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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mmary

복수심에서 출발한 소년

에렌 예거를 이해할 때 가장 먼저 붙잡아야 할 단어는 자유다. 그런데 이 단어는 작품이 진행될수록 점점 위험한 모양으로 변한다. 초반의 에렌에게 자유란 아주 단순하고도 절박한 것이었다. 벽 밖으로 나가는 것, 거인에게 먹히지 않는 것, 누군가가 정해 준 좁은 세계 안에서 가축처럼 살지 않는 것. 그는 복잡한 이념가가 아니라, 문이 닫힌 세계에서 태어난 격한 소년이었다.

어머니의 죽음은 그 격함에 방향을 부여했다. 에렌은 그 사건을 통해 세계를 둘로 나누었다. 벽 안의 인간과 벽 밖의 거인. 살아남아야 하는 우리와 죽여야 하는 적. 이 구도 안에서 에렌의 분노는 독자에게도 이해하기 쉬웠다. 그는 무모했고, 고집이 셌고, 자기 힘을 과신했지만, 적어도 무엇과 싸우는지는 분명해 보였다. 초반부의 에렌은 소년만화적 주인공의 형태를 띤다. 강대한 적에게 가족을 잃고, 훈련을 거쳐, 동료와 함께, 인류를 위협하는 괴물에게 맞서는 인물이다.

그러나 《진격의 거인》은 이 익숙한 출발점을 오래 유지하지 않는다. 에렌이 거인의 힘을 갖고 있다는 사실이 드러나는 순간, 선과 악의 경계는 첫 번째로 흔들린다. 인류를 공격하던 괴물과 인류의 희망이 같은 원리로 움직인다는 사실은 이 세계의 핵심적인 불편함이다. 적을 없애면 자유로워진다는 믿음은 처음부터 금이 가 있었다. 에렌 자신이 그 적의 형식을 몸 안에 품고 있었기 때문이다.

에렌 예거라는 자유의 역설

바다 이후, 적은 사라지지 않고 얼굴을 얻는다

에렌의 동기가 결정적으로 바뀌는 지점은 바다에 도달한 이후다. 아르민의 책 속에서 바다는 벽 밖 세계의 상징이었다. 얼음의 대지, 불타는 물, 모래의 설원처럼 바다는 미지의 세계가 실제로 존재한다는 증거였다. 그래서 바다를 보는 장면은 원래라면 해방의 순간이어야 했다. 오랫동안 갇혀 있던 아이들이 마침내 세계의 끝을 넘어선 순간이어야 했다.

하지만 에렌에게 바다는 끝이 아니라 새로운 감옥의 경계선이 된다. 바다 건너편에는 자유가 아니라 적대적인 세계가 있었다. 거인은 자연재해가 아니었고, 파라디 섬은 인류 최후의 보루가 아니었으며, 벽 안 사람들은 세계의 피해자이면서 동시에 세계가 두려워하는 엘디아인의 후손이었다. 이제 에렌이 맞서야 할 대상은 말 못 하는 괴물이 아니라 국가, 군대, 역사, 선전, 증오, 외교적 고립이었다.

이 변화는 매우 중요하다. 어머니의 죽음 이후 에렌의 목표가 복수였다면, 지하실과 바다 이후 그의 목표는 생존과 선제공격의 논리로 바뀐다. 적을 모두 죽이면 자유로워질 수 있다는 사고는 그대로 남아 있지만, 적의 정체가 달라졌다. 이제 그 적은 거인이 아니라 바다 건너의 사람들이다. 밥을 먹고, 가족을 사랑하고, 공포에 떨고, 국가가 가르친 증오를 믿으며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마레 편에서 에렌이 라이너와 다시 만나는 장면은 이 변화를 압축한다. 에렌은 더 이상 적을 몰라서 미워하는 사람이 아니다. 그는 라이너가 왜 벽을 부수었는지, 마레의 전사 후보생들이 어떤 교육을 받았는지, 수용구의 엘디아인들이 어떤 처지에 놓였는지를 어느 정도 이해한다. 그런데 이해가 그를 멈추게 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는 이해한 뒤에도 행동한다. 이것이 에렌을 단순한 복수귀보다 더 섬뜩한 인물로 만든다. 그는 적이 인간이라는 사실을 모르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앞으로 나아간다.

진격의 거인, 미래를 보는 힘이 만든 감옥

에렌의 자유를 가장 복잡하게 만드는 설정은 진격의 거인의 기억 능력이다. 아홉 거인의 계승자는 과거 계승자의 기억을 일부 이어받는다. 그런데 진격의 거인은 여기에 더해 미래 계승자의 기억까지 흘러들어오는 특수한 성질을 지닌다. 쉽게 말해, 이 힘은 시간의 순서를 직선처럼만 흐르게 두지 않는다. 미래의 누군가가 본 장면이 과거의 계승자에게 파편처럼 전달되고, 그 파편은 과거의 선택에 영향을 준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에렌이 미래를 완전한 대본처럼 읽은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그는 모든 장면과 모든 감정을 처음부터 끝까지 안 것이 아니다. 그가 본 것은 조각난 기억에 가깝다. 그러나 조각난 기억은 때로 완전한 지식보다 더 강하게 사람을 사로잡는다. 결말의 일부를 봤지만 그 과정은 모르는 사람은, 자신이 자유롭게 움직이고 있다고 느끼면서도 어느새 그 결말을 향해 걸어가게 된다.

히스토리아의 손에 입 맞춘 뒤 에렌이 본 장면들은 그의 내면을 바꿔 놓는다. 그는 아버지 그리샤의 기억과 그 너머의 미래를 접하며, 자신이 언젠가 끔찍한 선택을 하게 될 가능성을 보게 된다. 이후 에렌의 침묵과 거리감은 단순한 냉정함이 아니다. 그는 아직 오지 않은 미래의 무게를 현재에 미리 짊어진 사람처럼 행동한다. 동료들이 같은 풍경을 보고 웃을 때, 에렌은 그 풍경 너머에 놓인 파괴를 보고 있다.

하지만 여기서 에렌을 완전한 운명의 피해자로만 읽으면 작품의 핵심을 놓치게 된다. 미래 기억은 에렌을 속박하지만, 동시에 에렌의 욕망을 통해 실현된다. 그가 정말 원하지 않는 길이었다면, 기억은 단순한 공포로 남았을 수 있다. 그러나 에렌 안에는 이미 벽을 부수고, 방해물을 제거하고, 자신을 가두는 세계를 짓밟고 싶어 하는 충동이 있었다. 미래가 에렌을 끌고 간 것이기도 하지만, 에렌 또한 그 미래를 자신의 의지로 붙잡았다. 이 지점에서 자유와 운명은 서로 반대말이 아니라 서로를 강화하는 함정이 된다.

그리샤를 움직인 아들, 아들을 만든 아버지

그리샤 예거를 둘러싼 기억 여행은 에렌의 주체성을 판단할 때 가장 중요한 장면 중 하나다. 지크는 에렌이 아버지에게 세뇌당한 피해자라고 믿고 싶어 한다. 지크 자신의 삶이 부모의 기대와 국가의 폭력 속에서 망가졌기 때문이다. 그는 에렌 역시 그리샤의 복수심에 이용당한 아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기억 속으로 들어가 에렌에게 진실을 보여 주면, 동생이 자신과 같은 결론에 도달하리라 기대한다.

그러나 기억 속에서 드러나는 것은 정반대에 가깝다. 그리샤가 에렌을 조종한 것이 아니라, 미래의 에렌이 과거의 그리샤를 밀어붙인다. 레이스 가문을 앞에 두고 망설이는 그리샤에게 에렌의 의지가 닿고, 그 결과 왕가의 힘은 예거 가문으로 넘어간다. 이 장면은 시간 여행이라기보다 기억과 의지가 뒤얽힌 폐쇄 회로에 가깝다. 아버지가 아들에게 힘을 넘겼기 때문에 아들이 미래에서 아버지를 움직일 수 있고, 아들이 아버지를 움직였기 때문에 아버지는 그 힘을 넘기게 된다.

이 구조는 에렌을 매우 기묘한 위치에 놓는다. 그는 아버지의 피해자인 동시에 아버지를 이용한 가해자다. 그는 과거의 결과물이면서 과거를 만든 원인이다. 일반적인 성장 서사에서는 주인공이 부모의 그림자를 벗어나 자기 선택을 한다. 하지만 에렌의 경우, 자기 선택이 부모의 과거 속으로 되돌아가 그 그림자 자체를 더 짙게 만든다.

그리샤가 나중에 지크에게 에렌을 막아 달라는 뜻을 전하는 장면은 이 비극성을 더욱 선명하게 만든다. 그리샤는 에렌에게 밀려 행동했지만, 그 행동의 결과가 어디로 향하는지 어렴풋이 알고 두려워한다. 그렇다면 에렌은 조종자인가, 조종당한 자인가. 대답은 둘 중 하나로 깔끔하게 정리되지 않는다. 그는 시간의 고리에 갇혔지만, 그 고리 안에서 가장 강한 추진력을 가진 인물이다. 쇠사슬에 묶인 사람이면서 동시에 그 쇠사슬을 끌고 달리는 사람인 셈이다.

지크와 에렌, 두 가지 절망의 정치학

지크와 에렌의 대립은 단순한 형제 싸움이 아니다. 두 사람은 모두 엘디아인의 운명을 끝내고 싶어 한다. 다만 방법이 정반대다. 지크는 엘디아인이 더 이상 태어나지 않게 함으로써 고통의 연쇄를 끝내려 한다. 그는 이것을 자비라고 믿는다. 태어나지 않으면 차별받을 일도, 거인이 될 일도, 전쟁에 이용될 일도 없다는 논리다. 그러나 이 방식은 살아 있는 사람들의 미래를 당사자의 동의 없이 닫아 버린다. 폭력을 줄이려는 계획이지만, 생명의 가능성 자체를 박탈한다는 점에서 또 다른 폭력이다.

에렌은 지크의 논리를 거부한다. 그는 태어난 것 자체를 부정하는 사고를 받아들일 수 없다. 에렌에게 삶은 먼저 주어진 것이고, 자유는 그 삶이 빼앗기지 않도록 싸우는 데서 시작된다. 얼핏 보면 이 입장은 지크보다 건강해 보인다. 문제는 에렌이 이 생존의 권리를 자기 편에게만 강하게 적용한다는 데 있다. 파라디 섬의 사람들이 살 권리가 있다면, 바다 건너 아이들과 민간인들도 살 권리가 있다. 그러나 에렌의 결론은 그 균형을 무너뜨린다. 그는 우리를 죽이려는 세계를 먼저 죽이는 방향으로 나아간다.

두 형제는 서로를 비판하지만, 사실 둘 다 인간을 거대한 계획의 재료로 취급한다. 지크는 엘디아인의 몸과 출생을 조정하려 하고, 에렌은 세계의 생존권을 파라디의 생존권 아래에 둔다. 지크가 조용한 소멸의 정치라면, 에렌은 폭발적인 생존의 정치다. 하나는 태어나지 않는 미래를 꿈꾸고, 다른 하나는 타인의 미래를 짓밟아 자신의 미래를 확보하려 한다. 둘 다 절망에서 나온 해법이며, 둘 다 인간을 온전한 주체로 남겨 두지 못한다.

이 대립이 흥미로운 이유는 작품이 어느 한쪽을 쉬운 정답으로 제시하지 않기 때문이다. 지크의 계획은 끔찍하지만, 그가 바라본 엘디아인의 고통은 실제다. 에렌의 선택은 파괴적이지만, 파라디 섬이 처한 국제적 위협 역시 실제다. 작품은 독자에게 묻는다. 피해가 실제라면 어떤 대응까지 정당화될 수 있는가. 생존이 걸려 있다면 선제적 학살도 전략이 될 수 있는가. 그리고 그런 전략을 선택한 순간, 우리는 여전히 자유를 말할 수 있는가.

유미르에게 건넨 해방, 세계에 열린 재앙

길의 세계에서 에렌이 유미르 프리츠에게 다가가는 장면은 작품 전체의 신화적 중심에 가깝다. 유미르는 오랜 시간 동안 왕가의 명령에 복종하는 존재처럼 남아 있었다. 지크는 왕가의 피를 근거로 그 힘을 사용하려 한다. 그는 유미르를 하나의 장치, 혹은 명령을 수행하는 존재로 대한다. 반면 에렌은 유미르에게 선택을 요구한다. 누군가의 노예로 남을 것인지, 스스로 결정할 것인지 묻는다.

이 장면만 떼어 놓고 보면 에렌은 해방자처럼 보인다. 그는 처음으로 유미르의 고통과 분노를 정면에서 인정하는 인물처럼 다가간다. 왕의 도구였고, 제국의 기원이었고, 2천 년 동안 길에서 거인의 몸을 빚어 온 존재에게 에렌은 더 이상 명령을 따르지 않아도 된다고 말한다. 이것은 분명 유미르의 주체성을 깨우는 순간이다.

그러나 《진격의 거인》은 해방이라는 말을 결코 순결한 상태로 두지 않는다. 유미르가 선택권을 얻는 순간, 그 선택은 땅울림이라는 재앙으로 이어진다. 억압받던 존재의 분노가 풀려나는 것은 통쾌한 복수가 아니라 세계적 파괴가 된다. 에렌은 유미르를 노예 상태에서 끌어냈지만, 그 해방을 자신의 파괴 의지와 결합시켰다. 따라서 이 장면은 구원과 타락이 동시에 일어나는 장면이다. 유미르는 비로소 선택하지만, 그 선택의 통로를 열어 준 에렌은 세계를 짓밟는 방향으로 그 힘을 이끈다.

여기서 에렌의 주체성은 다시 애매해진다. 그는 유미르를 이용한 것인가, 유미르의 마음을 이해한 것인가. 둘 다 맞다. 에렌은 유미르를 명령받는 도구로만 보지 않았지만, 그녀의 분노가 어떤 결과를 낳을지 알면서도 멈추지 않았다. 그는 타인의 고통을 알아보는 능력을 갖고 있었고, 바로 그 능력을 통해 가장 거대한 폭력을 열었다. 이 모순이 에렌이라는 인물을 단순한 악당보다 더 불편하게 만든다.

파라디의 생존이라는 현실적인 명분

에렌의 선택을 분석할 때 반드시 인정해야 할 부분이 있다. 파라디 섬의 위협은 상상이 아니었다. 바깥세계는 엘디아인, 특히 파라디 섬을 두려워했고, 마레는 그 공포를 정치적으로 활용했다. 군사 기술이 발전하면서 거인의 힘은 예전만큼 절대적인 무기가 아니게 되었고, 파라디는 외교 경험도 부족한 고립된 섬이었다. 세계가 힘을 합쳐 파라디를 공격할 가능성은 충분히 현실적이었다.

따라서 에렌의 논리는 허공에서 나온 망상이 아니다. 그는 실제로 좁은 선택지 앞에 있었다. 왕가의 피를 가진 히스토리아를 희생시켜 제한적 땅울림을 유지할 것인가. 지크의 계획을 받아들여 엘디아인의 미래를 닫을 것인가. 외교적 시간을 벌기 위해 불안정한 협상에 기대어 볼 것인가. 아니면 세계가 파라디를 공격할 수 없을 정도로 먼저 압도할 것인가. 어느 길도 깨끗하지 않았다.

하지만 선택지가 더럽다는 사실이 어떤 선택이든 정당화한다는 뜻은 아니다. 에렌은 파라디의 생존이라는 현실적 명분을 붙잡았지만, 그 명분을 세계 전체의 파괴로 확장했다. 방어는 어느 순간 응징이 되었고, 응징은 다시 절멸의 논리로 커졌다. 생존권이 무제한의 살상권으로 변하는 순간, 에렌의 자유는 타인의 세계를 삭제하는 힘이 된다.

이 지점에서 작품은 현대적인 안보 딜레마를 떠올리게 한다. 한쪽이 자신을 지키기 위해 무기를 강화하면, 다른 쪽은 그것을 공격 준비로 받아들인다. 서로가 서로를 두려워하기 때문에 더 위험한 선택을 하고, 그 선택이 다시 상대의 공포를 증명한다. 에렌은 이 악순환을 끝내려 했지만, 끝내는 방식으로 가장 극단적인 공포를 현실화했다. 세계가 파라디를 괴물로 보았기 때문에 에렌은 괴물이 되었고, 에렌이 괴물이 되었기 때문에 세계의 공포는 사후적으로 정당화되는 듯 보인다. 이것이 비극의 잔인한 폐쇄성이다.

친구들을 위한 선택인가, 친구들을 가둔 선택인가

에렌은 끝까지 친구들을 중요하게 여긴다. 미카사와 아르민, 조사병단의 동료들이 오래 살기를 바라는 마음은 그의 핵심 동기 중 하나다. 이것만 보면 에렌의 행동은 자기희생처럼 보일 수 있다. 자신이 악역이 되어 세계의 증오를 떠안고, 친구들에게 미래를 남기려 했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하지만 이 해석에는 조심해야 할 점이 있다. 에렌이 친구들을 사랑했다는 사실과, 친구들을 자유롭게 두었다는 사실은 같지 않다. 그는 친구들에게 선택권을 준 듯 보이지만, 실제로는 그들을 극단적인 상황으로 몰아넣었다. 에렌을 막지 않으면 세계가 파괴되고, 에렌을 막으면 가장 소중한 친구를 죽여야 한다. 이것은 자유로운 선택이라기보다 선택의 외형을 한 감옥에 가깝다.

특히 미카사와 아르민에게 에렌은 단순한 전우가 아니다. 어린 시절부터 삶의 방향을 함께 만든 사람이다. 그런 인물이 세계의 재앙이 되었을 때, 그를 막는 일은 전략적 판단을 넘어 존재의 일부를 끊어 내는 일이 된다. 에렌은 친구들이 영웅이 될 가능성을 남겼지만, 동시에 그들이 평생 짊어져야 할 상처도 남겼다. 사랑이 상대를 구속할 수 있다는 점에서, 에렌의 애정 역시 자유의 역설 안에 들어 있다.

에렌이 정말 모든 것을 계산했는지도 단정하기 어렵다. 그는 뛰어난 전술 감각과 강한 결단력을 갖고 있지만, 전지전능한 설계자는 아니다. 미래의 일부를 봤고, 자신의 성향을 알았고, 세계의 증오를 알았으며, 그 모든 요소가 그를 한 방향으로 밀어붙였다. 그러므로 에렌의 계획은 완벽한 체스 게임이라기보다, 이미 무너지는 다리 위에서 자신이 가장 원하고 가장 두려워한 쪽으로 달려간 결과에 가깝다.

개인적 욕망과 파괴 충동

에렌의 가장 불편한 진실은 그의 선택이 오직 파라디와 친구들을 위한 것만은 아니라는 데 있다. 그 안에는 훨씬 사적인 욕망이 있다. 어린 시절 에렌은 아르민의 책을 통해 바깥세계를 꿈꾸었다. 그 세계는 아무도 밟지 않은 미지의 공간이어야 했다. 벽을 넘어가면 자신을 억압하던 모든 것이 사라지고, 순수한 자유가 펼쳐질 것처럼 상상했다.

그러나 실제 바깥세계에는 이미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 그들은 에렌이 꿈꾼 빈 풍경의 일부가 아니었다. 그들 역시 역사와 욕망과 공포를 가진 주체였다. 에렌의 실망은 여기서 발생한다. 벽 밖이 비어 있지 않다는 사실, 자유의 공간이라고 믿었던 곳이 또 다른 증오와 정치로 가득 차 있다는 사실은 그에게 견디기 어려운 배신처럼 다가온다.

이 때문에 에렌의 파괴 충동은 단순한 군사 전략으로만 설명되지 않는다. 그는 파라디를 지키기 위해 세계를 공격하지만, 동시에 자신이 상상한 자유를 더럽힌 현실 자체를 지워 버리고 싶어 한다. 이것은 매우 위험한 욕망이다. 세계가 내 꿈과 다르니 세계를 부수겠다는 충동이기 때문이다. 에렌의 자유는 여기서 타인의 존재와 충돌한다. 자유로운 공간을 원했지만, 그 공간에 이미 타인이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할 때 자유는 정복의 다른 이름이 된다.

물론 에렌이 처음부터 무차별적 파괴를 즐기는 인물이었다고 말하는 것은 지나친 단순화다. 그는 고통을 느끼고, 죄책감을 알고, 자신이 할 일을 끔찍하게 여긴다. 하지만 죄책감이 행동을 멈추게 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면죄부가 되지 못한다. 에렌의 비극은 자신이 괴물이 되어 간다는 사실을 어느 정도 알면서도, 그 길이 자신의 가장 깊은 욕망과 맞닿아 있기에 돌아서지 못한다는 데 있다.

자유를 원할수록 미래에 묶이는 인물

에렌의 역설은 한 문장으로 정리할 수 있다. 그는 누구보다 자유를 원했지만, 누구보다 정해진 미래에 묶여 갔다. 벽을 부수고 싶어 했던 소년은 결국 세계를 벽처럼 밀어붙이는 존재가 된다. 가축처럼 살기 싫어했던 인물은 타인에게 도망칠 곳 없는 공포를 안긴다. 누군가에게 조종당하지 않겠다고 외친 사람은 미래 기억, 과거의 원한, 정치적 위기, 자기 내면의 충동이 만든 거대한 경로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여기서 작품이 말하는 자유는 단순히 원하는 대로 행동하는 능력이 아니다. 에렌은 원하는 대로 행동할 힘을 얻었다. 거인의 힘, 시조의 힘, 유미르와 연결되는 길, 파라디 내부의 지지까지 얻었다. 하지만 그 결과 그는 더 자유로워졌는가. 오히려 선택지는 줄어들고, 관계는 끊어지고, 미래는 하나의 장면을 향해 수렴한다. 힘이 커질수록 자유가 커지는 것이 아니라, 힘이 커질수록 자신이 저지를 수 있는 파괴의 규모만 커진다.

그렇다고 에렌을 단순한 악당으로만 정리하면 작품의 힘이 사라진다. 그는 실제 위협에 맞선 피해자였고, 친구를 사랑한 소년이었고, 벽 안 세계의 거짓에 분노한 인간이었다. 동시에 그는 대량 파괴를 선택한 가해자이며, 타인의 삶을 자신의 자유 아래에 놓은 인물이다. 영웅과 악당이라는 두 칸으로 나누기에는 너무 많은 모순이 그 안에 들어 있다. 그러나 모순적이라는 말이 책임을 흐리지는 않는다. 에렌은 이해될 수 있지만, 이해된다고 해서 무죄가 되지는 않는다.

에렌이 남긴 질문

에렌 예거라는 인물은 《진격의 거인》의 세계관을 하나로 묶는 매듭이다. 벽 안의 공포, 마레의 선전, 엘디아의 원죄, 거인의 생물학, 길의 초월성, 국가 간 안보 딜레마가 모두 그의 몸과 선택 안에서 만난다. 그래서 에렌은 개인인 동시에 세계의 결과물이다. 그가 없었다면 땅울림은 일어나지 않았겠지만, 그를 만든 세계가 없었다면 에렌도 그런 방식으로 나아가지 않았을 것이다.

작품이 우리에게 남기는 질문은 불편하다. 자유를 빼앗긴 사람은 어디까지 싸울 수 있는가. 미래가 이미 보인다면 선택의 책임은 사라지는가. 사랑하는 사람을 지키기 위해 모르는 사람들을 희생시키는 일은 정당화될 수 있는가. 그리고 가장 날카로운 질문은 이것이다. 우리가 말하는 자유가 사실은 내가 보고 싶지 않은 타인을 지우고 싶은 욕망은 아닌가.

에렌은 바다를 넘어 자유를 찾으려 했다. 하지만 바다 건너에서 발견한 것은 자유의 땅이 아니라 자신과 똑같이 두려워하고 살아가려는 사람들이었다. 그 순간 에렌은 타인과 함께 사는 어려운 자유가 아니라, 타인을 제거함으로써 얻는 단순한 자유를 향해 기울었다. 그 선택이 세계를 멸망의 문턱으로 끌고 간다.

그래서 에렌의 이야기는 자유의 찬가가 아니라 자유에 대한 경고에 가깝다. 자유가 관계와 책임을 잃으면, 그것은 해방이 아니라 폭력이 된다. 에렌은 누구보다 멀리 나아갔지만, 끝내 자신 안의 감옥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리고 바로 그 점 때문에 그는 《진격의 거인》에서 가장 매혹적이면서도 가장 두려운 인물로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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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 너머의 자유: 『진격의 거인』 세계관과 결말 완전 해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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