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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 포함된 노트푸른 유리의 계절

복원해야 할 것은 유리만이 아니어서

Views 67약 10분생성형 AI 활용
Summary

창을 떼어내는 아침

목요일 아침의 성당은 아직 잠에서 덜 깬 사람처럼 희미했다.

비는 오지 않았지만, 지붕 끝과 돌계단 사이에는 지난 며칠의 습기가 남아 있었다. 성당 문을 열자 차가운 공기가 먼저 빠져나왔다. 오래 닫혀 있던 책장을 여는 순간처럼, 먼지와 나무와 오래된 천의 냄새가 섞여 서윤의 얼굴에 닿았다. 그녀는 잠시 문턱에 서서 숨을 들이마셨다.

오래된 공간은 늘 먼저 냄새로 자신을 설명한다. 이곳은 한때 사람이 울던 곳이라고. 누군가 무릎을 꿇고 용서를 빌던 곳이라고. 아이가 세례를 받았고, 노인이 마지막 미사를 들었고, 어떤 연인은 서로의 손을 몰래 잡았을지도 모른다고.

그리고 이제 이곳은 두 사람이 다시 만나는 장소가 되었다.

서윤은 작업 가방을 내려놓고 중앙 제단 쪽으로 걸었다. 푸른 스테인드글라스는 아침빛을 거의 받지 못하고 있었다. 구름이 해를 가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유리는 어둡지 않았다. 오히려 빛이 부족할수록 그 안쪽의 색이 더 깊게 가라앉아 보였다. 바다 밑바닥에서 오래 잠겨 있던 병 조각처럼, 푸른빛은 차갑고 조용했다.

창의 하단부에는 금이 여러 갈래로 퍼져 있었다. 처음 보았을 때는 단순한 균열처럼 보였지만, 가까이 들여다보면 금의 방향이 모두 달랐다. 어떤 것은 충격으로 생긴 선이었고, 어떤 것은 납선이 눌리며 만들어낸 피로의 흔적이었다. 또 어떤 조각은 원래의 유리가 아니었다. 후대에 급히 끼워 넣은 듯 색의 온도가 조금 달랐다. 오래된 푸른색 사이에, 조금 더 얕고 조금 더 무심한 푸른색이 섞여 있었다.

서윤은 흰 장갑을 끼고 작업대 위에 도면을 펼쳤다.

오늘은 창 전체를 떼어내지 않았다. 위험한 부분을 먼저 분리하고, 각 조각의 상태를 기록한 뒤, 원래 색과 후대 보수 흔적을 구분하는 첫 작업이었다. 복원은 서두를수록 망친다. 깨진 것을 빨리 붙이고 싶은 마음은 사람에게도 유리에게도 늘 위험하다. 먼저 어디가 깨졌는지 알아야 하고, 왜 깨졌는지 보아야 하며, 무엇을 남기고 무엇을 덜어내야 할지 결정해야 한다.

서윤은 작은 번호표를 꺼내 유리 조각 옆에 붙였다.

푸른 조각 1-A. 균열 하단. 납선 변형.

푸른 조각 1-B. 후대 보수 추정. 색상 불일치.

투명 조각 2-C. 표면 오염. 가장자리 미세 파손.

그녀는 마치 오래된 편지를 해독하듯 창을 읽었다. 유리는 말하지 않지만, 침묵이 곧 아무것도 없다는 뜻은 아니었다. 빛이 닿은 자리, 물이 흘렀던 길, 누군가 급하게 손댄 흔적. 모든 것은 표면에 남는다. 사람의 얼굴에 세월이 남듯이.

문 쪽에서 작은 금속음이 들렸다.

준오가 들어오고 있었다.

그는 긴 장비 가방을 어깨에서 내려놓고, 성당 안쪽을 한 번 둘러보았다. 서윤은 그가 공간에 들어올 때마다 먼저 눈으로 듣는다는 생각을 했다. 그는 벽의 높이와 천장의 곡선, 바닥의 재질을 보는 동시에 그 모든 것이 어떤 울림을 만들지 짐작하는 사람 같았다.

"일찍 왔네요."

서윤이 말했다.

준오는 시계를 보지 않고 대답했다.

"서윤 씨도요."

"유리는 사람보다 시간이 오래 걸리니까요."

준오가 희미하게 웃었다.

"소리도 그래요. 녹음 버튼을 누르기 전까지 기다리는 시간이 더 길어요."

두 사람은 더 말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 짧은 대화만으로도 성당의 공기가 조금 달라졌다. 예전처럼 편해진 것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처음처럼 낯설지도 않았다. 유리 조각과 납선 사이에 아주 가느다란 틈이 있듯, 두 사람 사이에도 틈이 있었다. 그러나 그 틈은 이제 단지 벌어진 곳만은 아니었다. 빛이 들어올 수 있는 자리이기도 했다.

복원해야 할 것은 유리만이 아니어서

사라지지 않게 남기는 소리

준오는 성당 중앙 통로에 작은 삼각대를 세웠다.

녹음기는 손바닥만 했지만, 그가 그것을 다루는 태도는 아주 조심스러웠다. 귀한 동물을 깨우지 않으려는 사람처럼, 그는 장비를 천천히 놓고 각도를 맞췄다. 성당 안에는 아직 작업자들이 많지 않았다. 재단 직원 한 명이 입구 쪽에서 서류를 확인했고, 보조 복원가가 서윤의 지시에 맞춰 공구를 정리하고 있었다. 그래서 성당은 이른 아침의 몸을 거의 그대로 드러내고 있었다.

준오는 먼저 아무것도 하지 않는 소리를 녹음했다.

누군가 보기에는 이상한 일이었다. 그는 성당 한가운데 서서 몇 분 동안 가만히 있었다. 그러나 그 침묵 안에는 작은 것들이 있었다. 높은 창틀 어딘가에서 먼지가 내려앉는 소리. 아주 가벼운 입자가 공기를 밀며 떨어지는 소리라기보다, 오래 매달려 있던 시간이 포기하는 소리 같았다. 나무 의자가 습기를 머금고 미세하게 팽창하는 낮은 삐걱임도 들렸다. 밖에서는 홈통을 지난 빗물이 아직 한 방울씩 떨어지고 있었다. 똑, 잠시 쉬고, 또 똑. 비는 끝났지만 비의 뒷모습은 남아 있었다.

준오는 헤드폰을 한쪽 귀에만 걸었다.

서윤은 작업대에서 유리 표면을 살피다가 그 모습을 보았다. 그는 왼쪽 귀에는 헤드폰을 완전히 덮지 않았다. 오른쪽으로 소리를 확인하고, 왼쪽에는 공간의 진동만 남겨두는 듯했다. 지난 회의실에서 보았던 고개 기울임이 떠올랐다. 이번에는 더 분명했다. 그는 소리를 듣는 사람이었지만, 듣는 일에 전보다 훨씬 더 많은 노력을 들이고 있었다.

준오는 성당 뒤쪽으로 걸어갔다.

발소리가 돌바닥 위에서 길게 번졌다. 그가 발을 천천히 디딜수록 성당은 그 걸음을 받아 다시 내보냈다. 앞쪽에서는 낮고 짧게, 천장 가까이에서는 늦게 돌아오는 울림으로. 그는 같은 길을 두 번 걸었다. 한 번은 빈손으로, 한 번은 장비 가방을 들고. 무게가 달라지자 발소리도 조금 달라졌다.

서윤은 유리 조각을 받치고 있던 납선을 아주 조심스럽게 열었다.

오래된 납은 쉽게 부서지지 않지만, 한 번 잘못 힘을 주면 휘어진다. 휘어진 것은 다시 펼 수 있어도 처음의 결을 되돌릴 수는 없다. 그녀는 얇은 도구를 틈에 넣고 천천히 들어 올렸다. 납선이 아주 낮게 떨렸다. 금속이 오래 참아온 잠에서 깨어나는 소리였다.

준오가 그 소리를 들은 듯 고개를 돌렸다.

"방금 소리, 다시 할 수 있어요?"

서윤은 손을 멈추었다.

"유리한테 물어봐야 해요."

그 말에 준오가 아주 작게 웃었다. 웃음은 성당 안에서 금세 사라졌지만, 서윤에게는 오래 남았다. 예전의 준오도 그런 식으로 웃었다. 크게 웃지 않았고, 웃음의 대부분을 눈가에 남겼다. 사람들은 그를 조용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지만, 서윤은 알고 있었다. 그는 웃음이 적은 사람이 아니라, 웃음을 아끼는 사람이었다.

그녀는 다시 도구를 움직였다.

이번에는 준오가 가까이 다가와 녹음기를 낮게 들었다. 두 사람 사이의 거리는 한 팔 길이 정도였다. 너무 가깝지도, 멀지도 않았다. 서윤은 유리의 가장자리에 집중하려 했지만, 옆에 선 사람의 숨이 느껴졌다. 준오의 숨은 고르게 이어지다가, 그녀가 힘을 조금 줄 때마다 미세하게 멈췄다. 마치 그도 함께 유리를 들고 있는 것처럼.

"이 조각은 원래 색이 아니에요."

서윤이 말했다.

준오는 녹음기를 든 채 물었다.

"어떻게 알아요?"

"빛을 통과시키면 달라요. 비슷한 푸른색이라도 오래된 유리는 깊이가 있어요. 안쪽에 아주 작은 기포나 결이 남아 있거든요. 그런데 이건 너무 평평해요. 급하게 맞춘 색 같아요."

그녀는 분리한 유리 조각을 흰 천 위에 올려놓았다. 옆의 원래 조각과 비교하자 차이가 더 분명했다. 하나는 깊은 바다처럼 어둡게 빛났고, 다른 하나는 맑은 플라스틱처럼 얇았다.

준오는 한참 그것을 보았다.

"겉으로는 비슷해 보이는데."

"멀리서 보면요."

서윤은 손끝으로 두 유리 사이의 경계를 가리켰다.

"가까이 보면 달라요. 너무 늦게 끼워 넣은 건, 아무리 색을 맞춰도 조금 떠요."

말하고 나서 그녀는 자신이 무슨 말을 했는지 깨달았다.

너무 늦게 끼워 넣은 것.

두 사람 사이에 놓인 십 년도 그런 것이었을까. 아무렇지 않은 인사와 업무적인 말들로 색을 맞추려 해도, 가까이 보면 조금 떠 있는 시간. 원래 있었어야 할 자리에 너무 늦게 돌아온 사람들.

준오도 그 뜻을 들은 듯했다. 그는 대답하지 않고 녹음기의 버튼만 조용히 눌렀다.

색을 찾는 사람

정오가 가까워질수록 구름이 걷히기 시작했다.

푸른 창에 첫 햇빛이 닿자 성당 안의 색이 변했다. 바닥에는 푸른 얼룩이 생겼고, 먼지가 그 안에서 천천히 떠다녔다. 빛은 유리를 통과하며 부서졌지만, 부서진 채로도 아름다웠다. 서윤은 그 장면을 볼 때마다 이상한 안도감을 느꼈다. 깨졌다고 해서 빛을 잃는 것은 아니구나. 금이 간 곳에서도 색은 지나오는구나.

그녀는 분리한 조각들을 작은 상자에 나누어 담았다. 원래 유리로 추정되는 조각, 후대 보수 조각, 보강이 필요한 납선, 폐기하지 않고 보관해야 할 파편. 모든 것에는 이름과 번호가 붙었다. 이름을 붙이는 일은 사라지지 않게 하는 첫 번째 방법이었다.

"그 조각들은 다 다시 들어가요?"

준오가 물었다.

그는 성당 오른쪽 벽 아래에서 빗물이 홈통을 타고 내려가는 소리를 녹음하고 돌아온 참이었다. 헤드폰을 목에 걸고 있었고, 머리카락에는 먼지가 조금 앉아 있었다.

"아니요. 들어갈 것도 있고, 보관만 할 것도 있어요."

"버리는 건요?"

"되도록 버리지 않아요. 제자리에 다시 놓지 못하더라도, 왜 빠졌는지 기록해야 하니까요."

준오는 그 말을 곱씹듯 잠시 조용했다.

"제자리에 못 돌아가도 기록은 남긴다."

"네."

서윤은 상자의 뚜껑을 덮으며 말했다.

"복원은 원래 상태로 되돌리는 일이 아니에요. 그런 건 불가능해요. 시간은 지나간 뒤에 항상 재료를 바꿔놓거든요. 유리도, 납도, 사람 손도요.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지금 이 상태에서 가장 정직한 형태를 찾는 거예요."

준오가 그녀를 보았다.

그 시선이 너무 조용해서, 서윤은 잠시 말을 멈추었다. 그는 그녀의 설명을 듣고 있었지만, 동시에 다른 것을 듣고 있는 사람 같았다. 지금 이 상태에서 가장 정직한 형태. 그 말은 창에 대한 설명이었으나, 두 사람의 현재를 지나치게 정확히 건드렸다.

"서윤 씨는…"

준오가 말하다가 멈췄다.

그는 예전처럼 질문을 끝까지 밀고 나가지 않았다. 지금의 그는 묻기 전에 물러서는 습관이 있었다. 서윤은 그 습관이 그에게 상처를 덜 주었을지, 아니면 더 오래 남겼을지 알 수 없었다.

"뭐요?"

그녀가 먼저 물었다.

준오는 잠시 창 쪽을 보았다.

"포르투에서도 이런 일을 했어요?"

"네."

서윤은 고개를 끄덕였다.

"처음에는 작은 조각 정리만 했어요. 말도 잘 못했고, 사람들 속도에 맞추기도 어려웠고요. 유리 이름보다 제 이름이 더 낯설 때가 있었어요."

그녀는 담담하게 말하려 했지만, 포르투의 첫 겨울이 문장 사이로 스며들었다. 비탈길의 축축한 계단, 대서양에서 밀려오는 바람, 알아듣지 못하는 말들, 밤마다 기숙사 천장에 번지던 가로등 빛. 그리고 아무에게도 보내지 못한 편지들.

"그래도 유리는 편했어요."

서윤이 덧붙였다.

"말을 못 알아들어도 깨진 건 보이니까요. 어디가 약한지, 어디를 받쳐야 하는지, 그런 건 언어가 달라도 비슷해요."

준오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반대였던 것 같아요."

"뭐가요?"

"사람 말은 점점 어려워졌는데, 장소의 소리는 조금 편했어요. 사람은 왜 침묵하는지 말해주지 않지만, 빈집은 적어도 빈집처럼 울리니까."

서윤은 그 문장을 들으며 손을 멈췄다.

빈집은 빈집처럼 울린다.

그것은 외로운 말이었다. 외로움을 꾸미지 않아 더 외로운 말. 준오는 늘 그런 식으로 자기 아픔을 조금 비껴 말하곤 했다. 직접적으로 다쳤다고 말하는 대신, 어떤 공간이 어떻게 울렸는지 말했다. 떠났다고 말하는 대신, 어떤 발소리가 사라졌는지 말했다.

그때 성당 천장 쪽에서 희미한 전기음이 났다.

조명이 한 번 깜빡였다.

서윤과 준오는 동시에 고개를 들었다. 재단 직원이 입구 쪽 배전반 근처로 걸어가며 말했다.

"잠깐 전압이 불안정한가 봅니다. 확인해볼게요."

말이 끝나기도 전에, 성당 안의 조명이 모두 꺼졌다.

어둠이 내려앉는 방식

정전은 아주 조용하게 왔다.

큰 소리도, 요란한 경고음도 없었다. 다만 빛이 한꺼번에 빠져나가자 성당은 깊은 물속처럼 어두워졌다. 높은 창으로 들어오는 낮빛이 남아 있었지만, 구름이 다시 해를 가린 탓에 내부는 금세 흐려졌다. 작업대 위의 유리 조각들은 색을 잃고 검은 윤곽만 남겼다.

입구 쪽에서 재단 직원의 목소리가 들렸다.

"잠시만요. 건물 관리실에 연락해보겠습니다. 안전 때문에 움직이지 마세요."

보조 복원가는 휴대전화 불빛을 켜고 공구를 정리했다. 그러나 중앙 창 앞에는 어둠이 더 짙었다. 서윤은 손에 들고 있던 도구를 천천히 내려놓았다. 유리 조각들이 가까이 있었다. 어둠 속에서 유리를 다루는 것은 위험했다. 보이지 않는 가장자리는 늘 더 날카롭다.

준오가 낮게 말했다.

"괜찮아요?"

그는 서윤의 오른쪽에 서 있었다.

그 사실을 의식하자 그녀는 이상하게 마음이 놓였다. 어둠 속에서는 사람의 얼굴보다 위치가 중요해진다. 누가 어느 쪽에 서 있는지, 목소리가 어디서 오는지, 손을 뻗으면 닿을 수 있는지.

"네. 손은 뗐어요."

"움직이지 말아요. 바닥에 조각이 있을 수 있어요."

그가 먼저 그렇게 말했다.

서윤은 어둠 속에서 희미하게 웃었다.

"그 말, 제가 해야 하는데."

"오늘은 내가 먼저 했네요."

둘 사이에 아주 작은 웃음이 지나갔다. 그 웃음은 어둠 속이라 더 선명했다. 얼굴을 보지 못하자 목소리의 결이 더 가까이 왔다. 서윤은 준오의 숨소리를 들었다. 그는 평소보다 조금 천천히 숨을 쉬고 있었다. 어쩌면 어둠 속에서 균형을 잡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한쪽 귀가 세상을 덜 받아들이는 사람에게, 갑작스러운 정전은 단순한 어둠이 아닐 수 있었다. 보이는 것과 들리는 것 중 하나가 흔들릴 때, 남은 감각은 더 많은 짐을 진다.

멀리서 관리실과 통화하는 소리가 들렸다. 전기는 금방 돌아오지 않을 것 같았다. 성당 안의 사람들은 각자 작은 불빛을 켰지만, 이상하게 두 사람은 그러지 않았다. 서윤의 휴대전화는 작업 가방 안에 있었고, 준오의 손에는 아직 녹음기가 들려 있었다. 그는 녹음기를 끄지 않은 듯했다. 어둠까지도 기록하려는 사람처럼.

침묵이 길어졌다.

그 침묵 속에서 서윤은 오래전 하루를 떠올렸다. 비가 오던 통영역. 플랫폼 위로 번지던 안내 방송. 젖은 종이. 떠나야 하는 열차. 기다리지 말아요라는 문장이 너무 늦게, 너무 잘못 도착했던 날.

준오가 먼저 말했다.

"그날도 이렇게 갑자기 어두워진 것 같았어요."

서윤은 그가 어떤 날을 말하는지 바로 알았다.

통영역이라는 말은 나오지 않았다. 그러나 두 사람 사이에서 어떤 하루는 이름 없이도 충분히 분명했다.

"비가 많이 왔죠."

서윤이 말했다.

"응."

준오의 대답은 아주 낮았다. 존댓말이 잠시 무너졌다. 어둠이 사람에게서 예의를 조금 벗겨낸 것 같았다.

"안내 방송이 잘 안 들렸어요. 사람도 많았고, 비 소리도 컸고."

그는 잠깐 숨을 골랐다.

"나는 네가 안 온다고 생각했어."

서윤은 손끝에 힘이 들어가는 것을 느꼈다.

네가.

그 오래된 호칭 하나가 어둠 속에서 돌아왔다. 아주 조심스럽게, 하지만 분명히.

"나는…"

서윤은 말을 잇지 못했다. 목구멍 안쪽에 오래 접어둔 종이가 걸린 것 같았다. 펴려고 하면 찢어질 것 같은 종이.

그때 바깥에서 바람이 불었다. 홈통을 타고 남은 물이 한꺼번에 흘러내렸다. 쏴아, 짧고 낮은 소리. 준오의 녹음기에는 그 소리도 들어가고 있을 것이다. 두 사람이 처음으로 과거의 하루를 만지는 소리도 함께.

"그날 엄마가 쓰러졌어요."

서윤은 결국 말했다.

자신의 목소리가 어둠 속에서 너무 낯설게 들렸다. 마치 다른 사람이 대신 말해주는 것 같았다.

준오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서윤은 그 침묵 덕분에 다음 말을 할 수 있었다.

"역에 가기 전에 병원에서 연락이 왔어요. 위독하다고. 그런데 나는… 그래도 가려고 했어요. 미쳤죠. 지금 생각하면."

그녀는 어둠 속에서 눈을 감았다. 감아도 달라질 것은 없었다. 이미 어두웠으니까.

"엄마는 그날 밤 돌아가셨어요. 나는 병원 복도에 있었고, 휴대전화는 꺼져 있었고, 편지는 비에 젖었고… 모든 게 너무 빨리 끝났어요. 장례도, 출국도, 집을 정리하는 일도. 누구에게 설명할 힘이 없었어요."

십 년 동안 한 번도 제대로 말하지 못한 문장들이 성당 바닥에 하나씩 떨어졌다. 유리 조각처럼 작고 날카로웠다.

"나 혼자였어요."

마지막 말은 거의 숨이었다.

그 말을 하고 나서야 서윤은 자신이 얼마나 오래 그 문장을 삼키고 살았는지 알았다. 포르투의 골목에서도, 복원실의 흰 조명 아래에서도, 낯선 사람들이 그녀의 이름을 잘못 발음할 때도, 그녀는 늘 괜찮다고 말했다. 어머니의 죽음도, 준오와의 이별도, 자기 책임처럼 품고 살았다. 누구에게도 제대로 기대지 못한 채.

어둠 속에서 준오의 숨이 흔들렸다.

"나는 몰랐어."

그가 말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어요. 내가 말하지 않았으니까."

"아니."

준오의 목소리가 아주 조금 거칠어졌다.

"내가 물었어야 했어. 네가 왜 안 왔는지, 무슨 일이 있었는지. 편지의 몇 줄만 보고… 나는 다 안다고 생각했어."

"준오 씨도 다쳤잖아요."

이번에는 서윤이 물었다.

오래 망설였던 질문이었다. 빛이 있을 때는 차마 꺼낼 수 없던 말. 그의 얼굴을 보지 않아도 되는 어둠 속에서야 겨우 나왔다.

"그날 사고 때문이에요?"

성당 안이 깊게 조용해졌다.

준오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러나 침묵의 모양이 달랐다. 피하는 침묵이 아니라, 오래 닫아둔 문 앞에서 열쇠를 찾는 침묵이었다.

마침내 그가 말했다.

"열차가 출발한 뒤였어요."

그는 천천히 말을 골랐다.

"나는 플랫폼에 남아 있었고, 네 편지를 다시 읽으려고 했어. 비가 너무 많이 와서 글자가 번졌고, 남은 문장이 몇 개 없었어. 미안해요. 나는 먼저 떠나요. 기다리지 말아요. 그런 문장들."

서윤은 입술을 깨물었다.

그 편지의 나머지 문장들이 마음속에서 비명을 질렀다. 기다리지 말아요, 혼자 아프게. 미안해요, 늦어서. 먼저 떠나요, 하지만 아무 마음 없이 떠나는 건 아니에요. 그러나 젖은 종이는 그렇게 친절하지 않았다. 물은 문장의 앞뒤를 지우고, 가장 잔인한 조각만 남긴다.

"사람이 밀렸고, 누군가 넘어졌고, 나는…"

준오는 왼쪽 귀 뒤를 만지는 듯했다. 어둠이라 보이지 않았지만, 서윤은 그 동작을 느낄 수 있었다.

"정확히 기억이 안 나. 큰 금속음이 있었고, 그다음부터 왼쪽이 이상했어. 처음에는 시간이 지나면 돌아올 줄 알았는데, 완전히 돌아오지는 않았어요."

마지막 문장에서 그는 다시 존댓말로 돌아왔다. 너무 많이 보여준 사람이 급히 옷깃을 여미듯이.

서윤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준오가 덧붙였다.

"청력이 아주 없는 건 아니에요. 다만 특정 높이의 소리가 빠져요. 복잡한 곳에서는 말이 뭉개지고, 왼쪽에서 부르면 늦게 알아듣고. 익숙해졌어요."

익숙해졌어요.

그 말이 서윤의 가슴을 찔렀다. 사람은 얼마나 많은 상실을 그런 말로 덮어두는가. 익숙해졌어요. 괜찮아졌어요. 이제 별일 아니에요. 사실은 매일 조금씩 길을 바꿔 걷고, 사람의 입술을 더 오래 보고, 시끄러운 식당을 피하고, 자기 결핍이 들킬까 봐 먼저 웃는 일이었을 텐데.

서윤은 어둠 속에서 아주 조심스럽게 손을 뻗었다.

그 손은 준오에게 닿기 직전 멈췄다. 예전처럼 무턱대고 잡을 수는 없었다. 십 년은 사람의 손끝에도 예의를 가르친다.

"만져도 돼요?"

그녀가 물었다.

준오는 잠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낮게 대답했다.

"응."

서윤의 손끝이 그의 왼쪽 귀 뒤에 닿았다. 머리카락 아래로 아주 희미한 흉터가 있었다. 오래되어 거의 평평해진 선. 그러나 손끝은 알아보았다. 피부가 한 번 찢어졌다가 다시 붙은 자리. 돌아오지 못한 소리의 가장자리.

준오는 움직이지 않았다.

서윤도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그 짧은 접촉은 위로라기보다 확인에 가까웠다. 네가 정말 다쳤구나. 나는 정말 몰랐구나. 우리가 잃어버린 것은 편지 몇 줄과 약속 하나만이 아니었구나.

어둠 속에서 준오가 말했다.

"아팠겠다."

서윤은 처음에 그가 자기 귀를 말하는 줄 알았다. 그러나 곧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그는 어머니의 죽음을 말하고 있었다. 병원 복도에 혼자 앉아 있었던 그녀를. 장례식장에서 아무에게도 제대로 울지 못했던 시간을. 포르투로 떠나는 비행기 안에서 창밖만 보던 스무 살의 서윤을.

그녀는 대답 대신 고개를 숙였다.

눈물이 떨어졌는지는 알 수 없었다. 어둠 속에서는 눈물도 조용했다.

"준오 씨도요."

그녀가 말했다.

그 말 하나로는 부족했다. 하지만 때로는 부족한 말이 가장 정직하다. 완벽한 위로는 없고, 사람은 다만 서로의 상처 앞에 너무 늦게 도착했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 있을 뿐이다.

다시 맞추는 일

전기는 생각보다 늦게 돌아왔다.

관리실에서는 노후 배선 때문이라고 했다. 재단 직원은 작업을 중단해야 할지 물었고, 서윤은 밝은 조명이 돌아올 때까지 세밀한 작업은 하지 않겠다고 대답했다. 사람들은 잠시 밖으로 나가거나 입구 쪽에서 통화를 했다. 성당 안쪽에는 다시 두 사람만 남았다.

휴대전화 불빛 하나가 작업대 위에 놓였다. 작은 빛이었지만, 유리 조각들을 구별하기에는 충분했다. 서윤은 손상된 조각을 직접 맞추지는 않고, 배열만 확인하기로 했다. 퍼즐처럼 보였지만 퍼즐은 아니었다. 퍼즐은 원래 하나의 정답을 향해 가지만, 복원은 정답보다 태도에 가까웠다. 어디까지 붙일 것인가. 무엇을 새로 만들 것인가. 금은 감출 것인가, 드러낼 것인가.

준오는 녹음기를 끄고 작업대 반대편에 섰다.

"도와줄까요?"

서윤은 그를 보았다.

"손 조심해야 해요."

"깨진 거 그냥 못 지나치는 사람 옆에서 배웠잖아요."

그 말에 서윤은 잠시 웃었다. 웃음이 이번에는 조금 더 분명했다.

그녀는 준오에게 면장갑을 건넸다. 그리고 유리 조각을 직접 잡지 말고, 번호표와 도면을 확인해달라고 했다. 준오는 도면 위의 번호를 읽고, 서윤은 그에 맞는 조각을 흰 천 위에 놓았다. 두 사람은 작은 빛 아래에서 같은 창을 내려다보았다.

"1-A."

"여기요."

"1-B는 후대 보수 조각?"

"네. 그건 원래 자리에는 두지 않을 것 같아요. 대신 보관 기록에 남겨야 해요."

"없던 것처럼 하지 않고."

"네. 없던 것처럼 하면 안 돼요."

준오는 그 말을 듣고 잠시 그녀를 보았다.

없던 것처럼 하면 안 돼요.

두 사람은 그 문장이 어디까지 닿는지 알고 있었다. 십 년을 없던 것처럼 할 수 없었다. 오해도, 침묵도, 각자의 상실도, 상대를 미워하려 했던 밤도, 끝내 미워하지 못했던 마음도. 제자리에 모두 다시 끼워 넣을 수는 없겠지만, 없던 일로 만들 수는 없었다.

서윤은 조각 하나를 들어 빛에 비추었다.

금이 간 푸른 유리였다. 완전히 깨지지는 않았지만, 안쪽으로 긴 선이 지나가 있었다. 그 선은 빛을 받자 은색처럼 반짝였다. 흠집이 아니라, 빛의 다른 길처럼 보였다.

"이건 남길 거예요."

서윤이 말했다.

"금이 있는데도?"

"구조적으로 보강하면 괜찮아요. 그리고 이 금은 이 창의 시간이니까."

준오는 조각을 바라보았다.

"사람도 그렇게 할 수 있으면 좋겠네."

서윤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답하면 울 것 같았다.

그들은 한동안 조각을 맞추었다. 2-C 옆에는 2-D가 놓이고, 3-A는 예상보다 조금 더 왼쪽으로 밀려야 했다. 어떤 조각은 너무 잘 맞아서 원래 한 몸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고, 어떤 조각은 아무리 가까이 놓아도 어긋났다. 억지로 맞추면 더 깨질 것 같은 것들도 있었다.

"이건 아닌 것 같아요."

준오가 말했다.

그가 조심스럽게 한 조각을 가리켰다. 처음에는 맞는 자리처럼 보였지만, 가장자리의 곡선이 미세하게 달랐다.

서윤은 가까이 들여다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거기 아니에요."

"비슷한데."

"비슷하다고 맞는 건 아니니까요."

그녀는 그 조각을 다른 줄에 내려놓았다.

"사람도 가끔 그래요. 그 자리에 있어야 할 것 같아서 억지로 버티는데, 사실은 조금 다른 모양일 때가 있어요. 그걸 인정해야 덜 깨져요."

준오는 조용히 물었다.

"우리는 어디였을까요."

서윤의 손이 멈췄다.

이번에는 그녀가 피하지 않았다. 작은 불빛 아래에서 준오의 얼굴은 반쯤 어둠에 잠겨 있었다. 왼쪽 귀 뒤의 흉터는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 서윤은 그곳에 무엇이 있는지 알았다.

"그때는…"

그녀가 천천히 말했다.

"서로의 자리를 잘 몰랐던 것 같아요. 나는 내가 떠나면 당신이 덜 아플 거라고 생각했고, 당신은 내가 떠난 게 답이라고 생각했고."

"나는 네가 나를 선택하지 않았다고 생각했어."

준오가 말했다.

아주 낮고, 오래된 문장이었다.

서윤은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당신이 나를 기다리다 다친 줄도 모르고, 내가 당신 인생에서 사라지는 게 맞다고 생각했어요. 엄마가 떠나고 나니까…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게 너무 무서웠어요. 사랑하면 결국 잃는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혼자 갔어요?"

"네."

짧은 대답이었다. 그러나 그 안에는 포르투의 긴 밤들이 있었다.

준오는 손을 내려다보았다. 면장갑을 낀 손은 유리 조각 위에서 멈춰 있었다.

"나는 네가 나 없이 괜찮아지려고 떠난 줄 알았어."

"괜찮아지려고 떠난 건 맞아요."

서윤은 솔직하게 말했다.

"그런데 괜찮아지지 않았어요."

그 문장 뒤에 성당이 잠시 숨을 멈춘 것 같았다.

준오는 그녀를 보았다. 서윤은 이번에도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빛이 충분하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너무 밝았다면 이 말들이 견디기 어려웠을 것이다. 어둠은 때때로 사람에게 용기를 준다. 보이지 않는다는 핑계로, 오래 숨겨둔 얼굴을 조금 보여줄 수 있게 한다.

"나도."

준오가 말했다.

그 두 글자는 길었다.

나도 괜찮아지지 않았어. 나도 너를 미워하려 했지만 실패했어. 나도 네 목소리를 잊으려고 세상의 소리를 너무 많이 들었어. 나도 살아남았지만, 어떤 부분은 그 플랫폼에 남겨두고 왔어.

그 모든 말이 두 글자 안에서 조용히 울렸다.

그때 조명이 다시 켜졌다.

성당 안으로 하얀 빛이 쏟아졌다. 너무 갑작스러워 두 사람은 동시에 눈을 찡그렸다. 어둠 속에서 가까워졌던 것들이 빛 아래에서 다시 조금 멀어졌다. 입구 쪽에서 재단 직원이 안도의 목소리로 말했다.

"전기 들어왔습니다. 괜찮으세요?"

서윤은 급히 손등으로 눈가를 눌렀다.

"네. 괜찮아요."

준오도 고개를 돌리며 대답했다.

"괜찮습니다."

또 괜찮다는 말.

그러나 이번의 괜찮음은 조금 달랐다. 예전처럼 숨기기 위한 말만은 아니었다. 방금 전까지 어둠 속에서 서로의 가장 아픈 부분을 보았고, 그래도 두 사람은 아직 여기 서 있었다. 괜찮다는 말이 완전한 회복은 아니어도, 무너지지 않았다는 표시가 될 수는 있었다.

서윤은 작업대 위의 유리 조각들을 다시 보았다.

빛이 돌아오자 색도 돌아왔다. 푸른 조각들은 제각기 다른 깊이로 빛났다. 조금 전 어둠 속에서 검은 윤곽으로만 보이던 것들이, 이제 다시 자신만의 색을 드러내고 있었다.

준오가 낮게 말했다.

"방금 녹음됐을 거예요."

서윤은 놀라 그를 보았다.

준오는 곧 덧붙였다.

"공개 기록에는 넣지 않을게요. 필요하면 지우겠습니다."

그의 목소리에는 조심스러운 책임감이 있었다. 예전의 준오라면 소중한 목소리를 몰래 간직하고 싶어 했을지도 모른다. 지금의 그는 먼저 허락을 물을 줄 아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그것이 서윤에게는 이상하게 슬펐고, 동시에 고마웠다.

"지우지 말아요."

서윤이 말했다.

준오의 눈이 흔들렸다.

"정말요?"

"공개하지는 말고요. 그냥… 우리가 그 말을 했다는 걸 없던 일로 하지 않았으면 해요."

준오는 한참 뒤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할게요."

남겨야 할 금

오후 작업은 천천히 진행되었다.

정전 때문에 일정은 조금 밀렸지만, 누구도 크게 재촉하지 않았다. 서윤은 중앙 창 하단부의 위험한 조각들을 모두 분리했고, 준오는 성당의 여러 소리를 기록했다. 작업자의 발소리, 사다리가 접히는 소리, 납선이 아주 조금 벌어지는 소리, 흰 천 위에 유리가 내려앉는 소리. 그리고 아무도 말하지 않는 동안에도 성당이 내는 낮은 숨.

준오는 때때로 서윤의 오른쪽에 섰다. 서윤은 그것을 의식하지 않는 척했지만, 그가 그렇게 서기 편하다는 것을 알았다. 그녀는 그가 왼쪽에서 들려오는 질문을 놓칠 때 대신 다시 말해주었다. 너무 티 나지 않게, 마치 원래 회의 내용을 정리하는 사람처럼. 준오는 그때마다 아주 잠깐 그녀를 보았다.

고맙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그러나 고맙다는 말보다 더 조용한 것이 그 사이를 지나갔다. 누군가의 결핍을 크게 부르지 않고 곁에서 방향을 맞추는 일. 그것은 사랑이라는 말보다 오래된 배려일지도 몰랐다.

해가 기울 무렵, 푸른 창의 빈자리가 드러났다.

유리 몇 조각이 빠진 자리로 저녁빛이 그대로 들어왔다. 완성된 창보다 허술했고, 아름답다기보다 아파 보였다. 하지만 서윤은 그 빈자리를 오래 바라보았다. 복원 중인 창은 늘 가장 취약한 상태를 지나야 한다. 떼어내고, 분해하고, 약한 부분을 드러내야 한다. 그 과정을 견디지 않으면 다시 세울 수 없다.

준오가 그녀 곁에 섰다.

"오늘 많이 떼어냈네요."

"네."

"보기엔 더 망가진 것 같아요."

"복원 중에는 원래 그래요."

서윤은 빈 창을 보며 말했다.

"고치기 시작하면 한동안은 더 깨진 것처럼 보여요. 감춰져 있던 약한 부분이 다 드러나니까. 그래서 사람들이 불안해해요. 정말 나아지고 있는 게 맞냐고."

"맞아요?"

준오가 물었다.

서윤은 잠시 생각했다.

"모를 때도 있어요. 그런데 적어도 어디가 아픈지는 알게 되죠. 그다음은 거기서부터예요."

준오는 대답하지 않았다.

성당의 빈 창으로 바람이 들어왔다. 작업대 위의 얇은 기록지가 조금 들렸다가 내려앉았다. 서윤은 그것을 손으로 눌렀다. 준오의 손도 동시에 움직였다. 두 사람의 손이 종이 위에서 거의 닿을 뻔했다.

이번에는 둘 다 급히 피하지 않았다.

손등과 손등 사이에 아주 작은 간격이 남았다. 그 간격은 전보다 덜 차가웠다.

서윤이 먼저 말했다.

"준오 씨."

"네."

"다음에… 그날 편지 얘기, 해도 될까요."

준오는 그녀를 보았다.

편지.

젖어서 사라진 문장들. 남은 몇 줄 때문에 서로를 다른 방식으로 잃어버리게 만든 종이. 아직 열지 않은 상자처럼 두 사람 사이에 놓여 있는 것.

그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듣고 싶어요. 남아 있지 않은 문장들을."

"남아 있어요."

서윤은 조용히 말했다.

준오의 눈이 흔들렸다.

"어디에요?"

서윤은 자신의 가슴께를 아주 살짝 눌렀다.

"여기에요. 너무 오래 갖고 있어서, 이제는 종이보다 내가 더 정확할지도 몰라요."

준오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 침묵은 아프면서도 따뜻했다. 마침내 두 사람은 같은 상실을 다른 쪽에서 만지고 있었다. 하나는 젖은 종이에 남은 문장을 쥐고 살았고, 하나는 사라진 문장을 몸 안에 품고 살았다. 이제 그 둘을 다시 맞추는 일이 남아 있었다.

창밖으로 저녁이 내려왔다.

성당 안의 푸른빛은 점점 옅어졌다. 낮 동안 바닥을 물들이던 색은 사라지고, 남은 것은 유리 조각을 담은 상자들과 번호표, 녹음기 안에 저장된 수많은 소리, 그리고 어둠 속에서 처음으로 꺼낸 진실들이었다.

서윤은 장갑을 벗었다. 손등의 오래된 흉터가 다시 보였다. 준오는 그것을 보았지만, 이번에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대신 자기 왼쪽 귀 뒤를 만지지 않았다. 두 사람은 서로의 상처를 확인했고, 그것을 더 이상 증명하지 않아도 되었다.

퇴근을 알리는 듯 재단 직원이 입구의 조명을 하나씩 껐다. 성당은 다시 어둑해졌다. 그러나 아까와 같은 어둠은 아니었다. 어둠도 한 번 지나가면 달라진다. 그 안에서 누군가의 말을 들었다면, 누군가의 아픔을 알게 되었다면.

준오는 장비 가방을 들었다.

"역까지 같이 갈까요."

이번에는 질문이었다. 숨지 않은 문장. 너무 큰 고백은 아니지만, 분명한 초대.

서윤은 잠시 그를 보았다.

그리고 고개를 끄덕였다.

"네. 같이 가요."

두 사람은 성당 문을 나섰다. 바깥 공기는 차가웠고, 길 위에는 다시 비가 올 듯한 냄새가 낮게 깔려 있었다. 아직 사랑을 말하기에는 이른 저녁이었다. 아직 미안하다는 말도, 편지의 전문도, 오래된 기다림의 끝도 모두 남아 있었다.

그러나 오늘 그들은 깨진 유리 앞에서 알게 되었다.

복원해야 할 것은 창만이 아니었다.

그리고 완전히 새것이 되지 않아도, 다시 빛을 통과시킬 수 있는 것들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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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유리의 계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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