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 냄새가 나는 예언
비명은 짧았다.
짧았기 때문에 더 오래 남았다. 복도 끝에서 한 번 찢어지듯 솟구친 소리는 곧바로 누군가의 손에 눌린 것처럼 끊겼다. 그 뒤에 찾아온 침묵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침묵이 아니었다. 모두가 들었지만, 누구도 먼저 들었다고 말하지 않는 침묵이었다.
서하는 나부의 작은 방 문 앞에서 굳어 있었다.
문밖에는 낮부터 세워진 경비가 있었다. 그러나 조금 전까지 들리던 그의 발소리도 사라져 있었다. 서하는 숨을 죽이고 귀를 기울였다. 멀리서는 아직 서고의 검은 불을 수습하는 사람들의 낮은 목소리가 들렸고, 더 멀리서는 아키투를 준비하는 북소리가 희미하게 울렸다. 도시 전체가 축제와 재난 사이에 걸린 채 삐걱거리고 있었다.
그때 문틈 아래로 작은 것이 밀려 들어왔다.
점토 조각이었다.
손톱보다 조금 큰 파편에 갈대 끝으로 급히 찍은 글자가 있었다. 획은 얕고 비뚤었다. 누군가 쫓기듯 쓴 글자였다.
별의 방. 지금.
그리고 마지막에, 거의 지워지듯 눌린 이름 하나.
키딘-나부.
서하는 조각을 움켜쥐었다. 젊은 점성 서기관. 진짜 원본을 품에 안고 떨던 사람. '마르둑의 왕권이 흔들릴 것이다'라는 문장을 보았고, 그 문장이 거짓으로 덮이는 것을 막으려 했던 사람.
그가 부른다.
그렇다면 비명은 누구의 것이었을까.
서하는 문고리를 잡았다. 밖에 있던 경비에게 들키면 끝이었다. 그러나 손잡이는 뜻밖에도 쉽게 움직였다. 문은 잠겨 있지 않았다. 아니, 누군가 안쪽에서 걸쇠가 걸린 것처럼 보이게 해 두었을 뿐이었다. 문틈에는 푸른 가루가 아주 얇게 묻어 있었다.
신-이딘.
그 이름이 떠올랐다.
서하는 문을 살짝 열었다. 복도에는 아무도 없었다. 벽의 등불은 절반쯤 꺼져 있었고, 바닥에는 물과 그을음, 누군가 급히 끌고 간 듯한 흙자국이 남아 있었다. 그녀는 몸을 낮추고 복도로 나왔다.
세 걸음도 가지 않아 피 냄새가 났다.
현대의 연구실에서는 맡아 본 적 없는 냄새였다. 쇠 냄새, 젖은 흙 냄새, 오래된 점토가 갑자기 인간의 몸으로 돌아온 듯한 냄새. 서하는 벽을 짚었다. 복도 모퉁이 바닥에 붉은 자국이 번져 있었다. 피는 많지 않았다. 그러나 누군가가 손바닥으로 바닥을 짚고 몸을 일으키려 한 흔적이 남아 있었다.
그 옆 벽에는 손가락으로 긁은 글자가 있었다.
예언은 이미 쓰였다.
서하는 숨을 멈췄다.
그 문장은 위협처럼 보였고, 도움을 청하는 말처럼도 보였다. 이미 쓰였다는 것은 무엇을 뜻할까. 왕의 해가 피로 시작된다는 가짜 예언인가. 마르둑의 왕권이 흔들린다는 원본인가. 아니면 아직 누구도 읽지 못한 더 오래된 문장인가.
뒤에서 발소리가 났다.
서하는 반사적으로 몸을 숨기려 했다. 그러나 나타난 사람은 경비가 아니었다. 신-이딘이었다. 그의 얼굴에는 그을음이 묻어 있었고, 소매 안쪽에는 푸른 유약 가루가 희미하게 빛났다. 그는 서하를 보고 눈을 크게 떴다가, 곧 손가락을 입술에 댔다.
"소리 내지 마라."
"여기서 무슨 일이 있었어요?"
신-이딘은 바닥의 피를 보았다. 그의 눈빛이 잠깐 흔들렸다.
"나도 전부는 모른다."
그 말은 너무 빨랐다. 그래서 더 거짓말처럼 들렸다.
서하는 그의 소매를 보았다.
"그 가루는요?"
신-이딘은 본능적으로 손을 뒤로 감췄다. 늦었다. 푸른빛은 이미 보였다.
"벽돌 틈에서 묻은 것이다."
"아까는 불을 끄느라 묻었다고 할 수도 있었겠네요."
그의 입술이 굳었다. 잠시 뒤 그는 품에서 작은 푸른 조각 하나를 꺼냈다. 이슈타르 문의 유약 벽돌과 같은 색이었다. 표면에는 아주 작은 비늘무늬가 있었다.
"우연히 주웠다."
서하는 그 말을 믿지 않았다.
신-이딘도 그녀가 믿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그런데도 그는 조각을 서하의 손에 쥐여 주었다. 차가운 표면 아래에서 아주 미세한 떨림이 느껴졌다.
"지금은 거짓말을 가릴 시간이 없다. 이것은 네게 필요할 것이다."
"왜요?"
"푸른 벽돌은 기억한다. 불이 닿아도, 물이 지나가도, 표면이 긁혀도. 특히 용의 비늘이 새겨진 조각은 문과 길의 흔적을 붙잡아 둔다."
"신-이딘, 당신은 무엇을 숨기고 있어요?"
그는 대답하지 않았다.
멀리서 사람들의 발소리가 가까워졌다. 신-이딘은 서하를 별의 방 쪽 좁은 계단으로 밀었다.
"키딘-나부를 찾으려면 위로 가라. 그리고 누가 네 이름을 묻거든 대답하지 마라. 오늘 밤에는 벨-에테르라는 이름도 안전하지 않다."
"당신은 같이 안 가요?"
"나는 벽을 보아야 한다."
그는 그렇게 말하고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그의 소매 끝에서 푸른 가루가 한 번 더 빛났다. 서하는 손안의 조각을 더 세게 쥐었다. 우연히 주웠다는 말은 거짓이었다. 그러나 그 거짓이 함정인지 보호인지는 아직 알 수 없었다.
그 차이를 모른다는 사실이 서하를 가장 두렵게 했다.
별의 방에 남은 표식
별의 방은 낮과 달랐다.
낮에는 물시계와 계산판, 별의 위치를 표시한 나무 막대들이 가지런히 놓인 작업실이었다. 그러나 밤의 별의 방은 하늘을 잘라 넣은 그릇 같았다. 좁은 창으로 들어온 별빛이 벽과 바닥에 가느다란 선을 만들었고, 선들은 마치 보이지 않는 쐐기문자처럼 서로를 향해 기울어 있었다.
방 안에는 키딘-나부가 없었다.
대신 그의 겉옷 조각이 바닥에 떨어져 있었다. 찢긴 천 끝에는 피가 묻어 있었다. 서하는 그것을 집어 들었다. 손가락이 떨렸다. 그는 도망친 것일까. 끌려간 것일까. 아니면 방금 복도에 남은 피의 주인이 그였을까.
벽 쪽에서 낮은 목소리가 들렸다.
"그는 살아 있어."
서하가 몸을 돌렸다.
일루-타비가 창가 그림자 안에 서 있었다. 언제부터 있었는지 알 수 없었다. 그는 평소의 장난스러운 얼굴이 아니었다. 어둠 속의 눈만 유난히 또렷했다.
"당신이 어떻게 알아요?"
"죽은 사람은 발자국을 남기지 않는다. 살아 있는 사람은 남겨. 아주 급하고, 아주 겁먹은 발자국을."
그는 바닥의 젖은 흙자국을 가리켰다. 키딘-나부의 것으로 보이는 발자국은 창가가 아니라 벽 쪽으로 이어져 있었다. 벽에는 아무 문도 없었다. 그러나 일루-타비는 벽돌 하나를 손끝으로 눌렀다. 낮은 소리가 났다. 속이 빈 벽이었다.
"이 방에 숨은 통로가 있었어요?"
"별을 보는 방에는 늘 하늘만 있는 게 아니야. 별이 잘못 보였을 때 도망칠 길도 필요하지."
"그걸 왜 당신이 알고 있죠?"
일루-타비는 대답하지 않았다.
서하는 그 침묵을 보았다. 오늘 그녀 주변의 모든 사람이 무언가를 숨기고 있었다. 나부-주쿱은 스승의 죽음과 이름 없는 판본을 숨겼고, 벨-우슈르는 진실을 거짓 예언으로 덮으려 했다. 신-이딘은 푸른 조각의 출처를 숨겼다. 일루-타비는 통로를 알고 있으면서도 모르는 척했다.
그런데 가장 무서운 것은, 그들 모두가 어떤 순간에는 그녀를 도왔다는 점이었다.
도움과 거짓말은 같은 손에서 나올 수 있었다.
서하는 낮게 물었다.
"일루-타비. 당신은 누구 편이에요?"
그는 웃지 않았다.
"살아 있는 사람 편이고 싶다."
"그건 대답이 아니에요."
"이 도시에서는 그 정도 대답도 위험하다."
그는 벽돌을 한 번 더 눌렀다. 숨은 틈이 조금 열렸다. 그 안쪽에서 차가운 바람이 새어 나왔다. 바람에는 물 냄새와 그을린 점토 냄새, 그리고 아주 희미한 푸른 유약 냄새가 섞여 있었다.
틈 안쪽에는 작은 점토판이 하나 끼워져 있었다.
서하는 그것을 꺼냈다. 표면은 얇고, 글자는 급하게 눌려 있었다. 키딘-나부의 필체였다.
원본을 옮겼다. 법정의 태양 아래에서만 열릴 것이다. 태양의 혀가 부러지기 전에 와라.
그 아래에 다른 글자가 있었다. 키딘-나부의 글씨가 아니었다. 더 오래되고, 더 깊게 눌린 글씨였다.
용의 눈은 문을 보았고, 샘은 이름을 기억했으며, 별은 거짓의 날짜를 세었다. 셋이 모이면 첫 문장이 깨어난다.
일루-타비가 숨을 삼켰다.
"이건…"
"당신도 처음 보는 거예요?"
"적어도 이 문장은."
"그럼 처음 보지 않는 건 뭐죠?"
일루-타비는 대답하지 못했다.
서하는 점토판의 뒷면을 보았다. 거기에는 세 기호가 있었다. 용, 문, 샘. 나부-주쿱이 건넨 파편의 기호와 같았다. 그러나 그 옆에는 네 번째 표식이 더해져 있었다.
태양.
그리고 태양 아래, 저울의 혀처럼 생긴 작은 갈고리.
샤마시의 법정.
"태양의 혀가 뭐예요?"
일루-타비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법정에서 증언이 처음 읽히는 자리. 사람들은 그곳에서 읽힌 말은 샤마시가 들었다고 믿어. 그래서 한 번 올라간 이름은 쉽게 지워지지 않아."
"그럼 누군가 그걸 부러뜨리려 하는 거군요."
"이미 시작됐을지도 몰라."
일루-타비는 창밖을 보았다. 에사길라 너머로 아직 밤이 깊었지만, 동쪽 가장자리에는 아주 희미한 회색빛이 생기고 있었다.
"해가 뜨기 전에 법정에 가야 해."
서하는 손에 든 점토판을 바라보았다.
태양의 혀.
법정.
키딘-나부.
피.
그리고 이 모든 일이 오늘 갑자기 시작된 것이 아니라는 흔적들. 용의 눈, 샘의 기억, 별의 날짜, 태양의 갈고리. 오래전부터 누군가 단서를 흩뿌렸고, 누군가는 그 단서를 이용해 거짓을 만들었다.
누구를 믿어야 할까.
질문은 점점 무거워졌다.
오래전부터 준비된 일
벽 속 통로는 좁고 낮았다.
일루-타비는 들어가지 말자고 했다. 키딘-나부가 이미 도망쳤다면 지금 따라 들어가는 것은 함정일 수 있다고 했다. 그러나 서하는 통로 입구에 남은 표식을 보았다. 푸른 가루가 아주 얇게 흩어져 있었다. 신-이딘의 흔적이었다.
"그도 이 길을 알고 있어요."
"그게 좋은 소식인지 나쁜 소식인지 모르겠군."
일루-타비는 그렇게 말하면서도 먼저 몸을 낮춰 통로 안으로 들어갔다. 서하는 뒤따랐다.
벽 안쪽은 사람 하나가 겨우 지나갈 만큼 좁았다. 바깥의 별빛은 닿지 않았고, 벽돌 틈마다 오래된 먼지가 쌓여 있었다. 그러나 곳곳에 손톱으로 긁은 작은 표시가 있었다. 숫자도 아니고 이름도 아니었다. 길을 아는 사람들만 알아볼 수 있는 기호였다.
용.
태양.
문.
별.
샘.
그 표식들이 서로 다른 시대의 손으로 남겨져 있었다. 어떤 것은 오래 닳아 거의 사라졌고, 어떤 것은 최근에 새겨져 아직 벽돌 가루가 떨어졌다. 서하는 걸음을 멈췄다.
"한 사람이 만든 게 아니에요."
일루-타비도 표식을 보았다.
"그래. 오래된 길이야."
"당신은 이걸 알고 있었죠."
그는 이번에도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번 침묵은 회피보다 체념에 가까웠다.
"어릴 때, 나는 막힌 문을 여는 법을 배웠다."
"누구에게요?"
"왕궁에서 일하던 사람들에게. 정확히는 왕궁에서 일하지만 왕궁의 이름으로 기록되지 않는 사람들에게."
서하는 그를 바라보았다.
일루-타비는 벽에 기대 숨을 고른 뒤 말했다.
"도시에는 공식 문과 비공식 문이 있어. 공식 문은 왕의 봉인으로 열리고, 비공식 문은 두려움과 돈과 침묵으로 열리지. 나는 두 번째 문을 아는 아이였어. 신전에서 견습생 노릇을 하기 전에는."
그 말은 고백이었지만, 완전한 고백은 아니었다. 아직 많은 것이 빠져 있었다. 그러나 서하는 지금 그를 몰아붙일 시간이 없다는 것을 알았다.
통로 끝에는 작은 방이 있었다.
방이라고 하기보다 벽 안에 파묻힌 빈 공간이었다. 중앙에는 오래된 점토판들이 나무 상자에 담겨 있었다. 대부분 깨져 있었고, 일부는 불에 그을렸다. 서하는 그중 하나를 집어 들었다.
점성 기록.
하지만 연도는 지금보다 훨씬 전이었다. 서하는 벨-에테르의 기억과 현대의 지식을 동원해 날짜를 더듬었다. 여러 해 전, 어쩌면 수십 년 전. 기록에는 같은 패턴이 있었다.
달의 날짜와 별의 위치가 맞지 않는 예언.
왕의 이름이 흔들릴 것이라는 원본 기록.
그 원본을 더 모호한 재앙의 문장으로 바꾼 사본.
같은 일이 반복되어 있었다.
서하는 손이 차가워지는 것을 느꼈다.
"이번 일이 처음이 아니에요."
일루-타비는 점토판을 바라보았다.
"아키투 전에 불길한 별이 나타나고, 신전은 그것을 숨기고, 왕궁은 다른 소문으로 덮는다. 그리고 나중에는 아무도 원본을 기억하지 못하지."
"그런데 왜 이번에는 이렇게 커졌을까요?"
대답은 방 한가운데에 있었다.
작은 빈 받침대.
그 위에는 원래 무엇인가 놓여 있었던 흔적이 남아 있었다. 먼지는 네모난 모양으로 비어 있었고, 받침대 가장자리에는 사각형 안에 겹겹이 선이 들어간 문양이 희미하게 눌려 있었다.
운명의 서판.
서하는 손목의 팔찌가 조여드는 것을 느꼈다.
"여기에 조각이 있었어요."
"누가 가져갔을까?"
일루-타비가 물었지만, 그의 목소리는 이미 답을 두려워하고 있었다.
서하는 받침대 아래에 떨어진 검은 깃털 같은 조각을 보았다. 아직 안주라는 이름을 알지는 못했다. 그러나 그것이 새의 깃털이면서 동시에 글자의 파편처럼 보인다는 것은 알 수 있었다.
그 순간 벽 안쪽에서 낮은 목소리가 들렸다.
이름을 잃어버린 서기관.
서하는 몸이 굳었다.
일루-타비도 들었다. 그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벽이 말하고 있었다.
아니, 벽 속에 남은 문장들이 서로를 긁으며 소리를 내고 있었다.
이름을 잃어버린 서기관이 오면, 용의 눈은 깨어나고 태양의 혀는 피를 본다.
소리는 금세 사라졌다.
하지만 뜻은 남았다.
서하는 자신이 또 하나의 오래된 문장 속에 들어와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녀가 사본실에서 문장을 읽었기 때문에 사건이 시작된 것만은 아니었다. 더 오래전부터 누군가 이 가능성을 준비해 왔다. 혹은 두려워해 왔다. 예언인지, 경고인지, 함정인지 알 수 없는 문장이 그녀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일루-타비가 낮게 말했다.
"그래서 네가 법정에 서면 위험한 거야."
"왜요?"
"누군가 이미 너를 원인으로 만들 준비를 해 두었으니까. 이름을 잃어버린 서기관. 용의 눈을 깨운 아이. 태양의 혀가 피를 본 날 나타난 징조."
서하는 숨을 들이켰다.
법정에 가야 한다. 그러나 가는 순간, 그들이 만든 이름 속에 갇힐 수도 있다.
그녀가 품속에 점토판을 넣으려는 순간, 방 바깥에서 발소리가 울렸다. 통로 입구 쪽이었다. 한 명이 아니었다. 여러 명이었다.
일루-타비가 서하의 손목을 잡았다.
"나가야 해."
"키딘-나부는요?"
"그가 살아 있다면 이미 다른 길로 갔을 거야. 죽었다면…"
그는 말을 끝내지 않았다.
두 사람은 반대쪽 좁은 틈으로 빠져나갔다. 통로는 점점 낮아져 거의 기어가야 했다. 벽돌이 어깨를 긁었고, 먼지가 목을 막았다. 뒤에서는 누군가 방 안으로 들어와 상자를 뒤지는 소리가 들렸다. 점토판이 깨지는 소리, 낮은 욕설, 그리고 누군가가 말했다.
"원본은 없다. 법정으로 갔을 것이다."
서하와 일루-타비는 더 빨리 움직였다.
푸른 조각과 거짓된 친절
통로는 에사길라 바깥의 좁은 골목으로 이어졌다.
서하는 빛을 보자마자 거의 쓰러지듯 밖으로 나왔다. 아직 밤이었지만, 골목의 공기는 벽 안쪽보다 훨씬 넓었다. 일루-타비가 뒤따라 나오며 벽돌 하나를 제자리로 밀어 넣었다. 틈은 다시 아무 흔적 없는 벽이 되었다.
골목 끝에는 신-이딘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놀란 얼굴이 아니었다. 오히려 너무 오래 기다린 사람처럼 지쳐 보였다.
"살아 나왔군."
서하는 그에게 다가갔다.
"당신이 우리를 그 길로 보냈어요?"
"길을 열어 두었을 뿐이다."
"키딘-나부는 어디 있어요?"
신-이딘의 얼굴이 굳었다.
"샤마시의 법정으로 갔다. 자기 원본을 들고. 어리석지만 용기 있는 선택이지."
"그럼 아까 복도의 피는?"
"그를 막으려던 하급 서기관의 피다. 죽지는 않았다. 하지만 누가 칼을 들었는지는 못 봤다."
"정말 못 봤어요?"
신-이딘은 서하를 오래 보았다.
"못 봤다."
이번 말은 아까보다 천천히 나왔다. 그러나 여전히 완전히 믿기 어려웠다.
일루-타비가 끼어들었다.
"법정으로 가야 해. 태양의 혀가 위험하다."
신-이딘은 고개를 저었다.
"지금 곧장 가면 붙잡힌다. 왕궁 사람들도, 에사길라 사람들도 그곳을 보고 있다. 그리고 네가 있으면"—그의 시선이 서하에게 향했다—"그들은 기다렸다는 듯 네 이름을 판 위에 올릴 것이다."
"그럼 어떻게 하라는 거예요?"
서하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가만히 있으라고요? 모두가 뭔가를 알고 있고, 모두가 나를 지키는 척하면서 숨기고, 그러는 동안 다른 사람들이 피를 흘려요. 내가 움직이면 위험하고, 움직이지 않아도 위험해요. 그럼 대체 뭘 해야 하죠?"
골목이 조용해졌다.
신-이딘은 고개를 숙였다. 일루-타비도 대답하지 못했다.
서하는 손안의 푸른 조각을 보았다. 신-이딘이 우연히 주웠다고 한 조각. 그 말은 거짓이었다. 그러나 조각은 진짜였다. 도움도 진짜였다. 그래서 더 복잡했다.
"당신들은 나를 믿지 않죠."
서하가 말했다.
신-이딘이 입을 열려 했지만,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괜찮아요. 나도 당신들을 믿지 못하겠으니까."
그 말은 생각보다 아팠다. 믿지 못한다는 것은 안전해진다는 뜻이 아니었다. 오히려 더 외로워진다는 뜻이었다. 이 시대에 떨어진 뒤, 서하는 사람을 믿고 싶었다. 나부-주쿱의 손, 일루-타비의 경고, 신-이딘의 푸른 조각. 그 작은 도움들을 붙잡아야만 버틸 수 있었다.
그런데 도움의 뒤에는 늘 빠진 설명이 있었다.
일루-타비가 낮게 말했다.
"나는 네가 죽지 않기를 바랄 뿐이야."
"그 말도 대답이 아니에요."
"그래. 하지만 지금 내가 줄 수 있는 가장 정직한 말이야."
서하는 그를 보았다. 어둠 속의 일루-타비는 처음보다 나이 들어 보였다. 그는 견습생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많은 길을 알고 있었고, 믿을 수 있는 동료라고 하기에는 너무 많은 것을 숨겼다. 그러나 그의 두려움만큼은 진짜였다.
신-이딘은 품에서 또 다른 작은 조각을 꺼냈다. 이번에는 점토판도, 유약도 아니었다. 별의 방 벽에서 긁어낸 듯한 아주 작은 표식이었다. 별처럼 보이기도 하고 물결처럼 보이기도 했다.
"이 표식을 봤다면, 오늘 밤에는 이슈타르 문 쪽을 조심해라."
"왜요?"
"왕궁의 기록 손이 아니다. 에사길라의 공식 손도 아니다. 누군가 도시의 수호 상징을 건드리고 있다. 용의 눈만이 아니라 사자의 눈도."
이슈타르 문.
서하는 나부-주쿱의 파편을 떠올렸다. 용, 문, 샘. 물이 이름을 기억한다는 말. 그리고 시장에서 들은 신-이딘의 이름. 모든 길이 다시 그 문을 향하고 있었다.
"그곳에 뭔가 있어요."
신-이딘은 대답하지 않았다.
일루-타비가 즉시 말했다.
"혼자 가지 마."
"법정에 가지 말라면서요."
"법정도 위험하고, 문도 위험하다. 위험하지 않은 곳을 묻는다면 지금은 없다."
서하는 웃을 뻔했다. 웃음은 나오지 않았다.
"그럼 나는 내 위험을 내가 고를게요."
신-이딘의 얼굴이 굳었다.
"벨-에테르."
"그 이름으로만 부르지 마세요."
그 말이 골목에 떨어졌다.
두 남자가 동시에 입을 다물었다. 서하 자신도 놀랐다. 목구멍 안쪽에서 윤서하라는 이름이 뜨겁게 뛰었다. 이 도시의 누구도 제대로 쓸 수 없는 이름. 그러나 그녀가 놓지 않기로 한 이름.
"나는 벨-에테르의 몸을 빌리고 있어요. 그 이름을 무시하지 않을 거예요. 하지만 그것만으로 나를 가두게 두지도 않을 거예요."
팔찌의 샘 기호가 희미하게 빛났다.
신-이딘은 그 빛을 보고 한 걸음 물러났다.
"그럼 네 이름을 지켜라. 오늘 밤 특히."
문턱 앞의 결정
새벽까지는 아직 시간이 있었다.
서하는 신전 숙소로 돌아왔다. 정확히는 돌아온 척했다. 나부-주쿱은 회의에 불려 나간 뒤 아직 돌아오지 않았고, 견습생들은 불안한 밤을 억지로 잠으로 덮으려 애쓰고 있었다. 일루-타비도 자신의 자리로 돌아와 누운 척했다. 그러나 그가 눈을 감지 않고 있다는 것을 서하는 알았다.
서하는 매트 위에 앉아 자신이 가진 것들을 펼쳤다.
나부-주쿱의 파편. 용, 문, 샘.
키딘-나부의 메시지. 별의 방, 태양의 혀.
신-이딘의 푸른 유약 조각.
별과 물결이 겹친 작은 표식.
그리고 자기 손목의 팔찌.
조각들은 서로 다른 곳에서 왔지만, 한곳을 가리켰다. 법정과 이슈타르 문. 태양의 혀와 용의 눈. 이름을 지키는 자리와 이름을 부르면 안 되는 자리. 둘 다 중요했다. 그러나 지금 당장 그녀가 갈 수 있는 곳은 하나뿐이었다.
법정에는 사람들이 모일 것이다. 왕궁과 신전의 눈이 이미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그녀가 들어가는 순간, 누군가는 그녀의 이름을 먼저 써 버릴 것이다.
반면 이슈타르 문은 밤의 끝자락에 있었다. 아직 군중이 모이기 전, 아직 태양이 증언을 요구하기 전. 그곳에는 용의 눈을 만진 장인의 흔적과, 수호 상징을 건드린 표식이 있었다. 그리고 이름을 부르면 안 된다는 경고가 있었다.
경고는 보통 피해야 할 길을 말한다.
하지만 지금 서하에게 경고는 길을 가리키는 표식이기도 했다.
그녀는 작은 점토판 하나를 집어 들었다. 갈대 끝으로 두 이름을 쓰려다 멈췄다. 오늘은 이름을 남기지 않기로 했다. 누군가 이 판을 찾으면, 그것을 근거로 그녀를 붙잡을 것이다. 대신 그녀는 세 기호만 찍었다.
용.
문.
샘.
그리고 그 아래에 아주 작게, 현대의 마음으로만 읽을 수 있는 뜻을 담아 한 획을 눌렀다.
내가 확인한다.
말은 보이지 않았지만, 뜻은 남았다.
그때 일루-타비가 어둠 속에서 몸을 일으켰다.
"가지 마."
서하는 그를 보았다.
"깨어 있었네요."
"네가 조용히 움직이면 꼭 더 큰일이 생기더라."
"나는 조용히 움직인 적이 별로 없는데요."
일루-타비의 입가가 잠깐 움직였다. 웃음이 될 뻔했지만 되지 못했다.
"이슈타르 문에는 혼자 가지 마. 거기서는 이름을 부르면 안 된다고 했지."
"왜요?"
이번에는 그가 침묵하지 않았다. 적어도 완전히는.
"수호자는 자기 이름으로 움직이지 않아. 역할로 움직이지. 문을 지키는 사자는 사자라서 지키는 게 아니라, 지키도록 불렸기 때문에 지켜. 그런데 누군가 그들에게 다른 이름을 먹이면…"
그는 말을 끊었다.
서하는 그 뒤를 알아들을 수 있었다.
수호자가 자신이 무엇을 지켜야 하는지 잊는다.
"당신은 그걸 어떻게 알아요?"
일루-타비는 대답 대신 벽 쪽을 보았다. 벽 너머 어딘가에서 북소리가 아주 희미하게 들렸다.
"언젠가 말할게."
"언젠가라는 말은 너무 많이 들었어요."
"알아."
그는 고개를 숙였다.
"그래도 지금은 네가 살아 돌아와야 말할 수 있다."
서하는 천주머니를 허리춤에 묶었다. 그 안에는 푸른 유약 조각과 작은 표식이 들어 있었다. 손목의 팔찌는 달빛 아래에서 아주 희미하게 젖은 듯 반짝였다.
"기다리지 않을 거예요."
일루-타비가 그녀를 보았다.
"무엇을?"
"누군가 진실을 말해 주기를요."
그 말은 조용했지만, 서하 안에서는 문턱을 넘는 소리처럼 울렸다.
그녀는 아직 누구를 믿어야 할지 몰랐다. 나부-주쿱의 경고도, 신-이딘의 조각도, 일루-타비의 두려움도 모두 완전히 투명하지 않았다. 그러나 한 가지는 분명했다. 누군가 그녀의 이름을 먼저 쓰게 둘 수는 없었다. 법정이든 신전이든 왕궁이든, 그녀가 침묵하는 사이에 다른 손이 그녀의 운명을 점토판 위에 박아 넣을 것이다.
그것만은 막아야 했다.
서하는 문 쪽으로 걸었다.
일루-타비는 붙잡지 않았다. 다만 마지막으로 낮게 말했다.
"용의 문에서는 네 이름도, 내 이름도, 신의 이름도 부르지 마. 아무리 두려워도."
서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어둠 속으로 나섰다.
바빌론의 밤은 숨을 죽이고 있었다. 지구라트 위에는 별들이 박혀 있었고, 멀리 이슈타르 문의 푸른 벽돌은 아직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서하는 그 방향을 알 수 있었다. 손안의 푸른 조각이 아주 작게 떨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기다리면 누군가가 진실을 말해 줄 것이라는 믿음은 깨졌다.
이제 그녀는 스스로 문턱으로 가야 했다.
이 노트는 보도·비평·교육·연구 목적으로 작성되었습니다. 저작권 문의가 있으시면 에서 알려주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