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이 다시 잠든 뒤
사자들이 벽으로 돌아간 뒤에도 밤은 원래 자리로 돌아가지 않았다.
이슈타르 문의 푸른 벽돌은 다시 차갑고 아름다운 얼굴을 하고 있었다. 부조의 사자들은 움직이지 않았고, 행렬길의 긴 그림자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바닥에 붙어 있었다. 그러나 서하는 알았다. 어떤 일은 끝난 뒤에야 진짜로 시작된다. 깨어난 벽보다 더 무서운 것은, 그 벽이 다시 잠든 척할 때였다.
벨리투는 서하의 팔을 잡아끌며 골목 안쪽으로 몸을 낮췄다. 그녀의 걸음은 빠르지 않았지만 망설임이 없었다. 어디에 그림자가 깊고, 어느 담 아래에 개가 묶여 있으며, 어느 집 지붕에서 보초가 내려다보는지 알고 있는 사람의 걸음이었다.
"고개 숙여. 문을 보지 마."
서하는 숨을 고르며 물었다.
"왜요?"
"지금 저 문을 오래 보는 사람은 둘 중 하나로 보일 거야. 두려움에 붙잡힌 사람, 아니면 두려움을 일으킨 사람."
그 말에 서하는 곧장 시선을 내렸다.
새벽은 아직 멀었지만 도시는 이미 잠에서 깨어 있었다. 문 가까운 집들의 문틈 사이로 등불이 번졌다. 누군가는 항아리에서 물을 떠 문지방에 뿌렸고, 누군가는 문 위에 말린 대추야자 잎을 묶었다. 아이가 울자 어른이 급히 입을 막았고, 늙은 남자는 하늘을 보며 낮은 기도를 중얼거렸다. 아무도 사자를 말하지 않았다. 아무도 벽이 움직였다고 말하지 않았다.
그 침묵이 오히려 더 크게 들렸다.
서하는 낮의 바빌론을 떠올렸다. 시장에서 값 흥정하던 목소리, 빵 굽는 화덕 냄새, 운하를 오가는 사람들의 발소리. 그 모든 것들이 도시를 살아 있게 만들었다. 그런데 지금의 바빌론은 살아 있는 몸이 아니라 숨을 참은 거대한 짐승 같았다. 누가 먼저 잘못된 이름을 부르는지 기다리는 짐승.
이슈타르 문 아래에서는 병사들이 조용히 움직이고 있었다. 몇 명은 깨진 유약 조각을 쓸어 담았고, 두 명의 장인은 사자 부조의 눈가를 급하게 문질렀다. 그들의 손놀림은 능숙했지만 얼굴은 창백했다. 한 병사가 낮게 말했다.
"낡은 벽돌이 떨어진 것뿐이다. 누구에게도 다르게 말하지 마라."
그 말을 들은 장인은 고개를 끄덕였지만, 손에 쥔 천은 계속 떨리고 있었다.
서하는 그제야 깨달았다. 공동체는 진실을 몰라서 불안한 것이 아니었다. 모두가 어느 정도는 알고 있었다. 다만 각자 다른 이름으로 그것을 덮고 있을 뿐이었다. 낡은 벽돌. 나쁜 징조. 취객의 헛소리. 신들의 노여움. 왕궁의 문제. 신전의 문제. 서로 다른 말들은 사람들 사이에 얇은 벽을 세웠다.
같은 밤을 겪고도, 사람들은 같은 진실 안에 서 있지 않았다.
벨리투가 서하를 좁은 골목으로 밀어 넣었다. 뒤쪽에서 병사의 발소리가 지나갔다. 두 사람은 흙벽에 등을 붙인 채 숨을 죽였다. 벽 너머 어디선가 물방울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똑.
서하의 몸이 굳었다.
똑.
벨리투의 손이 서하의 손목을 눌렀다. 말하지 말라는 뜻이었다. 서하는 입술을 깨물었다. 목구멍까지 올라온 질문을 삼켰다. 누구냐고 묻고 싶었다. 압수냐고, 벨-에테르냐고, 아니면 자기 안에서 깨어나려는 또 다른 기억이냐고.
하지만 물소리는 대답을 기다리는 것처럼 세 번째로 떨어졌다.
똑.
서하는 눈을 감았다. 머릿속 깊은 곳에서 누군가가 아주 낮게 웃는 느낌이 났다. 말해 봐. 이름을 부르면 길이 열린다. 그 유혹은 달콤하지 않았다. 오히려 오래된 습기처럼 차갑고 끈질겼다.
서하는 이를 악물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잠시 뒤 물소리는 멎었다. 벽리투는 그제야 손을 놓았다. 그녀의 손바닥에도 식은땀이 배어 있었다.
"잘했어."
"저 소리도 아까 그 진흙이랑 같은 거예요?"
"같다고 말하면 너무 단순하고, 다르다고 말하면 너무 위험해. 지금은 대답하지 않는 것만 기억해."
서하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마음은 더 무거워졌다.
이곳에서는 침묵이 무지가 아니었다. 침묵은 때로 살아남는 방법이었고, 때로 배신의 모양이었다. 문제는 둘을 구별하기 어렵다는 데 있었다.

말하지 않은 것의 무게
벨리투가 서하를 데려간 곳은 신전도 왕궁도 아니었다. 행렬길에서 벗어난 작은 안뜰이었다. 낮에는 곡물 자루와 빈 항아리를 쌓아 두는 창고로 쓰는 듯했지만, 지금은 벽 한쪽에 작은 등불이 걸려 있었다. 등불의 불꽃은 바람도 없는데 자꾸 한쪽으로 기울었다.
안뜰 가운데에는 금이 간 물동이가 놓여 있었다. 서하는 그것을 보자마자 한 걸음 물러났다.
벨리투가 물동이를 천으로 덮었다.
"여긴 오래 머물 곳이 아니야. 네 상처를 다시 보고, 해가 뜨기 전에 움직일 거야."
"샤마시의 법정으로요?"
"그래. 하지만 곧장 들어갈 수는 없어. 오늘 밤 문에서 있었던 일이 법정에 먼저 닿으면, 네가 증인이 아니라 원인으로 세워질 수도 있어."
서하는 대답하지 못했다.
원인.
사자들은 그녀를 향해 달려들었다. 검은 진흙은 그녀를 알아보았다. 이름을 기억하는 자. 그 말은 아직도 귀 안쪽에 남아 있었다. 만약 누군가가 이 모든 일을 오래전부터 준비했다면, 서하가 이곳에 온 것도 우연이 아닐 수 있었다. 그렇다면 자신은 피해자일까, 열쇠일까. 아니면 누군가가 열쇠라고 믿고 있는 사람일까.
벨리투는 서하의 뺨에 감긴 천을 풀었다. 상처는 깊지 않았지만 열이 있었다. 그녀는 향유를 조금 덧바르고 새 천으로 묶었다.
"아파?"
"조금요."
"조금이라고 말하는 사람은 대개 많이 아픈 거야."
그 말에 서하는 희미하게 웃었다. 웃음은 금방 사라졌지만, 그 짧은 순간이 이상하게 낯설었다. 방금 전까지 벽돌 사자에게 쫓기던 사람이 웃을 수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벨리투는 피 묻은 천을 접으며 말했다.
"너는 계속 생각하고 있지."
"무엇을요?"
"누가 거짓말을 했는지."
서하는 부정하지 않았다.
거짓말은 소리로만 이루어지지 않았다. 신-이딘이 푸른 유약 조각을 우연히 주웠다고 말했을 때, 그의 소매에 묻어 있던 가루가 거짓말이었다. 일루-타비가 문에 가지 말라고 했을 때, 그 경고 안에 숨은 두려움이 거짓말이었다. 벨리투가 자신을 믿지 않는다고 말했을 때도, 그 말은 정직했지만 동시에 아직 숨긴 것이 있다는 뜻이었다.
그리고 서하 자신도 마찬가지였다.
윤서하라는 이름으로 이곳에 서 있으면서, 그녀는 벨-에테르라는 이름을 완전히 부정하지 못했다. 그 이름은 낯선 옷처럼 몸에 맞지 않았지만, 어떤 순간에는 자기 피부보다 먼저 반응했다. 쐐기문자의 획을 볼 때, 물소리가 깊은 곳에서 울릴 때, 운명의 서판 문양이 손목 안쪽에서 차갑게 빛날 때.
그녀는 자신이 모르는 것을 숨기고 있었다. 모른다는 사실 자체를.
"저는 사실을 알고 싶은 줄 알았어요."
서하가 천천히 말했다.
"그런데 지금은 사실보다 더 무서운 게 있어요. 사람들이 왜 말하지 않는지 모르겠어요. 저를 속이려고 침묵하는 건지, 저를 지키려고 침묵하는 건지, 아니면 자기 자신을 지키려고 그러는 건지."
벨리투는 잠시 손을 멈췄다.
"대부분은 셋 다야."
그 말이 너무 담담해서 서하는 오히려 숨이 막혔다.
벨리투는 등불 심지를 조금 낮추었다. 불꽃이 작아지자 안뜰의 그림자가 더 깊어졌다.
"사람은 한 가지 이유로만 침묵하지 않아. 특히 신들의 이름이 걸린 일에서는 더 그래. 누군가는 두려워서 입을 다물고, 누군가는 명령을 받아서 입을 다물고, 누군가는 사랑하는 사람을 잃지 않으려고 입을 다물어. 그런데 밖에서 보면 모두 같은 침묵처럼 보이지."
서하는 손목의 팔찌를 내려다보았다. 샘 기호는 조용했다. 너무 조용해서 오히려 불안했다.
"그럼 어떻게 구분해요?"
벨리투는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창대를 벽에 기대 세우고, 깨진 푸른 유약 조각을 천 위에 올려놓았다.
"완전히 구분할 수는 없어. 다만 누가 침묵 끝에 무엇을 선택하는지 보면 돼. 침묵은 입을 닫는 일이고, 선택은 발을 옮기는 일이니까."
그때 안뜰 바깥에서 작은 돌이 굴러가는 소리가 났다.
벨리투는 순식간에 창을 잡았다. 서하도 몸을 굳혔다. 등불이 또 한 번 한쪽으로 기울었다. 문틈 아래로 사람 그림자가 내려앉았다.
낮은 목소리가 들렸다.
"나야. 열어."
서하는 그 목소리를 알아들었다.
일루-타비였다.
돌아온 경고
벨리투는 문을 열지 않았다.
"이름을 말해."
밖의 남자는 잠시 침묵했다.
"이런 밤에 문 앞에서 이름을 묻는 건 좋은 습관이 아니오, 여사제."
"이런 밤에 문 앞에 서 있는 것도 좋은 습관은 아니지."
벨리투의 창끝이 문짝을 향했다. 서하는 두 사람 사이에 놓인 긴장 때문에 목덜미가 서늘해졌다. 마침내 밖의 남자가 아주 낮게 말했다.
"일루-타비. 별의 방으로 가는 길을 알고, 물소리에 대답하지 말라 경고한 사람."
벨리투는 서하를 보았다. 서하가 고개를 끄덕이자 그제야 빗장을 풀었다.
일루-타비는 어둠을 두른 사람처럼 안으로 들어왔다. 낡은 외투의 자락에는 먼지가 묻어 있었고, 숨은 평소보다 거칠었다. 그는 서하의 얼굴에 감긴 천을 보자 표정이 잠깐 무너졌다. 아주 짧은 순간이었다. 그러나 서하는 보았다. 안도와 죄책감이 동시에 스쳐 지나가는 것을.
"살아 있었구나."
서하의 가슴 안쪽에서 무언가가 단단하게 굳었다.
"그 말을 하러 왔어요?"
일루-타비는 입술을 다물었다.
"아니. 늦기 전에 떠나라고 하러 왔다."
벨리투가 차갑게 물었다.
"어디로?"
"강 쪽으로. 동쪽 운하에 아직 닫히지 않은 작은 수문이 있다. 해가 뜨기 전에 나가면 추적을 피할 수 있어."
서하는 그를 똑바로 보았다.
"저는 샤마시의 법정으로 가야 해요."
"그러니까 떠나야 한다."
일루-타비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법정은 진실이 스스로 걸어 들어가 앉는 곳이 아니다. 누군가의 손에 올려진 말만 저울 위에 올라가지. 오늘은 특히 그래. 네가 그곳에 서면 그들은 네가 한 말보다 네가 가진 이름을 먼저 볼 거다."
벨리투가 눈을 가늘게 떴다.
"그들이라니. 왕궁인가? 에사길라인가?"
"둘을 그렇게 쉽게 나누지 마라."
그 대답은 벨리투의 신경을 건드리기에 충분했다.
"나누지 말라고 말하는 사람들은 대개 둘 사이를 오가더군."
일루-타비는 그녀를 바라보았다. 피곤한 얼굴이었다. 그러나 피곤함이 결백의 증거는 아니었다.
서하는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문에서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고 있었죠."
"알고 있었다면 널 혼자 보내지 않았을 거다."
"하지만 문에 가지 말라고 했어요. 이름을 부르지 말라고 했고요. 그건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 할 수 있는 경고가 아니에요."
일루-타비의 눈가가 미세하게 떨렸다.
"나는 문이 흔들리고 있다는 것만 알았다. 누가 수호자의 몸에 굶주린 이름을 덧씌우고 있다는 것까지는 몰랐어."
벨리투의 창끝이 조금 올라갔다.
"우리는 아직 그 이야기를 하지 않았는데."
안뜰이 조용해졌다.
일루-타비는 자신이 너무 많이 말했다는 것을 깨달은 사람처럼 숨을 멈췄다. 서하의 손목에서 팔찌가 차갑게 조여들었다. 신뢰는 늘 큰 배신으로만 깨지는 것이 아니었다. 때로는 너무 빨리 나온 한마디가 돌이킬 수 없는 금을 냈다.
"누구에게 들었어요?"
서하가 물었다.
일루-타비는 대답 대신 물동이를 보았다. 천으로 덮여 있었지만 그 아래 금 간 입구가 어둠 속에서 입처럼 벌어져 있는 듯했다.
"밤은 벽보다 말이 빠르다."
"그건 대답이 아니에요."
"대답이 될 수 없는 질문도 있다."
서하는 웃지 않았다.
"그 말도 이제 지겨워요."
일루-타비의 얼굴에 아픔 같은 것이 스쳤다.
"서하야."
그가 처음으로 그녀의 이름을 그렇게 불렀다. 윤서하도, 벨-에테르도 아닌 이름. 이 세계에 완전히 속하지 않지만 그녀가 끝까지 놓지 않으려는 이름. 이상하게도 그 한마디는 방패처럼 따뜻했고, 동시에 사슬처럼 무거웠다.
"나는 네가 살아 있기를 바란다."
"그게 누구 편이라는 뜻은 아니죠."
일루-타비는 대답하지 못했다.
그 침묵이 대답이었다.
푸른 가루의 주인
안뜰 바깥에서 이번에는 더 급한 발소리가 들렸다. 벨리투가 낮게 욕을 삼켰다.
"오늘 밤은 손님이 많군."
문이 열리기도 전에 익숙한 목소리가 속삭였다.
"서하, 안에 있어? 제발 대답하지 말고 문만 열어."
신-이딘이었다.
벨리투는 일루-타비를 벽 쪽으로 물러서게 하고 나서야 문을 열었다. 신-이딘은 거의 넘어지듯 들어왔다. 그는 평소보다 더 젊어 보였다. 아니, 더 겁먹은 사람처럼 보였다. 손에는 작은 점토판을 감싼 천이 들려 있었고, 손톱 밑에는 푸른 가루가 끼어 있었다.
서하는 그것을 먼저 보았다.
신-이딘도 서하의 시선을 알아차렸다. 그는 황급히 손을 뒤로 감췄다. 그 동작이 너무 늦었다.
"우연히 묻은 게 아니죠."
서하의 목소리는 자신이 듣기에도 낯설 만큼 차가웠다.
신-이딘은 입을 열었다가 닫았다. 예전 같으면 서하는 그가 변명할 틈을 주었을 것이다. 당황한 표정과 선한 눈빛을 보고, 그에게도 이유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오늘 밤의 벽돌 사자들은 사람을 빨리 믿는 일이 얼마나 위험한지 가르쳐 주었다.
벨리투가 신-이딘의 손목을 잡아 끌었다. 푸른 가루가 등불 아래에서 희미하게 빛났다.
"이슈타르 문의 유약이야. 훔쳤나?"
신-이딘이 고개를 저었다.
"훔친 게 아니야. 떼어 낸 거야."
"말을 바꿔도 손이 깨끗해지진 않아."
서하가 조용히 말했다.
"당신은 제게 그 조각을 우연히 주웠다고 했어요."
신-이딘은 눈을 감았다.
"미안해."
그 사과는 빨랐다. 그러나 빠른 사과는 때로 늦은 진실보다 더 불안했다.
"왜 거짓말했어요?"
"네가 그 조각을 받아야 했으니까."
"그게 대답이에요?"
신-이딘은 천천히 숨을 내쉬었다. 그는 품에 안고 있던 작은 점토판을 바닥에 내려놓았다. 점토판은 아직 완전히 마르지 않아 가장자리가 어둡게 젖어 있었다.
"사흘 전, 문 수리공들이 부조 하나를 갈아 끼운다는 소문을 들었어. 이상했지. 왕의 길에 있는 벽돌은 함부로 바꾸지 않아. 기록이 남고, 사제의 허락이 필요하고, 왕궁 창고의 봉인이 있어야 해. 그런데 그날 밤에는 아무 기록도 없었어."
그는 손톱 밑의 푸른 가루를 내려다보았다.
"그래서 갔어. 이미 늦었지만, 부조 눈가에 검은 진흙이 남아 있었고 누군가 아주 작은 표식을 벽돌 안쪽에 새겨 두었더라. 나는 그걸 떼어 냈어. 전부는 못 떼고 조각 하나만."
벨리투가 물었다.
"왜 네가? 왕궁 서기관도 아니면서."
"나는 왕궁 서기관은 아니지만, 왕궁 서고에 드나드는 사람들의 글씨를 알아. 그리고 그 표식은 왕궁 기록용 손이 아니었어. 신전 손도 아니었고."
일루-타비가 처음으로 끼어들었다.
"그럼 누구의 손이지?"
신-이딘은 그를 보더니 입술을 굳게 다물었다.
그 침묵은 방금 전 일루-타비의 침묵과 닮아 있었다. 서하는 두 사람을 번갈아 보았다. 서로 모르는 사이처럼 서 있었지만, 완전히 낯선 사람들의 거리감은 아니었다. 어쩌면 같은 문을 다른 시간에 지나온 사람들. 어쩌면 같은 거짓말의 반대편에 서 있는 사람들.
서하는 물었다.
"두 사람, 전에 만난 적 있어요?"
신-이딘이 너무 빨리 말했다.
"아니."
일루-타비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 차이가 더 많은 것을 말해 주었다.
서하는 가슴속에서 무언가가 무너지는 소리를 들었다. 신-이딘은 그녀를 도왔다. 푸른 조각은 실제로 사자들을 잠깐 흔들었다. 그러나 도움은 결백과 같지 않았다. 누군가를 구하는 손이 동시에 다른 진실을 숨길 수도 있었다.
"당신은 제가 그 조각을 어떻게 쓸 줄 알았어요?"
신-이딘은 고개를 들지 못했다.
"누군가 말했어. 벽돌의 기억을 깨울 사람은 이름을 잃어버린 서기관이라고."
안뜰의 공기가 식었다.
벨리투가 낮게 말했다.
"누가?"
"모르겠어."
"그 말을 믿으라고?"
신-이딘의 목소리가 흔들렸다.
"정말이야. 별의 방에서였어. 사람이 말한 건지, 벽 안에서 울린 건지 알 수 없었어. 그런데 그 말이 나온 뒤, 봉인된 서가의 점토판 하나가 저절로 갈라졌어. 그 안쪽에 이 표식이 있었고."
그는 점토판을 감싼 천을 풀었다.
작은 점토판에는 서하가 별의 방에서 베껴 온 표식과 같은 모양이 눌려 있었다. 별처럼 보이기도 하고 물결처럼 보이기도 하는, 너무 작은 균열의 문양.
서하는 천주머니에서 자신이 가진 표식을 꺼냈다. 두 문양은 같은 뿌리에서 갈라진 것처럼 닮아 있었다. 그러나 완전히 같지는 않았다. 신-이딘의 점토판에는 문양 한쪽 끝에 아주 짧은 갈고리 모양 획이 덧붙어 있었다.
벨리투가 그것을 보고 눈썹을 찌푸렸다.
"이건 법정에서 쓰는 획이야."
"법정?"
"샤마시의 판결문에서 특정 증언을 표시할 때 쓰는 작은 갈고리. 보통 사람은 흘려보지만, 낭독자는 놓치지 않아."
일루-타비가 아주 낮게 말했다.
"태양의 혀."
서하와 벨리투, 신-이딘의 시선이 동시에 그에게 꽂혔다.
이번에는 일루-타비도 피하지 못했다.
빈 저울의 소문
일루-타비는 오래된 사람처럼 피곤한 얼굴로 말했다.
"샤마시의 법정에는 빛이 처음 닿는 자리가 있다. 판결이 시작되기 전, 낭독자가 그 자리에서 고소와 증언과 이름을 읽는다. 사람들은 그를 태양의 혀라고 부르지만, 사실 그 말은 사람만 뜻하지 않아."
그는 손가락으로 바닥에 긴 선을 그었다. 그리고 그 끝에 짧은 갈고리를 붙였다.
"법정 천장에는 새벽빛을 받아들이는 좁은 틈이 있다. 빛은 곧장 청동판 위에 떨어지고, 그 청동판은 저울의 혀처럼 아주 얇게 흔들리지. 거기 닿은 말은 샤마시 앞에서 한 말로 여겨진다. 그래서 낭독자도, 청동판도, 그 순간의 빛도 모두 태양의 혀라고 불린다."
벨리투가 신-이딘이 가져온 점토판을 들어 올렸다.
"그럼 '태양의 혀를 꺾어라'는 건 낭독자를 해치라는 뜻만이 아니군."
"청동판을 휘게 할 수도 있고, 빛이 들어오는 틈을 막을 수도 있고, 낭독자의 점토판을 바꿀 수도 있다."
일루-타비가 말했다.
"셋 중 하나만 성공해도 진실은 비뚤어진다. 법정은 여전히 열리고, 사람들은 여전히 판결을 듣겠지. 하지만 저울은 이미 기울어진 뒤일 거다."
서하는 등 뒤로 찬 기운이 올라오는 것을 느꼈다.
사자가 벽에서 나온 일은 무서웠다. 그러나 그것은 적어도 눈앞의 공포였다. 발톱이 있고, 소리가 있고, 도망칠 골목이 있었다. 반면 법정의 저울을 비트는 일은 조용했다. 사람들이 모두 모인 자리에서, 태양 아래에서, 거짓이 진실의 옷을 입는 일이었다.
그때부터는 아무도 자신이 속았다는 것을 모를 수 있었다.
"내일의 판결이 뭐예요?"
서하가 물었다.
벨리투와 신-이딘은 서로를 보았다. 일루-타비만 시선을 내렸다.
신-이딘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공식적으로는 이슈타르 문 훼손에 대한 조사야. 누가 문을 더럽혔는지, 신전과 왕궁 중 어느 쪽이 책임을 져야 하는지 따지는 자리."
"공식적으로는?"
벨리투가 대신 대답했다.
"비공식적으로는 네 이름이 올라갈 거야."
서하는 숨을 멈췄다.
"제 이름이요?"
"네가 어디에서 왔는지, 왜 별의 방 표식을 가지고 있는지, 왜 수호자들이 너에게 반응했는지. 그들은 이 질문들을 하나로 묶을 거야. 그리고 네가 대답하기 전에 누군가가 먼저 답을 만들어 두겠지."
일루-타비가 말했다.
"그래서 떠나야 한다고 한 거다."
서하는 그의 말 속에 담긴 두려움을 느꼈다. 그것은 진짜였다. 그러나 진짜 두려움이 언제나 옳은 선택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었다.
"제가 떠나면요?"
일루-타비는 대답하지 않았다.
서하는 스스로 답을 알았다. 그녀가 떠나면 법정에는 그녀 없는 그녀의 이름이 세워질 것이다. 윤서하도 벨-에테르도 아닌, 누군가가 필요에 따라 만든 이름. 균열을 연 자. 수호자를 더럽힌 자. 도시를 위험에 빠뜨린 자. 그 이름이 태양 아래에서 읽히고 나면, 사람들은 그것을 믿게 될 것이다.
신-이딘이 낮게 말했다.
"하지만 네가 가면 위험해."
서하는 그를 보았다.
"안 가도 위험하잖아요."
그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밖에서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조금씩 늘고 있었다. 아직 해가 뜨지 않았는데도 바빌론은 이미 소문으로 밝아지고 있었다. 어떤 여자가 문 앞에서 외쳤다. 밤새 사자가 울었다고. 곧 누군가가 아니라고 했다. 사자가 아니라 벽이 갈라진 소리라고. 또 다른 사람은 마르둑의 사제들이 이미 알고 있었을 거라고 속삭였고, 누군가는 왕궁이 숨긴 일이라고 답했다.
도시는 하나의 몸처럼 떨고 있었지만, 그 떨림은 서로를 향한 의심으로 갈라지고 있었다.
서하는 그 소리를 들으며 생각했다. 균열은 땅에만 생기는 것이 아니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도, 신전과 왕궁 사이에도, 도움과 속임수 사이에도 생겼다. 그리고 가장 깊은 균열은 자기 안에 있었다.
윤서하는 도망치고 싶었다.
벨-에테르는 법정의 청동판 아래 빈 공간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 기억은 갑작스럽게 떠올랐다. 뜨거운 햇빛. 돌바닥에 무릎을 꿇은 어린 서기관들. 청동판을 닦는 마른 손. 그리고 누군가가 속삭였다. 빛이 말하는 곳 아래에는 늘 어둠이 남는다. 어둠을 모르는 자는 빛도 다루지 못한다.
서하는 눈을 감았다가 떴다.
기억은 조각뿐이었다. 그러나 조각도 방향을 가리킬 수 있었다.
서로를 믿을 수 없는 이유
"나는 법정으로 갈 거예요."
서하가 말했다.
세 사람이 동시에 그녀를 보았다.
일루-타비의 얼굴에는 이미 알고 있었다는 듯한 체념이 떠올랐다. 신-이딘은 두려움과 안도 사이에서 흔들렸다. 벨리투는 잠시 눈을 감았다가, 창대를 고쳐 잡았다.
"혼자서는 못 가."
벨리투가 말했다.
"같이 가 주겠어요?"
"아까 말했지. 나는 너를 완전히 믿지 않아."
"저도 당신을 완전히 믿지 않아요."
벨리투의 입가에 아주 희미한 웃음이 걸렸다.
"좋아. 그 정도면 출발할 수 있겠네."
서하는 신-이딘을 보았다.
"당신은요?"
신-이딘은 손톱 밑에 남은 푸른 가루를 천천히 문질렀다. 아무리 닦아도 완전히 지워지지 않았다.
"내가 가면 네가 더 의심받을 수도 있어."
"안 가면요?"
그는 고개를 숙였다.
"내가 또 숨는 셈이지."
그 대답은 완벽하지 않았다. 그러나 처음으로 그는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정확히 말하고 있었다.
서하는 조용히 말했다.
"거짓말하지 마세요. 모르면 모른다고 말하고, 무서우면 무섭다고 말해요. 그게 지금 제가 당신을 믿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에요."
신-이딘의 눈이 흔들렸다. 그는 한참 뒤 고개를 끄덕였다.
"무서워."
그 한마디는 이상하게 많은 것을 바꾸었다. 신-이딘은 더 강해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더 약해 보였다. 하지만 그 약함 안에는 붙잡을 수 있는 진실이 있었다.
서하는 마지막으로 일루-타비를 보았다.
"당신은 저를 살리고 싶다고 했죠."
"그렇다."
"그럼 제가 살아서 무엇이 되길 바라는지도 말해 주세요. 숨어 있는 사람? 도망친 증인? 남들이 만든 이름으로 불리는 사람?"
일루-타비의 얼굴이 굳었다.
"살아남아야 다음을 고를 수 있다."
"계속 도망치기만 하면 다음은 누가 골라요?"
그 질문은 안뜰의 등불보다 더 밝게 침묵을 갈랐다.
일루-타비는 오래도록 말이 없었다. 서하는 그가 끝내 등을 돌릴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어쩌면 그가 그편이 더 안전하다고 믿는다면, 그것도 그의 선택일 것이다. 믿을 수 없는 이유가 있다고 해서, 그 사람이 아무 이유도 없는 것은 아니었다. 다만 이제 서하는 누군가의 두려움 속에 숨어 살 수 없었다.
마침내 일루-타비가 품속에서 작고 납작한 점토 조각을 꺼냈다. 그것은 열쇠라기보다 부러진 봉인처럼 보였다.
"법정 북쪽 벽에는 오래된 배수 계단이 있다. 지금은 막혔다고 알려져 있지만, 완전히 막힌 적은 없어. 이 조각을 문틈의 셋째 홈에 넣고 돌리면 안쪽 빗장이 느슨해질 거다."
벨리투가 경계 어린 눈으로 물었다.
"그걸 어떻게 알지?"
일루-타비는 지친 듯 웃었다.
"내가 젊었을 때는, 막힌 문을 아는 것이 내 일이었다."
"어느 쪽 일을 했는데?"
"그 질문에 답하면, 지금 너희 중 아무도 나와 함께 걷지 않을 거다."
벨리투의 표정이 차가워졌다. 신-이딘은 시선을 피했다.
서하는 점토 조각을 받아 들었다. 그것은 따뜻했다. 오래 손에 쥐고 있었던 사람의 온기가 남아 있었다.
"그럼 지금은 답하지 마세요."
일루-타비가 그녀를 보았다.
"나를 믿는다는 뜻이냐?"
"아니요."
서하는 조각을 천주머니에 넣었다.
"지금은 이 길이 필요하다는 뜻이에요. 그리고 당신이 정말 저를 살리고 싶다면, 제가 도망치는 것 말고도 살 수 있는 길을 보여 주세요."
일루-타비는 아무 말 없이 고개를 숙였다. 그가 동의한 것인지, 포기한 것인지, 서하는 알 수 없었다. 그러나 적어도 그는 더 이상 떠나라고만 말하지 않았다.
그것으로 충분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시작하기에는 충분했다.
회피하지 않는 이름
출발하기 전, 서하는 안뜰 한쪽에 놓인 빈 점토판을 집어 들었다. 아직 글씨가 새겨지지 않은 젖은 점토였다. 손끝으로 만지자 표면이 부드럽게 눌렸다.
벨리투가 물었다.
"무엇을 하려고?"
"제 이름을 가져가려고요."
신-이딘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이곳의 문자로 네 이름을 정확히 쓰기는 어려울 거야."
"알아요."
서하는 잠시 망설였다. 윤서하라는 이름은 이 시대의 쐐기문자에 맞춰지지 않았다. 소리가 어긋나고, 획이 부족하고, 뜻이 흩어졌다. 벨-에테르라는 이름은 너무 쉽게 쓸 수 있을 것 같아서 더 두려웠다. 마치 오래전부터 점토가 그 이름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처럼.
서하는 갈대를 들어 점토판 위에 첫 획을 눌렀다.
완전한 이름은 아니었다. 그녀가 알고 있는 소리의 조각, 이곳에서 배운 문자의 조각, 그리고 자기 손이 기억하는 방향을 합친 서툰 표식이었다. 윤서하도 아니고 벨-에테르도 아닌, 그러나 둘 다 외면하지 않는 작은 문양.
이름이라기보다 선언에 가까웠다.
나는 남이 불러 주는 대로만 존재하지 않겠다.
팔찌의 샘 기호가 아주 희미하게 빛났다. 이번에는 차갑지 않았다. 손목 안쪽에서 작은 물줄기가 흐르는 듯했다. 오래된 물이 아니라, 막 땅을 뚫고 올라온 첫 샘물처럼.
벨리투는 그 점토판을 보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는 서하의 손에 천을 감아 주었다. 창을 든 손이 아니라, 상처를 묶는 손으로.
"법정 안에서는 말보다 먼저 시선이 올 거야. 왕궁 사람들은 네 옷을 볼 거고, 사제들은 네 팔찌를 볼 거고, 낭독자는 네 침묵을 볼 거야. 흔들리지 마."
신-이딘이 작은 점토판과 푸른 유약 조각들을 자기 주머니에 나눠 담았다.
"나는 기록을 볼게. 누가 판결문을 바꿨는지, 어느 손이 들어갔는지 찾을 수 있을지도 몰라."
일루-타비는 문가에 서서 바깥을 살폈다.
"동쪽 골목은 막혔다. 남쪽으로 돌아가야 한다. 해가 뜨기 전까지 시간이 많지 않아."
서하는 마지막으로 물동이를 보았다. 천 아래에서는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는 그것이 완전히 잠든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대답하지 않은 질문들은 사라지지 않는다. 다만 더 깊은 곳으로 내려가 다음 목소리를 기다린다.
그녀는 더 이상 그 소리를 향해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문을 나서자 바빌론의 밤은 조금 옅어져 있었다. 지붕들 위로 검푸른 빛이 번졌고, 먼 동쪽 가장자리에 아주 얇은 금빛 선이 생기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아직 그 빛을 보지 못한 듯했지만, 도시는 이미 반응하고 있었다. 닭이 울고, 항아리 물이 흔들리고, 누군가가 첫 빵 반죽을 치대는 소리가 들렸다.
일상은 언제나 이렇게 돌아오는 척했다.
그러나 오늘의 아침은 어제의 아침이 아니었다. 벽은 깨어났고, 수호자는 뒤틀렸으며, 법정의 저울은 누군가의 손에 기울어질 준비를 하고 있었다. 사람들은 서로를 의심했고, 신전과 왕궁은 서로의 그림자를 밟고 있었다. 서하의 곁에 선 사람들도 완전히 믿을 수 없었다.
그럼에도 서하는 걸음을 옮겼다.
믿음이 없어서 멈추는 것이 아니라, 믿음이 무엇인지 확인하기 위해 움직여야 할 때가 있었다. 누군가의 침묵이 보호인지 배신인지, 누군가의 거짓말이 두려움인지 함정인지, 자기 안의 오래된 이름이 감옥인지 열쇠인지. 그 모든 것은 서 있는 자리에서는 알 수 없었다.
가야만 드러나는 진실이 있었다.
골목 끝에서 샤마시의 법정으로 이어지는 길이 보였다. 아직 문은 닫혀 있었지만, 그 위의 돌벽은 새벽빛을 기다리며 희미하게 밝아지고 있었다. 어딘가에서 낮은 종소리가 울렸다. 판결의 날을 깨우는 소리였다.
서하는 천주머니 속의 점토 조각과 푸른 유약 조각, 그리고 방금 눌러 쓴 자기 이름의 작은 판을 확인했다. 손은 떨렸지만 멈추지 않았다.
"갈게요."
그 말은 벨리투에게도, 신-이딘에게도, 일루-타비에게도 한 말이었지만, 가장 깊은 곳에서는 자기 자신에게 한 말이었다.
균열은 밤을 가르고 있었다.
서하는 그 틈으로 도망치지 않았다. 그 틈 안으로 걸어 들어가기로 했다.
동쪽 하늘에 첫빛이 번졌다.
태양의 혀가 곧 말을 할 것이다. 그 전에 서하가 먼저 도착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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