연락처였지만 지금은 개인 번호가 됐을 수 있습니다. 또는 게시판에 "홍길동에게 문의"라는 문장과 전화번호가 함께 있었지만, 실제 번호 주인은 전혀 다른 사람일 수 있습니다.
여기에 챗봇의 답변 방식이 겹칩니다. 사용자는 "서울 ○○동 누수 수리 전화번호 알려줘"처럼 완성된 답을 기대합니다. 시스템은 모호성을 설명하기보다 가장 그럴듯한 연결을 만들어냅니다. 그래서 오류는 "없는 정보를 지어낸 것"이 아니라 "있는 번호를 잘못 배달한 것"으로 나타납니다.
실무적으로는 이 차이가 큽니다. 환각이면 정정 요청의 초점이 모델 답변에 있지만, 연락처 오배정이면 원천 페이지, 검색 인덱스, 업체 목록, AI 플랫폼을 함께 봐야 합니다.
AI 때문에 걸려오는 전화인지 확인하는 법
먼저 일반 스팸과 구분해야 합니다. AI 오배정 전화는 대개 반복되는 문장이 있습니다. "여기가 ○○ 맞죠?", "챗GPT가 알려줬어요", "AI 검색에서 이 번호가 나왔어요"처럼 출처를 언급하거나, 같은 업종·인물·지역을 계속 묻습니다.
전화를 끊기 전에 짧게 물어보는 것이 좋습니다.
어떤 챗봇이나 검색 서비스가 알려줬는지
정확히 어떤 질문을 입력했는지
답변 화면에 나온 이름, 업체명, 주소가 무엇인지
가능하면 스크린샷을 받을 수 있는지
그다음 자신의 번호를 따옴표로 묶어 검색해 보세요. 번호와 함께 반복되는 단어도 같이 검색합니다. 예를 들어 "010-1234-5678" 배관, "01012345678" 원룸, "010-1234-5678" 채용처럼 조합합니다.
검색 결과에 안 나온다고 끝은 아닙니다. 챗봇은 현재 검색 결과뿐 아니라 오래된 페이지, 캐시, 제휴 데이터, 과거 크롤링 자료의 영향을 받을 수 있습니다. 다만 공개 웹에 남아 있는 원천을 찾으면 해결 가능성이 훨씬 커집니다.
먼저 할 일은 '항의'가 아니라 증거 정리다
가장 시간을 아끼는 순서는 이렇습니다.
첫째, 기록합니다. 날짜, 시간, 발신자 설명, 언급된 챗봇, 잘못 연결된 이름이나 사업체를 표로 남기세요. 반복 패턴이 있어야 플랫폼이나 사이트 운영자에게 설명할 수 있습니다.
둘째, 통화 응대 문구를 정합니다. "이 번호는 해당 업체와 무관합니다. 어떤 AI 서비스에서 보셨는지 알려주시면 정정 요청에 쓰겠습니다." 정도면 충분합니다. 감정 소모를 줄이는 장치입니다.
셋째, 원천 페이지를 지웁니다. 오래된 블로그, 협회 명단, 중고거래 글, 행사 PDF, 폐업 업체 목록에 번호가 남아 있다면 운영자에게 수정·삭제를 요청합니다. Google도 일부 개인정보나 연락처가 검색 결과에 노출될 때 삭제 요청 절차를 제공합니다.2
넷째, AI 서비스에 정정 요청을 보냅니다. 이때 "내 번호를 지워달라"보다 "이 번호가 특정 업체/인물의 연락처로 잘못 제시된다"는 식으로 오류 맥락을 구체화해야 합니다. 스크린샷, 프롬프트, 답변 시간, 잘못된 연결 대상을 함께 보내는 편이 좋습니다.
다섯째, 통신사 차원의 차단 도구를 씁니다. 완전한 해결책은 아니지만 반복 전화의 피해를 줄일 수 있습니다. 미국 FCC도 원치 않는 전화와 문자에 대해 통신사 차단 기능과 신고 절차를 안내합니다.3 한국에서도 통신사 스팸 차단 앱, 후후·T전화 같은 식별 도구, 수신 차단 목록을 병행할 수 있습니다.
번호 변경은 마지막 카드입니다. 바꾸면 당장의 전화는 줄 수 있지만, 새 번호도 언젠가 다른 데이터와 연결될 수 있습니다. 은행, 병원, 거래처, 2단계 인증까지 바꿔야 하는 비용도 큽니다.
번호를 숨길지, 제대로 공개할지 결정해야 한다
예방의 핵심은 "전화번호를 인터넷에 절대 올리지 말라"가 아닙니다. 프리랜서, 병원, 학원, 지역 가게는 연락처가 공개돼야 장사가 됩니다. 문제는 개인 번호와 공개 번호가 섞이는 순간입니다.
개인과 업무 번호를 분리하세요. 가능하면 별도 회선, 인터넷 전화, 대표번호, 착신 전환 서비스를 씁니다. 오래된 프로필, 발표 자료, 채용 공고, PDF 하단, 커뮤니티 자기소개에 개인 번호가 남아 있는지도 주기적으로 확인해야 합니다.
반대로 사업자라면 공식 연락처 페이지를 명확히 만드는 것이 도움이 됩니다. 업체명, 주소, 영업시간, 대표번호를 일관되게 유지하면 AI와 검색 시스템이 엉뚱한 조각을 붙일 여지가 줄어듭니다. 숨기는 전략과 정리해서 공개하는 전략 사이에는 트레이드오프가 있습니다. 고객 접점을 줄이면 오배정 위험은 낮아지지만, 정상적인 문의도 줄어듭니다.
지금 신경 써야 할 사람은 유명인만이 아닙니다. 개인 번호를 이력서, 블로그, 동호회, 소상공인 페이지, 부동산 글, 과거 사업자 등록 흔적에 남긴 사람 모두가 대상입니다. AI 시대의 개인정보 관리는 "내 번호가 공개됐는가"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야 합니다. 더 중요한 질문은 이것입니다. 내 번호가 누구의 답으로 학습되고 있는가.
참고
1AI chatbots are giving out people's real phone numbers
2Remove select personally identifiable info or doxxing content from Google Sear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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