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가 먼저 묻는 아침
다음 날 아침, 도시는 나보다 먼저 깨어 있었다.
집 앞 골목에서는 쓰레기 수거차가 후진음을 내며 천천히 움직였고, 편의점 앞에는 밤새 쌓인 택배 상자가 젖은 종이 냄새를 풍기고 있었다. 횡단보도 앞 사람들은 아직 잠이 덜 깬 얼굴로 신호등을 올려다보았다. 초록불이 켜지자 모두가 한꺼번에 앞으로 밀려 나갔다. 누군가는 통화를 했고, 누군가는 커피를 들고 뛰었고, 누군가는 이어폰 너머의 세상에 귀를 맡긴 채 걷고 있었다.
나는 지하철역으로 내려가며 어제 밤 메모한 다섯 가지 원칙을 다시 읽었다.
모르는 것을 아는 척하지 않기.
빠르게 답하기 전에 정확히 이해했는지 확인하기.
성과가 급해도 사람을 수단처럼 대하지 않기.
거절해야 할 일은 늦기 전에 말하기.
하루가 끝날 때 '무엇을 해냈는가'와 함께 '어떤 사람이 되었는가'를 묻기.
글자로 볼 때는 단정했다. 마치 잘 정돈된 서랍 같았다. 하지만 출근길 지하철은 서랍과 달랐다. 사람들의 어깨가 부딪혔고, 누군가의 가방이 내 옆구리를 밀었고, 문이 닫히기 직전 한 남자가 몸을 비집고 들어오며 안쪽 사람들에게 짜증 섞인 숨을 뿜었다.
"좀 들어가요."
그의 말에 안쪽에 있던 여자가 낮게 말했다.
"더 들어갈 데가 없어요."
남자는 못 들은 척 고개를 돌렸다. 나는 그 둘 사이에 서 있었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사실 내가 할 말이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그 짧은 침묵이 내 주머니 속 돌멩이처럼 무거웠다.
다음 역에서 휠체어를 탄 남자가 플랫폼에 나타났다. 그는 엘리베이터 쪽 안내판을 한참 바라보다가 역무원을 찾는 듯 고개를 두리번거렸다. 안내판에는 '점검 중'이라는 종이가 붙어 있었다. 사람들은 그를 한 번씩 보고 지나갔다. 나도 보았다. 그리고 지나갔다.
출근 시간이었다. 늦으면 안 됐다. 오늘은 새 제안서의 첫 회의가 있었다. 내가 리드하기로 한 일이었다. 평가에도 좋을 거라는 팀장의 말이 아직 귀에 남아 있었다.
계단을 오르며 나는 스스로에게 말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잖아.
그 말은 꽤 그럴듯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어제 소크라테스가 했던 말이 그 위에 겹쳐졌다.
해야 한다는 말은 생각이 쉬고 싶을 때 덮는 이불이라 했지.
오늘 아침의 나는 다른 이불을 덮고 있었다.
할 수 없다는 이불.

회의실 안의 작은 도시
회사에 도착하자마자 회의가 시작됐다. 고객사는 시 산하기관이었다. 골목 상권과 동네 문화 공간을 연결하는 시민 참여 플랫폼을 만들자는 제안이었다. 이름은 그럴듯했다. '우리 동네를 더 가깝게.'
회의실 화면에는 밝은 색의 시안이 떠 있었다. 동네 서점, 작은 카페, 공원 공연, 주민 모임, 시장 쿠폰 같은 이미지들이 차례로 지나갔다. 처음에는 좋은 일처럼 보였다. 사람들을 연결하고, 동네를 살리고, 외로운 사람들에게 작은 모임을 찾아 주는 일. 일이라는 것이 이렇게 조금은 따뜻해 보일 때도 있구나 싶었다.
그러나 세부 항목으로 들어가자 분위기가 달라졌다.
"접근성 항목은 뒤로 빼죠." 민재가 말했다. "노인층, 장애인 사용성까지 다 넣으면 범위가 커집니다. 이번 제안은 일단 보기 좋게 가야 해요."
수연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래도 공공 플랫폼이면 화면 낭독 지원이나 큰 글자 모드 정도는 기본 방향에 넣어야 하지 않을까요? 주민 참여라고 하면 사용하는 주민의 범위를 넓게 잡아야 할 것 같아서요."
팀장이 손가락으로 테이블을 두드렸다.
"맞는 말이긴 한데, 이번엔 일정이 빠듯해. 너무 이상적인 얘기 넣으면 실행 가능성이 떨어져 보여. 나중에 고도화 단계에 넣자."
나중에.
회사에서 자주 쓰는 말이었다. 지금은 어려우니 나중에. 예산이 없으니 나중에. 고객이 요구하지 않았으니 나중에. 나중에라는 말은 때때로 미래를 위한 계획이 아니라 현재의 불편함을 치우는 빗자루가 되었다.
나는 화면을 보며 입을 다물었다. 머릿속에서는 계산이 빠르게 돌아갔다. 일정은 정말 빠듯했다. 접근성 이야기를 넣으면 논의가 길어질 것이다. 고객사가 부담스러워할 수도 있고, 제안서가 무거워 보일 수도 있다. 이번 일은 내 평가와도 연결되어 있었다. 괜히 어렵게 만들 필요가 있을까.
그때 아침의 지하철역이 떠올랐다. '점검 중'이라는 종이 앞에서 고개를 두리번거리던 남자. 사람들의 시선. 나의 발걸음.
나는 회의실 안을 둘러보았다. 이곳에도 작은 도시가 있었다. 발언권이 큰 사람과 작은 사람, 빠른 사람과 망설이는 사람, 결정하는 사람과 결정의 영향을 받는 사람. 회의실 문을 닫았다고 해서 공동체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우리는 지금 도시의 한 조각을 설계하고 있었다.
"접근성 항목을 완전히 뒤로 빼지는 않았으면 합니다."
내 목소리는 생각보다 작게 나왔다. 하지만 모두가 나를 보았다. 나는 목을 한 번 가다듬었다.
"처음부터 모든 기능을 다 넣자는 뜻은 아닙니다. 다만 제안서에 '누가 이 플랫폼에서 빠질 수 있는가'를 고려했다는 흔적은 있어야 할 것 같습니다. 큰 글자 모드, 쉬운 언어 안내, 화면 낭독 기준 같은 건 단계별로 제시할 수 있습니다. 지금 당장 구현 범위를 확정하지 않더라도 방향을 빼면, 우리가 말하는 '주민'이 너무 좁아질 수 있습니다."
민재가 팔짱을 꼈다.
"좋은 말인 건 알겠는데, 점수에 도움이 될까?"
나는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예전 같으면 '도움 됩니다'라고 단정했을 것이다. 아는 척하지 않기로 했으니까.
"확실히 점수로 어떻게 반영될지는 모르겠습니다. 다만 공공기관 제안에서 배제 위험을 다루는 건 약점이 아니라 신뢰가 될 수 있다고 봅니다. 예산 부담이 걱정이라면 필수 기능과 확장 기능을 나눠서 쓰겠습니다."
팀장은 잠시 화면을 보았다. 수연은 고개를 조금 들었다.
"그럼 한 장으로 정리해 봐." 팀장이 말했다. "말만 좋은 페이지 말고, 현실적으로. 일정과 비용을 흔들지 않는 선에서."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회의는 계속됐다. 세상이 갑자기 정의로워진 것은 아니었다. 접근성 항목은 여전히 제안서의 중심이 아니라 한 장짜리 페이지가 되었다. 하지만 한 장은 사라진 것보다 나았다. 적어도 누군가의 자리가 완전히 접히지는 않았다.
회의실을 나오며 수연이 작게 말했다.
"아까 말씀해 주셔서 감사해요. 저 혼자 너무 예민한가 했거든요."
나는 민망해서 웃었다.
"저도 말할까 말까 했어요."
"그래도 하셨잖아요."
그 말은 칭찬처럼 들리지 않았다. 오히려 작은 숙제처럼 들렸다. 그래도 하셨잖아요. 그러니까 다음에도 해야 할지 몰라요.
자리로 돌아오자 메일은 쌓여 있었고, 메신저는 울렸고, 제안서 일정은 여전히 촘촘했다. 그러나 내 하루의 모양이 조금 달라져 있었다. 오늘 내가 한 일은 제안서에 한 페이지를 더한 것이었다. 동시에 어떤 사람의 자리를 완전히 지우지 않는 연습이기도 했다.
식당 밖의 저녁
저녁이 되자 나는 다시 그 식당으로 향했다.
식당 앞 거리는 평소보다 시끄러웠다. 버스가 정류장에 멈출 때마다 공기가 크게 한숨을 쉬었고, 배달 오토바이는 좁은 틈을 가르며 지나갔다. 횡단보도 신호음이 규칙적으로 울렸고, 술집 앞에서는 사람들이 웃음을 크게 터뜨렸다. 어디선가 구운 고기 냄새가 났고, 하수구 근처에서는 비린 냄새가 올라왔다. 도시는 좋은 냄새와 나쁜 냄새, 웃음과 짜증, 속도와 멈춤을 한 냄비에 넣고 계속 끓이고 있었다.
소크라테스는 식당 안이 아니라 바깥 작은 테이블에 앉아 있었다. 겨울도 아닌데 그는 어깨에 얇은 겉옷을 걸치고, 지나가는 사람들을 마치 오래된 책처럼 읽고 있었다.
"오늘은 밖에 계시네요."
"안쪽에서는 음식이 말하고, 바깥에서는 도시가 말하네."
나는 그의 맞은편에 앉았다. 의자가 조금 흔들렸다.
"도시는 말이 너무 많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이 듣지 않지."
그는 도로 쪽을 바라보았다. 한 남자가 담배꽁초를 바닥에 버리고 발로 비볐다. 조금 떨어진 곳에서는 아이가 떨어뜨린 귤 하나가 굴러가고 있었고, 아이의 어머니는 양손에 장바구니를 든 채 그것을 잡으려 애쓰고 있었다. 지나가던 학생이 귤을 집어 건네주자 아이가 고개를 꾸벅 숙였다.
소크라테스가 물었다.
"저 둘 중 누가 도시를 만들었는가?"
"담배꽁초를 버린 사람과 귤을 주워 준 학생이요?"
"그렇네."
"둘 다요?"
"둘 다네. 도시는 시장과 의회와 법원만으로 만들어지지 않네. 바닥에 버린 작은 쓰레기와, 낯선 아이에게 건넨 작은 귤로도 만들어지지. 사람들은 도시가 자기 바깥에 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도시는 사람들이 서로에게 남긴 흔적의 총합일세."
나는 테이블 위 물컵을 바라보았다. 투명한 물 안에 거리의 불빛이 흔들렸다.
"저는 오늘 회의에서 접근성 이야기를 했습니다."
"접근성?"
"어떤 서비스를 만들 때 더 많은 사람이 사용할 수 있도록 고려하는 겁니다. 글자를 크게 볼 수 있게 하거나, 화면을 소리로 읽을 수 있게 하거나, 어려운 표현을 줄이는 것 같은 거요."
"좋군. 문에 손잡이를 다는 일과 비슷하네. 문이 있어도 열 수 없다면, 그 사람에게는 벽과 다르지 않으니까."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처음에는 그냥 업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아침에 지하철역에서 휠체어를 탄 사람을 봤어요. 엘리베이터가 점검 중이었고, 사람들은 그냥 지나갔습니다. 저도요. 그러고 나서 회의에서 비슷한 이야기가 나왔는데, 그냥 넘기기가 어려웠습니다."
소크라테스는 한동안 말하지 않았다. 거리의 소음이 우리 사이를 채웠다. 버스 문이 열리고 닫히는 소리, 누군가의 웃음, 신호등의 짧은 전자음.
"그대는 오늘 도시를 두 번 만났군."
"한 번은 지나쳤고, 한 번은 조금 붙잡았습니다."
"좋은 표현일세. 사람은 늘 도시를 붙잡거나 지나치며 살지."
혼자만 깨끗한 접시
주문한 음식이 나왔다. 오늘은 토마토 스튜와 빵이었다. 빨간 국물 위에 허브가 흩어져 있었고, 빵은 겉이 바삭하게 구워져 있었다. 나는 빵을 찢어 스튜에 찍었다.
"선생님." 내가 말했다. "좋은 삶이란 게 결국 자기 삶을 잘 사는 것 아닌가요? 남에게 피해 주지 않고, 성실하게 일하고, 가까운 사람들에게 잘하고, 제 마음을 돌보는 것. 그 정도면 충분하지 않습니까?"
소크라테스가 빵 조각을 들고 물었다.
"이 빵은 그대가 만들었는가?"
"아니요."
"밀은 그대가 길렀는가?"
"아니요."
"이 물은 그대가 정화했는가? 이 의자는 그대가 만들었는가? 그대가 이곳까지 걸어온 길은 그대 혼자 닦았는가? 오늘 아침 그대가 탄 지하철은 그대 혼자 움직였는가?"
나는 웃었다.
"그런 뜻이 아닌 건 아시잖아요."
"그렇지. 그러나 때로는 뻔한 질문이 가장 깊은 잠을 깨운다네. 그대는 자기 삶을 혼자 사는 것처럼 말했지만, 그대의 하루는 수많은 사람의 손 위에 놓여 있네. 누군가 길을 치우고, 누군가 신호를 지키고, 누군가 전기를 관리하고, 누군가 병원에서 밤을 새우고, 누군가 그대가 먹을 음식을 운반하지. 그대가 혼자라고 느끼는 순간에도, 그대는 이미 많은 약속 위에 앉아 있네."
나는 스튜를 한 숟가락 먹었다. 따뜻한 국물이 목을 타고 내려갔다. 내가 오늘 하루 당연하게 사용한 것들이 떠올랐다. 깨끗한 물, 작동하는 엘리베이터, 약속된 출근 시간, 서로 알아듣는 언어, 줄을 서는 습관, 빨간불에 멈추는 운전자들.
"그럼 개인의 삶은 없는 겁니까?"
"있네. 아주 소중하게 있지. 그러나 개인의 삶은 공동체와 분리된 섬이 아니라, 공동의 바다 위에 떠 있는 배와 같네. 바다가 썩으면 아무리 훌륭한 배도 오래 가지 못하지. 그대 혼자만 깨끗한 접시를 갖고 싶어도, 식탁 전체가 무너지면 식사를 계속할 수 없네."
"그래서 시민으로 살아야 한다는 말씀이군요."
"시민이라는 말이 그대에게는 어떻게 들리는가?"
"투표하는 사람. 세금 내는 사람. 법을 지키는 사람. 뉴스에 화내는 사람?"
소크라테스가 웃었다.
"마지막은 꽤 많은 시민이 열심히 하는 일이군."
"요즘은 그게 제일 쉬우니까요."
"쉬운 분노는 종종 어려운 책임을 대신하네. 시민이란 단지 도시에 사는 사람이 아닐세. 함께 사는 세계가 조금이라도 더 나아지도록 자기 몫의 판단과 행동을 맡는 사람이지."
그 말은 크고 무거웠다. '시민'이라는 단어가 갑자기 주민등록증의 주소란을 넘어섰다. 그것은 내가 매일 아침 어떤 표정으로 사람들 사이를 지나가는지, 회의실에서 누구의 자리를 지우지 않는지, 불편한 장면 앞에서 얼마나 오래 머무르는지와 연결되어 있었다.
법은 귀찮은 울타리가 아니다
그때 횡단보도 앞에서 한 남자가 빨간불을 보고도 성큼성큼 길을 건넜다. 차가 급히 속도를 줄였고, 운전자가 창문을 열어 소리쳤다. 남자는 손을 한 번 들어 보이고는 그대로 걸어갔다.
소크라테스가 그 장면을 바라보며 물었다.
"저 사람은 무엇을 한 것인가?"
"무단횡단이요."
"그 말은 법의 이름이고, 나는 행위의 속을 묻고 있네."
나는 잠시 생각했다.
"자기 편의를 다른 사람의 안전보다 앞세운 거겠죠."
"그렇네. 법은 종종 귀찮은 울타리처럼 보이지만, 좋은 법은 서로의 약한 몸을 지키기 위해 세운 약속일세. 빨간불은 자동차를 사랑해서 있는 것이 아니라, 건너는 사람과 운전하는 사람 모두를 지키기 위해 있지. 줄을 서는 규칙은 기다림을 찬양하기 위해 있는 것이 아니라, 힘센 사람이 약한 사람을 밀어내지 못하게 하려는 장치일세."
"하지만 법이 늘 정의로운 건 아니잖아요."
소크라테스의 눈빛이 조금 깊어졌다.
"맞네. 법은 사람보다 오래 서 있을 때가 많지만, 그렇다고 늘 지혜로운 것은 아니네. 어떤 법은 낡고, 어떤 법은 특정한 사람에게만 유리하고, 어떤 법은 약한 이의 고통을 보지 못하지. 그러니 시민은 법을 우상처럼 섬겨서도 안 되고, 기분에 따라 무시해서도 안 되네."
"그럼 어떻게 해야 합니까?"
"법을 공동의 약속으로 존중하되, 정의에 비추어 계속 묻고 고쳐야 하네. 불편하다고 어기는 것은 편의의 노예가 되는 일이고, 부당한데도 묻지 않는 것은 게으른 복종이네. 시민은 법 앞에서 손님이 아니네. 주인일세. 주인은 집의 규칙을 함부로 깨뜨리지 않지만, 지붕이 새면 고치려 하지."
나는 그 말을 오래 바라보듯 들었다.
법을 지키는 사람.
법을 묻는 사람.
법을 고치는 사람.
시민은 그 셋 중 하나가 아니라 셋 모두여야 하는지도 몰랐다.
"그런데 저는 법이나 제도 같은 건 너무 멀게 느껴집니다."
"멀게 느껴지는 것은 대개 너무 커 보이기 때문일세. 하지만 법과 제도는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진 돌덩이가 아니네. 많은 사람의 습관이 굳어져 규칙이 되고, 많은 침묵이 쌓여 관행이 되며, 많은 용기가 모여 변화가 되지."
"침묵도요?"
"물론이네. 침묵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아닐 때가 많네. 때로 침묵은 이미 있는 힘의 편에 조용히 서는 일이네."
아무도 하지 않은 일의 무게
나는 포크를 내려놓았다.
"그 말은 좀 가혹합니다. 모든 일에 다 나설 수는 없잖아요. 길에서 보는 일, 회사에서 생기는 일, 뉴스에 나오는 일, 이웃의 문제까지 다 책임질 수는 없습니다."
"맞네. 모든 것을 책임지려는 사람은 곧 아무것도 제대로 책임지지 못하게 되지. 나는 그대에게 도시 전체를 어깨에 메라고 하지 않았네. 다만 그대 눈앞에 놓인 일을 매번 남의 일로 밀어내는 습관을 살피라는 걸세."
그는 손가락으로 테이블 위 빵 부스러기를 모았다.
"방관에는 여러 얼굴이 있네. 너무 바빠서 지나치는 얼굴, 나 하나쯤이야 하는 얼굴, 괜히 나섰다가 손해 볼까 두려운 얼굴, 누군가 하겠지 기대하는 얼굴. 각각은 작아 보이지만, 모이면 도시의 기후가 되네."
"기후요?"
"비가 하루 오면 우산을 쓰면 되네. 그러나 기후가 바뀌면 삶의 방식이 달라지지. 무례를 보고도 모두가 웃어넘기면, 무례는 그곳의 날씨가 되네. 거짓을 보고도 모두가 성과만 칭찬하면, 거짓은 그곳의 공기가 되네. 약한 사람의 불편을 계속 나중으로 미루면, 그 공동체는 빠른 사람에게만 살기 좋은 도시가 되지."
나는 회의실의 수연을 떠올렸다. 그가 혼자 조심스럽게 말할 때, 내가 침묵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아마 회의는 더 빨리 끝났을 것이다. 제안서도 조금 더 가벼워졌을 것이다. 아무도 큰 피해를 입은 것처럼 보이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 자리 하나가 사라졌을 것이다.
"오늘 아침 지하철역에서는 지나쳤습니다."
"그랬지."
"그때 제가 뭘 할 수 있었을까요? 역무원을 찾아드릴 수도 있었겠지만, 늦었을 겁니다."
"늦었을 수 있네."
"그럼요?"
"다음에는 1분을 써 볼 수 있겠지. 직접 해결하지 못해도, 역무원에게 알릴 수 있네. 안내가 잘못되었다면 민원을 남길 수 있고, 회사에 늦는다면 늦는 이유를 설명할 수 있네. 물론 매번 가능하지는 않지. 그러나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말이 사실인지, 아니면 서둘러 벗어나고 싶은 마음이 만든 변명인지 한 번은 물어볼 수 있네."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그는 나를 꾸짖는 것 같지 않았다. 오히려 내 손에 아주 작은 도구 하나를 쥐여 주는 것 같았다.
한 번은 물어보기.
나는 정말 아무것도 할 수 없는가.
작은 시민의 연습장
"그럼 일상에서 정의롭게 산다는 건 뭡니까?"
내 질문은 막연했다. 정의라는 단어는 너무 컸다. 광장, 판결문, 헌법, 시위, 역사책 같은 것들이 떠올랐다. 내 하루와는 거리가 먼 단어 같았다.
소크라테스는 스튜 그릇을 바라보며 말했다.
"정의는 큰 건물의 이름이기도 하지만, 매일 놓는 벽돌의 이름이기도 하네. 그대가 오늘 회의에서 한 일도 작은 벽돌이었지."
"그 정도로요?"
"그 정도부터라네. 사람들은 거대한 정의를 사랑하면서도 작은 정의를 귀찮아하네. 그러나 작은 정의를 계속 피하는 사람이 큰 정의 앞에서 갑자기 용감해지기는 어렵지."
"작은 정의라면 어떤 겁니까?"
그는 손가락을 하나씩 접으며 말했다.
내가 편하자고 공공의 공간을 더럽히거나 막지 않는 것.
약한 목소리가 회의나 대화에서 지워질 때, 적어도 한 번은 다시 불러오는 것.
확인하지 않은 정보를 분노와 함께 퍼뜨리지 않는 것.
규칙이 불편할 때 곧장 비웃기보다, 그 규칙이 누구를 지키는지 먼저 생각하는 것.
부당한 규칙을 보았을 때 혼잣말로만 욕하지 않고, 가능한 절차로 묻고 바꾸려는 것.
투표, 민원, 동네의 작은 모임처럼 느리고 번거로운 방식에도 가끔은 시간을 내는 것.
"생각보다 평범하네요."
"좋은 삶은 대개 평범한 곳에서 망가지고, 평범한 곳에서 다시 세워지네. 영웅적인 순간은 자주 오지 않지만, 계산대 앞의 줄, 회의실의 침묵, 길 위의 쓰레기, 댓글을 쓰기 전의 10초는 매일 오지."
나는 휴대전화를 떠올렸다. 뉴스 제목만 보고 화가 나서 친구에게 링크를 보낸 적, 확인되지 않은 소문을 '그럴 줄 알았다'는 말과 함께 넘긴 적, 아파트 단체 채팅방에서 누군가를 몰아붙이는 말투를 보면서도 피곤하다는 이유로 나간 적. 나는 큰 잘못을 한 적은 별로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작은 무심함은 꽤 많이 모아 두고 있었다.
"저는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고 말하면서, 좋은 도시에는 별 관심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좋은 사람과 좋은 도시는 서로를 키우네. 나쁜 도시는 좋은 사람을 지치게 하고, 좋은 사람들의 포기는 도시를 더 나쁘게 하지. 그러니 그대가 자기 영혼을 돌본다는 말은, 그 영혼이 살아갈 세계도 돌본다는 뜻이어야 하네."
"너무 큰 말처럼 들립니다."
"크게 들리면 작게 시작하게. 그대의 발이 닿는 곳부터."
그때 식당 옆 인도에서 금속이 끌리는 소리가 났다. 전동 킥보드 하나가 점자블록 위에 비스듬히 쓰러져 있었다. 사람들은 그것을 피해 걸었다. 시각장애인용 점자블록이라는 것을 머리로는 알고 있었지만, 평소에는 노란 선 정도로만 보던 것이었다.
나는 잠시 망설였다. 지금 일어나면 너무 티가 날 것 같았다. 소크라테스가 보고 있어서 착한 사람인 척하는 것처럼 보일지도 몰랐다.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스튜를 아주 진지하게 떠먹고 있었다.
나는 의자에서 일어났다. 킥보드는 생각보다 무거웠고, 손잡이에는 먼지가 묻어 있었다. 나는 그것을 인도 가장자리의 방해가 덜 되는 곳으로 옮겨 세웠다. 지나가던 한 사람이 나를 힐끗 보았고, 곧 자기 길을 갔다. 박수도 없었고, 감사 인사도 없었다.
자리로 돌아오자 소크라테스가 말했다.
"방금 그대는 도시를 조금 고쳤네."
"너무 과장 아닙니까?"
"아니. 도시는 대개 그렇게 조금씩 고쳐지거나, 조금씩 망가지네."
나는 손에 묻은 먼지를 냅킨으로 닦았다. 이상하게도 마음이 거창해지기보다 조용해졌다. 내가 한 일은 아주 작았다. 하지만 그 작은 일이 '아무것도 하지 않음'과는 분명 달랐다.
누구의 자리까지 포함할 것인가
식사가 거의 끝나갈 무렵, 지윤에게서 메시지가 왔다.
'이번 주말에 잠깐 걸을래? 오래 말하지 않아도 괜찮아.'
나는 화면을 한참 바라보았다. 답장을 빨리 써서 관계를 정리하고 싶은 마음이 올라왔다. 잘해 보자고 말하고 싶기도 했고, 아직 확신이 없으면 더 기다리자고 말하고 싶기도 했다. 그러나 오늘은 다른 질문이 먼저 떠올랐다.
나는 이 관계 안에서 누구의 자리까지 보려고 했는가.
내 불안의 자리만 보았나. 지윤의 침묵이 놓일 자리도 남겨 두었나. 사랑을 소유가 아니라 깨움이라고 배웠으면서, 나는 여전히 관계를 내 마음의 불안을 진정시키는 도구로 쓰고 있지는 않았나.
나는 천천히 답장을 썼다.
'좋아. 천천히 걷자. 네가 말하고 싶은 만큼만 말해도 괜찮아.'
보내고 나니 이상하게 식당 밖 거리의 소음이 조금 부드럽게 들렸다. 어쩌면 공동체란 거창한 국가나 도시만을 뜻하는 것이 아닐지도 몰랐다. 두 사람이 나누는 관계도 작은 공동체였다. 회사 팀도, 지하철 칸도, 아파트 복도도, 식당 앞 인도도 모두 작은 공동체였다. 그곳마다 누군가의 자리가 생기거나 사라졌다.
"선생님."
"말하게."
"정의로운 시민으로 산다는 건 결국 질문하는 일 같습니다."
"어떤 질문인가?"
"내 편의가 누구의 불편 위에 놓여 있는지 묻는 것. 내가 침묵하면 누가 더 외로워지는지 묻는 것. 내가 당연하게 쓰는 것들이 누구의 노동과 약속 위에 있는지 묻는 것. 그리고 이 결정에서 빠진 사람은 없는지 묻는 것."
소크라테스는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대의 질문이 오늘은 식탁을 넘어 길까지 걸어 나갔군."
"질문이 점점 귀찮아집니다."
"좋은 질문은 원래 게으른 마음을 귀찮게 하네. 그러나 그 귀찮음 덕분에 영혼은 잠들지 않지."
그는 빈 그릇을 바라보다가 덧붙였다.
"기억하게. 혼자만 잘 사는 기술은 결국 오래가지 못하네. 이웃의 불행이 공기가 되고, 공동의 무질서가 길이 되며, 서로에 대한 불신이 물처럼 흐르면, 아무리 영리한 사람도 그 안에서 숨 쉬어야 하네. 좋은 삶은 자기 접시만 가득 채우는 일이 아니라, 함께 앉은 식탁이 무너지지 않도록 살피는 일일세."
도시가 남기는 질문
계산을 마치고 식당을 나섰다. 밤공기는 낮보다 차가웠고, 도로 위 불빛은 젖은 아스팔트에 길게 번져 있었다. 소크라테스는 나와 나란히 걸었다. 그의 걸음은 느렸지만 이상하게도 사람들 사이의 흐름을 잘 탔다. 누구와도 크게 부딪히지 않았고, 서두르지도 않았다.
골목 끝에서 구급차 사이렌 소리가 들렸다. 사람들은 잠시 고개를 돌렸고, 차들은 조금씩 길을 비켰다. 빨간 불빛이 건물 유리창에 번쩍이며 지나갔다. 소크라테스는 그 빛이 사라질 때까지 바라보았다.
"도시는 산 사람들의 욕망만으로 이루어진 줄 알기 쉽네." 그가 조용히 말했다. "하지만 고통, 병, 죽음도 늘 이 길을 함께 지나가지."
그 말은 밤공기보다 차갑게 내 안에 들어왔다. 나는 구급차가 사라진 방향을 보았다. 누군가에게는 오늘이 평범한 목요일 밤이겠지만, 누군가에게는 삶이 완전히 달라지는 밤일지도 몰랐다. 같은 도시에 산다는 것은 같은 시간을 산다는 뜻이 아니었다. 누군가의 저녁은 웃음이고, 누군가의 저녁은 응급실의 흰빛이었다.
"다음에는 그것에 대해 이야기하게 될 걸세."
"죽음 말입니까?"
소크라테스는 대답 대신 희미하게 웃었다.
나는 더 묻지 않았다. 아직은 도시의 소음이 내게 충분히 많은 말을 하고 있었다.
지하철역 앞에 도착했을 때, 나는 아침에 보았던 엘리베이터 안내문을 떠올렸다. 휴대전화를 꺼내 역 이름을 검색하고, 고객센터 페이지를 찾았다. 손가락이 잠시 멈췄다. 이런 걸 남긴다고 뭐가 달라질까. 누가 읽기나 할까. 너무 사소한 일 아닐까.
그러나 오늘 배운 것은 바로 그 사소함이었다.
나는 짧게 글을 남겼다. 출근 시간에 엘리베이터 점검 안내가 부족했고, 휠체어 이용자가 도움을 찾는 모습을 보았다고. 점검 일정과 대체 동선 안내가 더 잘 보이도록 해 달라고. 문장은 서툴렀고, 세상을 바꿀 만한 힘은 없어 보였다. 그래도 보냈다.
전송 버튼을 누른 뒤, 나는 깊게 숨을 쉬었다.
도시가 곧장 달라진 것은 아니었다. 신호등은 여전히 바뀌었고, 사람들은 여전히 바빴고, 누군가는 여전히 바닥에 쓰레기를 버릴 것이다. 나도 내일 또 무심해질지 모른다. 피곤하다는 이유로 지나치고, 바쁘다는 이유로 침묵하고, 내 일이 아니라는 말로 마음을 덮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오늘 나는 하나의 질문을 얻었다.
나는 오늘 이 도시에 무엇을 남겼는가.
조금 더 걷기 쉬운 길을 남겼는가, 아니면 누군가가 피해 가야 할 장애물을 남겼는가. 조금 더 말하기 쉬운 회의실을 남겼는가, 아니면 조용한 사람이 더 조용해지는 공기를 남겼는가. 조금 더 믿을 만한 약속을 남겼는가, 아니면 나 하나쯤이야 하는 틈을 남겼는가.
개인의 하루는 도시의 역사에 비하면 너무 작다. 그러나 도시의 역사는 그런 작은 하루들이 굳어져 만들어진다. 내가 오늘 한 번 멈춘 자리, 한 번 말한 문장, 한 번 옮긴 물건, 한 번 남긴 민원, 한 번 지킨 신호가 아무것도 아닌 것은 아니었다.
지하철 유리문에 내 얼굴이 비쳤다. 피곤한 얼굴이었다. 그러나 이제 그 얼굴 뒤로 다른 사람들의 얼굴도 어렴풋이 겹쳐 보였다. 아침의 휠체어 탄 남자, 회의실의 수연, 귤을 주워 준 학생, 길을 비켜 준 운전자들, 주말에 함께 걸을 지윤.
나는 혼자 사는 사람이 아니었다.
한 번도 혼자였던 적이 없었다.
그 사실은 부담이기도 했지만, 이상하게 위로이기도 했다. 내가 기대고 있는 세계가 있다는 뜻이었고, 나도 누군가가 기대는 세계의 아주 작은 부분이라는 뜻이었으니까.
열차가 들어왔다. 문이 열리고 사람들이 내렸다. 나는 급히 타려다 잠시 멈췄다. 내리는 사람이 모두 지나간 뒤 안으로 들어갔다. 아주 작은 질서였다. 누구도 알아주지 않는, 그러나 모두가 조금씩 편해지는 질서.
그날 밤, 나는 성공에 대해 덜 생각했다.
대신 함께 사는 법에 대해 생각했다.
좋은 삶은 혼자만 잘 사는 기술이 아니었다. 좋은 삶은 내가 지나간 자리에 다른 사람이 조금 덜 다치고, 조금 덜 외롭고, 조금 더 자기 몫의 숨을 쉴 수 있게 하는 태도였다.
도시는 여전히 시끄러웠다.
하지만 이제 그 소음은 단순한 배경음이 아니었다.
그것은 나를 부르는 목소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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