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급차가 지나간 뒤
구급차의 붉은빛이 골목 끝에서 사라진 뒤에도 창문에는 한동안 빛의 잔상이 남아 있었다. 식당 안은 다시 조용해졌지만, 조용함은 조금 전과 달랐다. 그전의 조용함이 저녁 식사를 마친 사람들의 느슨한 평화였다면, 지금의 조용함은 누군가의 숨소리를 몰래 듣고 있는 듯한 조심스러움이었다.
나는 물컵을 들어 올렸다. 컵의 표면에 내 얼굴이 작게 비쳤다. 피곤한 눈, 굳은 입술, 말할 준비가 되지 않은 사람의 얼굴. 창밖으로는 사람들이 여전히 지나갔다. 누군가는 웃으며 전화를 하고, 누군가는 이어폰을 꽂은 채 빠르게 걸었고, 누군가는 편의점 봉지를 흔들며 횡단보도 앞에 멈춰 섰다. 도시가 멈추지 않는다는 사실은 때때로 위로가 되었지만, 방금은 이상하게 잔인하게 느껴졌다.
소크라테스는 식탁 위에 놓인 빈 접시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구급차가 지나간 방향으로 오래 시선을 두지 않았다. 대신 내 얼굴을 보았다. 마치 내가 창밖에서 본 것보다 내 안에서 일어난 일을 더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처럼.
"그대는 방금 무엇을 보았는가?"
나는 대답하려다 멈췄다.
"구급차요."
"그것은 눈으로 본 것일세. 마음으로는 무엇을 보았는가?"
나는 물컵을 내려놓았다. 유리와 나무가 닿는 소리가 예상보다 크게 났다.
"끝이요."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도시는 시장과 학교와 사무실만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네. 병실과 장례식장과 마지막 인사도 도시의 일부지. 그런데 사람들은 그것들을 도시 바깥에 있는 것처럼 생각하려 하네."
나는 창밖을 다시 보았다. 길은 평범했다. 너무 평범해서 더 이상했다.
죽음이라는 말은 늘 멀리 있었다. 뉴스 속 숫자, 장례식장에서 검은 양복을 입은 사람들의 낮은 목소리, 병원 복도 끝에 붙어 있는 중환자실 안내판. 내 삶 속에 들어오더라도 잠시 머물다 가야 할 불청객처럼 여겼다. 나는 죽음을 생각하는 일이 불길하다고 배웠고, 죽음을 말하는 사람은 어둡거나 약한 사람이라고 여겼다. 그래서 바쁘다는 핑계로, 아직 젊다는 핑계로, 오늘은 할 일이 많다는 핑계로 그 생각을 밀어냈다.
하지만 구급차의 사이렌은 핑계를 좋아하지 않았다. 그것은 짧고 날카롭게 지나가며 묻고 있었다. 너는 정말 시간이 무한하다고 믿느냐고.

담담한 사람의 마지막 이야기
소크라테스는 식탁 위에 손을 올려놓았다. 그의 손은 늙었지만 떨리지 않았다. 그는 마치 내일 아침 날씨를 이야기하듯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나도 언젠가 한 도시의 법정에 섰네."
나는 그를 바라보았다.
그가 지금까지 자신을 소크라테스라고 부르는 일을 완전히 믿은 것은 아니었다. 어떤 날은 장난처럼 느껴졌고, 어떤 날은 내 피곤한 마음이 만들어 낸 기묘한 환상 같았다. 그런데 그가 그렇게 말하는 순간, 식당의 공기가 아주 오래된 돌계단의 냄새를 품은 듯했다. 촛불 하나 없는 법정, 웅성거리는 시민들, 누군가의 분노와 누군가의 조롱, 그리고 그 한가운데 서 있는 노인.
"사람들은 내가 젊은이들을 타락시킨다고 했네. 신을 믿지 않는다고도 했고. 그러나 내가 한 일은 대체로 질문이었지. 무엇이 정의인가. 무엇이 선인가. 그대가 믿는 그것을 정말 알고 있는가. 사람들은 칼보다 질문을 더 불편해할 때가 있네. 칼은 몸을 겨누지만, 질문은 자신이 쌓아 둔 변명을 겨누기 때문이지."
그는 잠시 말을 멈췄다.
"나는 살아남을 방법을 찾을 수도 있었네. 그들의 마음에 드는 말을 하고, 내가 평생 해 온 일을 부끄러운 일이라고 인정하고, 다시는 묻지 않겠다고 약속할 수도 있었지. 그러나 그렇게 살아남는다면, 그 삶은 누구의 삶이겠는가?"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는 미소를 지었다. 슬픈 미소도, 자랑스러운 미소도 아니었다. 이상하게도 아주 가벼운 미소였다.
"그래서 나는 독배를 들었네. 물론 죽음이 아무렇지 않았던 것은 아니네. 몸을 가진 자가 몸의 끝을 앞두고 아무 감각이 없다면, 그것도 진실은 아니겠지. 그러나 나는 이것만은 분명히 알았네. 죽음을 피하려다 나 자신을 잃는다면, 나는 이미 죽은 것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그의 말은 식탁 위에 천천히 내려앉았다.
나는 그의 죽음을 역사책에서 읽은 적이 있었다. 시험에 나올 만한 문장으로, 위대한 철학자의 최후라는 제목 아래에서. 그러나 지금 그 이야기는 더 이상 먼 과거가 아니었다. 독배는 고대의 물건이 아니라 매일의 선택처럼 느껴졌다. 우리는 매일 작고 투명한 잔을 앞에 두고 있었다. 그 안에는 거짓말도 있고, 비겁함도 있고, 남이 원하는 모습으로만 살겠다는 약속도 있었다. 마시지 않으면 불편해지는 잔. 마시면 조금씩 나를 잃는 잔.
"선생님은 죽음이 두렵지 않았나요?"
내 질문은 작게 나왔다. 너무 오래 묻지 않으려 했던 질문이라 목 안쪽에 걸려 있었다.
소크라테스는 내 눈을 피하지 않았다.
"두려움이 없었다고 말하면 나는 거짓말쟁이가 될 걸세. 다만 나는 두려움을 신으로 모시지는 않았네."
우리가 두려워하는 것은 무엇인가
그는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대며 말했다.
"사람은 모르는 것 앞에서 마음이 바빠지네. 빈 방을 보면 그 안에 괴물이 있다고 상상하고, 어두운 골목을 보면 누군가 숨어 있다고 생각하지. 죽음도 그렇네. 우리는 죽음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지 못하네. 그러니 마음은 그 빈자리를 온갖 그림으로 채우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죽음이 두렵다고 말할 때, 내가 실제로 떠올리는 것은 죽음 그 자체가 아니었다. 고통스러운 병실, 남겨진 사람들의 울음, 갑자기 끊기는 계획, 열어 보지 못한 메시지, 미안하다는 말을 끝내 하지 못한 채 닫히는 문. 죽음은 하나의 사건이라기보다 수많은 상상의 조각으로 나를 덮쳤다.
소크라테스는 손가락으로 식탁을 가볍게 두드렸다.
"우리가 두려워하는 것에는 여러 얼굴이 있네. 몸이 아플까 두렵고, 사랑하는 사람을 잃을까 두렵고, 내가 사라진 뒤 아무 의미도 남지 않을까 두렵지. 그러나 그 모든 두려움의 바닥에는 대개 이런 생각이 있네. '나는 알 수 없다.'"
그는 '알 수 없다'는 말을 천천히 발음했다.
"알 수 없다는 사실은 인간을 겸손하게 만들 수도 있고, 미치게 만들 수도 있네. 겸손한 사람은 모른다는 사실 앞에서 조용히 묻지. 나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지금 무엇을 사랑해야 하는가. 그러나 미친 마음은 모른다는 빈자리 위에 확신을 세우려 하네. 반드시 최악일 것이다. 반드시 견딜 수 없을 것이다. 반드시 모든 것이 무의미해질 것이다."
나는 내 안에서 그런 목소리들을 들었다. 늘 미래를 최악으로 예측하던 목소리. 실패하기 전에 포기하라고 속삭이던 목소리. 사랑을 시작하기도 전에 상처받을 결말부터 계산하던 목소리. 그것들은 모두 나를 보호하는 척했지만, 사실은 살아 보기도 전에 나를 좁은 방 안에 가두었다.
"그럼 죽음 앞에서 우리는 무엇을 알 수 있나요?"
"적어도 이것은 알 수 있네."
그가 몸을 조금 앞으로 기울였다.
"우리는 언젠가 죽는다는 것. 그리고 그 날이 정확히 언제인지는 모른다는 것."
그 말은 너무 단순해서 피할 곳이 없었다.
나는 수많은 철학적 설명을 예상했다. 영혼이 불멸하는지, 죽음 이후의 세계가 있는지, 인간의 의식이 사라지는지 같은 이야기. 하지만 그는 가장 기본적인 사실만을 내 앞에 놓았다. 언젠가 끝난다. 언제인지는 모른다.
그 두 문장은 어둡지 않았다. 오히려 방 안의 불을 켜는 스위치 같았다. 불이 켜지자 방이 작아 보였다. 내가 붙잡고 있던 걱정들도, 하루 종일 나를 괴롭히던 체면도, 답장을 늦게 보낸 사람의 의도를 해석하느라 쓴 에너지도 그 방 안에서 제 크기를 드러냈다.
대부분은 생각보다 작았다.
끝이 있다는 사실이 바꾸는 것
소크라테스는 남은 빵 조각을 손에 들었다가 다시 접시에 내려놓았다.
"그대가 이 빵이 무한히 많다고 믿는다면 어떻게 먹겠는가?"
"아무렇게나요. 남겨도 되고, 던져도 되고, 맛을 느끼지 않아도 되겠죠."
"그런데 이것이 마지막 한 조각이라면?"
나는 빵을 보았다.
"천천히 먹겠죠. 누구와 나눌지도 생각할 거고요."
그는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시간도 그러하네. 무한하다고 믿는 시간은 쉽게 낭비되네. 그러나 끝이 있다는 것을 아는 시간은 질문을 바꾸지. 무엇을 더 가질 것인가에서 무엇을 더 진실하게 살 것인가로."
나는 그 말이 불편했다. 왜냐하면 내 시간 대부분은 더 갖기 위한 쪽으로 기울어 있었기 때문이다. 더 인정받기, 더 안전해지기, 더 늦기 전에 더 많은 것을 확보하기. 물론 그런 것들이 모두 나쁘다는 뜻은 아니었다. 월세를 내야 했고, 일을 해야 했고, 몸도 돌봐야 했다. 그러나 문제는 그것들이 내 삶의 주인이 되는 순간이었다.
죽음을 생각하면 우선순위가 바뀐다. 모든 것을 버리고 산속으로 들어가게 된다는 뜻이 아니다. 오히려 평범한 일들이 더 선명해진다. 밥을 먹는 일, 사과하는 일, 누군가의 말을 끝까지 듣는 일, 오늘 해야 할 일을 정직하게 하는 일. 끝이 있다는 사실은 삶을 축소하지 않는다. 흩어진 삶을 한 점으로 모아 준다.
나는 최근 며칠을 떠올렸다. 팀장의 압박 앞에서 움츠러들었던 순간, 지윤의 답장을 기다리며 휴대전화를 뒤집어 놓던 순간, 일을 잘하고 싶다는 마음과 인정받고 싶다는 마음이 뒤섞여 나를 몰아세우던 순간. 그때마다 나는 '나중'을 믿었다. 나중에 말하면 된다. 나중에 고치면 된다. 나중에 용기 내면 된다.
나중이라는 말은 이상한 피난처였다. 문은 늘 열려 있는 것 같지만, 막상 들어가 보면 아무것도 없었다. 나중은 아직 오지 않은 시간이 아니라, 오늘의 책임을 잠시 숨겨 두는 창고일 때가 많았다.
"선생님, 죽음을 자주 생각하면 삶이 우울해지지 않을까요?"
그는 웃었다.
"그럴 수도 있네. 죽음을 생각한다면서 사실은 불안을 반복해서 씹고 있다면 말이지. 그러나 제대로 생각한다면 다르네. 죽음은 삶을 미워하라고 찾아오는 손님이 아니네. 삶을 함부로 대하지 말라고 문을 두드리는 손님이지."
나는 그 표현이 마음에 남았다.
죽음은 삶의 반대편에 서서 나를 끌어당기는 어둠이 아니라, 삶의 뒤편에서 조용히 등불을 들어 주는 존재일지도 몰랐다. 그 빛은 화려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 빛 아래에서는 내가 무엇을 미루고 있는지, 무엇을 두려워해 거짓말하고 있는지, 누구에게 마음을 닫아걸고 있는지가 보였다.
오늘 밤이 마지막이라면
식당 안의 손님은 거의 사라졌다. 주방 쪽에서는 그릇을 정리하는 소리가 났고, 벽시계의 초침이 또렷하게 들리기 시작했다. 늦은 저녁은 사람을 솔직하게 만드는 힘이 있었다. 낮에는 수많은 역할이 우리를 대신 말한다. 직원, 동료, 친구, 연인, 자식. 그러나 밤이 깊어지면 역할들이 하나씩 옷걸이에 걸리고, 결국 남는 것은 대답을 피하기 어려운 한 사람뿐이다.
소크라테스가 물었다.
"만약 오늘 밤이 그대에게 남은 마지막 저녁이라면, 그대는 무엇을 후회하겠는가?"
나는 즉시 대답하지 못했다.
머릿속에 거창한 장면은 떠오르지 않았다. 세계 여행을 못 간 것, 큰돈을 벌지 못한 것, 이름을 널리 알리지 못한 것이 먼저 떠오르지 않았다. 이상하게도 아주 작은 장면들이 떠올랐다. 아버지에게 전화를 걸려다 귀찮아서 미룬 일. 지윤에게 미안함보다 내 억울함을 먼저 설명하려 했던 말들. 팀 회의에서 후배의 의견이 내 것보다 좋아 보이자 괜히 시큰둥한 표정을 지었던 순간. 괜찮지 않으면서 괜찮다고 말하고, 사랑하면서 아닌 척하고, 두려우면서 계산적인 척했던 날들.
나는 낮게 말했다.
"솔직하지 못했던 걸 후회할 것 같아요."
"무엇에 대해?"
"사람들한테요. 그리고 저 자신한테요."
그는 재촉하지 않았다.
"저는 자주 미뤘어요. 말해야 할 때 침묵했고, 침묵해야 할 때 변명했어요. 누군가에게 상처를 줬다는 걸 알면서도 사과하면 제가 작아질까 봐 기다렸고요. 사랑한다고 말하고 싶은 순간에도 상대가 먼저 확신을 주길 바랐어요. 죽음이 무서운 이유가… 어쩌면 사라지는 것보다, 그런 미완성의 말들이 남는 것 때문인지도 모르겠어요."
말을 끝내자 가슴이 묵직해졌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조금 가벼웠다. 말하지 않은 진실은 몸속에서 돌처럼 굳지만, 입 밖으로 나온 진실은 비록 못생겨도 움직일 수 있는 생물이 된다.
소크라테스는 조용히 말했다.
"그렇다면 오늘 죽음을 생각한 보람이 있네."
"보람이요?"
"죽음이 그대에게 해야 할 일을 알려 주었으니 말일세. 죽음을 생각한다는 것은 관 속에 미리 들어가 눕는 일이 아니네. 오늘의 삶으로 돌아오기 위해 잠시 끝을 바라보는 일이네."
그는 손바닥을 펴 보였다.
"후회 없는 삶이란 모든 것을 완벽하게 해낸 삶이 아니네. 그런 삶은 인간에게 허락되지 않았지. 후회 없는 삶이란 후회가 생길 때마다 그것을 변명으로 덮지 않고, 가능한 만큼 바로잡으려 한 삶일세. 중요한 것은 마지막 날에 후회가 하나도 없느냐가 아니라, 오늘 알게 된 후회를 오늘의 정직으로 바꾸느냐네."
오늘의 정직.
그 말이 나를 붙잡았다.
한 가지 결정
나는 휴대전화를 꺼냈다. 화면에는 몇 개의 알림이 쌓여 있었다. 업무 메신저, 광고, 뉴스 속보, 그리고 답장이 오지 않은 대화창. 나는 잠시 지윤의 이름 위에 손가락을 올렸다. 마음이 또 계산을 시작했다. 지금 보내면 부담스러울까. 답을 재촉하는 것처럼 보일까. 너무 늦었나. 너무 빠른가. 내가 사과하면 이 관계에서 지는 것처럼 보일까.
소크라테스가 내 휴대전화를 보며 물었다.
"그대는 무엇을 하려는가?"
"정직해지려는 중인데, 아직도 멋있게 보이고 싶은 마음이 끼어들어요."
"멋있게 보이는 정직은 때때로 또 다른 가면일세."
나는 웃음이 났다. 아프게 정확한 말이었다.
나는 메시지 창을 열었다. 처음에는 긴 문장을 썼다. 내가 왜 그랬는지, 그때 어떤 상황이었는지, 나도 힘들었다는 말들이 줄줄이 이어졌다. 읽어 보니 사과처럼 보이는 자기변호였다. 나는 모두 지웠다.
다시 썼다.
'지윤아, 답을 재촉하려는 건 아니야. 다만 오늘 생각해 보니 내가 미뤄 두면 안 되는 말이 있어서 보내. 나는 네가 내 마음을 몰라준다고 느끼기 전에, 내가 네 마음을 제대로 들으려 하지 않았다는 걸 인정해야 할 것 같아. 미안해. 네가 어떤 답을 하든, 이 말만은 더 늦기 전에 정직하게 전하고 싶었어.'
보내기 버튼 앞에서 손가락이 멈췄다.
심장이 빨리 뛰었다. 죽음에 대해 이야기하던 때보다 어쩌면 더 두려웠다. 거대한 죽음보다 작은 사과가 더 무서울 때가 있다. 죽음은 언젠가 오지만, 사과는 지금 나를 바꾸라고 요구하기 때문이다.
나는 소크라테스를 보았다.
"이게 후회 없는 삶인가요?"
그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것은 후회 없는 삶을 향한 한 걸음일 뿐이네. 한 걸음을 삶 전체인 것처럼 과장하지 말게. 그러나 한 걸음이 아무것도 아니라고 깎아내리지도 말게."
나는 숨을 들이마셨다. 그리고 보냈다.
메시지가 전송되었다는 작은 표시가 떴다. 세상은 변하지 않았다. 식당은 여전히 조용했고, 벽시계는 여전히 초침을 움직였고, 창밖의 사람들은 여전히 각자의 밤을 향해 걸어갔다. 지윤에게서 곧장 답장이 오지도 않았다.
그런데 내 안에서는 무언가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랫동안 구석에 앉아 있던 작은 용기였다.
나는 휴대전화를 내려놓았다.
"답이 오지 않아도 괜찮을까요?"
소크라테스는 빵 조각을 집어 들며 말했다.
"괜찮다는 말은 너무 빠를 수 있네. 아프겠지. 기다리게 될 것이고, 후회도 할 것이고, 다시 휴대전화를 들여다볼지도 모르네. 그러나 그대는 적어도 자기 영혼을 속이는 쪽에 서 있지는 않네. 그것이면 오늘 저녁에는 충분하네."
그의 말은 위로라기보다 기준에 가까웠다. 괜찮아질 거라는 약속은 없었다. 대신 내가 어느 쪽에 서 있는지 묻는 질문이 있었다. 나는 그것이 더 믿음직했다.
죽음이 비추는 삶
우리는 한동안 말없이 앉아 있었다. 식당 주인이 멀리서 우리 쪽을 보았지만, 이상하게도 서두르라는 눈치는 주지 않았다. 어쩌면 그는 이 밤의 대화가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있는 사람처럼 보였다.
소크라테스는 창밖을 바라보았다.
"사람들은 죽음을 생각하면 모든 것이 허무해진다고 말하네. 그러나 나는 반대로 묻고 싶네. 끝이 없다면, 무엇이 소중하겠는가?"
그는 천천히 말을 이었다.
"꽃이 지기 때문에 꽃을 보는 눈이 생기네. 저녁이 끝나기 때문에 우리는 한 끼를 나누고, 사람이 떠날 수 있기 때문에 그의 말을 귀하게 듣지. 영원히 미룰 수 있다면 사랑도, 용서도, 배움도 늘 내일로 밀릴 걸세. 끝은 삶을 빼앗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삶에 모양을 주네."
나는 창밖의 가로등을 보았다. 노란빛 아래로 낙엽 하나가 굴러갔다.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작은 움직임이었다. 그런데 그 장면이 이상하게 선명했다. 아마 죽음을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끝을 떠올리는 순간, 세계는 더 어두워지는 것이 아니라 더 또렷해질 수 있다. 사라질 수 있는 것들은 하찮아지는 대신 귀해진다.
나는 그동안 죽음을 삶 밖에 세워 두었다. 가능하면 보지 않고, 말하지 않고, 생각하지 않으려 했다. 하지만 죽음을 밀어낼수록 내 삶도 흐릿해졌다. 시간이 많다고 믿었기에 중요한 말을 미뤘고, 언젠가 바뀔 거라고 믿었기에 오늘의 비겁함을 용서했다. 죽음을 외면하는 일은 죽음에서 도망치는 것이 아니라, 오늘을 대충 살아도 된다는 허락을 스스로에게 주는 일이었다.
소크라테스가 내 생각을 읽은 듯 말했다.
"죽음을 기억하게. 그러나 죽음에게 지배당하지는 말게. 죽음은 왕이 아니라 전령일세. 그가 전하는 소식은 단순하네. 그대에게 주어진 시간이 유한하다는 것. 그러니 그 시간을 무엇에 바칠지 깨어 있으라는 것."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죽음을 생각하는 일은 어두운 집착이 아니었다. 그것은 오늘을 진실하게 살기 위한 빛이 될 수 있었다. 그 빛은 내가 영원히 살 것처럼 구는 오만을 낮추고,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절망을 물러나게 했다. 나는 언젠가 죽는다. 그리고 아직 살아 있다. 이 두 사실 사이에 오늘의 선택이 놓여 있었다.
마지막 질문이 아닌 오늘의 질문
자리에서 일어나기 전, 소크라테스는 내게 물었다.
"그대는 오늘 무엇을 배웠는가?"
나는 잠시 생각했다.
"죽음을 생각한다는 건 죽는 순간을 상상하며 겁먹는 일이 아니라, 지금 살아 있는 방식을 묻는 일이라는 걸 배웠어요."
"좋네. 더 말해 보게."
"두려움은 죽음 자체보다 모른다는 사실에서 커질 때가 많고요. 모른다는 걸 인정하면 오히려 지금 할 수 있는 일이 보이는 것 같아요. 그리고 시간이 끝난다는 사실은 저를 조급하게 만들기보다… 적어도 오늘은, 더 정직하게 만들었어요."
그는 미소 지었다.
"그렇다면 오늘 저녁은 헛되지 않았네."
우리는 식당 문 쪽으로 걸어갔다. 밖으로 나오자 밤공기가 차가웠다. 골목은 젖은 돌처럼 어두웠고, 멀리 큰길에서는 버스가 멈췄다 출발하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주머니 속 휴대전화를 만졌다. 답장은 아직 오지 않았다. 예전의 나라면 그 침묵을 곧장 판결로 받아들였을 것이다. 그러나 오늘은 조금 달랐다. 침묵은 아직 침묵일 뿐이었다. 내가 할 일은 이미 하나 했다.
소크라테스는 골목 끝에 서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도시의 불빛 때문에 별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그래도 그는 무언가를 보는 사람처럼 오래 바라보았다.
"선생님."
"말하게."
"정말 죽음 앞에서도 인간은 평온할 수 있을까요?"
그는 나를 돌아보았다.
"평온은 죽음이 멀리 있을 때 생기는 것이 아니네. 자기 자신에게서 너무 멀리 도망가지 않았을 때 생기지. 마지막 순간에 인간이 붙잡을 수 있는 것은 재산도, 평판도, 남의 박수도 아닐세. 자신이 어떤 선택을 하며 살아왔는가 하는 기억이지."
그는 잠시 침묵했다가 덧붙였다.
"그러니 오늘 그대의 기억에 남을 선택을 하나씩 만들게. 거창할 필요는 없네. 정직한 말 한마디, 피하지 않은 책임 하나, 사랑을 소유하려 하지 않고 자유롭게 하는 태도 하나. 그런 것들이 모이면 죽음 앞에서도 완전히 낯선 사람으로 서지는 않을 걸세."
나는 그 말을 오래 품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구급차가 지나갔던 큰길을 다시 건넜다. 아까의 사이렌은 더 이상 들리지 않았다. 그러나 그 소리는 내 안 어딘가에 남아 있었다. 불안의 소리가 아니라 깨우는 소리로.
나는 생각했다. 죽음은 마지막 질문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은 마지막 날에만 쓰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매일 조금씩 답을 쓴다. 어떤 말로, 어떤 침묵으로, 어떤 용기로, 어떤 회피로.
오늘 밤 내가 쓴 답은 아주 짧았다.
미안하다고 말하는 것.
더 늦기 전에 정직해지는 것.
그리고 아직 살아 있는 이 시간을, 마치 당연한 소유물이 아니라 잠시 맡겨진 선물처럼 대하는 것.
골목 끝에서 바람이 불었다. 나는 외투깃을 여미고 천천히 걸었다. 밤은 여전히 깊었지만, 이상하게도 길은 조금 밝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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